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8.04.30 09:20

비셰흐라드 (Vyšeehrad)의 특별한 곳이 있는데

국립 명예 묘지와 신전(Vyšehradský hřbitov se Slavínem)이 바로 그곳이다.

빈의 중앙묘지처럼

체코의 중요 인물들이 이곳에 묻혀있다.

과거에는 유료로 개방했다는데 지금은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게 개방 중이다.

비셰흐라드에 꼭 가고 싶었던 이유도 바로 이곳 때문이었다.

 

 

 

죽은 자들의 나라를...

오래오래 걷고 싶었다.

2011년 생애 첫유럽 여행이었던 터키가 생각난다.

파묵칼레 네크로폴리스를 혼자 걷는데 두려움 반, 편안함 반이었다.

그 여운이, 그 느낌이, 그 감정이 고스란히 몸에 새겨진 모양이다.

이렇게 여행때마다 죽은 자들의 나라를 찾는걸 보니...

  

 

안쪽으로 쭉 들어가면 거대한 천사상이 나오는데

그 아래 44명의 관이 놓여 있다.

알폰스 무하, 카프카의 이름이 보인다.

무하의 묘는 실재하지만 카프카는 이곳에 아닌 신유대인묘지에 묻혀있다.

그러니까 가묘라는 뜻.

카프카에 대한 헌정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신세계 교향곡"을 쓴 드보르작과 "나의 조국"의 작곡가 스메타나도 이곳에 잠들어있다.

체코를 넘어 세계적인 유산을 남긴 대가들의 비망록 앞에

조용히 그리고 깊게 머리를 숙였다.

 

 

돌아가는 길,

날이 조금씩 흐려졌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마음 속의 낯설음이 덪이 된 모양이다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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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끄적 끄적...2018.04.27 12:05

2018 남북 정상 회담.

정말 뭔가 달라질 모양이다.

그리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아주 아주 역사적인 날.

양측 모두 좋은 성과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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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8.04.26 08:01

비셰흐라드 (Vyšeehrad)에 있는 

성 페트르와 성 파블 성당(Kostel Sv. Petra a Pavla)은 11세기에 만들어졌다.

친숙한 이름으로 말하면 성 베드로와 바울 성당

처음 건축됐을때는 하늘로 쭉쭉 뻗은 고딕양식이었지만

증축과 보수를 거쳐 지금은 여러 양식이 혼재한 성당이 됐다.

유럽의 성당들은 500년도 우수은 시간이라

하나의 건축양식으로 만들어진 성당을 찾는다는건 사실 불가능하다.

 

 

예수가 죽임을 당할때 천국의 열쇠를 맡겼다는 베드로와,

기독교인을 박해하러 가던 중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회계 후 그리스도 전파에 일생을 바친 바울.

기독교를 대표하는 사도 2인.

조금씩 흐려지는 날씨.

그래서 더 장엄하고 고적했다.

패밀리 티켓이 구입해 안으로 들어갔다.

(패밀리 티켓은 100czk)

 

 

화려하고 선명한 스테인드 글라스에 감탄이 절로 났다.

주제단의 웅장함과 천장의 프레스코화를 보고 있으니 

시간이 그대로 정지된 느낌이다.

아들을 안고 하늘을 향해 절규하는 2개의 조각상.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피에타는 신성이 아닌 모성을 대변하기에 더 비극적이고 애절하다.

이날 성당에는 우리 세 사람이 전부였다.

그냥... 이 모든게 마치 준비된 고요 같았다.

일부러 이곳을 찾아온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온전한 이 시간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베드로와 사울,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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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8.04.25 08:34

메트로 C를 타고 비셰흐라드 (Vyšeehrad)로 향했다.

체코어로 "Vyše"는 "위"를, "Hrad"는 "성"을 뜻한단다.

즉 "위쪽에 자리잡은 성"이란 의미.

이곳에서 프라하 탄생신화가 시작된다.

비셰흐라드는 전설 속 리부셰 공주가 평범한 농사꾼인 프르제미슬에게 마법의 말을 보낸 장소다.

후에 두 사람은 결혼해서 프라하의 시조인 프르제미슬리트 왕조를 창시한다.

리부셰 공주는 숲이 우거진 비셰흐라드에서 블타바강 너머 바라보며

영광이 하늘에까지 미칠 위대한 도시의 탄생을 예견했단다.

그 위대한 도시가 바로 프라하!

하늘님의 아들이 내려오고, 알에서 깨어나고... 등등의 신화에 익숙한 나에게

이런 소박하고 무던한 신화는 오히려 정겹게 느껴졌다.

