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4. 1. 15. 08:11

2년마다 한번씩 자유여행을 가야겠다고 혼자 다짐했었다.

그리고 두번째 다녀온 자유여행.

원래 예정대로라면 스페인과 포르투칼을 여행하는 거였는데

동생네가 함께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그래도 익숙한 터키로 방향을 수정했다.

그냥 터키 일주를 할지, 이스탄불과 산토리니를 갈지 두 가지로 고민하다

아무래도 조카들이 초등학생이라 터키일주는 무리일 것 같아 이스탄불과 산토리니로 정했다.

결론적으론...

선택은 나쁘진 않았다.

여행하는 내내 날씨는 좋았고

특히 아테네와 산토리니에 머무르는 동안은

지중해의 햇빛 속에 두명하게 헹궈지는 느낌이었다.

walking and warlking의 꿈을 충분히 실행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짬짬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골목길을 기웃거렸던 시간들,

하늘과 바다를 바라봤던 시간들.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들을 몰래몰래 훔쳐봤던 시간들.

길을 찾아 이리저리 우왕좌좡하며 시행착오를 반복했던 시간들이

지금은 다 추억 그 이상이 됐다.

그건 그러니까...

"힘"이다.

앞으로의 2년을 버텨내게 하는 힘.

 

아쉽게도 골목과 길, 풍경같은 다정한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담지 못했다.

이런 것들은 적어도 내게는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그 이야기에 충분히 귀기울이지 못했다.

산토리니에서 만난 "casablanca soul"

이 골목 앞에서 혼자 얼마나 웃었던지!

골목 입구에 앉아있는 상점 주인 아저씨에게도 풍부한 casablanca의 soul이 느껴지더라.

루멜리 히사르에서 한 어머니가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손을 잡고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은

정말 홀릴듯 오래 쳐다봤다.

아름답고, 귀엽고, 따뜻하고, 다정해서...

이런 꿈같은 풍경들에 더 많이 귀길울여야 했었는데

내내 아쉽고 아쉬웠다.

 

 

아마도 변하지는 않을거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전에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은

여전히 서점일 것이고

비행기가 땅을 벗어나면

창문을 통해서 서서히 드러나는 하늘길을 보며 여전히 설랠거고,

골목골목을 목적없이 서성이는 것도 여전할거다.

눈에 담는 것,

눈에 담기는것들에

점점 더 많이 선량해진다.

본다는 것,

그건 느낀다는 것과 동의어다.

한때 제일 절망적인게 시력을 잃는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을 읽으면서 그렇치 않다는 걸 알았다.

그래, 볼 수 없다는 건 확실히 치명적이긴 하다.

그러나 그리웠던 건 한 번이라도 봤다면

그걸 기억하면서 마음 안에서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다.

사람은,

사랑때문에, 사람때문에 살 수도 있지만

기억때문에 살 수도 있다.

 

하여,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나는

내 기억의 힘을 신앙처럼 굳게 믿는다.

그게 나를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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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3. 12. 6. 08:00

이스탄불 구시가지에서 살짝 외곽에 위치한 카리예 박물관.

2년 전 이곳에 들어선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건 감탄과 황홀을 넘어 온 몸을 꼼짝달짝 못하게 만드는 경외감이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만은 꼭 다시 가리라 작정했다.

예전에 너무 어렵게 이곳을 찾아간 기억때문에

조카들과 동생을 데리고 또 다시 헤매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숨을 쉴 수조차 없었던 경외감을 다시 한 번 경험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이번엔 아주 수월하게 찾아갔다.

에미뇌뉘에서 37E를 타고 에디르네카프에서 하차해서 길 건너에 있는 카리에 박물관을 바로 찾아서 들어갔다.

(도대체 나는 2년 전 왜 여길 그렇게 헤맸을까? 지금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카리예 박물관은 처음엔 "코라 성당"으로 불렸다.

그러다 오스만제국때 아야소피아처럼 자미로 바뀌면서 "카리예 자미"로 명칭이 바뀌었다.

미나레와 미흐랍도 그대 만들어졌단다.

