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1. 2. 28. 20:06
요즘 경기도 예술을 총괄하느라 한창 바쁜 조재현이 오랫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연극열전 <민들레 바람되어>로...
이러다 제 2의 유인촌이 되는 건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바쁜 그의 일정 속에서 무대 위로 복귀가 나는 너무나 반갑고 즐거웠다.
(어찌됐든 배우 조재현의 연기도 뛰어나지만 기획자 조재현의 모습도 확실히 탁월하다.
 연극열전을 이렇게 자리잡아 놓은 것 보면 대단하단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꽤 오래전에 예매했었고
그리고 기대를 많이 했던 연극열전 작품.
조재현에게 "연극열전"이란 몸의 일부같은 존재가 아닐까?
영영 떠나버렸나 생각했는데 반가웠고 그리고 대학로 무대에서 연출가나 기획자가 아닌
배우로서 그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이노라 고백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죽은 아내의 무덤에 찾아가 그녀가 살아있을 때처럼 대화를 나눈다는 거...
왜냐하면 나도 가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니까.
마음 안에 오래 담겨있는 누군가와 대화를 해 본 사람은 안다.
그 사람이 이미 세상에 있는 사람이든, 혹은 없는 사람이든
아직 이야기할 수 있다면 상대편은 기꺼이 살아 있는 존재다 될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애뜻한 마음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연극...
그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
아내에게 비밀이 있듯 내게도 밀봉된 비밀이 있는지도...
"이 세상 모든 부부들에게 바치는 가슴 뜨거운 러브 스토리"
개인적으로 이 문구는 참 맘에 안 든다.
이 연극이 러브스토리었던가?
오히려 이 연극은 비밀과 밝혀짐, 파헤침의 연극이 아닐까?


        남편 : 조재현           아내 : 김성미                  노부부 : 이한위, 황영희

아내는 그대로인데.
아내의 무덤을 찾아가 이야기를 하는 남편은 시나브로 나이를 먹는다.
30대, 40대, 50대, 그리고 초라하고 누추한 노년이 되어버린 남편.
살아서는 한 번도 꽃을 사오지 않았던 남편은
아내의 무덤에 꽃을 들고 찾아와 이야기를 한다.
때로는 떼를 쓰고 어거지를 부리고,
때로는 불평과 부당함에 대해 하소연을 하고
때로는 분노와 화를 폭발한다.
아내는 묵묵했던가?
아니면 열심히 자기방어를 하듯 그에게 이야기했던가?
둘의 대화는 때로는 앞 뒤가 맞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다른 세계이기도 하다.
그래, 꼭 민들레 같다.
꽃이기도 하고, 나풀거리는 홀씨이기도 한 그런 민들레.
바람이 불면 홀씨는 흩어진다.
처음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꽃이었던 모습이 지워진 것도 이미 오래다.
부부는, 아니 사람은...
자꾸 가벼워져야 하는 걸까?
그래서 아내의 무덤이 민들레가 지랄맞게 지천인 곳이여야 했는지도...


  
“오늘 우리 결혼사진을 봤다.
 당신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나는 없더라.
 나는 없고 나였던 사람만 있더라.
 나는 이렇게 늙었는데… 당신이 과연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꼭 누군가를 먼저 보내지 않았더라도
살면서 이런 느낌 참 많이 받는다.
그럴 땐 세상 누구보다 낯설게 느껴지는 자신의 모습.
이 연극을 보면서 뜬금없이 나는 나 자신을 봤고 느꼈다.
배우 조재현은,
참 잘 어울리더라.
아마도 그를 위한 연극이 아니었을지...
아내 역이 좀 어색하고 인위적이긴 했지만
조재현 덕분이 붕 뜨지 않고 그나마 안정적일 수 있었던 것 같다.
김성미의 변사스러운 대사톤은 신파를 떠올리게 한다. 
"여보! 나 예뻤어~~~"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저 여자 지금 미쳤나 싶기도 했다.
내 생각엔 귀신이 오히려 더 차분하고 평온할 것 같은데
김성미가 표현한 아내는 코믹함마저 느껴져 많이 아쉬웠다.
그래서였나?
남편의 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대사가 별로 충격적이지 않더라...



