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14. 05:42
카리예 박물관을 나와서 예윕 자미를 가기 위해서
또 다시 열심히 헤맸다.
역시나 적재적소에 나타나서 도움을 주는 터키 현지인 덕분에
1.25 TL 로컬 버스(동네 마을 버스?)를 무사히 탈 수 있었다.
안내 책자에도 노선이 자세히 나와있지 않아 어떻게 가야하나 혼자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제 헤매고 걷는데 재미를 넘어 쾌감이 느껴질 정도다.
(이런 길치도, 이런 저질 체력도 너끈히 받아주는 도시, 터키~~)

 



에윕 술탄 자미(Eyup Sultan Camii)!
이슬람의 예언자 무하마드의 애제자 에부 에윕 엔사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단다.
(당연히 누군지 모른다. ^^)
에윕이라는 인물은  674~678 년에 성전의 기수로 활약했고
콘스탄티노플 공략 때 전사했다고 책에 써있다.
그가 죽은 뒤 8세기나 지나 그의 무덤이 발견됐고
메흐메트 2세가 그 자리에 자미를 지을 것을 명령해서 지금의 에윕 술탄 자미가 탄생됐다.
그 이후 이곳은 새로운 술탄이 즉위할 때 성검 수여식이 거행되는 국가적인 장소로 사용됐다.
지금도 에윕의 무덤에는 참배를 위한 발길이 계속되고 있단다.
이런 성스러운 이력때문인지
다른 자미보다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고 코란을 독경하는 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특히나 복장규정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여자는 스카프를, 남자는 긴바지를 꼭 입고 가야 한다는데
그날 복장이 반바지에 티셔츠라서 쫒겨나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자미 가운데와 벽 주위에는 발을 씻는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이슬람 자미의 특징 중 하나는 꼭 발을 씻고 들어가간다는 거!)



내가 찾은 날이 일요일이었는데 아마도 결혼식이 있었는지
여러 쌍의 신랑, 신부와 가족들로 자미 마당이 북적였다.
그 틈을 이용해서(?) 자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행히 쫒겨나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자니
왠지 나까지도 숙연해지고 간절해진다.
코란을 읊는 사람들의 눈빛은 아이처럼 맑고 깨끗했다.
1층 마나렙 근처는 오직 남자들만 기도할 수 있는 곳인지 여자들이 한 명도 없다.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통해 2층에 올라가야 에삽을 쓴 여자들이 기도하는 곳이 보인다.
(터키의 남존여비 사상은 우리나라보다 은근한듯 하지만 오히려 더 심한 것 같다)
창을 통해 비치는 햇빛 속에서
자미의 밝은 곳은 찬란했고, 어두운 곳은 고요했다.
왠지 더 오래 있기에는 복장이 너무 미안해서 서둘러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혼났다.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님(랍비?)이 반바지 입은 나를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라고 하신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몇 번씩 숙였는데 이해를 하셨는지는 모르겠다.



에윕 술탄 자미를 오른편에 바짝 두고 피에르로티 찻집을 향해 산언덕을 올라갔다.
피에르로티 찻집(Pierre Loti Kahvesi)!
프랑스 작가 피에르로티가 여기서 바라보는 풍경을 너무나 좋아해서
이곳에서 차를 마시면서 작품을 썼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찻집까지 케이블카로 쉽게 올라갈 수 있지만
가능하면 꼭 걸어서 올라가길 권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골든혼과 주변 경치는 안내서의 말과 피에르로티의 고백이 거짓말이 아님을 증명한다.
촉각까지 살아 있는 풍경이랄까!
바라보고 있으면 시선에 따라 몸의 일부가 톡톡 말을 건다.
바람도 그려질 것 같고, 햇빛도 만져질 것 같은 풍경들.
길 양편에 있는 공동묘지를 따라 걸어서 올라가고 걸어서 내려오다보면
죽음이 일상의 공간처럼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



터키 여행 중에 의외의 곳에서 느닷없이 공동묘지가 나타나고는 했는데 
그걸 바라보는 시선은 두려움이나 꺼림직한 고개 돌림이 아니라
오히려 친근함과 평온한 고요였다.
이곳도 그랬다.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무덤임에도 나는 그네들이 다정했다.
그리고 여기에, 다정한 그네들 옆에 내 자리도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도 품었다.
이곳에서라면 결코 깰 수 없는 잠도 기꺼이 달게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얗게 비어 있는 묘비명에 슬쩍 내 이름을 써두고 싶었다.

