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14. 05:42
카리예 박물관을 나와서 예윕 자미를 가기 위해서
또 다시 열심히 헤맸다.
역시나 적재적소에 나타나서 도움을 주는 터키 현지인 덕분에
1.25 TL 로컬 버스(동네 마을 버스?)를 무사히 탈 수 있었다.
안내 책자에도 노선이 자세히 나와있지 않아 어떻게 가야하나 혼자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제 헤매고 걷는데 재미를 넘어 쾌감이 느껴질 정도다.
(이런 길치도, 이런 저질 체력도 너끈히 받아주는 도시, 터키~~)

 



에윕 술탄 자미(Eyup Sultan Camii)!
이슬람의 예언자 무하마드의 애제자 에부 에윕 엔사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단다.
(당연히 누군지 모른다. ^^)
에윕이라는 인물은  674~678 년에 성전의 기수로 활약했고
콘스탄티노플 공략 때 전사했다고 책에 써있다.
그가 죽은 뒤 8세기나 지나 그의 무덤이 발견됐고
메흐메트 2세가 그 자리에 자미를 지을 것을 명령해서 지금의 에윕 술탄 자미가 탄생됐다.
그 이후 이곳은 새로운 술탄이 즉위할 때 성검 수여식이 거행되는 국가적인 장소로 사용됐다.
지금도 에윕의 무덤에는 참배를 위한 발길이 계속되고 있단다.
이런 성스러운 이력때문인지
다른 자미보다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고 코란을 독경하는 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특히나 복장규정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여자는 스카프를, 남자는 긴바지를 꼭 입고 가야 한다는데
그날 복장이 반바지에 티셔츠라서 쫒겨나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자미 가운데와 벽 주위에는 발을 씻는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이슬람 자미의 특징 중 하나는 꼭 발을 씻고 들어가간다는 거!)



내가 찾은 날이 일요일이었는데 아마도 결혼식이 있었는지
여러 쌍의 신랑, 신부와 가족들로 자미 마당이 북적였다.
그 틈을 이용해서(?) 자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행히 쫒겨나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자니
왠지 나까지도 숙연해지고 간절해진다.
코란을 읊는 사람들의 눈빛은 아이처럼 맑고 깨끗했다.
1층 마나렙 근처는 오직 남자들만 기도할 수 있는 곳인지 여자들이 한 명도 없다.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통해 2층에 올라가야 에삽을 쓴 여자들이 기도하는 곳이 보인다.
(터키의 남존여비 사상은 우리나라보다 은근한듯 하지만 오히려 더 심한 것 같다)
창을 통해 비치는 햇빛 속에서
자미의 밝은 곳은 찬란했고, 어두운 곳은 고요했다.
왠지 더 오래 있기에는 복장이 너무 미안해서 서둘러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혼났다.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님(랍비?)이 반바지 입은 나를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라고 하신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몇 번씩 숙였는데 이해를 하셨는지는 모르겠다.



에윕 술탄 자미를 오른편에 바짝 두고 피에르로티 찻집을 향해 산언덕을 올라갔다.
피에르로티 찻집(Pierre Loti Kahvesi)!
프랑스 작가 피에르로티가 여기서 바라보는 풍경을 너무나 좋아해서
이곳에서 차를 마시면서 작품을 썼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찻집까지 케이블카로 쉽게 올라갈 수 있지만
가능하면 꼭 걸어서 올라가길 권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골든혼과 주변 경치는 안내서의 말과 피에르로티의 고백이 거짓말이 아님을 증명한다.
촉각까지 살아 있는 풍경이랄까!
바라보고 있으면 시선에 따라 몸의 일부가 톡톡 말을 건다.
바람도 그려질 것 같고, 햇빛도 만져질 것 같은 풍경들.
길 양편에 있는 공동묘지를 따라 걸어서 올라가고 걸어서 내려오다보면
죽음이 일상의 공간처럼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



터키 여행 중에 의외의 곳에서 느닷없이 공동묘지가 나타나고는 했는데 
그걸 바라보는 시선은 두려움이나 꺼림직한 고개 돌림이 아니라
오히려 친근함과 평온한 고요였다.
이곳도 그랬다.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무덤임에도 나는 그네들이 다정했다.
그리고 여기에, 다정한 그네들 옆에 내 자리도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도 품었다.
이곳에서라면 결코 깰 수 없는 잠도 기꺼이 달게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얗게 비어 있는 묘비명에 슬쩍 내 이름을 써두고 싶었다.

죽음은 때론 불같은 질투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2. 3. 05:49
 
<염쟁이 유씨>

극 본 : 김인경
연 출 : 위성신, 박정석
출 연 : 유순웅, 임형택, 정석용
일 시 : 2010.11.10 ~ open run
장 소 : 대학로 이랑씨어터


2004년 청주에서 초연돼서 연극계에 무명의 유순웅을 알린 작품이다.
3년 전쯤인가 대학로에 봤던 연극을 정말 오랫만에 다시 관람했다.
1인 모노극.
원만한 내공과 집중력이 없다면 90분의 시간을 꽉 채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테다.
7년 동안 "유순웅"이란 배우에 의해 공연된 이 작품이
이번엔 임형택, 정석용까지 가세해 1년 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캐스팅 공지가 안 돼서 공연장을 찾아가면서도 누굴까 궁금했는데
초반부는 아무래도 유순웅 배우가 이끄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다행이었다.
유순웅 배우의 염쟁애 유씨를 꼭 다시 보고 싶었던지라...