노부부 역의 이한위, 황영희는 정말 좋았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임산부로 나왔던 황영희를...)
두 사람의 타이밍과 대사의 호흡은 맛깔스럽고 일품이다.
왜 이한위를 명품조연이라고 표현하는지 연극 무대를 통해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하긴 내가 별로 TV는 보지 않아서 TV를 통해 느끼기는 어렵긴 했겠다 ^^)
요즘 TV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는 배우 정보석이
남편 안중기역에 더블 캐스팅되어 조재현과 함께 공연중이다.
덕분에 아주머니들의 폭발적인 관람이 이어지고 있단다.
(내가 본 날도 게모임에서 단체로 나오신 듯한 분들 많더라... 개인적으로 이런 모습, 아주 보기 좋다.)
3월부터는 이광기까지 가세해 공연장을 옮겨 오픈런으로 공연될 예정이란다.
솔직히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은 이 연극을 올리기에는 좀 넓긴 하다.
조금 작은 곳에서 더 애뜻하고 차분하게 공연되길 기도해본다.
연극열전의 좋은 레퍼토리니까...
"이지아" 가 부인으로 컴백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다.
한번 기다려볼까?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11. 1. 3. 05:55

 


<내 영혼 바람되어>

그곳에서 울지 마오
나 거기 없소, 나 그곳에 잠들지 않았다오
그곳에서 슬퍼 마오
나 거기 없소, 나 그곳에 잠든게 아니라오

나는 천의 바람이 되어
찬란히 빛나는 눈빛 되어
곡식 영그는 햇빛 되어
하늘한 가을비 되어

그대 아침 고요히 깨나면
새가 되어 날아 올라
밤이 되면 저 하늘 별빛 되어
부드럽게 빛난다오

그곳에서 울지 마오
나 거기 없소, 그 자리에 잠들지 않았다오
그곳에서 슬퍼 마오
나 거기 없소, 이 세상을 떠난 게 아니라오



A Thousand Winds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I am a thousand winds that blow.
I am the diamond glints on snow.
I am the sunlight on ripened grain.
I am the gentle autumn's rain.

When you awake in the morning's hush
I am the swift uplifting rush
Of quiet birds in circled flight.
I am the soft stars that shine at night.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cry;
I am not there, I did not die.

=========================================

양준모의 <영웅>을 보고 인터넷을 뒤지다 이 노래를 찾았다.
(늘 생각하는데 이 사람 목소리 참 좋다.
 다듬어지지 않은듯 거칠면서도 따뜻하고 순수하다.)
<내 영혼 바람되어>
망자가 무덤 앞에서 슬퍼하고 있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자신은 자유롭게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대들의 곁에 언제나 있다고
오히려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내용의 미국 인디언 구전시.
그 시를  이화여대 김효근 교수가 번역해서 곡을 붙였다.
일본에서도 이 시를 번역해서 곡을 붙인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라는
노래가 유명하단다.
김효근 교수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는데
듣는 순간 가슴 속에 쨍~~ 하는 소리가 났다.
가사가 너무 아름답고 그리고 피아노 선율은 그대로 위로가 된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죽은 이의 마음이 산 사람을 위로하고 보듬을 수도 있겠구나...

이 곡은 2008년 곡이 만들어졌고
2009년 김효근 교수가의 <내 영혼 바람되어> 음반에 들어있는 곡이다.
이 곡 외에도 김효근 교수의 피아노 연주와 양준모의 목소리가 만나는 곡이 여러곡이다.
몇 곡을 들어봤는데 다 편안하고 위로가 되는 선율과 음성이다.
아무래도 앨범을 구해서 전곡을 제대로 듣게 될 것 같다.


1. 사랑의 꿈
    - 작사/글 김효근, 작곡 김효근, 노래 양준모
2. 첫사랑(Piano solo) -김효근
3. 천년의 약속
    - 작사/글 이채민, 작곡 김효근, 노래 양준모
4. 가을의 노래
    - 직시/글 김효근, 작곡 김효근, 노래 양준모
5. 첫사랑(Guitar solo) - 김효근
6. 내 영혼 바람되어
    - 역시 김효근, 작곡 김효근, 노래 양준모
7. 눈  - 작사/글 김효근, 작곡 김효근, 노래 양준모
8. 천년의 약속 (instrumental) - 김효근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 7. 06:26

<책도둑 1,2> - 마커스 주삭

책도둑. 1

이 책은 슬픈 책입니다.
너무나 슬퍼서 잠깐 읽는 사람의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들어 버릴 만큼요.
<전쟁> 그 낯설고 아득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너무나 천진하고 아름다워서 설핏 나도 모르게 전쟁을 꿈꾸게 만들기도 하고, 그러다 몸서리를 치며 악몽 속에서 깨어나 누가 들을까봐 목소리를 죽여 가며 울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절대로 내 울음을 누가 훔쳐보게 해서는 안 되는...

여기,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 아니 뭔가가 있습니다.

