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8. 6. 19. 09:01

 

<킬롤로지>

 

일시 : 2018.04.26. ~ 2018.07.22.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극본 : 게리 오웬 (Gary Owen)

번역 : 유은주

연출 : 박선희

출연 : 김수현, 이석준 (알란) / 김승대, 이율 (폴) / 장율, 이주승 (데이비)

제작 : (주)연극열전

 

Killology

심장을 목표로 한치의 망설임없이 파고드는 흉기같은 작품이다.

내게 심각할 정도의 내상(內傷)을 안긴 작품.

배우들이 안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연습하면서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지 눈에 선하다.

개인적으로 정율 배우는...

<프라이드>, <M Butterfly>에 이은 삼연타의 충격이다.

이 젊은 배우는 무서울 정도로 연기를 잘하고,

무서울 정도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한 작품 한 작품 필모그라피가 늘어갈수록 더 잘한다.

개인적으로 20대 때의 이승주를 보는 느낌.

이 녀석의 다음 작품이 심히, 몹시, 마구 궁금하다.

이석준은

처음엔 좀 낯설었다.

혹시 몸이 안좋은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고 설정이고 연기더라.

시간이 지날수록 이석준이 왜 그렇게 알란을 표현했는지 이해가 됐다.

컴퓨터게임 킬롤로지 처럼 살해당한 아들.

그렇게 아들을 놓친 아버지 알란.

환상 속에선 극적으로 살아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살피는 아들 데이비.

그리고 킬로로지 게임을 개발해 엄청난 부를 손에 쥔 폴.

세 사람 모두...

한쪽 발로 걷는 사람들이다.

그걸 세 사람 모두 너무 늦게 깨닫거나 혹은 깨닫지 못했다.

더 나은 사람.

그게 참 아프고 슬프다.

세 사람의 끝없는 독백들.

이 모든 것들이 변명일 수도, 후회일 수도, 반성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독백들을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줬으면 좋겠다.

그게 한 인생을 구원하는 일일 수 있으니까.

피해자는 빠른 속도로 가해자가 될 수 있고

가해자 역시 빠른 속도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걸 기억하다.

 

데이비가 말했던 더 나은 사람.

그런 사람이 한 번 되보자..

아니 되보려고 노력이라도 해보자.

그럴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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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4. 8. 25. 08:34

<Pride>

일시 : 2014.08.16. ~ 2014.11.02.

장소 : 아트원씨어터 2관

극작 : 알렉시 켐벨 (Alexi Kaye Campgell)

연출 : 김동연

출연 : 이명행, 정상윤 (필립) / 박은석, 오종혁 (올리버)

        김소진, 김지현 (실비아) / 최대훈, 김종구 (멀티)

기획 : 연극열전

 

정말 정말 정말 좋은 연극을 만났다.

내 영혼의 soul mate 같은 연극 <Pride>

깊은 위로같고, 포근한 다독임 같은 그런 보석보다 더 빛나고 찬란한 연극.

180 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끝이 났다는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만큼 완벽히 스며들었다.

이 작품...

아주 진심이고, 아주 진실하다.

많이 슬펐고, 많이 아팠고, 그래서 많이 행복했다.

아주 말갛게 행궈지는 기분이었고, 뭔가 하나의 껍질이 벗겨나가는 느낌이었다.

이 작품을 보기 전과 보고 난 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있었다.

이 대사들...

이 진심의 대사들을 나는 최대한 오래 마음에 담고,

최대한 오래 기억하게 되리라. 아니 그렇게 될 수밖에는 도저히 없으리라.

진심으로 다행이다.

이 연극을 만나서.

이 연극을 봐서,

이 연극이 내 마음에 진심으로 닿아서...

그리고 필립과 올리버를 이명행과 박은석이 연기해줘서 정말 다행이다.

 

누군가를 그리워 한다는건,

그 사람의 실체를, 그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싶다는 의미일까?

하지만 그건 아주 일부다.

우리가 느끼고 싶은건, 간직하고 싶은건, 간절히 원하는건,

그 이상이다. 아니 그 이하다.

필립의 말처럼 내가 누군가를 불렀을때 언제든지 나를 위해 돌아볼 준비가 되어있는 한 사람.

간절한건 그 한 사람의 목소리다.

그 사람이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바이든, 스트레이트든 아무 상관없다.

그게 그리운 이유, 살아가는 이유의 전부다.

 

..... 꿈에서 막 깨거나 막 잠들려고 할 때

갑자기 사는게 무지 시시해지면서 그냥 이대로 영원히 잠들어 버렸으면 좋겠다 그럴때 있쟎아

사는 이유보다 덮고 있는 이불이 더 포근하게 느껴질 때,

난 그때 누군가를 부를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봐.

내가 누군가를 부르거나, 날 불러줄 목소리

그 목소리가 닿으면서 시작되는 변화,

그게 사는 이유가 아닐까? ......

 

...... 괜찮아, 모든 것이 괜찮아질거야.

기나긴 시간이 흐르면,

우리에 대해, 자신에 대해

그 어렵고 불안했던 순간들을 이해할 것이고

그리고 지금의 잠 못 이루는 밤들도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오십, 아니 오백 년 후에도 이 시절을 사는 사람들은

그 시간들로 인해 더 행복해지고 더 현명해질 것이다.

그러니까 괜찮아, 모든 것이 괜찮아질거야.