망자를 염하고 입관하는 그 모든 과정들,
엄숙하고 낯설고 그리고 조금은 두렵고 아득한 절차들이
이 연극 속에서는 일상처럼 그대로 녹아있다.
삶과 죽음은 서로 가깝다지만 산 자들에겐 여전히 멀게만 여겨지는 죽음.
그래서 엄숙하고 안타깝다.
낯선 장례 용어들.
시신의 팔다리를 주물러 펴주는 "수시"부터
시신을 누위는 "시상판"과 숨물을 빼내는 "칠성판",
시신을 몸을 씻기는 "향탕수", 시신의 입에 구슬이나 불린 쌀을 넣는 "반합"
시신에 수의를 입히는 "소렴"과 소렴이 끝난 시신을 대렴포에 감싸서 입관을 하는 "대렴",
이 모든 습염(염습)의 장의절차은 낯선 이국으로의 여행보다 오히려 더 생경하다.
과장되고, 부장되고 사장되고 회장되도 결국은 송장으로 마감하는 게 세상이라고 말하는 염쟁이.
그가 말한다.
사람들이 다 잘 살려고 하는 이유가 뭐겠냐고.
다 잘 죽으려고 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7년 내공의 유순웅 배우는 능수능란한 광대가 되어
걸판진 모노극 한판을 90분 동안
때론 장엄하게, 때론 절절하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놀아난다.
배우에 의한 일방적인 모노극이 아니라
관객 전체를 아울려 문상객으로 만드는 한판 어울림이기도 하다.
전국을 유랑한 7년의 시간동안
대본 수정이 거의 없었다는 것도 이 극의 탄탄함을 알게 한다.
그리고 배우의 손놀림 하나까지도 정성스럽다. 
특히나 소렴이 끝난 망자의 몸을 대렴포로 감싸는 모습은
흡사 종교의례를 보는 듯 성스럽기까지 하다.
1인 15역의 변화무쌍함은
동일인이면서 타인을 보기에 충분했으며
그 모든 모습 속에 하나의 인간을 들여다 보게 한다.
이 연극이 보여주는 건,
살고 죽는 게 아니라 "삶" 그 자체였음을 거듭 깨닫게 되면서...
아버지이자 아들이자 조폭이자 귀신이자 장사꾼 염장이자 치매 아비의 관을 앞에 둔 자식들.
이 모든 아귀다툼스러운 모습이 다 나였으며, 내 삶의 축소판이었다.
문득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그만 창피해져버렸다.



...... 죽어서 땅에만 묻히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묻히지 못하면, 그건 헛 죽는 거여.
또 살아남은 사람들도 한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문제는 중요한 거야
가슴 속에 안아 담느냐, 그냥 구경거리로 흘리느냐,
억울한 죽음을 앞에 두고 구경꾼처럼 보는 사람들은
결국에는 자기 죽음도 구경거리가 되고 마는 거네 ......
염쟁이 유씨는 말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남아있는 삶을 좀 더 의미있고 뜻깊게 살겠다는 다른 표현이라고.
아비의 시신을 첫 염으로 시작해서
아들의 시신을 마지막 염으로 마무리하는 염쟁이 유씨. 
깨끗이 씻겨 입관을 마친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
"죽는 다는 건 말이다. 생명이 끝나는 거지, 인연이 끝나는 게 아니거든"
산다는 건,
누군가에게 정성을 쏟는 거란다.
그러니 죽는 것 무서워들 하지 말라고.
죽는 것 보다 잘 사는 게 더 힘들고 어려운 법이라고...

"편히들 가시게~~~"
아들의 입관에 함께 해준 문상객에게 남긴 유씨의 마지막 말이
꼭 이 다음에 생을 마감할 때 그렇게들 하라는 당부같아 가슴이 뻐근해진다.
편안히 갈 수 있게 잘 살라고...

나는 지금 무엇에 정성을 쏟고 있는가?
내가 내게 묻는다.
진심으로 편안하게 가고 싶다고....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1. 21. 05:40
스웨덴의 유명한 과학자였다고 한다.
스베덴보리(1688~1772)
자연과학을 연구하던 사람이 1745년 어느 날,
돌연 과학자로서의 삶을 그만 두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시작된 사후세계로의 탐험과 저술 활동.
이 사람은 27년 동안 지상세계와 사후세계를 자유자재로 오고 가면서
그 곳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라는 신의 소명을 받았다고 한다.
종교서적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편역된 책은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이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스베덴보리의 실제 저술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철저히 기독교적으로 쓰여진 이 책은,
그러나
천국이라는 곳이 기독교인만 들어가는 곳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논리가 무척 흥미롭고 공감간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꿈도 의망도 없는 절망적인 상태의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지 몰랐습ㄴ;다. 때론 하나님을 저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스베덴보리의 영계탐험기를 읽고, 나는 더 이상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스베덴보리를 알고 나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천국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천국에 가면 나는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닌 것도 알았습니다. 나는 그의 저서를 읽은 후, 죽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 헬렌 켈러




"죽음" 그 이후에 세상에 대해
스베덴보리는 자세한 설명과 함께
그 곳에서 만난 선영과 악령들과의 대화까지도 기록하고 있다.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쨌든 그 선택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신이 우리에게 준 인간으로서의 권리인 "자유의지"
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인간은 스스로 천국과 지옥을 결정한다.
스베덴보리가 저술한 실제 책은
성경처럼 장과 절고 구별이 되어 있다고 한다.
<천국과 지옥? 제 1부 천국편 42장 414절
이렇게...



"죽음"에 대해 갖는 인간의 두려움과 공포
편역된 이 책을 가지고 뭐하고 이야기하기에는 부족하다.
스베덴보리가 직접 쓴 원저를
어느 날은 내가 읽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딱히 종교적인 믿음이나 혹은 세상적인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어쩌면 필요에 의해서.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9. 29. 05:52
 <인생 수업>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 데이비드 케슬러


인생 수업
 

 

우연히 병원 도서관에서 손에 잡았던 책입니다.

