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10. 2. 10. 06:20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 허버트 마이어스, 리처드 거스트먼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맨 처음 책을 손을 잡게 되면 잡는 순간 느낌이 오는 책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오르한 파묵의 모든 책들이 그랬고(정말로 그의 모든 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알랭 드 보통, 주제 사라마구가 그랬습니다.

(솔직히 더 많이 있긴 한데. 뭐 하자는 플레이가 될까봐 그만 하렵니다...)

이 책 <크리에이티브 마인드>는 책 표지부터 저한테 말을 거는 느낌이 들었던 책입니다.(이런 순간엔 마치 내가 책으로 빙의 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면 믿으시겠어요?)

어쩐지 자꾸 저를 부르는 것 같아 단번에 집어 들었습니다.

사실 다른 책을 소개하려고 했는데 저의 생각을 급선회시킨 짜릿한 장본인 되시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지 무지 무지 무지 재미있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 역시 엄청난 창의력을 가진 디자이너로 세계 유수의 상들을 싹들이 한 우리 기준에서 생각하면 선택받은 극히 적은 소수인들입니다.

한마디로 사람 주눅 들게 하는 인간들이란 뜻이죠.

이 책에서 우린 그런 무시무시한 인간들을 자그만치 20명이나 만나야 합니다.

근데 매력적인 건 책장을 넘길수록 이 무시무시한 인간들이 마치 바로 내 옆에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겁니다.

처음엔 무지 부담스러웠죠.(이들이 좀 대단한 사람들이라 말이죠... 저 실제가 아님을 알면서도 당황하고 몸 둘 바를 몰라하고 있더랬습니다)

그런데 읽다보니까, 글쎄 제가 이 사람들한테 완전 집중하고 있는 겁니다. 더 이야기해달라고 떼를 쓰는 마음으로요.(이거 빙의 맞죠? 정신분열인가?)


요즘엔 사실 "창조"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실정이긴 합니다.

얼마나 창조할 게 많으면 정당에서도 창조를 이름으로 내세우며 목에 핏대를 세우시겠어요?(것도 영 창조적이지 않게시리... 모냥 빠지게....)

예술계는 물론이고 과학ㆍ기업ㆍ정치에 이르기까지 이 말을 쓰지 않으면 오히려 어색할 지경이기까지 하죠. 서점에만 나가봐도 창조, 창의력 관련 서적이 봇물처럼 쏟아져 아예 대형 서점엔 '창조력 계발'이라는 부스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을 정돕니다. 하지만 이런 책들은 대개 창조적인 인물들의 삶과 업적을 정말 그야말로 열심히 추적해 나열하는 수준이죠.

그러면서 평범한 우리 인간들 엄청 기운 빠지게 만드는 예기치 못한 역효과를 만드는 불상사까지 낳기도 하죠.


이 책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육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저널리스트, 기자, 연출가, 극작가, 작가, 경영인, 건축가, 영화감독, 작곡가, 디자이너, 유리조형가, 화가, 퍼스널컴퓨터 발명가, 박물관장, 조각가, 사진작가....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일을 즐긴다”는 아주 단순한 명제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고 싶다는 소망이었구요.

그들은 또한 말합니다.

창조적인 사람은 개방적이라고요, 그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던 거죠. 공동 작업이 얼마나 창조적일 수 있는지를, 그리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전체”가 창조되는 짜릿함을요.


요즘 제가 절실히 느끼고 있는 부분입니다.

공동 작업의 엄청난 “창조성”을요...

예전엔 혼자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혼자 잘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오히려 타인을 탓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실수를 습관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이 책 아주 못쓰겠습니다. 과거의 안 좋은 모습을 고백까지 하게 만드니...)

다행인 것은,

요즘은 함께 일하는 즐거움에 대해 깨달았다는 겁니다.(완전 기특한 버전...)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얻어지는 증대 효과도 전 정말 느끼고 있거든요.

이 책의 표현 데로 정말 짜릿한 흥분이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이 아무래도 이 책을 불렀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책에는 영혼이라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을 보면서 저는 짧은 <독서노트> 같을 걸 기록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 책은 제 노트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 그리고 문장 전체를 그대로 받아 적은 부분들도 참 많이 있습니다.

힘이 되는 구절들과 만나는 건 일종의 축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창조성”은 사람의 본성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있다고 합니다. 그걸 어떻게 발견하느냐는 누구도 뭐라고 이야기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단지 내가 나의 창조성을, 타인의 창조성을 꺾는 그런 사람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이 책의 소개된 “스티븐 홀”이라는 건축가는 말합니다.