마치 프라하처럼.

 

 

지하철에서 내려 이정표를 따라 걸어가면 정문인 "레오폴드문"이 나온다.

발트슈테인 궁전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이곳은 그보다 더했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시가지쪽에만 있는 모양이다.

관광객보다 동네주민들이 대부분이다.

좋은 쉼터를 곁에 두고 사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원형의 건축물은

성 마르틴 교회의 로툰다(St. Martin’s Rotunda)다.

12세기에 완공된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네스크 성당이라는데

문은 굳게 잠겨있다.

1841년 도로건설 계획때 이 성당이 사라질뻔 했는데

당시 시의원이었던 카를 호텍 덕분에 보존될 수 있었단다.

예전 스페인 세고비아에서 봤던 베라 크루즈가 생각난다.

규모면에서는 마르틴 로툰다 성당이 훨씬 작지만

두 성당 모두 작아서 아름다운 성당이다.

종교의 힘보다는 종교의 본질인 믿음 먼저 느껴지는 성당.

 

 

비셰흐라드는 1140년까지 왕궁과 요새로 쓰이다가

흐라드차니에 프라하성이 완성면서 뒷방 늙은이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천천히 걸으며 계절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저 멀리 프라하성을 묵묵히 바라보며

빈벤치에 앉아 사과 한 알을 오래 씹어 삼켰다.

마치 현지인이라도 된 듯이.

'좋다'라는 말로

이 모든 감정을 표현하기엔 터없이 부족하지만

다른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되기에 또 다시 되뇌인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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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8.04.24 10:48

프라하에 가면 이곳은 꼭 가야지 생각했더랬다.

사진으로 봤었는데 깜짝 놀랐다.

신비감이 느껴질 정도로 기괴한 모습.

이곳... 도대체 정체는 뭘까 궁금했고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어딘가 합스부르크왕가의 기운이 느껴지는 이름을 가진

발트슈테인 궁전(Valdštejnská Zahrada).

 

 

찾아가는게 쉽진 않았다.

구글맵을 켜고도 해맸다.

맵은 분명 도착이라고 뜨는데 입구가 어딘지 전혀 모르겠는거다.

"궁전"이래서 커다란 입구를 상상하고 찹았다.

그런데 의오로 아주 평범해서 놀랐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여기가 맞아? 하면서 몇 번을 기웃거리다 찾았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한적하게 둘러보기 딱 좋았던 곳.

하지만!

난데없는 조카녀석의 재롱잔치(?)에 그 고요함은 곧 깨졌다.

활쏘는 동상과 조카와의 한판 승부.

결국 조카녀석은 장렬하게 전사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도 나오는 야외 음악당 살라 테레나(Sala Terrena)에서는

지금도 연극과 콘서트가 열린단다.

천장과 벽에 있는 그림들은 아마도 "뮤즈"들인듯.

무대에서도 객석이 한 눈에 보이고,

객석에서도 무대가 한 눈에 보인다.

무대 위에 올라 소리를 내봤더니 울림이 아주 좋았다. 

두루두루 좋은 무대다.

 

 

발트슈테인은 부과 권력을 두루 가지고 있던 귀족으로

당시 최대 적수인 구교와 신교, 합스부르크 제국과 보헤미아 귀족 사이를 오가며

왕을 능가하는 권세까지 누렸단다.

그러다 스스로 왕이라는 환상에 빠져

프라하 성보다 더 멋진 궁전을 짓겠다 작정하고 이 궁전을 짓기 시작했다.

발트슈테인의 욕망도 욕망이지만

프라하 왕 역시 그런 발트슈테인을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은밀히 암살해버린다.

그래선지 벽을 가득 채운 검은 돌 장식이 유령처럼 보인다.

혼자였다면 등골이 오싹했을지도...

그래도 정원은 황홀할정도로 예뼜다.

아무렇지 않은듯 무심히 돌아디니는 공작들도 신기하고...

 

가을의 동유럽은,

어디든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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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8.04.23 13:40

화약탑, 천문시계탑, 구시가지교탑, 말라스트라나 교탑.

프라하 전경을 볼 수 있는 tower 네 곳.

화약탑은 구시가지광장과 카를교와 거리가 있어 veiw가 시원하지 않고

천문시계탑은 올라갈 순 있지만 보수중이라 답답하고

남은 곳은 카를교 양쪽 끝에 있는 교탑 두 개.

그 중 내가 선택한 곳은 구시가지 교탑(The Old Town Bridge Tower)이다.

이유는,

카를교에서 프라하성까지 이어지는 파노라마를 한 눈에 보고 싶어서.