(내가 일하는 곳 도서관에서 이렇게 참 좋은 책들이 볼 수 있어 참 행복하고 다행입니다.)

먼저 작가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라고 하네요.

그녀는 192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세 쌍둥이 중 첫째로 태어났답니다.

어릴 때 이웃의 아저씨가 죽기 전 마을 사람들을 불러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자신 없이 농장을 꾸려 나가는 것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하는데 이 경험이 그녀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고 하네요.

정신의학을 공부하던 중에는 의료진들이 환자의 심박수, 심전도, 폐기능 등에만 관심을 가질 뿐 환자를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고 세미나를 여는 등, 세계 최초로 호스피스 운동을 의료계에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죽음의 여의사라 부른다. 30년 이상 죽음에 대한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나를 죽음의 전문가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내 연구의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핵심은 삶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 있었다."


그런 생각 해 보신 적 있으시죠?

내가 갑자기 죽는다면...... 그걸 어느 날 알게 된다면......

처음엔 “충격”적일 테고 그러다 “부정”하게 될 겁니다. 왜 나인가 하고 수없이 “분노”하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거래”를 하고 싶어질 겁니다.(어떤 의미에서든......)

그러다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될 테고 그러면 자신에 대한 깊은 “우울”의 단계에 빠지게 되겠죠. 그러다 아~~ 그래...... 하고 “수용”하게 되고...... 최후의 순간엔 오히려 편안해지거나 아님 그 반대로 발악의 끝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기에 당연히 죽음의 순간 또한 삶의 순간이라는 걸 자꾸 잊게 됩니다.

타인의 죽음은 죽음이고, 내 죽음은 죽음이 아닐 수 있다면...

그렇다면...

우린 이미 살아있는 사람이 아닐 거예요...


이 책, <인생 수업>

인생이라면 즐겁고, 활기차게 살라고 말해야 하는 건데, 이 책은 오히려 죽음에 대해,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인생을 배우라네요.

“당신은 왜 지금 그렇게 살고 계십니까?”

“왜 좀 더 열심히 살지 않습니까?”

“나처럼 돼야 당신들 정신 차리겠습니까?”

이 책은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수업... 혹 당혹스러울지도 모르겠네요.


죽음을 앞 둔 사람들은 말합니다.

삶은 기회이자, 아름다움이며, 놀이라고요. 그런 삶을 붙잡고, 감상하고, 누리라고 간절히 이야기 합니다.
또한 삶이라는 건 배워야 할 것들로 가득하고, 한 번의 삶으로 그것을 전부 배울 수는 없지만, 진정으로 살아 보기 전에는 절대로 죽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부조리하고, 하찮고, 무의미한 삶 속에서 즐겁지 않은데도 웃고, 마음이 맞닿지 않는데도 관계를 맺고, 절망적이지만 밥을 먹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것을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4가지 L"을 우리에게 건넵니다.


살고(Live),

사랑하고(Love),

웃고(Laugh),

그리고 배우라(Learn) 고요...


누구나 죽음을 마주하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합니다.

이 배움은 삶을 더 의미 있게 해주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배움을 얻기 위해 우리는 꼭 삶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할까요?

지금 이 순간 그 배움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없을까요?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배움.

그것은 두려움과 용서입니다.

사랑과 관계에 대한 배움입니다.

그리고 놀이와 행복에 대한 배움이구요...


저자는 말년에 이르러 온몸이 마비되어 휠체어에서 고통스런 시간들을 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마지막 순간에조차도 그녀가 간절히 원하는 일들을 했다고 하네요.

가슴 뛰는 삶을 위해서 여러분은 지금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섬뜩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 마라!”


정말이지,

열심히

살고, 사랑하고, 웃고, 배우고 싶습니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7. 9. 00:21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 한국어 공연

When  : 2009.07.04. ~ 2009.08.02.
Where :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Cast   : 로미오 (임태경, 신성록) / 줄리엣 (김소현, 박소연)
           벤볼리오 (이건명) / 머큐시오 (정재헌, 에녹) / 티발트 (김승대, 김보강)
           몬테규 부인 (강효성) / 케플렛경 (김진태) / 케플렛 부인 (신영숙)
           유모 (김현숙) / 신부 (류창우) /  영주 (임현수, 심재현) / 죽음 (김윤경, 최승희)




7월 7일 예술의 전당을 찾다
예전에 프랑스 오리지널 팀이 왔을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다미앙 사그리의 로미오를 봤던 기억이 새롭다.
궁금증 반, 그리고 우려와 걱정 반
정확히 그런 심정으로 찾은 오페라 극장

최고의 목소리로 연주하는 사람
나의 nella fantasia!
크로스 오버 테너 "임태경"
73년생인 그가 이번에 살아내야 할 인물은
17살 로미오! 
(왠지 막막하다.... ^^;;) 
그가 무대 위에서 조심성을 더 빨리 던져버릴 수 있다면 좋겠다.
1막과 2막의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이 무대에 서 있는 것 같다.
연주와 연기가 조화되는 그 순간을,
지금보다 더 일찍 무대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줄리엣과 더블로 부르는 노래들은 역시나 "임태경"스러웠다.
함께 노래하는 사람을 거의 완벽하게 서포트해주는 그래서 더욱 돋보이는 그, 임태경!