마치 먼 미래에 이미 모든 것을 거친 내가 나를 다시 위로하듯 다정한 속삭임.

그 위안처럼 목소리가 그렇게 .......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

그건 꼭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거다.

내 진짜 이름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지금 나를 부르고 있다면...

나는 1958년의 올리버처럼 모든 걸 던지고 그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2014년의 필립처럼 다시 또 돌아갈 수 있을까?

1958년, 2014년 실비아처럼 그 둘을 지켜보고 이해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진심으로 한 번쯤은...

나는 꼭 필립이고 싶다.

올리버이고 싶다.

실비아이고 싶다.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다.

남자든, 여자든, 혹은 아무것도 아니든...

나는... 단지 이야기를 갖고 싶다.

그 이야기가 만드는 역사를 가지고 싶다.

필립과 올리버처럼.

그리고 그들을 지켜내는 실비아처럼...

 

이 연극이...

나를 살게 하리라.

나를 숨쉴 수 있게 하리라.

나를 그대로 나로서 존재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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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4. 2. 7. 08:29

<웃음의 대학>

일시 : 2013.11.08. ~ 2014.02.23.

장소 :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대본 : 미타니 코우키

연출 : 김낙형

출연 : 송영창, 서현철, 조재윤 (검열관)

        김승대, 정태우, 류덕환 (작가)

제작 : (주)적도, (주)연극열전

 

몇 번의 예매와 취소를 반복하다 보게 된 작품.

(캐스팅이 바뀌기도 했고, 갑자기 일이 생기기도 해서...)

2008년 연극열전2로 초연될때부터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6년 만에 드디어 볼 수 있게 되서 혼자 감회에 젖기도 했다.

서련철과 류덕환, 내가 원했던 캐스팅이었고,

목요일 저녁공연이라 할인율도 높았고.

그리고 좌석은 환상적일 정도로 좋았다.

검열관에서 살짝 조재윤과 고민을 하긴 했지만 역시 서현철로 기울 수밖에 없더라.

서현철 특유의 말투와 억양, 표정이 자꾸 나를 끌어당겨서... ^^

역시나 서현철은 대사 타이밍도 좋고 순발력있는 연기도 정말 좋더다.

무대 위에서 오버하지 않으면서 기꺼이 망가질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 배우.

여전히 참 좋다. 서현철이라는 배우.

작가역의 류덕환과도 잘 맞았고.

류덕환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배우인데

아무래도 작은키 때문에 배역에 한게가 생길 수 밖에 없어 참 안타깝다.

정말 너무 열심히 하는, 그리고 잘 하는 배우인데...

언젠가 그의 진면목을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이 꼭 나올거라 믿고 싶다.

 

<웃음의 대학>은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이 시대배경이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웃음 따위는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검열관에게

공연허가를 받기 위해 극단 "웃음의 대학" 전속작가의 고분분투기다.

(어디까지나 표면상으로는....)

공연허가를 위해 검열관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는 7일.

작가는 일곱 번의 수정을 거듭하면서 검열관에과 기묘하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간다.

웃을 수 없은 희극작품을 쓰라는 아이러니한 검열관의 요구를 가장한 명령.

그러나 작품 속에선 다행히 검열과 수정이 반복될때마다 오히려 작품은 더 재미있어진다

그리고 급기야 작가과 검열관은

어느틈에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며 존중하는 관계로 변한다.

두 사람의 이런 변화는 일종의 화해이자 완벽한 파괴이기도 하다.

(파괴하지 않으면 창조는 없다!)

 

사실 이 작품은 한바탕 웃고 지나가는 코믹물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묵직하다.

왜 서민의 즐거움을 빼앗으려고 하느냐는 작가의 대사를 들으면서

<웃음의 대학>의 해프닝이 봇물터지듯 넘쳐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케 했다.

뭐랄까?

우리는 지금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사전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가령 그들의 생각하는 "소시민"과 우리가 생각하는 "소시민"의 뜻은 애초부터 완전히 다르다는...

언어의 기본구조가 다르니 화해와 화합도 불가능하다.

희극작가가 (권력과) 싸우는 그 끊임없는 저항의 방법이

지금 우리에게도 있다면 참 좋을텐데...

(혼자 묵직해졌다.... 젠장!)

 

"전 자신감 따윈 없습니다!

 다만 제자신을 믿을뿐입니다"

작가의 검열관에서 던진 대사가 참 뭉클했다.

(이 장면에서 류덕환의 표정과 연기 정말 좋더라)

궁금해졌다.

웃을 수 있으면 살 수 있다는 작가의 말.

그런데 그게 정말일까?

 

웃을 수 있으면...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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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2. 11. 12. 08:40

<양철지붕>

일시 : 2012.11.01. ~ 2012.11.18.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대본 : 고재귀

연출 : 류주연

예술감독 : 고선웅

제작 : (주)연극열전, 경기도립극단

출연 : 이서림, 이애린, 이찬우, 정현호, 조영선, 강성해,

        강상규, 한범희

 

연극열전 네 번째 작품 <양철지붕>

사실 관람이 좀 망설여졌던 작품이긴 한데 고재귀 대본과 류주연 연출의 힘을 믿고 프리뷰를 관람했다.