 

 

아쉽게도 패밀리티켓이 없다.

요금은 성인은 100czk, 학생은 70czk.

교탑 아래에서 티켓 오피스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작은 문을 통해 위로 올라가야 나온다.

입장료는 천문시계타워가 130czk로 좀 비싸고

(천문시계타워엔 패밀리티켓이 있다)

구시가지교탑, 말라스타라나 교탑, 화약탑은 전부 똑같다.

다행이 사람이 많지 않아 바로 올라갈 수 있었다.

 

 

교탑 꼭대기에서 바라본 모습.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협소하고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을 피해가면 열심히 사진기를 눌렸다.

일직선이 아닌 물의 흐름처럼 휘어있는 카를교도 멋지고

떠내려오는 빙하의 막기 위해 다리의 왼편에 설치된 구조물들도 위에서 내려보니 꽤 운치있다.

노랗게 물든 나뭇잎과 블타바 강의 파란 색의 대비도 선명하다.

이 모든 것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우뚝 솟은 비트 대성당까지.

프라하의 진수가 내 눈 앞에 아낌없이 펼쳐져있다.

날씨까지 맑아 더없이 좋았다.

축복같은 하루.

내려오면서 본 특이한 조각상은

파리의 노틀담의 곱추처럼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을것 같아.

안내문이 읽어봤는데 특별한 내용은 없다.

악마인지 원숭이인지 모를 저 형상이 상징하는게 무엇이고, 저걸 높은 곳까지 올려놓은 사람이 누구일까?

뭐.... 대략 이런 내용인듯.

 

 

아쉬운 마음에 말라스트라나 교탑도 몇 장.

카를교를 건너야 있는 교탑이라서

위치상 블타바강과 프라하성 같이 볼 순 없다.

대신 카를교 너머 구시가지쪽 스카이라인은 한 눈에 보이겠다.

제일 좋은건 두 곳을 다 올라가는 거겠지만

한 곳만 가야한다면 나는 구시가지교탑을 추천한다.

뭐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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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8.04.20 08:16

이번 동유럽여행을 준비하면서 현지투어는 딱 한 개 신청했다.

Hi Praha의 야경 크루져 투어.

사실 제일 하고 싶었던건 스카이다이빙이었는데

조카녀석 나이가 딱 걸렸다.

보호자가 동의하면 할 수 있다는데 동생과 조카가 싫단다.

혼자라도 하려했는데 그것도 안된대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역시 여행은 혼자하는게 제일 현명한것 같다. 다음번엔 꼭....)

Hi Praha 야경 크루져 투어는 스투비 플래너를 통해 예약을 했다.

1인당 5,000원을 선입금했고

당일 현장에서 크루즈 비용으로 1인당 290czk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지금 확인해보니 크루즈 비용이 그 사이 325czk로 올랐다.)

 

 

야경 투어 가기 전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조카녀석이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이모! 하늘 봐봐, 진짜 예뻐~~"

침대에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창문 너머로 시작된 황홀한 sun set. 

조카녀석 덕분에 놓치지 않고 본 프리하 야경의 intro ^^ 

 

 

HI Praha 야경 크로져 투어의 미팅장소는

구시가지 광장 얀 후스 동상 앞.

일찍 도착해서 시간이 남아 주변을 둘러봤다.

우리의 밤은 당신들의 낮보다 아름답다.

코나의 노래가 절로 생각났다.

예약한 사람들이 다 모이자 김소희 가이드분이 수신기를 나눠줬다.

그리고 곧바로 블타바강 크루즈 선착장으로 출발했다.

 

 

크루즈안에서 찍은 사진들.

야경을 제대로 찍어보겠다고 미니 삼각대까지 챙겨갔었는데

움직이는 배 안에서 사진찍는다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했는데 심령사진들만 속출,

깔끔히 포기하고 핸드폰에만 의지해서 찍었다.

파리, 프라하, 부다페스트, 루체른, 베네치아.

"유럽의 5대 야경"이라는 네이밍은 빈말이 아니었다. 

화려하지 않고 은은해서 개인적으로 더 좋았다.

폭신폭신한 이불을 덮은 듯한 느낌.

순하고 고요한 프라하의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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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8.04.19 10:01

체코의 역사가 숨수고 있는 구시가지 광장(Staroměstské Náměstí).

1437년 이곳에서 종교 개혁자 얀 후스의 추종자들이 처형됐다.

그보다 앞선 1621년 30년 전쟁 때에는 27명의 프로테스탄트 귀족들이 참수를 당하기도 했다.