"코라"이든"카리예"든 그 뜻은 전부 "교외(郊外)"를 뜻하는 그리스어와 아랍어라니

뭐 결정적으로 바뀐 건 사실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일까? 이곳의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는 보전이 잘되어 있는 편이다.

"교외"라는 단어 그대로 술탄 아흐멧 중심지에서 벗어난 지형적인 요인이

비극의 참상을 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럽게 훼손된 부분도 있긴 하지만

정교함과 크기와 섬세함이 무시무시할 정도다.

이 성화들을 자세히 보려고 한국에서 짐을 챙길 때 일부러 망원경까지 넣었었다.

이번 여행에서 내 동생이 가장 좋아했던 곳!

동생은 이곳에서 파는 도록까지 사서 지금도 시간날 때마다 펼쳐본다.

분량도 꽤 되고 영어판이긴 하지만 그림 하나하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어서 꽤 유용한 도록이다.

(물론 사전을 곁에 두는 건 필수고!)

 

본관 정중앙의 황금색 성경을 들고 있는 예수의 모자이크.

머리쪽 황금빛 모자이크에 쓰에 있는 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그리스어다.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보이는 예수님의 온화함이 그대로 가슴 안으로 들어온다.

이곳은...

정말 빛의 공화국이고, 빛의 유토피아고, 빛의 현신이다.

햇빛의 이동에 따라 모자이크화도 변한다.

작은 큐빅조각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서 춤을 추는 것 같다.

경외감과 신비감이 종횡무진으로 함께 뛰어다닌다.

이곳에는 시간도, 공간도 다 사라진다.

단지 "나"와 대면하는 절대자만 있을 뿐.

 

예수의 모자이이크 왼쪽에는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는 베드로가

오른쪽에는 로마 세차례 선교여행을 했다는 사도 바울의 모자이크가 있다.

좌우에서 예수를 호위하는 느낌.

특히 사도 바울 모자이크는 햇빛을 정면으로 받고 있어서

작은 모자이크 조각 하나하나가 그대로 빛이더라.

뿜어져나오는 빛때문에 눈이 부셨다.

그대로 고해성사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심정.

모든 죄를 다 자백하고 나면 정말 내 안에 평안이 찾아와 줄 것 같아

그대로 무릎을 꿇고 싶었다.

 

이곳은 하루 온종일 있으라고 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곳.

오히려 보면 볼수록 신비감과 경외감에 말문이 막혀버리는 그런 곳이다.

침묵 속에서 그저 바라만 볼 뿐.

카리에 박물관.

그 신비한 시간과 공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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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27. 08:15

이스탄불 자미 중에서 공사기간이 가장 길었다는 예니 자미.

한때 재정적인 문제때문에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는데 시기만도 무려 56년이란다.

그대로 멈춰버린 자미 앞에서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말 그대로 꿇어 엎드려 참회로 용서를 비는 순간의 연속이었을까?

아니면 자미에 쏟아부은 재정과 인력에 대한 원망의 눈빛이었을까?

예니 자미를 보면서

터키의 그 숱한 자미들이 모두 종교적인 신념에 의해 자발적으로  지어진 걸까를 생각케했다.

서울의 밤하늘을 수놓는 빨간 십자가들도 떠올랐고!

그래도 터키의 자미들은 수다스럽거나 유난스럽지는 않다.

고요하고 조용하고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뿐.

 

이집션 바자르 옆에 있는 예니 자미는 

내부와 외부가 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내부는 조용하게 엎드린 신도들로 묵직하면서도 정갈한 경건함이 흐르고 

외부의 계단에는 한담을 나누는 사람들의 친근한 여유와 일상의 평온이 가득하다.

사람들 옆에서 열심이 모이를 쪼고 있는 비둘기들.

그대로 엽서의 한 장면이 되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그려졌다.

이집션 바자르의 번잡함과 예니 자미의 고요함.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두 건물은 그러나 묘하게도 서로 형제처럼 잘 어울린다.

마치 사람들의 삶과 거리를 두는 종교는 단지 이상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속(俗)과 성(聖)은 어쩌면 다른 게 아닐지도...