신예 박소연의 줄리엣은 괜한 걱정을 했다 싶게 좋았다.
목소리도 예뻤고 그리고 딕션도 훌륭해서 앞으로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마도 기라성 같은 대선배 박소현이 부담스럽진 않았을까?
그래도 임태경의 로미오만큼이나 김소현의 16살 줄리엣도 좀 민망한 상황이긴 하다. ^^ ;;

언제나 자기 역할을 100% 이상 해주는 이건명의 벤볼리오~~!
<렌트>, <유린타운>, <맘마미아>, <갬블러>, <틱틱붐>의 이건명.
<나생문> 연극으로의 외출이 그에겐 분명 좋은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도 당신 목소리의 청춘(?)은  여전했답니다. ^^

브로드웨이에 우리 공연 <마리아 마리아>를 올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슈퍼 히어로 강효성!
분장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그 카리스마는 여전하시네요.
그런데 이상하게 난  강효성씨의 딕션이 만족스럽지 않다.
감정이나 표현력, 연기도 너무 좋은데 잘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속상하다.
내 귀가 이상한건가????

티발트에 의해 죽음을 맞는 머큐시오역의 정재헌이란 배우는 처음 공연을 본 건데 괜찮았다.
죽는 장면이 약간 부자연스럽고 과장된 듯한 느낌이 있긴 했지만...
그리고 미안하지만,
티발트 김보강은 좀 많이 보강(?)을 해야 할 것 같다.
1막과 2막의 솔로곡 듣는데 내가 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

<캣츠>의 신영숙씨는 뭐 여전히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레이디 케플렛을 보여줬고,...
신부역의 류창우씨는 몸이 아팠던 걸까?
목소리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 1막 후반부 <사랑으로>의 도입부가 순간 무너져버렸다.
속상했다. 많이....

죽음....
존재감에 혼란이 왔다.
어떤 장면에서는 푸닥거리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이 역할은,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순간순간 강한 임펙트를 남겨야 하는데
집중과  풀어짐이 너무 모호했다.
특히나 1막에서 로미오와의 장면은
그를 부축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로미오의 운명을 손아귀에 쥐고 흔드는 섬뜩하고 서늘한 죽음은 어디로 간거지?



라이센스 공연을 보면,
가사에 대한 안타까움과 실망이 늘 따라온다.
혹시 모두 똑 같은 사람에 의해 번역된 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마저 들 정도로.
애써 운율을 맞춘 것도 아니고, 음절에 딱딱 맞게 단어를 넣은 것도 아니고....
때로는 이런 것들을 교정해주고싶다는 생각이 너무나 간절하다.
이런 오류에 대한 피드백조차도 안 된다는 게 심지어 너무 화가 난다.
그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는건가?
진심으로???


 

우리 공연과 오리지널 공연의 같은 장면이다.
왠지 우리 공연이 많이 어수선하다는 느낌.
<증오>를 부르는 두 가문!
그 노래에 맞춰 댄서들은 오랜 가문의 증오와 미움, 분란을 표현해야 하는데...
어쩐지 한 사람씩 무대에 나와서 학예회 발표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치열했으면... 더 치열했으면....

 

아직 공연이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겠지만
음향의 균형이 좀 안 맞는 것 같다.
배우들의 소리를 때때로 잡아먹고 있다는 느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 라이센스 공연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지.
공연을 보는 내내
민영기, 조정은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생각났다.
이쁜 가사들, 대사들, 그리고 노래들...
그들을 다시 보고 싶다....

 


지금보다
미치도록 치열하고, 눈부시게 아름답기를....
그래서 미스테리한 상태로 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미스테리를 풀어내는 건
정말 너무 힘들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3. 9. 05:38
 

<단 하루만 더> - 미치 앨봄


단 하루만 더

 
미치 앨봄.

잊혀질만하면 한권씩 책을 내는 사람.

우리나라엔 이 책까지 전부 3권의 책이 출판됐고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라와있습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그리고 이 책 <단 하루만 더>

한때 제가 사람들에게 즐겨 선물했던 책도 이 사람 책이었습니다.

이유는, 부담감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과,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혹은 실화임직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의 화술능력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었거든요.

영혼이나 죽음에 대한 그의 동양스런 생각도 친근하게 느껴졌구요.

그의 소설을 함축시킨 단어를 찾으라면 “인연”과 그리고 “관계, 소통”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세상과 따뜻하게 소통함으로써 주위를 변화시키는 신비로움을 만날 수 있었고,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을 읽을 땐 내가 하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행동이 누군가의 생과 사를 결정하게 된다는(결정할 수도 있다는...이 아니라) 섬뜩한 기운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책 <단 하루만 더>에서는,

빙의에 가까운 죽음의 체험과 그 곳에서 만난 죽은 자와의 소통.

그로 인해 새롭게 제 2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왕년의 잘 나가던 시절”

그 시절이 없거나 그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과거의 그 “왕년”에 발목이 잡혀 지금 서서히 무너져 가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가족의 해체를 경험했던 그의 손엔 지금 한 장의 사진이 들려있네요.

사진 한 장으로 통보 받은 딸의 결혼 사실.

어른이 된 그는 또 다시 가족의 해체를 느끼며 결심을 하게 되죠.

그리고는 고향으로 차를 몰고 떠납니다.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에서 도망쳐 나온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꿈을 키워준 야구장을 찾아가 높이 솟은 물탱크 앞에 지금 서 있습니다.

하나, 둘, 셋!

허공을 향해 뛰어내린 그의 눈앞에 뭔가가 스치듯 지나갑니다.

이미 몇 년 전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당신의 어머니가...

아픔과 상처 속에서 깨어난 그 사람은 어머니를 만나 다시 어머니의 아들로 돌아가 함께 대화를 하고, 산책을 하고, 어머니가 준비해 주는 식사를 합니다. 따뜻한 온기 속에서.

그는 어머니와 함께 한 사람, 한 사람 평온하고 아름답게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간호사에 미용사, 청소부이기도 한 어머니는

그들의 마지막을 함께 준비해주죠.

