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7. 4. 13. 08:47

 

<홍보씨>

 

일시 : 2017.04.05. ~ 2017.04.16.

장소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극본, 연출 : 고선웅

작창, 작곡 : 이자람

출연 : 김준수(흥보), 최호성(놀보), 김학용(연생원), 최용석(마당쇠), 유태평양(제비), 이광복(원님) 외 국립창극단

제작 : 국립창극단

 

역시 고선웅이고, 역시 이자람이다.

솔직히 창극이라서 구태의연하고 살짝 고리타분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 너무 멋지다.

대한민국 전국민이 다 아는 흥부놀부 이야기가

이렇게 다른 작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신선한 충격에, 문화적 충격까지 아주 제대로 받고 왔다.

사실 전 날까지 취소할까 고민했었는데

재미도 이런 재미가 없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고

무엇보다 어쩜 그렇게 창을 그리 맛깔나게 잘하는지...

젊은 소리꾼 김준수를 비롯해서 배우 한 명 한 명의 신명이 그대로 객석까지 전달됐다.

그야말로 세대를 아우르는 작품이더라.

1막, 2막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고선웅의 웹툰같은 해학도 빛이 났고

국악과 가요를 넘나드는 이자람의 작창과 작곡도 빛이 났다.

오랫만에 듣는 육각수의 "흥보가 기가막혀"도 반가웠고...

 

어태껏 몰랐었다.

내가 그렇게 흥이 많은 사람인줄은!

하마터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출 뻔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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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7. 2. 9. 14:45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일시 : 2017.01.18. ~ 2017.02.12.

장소 : 명동예술극장

대본, 연출 : 고선웅

출연 : 장두이(도안고), 김정호(조순), 하성광(정영), 호산(한궐), 이영석(영공), 이형훈(조씨고아, 정발) 외

제작 : 국립극단(주)

 

와... 이 연극 엄청나다.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데 소문보다 훨씬 강렬하다.

보는 내내 미쳤구나... 를 수없이 연발했다.

대본도, 연출도, 배우들도, 심지어는 관객들도 제정신은 아니지 싶다.

부퍠한 관료, 모함과 권력의 암투, 출생의 비밀, 은혜갚음, 원수를 향한 복수 그리고 용서.

작품의 표면적은 사건을 나열하면 정말 뻔하고 뻔한 내용에 불과한데

이 작품은 단 한 장면도 결코 뻔하지 않다.

심지어 소리내서 웃고 있는데 슬프다.

그것도 아주 가슴 저 밑바닥까지 울리는 슬픔이다.

웃긴데 슬프고, 슬픈데 웃긴 이야기.

대한민국과 비슷한 아이러니가 주는 무게감때문에 무심해지가 어렵다.

보는 내내 울컥울컥해서

눈을 감고 진정해야했다.

 

이 작품의 배우들은...

존재 자체로 위대하다.

스쳐지나가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

대사와 표정, 그 몸짓들이 그대로 달궈진 화인(火印)이 되어 가슴팍에 꾹꾹 찍힌다.

무대 위에서는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어야 해서 참 힘들겠다. 저 사람들은.

뭉턱뭉턱 피흘림도 없이 살덩이가 쪼개지는 느낌이지 않을까?

나같은 사람은 초장에 나가떨어졌을텐데...

 

"나는 어떤 기억으로 후세에 전해질까?"

징글징글하게 버티고 있는 누군가에게 나 역시 묻고 싶은 질문.

남겨질 기억이...

무섭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5. 5. 8. 07:52

 

<푸르른 날에>

 

일시 : 2014.04.26.~ 2014.06.08.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극작 : 정경진

각색, 연출 : 고선웅

출연 : 김학선, 정재은, 정승길, 이영석, 호 산, 이명행, 조윤미, 조영규,

        채윤서, 유병훈 이정훈, 김명기, 견민성, 김성현, 손고명, 남슬기,

        홍의준, 김영노, 강대진, 김민서

제작 : 남산예술센터, 신시컴퍼니

 

5월이다.