바로 죽음의 신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나'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색깔의 변화를 냄새로 음미하면서 가끔 세상에 대한 한 눈 팔기를 통해 작업의 고단함을 잠시 잊기도 합니다. 어느 날 기차 안에서 한 소년의 영혼을 품에 안다 9살짜리 소녀(소년의 누나)를 만나게 되죠.
그 소녀가 바로 우리의 책도둑... 그녀입니다.

주인공 소녀의 이름은 리젤. 남동생을 하얗게 얼어붙은 땅에 묻은 리젤은 친어머니와도 헤어지고 양부모 밑에서 새롭게 생활합니다.(동생의 차가운 무덤 속에서 그녀는 책도둑의 첫 번째 책을 갖습니다)
극악스럽고 항상 욕을 달고 사는 양어머니 로자 후버만과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칠쟁이 양아버지 한스 후버만, 그리고 마라토너 제시 오언스를 너무나 찬양하는 나머지 얼굴에 숯칠을 하고 온동네를 뛰어 다니던 유일한 친구 루니 슈타이너, 그리고 그들의 지하실에 잠시 숨겨 두었던 유태인 막스 판덴부르크..
그리고 그녀에게 책을 훔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시장 부인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생생하며 그리고 정말 삶을 위하여 한 순간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순간이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정직하게 아름다우며, 아름답게 즐거워하며, 즐거워하면서 서로 은밀히 소통을 나누는 너무나 평범하고 소박한 정말이지 딱 우리네 같은 사람들입니다.

굶주림..

우리는 이 책에서 또 다른 이유의 굶주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소녀가 책을 훔치는 이유였던(그런데 솔직히 훔친다는 인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굶주림. 너무나 간절한 책을 읽고 싶다는  굶주림...
소녀는 전쟁 중에도 책과 과자가 놓여있는 탁자에서 아무 망설임 없이 오로지 책만을 집어 들고 나옵니다.
리젤이 읽은 책 속의 활자는 고스란히 말이 되고 그리고 모든 것들을 향한 소통이 되죠.
소녀는 책을 얻기도 하고 그리고 한 사람씩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합니다.
그건 책과 사람의 교환도 아니고 죽음의 신에 의한 거래나 잘못에 대한 댓가도 아닙니다.
그건 단지 전쟁이라는 상황... 그것 때문이었죠.
죽음의 신도 개입하지 못하는 전쟁의 상황.
오히려 죽음의 신은 이 상황이 신물이 납니다. 그래서 시작된 한 눈 팔기의 상대가 리젤이 됐고 우리는 분명 죽음의 신이 화자인 책에서 리젤의 시선으로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리젤의 일기를 들여다 보고 있다는 느낌...
결코 일기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책에서 일기를 읽고 있다는 은밀함과 비밀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글 중간 중간 나오는 그림도 그리고 막스가 지은 책(리젤의 생일 선물도 건네진)에서도 모두 일기를 보고 있다는 착각을 갖게 하죠.
실제로 이 책은 안네의 일기와 비슷한 평가를 받고도 있습니다.
숨겨준 자와, 숨겨진 자의 차이라고 할까요.

작가 마커스 주삭은 나치 독일을 체험한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모티브(끌려가는 유대인의 행렬에 몰래 빵을 주는 장면)로 삼아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1868년생 작가가, 소위 새파랗게 젊은 놈이 자신이 겪어 보지도 않는 전쟁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 낼 수 있다니...
책의 내용보다 이 작가가 더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부러운 생각까지 어쩔 수 없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이 책은 살아남음에 대한 소설이 아닙니다.
그러나 살아남음에 대해서, 그래서 살아가야 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저 또한,
어딘가에서 책도둑으로 다시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음을 고백하게 되네요...

보너스 팁...

역시나 이 소설도 지금 미국에서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한 번역가 정영목님에 대해서도 한 마디..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하는 영미문학 번역가로 <눈먼 자들의 도시>(정영목의 첫 번재 번역작입니다), <눈뜬 자들의 도시>,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이 번역가의 손을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됐죠.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3인의 번역가 중 한 명입니다.(정영목, 이난아, 양억관)
일부러라도 이 분이 번역한 책들은 놓치지 않고 찾아보는 편입니다.
거의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 주고, 그리고 문학적인 표현이나 유머러스한 표현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문장 속에 스며들게 하는 번역가죠.
그래서 이 분이 번역한 책은 일단 기본 그 이상은 된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혹 관심이 있는 분들은 도서관에 있는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을 읽어 보시면 이 번역가의 또 다른 장점과 매력을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멋진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책들도 찾아 읽어 보시라 권해드리면서,
이상 달동네 책거리였습니다.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