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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25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 박완서
읽고 끄적 끄적...2010. 9. 25. 06:12
소설 <친절한 복희씨> 이후 4년만에 출판된 박완서의 산문집.
솔직히 말하면 나는 산문집은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자면,
나는 작가 박완서를 무지 좋아한다.
서점에 가면 박완서의 책이 모여있는 코너를 들러
꼭 한번쯤은 내 손으로 스다듬어 보게 되는 그런 작가다.
그래서일지도 모르지만 박완서의 산문집을 앞에 두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손에 잡는다.
당신의 산문집은 따뜻하다.
정성이 가득 담긴 방금 한 따뜻한 집밥을 한 숟가락 가득 퍼서 입 안에 넣는 것 같다.
달달하고 그리고 편안하다.
집밥이 주는 포만감은 오래오래 지치고 힘들었던 고약한 허기를 냉큼 달랜다.



1부 - 내 생애의 밑줄
2부 - 책들의 오솔길
3부 - 그리움을 위하여


이 글들을 쓰면서 작가 박완서는 또 한 번 자신의 길을 반추했으리라.
전쟁의 공포도 혈육의 죽음도 겪어보지 못한 내게도
그녀의 일생은 안스럽고 안타깝다.
그래서 그녀는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녀의 글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내내 보듬어 안는 게 아닐까?

......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주었다 ......

하나의 생명의 소멸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우주의 소멸과 마찬가지란다.
80의 생애동안 수많은 우주의 소멸을 지켜봤을 박완서 선생.
이기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다행스럽다.
그 모든 소멸로부터 내가 위로받고 있으니까...



특히 2부와 3부의 내용들이 진솔하고 담백하다.
당신이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인 2부는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으면서 실제로 혹독한 추위를 느꼈다는 부분이 나온다.
자신의 과거사와 묘하게 일치되는 추위는 결국 박완서의 몸을 아프게 한다.
책은 정말로 그럴 수 있다.
책으로 살갗을 도려내는 추위를 실제처럼 체감할 수도 있고
책으로 늙은 몸에 젊은 피를 수혈받아 영생을 꿈꿀 수도 있다.
확실히 나는 그 사실을 전적으로 믿는다.

3부의 글들.
김수환 추기경 선종, 문학의 대모 박경리 선생의 추모글,
그리고 나목의 화가 박수근에 관한 이야기.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막상 활자로 인쇄된 글로 보니
부모잃은 아이의 막막함이 더 많이 느껴진다.
80의 나이로도 그럴 수가 있구나...
진심으로 놀랐고 당신의 마음이 부럽기까지 하다.

기억이 많은 사람은.
또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움이 절망처럼 밀려온다.
훔치고 싶다... 훔치고 싶다...
당신의 기억 모두를...
정말로 그럴 수만 있다면...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