 

이슬람 자미 내부에 그림 장식이 거의 없다.

항상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그게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계 때문이란다.

인간이 신의 형상을 그리는 것 자체를 불경이라고 생각했던거다.

신에 향한 불같은 단호함과

범접할 수 없는 신성(神性)의 확고함이 자미 내부에까지 영향을 끼친거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런 금기는 구상이 아닌 추상과 기하학적인 문양이 발전하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자미 내벽을 장식하는 타일이나 아라베스크 꽃무늬,

코란 문자와 창문 장식의 화려함과 세밀함을 보고 있으면 정말 신의 손길이 느껴질 정도다.

특히나 자미 천정으로 햇빛이 비치면 빛 하나만으로도 자미는 그대로 성소가 된다.

자미에 들어가기전에 세족(洗足)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상과 가까운 곳에 일상처럼 자리잡은 camii.

종교란 사실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깊게 파고 들지 않으면서도 내내 함께 동행하며 위로해주는 것.

너무 많이, 너무 멀리 가버린 우리의 종교가 떠올라

저절로 몸이 동그랗게 말린다.

 

마치 내 몸이 하나의 자미가 되는 것 같다.

더 바라지 말고, 더 기다리지 말라고 신이 내게 말한다.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해야 했었는데...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15. 08:30

노트르담 대성당보다 무려 700년이나 먼저 지어진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아야 소피아.

실제 이곳 내부에 노트르담 대성당이 통째로 들어앉을 수 있을 정도라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가늠이 안 될 정도다.

바닥에서 천정까지가 무려 55미터고

황금색 돔에 마흔 개의 서까래, 마흔 개의 아치형 창문을 가진 이곳은

내랑과 외랑 이중의 배랑 구조로 되어 있다.

신의 영역과 인간과의 거리를 단절시키겠다는 경건함의 의미였을까?

커다란 청동문을 모두 닫아버리면 실제로 이곳은 완벽하게 고립된 신의 세계가 될 것 같다.

실내 공간을 묘하게 중앙에 집중시켜 실제보다 훨신 더 넓어 보이게 만든 착시현상.

그 비밀을 알면서도 2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규모가 주는 압박감때문에 저절로 위축이 됐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곳곳이 보수 중이라서 원래의 그 규모를 명확히 알기는 솔직히 힘들다.

(이곳뿐만 아니라 이스탄불은 지금 현재 보수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2년이란 시간이 참 짧다고 생각했는데 변화 앞에선 참 긴 시간이구나 깨달았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아야 소피아의 상들리에.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줄에 매달려있는 상들리에를 보고 있으면

위태로움과 평화과 함께 느껴진다.

그리고 성모마리아상 옆에 있는 거대한 두 개의 동판.

암호에 가까운 이 문자는 마호메트와 알라의 이름을 아라비아어로 써놓은 것이란다.

그림에 가까운 이 문자를 앞에 두고 느껴야 하는 막막함은

두번째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감소되지 않았다.

읽을 수 없는 문자앞에선 어떠한 상상력도 감히 발동되지가 않는다.

암호같은 문자를 품고 싶다는 열망이 햇빛처럼 쏟아질 뿐...

 

 

아야 소피아의 모자이크화들.

여행을 계획하면서 망원렌즈를 굳이 구입했던 이유는 이 모자이크화들 때문이었다.

커다란 그림을 하나하나 채우는 섬세한 큐빅 조각들을 어떻게든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기독교 성당에서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면서 훼손된 시간의 조각들도 조금 읽어보고 싶었다.

회칠로 덮어져야만 했던 비밀의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고 버텨왔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그림 앞에서의 현실은

난독증으로 괴로워하는 한 인간의 무지뿐이었다.

이곳을 몇 번쯤 더 와야 이 비밀의 끝자락이 열리게 될까?

결국 2층 회랑 한쪽에 있는 단돌로의 무덤 (Henricus Dandolo)에 애궃은 하소연만 해버렸다.

 

신의 모습을 어떻게든 이미지로 그려내려했던 기독교와

인간이 감히 어떻게 신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이슬람 문화의 교차는

이 넓은 아야 소피아에 특징적인 흔적들을 곳곳에 남겼다.

