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2. 18. 06:06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손에 잡은 책은 아니었다.
그냥 도서관에 새 책으로 들어와서 습관처럼 대출했던 책이다.
그녀... 임상아.
내 기억 속에 그녀는
이디오피아 난민을 연상시키는 깡마른 몸피에
흔한 말로 쥐 잡아 먹은 듯한 빨간 입술을 하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연기를 하는 텔렌트였다.
그리고 몇 장의 앨범을 낸 가수이기도 하고
(그녀의 "뮤지컬"이란 노래는 그래도 노래방에서 제법 많이 불렀더랬다)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서 사라졌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인기 연예인에 속했던 그녀가 어느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고 했다.
솔직히 돈이 좀 쓰고 싶었나보다 생각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연기로도, 엉성한 립싱크로도 돈이 꽤나 벌렸나 생각했었다.
돈 떨어지면 늘 그랬듯이 화려한 컴백을 하겠거니 했다.
(그때까지 잊혀지지 말고 모질게 기억 속에 살아 있어야 하겠지만...)



그녀의 책을 읽으며 나는 그녀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참 치열했음을 그리고 용감했음을 인정하게 된다.
스스로 미국으로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건,
3집 앨범 작업을 막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였단다.
힘든 시간이었고, 망설여지는 것들이, 발목을 잡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었단다.
그래도 그녀는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접기로 결정했단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 그곳에서
성공하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시작했단다.



1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뉴욕에서 그녀 이름을 딴 브랜드 "SANG A"를 성공적으로 런칭한
주목받는 디자이너가 되어 있다.
그녀가 만드는 특피 핸드백(exotic handbag) 고객들 중에는 
헐리웃의 유명인사들이 많다는 소식도 오래 전에 들었었다.
질투심에라도 그녀를 깎아내리고 싶었지만
그녀의 치열함에 내 질투심은 길을 잃고 만다.



욕심 / 그리움 / 행복 / 뉴욕
4개의 카테고리로 꾸며진 책은 진솔하고 그리고 따뜻하다.
때로는 알맞게 불은 구수한 누룽지 숭늉을 마시는 느낌이고
때로는 낯선 이국의 자극적인 맛에 침샘이 온통 자극되는 느낌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써 내려갈 수 있는 그녀가 나는 많이 부럽다.

<이기자>

이 아픈 가슴을 이기자
이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을 이기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이 나약함을 이기자
나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쓸데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이기자
아무것도 싫다. 하루만 쉬자.
그런 마음을 이기자
강하게, 더욱 강하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아픈 가슴을 다스린다.
이렇게 다친 마음을 다스린다.
그렇게......
나를 이긴다.



<칭찬>

난 칭찬을 아낀다.
나 자신에겐 더더둑 그렇다.
미국 생활을 하며 더욱더 그렇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사람들은 칭찬이 온몸에,
입한 가득 배어 있다.
어딜 가도 항상, 누구를 만나도 늘......
축하한다, 대단하다, 훌륭하다, 걱정 마라, 잘하고 있다......
어느 땐 고맙고, 어느 땐 혼란스럽고, 어느 땐 화가 난다.
아닌 건 아니다, 이렇게 했어애 했다,
앞으로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비판해주는 것을 기다릴 때도 많기 때문이다.
무엇이 잘못 되었었는지,
다음 번 제도전에 발판이 될 피드백을 받아내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열에 아홉은 늘 잘한다,
잘하고 있다, 지금 하는 대로만 하라고 말한다.
그냥......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런 충고가 어쩔 땐 아주 고맙지 않다.
진심 없는, 건성으로 던지는 말로
들릴 때도 있기 때문이다.

<감잡기>

감이 '딱' 오는, '똑' 떨어지는 컬렉션을 깔끔하게 뽑아내는 '감'.
컬렉션이 '꼭' 맞아 떨어질 숍들을 꿰뚫고 있는 '감'.
기자들이 무엇을 늘 갈망하고, 갖고 싶어 하는지,
멋들어지는 기삿거리를 제공해주는 기자들을 나의 팬으로 사로잡는 '감'.
내 디자인을 사랑하고 아껴줄 "SANG A WOMEN'이 누군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들의 절친이 될 수 잇는 '감'.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감은
늘 한 치 앞서 크게 보고 크게 생각할 수 있는 지혜로운 '감'이다.


이런 글들을 쓸 수 있는 그녀.
그녀는 정말 "감" 있는 디자이너가 될 수밖에는 도저히 없었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8. 15. 19:31
<냉정과 열정사이>를 함께 섰던
에쿠니 가오리, 츠지 히토나리 두 작가가
<냉정과 열정 사이>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다시 함께 소설을 펴냈다.
(여태껏 알고 있던 공통집필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글쓰기라 은근히 파격적이기까지 했는데....)
<냉정과 열정 사이> 그 이전의 이야기라고 할까?

<좌안> 그리고 <우안>
아주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전혀 다른 인생을 살면서도
서로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
마리와 큐.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인생과 인생 사이에는 강이 흐릅니다.
내가 늘 이쪽에서 살아가듯이 그리고 당신이 저쪽에서 살아가듯이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볼 수 없습니다.
시작은 같은 장소였음에도
강은 시간과 함께 하류로 나아갈수록 점점 넓어져서 우리를 멀어지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우안(右岸)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좌안(左岸)에서 살고 있습니다.
같은 지구에 존재하는데도 나는 좌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릅니다.
인간의 수만큼 많은 강변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늘 강변에 서서 당신이나 만날 수 없는 가족, 친구들을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였을까?
그럴 수도 있고 결코 아닐 수도 있다.
기억을 잃어도 끊어지지 않는 관계
결코 연인이 될 수 없지만 늘 함께인 관계
soul mate라는 말로도 설명될 수 없는,
어쩌면 영원히 이해되지 않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모든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두자.



일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두 책.
그리고 두 명의 남녀 베스트셀러 작가!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섬세한 감성과 내면표현은 참 쉽고 아름답다.
그래서 그녀가 표현하면 일탈도 편안하게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랑에 헤매는 마리라는 여자,
그녀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일탈도
그래서 내겐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편하게 다가온다.
불쌍함이나 도덕적 잣대를 들어대기보다는 긍정하고 인정하게 되는 심정.
에쿠니 가오리가 창조한 인물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어쩌면 내 내면의 투영으로 인한 소박한 응원도 있었으리라.

츠지 히토나리!
작가로 활동할 경우에는 츠지 히토나리라는 본명으로
가수, 영화감독으로 활동할 경우 츠지 진세이라는 이름을 쓰는 남자
그랬었나?
왠지 그의 글들이 예전과는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 기억속 이 사람은 참 따뜻하게 감성적이었는데....
<우안>의 츠지 히토나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서술자같다.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느낌.
왜 그는 큐에게 충분히 다가가려 하지 않았을까?
4권의 책을 읽고 문득 그게 궁금해졌다.
<우안>을 쓴 그에게 큐라는 존재는
혹 <좌안>에만 존재하는 인물이었던 건 아닐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