“창조성은,

예술 활동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상상력은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핵심이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 살아있는 걸까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9. 8. 05:28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공선옥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작가 공선옥!

얼마전 그녀가 올해 7월에 제 24회 만해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설집 <나는 죽지 않겠다>, <명랑한 밤길>이 그 수장작이라고 하네요. 제가 그녀의 책으로 처음 읽었던 건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이라는 소설이었습니다. 두 여자의 삶이 어찌나 가슴 짠하던지 그만 덜컥 화가 나기도 했죠. 도대체 왜 나는 그녀의 글을 전적으로 이해하는가? 그리고 전적으로 의지하는가? 어느 날은 속이 상하기까지 했습니다.

1964년 전라남도 곡성 출생....

그녀의 말투가, 하다못해 그녀의 글 속에 나오는 투박한 사투리나 함지박만하게 쏟아내는 푸짐한 욕설들이 그토록 낯설지 않았던 건 “곡성”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네요. “전남 곡성군 삼기면....”으로 시작되는 저의 본적지. 그래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대사나 문체들 그리고 느낌들에서 근원적인 포근함과 따뜻함, 그리고 도망가고 싶은 욕구마저도 느끼게 된 거라는 걸 이제는 이해합니다.

“본적지”라는 이름의 고향!

어쩌면 누군가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단지 서류 속에만 존재하는 아버지의 땅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언젠가는 한번쯤 돌아보게 되는 그런 곳, 실질적이든 아니면 마음 안에서든 찾게 되는 부모의 땅, 그리고 내 생명의 시작이었던 땅.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로 살아보지 않은 제 본적지에 대한 희미한 동경에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 속에 도대체 뭐가 들어 있었던 걸까요?


이미 위로 딸을 셋이나 둔 집에 네 번째 딸이 태어납니다. 부아가 난 할아버지는 이름을 지어달라는 아들에 말에 한마디 합니다.

"니무랄 것! 암꺼나 허라고 혀!”

그래서 네 번째 딸의 이름은 “암꺼나 혀”의 “해금”이 되어 버렸습니다.

순금, 정금, 영금, 해금 그리고 마지막 5번째 딸 영미(“영미”라는 이름은 내리 다섯의 딸을 낳은 어미가 “금”자에 대해 갖는 마지막 반항이자 일종의 시위였던건 아닐지...)

딸 다섯의 넷째 딸이라니, 그 존재성마저도 너무나 희미한 “마해금” 그녀가 이 책의 서술자입니다. 그녀는 이제 스무 살 무렵을 살고 있는, 그리고 광주라는 대도시가 스무 살인 그녀 삶의 근원지죠.

처음 “광주”라는 지명을 봤을 때, 조심스러웠습니다. 그 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어쩐지 자신이 없을 것 같아서요.... 그러나 다행히 이 책은 그런 제 두려움을 살짝 피해갑니다. 그렇다고 아예 관계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해금은 광주민주화항쟁 때 공중에서 날아오는 유탄에 친구 경애를 잃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그들 친구들에게 분명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가져오죠.

이제부터 우리는 5명의 여자들과 4명의 남자들. 아직 스무 살인 그들의 지나온 시간들을 정해진 순서 없이 마구잡이로 만나야 합니다.

경애의 갑작스런 죽음에 "세상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 않지?“라고 반문하며 방황하던 친구 수경은 끝내 저수지에 뛰어 듭니다.

느닷없이 남편이 데리고 들어온 두 번째 마누라를 피해 딸의 자취방으로 찾아든 할머니같은 승희 모친은 추위에 떨며 찾아온 딸의 친구 해금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줍니다.

꾸역꾸역 울음과 함께 밥을 넘기는 해금에게 그 어미는 말합니다.

"악아, 우지 마라! 사는 것은 죄가 아닌 게로 우지를 마라!“

그렇게 등을 다독여 주던 승희 어머니는 그 밤, 돌아오지 않는 딸을 내내 기다리며 차디찬 딸의 자취방에서 뇌출혈로 사망을 하고, 그 딸은 그 사실에 충격을 받아 친구들 곁을 떠나 헤매다 배부른 모습으로 어느 날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납니다.

승희에게 마음을 주고 있던 누군가는 방황으로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승희와 승희가 낳은 아들 승춘과 함께 따뜻하게 살고픈 꿈을 키워내고 있습니다.