신을 감히 표현하지 못하고 신이 창조한 우주의 아름다움을

글자와 기하학 패턴으로 표현한 이슬람의 흔적을 보면서

어쩌면 이들이 더 경외심 가득한 종교에 몰입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2층 갤러리와 돔에 숨어있는 모자이크들과 그림들을 보면서 카메라 셔터를 쉬지 않았던 건

최대한 기억해서 오래오래 각인시키고 싶어서였다.

특별한 조명 없이도 아치형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만으로도 빛나는 저 작은 조각들은

하나하나가 다 들숨과 날숨을 쉬는 생명체였다.

어쩌면 인간이 오랫동안 꿈꿔온 불사(不死)의 삶이 여기, 이곳에 담겨져있는 건 아닐까?

저 작은 조각마다 그 수만큼의 인간이 기록되어 있는것 같아 가슴 속이 뻐근했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나는 그걸 내내 읽고내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하나의 큐빅 조각이 되어 그곳에 박혀있고 싶었는지도...

 

아야 소피아.

그 자체가 하나의 위대하고 완벽한 경전인 곳.

나도 모르게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무릎이 꺾이는 곳.

그래서 누구라도 아야 소피아에 들어가면

자신만의 신과 대면할 수 있다.

그러니 부끄러움없이 기꺼이 마주볼 수 있기를...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14. 13:26

예레바탄 지하 저수지.

처음 이스탄불을 방문했을 땐 이곳을 아침 일찍 찾아갔었다.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이 거의 없어 혼자 이곳을 독차지하며 다녔었다.

그러다 지하를 가득 채우던 내 발소리에 내가 섬득했고

솔직히 말하면 혼자서 메두사의 머리를 대면하는데 귀기(鬼氣)가 느껴저 눈도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두번째 대면은,

다행이 늦은 오후라 관광객도 제법 많았다.

게다가 신기한 눈초리로 쫒아다니는 조카들 때문에

심지어 메두사의 머리도 전혀 무섭게 느껴지지가 않더라.

아이의 순수를 이길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는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이번 여행에서

정말 엄청난 무기를 양쪽에 대동하면서 다녔던거다.

이곳도 두번째 방문이라고 조금 익숙해졌다.

여행을 가기 전에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를 읽어산지 소설 속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지하궁전 물 속에 들어가 뭔가를 찾아야 할 것만 같은 느낌.

내가 로버트 랭던도 아니면서...

예레바탄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신비감과 오묘함은 2년의 시간이 흘러도 에전했다.

어두운 지하에 각지에서 가지고온 기둥들을 세우느라 노예들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곳을 채우고 있는 물이사실은 죽음같은 노역을 견뎌낸 노예들의 눈물같아 바라보는게 뻐근하다.

공간이 주는 울림보다

역사가 남긴 흔적의 울림이 더 웅장하고 깊다.

정면으로 마주보는 사람을 돌로 만들어 버린다는 전설 속의 메두사의 머리가

그토록 오랜 세월 진흙 속에 묻혀있었던 이유도 사실은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차마 머리를 바르게 세우고 있을 수 없었던 메두사.

인간의 눈물은 신화의 힘을 뛰어 넘는다.

물에 잠긴 도시 "예레바탄"을 나오니

공교롭게도 이스탄불의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이 흐려있었다.

초겨울같은 쌀쌀한 날씨.

계속 날씨가 이러면 어쩌나 걱정이 될만큼 차가운 바람에 당황했다.

꼭 메두사의 저주 같았다.

예레바탄에서는 도저히 힘을 쓸수 없어 낯선 이방인의 틈을 노렸던건지도...

이 도시에서 돌로 변해버린다면!\나는 기꺼이 그곳에 오래 오래 서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메두사여!

그대 노여움을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길...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13. 09:35

술탄 아흐멧 1세 자미.

2012년 이스탄불을 처음 방문했을때

아쉽게도 이곳 내부를 못봤었다.

이스탄불에 머무는 동안 한번쯤은 보겠지 했는데 어찌하다보니 결국 내부를 못보고 돌아와버렸다.