송착식의 노래처럼 정말 눈이 부시게 푸르른 5월이다.

그리고 그 5월보다 더 푸르고 피보다 더 붉은 연극 <푸르른 날에>가 돌아왔다.

매번 이 작품을 보고 난 뒤엔 가슴을 치며 후회하면서 왜 또 다시 이곳에 왔다.

어쩌자고... 어쩌자고

또 뭘 그리 견뎌보겠다고...

그래도 한 번은 봐야겠다고. 한 번은 더 견뎌보겠며 더듬더듬 자리를 찾아 앉았다.

2011년 남산예술센터 초연 당시 사전예매 120석으로 시작한 작은 연극 <푸르른 날에>는

2012. 2013, 2014년 전석 매진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2015년 지금,

5년 동안 이 작품을 함꼐 해 온 초연 배우 19명의 마지막 고별 무대가 시작됐다.

이 작품은,

소위 말하는 회전문이 불가능한 작품이다.

한 번 보는 것만으로 이미 강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서기 때문에

한 시즌에 두 번을 관람하는게 내 경우엔 도저히 불가능하다.

 

"명랑하게 과장된 통속극"

혹자는 이 작품이 5.18 민주화항쟁은 너무 가볍게 다뤘다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명량만화 같은 한없는 가벼움 속에

뼈를 바수고 살점을 뜯어내는 처절함을 느낀다.

농담을 하려는게 아니라 진담을 표현하기 위해 말을 틀어 변화를 줬다는 고선웅 연출의 변이

그래서 나는 충분이 이해된다.

 

"농담을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본질이라는 거예요. 연극의 본질은 농담이에요. 농담을 통해서 그 진실을 보여주는 거죠. 자기가 직접 겪은 것이라도 무대에서 정확한 에너지를 갖지 못하면 그건 경험한 게 아니에요. 연극은 철저하게 허구화되어 있지만, 그것을 보면서 그 누구도 '그건 허구잖아' 이런 얘기를 할 수 없게 만들죠. 단원들에게도 이렇게 얘기합니다. 정말 가슴 아픈 얘기지만 우린 행복하게 연극을 하자고요. 가슴 아파하면서는 연극을 할 수가 없어요. 거기서 어떻게 말을 해요. 가슴이 아프고 뼈가 저린데... 그것을 뛰어넘는 연극적 접근이 필요해요. 그렇게 슬픈 연극일지라도 연습하다가 재미없으면 말아야죠. 슬퍼도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작품을 보는 내내 너무 많이 아프고 아팠다.

심지어 한바탕 실껏 웃는 장면에서조차 혼자 주책맞게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내가 신경쓰였는지 옆자리 모르는 분께서 내 손에 휴지를 쥐어줬다.

민망했지만 눈물이 유난히 멈추지가 않더라.

처음 본 작품도 아닌데 이날 관람은 유난히 몸과 마음이 송두리째 아팠다.

미치지 않으면 미친척이라도 해야 살 수 있는 시대,

살아 남기 위해 자신을 다 버려고 부정해야만 했던 시대.

그걸 지나온 사람들의 삶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무서워서 그랬다는 오민호의 말도

누가 우리를 알아나 줄까? 라는 말도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는 당부도...

다 통곡이었다.

 

 

예전에 이명행 배우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푸르른 날에> 또 하신다면서요?"

"네!"

"왜요? 힘들고 아프쟎아요, 하지 마세요..."

반어와 역설로 가득한 짧은 대화에 이명행 배우도 나도 웃었다.

그렇게 웃는것 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기도 했다.

이번 초연 배우들의 고별무대를 보면서

젊은 날의 오민호를 해보겠노라 나설 배우가 과연 있을까 걱정됐다.

배우니까 할 수 있다...

적어도 이 역할에서만큼은 그 원칙이 적용되지가 쉽지 않을것 같다.

그래서 이명행이라는 배우에게 너무 많이 고마웠고,

그 고마움보다 더 많이 그가 안스러웠다.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세상.