죽음은 때론 불같은 질투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5. 05:42
새하얀 석회층을 올라가야 볼 수 있는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기원전 190년 페르가몬 왕국의 고대 로마 시대 유적지가 남아있는 곳이다.
히에라폴리스는 '성스러운 도시'라는 의미가 있다는데
예전에 이곳에서 신탁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빈손으로 올라가서 길치의 본문에 충실하게 여기저기 해매고 있었는데
그런 내 모습이 안스러웠나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지나가는 여행자가 travel guide 라는 지도 한 장을 건네줬다.
이 지도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싶을만큼 열심히 체크해가면서 유적지 찾아다녔다.
(물론 땡볕아래... 달랑 물 한 병 들고...)
별로 믿음직스럽지 않지만 그래도 역시 믿을 건 내 두 다리뿐.



* 아폴로 신전(Temple of Apollo)
페르가몬 왕국이 주신으로 모셨던 태양신 아폴로의 신전.
신전 안에 플루토니움(Plutonium)이라는 동굴신전이 있는데
지하의 신 플루토(Pluto) 즉,  하데스(Hades)에게 바친 곳이다.
이 동굴에서 유독가스인 일산화탄소가 분출되었는데
신관이 이 가스를 마시고 최면상태에서 신탁을 전했다고....
플루토니움 외엔 온전한 건물이 남아있지 않고 대리석 기둥 몇 개만 남아있어 아쉬웠다.
그래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대리석 색은 정말 이쁘더라.



* 원형극장 (Roman Teratre)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기원전 2세기에 세워진 로마 극장.
1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는데 보존 상태도 너무 좋고 전망도 멋지다.
파사드 부분에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조각되어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원형극장의 위엄과 웅장함에 개인적으로 많이 놀랐다.
가파른 계단을 굳이 내려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본 모습도 웅장했다.
한창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듯한데 인부는 한 명도 안 보였다.



* 성 빌립 순교 기념당(Martyrium of St. Philip the Apostl)
이 길이 맞나 의심하면서 무성한 풀길을 따라 꽤 올라가야 볼 수 있는 건물.
사도 빌립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단다.
빌립은 80년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이곳에서 자신의 딸과 포교활동을 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히에라폴리스 전체적인 모습은 정말 아름답웠다.
(그리고 여기서 대충의 이동동선을 그릴 수 있었다.)
외따로 떨어진 곳이라 혼자 올라가려니 좀 무섭긴했지만 어쨌든 안 갔으면 후회됐을 곳.
다행히 가다가 다른 여행자 2명을 만나 두려움이 좀 가셨다.
땡볕 아래 숨어있는 거북이도 보고...
(굳이 와서 보라고 해서 또 굳이 가서 봤다.)
팔각당이 조금만 더 남아있었다면 좋았겠다는 바람이...
더불어 술래잡기 하기에 딱 좋은 곳이라는 엉뚱한 생각도 잠깐. ^^



* 도미티아누스 문 (Domitianus Gate)
3개의 연속 아치가 잘 남아있는 문으로 
총독 율리우스 프론티누스가 85년에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로마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로만 게이트(Roman Gate)라고도 불린단다.



* 로마 욕탕(Basilica)
도미티아누스 문을 통과하면 바로 보이는 거대한 두 개의 아치가 있는 전형적인 로마 시대 건축물.
온천을 이용한 치료와 휴양을 위해 만들어진 욕탕 시설.
보수공사를 하는 중인지 완벽하게 돌로 막혀 있어 내부를 볼 수는 없었다.



*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죽은 자의 도시"라는 뜻으로 1000 개가 넘는 묘지가 늘어서 있는 고대의 공동묘지.
병약한 환자들이 히에라폴리스 온천수에 희망을 걸고 많이 찾아왔는데
결과적으로 사망자도 많아지면서 대규모 공동묘지가 형성됐단다.
터키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라고...
처음엔 석관들이 신기해서 한참을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다녔는데
(심지어 신기해하면서 뚜껑이 열린 석관을 들여다보기까지 했다.)
아무도 없이 혼자 걷고 있다는 걸 알고 등골이 섬뜩했던 곳.
땡볕아래 꽁꽁 싸매고 다니느라 꽤나 더웠는데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었다.
서둘러 걸어 나오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깊게 들어갔었나 싶어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던 기억이...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자 절로 큰숨이 쉬어지더라.



파묵칼레는 아무래도 하루  반나절 일정으로 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곳이다.
나중에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면
남쪽에 Roman Gate 부터 북쪽 Necropolis까지 좀 찬찬히 둘러보고 싶다.
메인 도로와 중간중간 있던 교회터와 다른 유적들을 보는 것도 참 좋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수박 겉햩기 식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사이프러스같은 키 큰 나무들이 가득한 Agora 터에도 좀 머물고 싶었었는데...
거짓말처럼 초록 나무들 위, 파란 하늘 속에서 샛노란 페러그라이딩이 보였다.
그 색이 주는 느낌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언젠가 또 이 길을 걸을 날이 있겠지.
새햐얀 석회층을 다시 맨발로 걸어내려오면서
나는 '다음번에..." 라는 약속을 몰래 묻어두고 왔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