아마도 그게 내내 마음에 남아있었나보다.

아테네에서 이스탄불로 넘어와서 처음 간 곳이 이곳인걸보니...

 

블루 모스크란 별칭을 가지고 있는 이곳은

자미 내부 창문을 장식하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이지니크에서 생산된 푸른색 타일이 유명하다.

한낯의 햇빛을 그대로 흡수되는 이곳의 내부는

왜 이곳이 꿇어 엎드리는 "자미"인지를 실가케한다.

그들의 신에 대한 경외심이 때문이 아닌 쏟아지는 빛이 주는 경외심 때문에 무릎이 저절로 꺾인다.

그리고 엄청난 인원의 관광객들에게 또 한 번 무릎이 꺽이고...

   

블루모스크는 내부와 외부에서 느낌이 너무 달라 개인적으론 좀 당혹스러웠다.

외부의 모습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수도원처럼 고요하고 장중한데

내부는 여기저기에서 수근대는 느낌이다.

햇빛때문인지, 사람들 때문인지, 기도하는 소리 때문인지는 명확히 모르겠지만...

(어쩌면 내가 이곳에서 환청을 듣었던건지도!)

예전에는 정해진 기도 시간엔 광관객이 아예 들어가지 못했던 모양인데

지금은 구별없이 오픈되어 있는 것 같았다.

자미 안쪽의 기도하는 곳은 오로지 "only man"의 공간이라 여자 관광객은 들어갈 수가 없다.

(남자 관광객들은 자유롭게 들어가더만...)

현지 여자들도 기도하기 위해선 자미 외벽에 별도로 설치된 공간만 이용할 수 있다. 

신기한 건,

검은 히잡으로 몸피를 가리고 기도하고 있는 여자들을 보면

그 모습이 그대로 하나의 종교처럼 느껴진다.

가만히 그 옆에서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하고 싶어지는 마음.

나는 그때 그들 옆에서 어떤 간절함을 기도하고 싶었을까?

블루모스의 햇빛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상태로

나는 묻고 또 물었다. 

왜 나를 이곳을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그리워했을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할 이유는 없을 거다.

지금도 그곳엔 내가 남겨둔 내가 나를 계속 부르고 있다.

빨리 돌아오라고...

기다리고 있다고...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9. 25. 04:06

아테네 산티그마광장에서 아침 7시 20분에 출발하는 공항버스 X95를 다행히 탔다.호텔 조식 메니아는 아니지만 결국 아테네 판호텔 조식은 한번도 못먹고 말았다. 그렇게 그립던 이스탄불에 도착한 첫느낌은 2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 오늘만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너무 쌀쌀해서 깜짝 놀랐다.2년 전엔 왔을땐 너무 더워서 긴팔옷을 거의 안입었었다.그 생각만하고 긴옷을 위아래 하나씩만 가져왔는데 이대로라면 조카들이 걱정이다. 내일은 날씨가 좀 괜찮았으면 좋겠는데...

술탄아흐멧의 호텔들이 거의 비슷하긴 하지만 여기 ILKAY 특히 더 심한것 같다. 동생이 다른 호텔로 옮기자는데 일단 오늘 하루 자보고 결정해야  할 것 같다. 동생이 충격을 받은것 같은데 어쩌나... 짐을 대층 두고 트렘길 을 따라 술탄아흐멧광장으로 출발했다. 블루 모스크로 불리는 술탄 아흐멧 1세 자미를 둘러보고 동양호텔 옆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예레바탄 사라이도 들렀다. 두번째 보는 메두사의 머리인데도 섬뜩함은 여전했고 어쩐지 물은 좀 줄어든것 같다. 지하저수조인데도 아침과 오후의  지하저수지는 놀라울만큼 그 느낌이 다르다. 장엄함은 아침이 더 컸던것 같고 오후엔 왠지 사악한 느낌이 강하다. 아마도 사람의 흔적이 크게 작용한게 아닐까??? 