2011년 경기창작희곡 공모전에서 심사위원의 극찬을 받으며 대상을 수상한 <양철지붕>은 제목 그대로 허름하게 내몰린 우리시대 밑바닥 인생의 깊고 추악한 욕망의 적나라한 고발장이다.

이런 내용의 작품...

보기 참 힘겹고 부담스럽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성-폭력-살인, 성-폭력-살인의 순환고리를

나는 내내 신물나게 그리고 증오와 혐오의 눈으로 바라봤다.

개 잡는 인간들의 핏발서린 눈처럼 나 또한 그들을 핏발 선 눈으로 지켜봤다.

함바집 그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에

함께 헐떡이는 숱한 눈과 눈은 일제히 아귀의 형상으로 사납게 던져진다.


“폭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대본을 쓴 고재귀 작가는 이 질문에서 <양철지붕>을 시작했단다. 

폭력은...

눈과 귀에서 온다!

눈으로 본 폭력의 세상, 귀로 듣은 폭력의 세상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묘하게 대물림되는 더럽고 추한 유산이 되버린 폭력!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자매,

그 아비를 화재로 죽이고 숨어사는 두 자매의 함바집에

하나 둘 모이는 사내들, 사내들, 사내들...

아무렇지 않은 음담패설을 내뱄는 공사판 사내들의 끈적한 눈과 걸판진 입,

두 자매를 도와 의붓아버지를 죽었던 사내의 끈질긴 추격.

그리고 화재현장에서 창문으로 빠져나와 살아난 의붓아비의 아들이 공사판의 새일꾼으로 함바집에 섞여든다.

뜨내기들의 장점은,

모든 걸 숨기면서도 다 아는 것처럼 생활할 수 있다는 것.

과거나 미래 따위는 그야말로 개나 물어갈 일이다.  

 

이 이야기를 피비릿내 진동하는 참혹한 복수극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아니다, 지독히 현실적인 사실주의 작품이라고 해야 옳겠다.

친아비조차도 친딸을 유린하는 세상에 이런 류의 이야기가 뭐 그리 대단한 이슈가 될 수 있을까?

더 폭력적이고, 더 패륜적인 사건이 지금 이 현실 속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도 아주 버젓이! 게다가 당당하게!

류주연 연출은 이 작품이 최대한 이상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런 이상한 모습이 현재 모습과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들면 작품의 의도는 성공"이라고.

그렇다면 류주연 연출의 눈은 아직 순진하다.

(참 다행이라고 해두자!)

또다른 살인으로 마무리된 평화로운(?) 자매에게,

과연 평범한 일상의 행복은 찾아올까?

그 자매를 기다리고 있는 반복되는 성-폭력-살인의 뫼비우스띠가 내 목까지 바짝 조여온다.

이런 젠장!

정말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단 말인가!

뜨거운 태양에 이글이글 달궈진 뜨거운 양철지붕이

지금 내 머리 위에 있다.

아~~~ 참 징글징글하다.

 

* 작품 속 배우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렇게 무자비한 작품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연기한 배우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 작품 하는 동안은 뱃속은 참 든든하겠다.

  성욕과 식욕.

  폭력과 살인으로 귀결되는 욕망의 묘한 중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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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2. 5. 21. 06:00

<M.Butterfly>

 

일시 : 2012.04.24. ~ 2012.06.06

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극본 : 데이비드 헨리 황

연출 : 김광보

출연 : 김영민(르네 갈리마르), 김다현, 정동화(송 릴링)

        손진환, 정수영, 한동규, 이소희, 김보정

제작 : 연극열전

 

개인적으로 김광보 연출을 무지 좋아해서 그가 만드는 작품은 꼭 챙겨보는 편이다.

게다가 그가 연출하는 작품에 김광보의 뮤즈(?)라고 할 수 있는 김영민까지 출현한다면 그 작품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must see" 해야 할 필수 항목이 된다.

실제로 이 작품을 연출하기로 결정한 후 김광보 연출도 "르네 갈리마르" 역에 김영민을 가장 먼저 떠올렸단다.

김광보, 김영민.

역시 환상의 콤비다.

<내 심장을 쏴라> 이후 2년만에 네번째 연극열전이 선택한 두번째 작품에서 이 콤비가 다시  만났다!

작품을 보기 전부터 솔직히 나는 충분히 매혹당했다.

 

연극 <M.Butterfly>는 프랑스 외교관과 중국 경극 배우 사이에 벌어졌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1986년 전직 프랑스 영사 버나드 브루시코는 자국의 법정에 서게 된다.

죄명은 그가 사랑한 중국 경극 여배우에게  국가 기밀을 유출한 협의다.

그런데 또 다른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그가 사랑한 여자가 사실은 중국의 스파이었고 남자였다는 사실이...

작품이 공연될거란 소식을 들었을때

과연 스파이 송 릴링 역을 누가 하게 될까 궁금했었다.

꽃다현으로 불릴만큼 이쁜 배우 김다현의 캐스팅은 예상했었지만

배우 정동화는 개인적으로 좀 의외의 캐스팅이었다.

그래서 그 의외의 캐스팅을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해설자이자 작품의 중심 인물은 르네 길마르.

자칫하면 어수선하고 산만하게 느껴질 인물은 김영민은 역시 멋진 집중력으로 감당해냈다.

철없이 떼쓰는 소년의 이미지와 지적인 청년의 이미지가 묘하게 겹쳐지는 아우라를 지닌 배우 김영민.

