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6. 11. 08:26

<블랙메리포핀스>

 

일시 : 2012.05.08. ~ 2012.07.28.

장소 : 대학로 아트원 씨어터 1관

대본, 연출, 작곡 : 서윤미

안무 : 안영준

프로듀서 : 김수로

제작 : 아시아브릿즈컨텐츠

출연 : 정상윤, 장현덕 (한스) / 강하늘, 전성우 (헤르만)

        임강희, 송상은, 정운선 (안나)

        김대현, 윤나무 (요나스)/ 추정화, 태국희 (메리 슈미트)

 

<블랙메리포핀스> 두번째 관람.

개인적으로 <풍월주>보다 이 작품이 스토리도 노래도 구성도 짱짱하고 배우들의 연기도 더 좋다.

 

첫번째 관람 때는 장현덕 한스에 송상은 안나였고 이번엔 정상윤 한스, 임강희 안나로 관람했다.

그래서 강하늘, 김대현, 추정화의 연기는 현재까지 확인하지 못했다.

예전에는 캐스팅 보드가 있는 지도 몰랐는데 이번에 보고 혼자 깜놀했다.

메리 슈미츠에 태국희, 추정화말고 제 3의 배우가 뒤늦게 캐스팅 된 줄 알았다. 

누구세요???

너무 심하게 포샾처리를 해서 배우 태국희에 태국희 아닌 사람이 들어있다.

그리고 그라첸 슈워츠 박사는 캐스팅 보드에 왜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니, 뭐 별 중요한 건 아니고... 캐스팅 보드 보다가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정상윤 한스.

역시 정상윤은 이런 배역에 잘 어울린다.

조금 시니컬하고 찌질하지만,

명철하고 정확하게 계획적하는 지적인 인물.

그러다가 한없이 무너져(소위 한 방에 훅 가는) 측은함과 연민을 무더기로 안기는 그런 인물.

그의 한스는 예민하고 섬세했으며, 주도적이기고 단단했다.

그리고 동시에 비겁하고 유약했다.

1열 관람이라 정사윤의 표정과 여백을 최대한 볼 수 있었다는 건 큰 행운이었다.

확실히 <풍월주>의 열보다 <블랙메리포핀스>의 한스가 그에게 더 적격이다.

(<쓰릴미>의 "나"를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센 척하는 장현덕의 한스와는 확연히 다른 표현이고 해석이었다.

기억 저편의 트라우마를 알코올을 의존해 잊어보려는 한스의 어지럽게 파괴된 내면을 배우 정상윤은

썩 잘 표현하고 전달했다. 

특히 마지막 대사 표현은 압권이다.

울먹이면서 오랜 시간 여백을 두고 각인하듯 말하던 마지막 대사.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불행과 기꺼이 동행하겠습니다!"

 

임강희 안나.

송상은 안나가 너무나 인상적이라 처음엔 좀 당황했다.

뭐랄까?

송상은은 안나는 순수하고 여려보였는데

임강희 안나는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가 보여주는 노쇠함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이야...

마지막 Silent Wednesday 장면에서 임강희 안나는 압도적이고 폭압적이었다.

마치 엄청난 사건을 실제로 겪고 있는 사람같다.

안나는 홀로 고요하게 폭발하고 있었다.

그대로 무대로 뛰쳐나가 그녀를 부둥켜안고 숨겨주고 싶을만큼 강렬한 두려움과 공포와의 대면이었다.

이야기의 공포가 그대로 내게 전해져 섬득하고 떨렸다.

초점없는 무너지던 안나의 눈동자는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기로 작정하기에 충분한 공포고 아픔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아마도 안나를 맡은 배우는 탈진상태가 되지 않을까?)

첫번째 관람때 신선한 충격이었던 전성우 헤르만은 역시나 이번에도 인상적이었고

윤나무 요나스는 첫번째 관람에서는 미처 못 봤었는데 표정이 정말 좋았다.

확실히 1열 관람은 여러가지로  더 깊은 이해와 목격을 가능케 한다.

특히 이 작품은 가능하면 앞자리에서

배우들의 표정과 미세한 동작 하나하나까지 보면 더 깊고 집요하게 몰입할 수 있다.