어머니는 모든 걸 포기한 아들에게 “죽음”을 통해 “삶”을 깨닫게 해 주고 싶었던 겁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도록, 그래서 다시 시작하고 싶도록 말이죠.

어머니는 마치 죽음의 강을 건너 주고 배 삯을 받는다는 그리스 신화 속 뱃사공 “카론”을 떠오르게 합니다.

배 삯으로 건네지는 한 닢의 동전 대신 그녀는 아들에게 새 삶의 약속을 무언 중 받아내고 있는 셈이죠.

돌아간다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들 또한 어머니와 보낸 그 짧은 하루의 시간동안 진심으로 체화하게 됩니다.

자, 이 정도면 아주 성공적인 deal이 이루어진 셈이네요.


모는 가족의 이야기는 결국 다 “유령 이야기”라고 합니다.

오늘 내 모습으로 인해 내 가족 누군가가 통곡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살아 있든, 혹은 죽어 있든 내가 그 사람을 다시 유령으로 만들어 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당신은 누군가의 품 안으로 뛰어 들어가 통곡할 자신, 혹 있으세요?

살면서 때론 유령을 만나는 것보다 누군가의 앞에서 통곡하게 될까봐 그게 더 두렵고 무서운 게 사실입니다.

제 인생 하나 책임질 깜냥조차 못되는 허접인생처럼 취급될까 두려워 어쩌면 울음을 꾹꾹 참게 되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속으로 담기는 울음의 폭발력을 아세요?

장담컨대 그 위력은 한 사람의 인생은 뿌리까지 그리고 흔적없이 날려버릴 정도죠.

이 책을 만나고 난 후의 느낌은,

이제 정말 잘 돌아가야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통곡”을 통한 “정화”가 필요하다면 혹은 찾아온다면 도망치진 말아야겠다는 사실도요.

세상의 모든 인생은 짧든 길든 결국은 집을 찾아가는 “귀로의 여정”이라는 말, 이제는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살면서 어쩌면 저 또한 그럴지도 모르죠.

인생에서 “단 하루만 더”를 바라게 되는 날이 오게 될지도요.

그런데 그리운 사람, 사랑했던 사람과 단 하루만이라도 더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라면, 그에게는 이미 그 하루가 주어져 있는 셈이라네요.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어떻게 돌아올 것인가”라는 사실이겠죠?

혹 돌아오고 싶지 않다면......

이 말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제가 당신의 편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잘 돌아와 주세요...

당신의 “되돌아옴”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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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책거리2009. 1. 7. 06:26

<책도둑 1,2> - 마커스 주삭

책도둑. 1

이 책은 슬픈 책입니다.
너무나 슬퍼서 잠깐 읽는 사람의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들어 버릴 만큼요.
<전쟁> 그 낯설고 아득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너무나 천진하고 아름다워서 설핏 나도 모르게 전쟁을 꿈꾸게 만들기도 하고, 그러다 몸서리를 치며 악몽 속에서 깨어나 누가 들을까봐 목소리를 죽여 가며 울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절대로 내 울음을 누가 훔쳐보게 해서는 안 되는...

여기,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 아니 뭔가가 있습니다.

바로 죽음의 신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나'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색깔의 변화를 냄새로 음미하면서 가끔 세상에 대한 한 눈 팔기를 통해 작업의 고단함을 잠시 잊기도 합니다. 어느 날 기차 안에서 한 소년의 영혼을 품에 안다 9살짜리 소녀(소년의 누나)를 만나게 되죠.
그 소녀가 바로 우리의 책도둑... 그녀입니다.

주인공 소녀의 이름은 리젤. 남동생을 하얗게 얼어붙은 땅에 묻은 리젤은 친어머니와도 헤어지고 양부모 밑에서 새롭게 생활합니다.(동생의 차가운 무덤 속에서 그녀는 책도둑의 첫 번째 책을 갖습니다)
극악스럽고 항상 욕을 달고 사는 양어머니 로자 후버만과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칠쟁이 양아버지 한스 후버만, 그리고 마라토너 제시 오언스를 너무나 찬양하는 나머지 얼굴에 숯칠을 하고 온동네를 뛰어 다니던 유일한 친구 루니 슈타이너, 그리고 그들의 지하실에 잠시 숨겨 두었던 유태인 막스 판덴부르크..
그리고 그녀에게 책을 훔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시장 부인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생생하며 그리고 정말 삶을 위하여 한 순간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순간이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정직하게 아름다우며, 아름답게 즐거워하며, 즐거워하면서 서로 은밀히 소통을 나누는 너무나 평범하고 소박한 정말이지 딱 우리네 같은 사람들입니다.

굶주림..

우리는 이 책에서 또 다른 이유의 굶주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소녀가 책을 훔치는 이유였던(그런데 솔직히 훔친다는 인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굶주림. 너무나 간절한 책을 읽고 싶다는  굶주림...
소녀는 전쟁 중에도 책과 과자가 놓여있는 탁자에서 아무 망설임 없이 오로지 책만을 집어 들고 나옵니다.
리젤이 읽은 책 속의 활자는 고스란히 말이 되고 그리고 모든 것들을 향한 소통이 되죠.
소녀는 책을 얻기도 하고 그리고 한 사람씩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합니다.
그건 책과 사람의 교환도 아니고 죽음의 신에 의한 거래나 잘못에 대한 댓가도 아닙니다.
그건 단지 전쟁이라는 상황... 그것 때문이었죠.
죽음의 신도 개입하지 못하는 전쟁의 상황.
오히려 죽음의 신은 이 상황이 신물이 납니다. 그래서 시작된 한 눈 팔기의 상대가 리젤이 됐고 우리는 분명 죽음의 신이 화자인 책에서 리젤의 시선으로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리젤의 일기를 들여다 보고 있다는 느낌...
결코 일기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책에서 일기를 읽고 있다는 은밀함과 비밀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글 중간 중간 나오는 그림도 그리고 막스가 지은 책(리젤의 생일 선물도 건네진)에서도 모두 일기를 보고 있다는 착각을 갖게 하죠.
실제로 이 책은 안네의 일기와 비슷한 평가를 받고도 있습니다.
숨겨준 자와, 숨겨진 자의 차이라고 할까요.

