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1. 12. 05:56
한국인이 나온다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이 작년 말에 나왔다.
자신의 책을 출판하는 "열린책들"이 얼마나 고마웠으면
사장 아들 이름을 등장인물로 만들었을까?
하긴 우리나라만큼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먹히는(?) 나라도 없긴 하겠다.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소녀 카산드라와
시립 쓰레기 하치장(시쓰장)에 사는 인간 폐기물 4명.
그리고 그 루저 4명 중 한명이 한국인(정확히 말하면 북한인) 김예빈이다.
일단 베르베르의 전방위적이고 전지구적인 상상력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하고 싶다.
확실히 베르베르는 "꾼"은 맞긴 하다.

사람들은 보긴 하지만 눈여겨보지는 않아.
듣긴 하지만 귀 기울여 듣지는 않아
알긴 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해

어쩌면 모든 인류의 비극은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테러에 대한 예지력이 있으나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운명이라니...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뿐이다.
직접 테러를 막기 위해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루저들과 함께 사생결단 하는 수밖에. 



어머니는 대학자였고, 아버지는 거물 정치인,
비정상 아동(자폐아) 전문가와 미래 전문가의 만남.
그리고 그 둘 사이에 태어난 수학의 천재 다니엘과 미래를 보는카산드라
그러나 열세 살 이전의 기억이 존재하는 않는 소녀 카산드라.
자폐증 영재 아동을 위한 실험.
부모는 자식의 자식들을 직접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다.
실험 23 다니엘, 실험 24 카산드라.
부모는 카산드라가 13살 때 테러에 의한 폭발로 죽고
가까스러 살아 남은 카산드라는 13살 이전의 기억을 모조리 잃어버린다.
과거를 잃어버린 사람이 미래를 예지한다는 기막힌 상황.
카산드라의 운명이 쉽지 않으리라는 건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요즘 솔직히 베르나르의 소설에 대해서 좀 식상해하는 중이다.
신화와 과학을 뭉뚱그려 섞어서 이도저도 아닌 이야기를
그것도 반복적으로 세뇌하듯 참 무던히도 계속 쓰고 있는 것 같아서...
확실히 <개미>나 <타나토노트>와 같은 참신함을 느끼기는 더 이상 힘들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삽화처럼 끼어들어 있는 그림들은 특히나 못마땅하다.
자국에서는 누가 그렸는지, 혹은 삽화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삽화가 나올때마다 솔직히 난감했다.
무수한 SF 영화들과 그 주인공들,
그리고 자신이 쓴 책 제목들으 교모한 이용.
어쩐지 이 사람 요즘 참 미디어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베르나르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지는 건,
아무래도 그의 미디어적인 속성이 대체 어디까지 나아갈까에 대한 의구심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남은 건,
고대 신화들이나 다시 한 번 챙겨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카산드라 카젠버그의 모험>
이 책도 정말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찾아나 볼까 한다.
동명이인에게서 위로라도 받고 싶어서...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4. 5. 06:36
무대 위엔 꼭지점을 아래로 향하는 커다란 역삼각형이 층층히 쌓여진 종이더미 위에 위태롭게 서있다.
균형이 잡힌 정삼각형도 아닌 불안한 모습 그대로...
그 불안함 속에 해답을 위한 힌트라도 주는 듯.
높이 달린 창문을 통해 한 줄기 빛이 퍼져온다.
그러나 그 빛조차도 자세히 보면 불안한 삼각형의 형태다.
그리고 삼각 구도로 놓여 있는 의자 세 개.
그 의자마저도 정삼각형의 구조를 살짝 벗어나
시작은 분명 어느 한쪽으로 불안하게 기울어져 있다.
(물론 극이 진행하면서 정삼각형의 구조를 쟘깐씩 보여주긴 하지만)
내게 연극 <코펜하겐>의 첫인상은 그러니까
평형에 대한, 균형에 대한 일종의 불안한 도전이며 거부처럼 느껴진다.

역사 속의 세 사람,
닐스 보어(남명렬), 베르너 하이젠베르그(김태훈), 그리고 닐스 보어의 아내 마그리트(조경숙)
스스로 현실 속의 사람들이 아님을 고백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지금 하나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중이다.
“왜, 1941년 하이젠베르그는 보어를 방문했는가?”