술탄아흐멧을 돌아다니다 마켓에서 필요한 것들을 몇가지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물론 한번에 찾아오지는 못했고! 조카들 샤워하는걸 도와주고 씻었더니 10시가 다 됐다. 동생은 샤워실의 열악함때문에 다시 한숨이다. 정말 숙소를 바꿔야 하나???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11. 06:32
오늘은 시간 여행이다!
개인적으로 박물관이나 옛 궁궐터를 오래 걸어다니며 보는 걸 정말 무지 좋아한다.
아마도 그게 "길"의 연장선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길을 뚜벅뚜벅 내 두발로 걸으면서 넘나든다는 건,
늘 생각하는거지만 참 뭉클한 축복이고 행복이다.
(그래서 꿈꾸는 여행 중의 하나가 "유럽 박물관 투어"다.)
더더군다가 이스탄불이 너무 이쁜 건,
술탄 아흐멧에서 한 정거장만 걸어가면
(트램따라 걸어가는 이 길도 참 이쁘고 재미있다)
고고학 박물관과 고대 동방 박물관, 도자기 박물관 세 곳을 한꺼번에 볼 수가 있다.
요금은 통합 입장료로 10TL.
일단 들어가면 모두 한 곳에 모여있어 티켓을 다시 보여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고고학 박물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곳.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 석관이 있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그런데 알려진 것과 달리
이 석관의 주인이 알렉산더가 아니라는 설도 있다.
BC 333년 알렉산더가 이수스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친 뒤 이브달로니모스를 왕으로 만들어줬는데
이 석관이 바로 그 사람의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브달로니모스는 알렉산더의 후견으로 왕이 된 사람이라
자신의 관에도 평생의 은인인 알렉산더의 모습을 새겨넣은 것이라고.
(어느게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암튼 분홍빛을 띠는 대리석은 무지 아름답고 조각들의 정교함에 내 손이 다 떨릴 정도다.
조명과 명암, 채도의 배려가 눈에 띈다.
어두운데도 유난스럽지 않게 돋보이는 석관은
조각의 작은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보여지도록 전시되어있다.
우리나라 박물관에서 반사광때문에 가오리눈이 된 적이 많아서
이런 배려를 보니 참 민망하게 감동적이기까지했다.



이곳은 유난히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들이 많다.
처음엔 신기해하면서 이곳저곳 매혹되서 들여다 봤는데
또 나 혼자라 등골이 서늘해져 버렸다.
급기야는 대리석상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오는 듯한 어처구니 없는 착각까지도...
이 현실적인 비현실감이란!
(어이없겠지만 경험할 당시엔 무지 섬득하더라)



고대 동방 박물관!
고고학 박물관 바로 앞에 있는 건물로
터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각지에서 출토된 고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벽화들과 청동상, 스핑크스와 미라를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
무덤에서 출토된 것들이 대부분인듯.
역시나 좀 무섭긴 했지만 귀염성있는 청동상들이 가끔씩 나타나줘서 다행스러웠다.
아주 오래된 유물인데도 조각의 표정이 다양해서 보면서 많이 놀랐다.
아무래도 고대 사람들이 지금 우리보다 표정이 훨씬 더 풍부하고 밝았던 것 같다.



왼쪽편이 위치한 도자기 박물관은 처음에 입구를 못 찾아 혼자 헤매고 있었다.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손가락으로 바로 옆을 가르킨다.
길치는 또 민망한 표정으로 "thank you!'를 연발할 수밖에...
(하필 그렇게 찾던 입구가 바로 앞에 있을걸 뭔지. 에효~~)
이곳엔 12~20세기까지 셀주크, 오스만 제국의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 16세기 이즈니크 도자기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전시품이라는데
가사 및 살림에 문외한인 나는 거의 눈뜬 장님 수준이다.
그래도 이쁜 그릇(이게 딱 내 수준이다)을 봐서 나쁘진 않았다.
이 그릇들에 밥 먹으면 정말 맛있겠다는 무지 원초적인 생각도 잠깐! ^^
전시실이라는 느낌보다는 집을 개조한 것처럼 느껴졌는데
(문턱이랑 창문의 위치도 그렇고...)
술탄의 별관으로 쓰였던 곳이란다.
1472년에 건립됐다는데 그렇다면 보존을 상당히 잘 한 것 같다.