작가 마커스 주삭은 나치 독일을 체험한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모티브(끌려가는 유대인의 행렬에 몰래 빵을 주는 장면)로 삼아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1868년생 작가가, 소위 새파랗게 젊은 놈이 자신이 겪어 보지도 않는 전쟁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 낼 수 있다니...
책의 내용보다 이 작가가 더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부러운 생각까지 어쩔 수 없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이 책은 살아남음에 대한 소설이 아닙니다.
그러나 살아남음에 대해서, 그래서 살아가야 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저 또한,
어딘가에서 책도둑으로 다시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음을 고백하게 되네요...

보너스 팁...

역시나 이 소설도 지금 미국에서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한 번역가 정영목님에 대해서도 한 마디..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하는 영미문학 번역가로 <눈먼 자들의 도시>(정영목의 첫 번재 번역작입니다), <눈뜬 자들의 도시>,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이 번역가의 손을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됐죠.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3인의 번역가 중 한 명입니다.(정영목, 이난아, 양억관)
일부러라도 이 분이 번역한 책들은 놓치지 않고 찾아보는 편입니다.
거의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 주고, 그리고 문학적인 표현이나 유머러스한 표현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문장 속에 스며들게 하는 번역가죠.
그래서 이 분이 번역한 책은 일단 기본 그 이상은 된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혹 관심이 있는 분들은 도서관에 있는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을 읽어 보시면 이 번역가의 또 다른 장점과 매력을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멋진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책들도 찾아 읽어 보시라 권해드리면서,
이상 달동네 책거리였습니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31. 06:30

<멋진 신세계>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지난주에 이상하게도 제가 읽은 책들 속에서 오래 전에 읽었던 이 책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기억에 무려 3번씩이나...)

참 신기하죠? (아마도 제게 또 말을 걸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 맨 처음 느꼈던 건, 올더스 헉슬리는 천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세상에 나오는 모든 미래소설과, 미래영화는 모두 이 책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저 역시도 생각합니다.

이 책이요... 1932년 발표된 소설입니다.

그런데 지금 읽어도 대단하다 싶을 만큼 완벽하게 미스터리한 미래적(?)인 글이고 그리고 그만큼 대단히 매력적인 글입니다.(적어도 저에겐)

이런 글을 1930년대 쓸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 과히 평범하고 순탄하지 않게 살았으리라 짐작하게 됩니다. 이 사람의 사망일조차도 존. F. 케너디의 사망일과 같은 날이라 그의 명성에 비해 사망의 기사는 묻혀 버렸다고 하네요.

이 사람은 영화, 그것도 SF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위대한 꿈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터미네이터>, <블레이드 러너>, <데몰리션 맨>, <에일리언>, <AI>, 심지어 <X맨>을 비롯한 지금 세상에 나와 있는 온갖 “맨”들에 이르기까지 이 소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영화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지난 20여년 동안 이 소설의 영화 판권을 따내기 위해 그렇게 고분분투했다고 하는데 드디어 판권을 따내 차기작으로 지금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을 만큼 이 책의 내용은 영화인에게도 꿈, 그 자체의 작품이죠.

사실 저도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답니다.

최고의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아주 인상 깊게 봤었거든요.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너무 앞서가는 내용이라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가 몇 년이 지난 뒤 마니아들의 성원에 의해 재편집의 과정을 거쳐 재개봉하는 이변을 만들어 내기까지 했습니다.

인디아나 존스로 지금은 너무도 유명해진 “헤리슨 포드”가 주연(무척 젊은 시절의 그를 만날 수 있습니다)이었던 인간과 인조인간과의 사투, 그리고 사랑...(절대로 절대로 공상과학적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아름답고 슬프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과히 충격적인 영상과 내용이 아직까지 제 기억에 살아있습니다.

전 원편과 재개봉된 두 편을 모두 봤습니다.

음.... 좋았습니다. 신기했고 그리고 두려웠습니다.

또 다른 형태의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영화였죠.


올더스 헉슬리...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헉슬리는 해박한 지식(제가 꿈꾸는 유토피아적인 인간의 모습이죠^^)과 날카로운 위트, 명석하고 지적인 문체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현실의 다양한 가치가 혼돈 속에서 인간 존재 자체를 완전 분해, 해체하는 과정을 실험적으로 작품 속에서 보여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사람입니다.(천재 확실하죠?)

모든 세계가 철저히 계획되고, 삶 자체가 공장에서 찍어내듯 공산품화 되어 규격화 되어 있다면...

그 세계에서 정해진 계급 하에 배양되듯 인간이 탄생되고 길러지고 있다면...

그리고 그게 자신의 위치인 냥 말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인간들을 보게 된다면...


여기,

어느 누구도 불행하지 않은 시대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아픔이나 배고픔 같은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외로움이나 슬픔 같은 정신적인 고통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고 원하는 모두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곳, 죽음마저 감미로운 멋진 신세계.

이곳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그리고 엡실론까지 다섯 가지 계급으로 나뉘어 시험관 안에서 자기 계급에 맞게 배양되어 태어납니다.