잘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둔 친구 정신은 노동자가 되어 민중 해방의 길로 들어서고, 온 동네 자랑꺼리였던 서울대생 승규 또한 학생운동에 점점 더 깊게 참여하게 됩니다.

누군가 생각합니다.

“꼭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같아...”

그리고 도 누군가는 말합니다.

“아무리 죽을 맛이라지만 죽는 것 보단 낫잖아”


돈이 없다며 월급을 밀려온 사장은 젊은 여자를 끼고 관광호텔을 드나들고, 제 노동의 가치가 무시되고 짓밟히는 세상을 실제로 겪은 만영은 사장의 기름진 얼굴 위로 뜨겁고 기름진 고기 석쇠를 던져버립니다. 와이셔츠 공장에 취직을 한 해금은 상대보다 힘이 세다고, 더 많이 배웠다고, 더 많이 가졌다고, 더 우월하다고 믿는 자들이 부리는 오만과 횡포와 모욕과 폭력과 무례함을 이제 조금씩 경험하게 됩니다.

해금은 언제가 친구 정신이 한 말을 떠올립니다.

“그것들과 맞서기 위해선 우선은 그 오만과 횡포와 모욕과 폭력과 무례함을 견뎌내야 한다고. 모든 오만한 자들이, 모든 무뢰배들이 스스로 부끄러워할 때까지, 견디고 견뎌서, 그 견디는 힘으로 우리가 아름다워지자고. 왜냐하면 모든 추함은 모든 아름다움 앞에선 결국 무릎을 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 저 무뢰배의 오만이 횡행할 수 있는 이 야만의 구조, 이 동물적 상황을 나는 견뎌야만 한다고. 저항하기 위해 견딜 것, 아름다워지기 위해 지금은 견뎌야만 한다고....”

구로공단 여공들의 시위.

해금은 자신이 인간이기 위하여. 그리하여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인간의 시간 쪽으로 돌려놓기 위하여 운동장 한가운데로 달려 나갑니다.

유리를 밟아 피투성이에 퉁퉁 부은 발이 된 해금, 얼굴에 피멍이 든 정신은 승규가 붙잡혀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승규는 부모에게조차 알리지 못한 체 그대로 군대로 끌려가게 되죠.

보름이면 다가올 아들의 첫휴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승규 모친에게 전해지는 소식.

아들이 군대에서 머리에 총을 쏘고 자살했다는 청천벽력같은 사실.

어미는 내 자식이 그럴리라 없다며 통곡하고 또 통곡합니다.

그 시대, 모든 어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통곡은 아마도 그 어미의 모든 일생동안 결코 그치지 않고 이어지리라는 걸 한자리에 모인 친구들 모두 가슴으로 느낍니다.

그들은 생각합니다.

우리는 단지 혹독한 겨울을 견디어내고 있을 뿐이라고.

그들이 가장 예뻤던 때, 스무 살의 겨울 말입니다.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온다고 합니다.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구분되는 순간 말이죠. 그런 순간은, 예기치 않게 혹은 법칙처럼 결국은 누구에게나 오고야 만다고 합니다.

이 책,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바로 그 “이전”과 “이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불과 얼만 전에 우리는 “이전”과 “이후”가 구분되는 순간을 지나왔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광주”라는 지명에 그리고 그 때 그곳을 살아내고 지켜왔던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살아낸 “가장 예뻤던 때”에 말이죠.

빚을 진 자에겐 언제나 “의무”가 남습니다.

언젠가 그 빚을 제 힘으로 갚아야 하다는 실질적인 의무 이외에도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도덕적인 의무까지도요.

당신이 가장 예뻤던 때? 그때를 당신은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때를 지나왔다면, 혹은 아직 지나오지 않았다면 기억하십시오.

그 순간을 어떻게 살아냈느냐에 따라 당신의 빚이 조금은 감면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요.

모른 척 하고 싶다면 당신은 아마도 평생을 도덕적인 빚쟁이로 살아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치열하게, 당당하게, 그리고 절실하게

견디라고, 지키라고, 이겨내라고... 그리고 살아내라고

이 책 <내가 가장 예뻤던 때>가 말해주네요.

어쩌면 이 책은,

그러니까 “가장 예뻤던 때”를 살아온 그들이 내게 남겨준 화두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가장 예뻤던 때?”
내게는 그때가 과연 언제였을까요?


* 작가 공선옥의 이력이 참 눈물겹네요.
작가가 되기 전 그녀의 직업은 한달 동안 밤낮없이 일을 해야 손에 19만원을 쥘 수 있는 미싱사였다고 합니다. 우연히 동료가 응모해준 소설이 당선돼서 통장에 입금된 60만원의 거금을 보고 그녀는 무척 놀랐다고 하네요.