휴대용 술병을 든 한스의 떨리는 손과 입매,

수첩을 넘기는 헤르만의 거칠고 간절한 손.

혼돈된 기억을 되살리며 두려움에 떨던 요나스의 손.

그리고 찢기고 폐허가 된 안나의 상처받은 손동작.

무언가를 끝없이 밀어내고 밀어내고 또 밀어내던 그 손의 막막함.

이 작품에서 "손(hand)"은 그러니가 묵시로적인 "언어"의 다른 형태다.

결코 입으로 말 할 수 없는 엄청난 상황을 고발하고 고백하는 수단으로 선택된 손.

손의 언어와 그림자 놀이.

이 둘은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라고 할 수 있겠다.

 

첫번째 관람에서는

단지 오랫만에 좋은 창작 뮤지컬이 만들어졌다며 감탄했었는데

두번째 관람에서는 인물들에 순간순간 동화가 돼 보면서 많이 힘들었다.

(배우의 집중과 몰입도 엄청나지만 나의 집중과 몰입도 엄청나다) 

그렇다면 세번째 관람에서는 나는 또 어떤 걸 보고, 느끼게 될까?

<블랙메리포핀스>

참 많은 걸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 더 궁금하고 끌린다.

그래서 아직까지 내겐 "비밀의 화원" 같은 신비로운 작품이다.

7월 1일,

예정된 세 번째 관람.

그 새로운 대면을 기다리며...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0. 4. 06:08


나무 액터스와 악어 컴퍼니가 기획한 "무대가 좋다" 시리즈 2탄 <클로져>
이미 대학로에서 장기 공연을 여러번 했던 작품이라 신선할 것까진 없다.
단지 문근영이라는 국민 여동생이 스트립퍼라는 파격적인 성인 연기로 연극에 데뷔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엄청난 티켓전쟁을 만들어낸 문제작 되시겠다.
엄기준, 문근영 출연분은 수초만에 매진이 돼서
헛손질 몇 번에 황량한 자리만을 확인해야만 했다.
솔직히 많이 놀라긴 했다.
조승우의 <지킬 앤 하이드>를 보는 듯 했다.
(조승우도 10월이면 제대라는데 다들 서로 잡으려고 혈안이 되겠구나 싶다.)
워낙에 엄기준을 제외하고 생각했던지라
(이 사람 나랑 참 안 맞는다)
문근영, 이재호 춮연분은 다행스럽게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문근영 앨리스, 이재호 댄, 진경 안나, 배성우 래리.
내가 선택한 casting.
솔직히 말하면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긴 했었다.
내가 진짜 보고 싶었던 건 최광일 래리였지만
배성우도 워낙에 <Closer>에서 래리 역을 오래 했던 사람이라
뭐 나쁘진 않더라.
(정말 오래전 이야기긴 한데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란 뮤지컬에서 그는 참 안 어울렸었다...)
안나 역의 진경이야 워낙 연기를 잘하는 여배우라 선택의 고민이 전혀 없었고
(여전히 나는 연극 <이>의 녹수에는 그녀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신인 이재호의 댄도 나쁘지는 않았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한 뉴페이스라는데
첫 작품에서 그야말로 기라성같은 배우들과 만난 셈이다.
행운이면서 불운이기도 했겠다.
꼭 그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나만 잘하면 돼!"
표정연기가 많이 어색하고 다소 어린애스러운 액팅 부분이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목소리 톤이 맘에 든다.
목소리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탈렌트 정찬의 이미지와 많이 겹쳐진다.
더불어 TV 연기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혼자 해봤다 



개인적으론 이런 노골적인 대사들이 오가는 연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겠지만
어쩐지 앨리스라는 역이 문근영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불량 청소년, 엄마 화장을 몰래 하고 나온 어설픈 문제아 쯤으로만 여겨지니
아무래도 국민 여동생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력하지 않나 싶다.
따지고 보면 문근영이라는 배우의 나이가  이제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귀여운 여고생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으니 말이다.
아마도 문근영에게도 국민 여동생의 이미지가 오래 간다면
배우로서는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영리한 배우니까 자신의 이미지를 잘 만들어 가겠지만 노파심에 한 마디 ^^
물론 연극 <클로져>에서 문근영의 연기가 나빴다는 뜻은 아니다.
순간적인 몰입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도 좋았고 딕션 또한 정확했다.
표정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좀 거슬리긴 했지만.



