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3. 25. 08:31
플레이 디비에 이벤트 당첨이 됐다.
이벤트가 아니었어도 이번엔 꼭 보리라 생각했던 작품이다.
매번 공연기간도 너무 짧았지만(이번에도 3월 24~28일까지 사흘간 공연이다)
이상하게 나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던 공연이었다.
주변에서 이야기는 참 많이 들었었는데...



1930년대 대중음악 장르 하나였던 만요(漫謠)를 가지고 만든 공연이다.
<오빠는 풍각쟁이>, <엉터리 대학생>, <신접살이 풍경>, <왕서방 연서>, <노들강변> 같은
재미있고 풍자적인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다.
뮤지컬 배우 박준면이야 연기와 노래로 익히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고
내가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건 하림의 모습이었다.
그의 노래를 얼마나 좋아했던가?
"출국", "난치병"(1집), "여기보다 어딘가에",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2집)
감상적면서도 어딘지 시니컬한 그의 노래는 고급스럽기까지 했었다.
2004년 2집이 나온 후 그의 침묵은 참 길어서 궁금했었는데...
<천변살롱>에서 본 그는 외형적으론 홍석천을 떠오르게 한다.
어쩐지 약간 코믹하고 오래된 만평같은 느낌이랄까?



<천변살롱>의 마담 박모단.
"모단"이란 이름은 그녀의 애인 "진일파"가 지어주었단다.
모던한 여성이 되라고...
모던한 여성을 희망하는 박모단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노래들.
향수를 자아내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어리지만(?)
왠지 콧소리 가득한 만요(漫謠)가 정감있고 다정하게 들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확실히 박준면의 콧소리는 매력적이다.



안타까운 건,
이 극이 신세대를 아우르기에도 그렇다고 해서 어른신들의 추억을 아련하게 떠올리게 하기에도
확실히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코믹의 요소로만 전락할 가능성도 다분히 보인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지금까지는 어쨌든 박준면과 하림이라는 축에 의해 잘 이어가긴 했는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이 앞전의 공연들을 보지 못했기에 한 번의 관람으로 뭐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분명 처음과는 달라지지 않았나 싶다.
어디까지나 우려일 수 있겠지만...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걱정거리 또 하나,
두 사람(박준면과 하림)이 빠져도 공연이 지금과 같은 매니아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어쩌면 장기공연을 할 수 없었던 이유가
오랜 공연으로 이 극의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거란 우려 때문은 아닐까?



노래에 맞추기 위해 이야기를 억지로 만들어냄으로써
(가령, 모단의 연인으로 추정되는 진일파와 그의 약혼녀의 죽음이라든가, 기생집 명월관의 등장같은 것들)
어쩌지 극을 작위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차라리 <천변살롱> 마담이 살롱의 손님들의  에피소들 이야기하는 구성이었다면 어땠을까?
(식상했을라나???)
대본을 쓴 사람이 누군가 열심히 찾아봤다
음악평론가 "강헌"씨다.
결국은 스토리를 따라가는 공연이 아니라
요즘 세대엔 쉽게 들을 수 없는 만요(漫謠)에 촛점이 맞춰진 공연이라는 의미다.
유랑극단을 떠올리게 하는 살롱밴드들과
옛스런 소리를 내는 아코디언과 바이올린이 주는 느낌은
아무래도 젊은 시각에서는 독특하고 신선할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나만 해도 이런 만요를 실제로 듣어본 건 처음이었으니까...



공연에 나오는 만요(漫謠)의 가사들은 정말 재미있고 독특하다.
하림의 부르는  "왕서방 연서"나 "개고기 주사"는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쓰디 쓴 막걸리나마 권하여 보았건디
 이래뵈도 종로에서는 개고기 주사
 나 몰라? 개고기 주사를?"
모단걸 박준면이 부르는 "이태리의 정원"이나  "외로운 가로등"은
그녀의 풍부한 감성과 가득한 울림을 듣기에 좋은 곳.
적당히 감상적이기도 하고...



가끔은 나도 살롱문화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건 실제로 경험한 자가 갖는 향수가 아니라
미처 경험하지 못한 자의 동경이리라.
"하늘가 찻집"
정말 그런 곳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나 역시나 기꺼이 모단걸이 되어 질편한 만요를 부르고 싶어지지 않을까?
내게도 오래 품은 이야기가,
쏟아내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하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3. 23. 06:22

매년 3월이면 COEX에서 KIMES가 개최된다.
26회 국제 의료기기 및 병원설비 전시회 (Korea International Medical + Hospital Equipment Show)
지난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4일동안 열렸다.
초대장도 있고 궁금도해서 오랫만에 강남 구경(?)을 다녀온 셈.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약간 산만하고 부산한 분위기.
그래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부스를 설치하기 위해서
엄청난 로비를 했겠구나 싶다.
역시나 GE나 Philips같은 곳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긴 했다.
요즘 왠만한 곳은 PACS system이 되어 있긴 하지만
점점 진보되는 장비들을 보면 감탄스러울 뿐이다.
탐나는 mammo 전용 판독 모니터랑 원격 판독 솔루션.
뭐, 문제는 "돈"이겠지만...



요즘 X-ray 장비들도 가볍고 작동하기 편하게 많이 나온다.
tube측에 모니터까지 달려있어
각도와 거리(SID), 선량같은 것들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검사자 입장에서도 편하겠지만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도 모든 정보들이 보여진다는 이야기다.
편리성의 이면엔 검사자(술자)의 더 깊은 주의력이 필요다다는 뜻이다.
어쨌든 지금은 모든 게 "공개"되는 세상이니까.