아버지와 아들 같은 사제지간이자 오랜 연구 동료인 보어와 하이젠베르그는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서로 적국으로 갈라서게 된다. 
하이젠베르그의 위험하면서도 비밀스러운 방문은
50년간 토론을 벌여왔으나 그닥 명확한 결론을 얻지 못한 상태다.
연극은 세 번의 리플레이를 거듭한다.
그리고 매번 다시 묻는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가 찾아왔을까?” 를...
이들 세 사람은 이 질문을 통해
도대체 지금 어떤 해답을 얻고자 하는걸까?



연극 <코펜하겐>은 노골적으로 말해 아주 많이 어렵다.
그리고 심각하다.
게다가 지독히 아름답기까지 하다.
핵분열, 중성자, 원자로, 원자탄의 제조, 불확정성 원리와 상보성의 원리 등
수시로 등장하는 물리학의 개념들로 머릿속은 이미 무한대의 복잡성 안에 놓여있다.
어쩌면 이 연극을 이해하기 위해선 관객들에게 지독한 인내심이 필요할지도...
그러나 연극 <코펜하겐>에서 중요한 건,
그런 과학 원리나 학자적인 이론이 아니라 
그 이론을 끌어냈던 인간들의 본성과 진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Dark side of the moon"
그렇다면 그건 확실히 불가능한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니긴 하다.
마침내는 인간이란 객체의 유사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될테니까...
시간의 개념조차도 무력하게 만드는 핵폭발을 능가하는 인물들의 충돌과 대면은
사뭇 진지하면서도 무척 재미있다.
수시로 돌출하는 날카로운 삼각형의 모서리들은
한쪽은 역사를 향해, 한쪽은 인물을 향해, 나머지 한쪽은 상황을 향해
거침없이 전진하기도 하고 일시에 후퇴하기도 하면서 극의 생명감을 예리하게 살려낸다.
입 속에서서 쏟아져나오는 숱한 이론들과 과학에 몰두한 인간의 지독한 광기.
그리고 그 광기 속에 보여지는 학문에의 순수한 열정.
"과학"으로 덧씌워진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과 탐구.
그 치열함이 극 속에서 제 2, 제 3의 긴장감으로 고스란히 살아난다.
폭풍같은 치열함들...
(이런 치열함을 만나게 되면 나는 그만 정신을 잃게 된다...)



<마라, 사드> 이후에 무대 위에서 만난  배우 남명렬은
역시나 늘 아름답고 섬세하고 그리고 정확하다.
그는 매번 무대 위에서 삶의 터를 개척한다.
끝없는 유목민으로서의 연극배우 남명렬의 아우라가
그래서 나는 늘 깊고 다정하고 믿음직스럽다.
연극 무대는 시간과 열정을 배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배우 남명렬.
 “살아가는 세월만큼 무대 위에서 녹아나기 마련이에요. 그 세월은 관객들에게 어필될 수 있어요.
  그러니 연극이 나의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시선을 조금 길게 봤으면 해요.”

이 말에 지극히 공감하는 관객이 여기도 이렇게 있다는 걸 그가 알까? (^^)
그는 연극 <코펜하겐>을 통해 관객과 ‘의미 있는 소통"을 희망한단다.
"우리는 현재 재미와 가벼움, 즐거움을 위해 달려가는 말 위에 있죠. 잠시 말고삐를 잡고 ‘속도를 조정해볼까’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이 작품과 함께 했으면 해요. 담론 자체는 거대하지만 그 속에 인간적인 부분들이 많이 있거든요. 유머도 있고.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말초적 세상에서 무언가를 돌아보고 싶다면 좋은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애쓰고 있고요."
속도를 조정하기...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일이 바로 그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치열한 연극 <코펜하겐>을 보고 나는 느긋한 "여유"를 느꼈다.
당연하지 않은가?
원래 인간의 삶이란 이렇게 늘 불확실 한거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3. 12. 06:15
 

<지식 ⓔ season 2> -  EBS 지식체널ⓔ



지식 e SEASON 2 


EBS 지식채널은  2005년 9월에 기획 편성된 프로그램으로, 일주일에 세 편씩 방영되고 있습니다,
벌써 책으로도 season 4까지 출판되어 있는 상태구요.
이 프로그램은 'e'를 키워드로 한 자연(nature), 과학(science), 사회(society), 인물(people)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단 '5분' 동안 전해지는 강렬한 메시지와 영상으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생각꺼리를 만들어 주고 있는 짧지만 강렬한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죠.