사랑의 첫번째 조건은 타협이란다.
처음 본 낯선 사람에게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
그 사람을 곁에 두고 또 다른 낯선 사람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거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앨리스는 안나에게 이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유혹에 넘어간거야" 라고...
사랑은 타협이기도 하지만
무언의 룰을 지키지 않을 때에는 대가를 치뤄야 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랑에 필요한 두번째 조건은 어쩌면 "정의"가 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가,
"그 사람에겐 내가 필요하지 않아서" 라고 말하는 댄도
그런 댄을 "집요하게, 이해를 못 할 정도로" 사랑하는 앨리스도
그래서 모두 다 낯선 사람들일 뿐이다.
앨리스는 안나에게 묻는다
"왜 그랬어요?"
그리고 래리는 안나에게 묻는다.
"왜 하필 그 자식이야?"
그리고 극의 마지막엔 안나의 입을 통해 또 하나의 질문이 던져진다.
"우린 왜 그랬을까?"



연극과 영화의 느낌은 당연히 다르겠지만
이 작품은 특히나 차이가 난다.
연극이 훨씬 더 가볍다고나 할까?
문근영이 아니었다면 솔직히 챙겨보지 않았을 작품이다.
참 많이 대학로에 올려졌는데도 매번 초지일관 외면했었는데...

혹시 한 눈에 반하는 낯선 사람과의 사랑을 찾고 있는가?
그렇다면 타협과 정의의 룰을 반드시 지킬 것을 조언한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를 무시할 때 그 결과는
연극에서처럼 누구에게도 해피하지 않기에...
선택했다면,
타협하라!
그리고 반드시 정의롭게 행동하라!

내게 연극 <클로져>는 두개의 화두를 남겼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1. 4. 05:45
 <노서아 가비> - 김탁환 

 
노서아 가비: 사랑보다 지독하다


유난히 추운 날씨와 어머어마한 폭설이 계속 이어지고 있네요.

뭐가 됐든 따뜻한 OO거리가 절실해지는 그런 날씨죠.

따뜻한 방에서 따뜻한 먹거리를 놓고 따뜻한 이야기를 듣거나 아니라면 차선책으로 따뜻한 책을 읽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 그다지 신빙성은 없으나 왠지 그럴싸하게 들리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죠.

몇 년 전 베스트셀러가 됐던 파리의 조선 궁녀 이야기 <리심>을 기억하시나요?

오늘은 신비로운 조선의 궁녀 리심을 이야기 속에서 재창조했던 팩션소설가 김탁환의 따뜻하고 재미난 책 <노서아 가비>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진하거나 혹은 달콤한 한 잔의 커피를 준비한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야기 디자이너 김탁환, 그가 커피 디자이너인 조선 최초의 여자 바리스타를 <노서아 가비>에서 창조해냈습니다.

잠깐 소설가 김탁환에 대해 소개하자면 직장인처럼, 심지어는 고시공부하듯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사람으로 유명하죠.

매일 무슨 일이 있어도 원고지 50매 분량의 글을 그것도 꼭 아침에 쓰기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소설은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쓰는 것이라고 종종 말하기도 하죠. 스스로 소설 노동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10년 동안 40여권의 책을 쓴 작가 김탁환!

그는 글씨기도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생일대의 대작을 꿈꾸며 열심히 숫돌에 칼날을 가는 게 아니라면 다작을 하는 게 소설가로서의 본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작의 소설 노동자 김탁환의 글들은 거기다 재미까지 상당합니다. 박진감도 넘치고 재기발랄하고 무엇보다도 상상력이 풍부하죠.

그야말로 “이야기꾼”입니다.

그런 그가 <노서아 가비>에서는 경쾌한 여자 사기꾼을 등장시켜 유괘 상쾌 통괘한 사기극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노서아 가비>의 시작은 그러니까 황현의 <매천야록>에 있는 기록에서부터입니다.

