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6. 11. 11. 13:25

 

<두 개의 방>

 

일시 : 2016.10.20. ~ 2016.11.13.

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극본 : 리 블레싱 (Lee Blessing)

번역, 연출 : 이인수

무대 : 여신동

출연 : 전수지(레이니), 이승주 (마이클), 배해선 (앨렌), 이태구 (워커)

제작 : 예술의 전당, 노네임씨어터

 

무겁고 처절한 작품이다.

보는 내내 마음 아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다.

내가 모르는 고통이고, 앞으로도 결코 내가 모를 고통.

하지만 지금도 중동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만 하는 현실 속 이야기.

하필이면 이런 때 이런 연극이라니...

또 다시 이 질문과 대면할 수밖에 없다.

국가는 개인에게 어떤 존재인가!

국가의 잘못을 왜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가!

 

정부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 기다리세요.

대중 앞에 나서는건 일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많이, 그리고 흔히 들어본 대사 앞에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보는 내내 자주 울컥했다.

눈이 가려진채 두 팔이 묶여있는 남편,

러그 하나만 남겨놓고 텅 비어있는 남편의 방 안에 있는 아내.

그리고 끊임없이 서로를 향해 이야기하는 두 사람.

정부는 말한다.

쓸모없는 희망을 하지 말고 조언에 따른 희망을 하라고.

언론 역시 아내에게 말한다.

현실은 정부가 당신의 남편을 죽게 내버려둘거라고. 그러니 목소리를 내라고.

한쪽은 침묵을 한쪽은 공개를 부추긴다.

 

그냥... 다 무섭고 잔인하다.

이게 정말 최선이었대도 잔인함이 사라지는건 아니다.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게 장기, 단기 프로젝트로 취급되고

이번 순서가 아니니 기다리라고 말하는 정부.

신이 하는 일도 있단다. 신이...

그래도 지금 여기보다 연극 속 세상은 훨씬 더 나은 세상이다.

오프 더 레코드였긴 했지만 진실을 고백했으니까.

...우리는 마이클의 목숨이 국제정세에 영향을 미칠만큼 가치잇는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틀렸어요. 우리 계산이...

우리에겐 자신이 틀렸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운이 나빠서일 뿐이라고.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수많은 마이클들이  매번 죽어나간다. 

아주 아주 고요하고 무덤덤하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6. 8. 18. 07:35

 

<글로리아>

 

일시 : 2016.07.26. ~ 2016.08.28.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작가 : 브랜든 제이콥스 - 젠킨스 (Branden Jacobs-Jenkins)

번역 : 여지현

연출 : 김태형

출연 : 이승주(딘&데빈), 손지윤(켄드라&제나), 임문희(글로리아&낸), 정원조(로린)

        오정택(마일즈&숀&라샤드), 공예지(애니&사샤&캘리)

제작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노네임씨어터컴퍼니 7번째 작품 <글로리아>는

근래 내가 본 작품 중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끔직했다.

그 이유는...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라서!

그야말로 지금 이곳에서 다반사로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의 비극이다.

15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지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 한 명 없는 "글로리아"는

내 모습일 수도 있고, 당신들 모습일 수도 있다.

글로리아의 극단적인 선택이 나는 이해가 되고 심지어 용납이 된다.

확실히 인간은 뒷담화와 함께 진화했다.

인간에게 뒷담화의 능력이 없었다면

문화도, 예술도, 기술도 발전하지 못했을거다.

(뒷담화라는건 언제나 상상력이 가미돼 실제보다 훨씬 더 부풀어지게 마련이니까!)

인간을 왜 그토록 쉽게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걸까?

사무실 직원 5명을 살해하고 자신의 머리통까지 날려버린 "글로리아"는

어어없게도 죽어서야 존재감이 급상승된다.

그리고 시작되는 주변인물들의 사생결단 트라우마 쟁탈전.

"이 이야기...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이 대사에 소름이 돋았던건 비단 나 뿐이었을까!

 

...... 그녀는 평범했어요, 조금 어색했달까. 낯을 좀 가렸어요. 사람들이랑 많이 안 어울리고 플로리다에서 왔던 거 같아요...... 평범했어요, 평범한 일들을 했고 뭐 굳이 얘기하자면, 직장에서 늘 혼자 있었어요, 그게 진짜 그지 같은 거죠. 직장은 곧 그녀의 삶이었으니까, 어떤 면에서는, 그녀가 그런 일을 했다는게 그렇게 놀랍지 않아요. 아주 건강한 환경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제 말은, 우리 중 누구든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

 

처음부터 이상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이 어땠는지 알지 못하면서 그 사람의 삶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글로리아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게 아니다.

단지 존재하고 싶었을 뿐이다.
존재...라는거,

참 목이 매인다.

개인적으론 이런 작품을 보고나면 후폭풍이 오래 간다. 

젠장!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조용히 살고 싶다.

진심으로.

 

로린의 마지막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

"좀 웃기지 않아요? 이런데가 다 똑같다는게... 사람들까지 다 똑같아요. 왜 그럴까요?"

대답할 말이 없는 나는,

로린처럼 조용히 헤드셋을 끼고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본다.

글로리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

혹은 글로리아가 되기 위해서.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5. 8. 17. 08:28

 

<필로우맨>

 

일시 : 2015.08.01. ~ 2015.08.30.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원작 : 마틴 맥도너 (Martin Mcdonagh)

번역, 각색 : 이인수

연출 : 이인수

무대 : 여신동

출연 : 정원조(카투리안), 윤상화(투폴스키)

        김수현(에리얼), 이형훈(마이클)

제작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2007년 LG아트센터 초연때 캐스팅이 그야말로 화려했었다.

