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7. 05:33
돌마바흐체에서 너무 오래 줄을 섰던게다.
그리고 하필이면 토요일이었던게다.
거기다가 또 하필이면, 루멜리 히사르(Rumeli Hisari)가 좀 이른 시간인 4:30분에 폐관을 한다는거다.
이런걸 보고 삼박자가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고 해야하나?
완강하게 닫힌 루멜리 히사르 앞에서 막막하게 한참을 서 있었다.
그래도 그 푸름 앞에 굳건히 서있는 세 개의 성채를 보는 건 나쁘지 않았다.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시기심까지 겹쳐져 오히려 조금 애뜻하기도 했다.



술탄 아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 전쟁에 대비해 엄청난 인력을 동원해 단 4개월만에 만든 루멜리 히사르.
현재는 박물관으로 개조돼 관람객을 맞고 있고
조명시설까지 갖춰져있어 여름밤이면 음악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단다.
전망이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인데 아쉬움만 남겨둘 수밖에...
(일정상 다시 이곳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고...)
루멜리 히사르는 터키의 유럽측 성채고
건너편으로는 아시아측 성채인 아나돌루 히사르가 나란히 바라다 보인다.
이 두 성채 사이의 해협이 보스포러스에서 가장 좁은 부분이라고.
이곳이 바로 원조 물자를 실은 적의 배를 격침시킨 곳이란다.
보스포러스 제 2 대교와 함께 보이는 성채는 그래서인지 자부심과 자존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버스 타기가 애매하고 또 버스카드 살 곳도 만만치 않아
루멜리 히사르에서 베벅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베벅의 그 유명한 스타벅스를 잠시 들어가서 봤는데 글쎄 소문처럼 아름답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이미 명소가 되버려서 사람들도 가득차서 한적함을 못느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베벡으로 걸어가면서 평화롭고 한가하게 토요일 오후를 즐기는 터키 시민들의 모습이 오히려 더 아름다웠다.
한낯의 오수(午睡)를 즐기는 사람들, 낚시에 빠진 사람들, 수영하는 사람들,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고급 요트 식당,
그리고 무심하게 나무에 걸려있는 해먹의 빈자리까지...
이런 여유로움과 한가함이,
그리고 그걸 충분히 즐기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어쩔수 없이 또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이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



베벡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탁심 광장(Taksim Square).
탁심은 신시가지의 중심으로 상업과 쇼핑의 중추적 역활을 하는 곳이란다.
그런데 과거에는 이곳이 정치적인 모임과 시위를 벌였던 역사적인 광장이었다.
광장 중앙에 있는 공화국 기념비가 바로 그런 시대를 알려주는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잠시동안 공원 벤치에 앉아
아타튀르크 문화센터에 걸린 달을 바라봤다.
터키는 내게 "길"과 '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점점 어둑해지는 하늘을 따라 천천히 이스티크랄 거리(Istiklal Caddesi)를 걸었다.
서울의 명동에 해당된다는 이곳은 옛스러움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유럽식 건물이 인상적이다.
빨간색 트램을 제외하고는 차량 통행이 없어 상점들을 기웃거리며 둘러보기에 딱 좋은 곳.
명품샾과 쇼핑몰이 모여있어 조명도 화려하지만
조용히 숨어있는 서점을 보는 순간 발길이 딱 멈췄다.
나, 딱 이런 서점의 주인이 되고 싶었는데...



이스티크랄 거리를 따라 계속 걸어서 도착한 곳은 갈라타 탑(Galata Kulesi).
신사가지의 이정표가 되는 67m 높이의 갈라타 탑은 이력도 다양하다.
6세기초에 이스탄불의 항구를 지키기 위한 등대로 처음 만들었단다.
14세기에는 비잔틴 제국을 감시하는 탑으로,
그후에는 감옥과 기상 관측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지금 탑은 화재로 소실 된 걸 재건한 것이란다.
탑의 상징은 고깔모자 형태의 꼭대기는 최근에 다시 올린 것이고...
탑에 올라가서 야경을 보고 싶었지만 8시가 넘어서
아래에서 사진찍는 것으로 대리만족했다.
(이상하게도 이날은 뒤만 밟으면서 다닌 것 같다)
갈라타 탑에서 올려다본 터키의 이른 밤하늘은 말로만 듣던 터키블루, 바로 그 빛이었다.
조명속에 서있는 갈라타 탑과 검푸르면서 청명한 하늘을 보면서
여기 색들은 왜이렇게 잔인할 정도로 아름다울까 잠시 원망도 했다.
가슴에 사무치는 연인도 아닌데 자꾸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다 어이없게도 혼자 독한 배신감에 빠져버리고...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면서 말이다.
(더 있다가는 과대망상에 자아분열이 일어날 판이다.)