필요에 의해서 똑같은 일을 하도록 만들어진 수십 명의 쌍둥이들. 그들은 정해진 운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회에 순종하면서 자신의 현재 위치가 다른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느끼도록 교육받았고 실제 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수면학습이나 전기 자극 등을 통해 몇 백 번씩 반복하여 학습된 그 내용 그대로요.

어떤 의미에선 그들은 완벽한 유토피아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란 상스러운 단어이며 사랑이란 해서는 안 되는 금지된 행위인 이 멋진 신세계.

이곳에 세 명의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알파계급으로 태어났지만 태아과정 중 하층계급의 실수로 열등한 체형이 된 '버나드'.

알파계급에서 유난히 지적능력이 뛰어나게 된 '엘름홀츠'.

그리고 야만인 세상에서 어머니와 함께 이 곳으로 온 '존'.

다른 사람들과 달랐기에 그래서 그들과 어울릴 수 없었던 세 사람.

결국 셋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에게 맞는 지역으로 추방을 당하게 됩니다..

심지어 존은 자신이 불행해질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기까지 합니다.

불행해질 권리라......

그러나 그런 자유마저도 허용 받지 못한 존이 최후에 선택한 자유는 자살이라는 극단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그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자유의지였기에...

고통 속에서도 행복을 찾길 원했던 유일한 “인간” 존의 마지막 자유의지...

불행해질 권리마저도 거부당한 존의 세상을 향한 마지막 몸짓이 과연 그의 영혼에 평온한 자유를 안겨 줄 수 있었을까요?

그의 죽음이 무의미했다고 누가 감히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모두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현실적인 유토피아든, 생각의 유토피아든 말이죠.

모든 이들이 행복을 누리는 사회, 아니 그게 아니라도 나 혼자만이라도 행복을 느끼겠다는  그런 극단적인 이기주의 유토피아일지라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꿈꾸게 됩니다.

비록 유토피아가 환상과 거짓으로 버무려진 한 순간의 신기루에 불과하다 할지라도요.

그게 다름 아닌 내가 꿈꾸는 것이기에 세상 그 무엇보다 절실하며 현실적일 수 있는 거죠.


이 소설은 포드사가 T형 자동차를 생산해낸 1908년을 기원 1년으로 하여 AF 632년 즉 AD 254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포드는 기독교의 예수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죠. 마치 종말론에 복종하는 사이비 종교 같은 느낌마저 드는 것도 딱 지금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가장 윗부분을 뺀 T를 형상화하고 예배시간엔 “곧 오실 그분의 강림을 위하여” 성배를 들고, “우리가 죽으면 보다 큰 삶이 시작된다”는 영생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또한 현재의 사이비 종교의 그것들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1932년 그 시대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거...

물론 작가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미래사회의 한 단면을 예측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일부는 이미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대의 모습이 그대로 적나라하고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섬뜩함마저 느끼게 됩니다. 열 가지 우울병을 치료한다는 소마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마약에 취해 쾌락으로 도망치는 현재의 모습과도 판막이죠.


생명공학 기술의 발달은 놀라운 속도로 인간 복제 기술을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질 좋은 난자가 거액에 매매되고 복제인간 탄생도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실제로 어딘가에서 복제된 인간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그 실험이 계속 진화(?)하게 되면 언젠가 알파계급이 독점적 위치를 누리기 위해 수백만명의 일란성 쌍생아로 이루어진 보카노프스키 계급을 만들어 낼지도 혹 모르겠습니다.

그런 세계가 만약 당신의 현실이라면....

당신은 뭐라고 이름 붙이고 싶으신가요?

혹시.... <멋진 신세계>...

우리는 이런 세계를 정말 꿈꾸고 있는 건 아닐까요????

혹 아니라면....

조심하세요.

돌연변이를 제거하기 위해 당신 등 뒤에 누군가 서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1. 29. 22:25

<마지막 강의> - 랜디 포시

 


  



 


 

 

 

 

 

 

 

 

 

 

 

 
이 글을 쓴지 벌써 넉달이 넘어가네요.
참 여러번 읽었던 책이고 그리고 건강해지길(비록 그럴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기도했었는데...
따로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올려 봅니다.
그때의 제 감정을 수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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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동안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토요일에 인터넷으로 소식을 접했거든요.

오늘 제가 소개하려고 하는 이 책의 저자가 7월 25일 끝내 사망을 했다고 하네요.

참 아픕니다. 그래서 주말동안 참 먹먹했습니다.

이 사람 때문에 오래 가슴 아렸었는데... 비록 들리지 않을지라도 매일 응원했었는데...
절 진심으로 반성하고 되돌아보게 했었는데....

그가 결국은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공황상태로 빠져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그냥 미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뭐라고.... 저는 왜 이렇게 미안해하고 있는 걸까요???

 

랜디 포시

미국 카네기 멜론대학교, 컴퓨터공학 교수였던 포시는 41살 된 재이의 남편이었고, 6살, 3살, 2살의 아이를 둔 47살 아빠였습니다.(이제 그의 모든 것은 과거형이 되어 버렸네요...)

췌장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그는 자신의 모교에서 2007년 9월 17일 “당신의 어릴 적 꿈을 진짜로 이루기" 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강의를 하게 됩니다.

이 강의는 곧 유튜브를 통해 전파됐고 대중의 입소문을 타면서 열광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어, 중국어, 스페인어로 번역된 동영상을 본 네티즌들이 전 세계에 걸쳐 10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고 합니다.(참고로 우리나라에도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10분 정도 했던 강의를 한글 자막으로 번역한 동영상을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1시간 16분 정도의 분량의 강의 원본을 숨죽이며 시청했습니다. (이해를 할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참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직접 그 강의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그 강의가 이슈가 되면서 못다한 그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판이 됐습니다.

