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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14 김연수 <사랑이라니, 선영아>
읽고 끄적 끄적...2014. 1. 14. 09:16

김연수가 이랬었구나!

2013년 6월 20일에 출판된,

지금으로부터 무려 10년도 전에 쓴 김연수의 초기작을 읽으면서

젊은 작가의 치기와 순수가 귀여워 살며시 웃음이 났다.

"나 이렇게 파릇파릇하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작가예요~~"

어리꽝을 부르는 막내동생 같은 느낌.

김연수는 이 낯선 형용사와 동사들을 찾기 위해 또 얼마나 분주했을까?

김연수에게 작가로서 이런 시기가 있었다는걸 읽어내는 건 아주 유쾌하고 발랄한 즐거움이었다.

그런 때가 있다.

작가의 작품을 우연히든, 의도적이든 거슬러 올라가 읽을 때만 찾을 수 있는 묘미.

이거 썩 재미있다.

 

 

 

홍보문구가 살짝 오글거리긴 하지만

(김연수의 의도는 분명히 아니었을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역시나 "김연수"답다.

두어시간이면 후딱 읽을 수 있는 짧은 소설이지만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담론같은 문장들을 수줍게 만날 수 있다.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서도 상관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뿐이다...... 모든 게 끝나면 유통기한이 지난 식료품처럼 사랑했던 마음은 반품시켜야만 하지만, 사랑했던 기억만은 영수증처럼 우리에게 남는다. 한때 우리가 뭔가를 소유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물, 질투가 없는 사람은 사랑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억이 없는 사람은 사랑했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가 없다 ......

 

쉽고 당연한 문장이지만,

아주 정확하고 정직한 문장이라 뜨끔했다.

정말 그렇다.

처음엔 둘이 같이 빠졌다가 모든게 끝나면 혼자 힘으로 빠져 나와야 하는 사랑.

김연수는 여기서 또 다시 아주 정확한 포인트를 잡아낸다.

...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사랑이라는 고나계에서 혼자서 빠져나올 때마다 뭔가를 빼놓고 나온다는 점이다...

어쩌면 우리는 잃어가기 위해서, 잊혀지지 위해서, 잊기 위해서

"사랑"에 빠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제목처럼 "사랑이라니... OOO!"다.

누군가에게 이 단어가 환희일 수도, 징글징글함일 수도, 무덤덤한 타인의 감각일수도 있겠다.

뭐가 됐든 그게 이 모든게 다 "잊기" 위한 방법들이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도

어쩌면 적자생존의 원칙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령 "알츠하이머"의 경우 그 원칙이 무참히 깨지면서

현재와 미래의 시간은 다 잊혀지고 과거만이 생생해지는 건 아닐까?

과거가 전부인 삶.

 

사랑과 기억 중에 뭐가 더 아름다울까?

어쩌면 둘 다 아름답지 않을수도...

함께 빠지는 것도,

혼자 빠져나와야 하는 것도,

다 힘겹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