트램을 타고 바로 돌아갈까 하다 갈라타 다리를 걸어서 지나가기로 한다.
에미노뉴(구시가지)와 카라과이(신시가지)를 연결하는 갈라타 다리는
밤이 되면 강태공들의 아지트로 변한다.
좌판을 벌여놓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 다리 아래 성업중인 레스토랑들.
그리고 조잡한 물건을 팔기 위해 말을 거는 아이들까지.
처절한 생업의 부산함과 치열함이 그대로 살아있던 갈라타 다리!
그러나 그 생업의 공간 속에 고개만 들면 신을 경배하는 쉴레이미니예 자미가 빛을 발하며 서있다.
그들은 자미를 바라보며 위로를 받았을까?
신이 나를 보고 있다고. 밤까지 이어지는 내 수고를 신이 다 내려다보고 있다고... 
점점 차가워지는 바닷바람에 옷을 여미면서
갈라타 다리 한 목판에서 나는 종교를 생각했다.
종교는 아무래도 따뜻해야 할 것 같다고...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6. 05:16
파쿡칼레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10시간을 다려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왔다.
(셀축, 에페스를 못 본 건 정말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다)
여행자숙소 야카모즈에 하룻밤 자고 아침을 먹자마자 찾아간 곳은 돌마바흐체 궁전.
술탄아흐멧에서 트램을 타고 종점 카바타쉬에 내려서 걸어갔다.
이곳은 오스만 왕조 시대의 술탄의 마지막 거성으로
터키 국민의 영웅 아타튀르크 대동령이 관저로 사용했던 곳이다.
"돌마바흐체"라는 말은 "가득찬 정원"이라는 뜻이라는데
이곳이 바다를 메워서 세웠기 때문이란다.



정말 소문대로 줄이 길었는데
티켓 구입하는데도 거의 40~50분 정도 기다린 것 같다.
(아마도 토요일이라 더 그랬는지도... 근데 터키도 주 5일제 근무인가???)
다행히 기다리면서 여러가지 볼거리들이 있어서 그다지 지루하진 않았다.
궁전 정문 앞에 미동도 없이 서 있던 위병은 정말 마네킹같았다.
심지어 다른 위병이 땀을 꼼꼼히 닦아주는데도 전혀 움직임이 없더다.
절도있는 위병교대식도 인상적이었고
거대한 입구 상단의 조각들도 너무 아름다웠다.
궁전 입구에 있는 유명한 시계탑은 1890년 술탄 암뒬 하미드 2세가 세운 것으로 높이가 27m나 된단다.
탑의 꼭대기에 있는 시계는 프랑스 폴 가르너의 시계고
첨탑에는 오스만 제국 왕실의 문장이 새겨져있다.
(근데 어떤건지는 잘 모르겠다. ㅋㅋ)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따라서 만들었으면 돌마바흐체 궁전은 처음엔 목조건물이었단다.
1843년부터 10년동안 보수 공사를 통해 현재와 같은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 탈바꿈됐다고.
방이 무려 285개나 있고, 거실도 43개나 된다고 하니 그 규모에 그저 놀라울 뿐.
게다가 보스포러스 해협을 따라 쭉 펼쳐져 있어 주변 경관도 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궁전은 남자만 들어갈 수 있는 Selamlik와 금남의 집 Harem으로 나눠져있다.
개인관람은 불가능하고 입구에 적인 관람 시간을 보고
영어, 터키어 중 선택해서 그룹투어만 가능하다.
(물론 내부 사진촬영은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프랑스식 정원을 만나게 되며 웅장한 정문을 통과해 내부로 들어간다.



내부장식이 화려하기로 유명한 돌마바흐체 궁전은
600여점이 넘는 유럽의 명화로 벽이 장식되어 있다는데 그 그림을 보는 재미도 대단했다.
(그림에 친절한 설명이 되어 있었면 더 좋았을텐데...
 다 명화라는데 이름이나 제목이 적혀있지 않는 작품이 너무 많았다.)
대리석과 가구들, 양탄자, 상들리에의 화려함은 두말할 것도 없고.
특히 셀람륵 부분 마지막 관람지인 그랜드 홀에 있는 상들리에가 가장 유명한데.
36m 천장에 달려 있는 이 상들리에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선물로 줬단다.
그 무게만도 무려 4.5 톤!
그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줄도 참 대단하다.
샹들리에 바로 아래에서 보고 싶었는데  관람줄 안에서만 봐야해서 좀 속상했다.
각국의 귀빈들이 묵을 수 있는 숙소는 나름대로 그 나라에 맞게 인태리어가 되어 있었다.
삐걱이는 복도를 따라 비닐을 신고 걸어가는 단체로 바스락 거리며 걸어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창과 햇빛을 가리기 위해 만든 블라인드 사이로 비치는 햇빛 색도 예뼜고...



