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순덕'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1.19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찍고 끄적 끄적...2010. 1. 19. 05:54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덕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에게도 젊음이 있었다는 걸 쉽게 잊습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단 한 번이라도...
여자였던 적도, 청춘이었던 적도,
친구와 함께 깔깔 웃는 꿈 많은 소녀였던 적도
결코 없었던 것처럼
처음부터 엄마는
 그저 엄마였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외할머니의 영면 소식을 들으며
엄마... 엄마... 를
낮게 부르며 우는 내 엄마를 보며
나는 어이없게도 생경한 그 모습이 낮설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엄마가 엄마를 부를 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고서는
문득 두렵고 서러웠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엄마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고
맘 속에 정의를 내리고 있었던걸까요?
사실은... 사실은...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사람이었는데...
엄마의 오래된 청춘을 들여다보며
나는 감히 목조차 매이지 못합니다.
엄마...
고운 소녀였던 엄마는
하필이면 이 모진 딸의 엄마가 되어
아픈 시간들 내내 가슴 치며 감내하고 있을까요?
엄마라는 존재 앞에
나는 고개조차 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당신 때문에...
못난 내가 아직 딸일 수 있음이
한없이 죄스러워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엄마...
다음 생을 기약할 수만 있다면
나는 꼭 당신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