지금은 천문시계 보수로 가림막으로 가려졌지만

그때 처형되었던 귀족들의머리가 놓어있던 자리에 1621년을 뜻하는 숫자와 십자가 문양이 새겨져있다.

1968년 "프라하의 밤" 당시에 이곳까지 소련군의 탱크가 들어왔었고

1989년 "프라하 벨벳 혁명"이 선포된 곳도 바로 여기,

구시가지 광장이다.

그야말로 체코의 피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있는 장소라 하겠다.

 

 

얀 후스(Jan Hus)는 체코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인이다.

당시에는 특정 계층만 이해하는 라틴어로만 예배를 진행됐는데

얀 후스에 의해 처음으로 체코어가 예매에 사용돼 평범한 사람들까지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단다.

신학자였던 그는 면죄부를 판매하는 당시 카톨릭의 타락을 세상에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결국 1411년 교황에게 파문을 당하고

1415년에는 콘스탄츠 공의회로부터 이단으로 몰려 화형되기에 이른다.

(종교처럼 배타적이고, 종교처럼 잔인하고, 종교처럼 독단적인 곳이 없다)

구시가지 광장에 서 있는 얀 후스 동상은

1915년 그의 사망 5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전도연, 김주혁 주연의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으로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명소다.

얀 후스의 발밑에 쓰여진 문구는,

"진리는 승리한다"라는 뜻.

(정말 진리가 승리했음 좋겠다...)

 

 

한때 후스파의 본거지였던 틴성당은

하늘로 우뚝 솟은 첨탐을 가진 틴 성당.

1후스파의 본거지로 사용됐을때는

 두 첨탑 사이에 후스파를 상징하는 황금 성배와 보헤미아 왕의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었다.

30년 전쟁 후에 왕의 조각상은 지금의 성모 마리아상으로

황금성배는 녹여 성모마리아의 후광으로 만들어버렸다.

성당은 미사 시간 전후로만 개방하는데 입구가 숨거져 있어 잘 찾아야 한다.

두 번을 갔었는데

첫번째는 아예 출입문이 닫혀있었고

두번째로 아침 일찍 혼자 갔을 땐 출입문이 열려있어 철책 사이로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어두울거라 생각했는데 주제단의 긴 창 때문인지 의외로 아주 밝았다.

작지만 시간의 위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

 

 

구시가지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

말라스트라나 광장에 있는 성당과 같은 이름을 가진 성 미쿨라쉬 성당.

틴성당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이곳이 구시가지를 대표하는 화합의 장소였다.

틴성당 바로 옆 건물은 "돌종의 집"

자세히 보면 건물 모서리에 앙증맞은 종이 숨어있다.

숨겨진 사연 하나쯤 있을법한데 찾아봐도 없더라.

특별한 local stroy를 기대했건만...

돌종의 집과 벽이 닿아있는 왼쪽 건물은 콜츠킨스키 궁전.

이곳 이층 발코니에서 1948년 체코의 공산당 통치가 선언됐다.

건물 1층은 한때 카프카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상점이 있었고,

2층은 그의 가족이 살던 아파트였다.

예나 지금이나 광장에는 사람들로적였을테고니

조용하고 예민한 카프카의 성격상 이곳에서 글을 쓰는건 쉽지 않았을테다.

그러니까 아파트 주변 환경이 카프카를 황금소로로 이끌었고

황금소로 22번지 작은 집에서 그의 명작들이 탄생됐다는 이야기.

카프카 덕후인 내겐 예사로 넘길 건물이 아니다.

저 건물을 수시로 오갔을 카프카의 상상한다.

어딘지 우울하고 어두운 그의 뒷모습을.

 

내게 있어 프라하는,

카프카의 흔적들이다.

어쩌면 카프카와 동의어였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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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8.04.18 13:50

프라하 여행을 준비하면서 관건이 됐던건 구시청사 천문시계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매시 정각에 펼쳐지는 시계탑의 퍼포먼스를 볼 수 있느냐 없느냐가 핵심이었다.

못 볼 확률이 높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구시가광장을 몇 번씩 오가면서 정각에 시간을 맞춰 갈 생각을 안했다.

대대적인 보수공사로 가림막에 쌓여진 옆모습을 보고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천문시계 정면은 아직 가려지기 전이라 아낌없이 볼 수 있었다.

천문시계가 처음 만들어진건 1490년이란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528년 전에 만들어진 시계가 아직까지 작동한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중간에 100년 정도는 작동을 멈추긴 했지만 원형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도 놀랍다.

 

그런데 더 놀라운건,

정각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다는거!