특히 후반부 르네 갈리마르가 감옥에서 깨진 거울을 보면서 얼굴에 화장을 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그 대사들, 그 감정들.

스스로 자신이 사랑한 버터플라이가 되는 모습이 눈물이 날만큼 처연했다.

나는 정말이지 무대 위에서 빛나는 김영민 특유의 선량한 눈빛과

무심한듯 감정을 담는 말투가 너무나 좋다.

이야기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다가도

어느 틈에 빈틈없이 작품 속을 꽉 채우는 그 엄청난 존재감이 믿어지지 않는다.

르네 갈리마르가 송 릴링에게 치명적으로 매혹당한 그 이상의 매혹이다.

김영민의 몰입과 집중을 보면서 나는 갈리마르가 이해됐다.

그에게 송 릴링은 그저 자신이 사랑한 한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송 릴링 정동화.

솔직히 그의 여장 모습은 그가 인터뷰에서 말 한 것처럼 다분히 트렌스젠더적이었다.

때론 미안하지만 섬득할만틈 괴기스럽기도 했다.

(외모로 따지자면 김영민이 훨씬 더 이쁘고 얼굴 선도 더 고혹적이다)

일부러 여성스럽게 내는 목소리는 어색하고 몸짓은 작위적이었다.

사실 조금 실망하려는 중이었다.

역시 김다현 송 릴링으로 볼 걸 그랬나 싶었다.

그런데 2분 간의 변신 후 정동화의 모습은 너무나 압도적이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 녀석의 복근도 한 몫 했을테지만

솔직히 정동화의 송 릴링은 황홀했다.

그런 작품이 있다.

앞부분에 비해 뒷부분이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이야기가 느슨해지는 작품이 있는가하면

처음엔 그저 밍밍하고무난하다 후반부에 극적으로 강렬해지는 작품이 있다.

김영민, 정동화의 <M.Butterfly>이는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었다.

(두 사람 참 잘 만났다.)

정동화의 마지막은 여자의 맨얼굴을 처음 보는 것 같은 낯섬과 신비감이 있었다.

역시 멋지다, 이 녀석!

그리고 두 배우의 조합은 내겐 묘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서로 신뢰하는 눈빛을 보면서 관객 입장에서 진심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두 배우뿐만 아니라 정수영, 손진한, 한동규, 이소희, 김보정의 열연도 감동적이었다.

처음보다 보면서 점점 괜찮았던 작품.

그리고 보면서보다 보고 난 후가 더 괜찮았던 작품.

가볍지만 진중한 작품.

우수꽝스럽지만 심오한 작품.

<M.Butterfly>는 내게 그랬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2. 28. 20:06
요즘 경기도 예술을 총괄하느라 한창 바쁜 조재현이 오랫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연극열전 <민들레 바람되어>로...
이러다 제 2의 유인촌이 되는 건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바쁜 그의 일정 속에서 무대 위로 복귀가 나는 너무나 반갑고 즐거웠다.
(어찌됐든 배우 조재현의 연기도 뛰어나지만 기획자 조재현의 모습도 확실히 탁월하다.
 연극열전을 이렇게 자리잡아 놓은 것 보면 대단하단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꽤 오래전에 예매했었고
그리고 기대를 많이 했던 연극열전 작품.
조재현에게 "연극열전"이란 몸의 일부같은 존재가 아닐까?
영영 떠나버렸나 생각했는데 반가웠고 그리고 대학로 무대에서 연출가나 기획자가 아닌
배우로서 그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이노라 고백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죽은 아내의 무덤에 찾아가 그녀가 살아있을 때처럼 대화를 나눈다는 거...
왜냐하면 나도 가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니까.
마음 안에 오래 담겨있는 누군가와 대화를 해 본 사람은 안다.
그 사람이 이미 세상에 있는 사람이든, 혹은 없는 사람이든
아직 이야기할 수 있다면 상대편은 기꺼이 살아 있는 존재다 될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애뜻한 마음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연극...
그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
아내에게 비밀이 있듯 내게도 밀봉된 비밀이 있는지도...
"이 세상 모든 부부들에게 바치는 가슴 뜨거운 러브 스토리"
개인적으로 이 문구는 참 맘에 안 든다.
이 연극이 러브스토리었던가?
오히려 이 연극은 비밀과 밝혀짐, 파헤침의 연극이 아닐까?


        남편 : 조재현           아내 : 김성미                  노부부 : 이한위, 황영희

아내는 그대로인데.
아내의 무덤을 찾아가 이야기를 하는 남편은 시나브로 나이를 먹는다.
30대, 40대, 50대, 그리고 초라하고 누추한 노년이 되어버린 남편.
살아서는 한 번도 꽃을 사오지 않았던 남편은
아내의 무덤에 꽃을 들고 찾아와 이야기를 한다.
때로는 떼를 쓰고 어거지를 부리고,
때로는 불평과 부당함에 대해 하소연을 하고
때로는 분노와 화를 폭발한다.
아내는 묵묵했던가?
아니면 열심히 자기방어를 하듯 그에게 이야기했던가?
둘의 대화는 때로는 앞 뒤가 맞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다른 세계이기도 하다.
그래, 꼭 민들레 같다.
꽃이기도 하고, 나풀거리는 홀씨이기도 한 그런 민들레.
바람이 불면 홀씨는 흩어진다.
처음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꽃이었던 모습이 지워진 것도 이미 오래다.
부부는, 아니 사람은...
자꾸 가벼워져야 하는 걸까?
그래서 아내의 무덤이 민들레가 지랄맞게 지천인 곳이여야 했는지도...