여전히 한 사람 한 사람을 죽이고, 가족을 죽이고, 지역공동체를 죽여

마침내 사회를, 시대를, 인간을 죽여버리는 세상.

작품의 엔딩처럼 꽃비 날리는 날,

그 시대의 사람들과 지금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꿈처럼 한바탕 웃으며 사진을 찍는 날은

영원히 환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인 모양이다.

 

산다는건,

뭐 대단한 걸 이루기 위해서가 아닌데...

그저 좋은 날을 위해,

좋은 한시절을 위해 사는 것 뿐인데...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12. 18. 07:59

 

<Once>

일시 : 2014.12.03. ~ 2015.03.29.

장소 :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극본 : Enda Walsh

음악 : Glen Hansard & marketa lrglova

원작 : John Camey

연출 : Hohn Tiffany

안무 : Steven Hoggett

번역 : 정명주

윤색, 한국말가사 : 고선웅

협력연출 : 김태훈

협력음악감독 : 김문정

출연 : 윤도현, 이창희 (Guy) / 전미도, 박지연 (Girl)

        강윤석, 강수정, 임진웅, 이정수 외

주최 : 예술의 전당, SBS. (주)신시컴퍼니

 

"Gold"를 들으면서 출근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지하철에 있던 사람들이 저 여자 무슨 일 있나 싶은지 자꾸 쳐다본다.

그래도 도저히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가사 하나하나가 그대로 가슴에 담겨버려서...

제목 그대로 "황금"처럼 빛나는 멜로디였고, 가사였고, 연주였고, 모든 것이었다.

영어버전도 한국어버전 모두 보석같이 빛나는 노래다.

작품 속 guy처럼 인생이 멈춰버린 나에게 이 노래 "Gold"가 마법처럼 찾아왔다.

어쩌면 출근길에 흘린 눈물은 고마움의 눈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뮤지컬 <Once>

화려한 기교와 휘황찬란한 무대를 기대했다면 참 재미없는 이야기겠다.

더구나 배우들의 동선과 장면 전환을 산만하다고 말 할 사람도 있겠다.

그런데 이 작품...

난 너무 예쁘고 찬란했다.

공연장에서보다 지금 더 간절하고 절실하게 스며드는 작품.

그래서 그때의 기억이 내내 현재진행형이 되고 있다.

생이 멈춰버린 Guy도, 그런 Guy에게 새인생을 만들어진 Girl도 다 현재진행형이다.

윤도현과 전미도의 연기는 덤덤해서 더 절실했고

매순간 악기가 한 몸이 돼서 연기했던 모든 배우들은 진심으로 행복해보였다.

관객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모두가 음악 자체였고, 연주 자체였다.

깨달았다.

한동안 이 음악안에서 살게 될 것 같다는걸.

 

그러네...

작품 속 Guy와 똑같이 되버렸네.

Falling slowly 중인 나에게 이 작품이 falling love를 꿈꾸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Once>는 멈춰있는 나에게 찾아온 뜻밖의 girl이다.

황금을 준대도 절대로 바꿀 수 없는 Girl.

 

 

<Once OST>

 

01. The North Strand

02. Leave

03. Falling Slowly

04. The Moon

05. Ej Pada Pada Rosicka

06. If You Want Me

07. Broken Hearted Hoover Fixer Sucker Guy

08. Say It To Me Now

09. Abandoned In Bandon

10. Gold

11. Sleeping

12. When Your Mind's Made Up

13. The Hill

14. It Cannot Be About That

15. Gold (A cappella)

16. Falling Slowly (Reprise)

 

 

 

Gold

 

And I love her so

I wouldn't trade her for gold

I'm walking on moonbeams

I was born with a sliver spoon

Hell, I'm gonna be me

I'm gonna be free

I'm walking on moonbeams

And staring out to see

And if a door be closed

Then a row of homes star building

And tear your curtains down

For sunlight is like gold

Hey, you better be you

And do what you can do

When you're walking on moonbeams

And staring out to see

'Cause if your skin was soil

How long do you think before they's star digging?