우연히 정각즈음에 그 앞을 지나가게 됐는데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이는걸 보고 아직 한다는걸 알았다.

그래도 멈춰서 봤다.

기쁜 마음에 동영상도 찍었.

 

 

 

천동설을 기초로 만든 천문시계에는 두 개의 원판이 있는데

위쪽는 시간과 천체의 움직임을 나타내고

아래쪽은 12개월을 상징하는 일종의 달력이다.

퍼포먼스는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매시 정각이 되면 펼쳐진다.

1분이 채 안되는 짧은 순간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목을 뺀 채 기다린다.

정각이 되면,

윗쪽 원반 오른쪽에 있는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의 왼손에 있는 모래시계가 움직이며 줄이 당겨진다.

바로 위에 있는 두 개의 창문이 열리고

예수와 12사도가 차례로 지나가며 얼굴을 보인다.

그때 해골 좌우에 있는 3개의 인형들도 함께 움직인다.

해골 옆에 있는 터번 두른 터키인은 두려움을,

반대편 지갑을 든 유대인과 탐욕을, 거울을 든 사람은 허영를 상징한다.

마무리는 제일 위에 있는 황금색 수탉이 담당한다.

짧고 강력한 한 번의 울음.

못 볼거라 생각했기에 그 짧은 순간의 목격이 마냥 기쁘고 행복했다.

(내가 다녀온 직후 복원을 위해 전면 해체에 들어갔다고...)

 

 

 

밤의 천문시계는 낯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개인적으론 밤의 느낌이 훨씬 다.

뭐랄까...

내가 신화 속에 들어와 있는듯한 느낌?

시간의 파노라마가 내 앞을 스쳐가는 것 같다.

528년이라는 시간의 힘은,

생각보다 힘이 쎄다.

그래서 감동적이었다.

아주 많이.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8.04.17 08:53

캄파섬을 둘러본 뒤 다시 프라하성으로 방향을 잡았다.

12시에 한다는 근위대 교대식을 보기 위해서.

시간이 넉넉해서 일부러 천천히 둘러보며 다녔다.

점심 시간이 점점 가까와서인지 여기저기 맛있는 냄새가 진동한다.

특히 체코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굴뚝빵(트레들로) 굽는 냄새는 식용을 당기게 했다.

달콤하면서 꼬득꼬득한 냄새랄까?

원뿔 모양의 굴뚝빵에는 아이스크림이나 생크림을 담아준다.

(물론 그냥 굴뚝빵보다 가격은 비싸다.)

사람들이 정말 많이 들고 다니면서 먹는 빵.

그런데 정작 나는 한 번도 못먹어봤다.

왜 그랬지???

 

 

성 미쿨라쉬 성당.

프라하에는 미쿨라쉬 성당이 3개나 된다.

사진속 성당은 말라스트라나 광장에 있는 마쿨라쉬 성당으로

2,500개의 파이프가 달린 파이프 오르간으로 유명한 곳이다.

매일 저녁에 유료 공연이 있다는데 짧은 일정이라 가보진 못했다. 

오래된 성당에서 파이프 오르간 연주 듣기... 이것도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아쉽다.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는...어쩌면...)

성 미쿨라쉬 성당 맞은편에는 사람 얼굴로 된 부조물이 주차된 차들 뒤로 서있다.

특이한 장식물이네... 싶겠지만

종교전쟁 중에 참수당한 프로테스탄트 귀족들의 얼굴이란다.

자세히 보면 얼굴 모양이 다 다르다.

프라하의 유령 혹은 수호천사들.

 

 

이왕 보는거 좋은 자리에서 보자며 서둘러 프라하성 정문으로 향했다.

흐라트차니 광장에 동상 앞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30분경.

높은 곳에서 전체적으로 내려다 볼 생각으로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정오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잘하면 각양각색의 뒷통수만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군인 몇 명이 광장 앞으로 나와 사람들 사이로 길을 만들기 시작한다.

기대감으로 광장 주변이 덩달아 술렁였다.

 

 

사람들 틈에서 동영상을 찍긴 했는데

용량이 커서 올라가지 않는다는게 함정.

(편집할 의욕 따위 없고!)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그렇게 멋지진 않았다.

시작은 흐라트차니 광장쪽이지만

실질적인 교대식은 정문 안쪽 제1광장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기둥과 철책에 많이 가려졌다.

그때서야 이해가 됐다.

사람들이 왜 정문 앞으로 왜 그렇게들 모여들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많은 사람들 틈에 들어갈 자신은 지금도 없다..

그러니까 그날 그 자리가 내 자리였던걸로!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