  
“오늘 우리 결혼사진을 봤다.
 당신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나는 없더라.
 나는 없고 나였던 사람만 있더라.
 나는 이렇게 늙었는데… 당신이 과연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꼭 누군가를 먼저 보내지 않았더라도
살면서 이런 느낌 참 많이 받는다.
그럴 땐 세상 누구보다 낯설게 느껴지는 자신의 모습.
이 연극을 보면서 뜬금없이 나는 나 자신을 봤고 느꼈다.
배우 조재현은,
참 잘 어울리더라.
아마도 그를 위한 연극이 아니었을지...
아내 역이 좀 어색하고 인위적이긴 했지만
조재현 덕분이 붕 뜨지 않고 그나마 안정적일 수 있었던 것 같다.
김성미의 변사스러운 대사톤은 신파를 떠올리게 한다. 
"여보! 나 예뻤어~~~"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저 여자 지금 미쳤나 싶기도 했다.
내 생각엔 귀신이 오히려 더 차분하고 평온할 것 같은데
김성미가 표현한 아내는 코믹함마저 느껴져 많이 아쉬웠다.
그래서였나?
남편의 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대사가 별로 충격적이지 않더라...



노부부 역의 이한위, 황영희는 정말 좋았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임산부로 나왔던 황영희를...)
두 사람의 타이밍과 대사의 호흡은 맛깔스럽고 일품이다.
왜 이한위를 명품조연이라고 표현하는지 연극 무대를 통해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하긴 내가 별로 TV는 보지 않아서 TV를 통해 느끼기는 어렵긴 했겠다 ^^)
요즘 TV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는 배우 정보석이
남편 안중기역에 더블 캐스팅되어 조재현과 함께 공연중이다.
덕분에 아주머니들의 폭발적인 관람이 이어지고 있단다.
(내가 본 날도 게모임에서 단체로 나오신 듯한 분들 많더라... 개인적으로 이런 모습, 아주 보기 좋다.)
3월부터는 이광기까지 가세해 공연장을 옮겨 오픈런으로 공연될 예정이란다.
솔직히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은 이 연극을 올리기에는 좀 넓긴 하다.
조금 작은 곳에서 더 애뜻하고 차분하게 공연되길 기도해본다.
연극열전의 좋은 레퍼토리니까...
"이지아" 가 부인으로 컴백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다.
한번 기다려볼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7. 13. 06:39

"연극열전"처럼 계속 이어지는 시리즈 연극 기획물이 하나 더 생겼다.
"무대가 좋다"가 바로 그 주인공.
착한 글레머(?)라며 요즘 주가가 한창 상승 중인 연기자 신세경이 홍보대사다.
다양하고 좋은 연극이 활성화를 위해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기획들이 더 많아진다면 좋겠다.
야심차게(?) 준비한 "무대가 좋다"가 선택한 첫 번째 작품 <풀 포 러브>
일단은 출연진이 무지 화려하다.
나무 엑터스(그래서 출연진이 거의 나무 엑터스 소속 탈렌트들이다)와
거대기업 CJ 엔터테이먼트, 악어컴퍼니가 손을 잡고 기획했단다.
남자 주인공 에디 역에 박건형, 한정수, 조동혁
여자 주인공 메이 역은 김정화와 김효진
이 심각한 이야기의 원인 제공자인 아버지 역엔 남명렬.
그리고 마지막으로 메이의 새 남자 친구 역의 박해수까지...
브라운관을 그대로 옮겨왔다고 해도 정말 과언이 아닌 프로필들이다.
거기다가 2년 6개월만에 뮤지컬 무대에서 연극으로 복귀한 조광화 연출작.
어쨌든 조금은 기대를 하게 만들긴 했다.



Fool for Love
이복남매인 주인공 에디와 메이.
뭐 이 정도까지만 이야기해도 대충 감이 잡히는 내용이다.
"너를 찾아 4,000 킬로미터..."
에디는 자신을 떠난 이복동생이자 연인인 메이를 찾기 위해 4,000 킬로미터를 달려 
드디어 이곳 모텔을 찾아왔다.
메이는 새로운 직장도  남자 친구도 생겼다며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다고 떠날 것을 종용한다.
포스터엔 "격정적인 사랑의 광시곡!"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치명적인 끌림, 사랑과 증오, 우정과 질투 모든 것을 보여주는 연극이라는 해외언론평도 있다.
그런데 어쩌지?
보고 난 솔직한 심정은 Fool이 된 것 같다.
해외에서는 그랬는지 몰라도
내가 본 연극에서는 격정은 없고 단지 코믹만 있더라.
도대체 에디는 왜 4,000 킬로미터를 쉬지않고  달려왔을까?
고작 이렇게 농담따먹기나 하려고???
껄렁함을 넘어 멘탈이 수시로 이탈한 것 같은 에디와
시종일관 고음역대의 소리를 그야말로 바락바락 질러대던 메이.
(개인적으로 정말 듣기 싫은 소리영역이라 무지 괴로웠다)
이들의 목적이 고문인가 싶기도 했다.
어쩌면 그렇게 포스터의 느낌과 완전히 동떨어지는지...
마치 공갈빵을 손에 쥔 기분이다.
이 허무한 배신감을 뭐라고 표현할까?
그래도 뮤지컬이긴 하지만 무대경험이 많은 박건형과 김정화마저도 이런 시츄에이션이니
조동혁, 한정수, 김효진의 만남도 진지하게 걱정스럽다.



