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10. 11. 10. 15:25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 다섯 가지> - 오츠 슈이치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사실 저는 이런 노골적인 제목의 책들은 거의 안 보는 편입니다.
얼마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그리고 영 못마땅하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도 꾸준히 유행하고 있는 “죽기 전에 OO해야 하는 OO가지”의 시리즈의 일환이라고 생각했죠.
그런 책들은 솔직히 “~카더라” 통신과 똑같이 별로 써먹을 데도 없고, 신빙성은 더더욱 없는 일부 선택된 자들의 배부른 취미 생활을 떠올리게 해 불쾌한 감정까지 갖게 됩니다.
뭐, 지들한테 좋았던 게 나한테까지 굳이 좋아 죽겠는게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제발이지 나도 죽기 전에 그 좋다는 곳 다 다녀보고, 그 맛잇다는 거 다 먹어보게 돈벼락이나 떨어지면 좋겠다는 시비조의 불평만 갖게 하는 소위 저에겐 지극히 불건전한 부류에 속하는 책이죠.
그런 제가 이 책을 손에 잡은 건,
순전히 표지에 있는 사진 한 장 때문이었습니다.
사막과 하늘에 남겨져 있는 흔적들이 제 눈을 파고들었죠.
긴 발자국이 찍혀 있는 저 사막은 건조하거나 메마른 사막이 아니었습니다. 저 마른 땅 바로 가까이에 물기가 느껴지는, 그러니까 생명력이 느껴지는 사막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들. 그런데 그 구름의 끝도 자세히 보면 물기를 머금고 있네요.
사막 위의 발자국의 방향을 보면 누군가 그곳을 방금 떠나갔다는 걸 알게 됩니다. 뜨거운 사막의 모래바람도 그 발자국을 지워내지 못했네요.
이 사진 한 장이 이 책의 내용 전부를 저에게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그 순간 더 이상 “~카더라” 통신으로만 취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이 책은.
그러니까 생명을 가진 누군가가 이제 금방 비가 쏟아질 그곳으로 향하면서 남긴 흔적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흔적을 기꺼이 읽기 위해 책장을 넘깁니다.
 
글을 쓴 오츠 슈이치는 말기 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완화 의료(호스피스) 전문의입니다.
일본 최연소 호스피스 전문의였던 그는 현재 도쿄 마츠바라 얼번클리닉에서 말기 환자를 돌보면서 저술, 강연 활동을 하면서 완화의료 및 존엄한 죽음을 함께 나누고 있다고 하네요.
어느 날, 병실 침대에 누워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가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선생님도 무언가를 후회한 적이 있나요?"
그는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천 명이 넘는 환자를 떠나보내면서 "후회"에 관한 질문을 얼마나 많이 받았던가!’
환자에게 남은 시간은 며칠 혹은 길어야 몇 주일이 고작입니다.
그들의 몸은 이미 자유롭지 못합니다.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도 없고 낮에도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암 말기에 흔히 나타나는 체력 저하를 수면으로 보충하려는 현상 때문에...
이 시기가 오게 되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물론 이성적인 판단까지도 혼미해집니다. 그런 그들이 지금 하는 후회가 인생에서 미루고 미루던 숙제 탓이라면 그 후회는 스스로의 가슴을 더욱 깊이 후벼 팔 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고백하는 사람들의 곁에서 오츠 슈이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합니다.
"무엇을 가장 후회하시나요?"
그들은 천천히 입을 열어 자신들의 후회를 하나하나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후회들은 이렇게 이곳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덜컥 겁이 납니다.
지금도 이 책의 내용을 이렇게 많이 인정하고 공감하고 있는데 죽음을 앞에 둔 나중의 시간에 나는 얼마나 많은 후회로 더 가슴을 치게 될까가 생각나서 말이죠.

첫 번째 후회,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두 번째 후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세 번째 후회,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네 번째 후회,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다섯 번째 후회,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여섯 번째 후회,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일곱 번째 후회,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여덟 번째 후회,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아홉 번째 후회,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열 번째 후회,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열한 번째 후회,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열두 번째 후회,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겨두었더라면
열세 번째 후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열네 번째 후회, 고향을 찾아가보았더라면
열다섯 번째 후회,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보았더라면
열여섯 번째 후회, 결혼을 했더라면
열일곱 번째 후회, 자식이 있었더라면
열여덟 번째 후회, 자식을 혼인시켰더라면
열아홉 번째 후회, 유산을 미리 염두에 두었더라면
스무 번째 후회, 내 장례식을 생각했더라면
스물한 번째 후회, 건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스물두 번째 후회, 좀 더 일찍 담배를 끊었더라면
스물세 번째 후회, 건강할 때 마지막 의사를 밝혔더라면
스물네 번째 후회, 치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스물다섯 번째 후회, 신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

스물다섯 가지의 후회들.
어쩌면 하나 같이 제 등을 쳐대는 것들 뿐이던지...
세세한 내용을 읽기도 전에 스물다섯 가지의 제목만으로도 덜컹 덜컹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후회라니...
늘 하고 또 하고 있는 그 후회, 후회하는 걸 또 다시 후회하면서 그래도 또 후회하게 되는. 제 모습들에 또박또박 제목을 달아놓은 것만 같아 당황스러운 부분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렇게 잔인하면서도 그만큼 선한고 솔직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책.
그리고 책 속에 담겨있는 사진들.
그 흑백의 사진들은 그리 멀지 않았던 과거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들로 가득합니다.
일본인이 쓴 글에 우리나라 사진이라니, 순간 화들짝 놀랐습니다.
출판사가 각 나라 별로 사진 편집을 다시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래전 가물가물해진 기억들이 하나씩 들춰지는 기분입니다.
그러지 않았을까요?
죽음을 앞에 둔 그들도 자신의 과거를 조용히 하나씩 흑백사진처럼 반추하면서 하지 못한 뭔가를 조용히 털어놨는지도, 그리고는 조금씩 가벼워 졌는지도...
1000여 명의 사람들을 떠나보내면서 작가는 말합니다.
“죄를 반성할지언정 자책하지는 말자!”고.
지나친 죄책감은 자신을 파괴할 뿐이라고 말이죠. 단지 인간으로서 넘지 말아야할 선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도 나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형벌 때문이 아니라, 죄를 범했다는 죄책감이 자기 자신을 공포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것이라고요.
아직 어린 나이였을 때,
저는 삶이 “소풍”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마도 그쯤에 읽은 천상병의 “귀천(歸天)”이라는 시가 가슴에 담겨버려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시의 구절처럼 “죽음”이라는 삶의 최후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로 만들자 그랬더랬는데...
어느새 제는 후회 하나를 또 추가하고 있네요.
아름답죠? 이 세상.
아름다운 것도, 미운 것도 다 내 것으로 만들어 가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래야 아름다운 소풍 끝나는 날,
하늘로 돌아가 아름다웠노라 말하면서 추억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후회와 추억.
내 발목 잡는 아득한 꿈이 이만큼 다가옵니다.

귀천(歸天)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