탐나는 물건 하나 더 발견!
DR portable 장비.
수술실이나 신생아실, 병동에 있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해 이동형 X-ray 장비다.
우리 병원은 현재 다른 대부분의 병원들처럼 IP판을 이용한 CR 방식이다.
영상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꼭 4층에 있는 영상의학과까지 와서
IP(image Plate)을 영상처리해야만 한다.
그래서 만족스런 영상이 나오지 않았을 경우에는
다시 장비를 가지고 이동해서 재촬영을 한 뒤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만 한다.
DR 방식은 환자를 검사하고 나면
장비 자체에 있는 화면을 통해 영상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검사자나 환자 모두에게 유용한 장비라고 할 수 있다.
이 장비 하나가 2억이 넘어간단다.
집 한 채를 뛰어넘는 가격이다.
의료장비의 진화와 고급화는 결코 저렴화로는 갈 수 없는 모양이다. (^^)
그리고 더불어 국산화까지도...



초음파 장비 회사들은 직접 시연을 할 수 있는
demo room을 따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나쁘지 않은 마케팅 방법인 것 같다.
그리고 각 대학병원의 임상시험 센터도 부스를 차지하고 있다.
관련된 세미나나 컨퍼런스도 많이 개최되는데 이번엔 참석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순전히 게을러서다)
한번씩 다녀오면 괜찮다는 걸 느끼는데
그 한번이 매번 쉽지가 않다.
역시 뭐니뭐니해도 부지런해야 정보를 엳을 수 있는 법인데..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3. 22. 06:25
지난 주 합정동에 있는 양화진문화원을 다녀왔다.
매주 목요일마다 강좌가 있는데 이 날 연사가 소설가 박완서님이었다.
사람은 누구라도 한 번쯤 소설가(작가)가 되기를 꿈꾼다.
그리고 마흔의 나이에 문단에 등단한 박완서님은 그런 사람들의 로망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박완서님은 모든 사람의 로망이 되는 셈이다)
1931년 10월 20일 생이니까 올해 여든이 되셨다.
그런데 너무 정정하고 정말 고운 모습이라서 놀랐고
그 수줍던 미소가 따뜻하고 평화로워서 또 다시 놀랐다.
수줍은 소녀같은 대가의 모습은 향기로웠고 그리고 더불어 잔잔한 물결의 흐름같았다.



<나는 왜 소설가일 수밖에 없는가?>
연좌에 앉아서 옛기억을 반추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은
아주 달고 시원한 시골집 우물물을 방금 길어와 마시는 것처럼 청량하기까지 했다.
80의 노구(老軀)가 말하는 어릴 적 부모에게 사랑받은 깊은 기억은
울컥울컥 당신의 눈가를 붉게 만들었고
나는 그런 당신의 유년이 탐이나서 할 수 있다면 송두리째 훔쳐내고 싶었다.
<나목>이 서 있는 <유년의 뜰>에서의 <엄마의 말뚝>,
그 기억이 결국은  <친절한 복희씨>까지 쓰게 하는 힘이 됐음을 당신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신의 이 모든 이야기는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고스란히 담겨있기도 하다.



강연에서 박완서님은 자신이 소설가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아니 소설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네 가지 정도 언급했다.
첫째, 어릴적 부모님에게서 받았던 지극한 사랑.
둘째, 항상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던 당신의 어머니.
셋째, 동네 여인들의 편지를 써 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바라봤던 기억.
그래서 당신이 그 엄마의 딸이었기에 "엄마를 흉내내는" 소설가가 될 수 있었노라 고백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6.25 전쟁을 겪으면서 당신이 겪었던 상황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서였단다.
그 당시 버리지 취급받았던 모욕과 기만, 박해의 기억들을 절대 잊지않고 기억해서 
언젠가는 꼭 글로 쓰리라 다짐하게 됐다고.
그리고 그 다짐이 당신의 시대를 견디게 만들었노라고... 
글로 남기는 게 인간으로서의 최후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라고 당신은 생각했단다.
그게 바로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힘이 되는 "소설의 힘"이노라고...



모든 걸 뒤섞는 전쟁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은 "미움"을 박아 놓는다.
그러나 작가 박완서님은 또 분명히 말하기도 했다.
"미워하는 마음만으로는 그러나 글을 쓸 수 없다"라고... 
80의 노구(老軀)의 입을 통해 발음되는 "엄마"라는 단어는
미움을 넘어서 완전하게 풍요로웠으며 사랑으로 충만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남긴 당신의 말들은 아직까지도 내 가슴 속에 생생하게 담겨있다.
"나는 환영받는 생명이었다"
당신의 입을 통했던 모든 이야기들,
미군 PX에 서울대라는 간판으로 직원이 됐던 이야기,
그 당시 1년간 함께 일햇던 초상화를 그리며 생계를 연명했던 박수근 화백의 모습,
(이 기억은 훗날 당신의 소설 <나목>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오빠의 죽음과 아들 이야기까지...
글보다 말이 두렵다며 조심스럽게 강연을 시작한 당신의 말들은
당신의 글만큼이나 따뜻했고 그리고 진실하고 다정했다.
(당신의 촉촉해진 눈가를 내가 어떻게 잊을까!)
이 세상에 허가된 거짓말이 바로 "소설"이란다.
그러나 그 거짓말 속에 진실이 담겨져 있기에 당신의 글을은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고, 믿음이 있다.
아! 이렇게 한 사람때문에 많은 사람이 풍요로울 수 있구나.
감동했고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했다.
당신의 글들을 이제 나는 마디마디 조목조목 돒아보고 하나하나 쓰다듬으며 읽어내리라.
내게 당신의 글들이 "진심으로 환영받는 생명"이 됐음을 어떻게 의심할까?
당신이 더 곱기를, 더 소녀같기를, 더 꿈꾸기를 
돌아오는 내내 나는 감히 바라고 또 바랐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3. 13. 06:14
이미 네 번을 본 <오페라의 유령>을 다시 보기로 한 건
순전히 한 사람 때문이었다.
라울 정.상.윤.
배우 홍광호가 2월 27일 마지막으로 라울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리고 3월 14일 홍광호가 세계 최연소 팬텀으로 데뷔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나는 다른 이유로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팬텀이 윤영석이든 양준모든,
크리스틴이 최현주든 김소현이든 상관이 없었다.
드디어 인연이 닿게 된 정상윤 라울이 궁금하고 반가웠을 뿐.
그게 다섯번째 <오페라의 유령>을 본 이유의 전부였다.