하렘은 톱카프 궁전보다는 훨씬 덜 답답하고 소박하지만 확실히 현대적인 느낌은 더 강하다.
입구에 터키어 관람 시간만 적혀 있어 영어해설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다행히 영어 가이드였다.
(누가 장난으로 지웠나???)
은은한 분홍빛을 띠는 하렘 외부 모습은 소박하고 따뜻한 여인의 느낌이었다.
돌마바흐체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입할 때 카를륵과 하렘을 같이 보는 티켓(10TL)으로 구입한 사람은
이곳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티켓 재확인 하더라)
하렘이 보기 싫으면 카를륵만 봐도 이상무!
하렘을 나오면 그냥 가지 말고 시계 박물관과 크리스탈 박물관도 빼놓지 말고 둘러보자.
크리스탈 박물관은 조금 실망스럽지만 시계 박물관은
세계 각국에서 선물로 보낸 것들을 모아놓은 것 같은데 상당히 볼만하다.
must have 하고 싶은 것도 있었는데...
돌마바흐체 주변의 보스포러스 해협과 함께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을 잡아끈다.
참 아름다운 곳에 터를 잡았구나!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던 곳!
터키의 영웅인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는 이 아름다운 궁전에서 집무 중에 사망했단다.
그래서 그를 기리기 위해 궁전 안의 모든 시계는 그가 사망한 9시 5분에 고정되어 있다고.
문득 씀쓸해진다.
우리나라도 대통령과 관련된 이런 기록이 언젠가는 생기게 될까?
터키 국민의 아타튀르크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보면서
MB 공화국 시민은 그저 부럽고 부러워을 뿐!
어쨌든 이것 또한 다 지나가리라~~
그러니 이제 조금만 참자!
(어쩌다 이렇게 옆길로 샜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5. 05:42
새하얀 석회층을 올라가야 볼 수 있는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기원전 190년 페르가몬 왕국의 고대 로마 시대 유적지가 남아있는 곳이다.
히에라폴리스는 '성스러운 도시'라는 의미가 있다는데
예전에 이곳에서 신탁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빈손으로 올라가서 길치의 본문에 충실하게 여기저기 해매고 있었는데
그런 내 모습이 안스러웠나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지나가는 여행자가 travel guide 라는 지도 한 장을 건네줬다.
이 지도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싶을만큼 열심히 체크해가면서 유적지 찾아다녔다.
(물론 땡볕아래... 달랑 물 한 병 들고...)
별로 믿음직스럽지 않지만 그래도 역시 믿을 건 내 두 다리뿐.



* 아폴로 신전(Temple of Apollo)
페르가몬 왕국이 주신으로 모셨던 태양신 아폴로의 신전.
신전 안에 플루토니움(Plutonium)이라는 동굴신전이 있는데
지하의 신 플루토(Pluto) 즉,  하데스(Hades)에게 바친 곳이다.
이 동굴에서 유독가스인 일산화탄소가 분출되었는데
신관이 이 가스를 마시고 최면상태에서 신탁을 전했다고....
플루토니움 외엔 온전한 건물이 남아있지 않고 대리석 기둥 몇 개만 남아있어 아쉬웠다.
그래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대리석 색은 정말 이쁘더라.



* 원형극장 (Roman Teratre)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기원전 2세기에 세워진 로마 극장.
1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는데 보존 상태도 너무 좋고 전망도 멋지다.
파사드 부분에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조각되어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원형극장의 위엄과 웅장함에 개인적으로 많이 놀랐다.
가파른 계단을 굳이 내려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본 모습도 웅장했다.
한창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듯한데 인부는 한 명도 안 보였다.



* 성 빌립 순교 기념당(Martyrium of St. Philip the Apostl)
이 길이 맞나 의심하면서 무성한 풀길을 따라 꽤 올라가야 볼 수 있는 건물.
사도 빌립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단다.
빌립은 80년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이곳에서 자신의 딸과 포교활동을 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히에라폴리스 전체적인 모습은 정말 아름답웠다.
(그리고 여기서 대충의 이동동선을 그릴 수 있었다.)
외따로 떨어진 곳이라 혼자 올라가려니 좀 무섭긴했지만 어쨌든 안 갔으면 후회됐을 곳.
다행히 가다가 다른 여행자 2명을 만나 두려움이 좀 가셨다.
땡볕 아래 숨어있는 거북이도 보고...
(굳이 와서 보라고 해서 또 굳이 가서 봤다.)
팔각당이 조금만 더 남아있었다면 좋았겠다는 바람이...
더불어 술래잡기 하기에 딱 좋은 곳이라는 엉뚱한 생각도 잠깐. ^^



* 도미티아누스 문 (Domitianus Gate)
3개의 연속 아치가 잘 남아있는 문으로 
총독 율리우스 프론티누스가 85년에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로마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로만 게이트(Roman Gate)라고도 불린단다.



* 로마 욕탕(Basilica)
도미티아누스 문을 통과하면 바로 보이는 거대한 두 개의 아치가 있는 전형적인 로마 시대 건축물.
온천을 이용한 치료와 휴양을 위해 만들어진 욕탕 시설.
보수공사를 하는 중인지 완벽하게 돌로 막혀 있어 내부를 볼 수는 없었다.



*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죽은 자의 도시"라는 뜻으로 1000 개가 넘는 묘지가 늘어서 있는 고대의 공동묘지.
병약한 환자들이 히에라폴리스 온천수에 희망을 걸고 많이 찾아왔는데
결과적으로 사망자도 많아지면서 대규모 공동묘지가 형성됐단다.
터키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라고...
처음엔 석관들이 신기해서 한참을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다녔는데
(심지어 신기해하면서 뚜껑이 열린 석관을 들여다보기까지 했다.)
아무도 없이 혼자 걷고 있다는 걸 알고 등골이 섬뜩했던 곳.
땡볕아래 꽁꽁 싸매고 다니느라 꽤나 더웠는데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었다.
서둘러 걸어 나오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깊게 들어갔었나 싶어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던 기억이...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자 절로 큰숨이 쉬어지더라.



