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2. 2. 13. 06:06
제목이 좀 노골적이라 망설였던 책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폭발적인 성공이 부추긴 me too 제품같아 곱지 않은 시선이 간 것도 사실이다.
뭐 이런 게 베스트셀러가 됐을까 싶은 확인사살의 심정도 있었으리라.
그런데 의외로 이 책,
꽤나 재미있다.
책의 초입부터 등장하는 원하는 것을 얻는 협상법에 필요한 열두 가지 전략은.
꽤나 정석적이고 학문적(?)이자만
하나하나 실례를 읽다보면 이게 또 그렇게 친숙하고 평범하게 느껴진다.
"고작 이거였어~~"
이런 생각이 들만큼 ^^

* 원하는 것을 얻는 협상법에 필요한 열두 가지 전략

1. 목표에 집중하라.
2. 상대의 머릿속 그림을 그려라
3. 감정에 신경 써라.
4. 모든 상황은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라.
5. 점진적으로 접근하라.
6. 가치가 다른 대상을 교환하라.
7. 상대방이 따르는 표준을 활용하라.
8. 절대 거짓말을 하지 마라.
8. 의사소통에 만전을 기하라.
10 숨겨진 걸림돌을 찾아라.
11. 차이를 인정하라.
12. 협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목록으로 만들어라.



저자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이 협상 코스 강의가 13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란다.
일반적인 통념을 뒤집는 창의적 문제 해결법!
그런데 사실 창의라는 개념은 너무 평범해서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던 그것을 끄집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책을 쓴 저자의 다채로운 이력도 참 재미있다.
가자, 변호사, 컨설턴트, 항공사 사장...
아마도 이런 이력과 경험들이 그의 강의를 남다른 강의로 만든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클리세같은 담길 멘트들을 만나서 읽으면서 즐거웠다.
상재방의 인식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질문!
근거없는 시니컬과 귀챠니즘에 빠져있는 나같은 사람에겐 참 어려운 일이지만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는데 한 번 해 볼만하지 않나?
읽는데서 끝내지 말고 꼭꼭꼭 실천하라고 몇 번씩 당부하는 저자의 간절함도 남다르다.
여담이지만,
책을 읽고 가족들이랑 고기집에 갔다.
나름대로 책에 나온대로 협상(?)을 했더니 서비스로 음료수가 나오더라.
놀라움까지는 아니지만 재미있었다.
어찌 알겠는가!
지금은 사이다 한 병이지만 다음엔 더 큰 무엇을 얻게될지... ^^
P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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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나 미래 중 어디를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협상과 소송의 가장 큰 차이다. 소송은 과거를 놓고 서로 대랍하지만 협상은 미래를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

나에게 집중하는 감정은 협상에 방해가 되며, 상대에게 집중하는 공감은 협상에 도움이 된다.
내 협상법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감정을 활용한다. 내가 앞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감정 활용법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필요하다. 올바르게 협상을 임하는 사람이란, 감정을 절제하는 동시에 충분히 인간적이라는 사실 말이다.

문화적 고정관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 뿌리는 단순한 무지일 수도 있고, 일종의 두려움일 수도 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0. 8. 06:08
 <개밥바리기별> - 황석영


개밥바라기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기록...

더 이상 절망적일 수 없을 것 같고, 더 이상 세상이 무의미해질 수도 없는 시기,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좌절, 끝냄에 대한 무한한 동경...

사춘기를 지나 어른도 아이도 아닌 중간자적 시기의 애매함이 주는 결정되지 않는 미래의 불안감, 그리고 추락보다 더 깊을 미지의 시간들에 대한 두려움...

딱히 결론내지 않아도 이야기의 결말을 말할 수 있는 모호함이 주는 신비.

“성장소설”은 이 모든 것들이 녹아있어 마치 반은 도가니처럼 펄펄 끓고 있는데도 나머지 절반은 절대로 녹는다는 것 자체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단한 결빙처럼 차갑기만 합니다.

이런 모순의 결합이 책 속에 나오면 이상하게도 제겐 과학보다 그 내용들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우리의 시간은 기대, 관심, 기억 이 세 가지 순간의 연속이라고 하네요.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없으면 시간은 존재할 수 없다고요. 만약에 우리가 미래를 지향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과거를 읽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시간이라......

어쨌든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있고, 그런 이유로 나 자신이 바로 시간, 그 자체가 되기 때문인가 봅니다.

가끔 생각해봅니다.

왜 작가들은 “성장소설”을 꿈꾸는가...하고요.

예전 같았으면 명랑만화나 청소년 권장도서쯤으로 생각했을 성장소설이 지금은 참 더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일체감이 주는 공감의 형성에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그건 시대가 주는 공감이 아니라 정서가 주는 공감, 달리 말하면 이심전심의 공감이라고 할까요?