처음으로... 처음으로...
오페라의 유령을 보면서 졸음과 싸웠다.
꼭 정상윤 라울의 부족함만을 꼬집으려는 건 아니다.
극의 시작인 경매 장면부터 이상하게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
그건 처음이 주는 낯섬 때문이 아니라 (만약 그런거였다면 나는 기꺼이 참았을 것이다)
지금껏 잘하고 있던 익숙한 것들의 틀어짐같은 묘한 어긋남이었다.
급기야 보는 내내 스스로를 책망했다.
"너무 많이 봤어! 너무 많이 봤어!"라고...
어쩌다 나는 <오페라의 유령>을 보며 쏟아지는 잠과 싸워야 했을까?
그래도 그 전까지는 나쁘지 않았었는데...



<쓰릴미>의 "나"였던 정상윤을 생각한다.
그때 그가 얼마나 빛나고 철저하게 아름다웠는지를...
그의 표정의 변화를 보는 건 즐거움이었고
순간적인 감정의 변화를 표현하는 걸 보는 건 짜릿함이었다.
그랬었는데...
그랬던 그가 보여준 라울은,
찌질이는 아니었지만 존재감이 흐릿하다 못해 사라지기까지 한다.
멀쩡한 허우대에 멀쩡한 기럭지에 멀쩡한 톤을 가지고 있는 그는
왜 라울임에도 불구하고 끝내 실종되는 팬텀으로 스스로 변해버렸을까!
팬텀의 사라짐에 익숙해있던 나는
무대위에 뻔히 서있는데 보이지 않는 라울을 보며 진심으로 당황하고 어리둥절했다.
"라울"이 "팬텀"을 꿈꿨던가?



<오페라의 유령>을 보면서 이럴 수도 있구나...
색다른 경험이라고 자위하기엔 너무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8년을 기다려온 뮤지컬이라는 말이 이날만큼은 무색하게 느껴졌다..
무대 위에 있는 그들도 느꼈을까?
익숙함에 길들여진 그들도 제발 느꼈기를...
장기공연의 절반을 지나온 <오페라의 유령>
유종의 미를 기대하는가?
그렇다면 당신들은 변해야 한다.
이러다가는 진심으로 유령으로 남겨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유령이 된 <오페라의 유령>이라...
생각만으로도 참 씁쓸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3. 9. 06:36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쌍둥이 아들로 출연했던 정일우.
그 이후에 일지매로 분했던 청년 정일우가
이번에는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배우에 도전(?)한단다.
"정일우의 연극 데뷔"라는 간판만으로도
이미 어느 정도의 티켓 파워는 이미 예상이 되고
실제로도 지금까지 전석 매진 행렬의 연속이란다.
게다가 그가 맡은 역할이 게이 청년.
카메라를 한 번 거쳐 편집한 TV 연기와
실수조차도 통째로 보여질 수밖에 없는,
그것도 소극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배우의 표현력이라는 거.
물론 배우 정일우에게도 도전이겠지만
보는 입장인 관객에게도 엄청난 도전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연예인들의 뮤지컬, 연극 나들이가 요즘 무슨 붐인가 싶다.
왠만한 가수는 이미 뮤지컬 무대에 서있고
(샤이니의 온유, 동방신기의 시아준수, 소녀시대 제시카, 전혜빈, 슈퍼 주니어의 예성, 성민...
 이 외에도 그야말로 기타등등 기타등등...)
또 연기 잘하는 TV 감초 배우들도 한창 연극 무대를 채우고 있다. 
공연예술은 참 너무하다 싶게 다양화로 달려가는데
그에 비해 깊이감은 자꾸 떨어지는 것 같아 솔직히 어느 때는 속이 상하기도 하다.
(이게 뭐 어디 연예인들의 탓이겠느냐마는...)
정통파 연극배우들의 무대가 그래서 이제는 더 반갑고 놀라울 정도다. (완전 로또지!)
때때로 유명 연예인들의 공연계 접수(?)로
지금까지 좋았던 공연 하나가 송두리째 "허당"으로 전락하는 걸 보게 되면
억지로라도 그 배우를 끌어내리고 싶은 과격한 바람도 솔직히 생긴다.
(또 실제로 그런 모습을 적쟎게 목격한 관계로...)
그래도 일단은 어린 하이틴 배우의 예상치 못한 도전은
사실 놀랍긴 했다.