최민수, 윤제문, 최정우, 이대연...

그때 관람을 놓고 참 많이 고민했었다,

LG아트센터 광활한 대극장에서 조그만 취조실이 배경인 연극이라니...

솔직히  감당이 안됐다.

그래서 관람을 포기했었고

그 후 2012년, 2013년 변정주 연출과 김준원 배우의 조합으로 올라왔을 때는 어찌어찌하다 놓쳐버렸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연출가와 배우 조합이라 꼭 보고 싶었는데...)

그냥 여러모로 나와는 참 인연이 안닿는 작품인가보다 했었다.

그랬더랬는데 드디어 네 번째 공연만에 보게 됐다.

<필로우맨>

space111에 갔더니 벽에 있는 보드판에 축하멘트가 적혀있더라.

제일 아랫쪽에 연극배우 남명렬이 써 놓은 글이 눈에 띄었다.

"필로우맨 - 노네임 늘 좋아~~"

전적으로 동감한다.

노네임의 작품은 늘 좋았다

 

작가와 작가의 형, 그리고 아동 연쇄 살인 사건.

그런데 벌어진 살인 사건이 공교롭게도 작가가 쓴 이야기의 내용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자기와 무관한 일이라고 말하는 작가에게 

형사는 작가의 집에서 나왔다는 증거품을 보여주며 말한다.

당신 형 마이클이 범행 일체에 대해 자백했다고.

하지만 당신 형은 지적 장애가 있는사람이라 그런 일을 저지를 머리가 없다고.

그래서 당신의 자백도 받아야 겠다고.

자. 여기서 중요한건 살인 사건이 아니다.

중요한건 "이야기"다.

이야기 그대로 재현된 살인 사건,

자신은 죽더라도 자신이 쓴 이야기만은 남기고 싶어하는 작가.

그리고 동생이 만든 이야기를 끊임없이 듣고 싶어하는 작가의 형.

그렇다.

"이야기"의 힘은 쎄다.

그 힘은 비극적일 수도 있고, 희극적일 수도 있고, 둘 다 일 수도 있다.

이 작품을 보면서 놀라웠던건,

끝임없이 거듭되는 반전을 아주 담담하게 표현했다는거다. 

받아들이고 이해하는데 놀랍지도, 끔찍하지도, 잔인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작품의 모든 상황과 내용이 다 "이야기"로 다가왔다.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그런데 나...

이 작품보다 이 연극에 나오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버렸다.

1막에 나오는 작은 사과인형, 사거리의 세 사형대, 강 위의 한 마을, 작은 초록돼지도

2막에 나오는 작가와 작가의 형제, 필로우맨, 어린 예수도

다 흥미롭고 매혹적이다.

어떻게든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한 카투리안의 절실함이 충분히 이해될 만큼.

특히 연극 제목과 같은 제목을 가진 <필로우맨> 이야기는 압권이다.

어쩌면... 필로우맨 이야기 차체인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 이야기가 없다면,

팍팍하고 힘든 현실을 어떻게 버텨나갈까?

다른 사람들은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그럴 수 없다.

 

적어도 나란 사람은,

필로우맨과 함께 하는 결말을 원한다.

그게 비혹 잔혹동화일지라도...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11. 18. 08:15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 Tribes)

일시 : 2014.11.08. ~ 2014.12.14.

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극작 : 니나 레인 (Nina Raine)

번역 : 이인수

연출 : 박정희

출연 : 남명렬(크리스토퍼), 남기애(베스), 김준원(다니엘)

        방진의(루스), 이재균(빌리), 정운선(실비아)

제작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나는 정말이지 노네임씨어터 작품을 너무나 사랑한다.

작품을 선택하는 안목도 너무나 탁월하고 연출가과 배우 캐스팅 역시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만큼 환상적이다.

매 작품마다 깊이와 재미를 동시에 쥐고 있는 현실이라 감정적으로도 쉽게 동화된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이 작품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역시도 그랬다.

가족...

그 가깝고도 먼 관계.

정말 그렇더라.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가족이

사실은 세상 그 누구보다 일방적인 소통을 강요하더라.

그걸 사랑이라고, 관심이라고, 애정이라고 말하면서...

사람이 가장 외로워지는건

가족 안에서 혼자됨을 느끼는 그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각자의 발언은 마치 선사시대 원시인들이 질러대는 괴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 아무도 말하지 않고, 아무도 듣지 않는다.

"이해" 보다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 자체가 행동의 전부다.

극 속에서 가족들이 실제로 하는 말과 자막에 비쳐치는 말이 갖는 괴리감이 절실했다.

이해될 수 없는 기호들의 끝없는 나열...

그게 가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기에 우리는 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각자의 소리를 내고,

비소통으로 소통하지만 돌아온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 속에 속해 있으니까.

 

다니엘의 대사가 가슴에 꽃혔다.

"너 자신을 지키고 싶다면 거리를 둬!

 누군가에게 네 마음을 주면 그 사람을 그걸 버스에 두고 내려.그 다음엔 이리저리 밟히고 채이지"

그래서 광신도 집단처럼 폐쇄성에 기대 울타리를, 소속을, 공동체를 만들게되나?

옆에 빈의자 하나씩 남겨놓고!

소수의 세계도, 다수의 세계도 정답이 될 수는 없다.

빈의자는 여전히 남아있으니까. 

 

빌리의 빈자리에,

다니엘의 빈자리에,

루스의 빈자리에,

크리스토퍼의 빈자리에,

베스의 빈자리에.

누군가 성큼성큼 다가와 앉아준다면 좋겠다.

그리고 나에게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