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3. 12. 13. 08:27

터키와 나는 인연이 있지만

(정말 말도 안되게 혼자 우기는 중이지만...^^)

루멜리 히사르만큼은 매번 징글징글할 정도로 어긋났다.

한 번은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문이 닫혔고

한 번은 근처에서 입구를 못찾아 한참을 해매다 문이 닫혔고

한 번은 주말에 차가 너무 막혀서 문이 닫혔을 것 같아 다시 되돌아왔고...

확실히 주말에 루멜리 히사르에 간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다.

돌마바흐체에서 20~30분이면 충분한 이 길이 꽉 막혀

2시간이 후딱 지나가는 건 예사다.

(차라리 걸어가는게 오히려 더 빠를지도...)

그랬는데...

드이어 이번 여행에서 루멜리 히사르를 봤다.

물론 단번에 성공한 건 아니다.

오전에 돌마바흐체를 나와서 찾아가다 실패를 했고

(실패 이유는 참 어이없는 말이지만 버스 정류장을 못 찾아서...)

오기가 생겨 오후에 다시 도전했다.

솔직히 오후에도 거의 실패라고 생각하고 자포자기 했었다

여행서에 클로징 타임이 오후 4시 30분이라고 적혀었고 실제로 예전에도 그 시간에 갔더니 닫혀 있어서

그냥 인연이 없구나 또 다시 생각했다.

왠지 억울해서  입구라도 보고 가야 덜 허무할 것 같아 찾아갔더니 문이 열려 있었다.

믿어지지 않아서 매표소에 확인했더니 관람할 수 있단다.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나오더라.

(아마도 매표소 직원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싶다...)

 

루멜리 히사르는 3개의 커다란 탑과 성벽,

그리고 성벽을 따라 13개의 작은 탑들이  

반대편 아시아쪽의 아나톨루 하사르와 함께 과거 군사적 요충지였던 곳이다.

이 두 성채 사이가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가장 폭이 좁은 곳이라

이곳으로 적의 배를 유인해서 양쪽에서 대포를 쏴서 격침했다.

실제로 성채로 올라가는 길엔 과거에 사용했다는 대포와 탄환이 전시되어 있어

시간의 흔적을 가늠하게 한다.

(상상의 여지를 안겨주는 이런 소소한 전시들이 개인적으론 참 좋더라)

한적한 시간대라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것도 정말 행운!

성곽에 앉아서 바라본 보스포러스 제 2대교와 해협은...

아마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모습을 보여주려고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애태웠나 보다..

그래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통난 마음이 단번에 풀어졌다.

가파르고 좁은 계단때문에 내려가는 길은 무시무시하게 아찔했지만

모든 걸 다 잊게 만든 루멜리 히사르.

 

무슨 말이 필요할까?

쓸쓸하고 고즈넉해서 더 아름다웠던 그 곳!

 

그립다.

그립다.

참 그립다.

 

 

보스포러스 크루즈때 찍은 루멜리 히사르와 포스포러스 제2대교, 아나톨루 히사르의 모습.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해협의 병목지역.

시리도록 푸른 물은

전쟁의 상흔까지도 기꺼이 끌어안고 흐른다.

그러나 기억하는 자에겐

역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

마치 내게 묻는 것 같다.

너는 아직 살아있느냐고...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7. 05:33
돌마바흐체에서 너무 오래 줄을 섰던게다.
그리고 하필이면 토요일이었던게다.
거기다가 또 하필이면, 루멜리 히사르(Rumeli Hisari)가 좀 이른 시간인 4:30분에 폐관을 한다는거다.
이런걸 보고 삼박자가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고 해야하나?
완강하게 닫힌 루멜리 히사르 앞에서 막막하게 한참을 서 있었다.
그래도 그 푸름 앞에 굳건히 서있는 세 개의 성채를 보는 건 나쁘지 않았다.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시기심까지 겹쳐져 오히려 조금 애뜻하기도 했다.