배두들의 톤을 들으면 내가 다 민망하고 절박해진다.
부족한 연습기간이 턱없는 흠으로 자주자주 드러난다.
급기야는 사소한 것들까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어쩌자고 여주인공의 치마는 침대보와 똑같은 천이고
(그 모텔에 투숙하려면 동일한 유니폼이라도 입어야 하는 건가!)
황당하고 학예회스럽던 음향과 시작과 끝에 나오는 극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던 중얼중얼 거리는 노래.
(그런데 더 황당한 건 이 연극이 사실은 그 노래 분위기 같아야 했다는 사실이다)
오렌지빛 조명은 불안하고 뭔가 자극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서 처음엔 좋았는데
극이 진행될수록 이상하게 집창촌은 연상시켜 점점 불편해졌다.
차라리 대놓고 코믹 연극이라고 했으면 나는 유쾌하게 하하 웃으며 잘 봤다고 말할 수 있었으리라.
이례없이 길게 줄을 서가면서 표를 찾고
오랫만에 꽉찬 연극 객석을 보면서 흐뭇했었는데
찜찜한 기분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배우들의 명성에 실려 흥행에는 성공하겠지만
결코 좋은 평가를 받기에는 어려운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래도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이복남매의 사랑이라는 소재도 한 몫을 했겠지만...
보고 난 느낌은 대략 난감이다.
혹 모르지.
아직 시작이니고 9월 12일까지 한다니까 그 사이에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스스로 연극 첫 무대가 감격스러웠는지 박건형은 시종일관
극의 분위가와 어울리지 않게 소풍나온 아이처럼 어이없이 천진하다.
덩달이 시리즈도 아닌데 김정화까지도...
보물찾기까지 끝나고 소풍이 마무리가 되면 그제야 분위기 파악이 될라나?
제발 그랬으면...



배우들의 연기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혼란스럽고 괴리감마저 느낀다.
마치 두 개의 채녈을 수시로 돌리고 있는 느낌이랄까?
스토리 진행자(?)처럼 환상의 존재로 등장하는 아버지 역의 남명렬의 투혼이
오히려 눈물겹기까지하다.
(그런데 나는 극 중간에 그가 침대 밑에서 등장하는 그 말도 안되게 코믹한 모습이 너무 싫다)
그리고 그닥 존재감 있는 배역이 아닌 박해일의 모습까지도...
(이 사람 어디서 봤지? 생각했는데 목소리 듣고 기억했다. 뮤지컬 "영웅"에서 선생님으로 출연했던 배우)
나무 엑터스 김동식 대표는 계속 "무대가 좋다"에 소속 배우들을 출연시킬 계획이고
공연은 어찌됐든 대박을 칠 것이다.
그렇다면 기왕 대박 칠 거,
좀 치열하고 제대로 대박을 치면 좋겠다.
"연극열전" 역시나 연예인을 기용해 흥행에 어느 정도 성공을 하긴 했지만
"무대가 좋다" 기획보다는 그래도 더 괜찮았다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됐다
다음 공연될 연극은 얼마전까지 공연됐던 <클로져>다.
안전하게 가겠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미 문제작이 될 전망이다.
국민 여동생 "문근영"과 요즘 TV와 영화까지 진출해 맹활약중인 배우 "엄기준"이 주인공이란다.
벌써 홍보 문구는 "문근영 스트립 댄서 되다!" 뭐 대략 이런 난감한 멘트로 시작된다.
티켓 오픈하면 이건 뭐 전쟁터가 따로 없겠구나 싶다.
혹시 "무대가 좋다"가 노린 게 바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라인업으로 나온 작품 중 소위 울겨먹는 작품이 상당하다.
(풀포러브. 클로져, 프루프, 트루웨스트, 댓페이스, 아트, 거미여인의 키스, 3일간의 비)
"무대가 좋다"라는 말이 과연 누구를 향해 좋은 건지
점점 궁금해진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5. 21. 12:48
"연극열전 시리즈3"의 다섯 번째 작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좀 특별하게 기다렸던 연극이었다.
예매도 일지감치 했었고...
공교롭게도 나중에 잡힌 세미나와 겹쳐지는 바람에
세미나 중간에 두시간 정도 도망(?)치는 결과까지 초래하게 만든 연극이다.
(다행히 세미나가 서울대병원이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최고의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 1996년도 자신의 동명 드라마를 연극 대본으로 만들고
"베토벤 바이러스"의 PD 이재규가 직접 연극 연출을 했단다.
두 사람만의 조합으로도 끔찍하게 궁금했었다.
(그러면서도 생각했다. 이 연극을 표민수 PD가 연출했다면... 하고) 
1996년 MBC에서 방영했다는 이 드라마를 나는 보지 못했었다.
주현, 나문희, 김영옥, 이민영, 이종수
이들이 한 가족으로 나왔단다.
그리고 2010년 나는
최정우, 송옥숙, 이용이, 박윤서, 이현응이 만든 가족 이야기를
연극이라는 전달 수단을 통해 바라본다.