다행히 우리 세대는 전쟁도, 그리고 군부독재니, 부정선거니 하는 시국에 대한 대대적인 군중 봉기도 겪지 않아 흐린 시대가 주는 어려움과 울분에 대한 분노가 부족할 수 도 있습니다.(그렇다고 효순, 미선 사건이이나 촛불집회 같은 것들을 과소평가하는 건 절대로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이 책,

<개밥바라기별>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방황과 헤맴은 이유가 있고, 그 떠돔 또한 정착하고자 하는 열망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차마 문을 못 잠그고 잠을 자는 어미의 마음...

청춘을 이겨내야 참 어른이 된다면, 그 청춘을 이길 수 있는 궁극적인 힘이 바로 고요한 머뭄을 제공하는 어미의 마음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모든 여자들은 꿈꿉니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전 개인적으로 여자의 성장소설은 내가 남자였다면... 하는 그 불가능의 바람에서부터 시작이 되고, 남자의 성장소설은 내가 어미였다면... 하는 결론으로 종착되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축이 여러 가지 이야기와 생각거리를 만들어 서로 얽히게 되는 거죠.


<개밥바리기별>은 작가 황석영의 자전적인 성장소설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서 이 사람처럼 파란만장했던 사람도 흔치 않을 거라 생각되네요.

방북사건으로 제 나라로 돌아오지 못하고 몇 년을 헤맸던 사람.

1993년 귀국했지만 5년간의 수감생활을 해야 했던 사람.

그리고 그 이후에 그야말로 미친 듯이 써내려간 엄청난 분량의 책들...

발표한 글의 양만큼 질적으로도 진화되어 가는 그의 글쓰기가 한때 심한 질투심으로 다가오기도 했더랬죠.

그래, 당신 참 대단하다. (더 솔직한 표현은 당신 참 잘났다...는 마음)

뭐 유치한 감정의 폭발도 살짝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이 책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5개월간 연재했던 소설을 다시 손봐서 8월에 출판됐습니다. 작가는 “지난 몇 달간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광장에서 이들과 소통하면서 글을 쓸 수 있었던 점은 행운"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글쓰기가 원고지나 컴퓨터 안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적인 작업의 차원을 넘어섰다는 의미겠죠. 그 즉각적인 반응들이 65세 작가 황석영의 눈엔 참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의 반짝거리는 눈을 상상하니, 마치 그 눈이 “개밥바리기별(=샛별=금성=나그네별)”처럼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네요.

이 책은 참, 똑똑한 책입니다.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훨씬 우리보다 똑똑한 지성이며 동시에 이유 있는 행동가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작가들은 과연 이런 대사들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할 만큼요.

작가 황석영은 억압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말합니다.

“억압이라는 것도 하나의 공감대에서 출발한다”고요.

그야말로 개인적인 체험에서 나온 말이죠.

그는 억압이라는 압박의 요소를 판소리의 추임새처럼 만들어 오히려 격려와 신명의 장단으로 바꿔버리는 그런 작가였던 겁니다.

어쩌면 대가라는 말조차도 무색한 그런 글쟁이죠.

 

"먼 길을 돌아 문예반으로 돌아온 느낌이 든다"

책을 출판하고 그가 한 말입니다.

그 신선한 발언이 17권 째의 장편을 발표한 65살의 그를 마치 이제 막 등장한 팔팔한 청년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아~ 이 사람, 이제 다시 시작하려나 보다...

글을 쓴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제 팔자를 남에게 내주는 일이라네요.

어쩌면 작가란 유목민의 다른 이름인 것 같습니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유목민...

그러나 전 좀 다르게 말하고 싶네요.

어느 곳을 가든 정착하고 뿌리내리고 마는 질긴 생명력을 소유한 유목민이라고..,

세상 어느 유목민보다 간단한 생사도구를 꾸리고 이 길을 내 길로 바꿔 그대로 삶을 진행해가는 사람들...

그건 자유롭게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 어느 곳을 가든 책임감 있게 살겠다는 치열함의 고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또한 황석영의 말을 빌려 말하고 싶네요.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고...


* 책보다는 작가 황석영에 대한 개인적인 고백의 글이 되어 버린 셈이네요.

변명을 하자면, 이분의 책은 누구를 통해 만나는 것보다는 직접 읽음으로 해서 만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에...

그의 글들을 읽으면 잊어버린 세대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동시에 치열함을 잃은 자신에 대한 반성도 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다른 형태의 고해성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혹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9. 25. 06:17
 <나가사키 파파>- 구효서


나가사키 파파

 

오늘 소개할 책은 <나가사키 파파>입니다.

작가 구효서님은 1958년 생으로 신춘문예를 통해 1987년 등단해서 20 여년 동안 정말 많은 소설을 발표한 분입니다.

<카프카를 읽는 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마디>,  <그녀의 야윈 뺨>,  <물 속 페르시아 고양이>, 
<악당 임꺽정>, <낯선 여름>...

한 때 정말 열심히 찾아 읽던 소설가 중 한 분이었습니다.

<나가사키 파파>는 그가 6년 만에 선보인 장편소설입니다.(중간중간 중단편들은 계속 발표했었지만요)

기대했냐구요? 물론 기대했죠.

그리고 역시 기대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구요.