파묵칼레는 아무래도 하루  반나절 일정으로 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곳이다.
나중에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면
남쪽에 Roman Gate 부터 북쪽 Necropolis까지 좀 찬찬히 둘러보고 싶다.
메인 도로와 중간중간 있던 교회터와 다른 유적들을 보는 것도 참 좋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수박 겉햩기 식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사이프러스같은 키 큰 나무들이 가득한 Agora 터에도 좀 머물고 싶었었는데...
거짓말처럼 초록 나무들 위, 파란 하늘 속에서 샛노란 페러그라이딩이 보였다.
그 색이 주는 느낌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언젠가 또 이 길을 걸을 날이 있겠지.
새햐얀 석회층을 다시 맨발로 걸어내려오면서
나는 '다음번에..." 라는 약속을 몰래 묻어두고 왔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4. 05:48
아름답고 행복했던 "길"의 기억을 안겨줬던 카파도키아를 떠나 출발한 곳은
하얀 석회층의 도시, 목화의 성 파묵칼레.
8시에 출발한 매트로 야간버스는 10시간을 후에 데니즐리(Denizli)에 도착했다.
워낙에 호객행위가 많고 버스회사에서 운영하는 세르비스가 많디 않다고 해서
메트로 세르비스를 호객차량으로 오인해 약간의 언성(?)이 오갔다.
나중에 티켓을 확인해보니 데즈즐리가 아니라 파묵칼레까지 가는 버스가 맞았다...
도착해서 칼레호텔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메뉴에 신라면이라고 써있어서 주문했는데 먹어보니까 확실히 신라면은 아닌 것 같고...)
주인이 한국인이라  한국음식을 많이 파는 숙소겸 음식점인 칼레호텔.
음식점 메뉴판도 한글로 귀염성있게 써있다. (닭볶음탕, 수제비, 비빔밥, 신라면 등등등)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숙소으로 유명하다.
칼레호텔 테라스에서 보는 석회층의 일몰도 아름답기로 소문이 났고...
게다가 이곳에서 파묵칼레 입장료를 사면 2TL 할인된 가격인 18TL에 살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세계문화유산 관강지 입장료를 그냥 호텔겸 음식점에서, 그것도 10%나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다니...
정말 이게 가능한가???
원래 일정은 파묵칼레에서 1박을 하고 셀축,에페스로 넘어갈 계획이었는데
여차여차해서 그날 바로 이즈미르에서 비행기로 이스탄불에 가야만 했다.
그래서 일단 파묵칼레라는 버스회사에서 이즈미르행 버스를 예약(42TL)하고 짐을 무료로 맡겼다.
(데니즐리에도 짐보관소가 있긴한데 3TL의 보관료를 받는다.)
이곳 사장님이 자기 부인이 일본인라면서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이라고 대답하니 "안녕하세요?" 라며 무지 해맑게 인사를 하셨다.
(칼레호텔에서 일하시는 나이 지긋한 터키 아주머니가 이분 누님이시라고.)
어쨌든 아침도 든든히 먹고, 버스표도 예약하고, 짐도 맡기고,
간편한 복장과 마음으로 석회층을 향해 올라갔다.



파묵칼레의 볼거리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석회층(Travelten)과
고대 로마 시대 유적지인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고고학 박물관과 카클륵 동굴, 일몰도 보고 싶었는데...
이런 조급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새하얀 석회층의 신비는 바쁜 여행자의 발길을 붙들기에 충분했다.
신비감으로 가득한 이곳의 나이는 무려 1만 4000년 정도라나!
지하에 있는 석회 성분의 따뜻한 물이 땅 위로 솟아나와 언덕을 흐르면서 1만 4000년 동안계속 쌓여
지금과 같은 거대한 석회 언덕이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지금은 석회층 보호와 온천수량 감소로 출입을 일부 통제하고 온천수도 소량만 내보내고 있다는데
낯선 여행자의 눈엔 그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온 것 같다.
(그렇다면 과거엔 이것보다 더 많은 물이 흘렀다는 의미? 와~~~)
이곳에서 나오는 물은 칼슘과 이산화탄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어서
예전엔 카펫과 비단을 직조할 때 표백제로도 쓰였다니 참여러가지로  다재다능하신(?) 온천수가 아닐 수 없다.



한참을 보고 있으니 순간 시간과 공간의 감각이 모호해진다.
새하얀 눈밭 위에서 비키니를 입은 사람을 보고 있다는 신비감에 가까운 착각!
한쪽은 분명 하얀 설원인데, 살짝 고개만 돌려서 초록빛 나무들이 무성한 곳이 눈 앞에 보이고...
신발을 벗고 올라가면서 이 믿어지지 않는, 대단히, 엄청나게 신비한 나라를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온천수가 고인 연못(?)엔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온천욕을 즐기고 있다.
수영복 천지인 곳에서 꽁꽁 싸매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우습기도하고 살짝 민망하기도 하더라.
(햇빛 알러지만 아니었으면, 나도 비키니를 입었을까? 글쎄... 그건... 아무래도... ^^)
석회층을 올라갈 때 썬크림과 물, 선글라스가 필수라는데
선글라스는 과감히 포기하고 가방에 넣어버렸다.
아무래도 선그라스를 끼면 색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까...
대신 모자를 있는데로 푹 눌러쓰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이곳에서 넘어지면 정말 대형사고다 싶어 무지 조심했다)
꼭대기에 올라가서 신발을 신고 내려다본 모습은
내가 방금 지나온 곳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비감이 가득했다.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석회층!
내게 또 다른 색다른 느낌의 길과 걸음을 안겨준 곳이다.