연극은 참 재미있고 따뜻하다.
정일우의 도전은 물 위에 뜬 기름같이 때론 이질감으로 다가왔지만
(불안한 딕션, 한결같던 톤, 감정없는 대사 처리에 방향감각이 전혀 없던 눈동자,
 잘생긴 얼굴과 상의 탈의로 이 모든 걸 무마하기엔 솔직히 턱없이 부족하더라.)
그래도 다른 두 배우가 참 부지런히 그 부분까지 성실히 덮어주더라.
함께 무대 위에서 연기하면서 배우 정일우는
"하모니"와 "균형"을 배웠을까?
그랬다면 그의 도전은 적어도 본인에겐 플라스 알파가 
충분히 되고 있을테다. 



35살 노처녀 "강은우" 역의 정선아
참 맛깔나게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을 부르던 강은우는
참 구구절절 나같더라.
서러울만큼 놀랍고 두려운 조우였나?
두 남자의 동거기념 3주년 파티,
그녀는 처음엔 분명 불청객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연극의 말미에는 이들은
마치 가족사진을 찍듯 나란히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본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어색하거나 작위적이라는 느낌조차 없다.
강은우가 늘 소원하고 바랐던
함께 할 사람을 이제야 만났는지도 모른다는 묘한 안도감까지 전해진다.
오정진(이상홍)과 이준석(정일우),
이 두 게이커플(?)에게 은우는 여자이면서 동시에 여자가 아닐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 존재의 편안함은 은우의 고백과도 정확히 닿아 있다.
"세상 남자들이 모두 게이였으면 좋겠어. 왜냐면 남자랑 있으면 피곤하잖아
 그런데 오늘은 하나도 안 피곤해!"



피곤하지 않은 인생,
그리고 혼자가 아닌 인생.
누구나 꿈꾸지만 참 쉽지 않고 점점 "진절머리나게 어려워지는 인생"
똑똑 튀는 박장대소의 대사를 들어면서도 나는 어쩐지 명치끝은 자꾸 쨍해진다.
현실을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용기.
어쩌면 "사랑"이라는 걸 하면서 제일 중요한 게 바로 이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만 노력하라며 헤어지자는 준석의 말에 감정을 다치는 두 남자.
은우는 그들에게 말한다.
"왜 부등켜 안고 기뻐하지 않아?
 내가 없어서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이야!"
그런건가?
그래서 은우는 술에 취해 예전에 살던 아파트를 찾았던건가?
그리고 창문 너머로 부인이 있는 애인의 집을 바라보기 위해서?
혹시 나도 그랬었나?
누군가 나에게 말해주길...
"저 하늘의 별이 다 쏟아져내려도 너와는 절대 헤어지지 않아!"
그런 믿음성 없는 말을 아직까지도 내내 꿈구고 있었던건가?



한 편의 연극을 보면서
내 맘은 참 많이 다치고 생채기가 나버렸다.
상처를 들여다 봐야 하는 거?
그래 어쩌면 그것도 공포체험의 일종일수도 있겠다.
서른 다섯이 넘은 여자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마른 논바닥같은 푸석함처럼.
예기치 않지만 집요하고 다가오는 이 구체적인 공포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3. 2. 06:23


2007년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을 마치고 돌연 영국 유학길에 올랐던 그녀. 
영원히 줄리엣일 것만 같았던 "조정은"의 복귀작.
그 이유만으로도 꼭 봐야겠다 다짐하게 만들었던 뮤지컬 <로맨스 로맨스>
2년의 공백 동안 그녀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무대가 그리웠을까?
게다가 계원예고 동창 "최재웅'이 상대역이란다.
오랫만에 동창회에  나오는 그런 느낌도 있지 않았을까?
왠지 그녀의 감회가 나는 기쁘고 그리고 이쁘게 다가온다.



뮤지컬 <로맨스 로맨스>
"Two new musical"이라는 말을 쓰더라.
1막은 19세기 비엔나를 배경으로
2막은 현재를 배경으로 해서 그런가?
"new"라는 단어가 어쩐지 좀 민망하긴 하다.
어쨌든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더이상 새롭지는 않을텐데...  (^^)
아무래도 형식면에서 "Two new musical"이라는 말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이 작품은 오프오프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1988년에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되면서 큰 호응을 받게 되고
토니상 작품상, 대본, 작곡/작사,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작품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미국인들이 우리보다 사랑이라는 감성에 더 악한 것 같다는 생각도...
 


1막 19세기 비엔나
돈 많고 잘생긴 미혼남 알프레드(최재웅)와 화려한 연애편력을 자랑하는 조세핀(조정은).
그들은 진정한 로맨스가 없는 삶이 영 불만족스럽고 무의미하기만 하다.
주인공이 친구 테드와 헬렌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는
이런 무료함과 상류층의 사랑에 대한 신물이 구구절절 적혀있다.
뭔가 다른 사랑을 꿈꾸는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Mask(가면)".
두 사람은 똑같이 가난뱅이 시인, 공장 노동자가 되어
은밀한 연애의 즐거움에 빠져든다.
극의 마지막에 알프레드가 그 스스로의 입으로 말하듯
1막은 하나의 "오페레타(operetta)"다.
경쾌하고 가벼운 웃음을 주는 소극.
천연덕스러운 조정은의 연기가 돋보인다.
그동안 정말 그녀는 무대가 많이 그리웠구나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어딘지 그녀의 목소리와 음색도 예전의 곱고 이쁜 것과는 많이 달라져있다.
능청스러웠던 그녀의 표정은 참 즐겁더라...
깨방정 조정은 ^^

 