고종황제의 아관파천 시절 엄청난 부와 권력을 움켜쥐고 있다가(그렇다면 그가 어느 쪽 사람인지 감은 잡히시겠죠?) 몰락한, 그 몰락을 견디지 못해 실제로 왕이 마시는 노서아 가비에 치사량의 아편을 넣은 김홍륙이란 사내에 대한 기록.

이 실제 사건이 소설 <노서아 가비>가 태어나게 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죠.

실제로 고종황제는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커피(노서아 가비)를 처음 접하게 됐고 그 이후로 엄청난 커피 마니아가 됐다고 합니다. 그 덕에 불면의 시간들을 견뎌내야 했지만 사실 그 당시에 고종에게 숙면의 희망은 아무래도 요원한 일이긴 했을 겁니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낭인의 야만의 칼날을 피해 제 나라에서 이국의 공사관에 몸을 의탁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고종, 그 처지를 생각하면 커피로 인해 불면이 됐노라 말해야 그나마 덜 비참하지 않았을까 혼자 처량한 상상마저도 하게 됩니다.

고종의 러시아 공사관 피접 시절 그가 마실 러시아 커피를 내리던 여성 바리스타 따냐!

역관의 집안에서 태어나 러시아어와 전각(篆刻) 기술에 능했던 따냐(최월향=안나).

그녀 나이 19세, 그녀의 가족은 청나라 연행길 수행 역관이었던 아비가 천자의 하사품을 가로채 달아나다 불의의 죽음을 당했다는 전갈을 듣습니다.

외동딸이 노비가 되는 걸 막기 위해 그 어미는 청나라로 딸을 피신시키죠.

이제부터 최역관의 딸 최월향이 따냐로서의 삶이 시작됩니다.

혹한의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생존 방법은 “사기”였습니다.

조선인 사내 이반(=김역관=김종식=정도령)과 함께 유럽의 귀족들에게 러시아 숲을 팔아치우는 사기로 돈을 벌던 따냐는 어느 날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황제 니꼴라이 2세의 대관식에 통역관으로 위장해 참석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조선 사신들(민영환)이 러시아 귀족들에게 치욕을 당하는 걸 모면하게 해 주죠.

어쨌든 그게 인연이 되어 조선으로 되돌아온 그들은 한 명은 역관으로, 한 명은 바리스타로 러시아 공사관, 고종의 곁에 들어가게 됩니다.


혹시 “사기꾼의 철칙”을 아시나요?

“...... 사기꾼은 진실해서는 아니 되고 정직해서는 아니 되며 일이 끝난 후 같은 곳에 머물러서도 아니 된다. 쓸모가 없으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버려야 한다. 이것이 항상 바람처럼 가볍게 움직여야 하는 사기꾼들의 철칙이다 ......”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따냐는 이반에게서 “국상”이라는 두 글자를 들었을 때, 이미 이반과 자신의 게임이 시작된 것을 알게 됩니다. 따냐는 뱃속에 이반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하더라도 쓸모가 없으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버려야 하는 것이 사기꾼의 삶이기에 고종 황제의 독살함으로써 조선 전체를 러시아에 팔아넘기려고 했던 이반의 마지막 대박 계획을 수포로 만들어 버리죠.

따냐의 이런 행동은 아비를 죽게 한 이반에 대한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도, 고종과 조선이라는 조국을 위한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자신 역시도 어쩔 수 없는 사기꾼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죠.

여러 가지 경우의 수 중에서 그 어느 인정에도 기울지 않고 정확히 사기꾼의 논리에 따르는 것, 그것이 거대한 협잡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기꾼의 자세라며 그녀는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아이는 아이고 사기는 사기죠."


고종은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경웅궁으로 환궁을 하게 되고 따냐에게 계속 자신의 커피를 준비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또 유쾌하게 고종의 제안을 거절하죠.(참 쿨하기도 하시지!!)

따냐를 향한 사랑만은 진심이었노라 말하는 이반은 결국 수레에 사지가 묶여 찢기는 거열형을 당하게 되고 그렇게 조선인 최초 여자 바리스타 따냐는 다시 조선을 떠납니다.