이 책 역시도 짧은 문구들 속에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리고 잘 알지 못했던 사실들에 대한 다양한 관점, 해석, 그리고 이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season 2>를 읽으면서 제가 느꼈던 생각은 이 책은 앞으로도 점점 지금보다 더  “진화”되는 책으로 남겠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season 1> 보다 확실히 더 자세하고(그러나 간략함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자세하면서 간략할 수 있다는 거...어떤 의민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리고 더 적극적이라고 할까요???

<season 1>은 “구분하기”, “밀어내기”, “기억하기”, “돌아보기” 이렇게 4개의 커다란 패러다임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안에 다시 10개의 단상이 담겨있습니다.

지금 우리와 관련이 되어 있는 문제들, 그리고 과거에서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던 문제들, 그리고 그러지 않아야 하는데 점점 우리가 잊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단상들이 정말 깊은 생각과 반성, 그리고 성찰을 하게 만드는 어찌 생각하면 깨달음에 관한 책이라고 나름 생각하게 됩니다.


<season 2>는 “희”, “노”, “애”, “락”이라는 또 다른 네 가지 패러다임이 1권과 마찬가지로 각각 10개의 단상들을 품고 있습니다.

이 책은 “지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우리가 꼭 알고 있어야 하는 “상식”에 대한 책입니다. “교양”을 쌓는 책이 아니라 “앎”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우리가 알지 못하고 지낸다 해서 우리 삶에 문제가 되는 내용들은 결코 아닙니다(솔직히 그런 내용이 세상에 존재나 하는지 의문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꼭 알았으면.... 그랬으면 하는 바램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귀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프로를 만든 EBS는 이 5분의 짧은 단상들이 “이슈메이킹”이 되길 원했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는 성공적이고, 어느 정도는 안타까운 게 현실이죠.

분명 적지만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시켰고,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이슈가 되기에는 EBS의 시청률이나 파급력이 너무 미미한 현실이라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MBC나 KBS, SBS를 통해서 방송됐다고 해서 그게 달라지진 않았을 거란 개인적인 생각도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우리의 눈과 귀가 예능에 너무 충분히 익숙해 버린 탓에....)

<season 1>이 현실, 상황, 직면한 과제에 대한 탐구였다면, <season 2>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 사람에 대한 기억에 관한 내용입니다.

평범한 재단사 전태일의 분신의 이유, 시각에 후각까지 상실한 스티비 원더, 만년 2등의 귀환 이봉주, 빛의 화가 렘브란트,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피사체로 찍었던 사진작가 최민식, 그리고 강요한 군국주의 애국심으로 희생된 가미카제 특공대....

이 책을 읽은 후에 제가 비난했던 이들을 가리키던 손가락은 저를 책망하는 손가락으로 그 방향이 전환됐습니다.

잘못 알고 있었기에, 그저 들리는 이야기에 편승해 쉽게 손가락질 했던 제 손이 부끄러워졌으니까요.

물론 현재 제가 더 많이 알게 됐고, 바르게 알게 됐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 그래서 더 잘 알기 위해 입을 다물고, 손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그저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됐을 뿐이라고요.....

이 책을 읽으면 아마도 우리가 매일 타고 다니는 지하철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며, 점점 사라지는 골목길이 그리울 것이며, 작은 엄지로부터 시작된 문자 메세지에서 비롯된 촛불의 행렬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은 작습니다. 그러나 그 안엔 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내용은 내 생각을 복잡하고 어렵게 재구성합니다.

이 책은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내용은 계속 읽다보면 자꾸 긍정적인 방향으로 불편해지는 책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은 평범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내용은 태산을 옮길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의 손 안에,

꼭 이 책을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