시간을 들여서 보자면 아마 한나절로도 모자라겠지만
여행자의 눈은 가능하면 많은 것을 담고 싶은 욕심이라
고작 반나절로 이 멋진 시간 여행을 마무리했다.
나중에 이스탄불에 다시 가게되면
이번에는 꼭 해지는 오후에 이곳을 찾아보리라!
지는 해를 받은 대리석들이 어떤 빛을 띄는지 꼭 보고 싶어서...
차가운 돌의 따뜻한 끌림.
그걸 다른 시간의 품에서 꼭 한 번 확인하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10. 05:40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도착한 곳은 예레바탄 지하 저수지(Yerebatan Sarinci, 10TL).
8시 30분부터 관람객을 받는 이곳을 먼저 보고 박물관으로 이동할 작정이다.
솔직히 말하면 메두사의 머리나 보고 나오자는
참 겁없고 건방진 생각으로 들어갔었다.
그런데 막상 계단을 통해 내려가니 걸음이 저절로 멈춰진다. 
웅장한 음악이 물과 벽, 천정을 통해 공명되는 소리는 너무나 장엄하면서도 엄중했다.
마치 신의 영역에 들어가는 듯한 몽환적이고 묵시론적인 느낌. 
이른 아침이라 관람객이 적어서였는지도 모르지만
그 한적한 고요와 웅장함에 덜컥 겁이 나서 몸이 움츠려졌다.



6세기 비잔틴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건설한 지하 물 저장소.
예레(yere)는 '땅에'라는 의미고 바탄(Batan)은 '가라앉다'는 뜻의 터키어란다.
외적의 침입이 빈번했던 이스탄불 통치자의 물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설물.
이곳은 "지하궁전"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저수지의 전체 크기는 길이 140m, 폭 70m, 높이 9m로
한번에 무려 8만 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물은 도시 북쪽으로 20km 떨어진 베오그라드 숲에서 공급된단다.
지하 저수지는 28개의 원주가 12줄씩 모두 336개의 대리석 기둥으로 지탱되고 있는데
19세기말에 안타깝게도 90개가 없어졌다고 한다.
(이 거대한 대리석을 도대체 어떻게 가져갔을까????)
실제로 들어가 보면 잘 정렬된 기둥 때문에 마치 고대도시의 궁전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내부는 시원하다 못해 오히려 으스스한 한가마저 감돈다.



이른 아침에 그것도 혼자서 가장 안쪽에 있는 메두사의 머리를 찾아가는데
머리카락이 다 주삣거린다.
사실은 그냥 나갈까 하다가 다른 관광객이 지나가길래 소심하게 바짝 붙어서 따라갔다.
(그 관광객들 이 사람 뭐니? 했을거다...^^)
1984년 보수공사 때 지하에 쌓여 있던 진흙을 치우다가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메두사의 머리!
지금도 그 용도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단다.
전부 2개인데 하나는 옆으로 서 있고 하나는 거꾸로 누워 있다. 
신비롭도록 정교하고 아름답지만
왠지 오래 바라보기가 두렵다.
그대로 돌이 되버리는 건 아닌가 싶어서...
(특히 거꾸로 서 있는 메두사의 머리는 그 눈을 오래 보기가 어렵더라)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래도 괜찮았겠다 싶다.
아니 좀 오래 대면하고 있을 걸 후회도 된다.
돌이 돼서 터키에 남아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텐데...
그리움이...
너무 깊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9. 19. 00:45

오스만 제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권력을 지녔을 때 술탄이 거주했다는 본궁.
보스포러스 해협을 따라 서 있는 톱카프 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심장과 같은 곳이었단다.
이곳은 아야소피아, 돌마바흐체 궁전과 함께 아침 일찍부터 관람객이 줄을 서는 곳으로 유명하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9시 개관 시간에 맞춰 서둘러 궁전을 찾았다.
처음에는 '새로운 궁전' 이라 불렸다는데 정문 앞에 거대한 대포가 설치되면서
문에 대포가 있는 궁전이라는 의미의 톱카프 궁전이 됐다고 한다.
톱카프 = 토프(대포) + 카프(문)
톱카프 궁전은 1856년 돌마바흐체 궁전이 세워지기전까지 제국의 본궁으로써
위엄과 품위를 유지했다.