터키 여행을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된 건,
내가 산이나 바다, 계곡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걸을 수 있는 길.
내 두 발로 도장찍듯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가는 길!
그 "길"의 목록에 이곳 목화의 성, 파묵칼레 석회층 오르는 길도 단단히 한 몫을 했다.
아름다운 길!
Travelten!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9. 30. 05:37
젤베 박물관을 나와서 이동한 곳은 데브렌트 계곡.
돌무쉬타기도 어렵고 차편도 거의 없다고해서 못가겠구나 생각했는데  
협상의 달인(?)인 언니 덕분에 택시를 타고 저렴하고 편하게 도착했다.
처음엔 택시요금을 30~40TL 불렀던 것 같은데
언니의 멋진 협상으로 5명이서 3TL씩 15TL 내고 탔다.
(정말 듣던대로 처음 가격에서 일단 반은 깎고 시작해야 되는게 맞나보다.)
데브렌트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택시에서 내렸더니 황량한 곳이라 좀 당황했다.
유명한 "낙타바위" 하나 덩그라니 놓여있고 다른 시설은 전무했다.
낙타바위 건너편에 로컬 기념품점이 있긴 하지만
그냥 차타고 지나가다 길 한 편에 잠시 내려서 낙타바위를 보는 게 전부.
(그런데 바위는 신기하게도 정말 낙타같더다,)
데브렌트는 '상상력의 계곡'이라는 뜻이란다.
이곳에 있는 바위들이 보는 사람의 상상에 따라 달라 보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낙타바위를 본 후 다시 협상의 달인 덕에 택시를 타고 이동한 차우신 올드 빌리지
(5명이 각각 4TL씩 냈다)
언니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진짜 택시는 아니었고 데브란트의 로컬 기념품 아저씨가 자기 차로 영업(?) 하셨다.
터키에서 한국에서도 못 타본 자가용택시를 탄 셈 ^^
도착해서 들어간 곳은 "world of kebeb"이라는 좀 거한 이름을 가진 음식점.
그런데 이곳이 우리에게 소위 말하는 대박의 기억을 안겨줬다.
치킨 케밥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장의 소신(?)으로 다른 케밥이 나왔지만
음식도 괜찮았고 빵도 맛있었고 특히 직접 만들었다는 요커트는 환상적이었다.
거기다가 주인 아저씨가 만도린 비슷한 악기를 들고 오셔서 직접 노래도 몇 곡 불러주시고...
연주와 노래하는 아저씨 표정이 정말 행복해보였다.
터키어와 영어를 대충대충 섞어서 말씀하시던 아저씨!
그래도 어느 정도 알아들으면서 서로 공감하고 이야기했다는 게 신기하고도 재미있다.
나중에 또 오라고 명함까지 주셨다.
다시 카파도키아에 가게 된다면 잊지 말고 꼭 찾아가고 싶은 곳!
(그때도 노래 불러주실라나...)



든든히 밥을 먹고 차우신 올드 빌리지(Cavusin Old Vilage)를 올라가기 시작한 우리들.
역시나, 당연히,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돌산이다.
차우신 올드 빌리지는 산에 만들어진 동굴 마을로
거대한 바위를 파서 산 전체를 마을로 만들었단다.
꼭대기에 올라가면 전망이 좋다는데
현지인이 우리에게 길을 이상하게 알려줘는지 올라가다보니 길이 덜컥 끊겼다.
(제대로 알려줬는데 우리가 이상하게 이해했는지도...)
그래도 정상이 아닌 곳에서 내려다본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오래된 동굴집과 반대편에 펼쳐진 현대식 건물들과의 대비와 조화는 묘한 여운을 불러일으킨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멋진 도예가의 모습도 한 컷!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차우신에서 괴레메까지 걸어서 돌아왔던 길이었다.
이날 저녁 야간버스를 타고 파묵칼레로 이동해야돼서 카파도키아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리고 함께 했던 좋은 사람들과도 작별이라는 감회가 나를 더 감상적으로 만들었겠지만
다른 어떤 곳보다 그 길들이 내 기억 속에 하나하나 선명하다.
(내 터키여행의 best of best!)
파란 하늘과 그 하늘 위를 여행자같이 지나가던 구름.
무심하게 서있던 나무들과 우뚝우뚝 만났던 바위들.
흙먼지 풀풀 날리던 바짝 마른길과 그 위로 쨍쨍하게 내리쬐던 햇빛.
아무렇지 않게 주변 풍경과 나란히 동행하던 공동묘지까지도...
사람들은 길의 끝에서 뭔가를 만나길 바란다.
그런데 나는 카파도키아에 있는 동안 그 길의 끝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계속해서 그 길 위에 서있고만 싶었다.