러시아를 거쳐 뉴욕에 정착한 따냐는 “따냐의 문학까페”를 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어쩐지 전 이 부분에서 혼자 유쾌하게 웃고 말았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땅, 그 광활한 러시아를 무대로 유럽 귀족들에게 30여개의 숲을 팔아치웠던 은여우 따냐가 이제야 최고경지인 무림고수들만의 사기의 세계로 발을 들어놓은 것 같아서 말이죠.

모든 문학은 일종의 “사기 행각”과 다름이 없기에...

새로운 세상에서 펼쳐질 조선 바리스타 따냐의 뉴욕 사기극이 이제 막 시작될 것 같아 왠지  어설픈 상상력을 동원하게 됩니다.

“책”이란 깊고 깊은 타짜의 세계, 그 세계가 매번 제게 중독과 금단현상을 반복하게 만드니 아무래도 참 고약하긴 합니다.

그래도 <노사아 가비>를 읽는 동안은 전적으로 유쾌하고 즐거웠노라 고백할 수밖에는 없네요.

어떠세요?

희대의 개화기 사기극 한 편!

유쾌 상쾌 통쾌하게 시작하는 한 해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따뜻하고 달콤한 커피 한 모금을 입 안에 담고, 한 손에는 진하고 독한 러시아 커피(노서아 커피) 한 잔을 펼쳐보는 풍미.

이제 두 향기를 혼합시키는 바리스타의 마지막 브랜딩 작업은 오롯이 당신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3. 1. 22:45
 <쌍둥이별> - 조디 피콜트


 쌍둥이별


자, 이제 상상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고 절실하게...

당신은 여자고, 엄마고 그리고 전직 변호사였습니다.

소방관인 남편과 개구쟁이 아들, 인형같은 딸을 가진 당신은 일보다 가정이 더 소중하기에 변호사를 미련 없이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어 있죠(그리고 그 결정에 결코 후회한 적 없이 살고 있습니다)

딸이 두 살이 되던 어느 날,

멍이 든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간 당신은 믿어지지 않는 말을 듣게 되죠.

당신의 사랑스런 딸이 전골수구백혈병이라는 희귀 혈액암에 걸렸다는 사실을요. 이제 막 두 살이 된 당신의 딸에게 지금 의사는 5년여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합니다.

자, 이제 당신은 무얼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야기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어쩌면 드라마에 이에 “또 백혈병” 타령이냐고 이마를 찌푸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책은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 엄청난 사실을 품고 있습니다.

현재의 생명과학의 성과와 그 진실의 이면에 대한 고발이기도하죠.

과거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현재의 의료과학과 그리고 인간 생명 윤리에 대한 권리가 지금 저울의 양 끝에 서있습니다.

......유전자 조작에 의한 인간 복제......

엄마는 딸을 살리기 위해 전문의를 찾아가 완벽한 유전자 일치자가 될 배아(기증자)를 뽑아 임신을 합니다.

드디어 가족의 세 번째 아이가 태어나죠.

여자(엄마)는 스스로 고백합니다.

“내가 이 앨 계획한 건 이 아이의 언니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야”라고...

이제 이 목적에 합당한 딸, 안나의 삶이 시작됩니다.

태어나자마자 재대혈을 시작으로 언니 케이트가 재발했을 때, 다섯 살 어린 안나는 림프구를 세 번이나 뽑아 기증해야 했습니다. 림프구가 소용이 없어지면 이식을 위해 골수를 뽑아야 했고, 케이트가 감염이 됐을 땐 과립구를 기증해야 했으며, 또 다시 재발했을 땐 말초혈액 줄기세포를 기증해야 했습니다.

몇년간 호전의 기미도 보였지만 가족의 바람과는 달리 케이트의 몸 기관들이 하나하나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이제 13살이 된 안나는 언니에게 신장을 기증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안나는 말합니다.

“언니에게 기증할 때마다 난 아파도 참아야했어. 몸에 주사를 꽂은 채 골수가 뽑히는 걸 그저 바라만 봐야 했지. 멍이 들고 뼈가 욱신거려도 어쩔 수 없었어. 내 몸속 줄기세포를 더 많이 발화시키는 주사를 맞을 때도 입 다물고 있어야 했지...... 난 기니피그가 되는 게 지긋지긋해. 내 기분이 어떤지 아무도 묻지 않는 게 지긋지긋해...”