톱카프 궁전은 각각 용도가 다른 4개의 정원을 가지고 있다.
출입문에 해당하는 '제국의 문(or 황제의 문)' 바로 뒤의 제1 정원은 개방 공간으로
사이프러스같은 키 큰 나무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왼쪽편에는 성소피아 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총주교좌 성당이었던 성 이레네 교회가 서있다.
제 1정원 끝에 궁전의 본문인 '예절의 문'이 있고 매표소가 나온다.
시내를 감시했었다는 정의의 탑도 제 2 정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제 2 정원은 국가행사를 치르던 공간이라는데
한켠에 톱카프 궁전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는 궁전 모형이 있다.
따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하는 하렘(Harem)의 입구도 제 2 정원에 있다.
하렘은 '금지된 장소'라는 뜻으로 술탄과 관련된 여자들이 거주하던 금남의 장소다.
밖에서 건물의 내부를 볼 수 없도록 철저하게 설계되어 있고
한번 하렘의 여인이 되면 죽기 전까지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단다.
아름다움과 화려함보다 실제로 보면 무척 소박하고 차분하다.
개인적으로 창문에 있는 굵은 쇠창살을 보면서 처연하고 안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곳이다.
한때는 개인적인 관람조차 허용되지 않고
가이드 안내에 따라 그룹 관람만, 그것도 일정 인원 이상은 받지 않아 특히 몇 시간씩 줄을 서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하다.
(하렘에서 노부부가 나란히 앉아서 카메라와 안내 책자를 보는 모습을 우연히 봤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행복의 문'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제 3 정원은 술탄의 알현실(Arz Odasi)이 있는 곳으로
주로 외교 사절을 만나거나 국가 행사가 치뤄졌던 곳이다.
술탄의 도서관과 톱카프 궁전의 자랑인 보물 전시실도 제 3 정원에 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엄청난 보물들이 보관된 곳이라는데
보석에 문외한이라서 86캐럿 다이아몬드를 봐도 그렇게 감동적이거나 황홀하지 않았다.
전시된 보물들은 모두 진품이라던데...



제 4 정원은 다른 정원과 다르게 특별한 문이 없이 제 3 정원 뒤에 바로 이어진다.
규모도 다른 곳에 비하면 아주 작은데 술탄과 가족의 개인 공간으로 일종의 휴식공간이었단다
실제로도 제 4 정원에서 내려다보는 주변의 풍경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금색 지붕을 지닌 이프탈리에라는 건물에서 바라보는 해협 풍경은 그대로 그림같다.
파란 하늘과 멀리 보이는 파란 바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 보이는 신시가지 모습은
관람객의 발길을 그대로 묶어둔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좋은 풍경을 향해 쉴새없이 카메러셔터 누르기에 여념이 없다.
할 수만 있다면 그대로 훔쳐오고 싶은 하늘색과 바다색이었다.



톱카프 궁전을 나오면 잊지 말고 귈하네 공원까지 들어가보길 권한다.
여유를 가지고 공원끝까지 천천히 걷다보면 제 4 정원에서 본 그림같은 풍경을
조금 더 가까이어서 볼 수 있다.
길 끝에 있는 노천 찻집에서 아이란을 시켜 놓고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을 내려다봤다.
덕분에 주황색 화물 기차가 낚시하는 강태공들 뒤로 지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말할 수 없이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나는 여행 내내 터키의 하늘과 바다색에 완전히 중독됐다.
그건 설명할 수 없는 색이고 느낌이고 감동이었다.
달(月)과 색(色)!
이번 터키 여행 내내 나를 쥐고 흔들었던 두 단어.
그 느낌을 10%라도 이곳에 기록할 수 있을까?
단언컨데 그건 불가능하다.
도저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여전히 그 둘에 미쳐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방법이 없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