고호가 그랬다지!
"결국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자연 안에 모두 들어있다" 라고.
터키의 길이 내게 꼭 그랬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오로지 걷기 위해서...
collateral damage!
터키가 내게 남긴 부수적이지만 너무 치명적인 손상...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9. 29. 05:42
새벽에 sun rise를 보고 각자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한 뒤 다시 만난 일행들.
오전에 젤베 야외 박물관을 함께 가기로 하고 괴레메 오토갈에서 만났다.
아바노스 방향 돌무쉬(1TL)를 타고 10여 분 후 내려서 한참을 걸었다.
도착한 곳은 파샤바.
(처음엔 여기가 젤베 야외 박물관인 줄 알았다 ^^)
파샤바는 '수도사의 골짜기'로 불리는데
예전에 세상과 동떨어져 신앙생활을 하라고 주장한 성 시메온이 이곳에 살았기 때문이란다.
카파도키아의 상징인 독특한 형태의 버섯바위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멀리서 본 파샤바의 모습은 귀염성있는 개구장이들 같았다.
맨 앞에 엄마, 아빠가 있고 그 뒤에 졸망졸망한 대가족이 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정말 버섯 같기도 하고, 깎아놓은 연필 같기도 하다.
줄을 그어 놓은 듯이 서있는 거대한 바위들은
마치 일부러 누가 그렇게 세워놓을 것 같다.
화산활동으로 굳은 용암이 세월과 함께 침식작용을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독특한 형태와 색깔을 갖게 되었단다.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감독이 이곳을 본 후에 아티킨의 고향 행성을 구상했다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지구가 아닌 외계의 신비가 느껴졌다.
예전에는 버섯바위 내부도 개방을 했던 모양인데
우리가 찾았을 때는 들어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버섯바위 내부는 1층엔 거실이 있고 계단과 사다리를 이용해 올라가면 침실과 연결되어 있단다.
벽화가 남아 있는 곳도 있다는데 직접 보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다.
(사람들이 콩알만하게 보이는 걸 보면 버섯바위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으리라...)



파샤바에서 거의 20~30분을 걸어서 도착한 젤베 야외 박물관(zelve open air museum, 8TL)
(터키여행동안 내 주된 이동수단은 땡볕 아래 튼튼한 두 다리 ^^)
이곳은 로즈밸리처럼 철분이 함유된 붉은색 바위가 많다.
8~13세기에 종교박해를 피해 기독교인들이 숨어서 살았던 곳이란다.
곳곳에 동굴교회가 있고 내부엔 벽화도 남아 있다.
주로 평화, 예수, 부활, 영생을 상징하는
비둘기, 물고기, 공작, 종려 나무 같은 소박하고 단순한 문양들이다.
그럴듯한 성화가 없는 이유는 성상파괴운동이 한창일 때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젤베 야외 박물관은 1950년대까지도 사람들이 실제로 살았단다. 
계속되는 침식작용으로 주거바위가 많이 파괴되고 무너지면서 위험성이 문제가 돼 
주민들을 이주시킨 후 이렇게 야외 박물관으로 활용하게 됐단다.
지금은 카파도키아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꽤 넓은 지역이라 동선을 잘 보고 다니지 않으면 같은 곳을 계속 맴돌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길!
이곳에서 본 하늘과 주변 풍경도 너무 아름다워 오랫동안 기억에 간직될듯 싶다.
더불어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시간과 자연을 그대로 품는 야외 박물관이 하나쯤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무계획의 무차별적 땜질같은 보수와 주소 불명의 현대화란 이름으로 옛모습을 점점 잃는게 아니라
무너지면 무너지는 그대로,
쇠락해지면 쇠락해지는 그대로
그런 모습 자체를 두고 볼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역시 요원(遙遠)한 일일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9. 28. 05:49
Green tour에서 돌아온 후 괴레메 오도갈 뒷길로 올라간 sen set point.
Green tour를 함께했던 한국인들이 같이 올라갔다.
(터키여행동안 한국사람을 가장 많이 만났던 카파도키아)
사실은 내일 아침에 이곳에서 해 뜨는 걸 모두 보기 위한 사전 답사(?)였다.
새벽에 길을 몰라 헤매다 해가 다 뜬 후에 올라가면 대략 난감인 관계로...
우리가 올라간 곳이 정확한 sen set point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스름에 올라간 덕분에 해가 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조그만 자미를 따라 올라간 언덕 위에는
우리같은 가난한 여행자들이 묶는 숙소가 아닌 고급 프티 호텔들이 늘어서 있었다.
카파도키아 바위굴을 그대로 리모델링해서 만든 프티 호텔은
저물는 해를 받아서인지 더 예뼈보여 그야말로 "프티(pretty)" 하더라.



카파도키아는 sun set과 sun rise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마을 자체가 이국적인 신비감에 쌓여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특히 저녁과 새벽무렵 삐죽한 기암괴석들에 하나 둘 불이 밝혀지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언덕을 올랐더니 사람들이 이미 많이 있더라.
그곳에서 또 다른 한국사람을 한 명 만나고...
저녁이라 날씨가 많이 차가웠지만 꽤 오랜 시간을 머무르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어설픈 카메라 속에 담았다.
하늘색이 변하는 걸 내내 지켜보는 건
황홀할만큼 아름다운 목격(目激)이었다.
마치 거대한 생명체의 진화과정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장엄하고 화려하지만 위협적이고 거만하지 않은...
위대함의 정체가 바로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 5시 15분 기상!
혹시나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고양이 세수만 하고 부지런히 오토갈로 향했다.
자미를 지나 어제 올랐던 언덕 길을 다시 오르는 우리들.
(터키의 작은 자미들은 참 이쁘다. 뾰족한 첨탑때문에 독특한 느낌도 주고)
나는 확실히 길치가 분명하다.
어제 왔던 길인데도 전혀 모르는 길같더라.
사람들 아니었으면 분명히 해 뜨고 올라갔을지도...
(어쩌면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갔을지도 ^^)