이 세상 모든 이야기들의 근원은 "가족"이라고 했던가?
함께 있음에 충분히 말하지 못하고 전하지 못하게 되는 모든 감정들이
아내의,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을 통해 전면에 등장한다.
뻔한 이야기에 뻔한 결말인데
그리고 그걸 다 알고 있는데
공연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통곡보다 깊고 서러운 눈물을 흘린다.
나는 참 많이 불편해졌다.
울어야 하는데... 울어야 하는데...
어쩌면 내게 "가족"이란,
솔직한 감정의 표현조차도 도저히 불가능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느낌은 "감히..."에 닿아있다.
반성보다 더 깊은 죄책감이 오히려 두 눈을 부릅뜨고 버티게 했는지도...
그날 아마도 나는 공연장에서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는
최고로 "독한년"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치매에 걸린 노모, 의료사고로 월급쟁이 의사가 된 남편,
삼수생 아들, 대학졸업 후 피곤한 직장인이 된 딸.
거기다 도박에 빠진 동생에 지지리 궁상 올케까지...
그리고 불현듯 선고된 자궁암 말기의 "며느리이자 아내이자, 엄마이자 누나"인 한 여자.
굳이 노희경식이 아니더라도 신파의 모든 요소가 이 연극 속에는 다 들어있다.
자, 우리는 이미 완벽하게 준비가 다 됐다.
이제 앉아있는 너희들도 울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가....
꼭 그렇게 묻는 것 같다...
극장을 나서면서 "가족"을 생각하면 좋겠다고 연출가 이재규는 말했는데
나는 극장을 나서면서 "가족"이 아닌 "드라마"를 생각했다.
어쩐지 내겐 현실적이지 않다.
자신이 죽은 후 가족들을 힘겹게 할 치매 노모를 생각하며 함께 죽자며 목을 조르는 장면도
아들이 아버지에게 대학 발표날까지만이라도 엄마를 살아있게 해달라고 울먹이는 장면도
딸에게 "말 안해도 알지? 넌 나야!"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대사에도
난 불안한 눈만 껌벅인다.

어.쩌.지?
난 참 많이 불편해지고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내겐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2. 4. 06:29
 "저 소년은 오직 너제트라는 말만 포옹합니다.
  저 놈의 말 대가리를 제가 뒤집어쓴 것 같습니다. 저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연극 <에쿠우스>의 시작은 이렇다.

얼마나 가슴 떨리게 하고 얼마나 치열하게 바라봤던 연극인가...
내가 기억하는 <에쿠우스>는
"중독"과 "탐욕"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대학로 세번째 연극열전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으로 2009년 다시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많이 두근거렸고 그리고 첫사랑을 재회하는 것처럼 마냥 떨렸다.
송승환과 조재현의 다이사트.
젊은 시절 알런으로 무대 위에 올랐던 그들의 감회에
주책없이 동참하기까지 했다.
김태우와 류덕환, 그들의 알런이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했다.



2005년 김영민 알런에 남명렬 다이사트를 신화처럼 그리고 아직도 현실처럼 생생하고 기억하고 있는 나...
5년만에 보게 된 <에쿠우스>는
그러나 내겐 황무지를 바라보는 것처럼 피폐한 모습이었다.
코믹버전의 에쿠우스를 보면서 10분의 뜬금없는 인터미션에도 불구하고
지루함과 오랜 싸움을 해야만 했다.
조재현 연출의 <에쿠우스>는
그전까지 봤던 집요하고 끈질기고 그리고 실험적인 공연을
과감하게(?) 시장판으로 내돌리기로 결정한 듯 하다.
연극의 대중화를 위해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열극열전 시리즈는
아마도 조재현이라는 배우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으리라.
그래, 그건 정말 인정한다.
그리고 그의 노력과 열정에는 누가 뭐래도 기립박수를 보낸다.
물론 연극열전의 작품들이 전부 괜찮았던 건 아니지만,
어찌됐든 뮤지컬의 대중화에 밀려 침체기에 놓여 있던 연극의 유료관객 수를 엄청나게 늘려놨다는 건
내게도 대단한 이벤트요 혁신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그래도...
에쿠우스를 시장판으로 내돌린 그의 연출에
나는 너무도 너무도 화가 치민다.