2막은 현재
대학시절부터 13년째 절친한 친구인 그(최재웅)와 그녀(조정은).
그들은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닐만큼 가깝고 친한 사이다.
복잡한 일상을 벗어나 바닷가 팬션에서 함께 여름휴가를 즐기는 두 사람은 
서로의 배우자가 잠든 깊은 밤,
거실에서 결혼생활, 플라토닉 한 사랑(우정)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그러니까 그의 말대로 그들은 지금 "연애질" 중인거다.
선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
그 연애질의 이제 막 위험한 관계로 넘어가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이런 경우라면 어떤 결말을 원하는가?
극은 마치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질문하는 것 같다.
우리가 믿는 모든 사랑의 시작은
환상과 거짓일수도 있다. 아니 확실히 그렇다.
그 환상이 이제 막 현실로 넘어오는 순간은 유머러스하고 수다스럽다.
그러나  반전(?)이랄 수 있는 마지막 대사에서는
모든 유부남, 유부녀들에게 마지막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연애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공감되는 대목이 많은 풍자극이라고
조정은은 말한다.
그러니까 이 뮤지컬은 결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상황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즐기라는 뜻이다.
2막보다는 1막이 재미면에선 더 있지만
2막에서 오랜 두 남녀 친구가 주고 받는 시덥잖은 대화 속에 담긴
심리적인 고백들과 그 변화를 따라가는 즐거움은
오히려 1막보다 더 솔솔하고 은근한 재미가 있다.



유학생활 중에 조정은은 생각했단다
내가 나의 모국어로 공연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달았다고.
그래선가?
그녀는 충분히 그 작은 복귀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빛이 그동안의 그녀 속에 있던 그리움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앞으로 그녀는 착하고 이쁜 역을 벗어나
아마도 더 많은 다른 모습으로 무대위에 서지 않을까 기대된다.
사실 배우 조정은을 이쁘고 착한 여주인공으로 만들었던 건
관객의 시선일지도 모르겠지만,
배우 조정은은 이제 그 시선에조차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배우 최재웅.
그에게 코믹한 역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을거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꽤"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오랫만에 본 상큼 발랄한 뮤지컬.
그런데 솔직히 다시 보게 되진 않을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2. 27. 14:02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스포츠에 이렇게 온 국민이 몰입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때는 그래도 경기장 안에 뛰는 선수가 많았었는데
20살 작은 요정 김연아는
그 여리고 작은 몸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자 싱글 쇼트 세게 신기록으로 1위 (78.50) - 음악 : 007 시리즈 테마곡
여자 싱글 프리 세게 신기록으로 1위(150.06) - 음악 : 조지 거쉰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
여자 종합 싱글 세게 신기록으로 금에달(228.56)


 

보고 있으면 그냥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생각밖에는 안 든다.
기품있고 격조높은...
신성한 아름다움마저도 느껴지는 모습.
김연아의 피겨는 역동적이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순수하고 깨끗한 아름다움이 오히려 역동과 다이나믹의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압도해버린다.
20살의 나이가 만들어내는 감성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
이렇게 아름다운 괴물이
이렇게 완벽하게 순수한 괴물이 있었던가?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그동안 그녀가 준비했던 모든 것들을 대변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대중들의 관심과 기대.
그게 어찌 그녀인들 두렵고 걱정스럽지 않았을까.
이 작은 여제는 그 모든 순간들을 오로지 차가운 빙판 위에서 견뎌고
그리고 결국은 이겨냈다.
그 승리가 나는 더 아름다워 눈시울이 매워졌다.

 
 
 NBC 해설위원이며 1984년 금메달리스트였던 스캇 헤밀턴이 말했단다.
"그녀의 음악이 시작하는 순간이 하이라이트고
그리고 끝나는 순간도 마찬가지"라고...
아사다 마오의 쇼트가 크린으로 끝이 나고
바로 뒤 이어 이어진 김연아의 쇼트.
스캇은 김연아의 표정을 보고 그 당당함이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저, 나 이제 나가는데 넌 이제 2위가 될거야..."
과거의 금메달리스트 스캇이 읽어낸 김연아의 자신감과 당당함에
내가 다 기분이 밝아진다.

 

2002년 히딩크 만큼이나 유명해를 치루게 된 김연아의 코치 브라이언 오서(Brian Orser)
그는 케나다에서 현역 시절 "미스터 트리플 악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단다.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점쳐졌지만 두번이나 은메달에 머물러야만 했다.
급기야 1988년 동계올림픽 때는 미국의 브라이언 보이타노에게 0.01점이 뒤져
은메달을 목에 걸었단다.
(그리고 이 기록은 역대 최소 점수차로 기록되고 있다)
올림픽의 금메달을 그는 이 이쁘고 성실한 제자를 통해 이룬 셈이다.
사실 그는 처음에 김연아 선수의 코치를 제안받고는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다 2005년 김연아가 캐나다로 전지 훈련을 떠났을 때
그녀의 가능성을 보고 코치직을 수락했단다.
브리이언 오서 코치의 첫 제자가 된 
무관의 여제 "김연아"
그 두 사람은 매 경기 시작 전과 후에 찡한 모습을 보여준다.
경기 시작 전에 혹시 김연아 선수가 마음의 동요가 생길까봐
파란 눈으로 고개를 조금씩 끄덕이며 그녀를 평온하게 바라보는 오서 코치.
소위 아빠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을 보면 나조차도 왠지 모를 따뜻함과 위로가 전달된다.
그리고 경기 뒤,
두 사람이 나누는 격려와 감사, 그리고 응원의 포옹까지도...