sun rise와 함께 덤으로 본 balloon들.
진담이 섞인 농담으로 말했다.
"이 좋은 곳 미리 알았으면 비싼 balloon tour 안 했을텐데..."
balloon 안에서 본 풍경과 외따로 떨어진 곳에서 본 balloon의 모습은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쉭쉭 들리는 굉음에 가까운 공기 주입소리조차도 나쁘지 않더라.
멀리 우치히사르를 중심으로 새벽빛을 받으며 깨어나는 괴레메의 모습!
그건 보석보다 빛나고 빛보다  찬란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보기 위해 새벽 일찍 모인 사람들의 표정.
정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더라!
사람이라면 참 징글징글한 내게조차
터키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오래 남겼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9. 27. 05:48
치킨 쉬쉬케밥으로 점심을 먹고 출발한 데린쿠유.
(사실은 날아드는 벌때문에 거의 먹지 못했다 ㅠ.ㅠ)
데린쿠유는 카이마크르와 함께
'암굴 주거지'라고 불리는 곳으로
개미집같은 방들이 층층히 지하로 뻗어있는 숨겨진 지하도시다.
기원전 400년 경 히타이트 시대의 기록에도 지하도시가 나와있다고 하니 그 장구함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지하도시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여러 설(說)들이 많은 것 같은데
이민족의 침입이나 종교상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관람객이 가장 많이 가는 데린쿠유를 직접 들어갔는데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곳을 비롯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교실, 침실, 주방, meeting room, 식료품 저장고, 포도주 양조장까지
놀라울 정도로 체계적으로 구획이 나눠져 있다.
이곳 데린쿠유에서 무려 4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동생활을 했단다.
카이마크르는 2만 명이 살고.
지리상으로 그래도 상당히 떨어져 있는 이 두 곳은 놀랍게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지하로...
(현재 관광객에게 개방된 지하도시는 이 두 곳뿐이다.) 


앞사람을 따라 좁고 어두운 길을 쫒아가면서 폐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못 들어오겠구나 싶었다.
게다가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머리를 얼마나 많이 부딪쳤는지... 
이렇게 좁고 어두운 곳을 2만 ~ 4만 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다녔을까 싶은데
물론 한번에 여러명이 우루루 다니지는 않았겠지만
체격이 좀 되는 사람이 다니기에는 확실히 좁아보인다.
그런데 이런 좁은 통로로 연결된 구조가 무려 8층까지 있단다.
더 놀라운 건 도시 내부에는 통기 구멍이 있어서 환기 문제까지 자체 해결했다는 사실이다.
곳곳엔 적의 침입에 대비해 입구를 막을 수 있는 거다란 둥근 돌까지 놓여있다.
개방된 두 곳만으로도 놀아운데 카파도키아엔 이런 지하도시가 무려 200여 개나 있다고 한다.
그 처철한 치밀함과 간절한 은밀함이라니!
사람 손만큼 게으른 게 없고
사람 손만큼 무서운 게 없다는데...
데린쿠유 그 좁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면서 지하도시의 서늘함때문이 아니라
이런 곳을 만든 사람의 손이 무서워 등골이 오싹했다.



피죤 벨리.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을까 궁금했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비둘기들이 많아서 ^^ (so cool~~~!)
그런데 정말 많긴 하더다.
(내딴에는 비둘기빛 기암괴석이 많아서 그런가 하고 이쁘게 상상했는데...)
우치히사르 아래 비둘기 깃털같은 포근함이 느껴지던 하얀 피죤 벨리.
그리고 그 아래 모여 있는 작고 소박한 로컬 기념품점들.
역시 어디를 가든 가장 많이 보이는 건 evil eye다.
그렇게 많이 봤는데도 볼 때마다 그 파란눈은 언제나 내 눈을 붙잡는다.
evil eye를 건네면서 터키인들은 이렇게 말한다지!
"Good luck!"
내게 터기가 그랬다.
눈에 보이는 곳,
걸음 옮기는 곳,
우연히 만나진 사람들 모두.
한결같은 good luck이었다.



Good luck!
turkey!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9. 26. 05:54
카파도키아는 워낙에 넓은 지역이라 며칠 동안 둘러본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장기여행자가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tour를 이용하는게 효율적일 수 있다.
(3일을 머물면서 나 역시도 위르굽이나 아바노스 쪽은 아예 보지도 못하고 왔다)
Green Tour는 카파도키아의 서북부 지역의 명소를 둘러보며서 트레킹을 할 수 있는 tour다.
root는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은데
이날 root는 "우치히사르 -> 셀리메 수도원 -> 으흘라라 계곡 ->데린쿠유 지하도시 -> 피죤벨리" 였다. 
미니버스 2대에 나눠타고 세계 각지에서 온 30여명이 함께 움직였다.
우치히사르 아래 로컬 기념품 가게에 잠깐 멈춘 버스가 도착한 곳은 셀리메 수도원(Selime Monastri)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큰 수도원이었단다.
(터키인들 거대한 바위를 주거지로 이용하는 데는 단연코 세계 1위일거다)



나름대로 용도에 따라 구획도 잘 나눠져 있고 각각의 바위굴과도 효율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놀랐다.
잘 살펴보면 단순하고 소박한 색깔과 문양의 벽화들을 볼 수 있다.
셀리메 수도원에서 내려다보는 주변 풍경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한적하고 고요했다.
어둠과 빛의 대비, 그리고 공존이 가장 극명했던 셀리메 수도원.
눈부신 햇빛에서 조금만 걸음을 옮기면 바로 어둡고 고요한 수도원이다.
수도원으로 사용됐던 당시 사람들은 이곳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둠과 빛을 보며 신을 생각했을까?