먼저, 40만원으로 방을 얻고 그 다음으로 밥상을 샀다는 그녀. 늘 밥상 없이 방바닥에 차려놓고 먹던 밥이 내내 서러웠던 거죠. 뜨거운 밥과 찬을 밥상 위에 차려놓고 아이들을 앉혀 놓고 그녀는 그제서야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야 살 길이 생겼다”고.....

말하자면, 그녀가 쓴 글들은 전부 생존과 결부된 처절한 사투였던 셈입니다.

밥상 위, 한 술 밥의 의미가 문득 처연하게 느껴집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 5. 23:01

주목받은 젊은 작가

김영하 - <빛의 제국> 
 

빛의 제국
 

김영하...

1968년생 작가로 재미있고, 특이한 소설을 발표해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파리에서도 작품들이 번역돼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입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오빠가 돌아왔다>, <검은꽃>, <빛의 제국>, <퀴즈쇼> (.... 제목들도 범상치 않은 느낌이지 않습니까? ^^)
제가 읽은 김영하의 소설들입니다.
열거한 책들 중에서 흥미롭지 않은 책은 단 한권도 없었답니다,


<빛의 제국>은 간단히 말하자면 남한에 내려와 오랜 시간 살아가고 있는 고정간첩에 관한 내용입니다.
아예 작가는 시작부터 주인공이 간첩이라는 사실을 드러내 놓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처음부터 밝혀놓고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나갈 지 궁금증 반, 의구심 반이 들기도 했구요.
21세기에 간첩 이야기라니....
어쩌면 뻔한 내용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고, 혹은 사상과 관련된 조금은 고리타분한 내용이 아닐지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이념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어버린 한 남자의 그야말로 이야기 같은 시간들의 연속입니다.
이미 고정선이 끊겨져 북한에서도 잊혀 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한 남자에게 갑자기 복귀하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그것도 스펨 메일 형태로... 참 기막히지 않습니까?)


주인공의 직업은 자본주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산업, 그것도 수입영화 배급사의 사장입니다.
늘 야한 동영상에 미쳐 있는 위성곤이란 직원을 둔 사장님이시죠.(별 활약도 없는 이 직원에게도 주목해주세요--->왤까요~~~~?)
그의 아내 장마리는 수입 자동차 딜러고 주인공과의 사이에서의 딸 현미는 벌써 중학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연하라고 하기에는 심하게 민망한 21살 대학생 애인까지 두고 있는 그야말로 대단한 여성이기도 하죠.
물론 가족들은 그가 고정간첩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 남자의 삶과 이름은 두 개로 분리 되어 있고 그리고 정확히 각각의 삶의 절반씩을 각각 완전히 다른 이념의 세계 속에서 완벽하게 분리하여 살아 왔습니다.
평양외국어대 영어과를 나온 김성훈이라는 북한 엘리트 청년은 비밀스럽고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21년의 북한의 생을 뒤로 하고 남한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21년은 김기영이라는 이름으로 완벽히 위조된 인생을 이곳 대한민국에서 완벽하게 수행하며 살고 있었죠,
아마도 이쯤 되면 본인의 정체성도 심한 혼돈과 괴리를 겪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주위 여건들의 이런 복잡성에 복잡성을 더해줍니다.

세상에 완벽한 비밀이 존재할까요?
나를 지우는 작업이 정말 가능하고 할 수 있는 일일까요?
혹시 지금의 나 역시도 또 다른 나를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가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그 속에 분리된 삶을 옮겨다 놓는다면.....
그리고 다시 그 삶을 또 옮겨 놓으라고 한다면....

간첩이 되는 첫 번째 조건이 뭔지 혹시 아세요? (^^;;)
그건 매력을 없애고 따분해지라는 겁니다.
분명 그 곳에 있었는데,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맞긴 하는데 일부러 떠올리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얼굴이 희미해지는 사람...
혹시 떠오르는 사람이 있으세요?
어떠세요?
그 사람 얼굴이 기억나시나요?
기억나지 않는다면.... 혹시..... (^^)

보너스 팁 하나!
그의  최신작 <퀴즈쇼>를 뮤지컬로 만든다고 하네요.
얼마전까지 간간히 소식이 들렸는데 지금은 좀 잠잠한 것 같기도 하고...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 뭐 딱히 불가능하지도 않겠지만....)
<퀴즈쇼>, 요 책도 정말 물건이라는 사실을 추가적으로 알려드리며 싶어 사족을 달았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26. 06:03

<도플갱어> - 주제 사라마구


 
 


 

 

 

 

 

 

 

 

 

주제 사라마구는 1922년 포르투칼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생존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1998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현존하는 몇 안 되는 대가중에 한 분이시죠.