술탄 아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 전쟁에 대비해 엄청난 인력을 동원해 단 4개월만에 만든 루멜리 히사르.
현재는 박물관으로 개조돼 관람객을 맞고 있고
조명시설까지 갖춰져있어 여름밤이면 음악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단다.
전망이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인데 아쉬움만 남겨둘 수밖에...
(일정상 다시 이곳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고...)
루멜리 히사르는 터키의 유럽측 성채고
건너편으로는 아시아측 성채인 아나돌루 히사르가 나란히 바라다 보인다.
이 두 성채 사이의 해협이 보스포러스에서 가장 좁은 부분이라고.
이곳이 바로 원조 물자를 실은 적의 배를 격침시킨 곳이란다.
보스포러스 제 2 대교와 함께 보이는 성채는 그래서인지 자부심과 자존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버스 타기가 애매하고 또 버스카드 살 곳도 만만치 않아
루멜리 히사르에서 베벅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베벅의 그 유명한 스타벅스를 잠시 들어가서 봤는데 글쎄 소문처럼 아름답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이미 명소가 되버려서 사람들도 가득차서 한적함을 못느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베벡으로 걸어가면서 평화롭고 한가하게 토요일 오후를 즐기는 터키 시민들의 모습이 오히려 더 아름다웠다.
한낯의 오수(午睡)를 즐기는 사람들, 낚시에 빠진 사람들, 수영하는 사람들,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고급 요트 식당,
그리고 무심하게 나무에 걸려있는 해먹의 빈자리까지...
이런 여유로움과 한가함이,
그리고 그걸 충분히 즐기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어쩔수 없이 또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이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



베벡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탁심 광장(Taksim Square).
탁심은 신시가지의 중심으로 상업과 쇼핑의 중추적 역활을 하는 곳이란다.
그런데 과거에는 이곳이 정치적인 모임과 시위를 벌였던 역사적인 광장이었다.
광장 중앙에 있는 공화국 기념비가 바로 그런 시대를 알려주는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잠시동안 공원 벤치에 앉아
아타튀르크 문화센터에 걸린 달을 바라봤다.
터키는 내게 "길"과 '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점점 어둑해지는 하늘을 따라 천천히 이스티크랄 거리(Istiklal Caddesi)를 걸었다.
서울의 명동에 해당된다는 이곳은 옛스러움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유럽식 건물이 인상적이다.
빨간색 트램을 제외하고는 차량 통행이 없어 상점들을 기웃거리며 둘러보기에 딱 좋은 곳.
명품샾과 쇼핑몰이 모여있어 조명도 화려하지만
조용히 숨어있는 서점을 보는 순간 발길이 딱 멈췄다.
나, 딱 이런 서점의 주인이 되고 싶었는데...



이스티크랄 거리를 따라 계속 걸어서 도착한 곳은 갈라타 탑(Galata Kulesi).
신사가지의 이정표가 되는 67m 높이의 갈라타 탑은 이력도 다양하다.
6세기초에 이스탄불의 항구를 지키기 위한 등대로 처음 만들었단다.
14세기에는 비잔틴 제국을 감시하는 탑으로,
그후에는 감옥과 기상 관측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지금 탑은 화재로 소실 된 걸 재건한 것이란다.
탑의 상징은 고깔모자 형태의 꼭대기는 최근에 다시 올린 것이고...
탑에 올라가서 야경을 보고 싶었지만 8시가 넘어서
아래에서 사진찍는 것으로 대리만족했다.
(이상하게도 이날은 뒤만 밟으면서 다닌 것 같다)
갈라타 탑에서 올려다본 터키의 이른 밤하늘은 말로만 듣던 터키블루, 바로 그 빛이었다.
조명속에 서있는 갈라타 탑과 검푸르면서 청명한 하늘을 보면서
여기 색들은 왜이렇게 잔인할 정도로 아름다울까 잠시 원망도 했다.
가슴에 사무치는 연인도 아닌데 자꾸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다 어이없게도 혼자 독한 배신감에 빠져버리고...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면서 말이다.
(더 있다가는 과대망상에 자아분열이 일어날 판이다.)



트램을 타고 바로 돌아갈까 하다 갈라타 다리를 걸어서 지나가기로 한다.
에미노뉴(구시가지)와 카라과이(신시가지)를 연결하는 갈라타 다리는
밤이 되면 강태공들의 아지트로 변한다.
좌판을 벌여놓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 다리 아래 성업중인 레스토랑들.
그리고 조잡한 물건을 팔기 위해 말을 거는 아이들까지.
처절한 생업의 부산함과 치열함이 그대로 살아있던 갈라타 다리!
그러나 그 생업의 공간 속에 고개만 들면 신을 경배하는 쉴레이미니예 자미가 빛을 발하며 서있다.
그들은 자미를 바라보며 위로를 받았을까?
신이 나를 보고 있다고. 밤까지 이어지는 내 수고를 신이 다 내려다보고 있다고... 
점점 차가워지는 바닷바람에 옷을 여미면서
갈라타 다리 한 목판에서 나는 종교를 생각했다.
종교는 아무래도 따뜻해야 할 것 같다고...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