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1. 10. 27. 08:06

<꿈속의 꿈>

일시 : 2011.10.08. ~ 2011.10.28.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출연 : 길해연, 문형주, 장용철, 강일, 송현서, 이혜원 외... 
제작 : 극단 작은 신화
연출 : 신동인

개인적으로 극단 작은 신화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올해만해도 이미 여섯 작품이나 무대에 올렸고, 내가 본 작품만도 세 작품이나 된다. 
<돐날>, <황구도>에 이어 <꿈속의 꿈>까지.
세 작품 모두 독특했고 상당히 괜찮았다.
벌써 창단 25주년이 됐다는데 그 저력이 대단하고
끊임없이 창작을 발표하는 노력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11월에도 <해뜨기 70분 전>과 <우주인> 두 개의 창작이 또 공연될 예정이다.
참 부지런하고 건실한 행보 ^^

<꿈속의 꿈>
2008년 서울연극제 대상, 희곡상, 연기상을 받았던 작품.
2010년에 보고 싶었던 걸 놓쳤는데 다행히 올해에는 시간이 맞았다.
특히나 드라마센타는 내게도 향수와 추억이 있는 장소라 찾아갈 때마다 좀 묘한 기분이 젖게 된다.
많이 변했다는 적요감(寂擾感)?
그런데 가장 많이 변한 게 다름 아닌 나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 곳에서 철학개론 수업을 들었었지!'
옛기억이 꿈처럼 떠오른다.
나 역시도 꿈속의 꿈에 빠져버린거다.
참 아득하고 먼 기억이구나 싶다.



2011년 "대학로 우수작품 인큐베이팅 프로젝트 선정작" <꿈 속의 꿈>
(이해하기 절대 어려운 프로젝트다.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는데 거의 언어유희 수준의 조합이다.)
‘대학로 우수작품 인큐베이팅 프로젝트’는
총 5명의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추천위원의 추천을 받은 17개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가 이루어진단다.
5명의 외부전문가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작품이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아 선정됐다고 한다.
작은 <삼국유사> 속의 "매몽설화"를 재조명한 작품이다.
"매몽설화"는 ‘춘추공(김춘추)’과 김유신의 두 여동생 ‘보희’, ‘문희’의 이야기다.
언니인 ‘보희’는 어느날 꿈을 꾸게 된다,
서학에 올라서 오줌을 누는데 그 오줌이 온 나라 안을 가득 채웠다는 내용의 꿈.
동생 ‘보희’는 언니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치마를 벗어주고 그 꿈을 산다.
그리고 ‘김춘추’의 배필이 됐다는 이야기.
연극은 ‘김유신’과 ‘김춘추’의 욕망에 이용당한 두 자매의 삶에 초점을 맞춰진다.
무대는 어딘지 음험한 무덤 속 같고 스멀스멀 기분나쁜 귀기(鬼氣)가 느껴지기도 한다.
중간중간 조그많게 들리는 빗소리도 착시효과를 준다.
(실제로 이날 비가 와서 처음엔 바깥에서 들리는 빗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음향효과더라.)
섬득섬득 이 세상이 아닌 곳 같은 느낌.
조명과 음악, 음향이 너무 효과적이었고
무채색의 의상은 담백한 수묵화를 보는 느낌이다.
그 옷이 또 조명과 만나면 마치 시신을 감싼 수의(壽衣)같다.
대사는 때로는 칼같고 때로는 시같다.
난장(亂場)같기도 하고 제의(祭意)같기도 한,
현재같기도 하고 과거의 회상같기도 한,
이승같기도 하고 저승같기도 한,
몽환적이지만 그렇다고 비현실적이지도 않다.
어떻게 이런 느낌의 작품을 만들었을까?