And if your life was gold

How long do you think your'd stay living

Hey, hey

And I love her so

I wouldn't trade her for gold

 

그녈 사랑해

난 안바꿔, 황금을 줘도

난 걸어가네

환한 달빛 속을

난 행운이 따르는 남자

나는 나로 살아

나는 자유

달빛속을 걸을 때

저 바다를 향해

무엇이라도

시작이 있듯 끝도 있네

널 가두지마, 괜찮아

넌 황금처럼 빛나

너는 너로 살아

너는 자유

네가 달빛 속을 걸을 때

저 바다를 향해

너는 잘 몰라

네가 얼마나 찬란한 존재인지

너는 잘 몰라

황금처럼 빛나는 널...

그녈 사랑해

난 안바꿔, 황금을 줘도

 

* <once>의 가사를 우리말로 번역한 고선웅꼐 감사드린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가사...

   당분간 만나지 못할 것 같다.

   최고로 최고다.

   진심으로!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5. 25. 08:29

<푸르른 날에>

 

 

부제 : 오월의 꽃바람 다하도록 죽지 않은 사랑...

일시 : 2012.04.21. ~ 2012.05.20.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극본 : 정경진

연출 : 고선웅

제작 : 서울시창작 공간 남산예술센터, 신시컴퍼니

출연 : 김학선(여산), 정재은(정혜), 정승길(오진호), 이명행(오민호),

        조윤미(정혜) 외

 

2009년 제3회 차범석 희곡상 수상작 <푸르른 날에>

2011년 초연 공연 당시에도 엄청난 화제작이었던 작품으로 그해 대한민국 연극에 주어지는 모든 상을 휩쓸기도 했다.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상, 연출상에 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한국 연극 공연 베스트 7위.

남산예술센터와 신시컴퍼니가 2012년 공동제작으로 다시 <푸르른 날에>을 올렸다.

화려한 이력이 오히려 과대포장일 수 있어서 조금 조심스러웠는데

이 작품...

정말이지 말을 잃게 만드는 수작이다.

공연을 보기 전에 반신반의했었다.

지금 이 시대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공연으로 보여주겠다고?

얼마나 처절하게, 얼마나 사실적으로, 얼마나 집요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미 지금 세대들에게 5.18은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보다 더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는데...

연극은...

처음에 너무 과장된 신파가 이어져 솔직히 불편하고 난감했다.

그 과장된 목소리와 그 과장된 행동과 그 과장된 감정들.

보면서 감당하기가 힘겨웠다.

 

희극이 비극보다 어려우며 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고 했던가?

아마도 너무나 비극적인 사실이라 차라리 희극으로 표현해야만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오민호의 물고문 장면은 섬뜩해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때까지 몰랐다.

무대 바닥 깊숙히 물을 담아 놓아서 참 인상적인 무대로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게 공포와 참혹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줄은 몰랐다.

그 장면에서 오민호를 연기한 배우 이명행의 눈빛 속에도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하다.

(이명행 배우에게 깊은 존경심을 보낸다. 이 배역... 힘들었겠다... 피하고 싶었겠다... 무서웠겠다...)

연극이 아니라 르뽀를 직접 목격하는 느낌이다.

본다는 게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버렸다.

비참했고, 미안했고, 구차했다.

마치 내가 그를 고문하는 고문관이라도 된 듯하다.

"무서워서 그랫어. 무서워서!"

죽은 사람들의 환상에 쫒기는 오민호의 외침이 먹먹하다.

나 역시도 너무도 무서웠다.

마치 생명의 위협을 내가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것만 같다.

김지하와 김남주의 시.

송창식과 남진, 핑크플로이드, 비틀즈의 노래조차도 섬뜩하다.

시민군이  김남주의 시 "학살"을 한 대목씩 읊는 장면은 뭐라 말을 할 수도 없다.. 

이 작품 정말 너무나 훌륭하고,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끔찍하다.

다 현실이다.

다 진실이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나라의 역사가 이렇다.

어쩌나...이 작품!