저는 <눈 먼 자들의 도시>란 책을 통해 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눈 뜬 자들이 도시>까지 열심히 찾아 읽는 얼치기 팬이 된 상태입니다.

얼마전엔 <동굴>까지 찾아 읽었고 지금은 새로운 책을 읽을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

도플갱어는 주제 사라마구가 84세의 나이로 쓴 소설로 작가를 몰랐다면 아마 젊은 사람이 썼다고 생각할 만큼 신선하고 특별합니다..

(우리 병원 도서관에 구비되어 있답니다 ^^)

* 참고로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작 3권(눈 먼 자들의 도시, 도플갱어, 동굴)을 인간에 대한 3부작이라고 합니다


도플갱어...

독일어로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라는 뜻으로 더블(분신 복제)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도플갱어는 '또 하나의 자신'을 만나는 현상인데 현대 정신의학 용어로는 오토스카파(자기상 환시)라고 하네요.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존재가(본인도 모르게 헤어진 쌍둥이 이야기 절대 아닙니다) 어딘가에 살고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인구 500만의 대도시에 거주하는 중학교 역사교사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는 어느 날, 동료교사의 추천으로 비디오 한 편을 빌려보다 자신의 5년 전 모습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영화에 나오는 걸 발견하게 되고, 하나하나 그 사람을 찾아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드디어 서로를 대면하게 되죠,

팔뚝의 점, 후천적으로 생긴 흉터까지도 꼭 닮은 외모, 거기에다 목소리와 지문까지 똑같은 두 사람의 존재는 서로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동이자 공포일 수 있습니다.

이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두 사람의 싸움은 각자의 배우자와 연인들, 그리고 가족들까지도 얽히게 됩니다.

이 둘은 결국 서로의 자리를 바꾸게 되고(그 상황이라는 게... 서로에 대한 책망, 분노, 그리고 어쩌면 조금은 끔찍한 쾌락까지도 포함된) 그 상황에서 한 명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자...

세상엔 이 둘이 서로 바뀐 사실을 아무도 모릅니다.(나중에 어머니가 알게 되긴 하지만 그 사실 자체가 비극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까요?

산 자가 죽은 자로 행세하며 여생을 마쳐야 하는 상황...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은 아무렇지 않은 듯, 그냥 스쳐지나가듯 인간의 잔인함과 섬뜩함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섬뜩함 뒤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생각과 과거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도 결코 강요된 교훈이 아닌 파고 드는 느낌으로...

혹 이 책을 읽고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 보고 싶은 분들은...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적극 권해드립니다.

어떤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단 한 명만 빼고 이유도 없이 눈이 멀어 갑니다. 다수의 눈 먼 사람들의 공포와 단 한명의 눈 뜬 사람의 공포로 전개되는 이야기...

그 속에도 인간의 섬뜩함이 숨어 있습니다.

 

도플갱어 현상은 현재는 신비주의의 현상으로까지 확대 이해되고 있습니다.

미스터리의 하나로 간주되기도 하구요.

자신의 분신, 또 다른 도플갱어를 만나게 되는 사람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고도 하고, 그 현상에 대한 많은 사례가 알려지고 있기도 합니다.

혹 도플갱어를 만나게 되면 말을 걸면 안 된다고 하네요.

어쩌면  살아남을 수도 있을지 모르니까요...(약간 공포스럽죠?)

인간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데자뷰 현상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면....

memento mori.....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말를 떠 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Remember! You must die!!!"


주제 사라마구...

제가 이곳에 꼭 소개하고 싶었던 작가 중 한 분입니다.....

이 분의 책을 읽을 때의 주의 사항 하나!

문단이라는 게 없습니다.

첫장부터 마지막 까지 빽빽하고 알찬 책을(?) 만나실 수 있답니다.

그래서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같은 줄을 몇 번이고 계속 반복해서 읽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는....
어쩐지 제자리 걸음을 걷는 것도 같고, 같은 곳을 뱅뱅 돌고 있는 그런 느낌...

인간에 대한 혼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의도하는 의식적인 문단 형태는 아니였을까  추측성 판단을 하게 만드는 묘한 책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