 
장중하면서도 해햑이 있고
그림자 인형극같은 서글픔도 있다.
무엇보다 엄청난 몰입으로 작품을 끌어가는 배우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억지를 쓰자면 동생 문희역의 길해연이 언니 보희역의 문형주보다 훨씬 노숙한 느낌이라서 민망한 정도 ^^
문희와 젊은 화랑과의 모습도 살짝 유한 부인과 미소년같기도 하고...
그러나 길해연의 독특한 어투와 톤은 나이든 문희 역에 적격인 것 같다.
<기묘여행>에서 코디네이터였던 장용철.
<기묘여행>에서 그의 톤이 하도 독특해서 아마 어떤 역을 하든 그 톤은 변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톤을 보여줘서 놀랐다.
그래도 장용철의 독특한 톤이 김유신을 살짝 사악하고 모사꾼같은 인물로 보이게 하더라.
그게 나빴다는 의미는 아니고 작품과는 잘 어울렸다.
이번 공연에서는 극중극의 형태로 광대들의 난장 부분이 새롭게 추가가 됐단다.
그런데 이게 또 별미(別美)다.
너무 진중하고 무거운 내용인데 이 부분이 나오면
이야기가 쉽게 정리되면서 오히려 극의 흐름까지도 전화시킨다.
그것도 과하거나 유난스럽지 않게.

개인적으로 이런 한국적이 작품들이 많이 창작됐으면 좋겠다.
대사를 조금 쉽게 풀 수 있다면 이런 류의 작품들은 이방인들에게 엄청 신선하게 느껴질거다.
실제로 이날도 외국인이 꽤 관람하고 있어서 놀랐다.
특히나 한국적인 소재의 작품은 색채와 조명으로도 느낌 전달이 용이해서
여러가지로 impact 줄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인큐베이팅 프로젝트라고 했던가?
조산아(早産兒)를 인큐베이터에서 건강한 아이로 키워내듯
이 작품이 좋은 양분과 좋은 지원을 받아 무럭무럭 잘 육성됐으면 좋겟다.
그러면 정말 "꿈꾸는 인큐베이터"가 될텐데!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6. 20:27

<환각의 나비> - 박완서


환각의 나비 
 

이상하게도 전 작가 박완서가 너무 좋습니다.

국민어머니라고 불리우는 텔런트 김혜자씨 같은 느낌이라면 이해가 되실까요? 대한민국 여류소설가의 국민 어머니...(작가가 국민 어머니가 되는 날이 정말이지 현실로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대작가 박경리님이 타계했을 때 참 많이 아파하던 모습을 기사에서 본 적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박경리라는 대가의 남겨놓은 빈자리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이 그녀의 머릿속 일부에는 자리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사람들은 모두 한 번쯤은 작가가 되기를 소망한다쟎아요.

“박완서”는 그런 모든 사람에게 분명 로망으로 다가 옵니다.

더불어 이 나이에 무슨 작가를...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하고 망설이는 사람에게 분명 그럴 수 있음을 보여준 분이기도 하니까요.

40이라는 정말 늦은 나이에 작가로 데뷔한 박완서.

그녀의 글은 그래서 처음부터 세월이 묻어나고 따뜻함이 묻어납니다.

어떤 평론가는 말하기도 합니다.

“박완서가 이룬 공적의 하나는 여성의 이야기를 '여류'의 사슬에서 구해낸 것"이라고...

전 좀 다르게 말하고 싶기도 합니다.

박완서의 글을 읽고 있으면 여성이라는 존재와, 여자라는 성의 중요성이 새삼 느껴지면서 그 여성이 갖는 책임감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불편한 작가기도 하죠.

그런데 불편한 내용을 그녀는 참 온화하고 따뜻하게 써내려갑니다.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에 신내림 같은 몽환적인 굿판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작가라는 이름의 신비감.

그야말로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모두 겪은 그녀의 이야기는 저겐 소설이 아니라 역사로 다가옵니다.


이 책은 5편의 단편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그리고 읽다보면 불편함이 느껴지는 줄거리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더 불편한 것은 그런 일들이 정말, 실제로, 버젓히 현실에서 일어났던 일이고 그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죠.

이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여성입니다.

그 여성들이 이제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하죠.

사회적인 문제와 역사적 진실에 대한 고증, 한국 전쟁과 유신 정권, 낙태와 남아선호사상으로 전락한 성 감별. 노부모에 대한 젊은이들 자식들에 대한 속내..

<그 가을의 사흘 동안>, <꿈꾸는 인큐베이터>...

수록되어 있는 5편의 단편들 모두 다 대단하지만 전 특히 이 두 편을 읽으면서 몸에 소름이 돋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 두 편을 탈고하고 작가 본인도 한동안은 힘들어하지 않았을지...