나는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학살 2

                        - 김남주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차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도시로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의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붉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3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하늘의 핏빛은 붉은 천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한 집 건니 떨지 않는 비이 없었다

밤 12시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버렸고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는 처참하지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치밀하지 못했으리.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11. 2. 05:45
궁금하긴 했다.
김훈의 동명소설 <남한산성>이 창작뮤지컬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쉽게 만들어지기 힘든 작품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배경이며, 대사며, 심난한 독백같은 모든 느낌을 전달한다는 게
책의 표현데로 가파르지 않을까 우려했다.
오래 고민을 하다 겨우 공연이 끝 무렵에 결국 찾아 봤다.
지금은 내 심정은...
다행이구나 싶다.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서...



묘하게도 나와는 항상 인연이 없던 배우였던.
김수용, 성기윤, 손광업, 배혜선
드디어 이 모든 사람들을 한 작품 속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들은 명성만큼이나
무대 위에서 꽤 인상적인 그리고 꽤 괜찮은 모습을 남겨줬다.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모습엔 어딘지 묘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느껴진다.
특히 초연의 무대일 경우에는 더욱 더.
어쩌면 그들의 역량에 따라 이 초연의 무대가
초연이자 막공이 될 수도 있다는 절박함을 품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영웅>과 <남한산성>
지금 공연되고 있는 두 개의 대형 창작 뮤지컬은
그래서 기특하면서 동시에 절박하다.
그리고 그 양면성은 무대 위에서 그대로 긍정적인 적나라함으로 드러난다.



원작 김훈, 극본 고선웅, 연출 조광화
꽤 괜찮은 아니 상당히 괜찮은 조합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후 고선웅, 조광화 
두 사람의 멋진 콤비네이션을 다시 한 번 보게 되다.
그리고 의상과 무대...
전체적으로 대나무를 무대 배경으로 삼아 묘한 신비감을 준다.
텅 빈 대나무의 옹골찬 꼿꼿함과 수직성.
결국은 모든 이의 마음이었으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조(성기윤)의 마음.
청과의 화친으로 살 길을 도모하자는 최명길(강신일)의 마음.
청과의 무력 충돌로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김상헌(손광업)의 마음.
자신을 버린 조국을 똑같이 배반하고 청의 길라잡이가 되어버린 정명수(이정열)의 마음.
청을 찾아가 화친의 편지를 전하고 목숨을 버리는 오달제(김수용)의 마음.
그 모든 대쪽같은 마음들이 산성을 만들어 머무르게 했을 거라고...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이 모순된 명제 앞에 누구들 절박하지 않을까...
"당면한 문제를 당면할 뿐"이라 했던가...



청의 황제 홍타이지(서범석)의 등장의 웅장함과 섬뜩함은
내리는 눈을 맞으로 초라하게 남한산성으로 피접하는 인조와의 운명과 대비된다.
눈발 속에서 인조의 음성은...
날리는 눈처럼 분분했고 심난했고 아득했다.
"그것이 왕이 결정한 일이더냐?"
그 짧은 말 속에는 힘 없는 왕의 어쩔 수 없는 무력감과
최후의 결정에 대한 절망감이 묻어 있다.
청의 황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인조의 모습.
어쩌면 그 고개를 다시는 들고 싶지 않았으리라.
땅의 찬 기운과 함께 차라리 사늘히 굳어지길 바라지 않았을까?
서러운 기운에 내 몸까지도 가늘게 떨린다.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이 여기까지 왔구나...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된다.
<영웅>도 그렇고 <남한산성>도 그렇고...
특히 <남한산성>의 무대와 음악은 참 많은 걸 느끼게 한다.
더 좋은 작품으로 진화되길 지금 초연의 무대를 보면서
희망하게 됐다.
주연같은 열정의 앙상블까지...
그들 한명 한명에게 아름다웠다 말해주고 싶다.
당신들이 모두가 쌓은 견고한 <남한산성>은
사실은 극의 결말과는 다르게
몹시 아름다웠노라고 말해주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