김연아 선수 스스로도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찰떡 궁합"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두 사람의 "찰떡 궁합"은 
그랑프리 시리즈 5개 대회 연속 우승과 그랑프리 파이널 2년 연속 우승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번 동계올림픽까지...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던 오서 코치는
커밍 아웃으로 인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단다.
김연아 선수도, 오서 고치도
참 대단하고 아름다운 인연이다.
이들이 만든 감동 드라마가
내게는 아주 오랫동안 앵콜될 것 같다.
더불어 이들에게 진심을 담은 기립박수를 보낸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2. 24. 06:27
처음엔 임태경의 모차르트가 궁금했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점점 박은태 그의 모차르트가 궁금해졌다.
티켓 가격의 압박에서 불구하고 정말 다행스럽게 그의 모차르트를 만났다.
여전히 EMK의 티켓 가격 장난질을 계속됐고
불쾌하고 황당해서 안 보리라 생각했는데
결국은 이렇게 보게 되더라(^^)
참 많은 이야기를 들었었다.
뮤지컬 모차르트의 주인공 4명(임태경, 박은태, 박건영, 김준수) 중에
유난히 그의 노력과 그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오디션에서 떨어졌다고 했던가?
<노트담 드 파리>의 한국어 버전 그랭그와르로 무대에 섰던 박은태는
모차르트라는 역할이 너무나 탐이 났고 그리고 너무나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오디션에 탈락한 박은태는 그러나  결국 모차르트가 됐고
이런 역할을 10년 안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했단다.
뮤지컬 <모차르트>
썩 훌륭한 작품은 아니지만 어쨌든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극 속에서 모차르트의 비중은 상당하다.
<햄릿>과 <지킬앤하이드>보다 더 많은 분량.
그리고 위의 두 작품보다 더 클라이막스가 적어
배우 스스로도 표현하기가  난해하지 않았을까?
평이함 속에서 천재성과 소위 말하는 "또라이"적인 기질까지 함께 그려내야 한다는 게
분명 쉬운 일은 아닐테니까...
아버지의 죽음으로 감정선에서 너무 극명하게 달라지는 작품.
어찌보면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기도하고 작위적인 냄새까지도 난다.
그래도 뭔가 한 방은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의 발로랄까?



배우의 의도였든(근데 과연?), 역량의 부족이었든
임태경의 모차르트가 찌질함의 전형이었다면,
박은태의 모차르트는 그래도 자아의 확립은 좀 되어 있는 것 같다.
늘 아버지의 등 뒤에 숨어 말을 하던 임태경 모차르트가
나는 못마땅하고 답답했는데 
박은태의 모차르트는
과장을 조금 많이 한다면
"이거 너무 아버지한테 막가는 거 아냐?"는 생각이 들만큼 쌈닭스럽다.
아버지(서범석)에게도 그리고 대주교(민영기)에게도...
그리고 다분히 "또라이" 스러운 기질도 보여준다.
박은태라는 배우가
적어도 배역에 대해 겁을 먹고 있지 않다는 건 충분히 알겠다.
그가 의도한 오버스러움과 과장된 웃음소리도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공감되고 이해가 된다.
임태경이 캐릭터를 만들어 가면서 충돌을 했다면
박은태는 캐릭터에 동화되면서 충돌이 생기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그의 충돌은 노래와 연기 사이의 간극으로 낌새를 남긴다.



뮤지컬 <모차르트>,
개인적으로는 스토리의 매력보다 뮤지컬 넘버의 매력이 더 큰 공연이라고 생각된다.
무대는 때로 풍성하기도 하지만 자주 여기 저기 빈 공간을 드러낸다.
마치 동굴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공연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신기한 건,
그 동굴안에 메아리성 에코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게 공연 외적으로 몹시 테러블하고 시끄러운 모차르트를 보게 만드는 이유인 것 같다.



내가 박은태만큼이나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민영기.
결혼 발표로 기쁨이 충만한 상태라는 게 작품에 보여진다.
(억지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그랬다)
그가 기교를 부리고 있다는 생각에 문득 겁이 났다.
모차르트와의 논쟁에서 그는 권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민영기의 대주교는 유머러스하고 그리고 전체하는 모습이었다.
대주교가 모차르트에게 품어야 했던
탐욕에 가까운 질투가 그에게선 보이지 않았다.
100% 그의 능력을 보여주지 않은 민영기가
솔직히 나는 좀 밉다.



개인적으로 이경미의 베버 부인 역할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배역을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게 눈에 보인다.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상관하지 않고
경박스럽고 수다스럽고고 속물스러운 베버 부인을 너무 잘 표현해
오히려 나는 정말이지 베버 부인이 몹시 사랑스러웠다.
이 뮤지컬의 액센트 같은 존재.
베버 가족의 신들도 재미있고 그리고 경쾌하다.
5명 모두의 표정과 동작이 너무 재미있어
나도 슬쩍 그 안으로 들어가 가족인 척 하고 싶어졌다.



이제 지방 공연으로 이어질 뮤지컬 <모차르트>
그곳에서도 아마 잡음이 끊이지 않을테지만
이미 티켓은 손익 분기점을 넘은 상태란다.
조만간 또 EMK의 티켓 장난이 시작될 것 같아 좀 걱정스럽긴 하다.
더불어 <몬테크리스토 백작>도 걱정스럽다.
티켓 판매 장난만 하든, 좌석 장난만 하든 둘 중 하나만 해준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2. 19. 00:09


일시 : 2010.02.05 ~2010.02.21
장소 : 아크코 예술극장 소극장
원작 : 데이비드 해어
연출 : 최용훈
출연 : 윤소정(에스메), 서은경(에이미), 김영민(도미닉), 
        백수련(이블린), 이호재(프랭크), 김병희(토비)


이 매력적인 연극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할까?
윤소정, 김영민의 캐스팅만으로도 나는 탐이 났었다.
오랫만에 온 몸이 제대로 호사를 누리겠구나 기대하며 기다렸고 그리고 확실히 그랬다.
연극이 시작되기도 전에,
정성껏 꾸며 놓은 무대를 보면서 나는 혼자 "이쁘다!"를 연발했다.
확실한 뭔가가 있으리라는 떨리는 예감까지....