안나는 급기야 부모를 상대로 의료 해방 청구소송을 하게 됩니다. 자기 몸의 권리를 위해 부모를 고소하게 된거죠.

상대편 변호사는 엄마!...

........이쯤 되면 이 가족....

해체를 넘어서 파괴가 되어 간다고 생각되시겠죠!

하지만 만약 당신이라면,

이 상황 속의 엄마가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


이야기는 한 단락씩 서로 다른 화자에 의해 서술되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 안나, 케이트, 제시(아들), 변호사, 법정후견인...

그래서 어쩌면 이 모든 사람들의 말에 다 공감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읽을수록 나도 모르게 화가 났습니다.

아무리 아픈 아이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해도 자신이 낳은 또 다른 아이에게(철저한 계획으로 만들어진 자식이라 해도) 무조건적이고 계속적인 희생을 요구해도 되는 걸까?

자식을 위한 최선이란 명목으로 부모가 하는 결정이 자식들 중 한 아이만 위한 일이라면 그게 정말 옳은 결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엄마에게 저 역시도 단단히 화가 났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돌덩이 밑에 깔린 희생자 안나가 너무 안타까워 가슴이 답답했던 건지도...

그러나 책을 읽어갈수록,

엄마를 더 이상 비난하지 못하게 되는 나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엄마의 선택과 결정이 옳지 않다고 말하기가 점점 힘겨워 집니다.

그리고 혼돈에 빠지게 되죠.

정말 뭐가 옳은 거고, 누가 정당한지가....


누군가는 고작 13살 아이가 어떻게 변호사를 만나 소송을 걸 수 있느냐며 아이에 대한 “조숙”에 대해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속의 안나라면 그럴 수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안나는 누구보다도 언니 케이트를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언니의 치료로 인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지 못하는 안나에게 언니는 가족이면서 동시에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안나가 어떻게 언니에게 “이제 그만 하겠다!!!”고 외칠 수 있었을까요?

여러 차례 주저하기도, 후회하기도 하면서도 안나는 결코 그 생각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고백하죠.

“내 속에는 언제나 언니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내가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자유롭기를 바라는 무서운 나도 있다. 나는 언니가 살아 있기를 원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언니에게서 헤어나기를 원한다. 언니는 어른이 되지 못한다 해도 나는 어른이 되어 살고 싶다”

그런 이유로 언니의 죽음은 안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이자, 또한 가장 좋은 일이 되기도 하죠.

이런 말을 듣는다면 이제 안나가 섬뜩하게 느껴질 차롄가요?

어린 13살 안나가 이런 말을 하면서까지 소송을 계속 이끌어 나가는 이유는 바로 다름 아닌 “언니” 케이트의 소망이 그 원동력입니다.

케이트는 안나에게 말합니다.

“더 이상 괴물로 살고 싶지 않아, 이제 그만 가고 싶어...”

그리고 점점 망가져 가는 신장으로 인해 중환자실에서 누워 있는 케이트를 몰래 찾아간 안나는 언니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고맙다!”고...

(울컥, 안나와 케이트 때문에 마음이 아립니다...)


“쌍둥이별”

밤하늘을 보면 다른 별들보다 유독 더 밝아 보이는 별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 별들이 바로 쌍둥이별이라네요. 두 별은 서로의 궤도를 도는데, 때로는 한 바퀴를 도는 데 거의 백 년이 걸리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이 두 별은 엄청난 중력을 일으켜 다른 것들이 들어올 여지를 주지 않는다고 하네요.

마치 몸의 일부를 공유하는 샴쌍둥이처럼...

안나와 케이트.

누가 남아 세상을 살아가든 어쩐지 그 둘을 분리해 낸다는 건 이제 영원히 불가능할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남아 세상을 살게 될까요?


* 이 이야기도 역시나 지금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고 합니다.

<노트북>의 닉 카사베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주인공 엄마 역은 카메론 디아즈. 안나역엔 애비게일 브레슬린, 그리고 안나의 변호사론 알렉 볼드윈이 나온다고 하네요.

제목은 원작 그대로 <My sister's keeper>로, 6월 미국 개봉 예정작입니다.

아무래도 꼭 챙겨보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