잠깐 두 편을 소개해 드릴께요.

 

<그 가을의 사흘 동안>

왠지 말랑말랑하고 감상적인 내용일 것 같죠.

하지만 제목이 주는 느낌과는 반대로 이 단편의 내용은 점점 섬뜩해집니다.

강간과 낙태의 기억에 평생을 짓눌린 한 여의사에 대한 이야깁니다.

한국전쟁 중에 미군 병사에게 강간당한 후 낙태 수술을 받은 주인공은 1953년 봄, 서울 변두리에 산부인과를 열게 됩니다.

그 후 30여 년 동안 낙태수술 전문으로 하게 되고 그러다 그 일대에선 꽤 유명한 낙태전문 의사가 됩니다. 제법 업소를 통해 알게 된 단골들(?)도 많고.

병원 정리를 사흘 앞두고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일종의 자학극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평생을 “죽임”의 일에 매진하던 주인공은 병원을 정리 하기 전에 단 한 번 생명을 받아보고 싶어집니다.

그게 사흘이란 남은 시간과 맞물리면서 주인공은 거의 히스테릭한 상태까지 자신을 내몰게 되죠.

평생을 '원치 않는 아기'를 죽였던 자신에 대한 철저히 자학.

그녀는 그런 자학을 통해서라도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고 동시에 지금까지 계속됐던 자신의 행동을 용서받고 구원받고 싶었겠죠.

사람이란 참 가혹한 존재고 무시무시한 존재입니다.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의 형태를 잡아먹는 모습이라니...

하지만 이런 자학의 책임감마저 지금의 시대에는 차라리 선량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지금은 인간의 형태를 잡아 먹는 게 아니라 인간 그 자체를 잡아먹는 일도 비일비재하니까요.


<꿈꾸는 인큐베이터>

이 단편은 그릇된 남아 선호사상과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진실 같은 통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장남과 결혼해 딸만 둘을 내리 낳은 주인공이 섯째 아이를 임신하게 됩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권유, 그리고 자기 자신의 암묵적인 동의로 주인공은 양수검사를 받게 됩니다.

“세상에, 이렇게 편한 방법도 다 있네...”

두 사람의 감동에 찬 응원(?)에 검사를 받은 그녀는 얼마 후, 배 안의 태아가 딸임을 알게 됩니다.

또 다시 가족의 응원(?)을 받으며 주인공은 생명을 잃습니다.

그 뒤  이어진 임신... 위의 과정 반복을 통해 이번 태아에게  “태어남”이 허락됩니다.

이렇게 아들을 낳게 된 그녀에겐 이제 "후천적인 남성 성기"가 생기게 된 셈이죠.

그녀는 변합니다. 그동안 공손한 며느리, 착한 올케였던 그녀는 쌀쌀하고 무도한 여자로 돌변해 자신의 후천적 남성 성기를 가차 없이 가족들에게 휘두르죠.

“난 아들 있는 여자다~~~~!!!”

모든 어머니는 아들을 통해 당당해질까요?

그냥 그 시대엔 그랬다고 치부해버리기엔 왠지 씁쓸합니다.

이 여자...

파괴가 되든, 재건이 되든 어떻게 되겠죠?

이 여자가 어떤 모습이길 바라시나요?


이런 내용들...

참 불편하시죠?

하지만 정말 더 불편해야 할 건 현실도 아직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누군가의 모체는 더 이상 태아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인큐베이터에 불과하다는 사실.

그런데 이 인큐베이터는 생명을 살려야 하는 자신의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완성되지 않는 생명을 척척 내뺕어 버립니다.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가득한 세상.

어쩐지 인류멸망보다 더 큰 재앙처럼 느껴집니다.


<엄마의 말뚝2>,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환각의 나비>

나머지 3편들도 어쩌면 읽는 이를 다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 불편함 속에 뭔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불편함의 미학”이라고 할까요???

현실이 불편하지 않다면 그만큼 자신이 치열하게 살고 있지 않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좀 다른 형태의 불편함 만나는 거...

내 앞의 현실로 만나는 것 보다는 그래도 다행이다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더라구요.

불편함을 내내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거...

일부러 찾아 만나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어쩐지...

물귀신 같은가요?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