연극 <에이미>는 전부 4 막으로 되어 있다.
짧은 피아노 연주로 시작되는 각각의 막은
시간의 변화를, 세대의 변화를 그리고 논쟁과 원초적인 다툼을 담고 있다.
제목만으로는 참 순한 연극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참 치열하고 아프고 그리고 정곡을 찌르는 연극이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이 연극은 모녀간의 논쟁, 그리고 사위와 장모간의 논쟁이다.
원만한 관계가 펼쳐지지 않으리란 건 상황만으로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표면상의 치열함보다 극의 내면이 담고 있는 치열함이 훨씬 더 치명적이고 날카롭다.
폭로와 논쟁, 그리고 결별.
예술가의 용기와 평론가의 질투.
장모님(에스메)을 연극에 빗대 고상하고 우아하게게 포장하지 말라며
연극의 종말은 운운하는 평론가 사위 도미닉.
천박하고 비열한 성공과 권력을 혐오하는 예술가 장모.
선입견과 편견으로 이루어진 대화는 피가 튀는 전쟁터보다 오히려 더 살벌하다.

 

뭐랄까?
처음엔 분명 연극으로 바라봤었다.
그런데 연극이 다 끝난 후엔 도저히 연극으로만 보여지지가 않았다.
연극 안에서 도미닉은 비난한다.
"연극이라는 자폐적인 작은 예술세계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철저히 유리되어 있다"고.
연극으로 대변되는 고전적 예술 매체를 통해 자신을 은근이 경멸하는 어머니를 비난하는 말이었지만
이 말은 지금의 공연예술을 향한 일침인 동시에
공연물 속에 빠져 살고 있는 마니아를 자처하는 자폐적인 관객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를 향한 말이란 뜻이다. 나 역시도 자폐적 성향이 너무 다분하기에...)
에스메와 도미닉의 관계는 극이 진행됨에 따라 여러 차례 뒤집힌다.
(그 둘 사이에서 에이미만 정말 죽어라고 죽어난다. 급기야는 실제로도...)
은근히 치명적으로...
그러나 그 역전은 또 아니러니하게도 도저히 화목하게 지낼 수 없다고 믿었던
두 사람의 관계 회복을 위한 하나의 열쇠이기도 하다.



에스메와 도미닉으로 대변되는 영화(영상매체)와 연극의 대립과 반목.
그리고 과거와 현대의 충돌은
어딘가에서 결국은 만나게 될 몰입 혹은 화합의 길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모든 예술적 행위는 어쨌든 "몰입"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니까.
그 둘은 어쩌면 에이미의 바람처럼
결국은  다른 시선(Amy's view)를 갖게 될른지도 모른다.
도미닉이 에이미를 배신한 게 인생의 한 장이었고
이제 그 장도 모두 끝났듯이,
다른 세대(매체)의 시작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세상에 이런 화해도, 이런 예고도, 이런 시작도 있을 수 있구나 싶어 눈이 매웠다.



누군가는 이 연극의 네 개 막을 "맛"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1 막은 봄나물로,
2 막은 단단한 육질이 느껴지는 고기로,
3 막은 진한 커피로,
그리고 마지막 4 막은 박하사탕으로...
적극적으로 공감했다.
아주 적절하고 그리고 동시에 아름다운 비유다.



윤소정, 김영민, 이호제, 서은경, 백수련.
그들이 만들어 낸 무대는 아름다웠고 풍성했다.
(나는 소위 젊은이로만 가득한 무대가 싫다. 
 그곳엔 어쩐지 시간도, 사람도 텅 비어 있는 것 같다.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제 나이에 맞는 배우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는 건
 오랜 가업을 이어 받은 솜씨 좋은 장인의 맞춤옷을 소유하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들에게서 정성스런 위로를 받았노라 고백하는 중이다.
극의 마지막 세례의식을 연상시키는 장면.
극중극의 형태였지만 그 차갑고 조심성 가득한 물줄기 속에서
묘한 안도감과 씻김을 느낀다.
에스메의 마지막 대사가 지금도 내 귓가에 멈춰있다.
"시작하는거야!"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2. 17. 06:34


2005년 여름
뮤지컬 <Man of La Mancha> 초연된다고 했을 때
나는 몹시도... 몹시도... 떨렸었다.
무대 위에서 보게 될 극중극이라니...
(그때 기억이 지금도 참 선명하다)
그리고 그해 여름 무더위를 뚫고 남산에 있는 해오름극장을 참 무던히도 오르내렸다.
(무려 7번이었던가? 8번이었던가?)
그때 세르반테스/돈키호테를 김성기와 류정한이 더블 캐스팅으로 연기했었다.
한창 <Jekyll & Hyde>로 주가를 올리고 있던 류정한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겠구나
내심 궁금하기도 하고 조바심이 나기도 했었다.



