그냥 끄적 끄적...2010. 11. 5. 06:02
매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내용를 뉴스로 보거나 기사로 읽을 때면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난다.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혈육의 헤어짐으로 인한 너무나 길고 긴 고통!
그분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고 있으면
모든 것이 그대로 정지된다.
언제 또 만나게 될까?
남편을, 아내를, 자식을 또 다시 언제 보게 될까?
이제 고령의 나이가 많아서 건강상의 문제로 결국 상봉을 포기하는 분도 계신단다.
일생 품고 있던 소원을 결국 이루지 못한 분들...
그분들의 회한은 또 얼마나 깊을까?



5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다는 남측의 박상화(88) 할아버지는 북측의 딸 박준옥(64)을 보고
그 자리에서 한 눈에 늙은 딸을 알아봤단다.
미안하다며 계속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가슴이 아려온다.
가물거리는 기억 속에서도 어린 딸의 모습만큼은 끝까지 붙들고 계셨었나보다.
4살 때 헤어진 뒤 처음 만난 딸에게
"내 딸아 미안하다, 내가 혼자 내려오는 것이 아닌데…"라며 눈물을 쏟는 모습을 보면서
이산의 아픔과 고통에 내 눈까지 붉어진다.



북측의 두 동생을 만나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남측의 전춘자(83) 할머니.
할머님 역시도 파킨슨병을 앓고 있지만 상봉행사 중에는 내내 맑을 정신을 유지하셨단다.
7살, 5살에 헤어진 동생은 이제 64세, 62세의 노인이 되어 있다.
홀로 남쪽으로 내려와 고생할 동생들 생각에 명절마다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할머님은
여동생에겐 자신이 입고 있던 스웨터까지 벗어주고
남동생에겐 쓰고 있던 돗보기를 벗어줬다.
할머님은 이미 무려 60kg에 달하는 생필품과 의약품을 동생들에게 건네주고서도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 안달하신다.
"동생들에게 챙겨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었다"는 할머님.
그 절절하고 애끓는 심정을 내가 감히 알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사망한 형을 대신해서 나온 조카를 만난 남측의 조중휘(76) 할어버지.
저 두 손 안에는 얼마나 많은 세월과 그리움과 아픔이 담겨있을까?
늙은 조카를 만나는 더 늙은 삼촌.
분단은 이렇게 일가의 사간을 송두리째 잡아먹어 버렸다.

남북한 합쳐 이번 상봉의 최고령자였던 남측 김부랑(97) 할머님은
남편이 북측에서 결혼해 낳은 딸 권오령(65)씨와 외손자 장진수(38)씨를 만났다.
교사이던 남편이 북한지역으로 발령받아 떠난 뒤 해방후 38선이 막히면서 헤어졌다고 할머님은
재혼을 하지 않은 채 시부모님을 모시고 1남 2녀를 키우며 살아왔단다.
할머님는 남편이 북한에서 낳은 딸인 오령씨의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혔고, 
함께 온 아들 오인씨는 "아버지라고 큰 소리로 한 번 불러보고 싶었다"고 눈물을 쏟았다.
할머님은 남편의 묘소에 부어달라며 다른 선물들과 함께 술 한 병도 건넸다.
97의 연세까지 포기하지 않고 만나길 원하는  혈육의 회한.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난 남편의 자식을 부등켜안고 보듬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에는
일생의 고통이 그대로 담겨있다.



이번 상봉에서 남측 94명 가운데 90대가 무려 19 분이었다.
80대는 48명, 70대는 27명, 그리고 69세 이하는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기사를 보고
더 늦기 전에 헤어짐으로 찢겨진 가슴을 감싸줄 방법이 정말 절실해졌다.
남북 고향방문 행사를 주최한 대한적십자사도
심각한 고령화에 놀라며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가족이 헤어져 평생을 사는 것도 고통인데
남아있는 시간 또한 얼마 없다면...
정치적인 것 모두 떠나서 혈육에게 깊고 깊은 회한만은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측도 북측도 이 문제에 대해선 어떤 정치적 관점도 개입시키지 않고
두고두고 이 분들의 뼈아픈 눈물들을 기억했으면...
주름진 두 손을 기억했으면...
점점 흐미해진 기억을 무슨 일이 있어도 붙잡고 있는 모습을 기억했으면...

헤어진 모든 이산가족들이 아무 조건 없이 다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바래본다.
더 이상 눈물 흘리는 가족이 없었으면...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