그는 해드셋을 끼고 자전거를 타면서(최대한 건강하게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친구와 통화를 하면 친구는 그 내용을 그대로 녹음해 기록했다고 하네요.

그렇게 녹음된 내용이 정리돼 올 1월 미국에서 <마지막 강의>라는 책이 출판됐습니다.

사실 포시 교수는 "마지막 강의"를 아빠 없이 살아가야 할 세 자녀 딜런(6살), 로건(3살), 클로이(2살)를 위하여 준비했다고 합니다. 부디 세 자녀가 "마지막 강의"를 듣고 아빠의 사랑과 배려,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 그리고 꿈을 이루어가는 삶에 대하여 감동하고, 동의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요.

그는 유리병 안에 편지를 담는 마음으로 이 강의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어느날 자신의 자녀들이 바다에 떠오른 유리병을 발견하고 그 내용을 볼 수 있게 되길 바라는 심정으로요...

“그 어떤 것도 살아서 곁을 지켜주는 부모를 대신할 수 없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버지를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은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나는 내가 잃을 것들보다 그들이 잃을 것들에 더 집착한다."는 그의 말이 뼈아픈 통곡처럼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그의 강의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자신의 복부를 찍은 CT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면서 그는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보고 있는 것은 바로 나의 간에 있는 종양덩어리들입니다. 의사는 앞으로 내가 3~6개월 정도 밖에는 살 수 없다고 하더군요. 난 한 손으로 팔굽혀 펴기를 할 정도인데도 말입니다(그는 실제로 그 자리에서 멋진 팔굽혀 펴기를 힘차게 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손에 든 카드의 패를 바꿀 수 없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남은 일은 그 패를 어떻게 가지고 놀 것인가 하는 것뿐이죠!!"

그의 모습은, 그의 표정과 음성은 편안함을 넘어 평온 그 자체였습니다.

그가 강의 중 끊임없이 이끌어내던 청중들의 웃음, 그 모든 열정과 세심한 준비들, 슬라이드 하나하나, 사진 하나하나까지도 전부 하나의 진정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다 저절로 느껴지게 되죠.

아! 이 분 정말 아름답게 모든 걸 준비했고, 지금도 준비하고 있구나....

미국에서는 2007년 11월 19일을 "랜디 포시의 날"로 정하여 "미국에서 가장 건강하게 죽어가는 사람"으로 기억하기로 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제부터 그는 2008년 7월 25일 “가장 건강하게 죽은 사람”으로 모두에게 기억될 것입니다.


이 책은...

결코 읽는 이를 편안하게 하지는 않는 책입니다.

동시에 다 읽고 나면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그런 책이기도 합니다.

그냥 그 책의 내용들이 그대로 내 살붙이가 되는 느낌, 그래서 내 팔이 아프고, 내 발이 아프고, 내 머리가 아프고, 내 온몸이 너무 아파 어쩌면 숨 쉬기가 힘들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제가 꼭 그랬으니까요. 마치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 심지어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이 책을 소개한다는 건...

참 주제 넘는 일이란 걸 알면서, 그러면서도 꼭 누구라도 이 책을, 아니 랜디 포시의 말들을 한명이라도 더 들어봤으면 하는 마음 또한 어쩌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자녀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꼭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폭풍같은 통곡에 온 몸이 부서지는 것 같더라도, 그 폭풍 안에서조차도 꼭 읽어 보라고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 자녀들에게 당신은 어떤 부모이고 싶으신가요?

자식을 앞세워 보낸 부모는 평생 죄인처럼 산다는 말이 있는데, 어린 자식을 앞에 두고 가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여기, 이제 여섯 살짜리 이상의 아버지가 되어볼 기회가 없게 된, 할 수만 있다면 십대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싶었던 47살의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수 없기에,

그가 보지 못하게 될 미래로 가는 한 방법으로 그는 이 마지막 강의를 준비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많은 이들은 자신의 병에 감사한다고까지 말한다. 아직 나는 암에 대해 그런 식의 감사하는 마음은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는 해도 죽음에 대한 사전 통고가 있었다는 사실에는 분명히 고맙게 생각한다. 나에게 가족의 미래를 준비할 시간을 주었고 더불어 마지막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행운”이란 단어는 지금 나의 상황과는 좀 어울리지 않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버스에 치여 죽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행운처럼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암은 나에게 만약 내 운명이 심장마비나 교통사고였다면 불가능했을 중요한 시간을 주었다. 내가 약속의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할 것이라 해도 괜찮다. 여기까지 만으로도 충분히 경이로운 광경이었으므로....“

저는...

이 책을 도저히 제대로 소개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부디.. 부디... 꼭 읽어보셨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만 간절할 뿐입니다.

그는 모두에게 전합니다.

“장벽은 절실하게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걸러내려고 존재합니다. 장벽은, 당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멈추게 하려고 거기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그는 6개월의 시한부 인생이라는 장벽을 앞에 놓고서도 절대로, 결단코, 단 한 번도 약해지거나 멈추지 않았던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겨낸 것들이 정말 너무도 많네요. 그리고 그 이겨냄이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공명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요.

그리고 항상 진실을 말하라구요.

“Never give up! and Tell the truth. All the time”


이 글을 쓰면서 렌디 포시의 웹 싸이트를 다시 들어가 봤습니다.

2006년 암과의 사투가 시작 된 후 그는 자신의 건강상태와 근황을 자신의 웹 싸이트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어떤 의미에선 개인 블로그나 웹 싸이트가 긍정적인 “영생”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지난달까지는 그가 직접 update 했는데 이번 달에는 다른 사람이 update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대신 올린다구요.

그렇게 7월엔 2번의 update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update된 내용은 이렇게 쓰여 있네요.

July 25th, 2008

“Randy died this morning of complications from pancreatic can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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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