으흘라라 계곡(Ihlara Vadisi)
거장 조지 루카스 감독의 영화 <스타워즈>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작은 강을 따라 트레킹하면서 눈이 엄청난 호사를 누렸던 곳.
전체 길이가 12km나 된다는데 계곡을 따라 5,000 개의 주택과 100 여개의 교회, 수도원이 있었단다.
전부 비잔틴 시대에 은둔생활을 하던 수도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저 놀랍고 두렵기만한 종교의 힘!)
초입에 있는 아아찰트 교회를 방문했는데 역시나 성화의 눈과 얼굴 부위는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그나마 예수 승천 벽화는 훼손이 덜 한 편인데 아마도 높은 곳에 위치해서가 아닌가 싶다. 



Green Tour에서 가장 좋았던건 단연코 으흘라라 계곡  트레킹.
꽤 오랜 시간을 걸었지만 더 걷고 싶을 정도였다.
아름다운 하늘빛과 끝없이 이어지는 절벽들,
나무와 돌담들. 그리고 물 흐르는 소리.
더 놀라웠던 건 그 높은 절벽 끝에 거짓말처럼 예쁜 마을이 있었다는 거다.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마을때문에 잠시 어리둥절했던 기억.
주변의 자연에 그대로 흡수되어 있는 마을을 보면서
이곳만은 우리나라처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산산조각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랬다.
그만큼 눈에 오래오래 담아두고 싶은 모습이었다.
나중에 시간이 허락된다면 으흘라라 계곡 구석구석을
내 두 발로 오래오래 걸어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도 생겼다.
그러니 부디 그때까지 이 모든 풍경들이 나를 기다려줬으면... 
제발!



으흘라라 계곡.
이곳에 비상구 하나 남겨두고 오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9. 23. 06:42

카파도키아는 넓은 지형때문에 그런지 유난히 tour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이 많다.
green tour, red tour, blue tour, rose valley tour, balloon tour, motorbike/scooter tour, turkish night tour 등.
tour를 진행하는 에이전시 사무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이스탄불에서도 카파도키아의 각종 tour를 예약할 수 있을만큼
터키여행의 key point이자 주력관광지다.
실제로 터키 현지인들도 우리가 제주도 여행하듯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특히나 이슬람 명절인 바이람 기간때는 야간버스 구하기도 쉽지 않아 미리부터 예약을 해야할 정도.
나도 역시 바이람 끝난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인지 야간버스 예약이 full이라 카파도키아에서 하루 더 머물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파묵칼레에서 셀축, 에페스로 넘어가지 못하고 바로 이즈미르 공항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전화위복이됐는지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여행하는 특별한 기억을 만들었다.
유명지라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유명관광지같은 번잡함과 과대포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Rose Valley Tour!
카파도키아의 상징 중 하나인 로즈밸리를 돌아보는 도보 투어.
개인적으로 소박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머물고 있는 이쉬타르 팬션 로스밸리 투어(15TL)가 유명해서
다른 팬션의 여행객들도 개인적으로 많이 참여한다고 해서 더 그랬는지도...
지금은 조금 성격이 달라진것 같은데
예전에는 꽤 넓은 지역을 걸어다니면서 바위 교회 몇 군데도 방문하고 석양을 감상하기도 했단다.
이쉬타르 주인장 파파가 연세가 많아서 지금은 아들과 손자가 대신 진행을 하는데
특별한 설명없이 어둑한 길을 그야말로 묵묵히(?) 올라간다.
(광활한 벌판 위에 주인을 따라 올라가는 소떼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파파가 예전에 괴레메 야외박물관 직원이어서 이 지역을 소상히 알고 있어
로즈밸리 투어때도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해서 참가자들의 만족도가 특히 높았던 모양인데
아들과 손주는 좀 과묵한 편인듯 ^^
특히 아드님은 정말 묵언수행하시는 분같다.
그래도 풍경 하나만으로도 아쉬울 것 하나 없는 rose valley!



석회와 철분, 황이 함유되어 있어 붉은 색을 띄는 rose valley.
붉은 석양에 더 붉게 물드는 모습은 올라가는 발걸음을 감탄과 경이로움속에 자꾸 멈추게 했다.
저녁 6시 30분에 출발해서 정상에 올랐을 땐 이미 해가 졌지만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나쁘지 않았다.
작은 모닥불을 피우고 참가자들이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도 좋았고
특히나 별이 총총히 뜨는 하늘을 보면서 서로 아는 별자라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날 우리가 찾은 별자리가 다 맞기는 했을까?
특이하게도 이날 투어는 전부 한국인만 참여해서 더 각별했던 것 같다.
(한국인만 석양에 대한 로망이 있는 건가???)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에페스 맥주와 와인, 과자과 땅콩으로 간단히 배를 채웠고
모닥불이 점점 사위어가면 감자를 묻어두고 기다린다.
붉은 rose valley에서 별과 달을 보면서 먹는 구운 감자 맛은 일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에 품고 있으면 정말 따뜻하다.
자신의 한국 이름이 "원빈"이라고 말하는 파파 손자때문에 유쾌하게 웃었다.
(과묵한 청년이 어두워지니까 점점 개그 본능을 ^^;;)
낯선 이국땅에서의 한국인과의 저녁 시간!
좋은 추억이었고 좋은 인연이었다.
가장 많이 걷고,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카파도키아.
더 오래 머물르면서
더 오래 걷고, 더 오래 둘러보고 싶은 곳임에 분명하다.
끝나지 않을 터키의 신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