여성의 문체를 보는 듯한 따뜻함이며 디테일한 섬세함, 그리고 어떤 한 순간을 포착해서 멋지게 서술하는 그만의 특성들을 아주 맘껏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답니다.

이분의 단편들을 모아서 만든 아주 유명한 영화도 있는데 혹시 아시나요?

바로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죠.


소설의 주인공은 일본 나가사키의 음식점 '넥스트 도어'에서 일하는 21세 한국인 “한유나”입니다.
그녀는 친부를 찾으려는 일념에 바다를 건너 지금 이곳 나가사키에 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그녀에게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알리는 조금은 철없는 메일을 보내옵니다.

이야기는 주인공의 아버지 찾기라는 가시적인 목적에, 그녀 주변 인물들의 사연과 어머니의 메일을 통한 과거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바리데기>라는 전형적인 “아비 찾기”의 신화 원형을 이야기의 뼈대로 채택하고 있지만 결국은 그 원형을 벗어나 “자아 찾기”로 결말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유나의 직장 동료들은 대부분 일본 사회의 주변적 존재들입니다.

일본 원주민 '아이누' 출신으로 자폐적 삶을 살아가는 일급 요리사 “쓰쓰이”.

부락민(천민 집단 거주지) 출신 여성을 사랑하는 식당 지배인 '“오오카”.

'조선' 국적을 고집하는 아버지와 불화를 겪는 재일동포 3세 “미루“ 언니.

이상하게 착하고 만만한 스무 살의 퀴즈왕 “히데오”

세상의 온 벽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홀 담당 “기구치”.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짓지만 죽어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중국인 “아이코”.

그동안 숨겨왔던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과 '출생의 비밀'을 이메일로 털어놓는 철부지 엄마 박성희도 소설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화자중 한 명입니다.

그녀의 남편 한빈, 그리고 한유나가 찾아 나선 또 따른 아빠 정민태.


궁금했습니다.

왜 <나사사키>란 지명을 차용했을까 하고요.

그래서 찾아봤죠. 그리고 나서 이해가 됐습니다.

<나가사키>는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일본 주류사회로부터 배척받는 이들의 삶터가 된 곳으로 일본 개항 역사의 시발지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즉 모든 인종들이 혼합될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바로 나가사키였던 거죠.

일본의 순혈주의에서 배척당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아웃 사이드적인 장소.


이 소설은 아버지를 찾아 나선 오랜 길을 통해 오히려 아버지라는 개념을 해체하고 자신의 진정성을 찾아가는 내용입니다.

작가의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볼까요?

"소설에서 뭘 드러내고 그러면 재미없어질까봐 (메시지를) 꼭꼭 누르긴 했지만 작품 속에서 조금씩 흘러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혈통, 고향, 넓게는 민족, 인종 등 테두리 짓고 공통의 정체성을 강요하는 것들에 대해 다루고 싶었다"고...


“스물한 살, 나를 충동한 것은 결국 방황이었다!”

소설에 나오는 대목처럼 정말 그럴 때가 있습니다..

“사는 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싶을 만큼, 모든 게 만만해지며 터무니없이 행복해지는 순간, 사각형 투성이의 공간도 더 이상 답답하지 않는 순간”이..

주인공 한유나는 생각합니다.

“더 이상 헤매지 않으려면 또 다른 아버지와 가족과 고향을 찾을 게 아니라, 나를 찾아야 하는 거 아닐까.”라고요.

아버지와 가족과 고향과 나라와도 무관한 나. 기대면서 닮고, 닮아서 군림할 수밖에 없게 될 나로부터 도망친, 전혀 다른 이름의 나.

그녀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나>를 찾지 않는다면 어떤 아버지를 찾던 그 아버지를 잃게 될 거라는 거, 아니 결국 스스로 찾은 아비를 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요.


그렇다면 <아버지>란 여기서 결국 내가 품고 있던 옹졸한 꿍심의 다른 이름이었던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내 불확실성이 나 때문이 아니라 불확실한 아버지 때문이었노라 밀어붙일 수 있는 아주 그럴 듯한 보호막이 아버지였던 거죠.

“퓨전”이라는 말을 많이 들으시죠?

별개의 재료들이 합쳐져 제3의 다른 어떤 것으로 재탄생되는 퓨전의 신비,

이 책에서도 그런 퓨전의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이질적인 사람들이 이곳 “넥스트 도어”에  모여 있습니다.

실제로 주인공은 이들을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새롭게 만들어진 가족은 혈연과 지연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가족의 의미를 파괴하고 해체하는 그런 형태의 가족입니다.

아마도 주인공은 그 세계에서 더 큰 아버지를 찾게 되지 않을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제가 일하는 곳에서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을 만나서 많이 변할 수 있었음을 고백하게 되네요.

누구든 그럴 때가 없겠습니까!

나를 파괴하고 싶고, 철저하게 해체하고 싶고, 내가 내가 아니길 꿈꾸는 그런 때.

해답은 아닐지언정.

그래도 이 책은 공감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

공감 또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