2005년 공연을 보고 난 후,
아! 류정한이라는 배우가 배역에 무리하게 욕심을 냈구나,
그리고 나 역시 배우 류정한에게 무리하게 욕심을 냈구나
깨달았다.
그 이후 몇 번의 재공연이 있었지만
다시 <Man of La Mancha>를 찾아 보진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겁이나서...
덜 젊어진 주인공들을 보면서 그들의 욕심을, 나의 욕심을 다시 보게 될까봐 나는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
몹시도... 몹시도...
사랑스러운 이 작품에 어이 없는 욕심만 가득 생길까봐서...



그리고 6년이 지나 보게 된 <Man of La Mancha>는,
몹시도... 몹시도...
사랑스러운 작품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류정한이 만들어낸 늙고 허약하고 꾸부정한 몽상가 돈키호테 모습과
이성적이고 재기발랄하기까지한 세르반테스의 모습은
6년 전 모습과는 정말 많이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그때 류정한은 배우 류정한을 화려하게 돋보이게 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모습이 낮설어 당황했었다)
6년 후의 그는 배우 류정한이 아닌 세르반테스를 그리고 돈키호테를 모두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나는 그의 발걸음과 그의 눈동자의 움직임,
그의 손동작과 말투를 따라가느라 즐거웠고
그의 구부정한 허리와 벌어진 다리를 쫒느라 내내 분주했다.
내 변변치 못한 어깨까지도 점점 강도를 더해가며 뻐근해져왔다.
언젠가 본 그의 인터뷰 기사.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원작을 읽고서
비로서 케릭터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노라고...
초연 때는 원작을 볼 생각조차 못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원작을 보고 초연 때 자신의 해석이 문제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고...
어쩌면 나는 이 기사 때문에
그의 돈키호테를 그의 세르반테스를 다시 꿈꾸게 된건지도 모르겠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원작은,
가히 대학교제 원서가 떠오를 만큼 상당한 분량을 자랑한다.
뭐 항간에는 수면용으로 딱이라는 말도 있고... ^^
(머리에 베고 자기에 딱 알맞는 두께긴 하다.)
배우의 케릭터 이해의 유무는
무대 위의 판을 단박에 바꿔 놓는다.
류정한... 이 남자...
점점 더 여우성이 짙어진다. 
(나는 이 남자의 여우성이 무지 참 좋다.)
이 사람이 다음 작품으로 선택한 게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란다.
의외의 캐스팅이 보여 맘이 상하기도 하지만 (도대체 내가 뭐라고...)
국내에 초연되는 이번 작품에서 그가 보여줄 여우성이 나는 또 궁금하다.
(그런데 어쩌자고 유니버설아트센터냔 말이다!!! 거기다가 EMK 제작까지...)



산초 이훈진,
참 귀엽고 그리고 멋진 보좌관!
애드립으로 의심될만큼 그의 연기는 능청스러웠다.
(정말 애드립이었나???)
다양한 표정과 재미있는 행동들,
극의 감초 역할을 너무 잘 해줬고 이 사람 때문에 참 많이 웃었다.
알돈자 김선영,
왜 그러지 했었는데, 역시 김선영이야라고 말 할 수 있었다.
쉽지 않은 캐릭터였는데
그녀 때문에 많이 아프고 슬펐다.
"날 짓밝고 가는 건 참을 수 있지만 꿈꾸게 하지 좀 마!"
돈키호테를 항해 외치는 알돈자의 대사는
꼭 지금의 내 심정이었는데...



세르반테스가 감옥의 죄수들을 향해 외친 소리가 귀에 선하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대놓고 말하는 것 같아
문득 민망하기도... 
"세상이 미쳐 돌아갈 때 누굴 미치광이라고 부를 수 있겠소?
 꿈을 포기하고 이성적으로 사는 것이 미친짓이 아닐까요?
 쓰레기더미에서 보물을 찾는 것이 미쳐보이나요?
 아니요. 아니요.
 너무 똑바른 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야말로 미친짓이겠죠!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미친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꿈을 포기하는 것이오!"




세르반테스는 말한다.
"이상 없이 살 수 있는 용기는 없다"고...
돈키호테는 말한다.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뭐라고 나도 한마디쯤 해야할 것 같은데
막막하다...



개인적으로 오랫만에 무대에서 본 이계창.
그의 시니컬한 표정과 말투는 여전히 일품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멋진 무대 배경과
(지하 감옥의 신비감과 무어인이 등장하는 해바라기 씬의 노란 해바라기의 선명함...)
그리고 하나 하나 꼽을 수 조차 없는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들.
"Man of La Mancha", "Dulcinea", " We're Only Thinking of Him"
"Little Bird, Little Bird" , "The Impossible Dream"....
(정말 너무 많다...)



배우 류정한은 말했었다.
뮤지컬 <Man of La Mancha>는
음악적인 완성도와 탄탄한 스토리를 함께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고...
지극히 공감한다.
그는 이 작품을 두고
스스로 너무나 사랑하는 작품이라고,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마음에 품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작품이라고까지 고백했다.
나 역시 그가 Jekyll & Hyde일 때보다
세르반테스로, 돈키호테로 무대에 서 있을 때가 더 아름답다.
그에게 Jekyll & Hyde가 화려한 기교의 작품이라면
Man of La Mancha는 오랜 깊이의 작품인 것 같아서...
언제 다시 보게 될까?
끝나버린 공연을 생각하면서
나는 벌써부터 Impossible Dream을 꿈꾸고 있다.
너무 아득하다...



<The Impossible Dream>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내가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죽음이 나를 덮쳐와도 평화롭게 되리
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이 한 몸 찢기고 상해도
마지막 힘이 다할때까지
가네, 저 별을 향하여...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