송승환, 류덕환
스크린을 압도한 두 배우의 연기는
알몸에 가까운 근육질의 8마리 말들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고 파괴된다.
(2005년에 비해 말 한 마리가 늘었다. 5년 후에는 9마리의 말이 등장하게 되는 건 아닐까???)
"정열을 파괴할 순 있어도 창조할 순 없다"
다이사트의 말이 무색할 만큼 알런의 열정은 그 전에 이미 사라졌고
(그래도 이 연극에서 제일 눈에 띄는 사람이 바로 류덕환이다.
그의 표정과 말투에는 알런이 어쨌든 담겨있다. 행동은 모호했지만... )
다이사트는 마치 TV 브라운관을 통해 드라마를 시청하듯 알런을 향해 내내 심드렁한 모습이다.
(여차하면 체널을 돌릴 기세다)
공연 시작 전에 송승환 다이사트가 먼저 나와 혼자 보란듯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
뭐랄까, 소문 무성한 무당집에서 바람잡이가 순서표를 나줘주며 손님들을 떠보는 액션 같이 불쾌했다.
그래도 아버지에 비하면 다이사트의 불쾌감은 그나마 봐줄만 하다.
철저한 금욕주의의 알런의 아버지는
"개그콘서트"에 출연해도 단박에 인기를 끌 수 있을 만큼 잔인하게 코믹하다.
코믹한 금욕주의자라니...
때때로 아버지로 인해 웃어대는 관객들.
나는 그런 웃음을 이끌어내는 연극이 너무 못마땅하고 너저분하고 난잡하게 느껴졌다.
알런의 아버지는 결코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의 금욕이 비록 겉모습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그런 이유로 더 철저히 냉소적인 비웃음을 안겨줬어야만 했다.
그래야 극의 후반부 포르노 영화장에서 아들을 마주치는 장면에서 이중적인 인간의 근본과의 대면을 보며
관객들 또한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듯 진저리를 쳐야 했다.
그러나 2009년 에쿠우스의 아버지는 처음부터 발정난 인간에 불과했다.
그는 아마 꿈에서도 금욕을 생각하지도 못할 인물이다.
그렇다면 알런의 어머니는?
교사출신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는
과연 자신의 아들에 대해 감정을 가지고 있기는 한건가?
2005년도에 나는 어머니에게서 어쩌지 못하는 "애증"을 느꼈다.
지금은 제멋데로 노는 아이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는 피곤에 찌든 부모를 보는 느낌이다.
알런의 부모들은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버린 걸까?



알런을 다이사트 박사에게 부탁하는 판사는.
아무래도 직업이 잘못 표기된 것 같다.
내가 느낀 그녀의 모습은 다이사트 박사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지는 여비서에 불과했다.
늘씬한 다리를 보란 듯이 꼬고 앉아서
심각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태도로 알런을 부탁하고 종종 찾아와 경과를 듣는 그녀는
당황스러웠고 깊이감이 없었다.
마치 가십기사를 대하는 여비서의 포즈 그대로였다.
그녀가 구하고 싶었던 건 불쌍한 알런의 영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판사가 유부남 정신과 의사를 상대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조용히 그녀의 손을 붙잡고 다른 정신과 의사를  만나게 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돈많은 재벌 노인네라도 소개시켜줘야만 할 것만 같다.



...... 혼란스러웠다. 연극 《에쿠우스(Equus)는 비극인데 관객은 숭고한 주인공이나 좌절이 아니라 다른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넋을 낚아챈 건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말(馬)들이었다. 절대 다수인 여성 관객은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때 온통 말 이야기뿐이었다. 그들이 숭배하는 것은 근육질의 말 같았다. 그렇다면 연극이 변한 것인가, 관객이 달라진 것인가...... 이 연극은 미완성이다. 비극을 사랑한 관객은 실망했을 수도 있다. 말들을 강조한 이번 《에쿠우스》는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서성이는 것 같았다. 대중성을 얻었지만 작품의 정신까지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다. 즐기다가도 서글퍼졌다......

누군가 이런 기사를 썼다.
그리고 나는 전적으로 이 기사에 동의하며
이렇게 동의해야만 하는 게 너무 화가 난다.
"과연 나는 누구를 숭배해 본 적이 있는가?"
알런을 치료하며 스스로 던지는 다이사트의 질문은 공허해지고 말았다.
더불어 알런이 미치게 부럽다고 말하는 그의 고백 또한 정당성을 잃었다.
말의 성전에서 의식을 치르고 널브러진 알런을 부등켜 안으며
내가 널 치료해주겠다고 했을 땐
"너나 잘하세요!"라며 친절한 금자씨가 되어 말해주고 싶었다.
피곤에 찌든 다이사트가 자신의 힘으로 구할 수 있는 건 과연 뭘까?



2005년 내가 그토록 정열적으로 봤던 에쿠우스는
성적인 판타지를 주는 애로물도
턱없는 웃음을 주는 코믹물도 아니었다.
내 기억 속 알런과 너제트가 의식을 치루듯 달리는 장면은
성스러웠고 장엄했었다.
(그리고 나는 분명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었다)
그러나 떡칠(?)을 하고 나온 건장한 보디빌더들이 취하는 과한 동작들은
경박한 섹스코드를 눈 앞에 들이대는 것 같아 불쾌하고 난감하기까지 했다.
남창처럼 외부에 전시된 썬텐된 그들의 몸을 보며 나는 연극 <에쿠우스>의 비극성을
연극이 끝난 로비에서 느닷없는 느꼈다.
(그나마 그들 얼굴이 두꺼운 분장으로 덮여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맨 얼굴로 그렇게 서있었다면 얼마나 서로 난감했을까?)



2005년 포스터를 찾아 보면서 
같은 작품도 누군가에 의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걸 실감하며
나는 심각하게 <에쿠우스>에 대해 현재진행형으로 당황하고 있다.
어쩌면... 어쩌면...
김영민 알런과 남명렬 다이사트가 너무 강렬했기에 내게 <에쿠우스>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긴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결코 그 고정관념을 나는 결코 깨고 싶지 않다.
2005년 <에쿠우스>는 내겐 분명 구원같은 작품이었는데
2009년 <에쿠우스>는 내겐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 연극에 진심으로 칭클창클을 메고 싶다.
너접한 푸줏간을 다녀온 느낌이다.



    -----  only 퍼포먼스 <에쿠우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