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10. 8. 05:45
처음엔 그를 왜 문단에서 주목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1970년 출생한 아주 젊디 젊은 작가 김연수
그 나이에 과거가 있으면 얼마나 있고 사건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젊은 작가 한 명의 작품이 나올때마다 문단은 바빠지나 했었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굿빠이, 이상>으로 2001년 동서문학상,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2003년 동인문학상,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2005년 대산문학상,
2007년 단편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
그의 이력은 문학상 수상작만 나열하는 것으로도 숨이 차다.
순서가 좀 뒤바뀌긴긴 했지만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었을 때도 의구심이 풀리지 않았었다.
그리고 읽은 그의 두 번째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 책을 읽고 생각을 바꿨다.
그의 책을 이제 다 찾아보리라!



가끔 생각한다.
그가 성균관대 출신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1991년의 그 시점에 대학생이 아니었다면...
(그 때 성균관대에서 권기정의 사망 사건이 있었다.
 아주 생생하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성균관대 운동권 학생이었던 언니 때문이다.
 권기정의 시신을 지키는 무리 속에 우리 언니도 있었기에...)
어쩌면 김연수에게도 그 시절에 대한 부채 혹은 책임감 같은 것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치 광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소명처럼...
기억하고 그리고 기록해서 전하기 위해서.
그 때 서울 시내는 항상 매캐한 최류탄 가스로 가득했었고
도심은 백골단과 대학생들의 쫒고 쫒김으로 분주했었다.
명지대에서는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학생이 사망했었고
(공교롭게도 명지대는 우리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 그 사건도 아직까지 선명하다. 분향소를 찾아갔던 기억도...)
그리고 전대협의 북한행이 그 즈음이었고.
세계적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때이기도 했다.
곰곰히 되집으니 내가 살아온 대한민국의 현대사도 전쟁 못지 않았구나 싶다.
그러니까 이 책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는 이 모든 현대사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처음엔 사랑이야긴가 했었다.
그런데 아니다.
사람 이야기, 그것이었다.
예전의 어느 인터뷰에서 작가 김연수는 말했다.
"써보니까 소설이라는 게 사람을 이해하는 문제더라고요. 대상은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문득 떠올린 사람일 수도 있죠"
사람에 대한 이야기...
사람 이야기 속의 실제 사건과 시간들이 나는 두렵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생환한 뒤,
죽은 동료의 이름으로 개명하고 제3세계 망명객들의 후원자가 된 피아니스트 헬무트 베르크,
떠돌이 일용직 노동자에서 "광주의 랭보"로,
다시 혁명적 문화운동가 강시우로 "이 세상에 두 번 다시 태어"난 남자 이길용,
모범적인 고등학생에서 느닷없는 폭행을 경험하고 결국 자살에 이르는 정민의 삼촌,
서해 갯벌을 막아 논을 만들겠다는 만석지기의 꿈을 꾸다 간첩으로 몰려 실형까지 살게 된 주인공의 할아버지.
책 속엔 이렇게 유일하면서 둘이 되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읽으면서 나는 턱턱 숨이 막혔다.
한때 우리나라가 그랬었지.
(그렇다면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 의해 내 인생이 날조되고 뒤바꿔지기도.
그래서 몽롱한 바보로 버려지듯 던져져버린
그런 삶들이 있었다는 거...
여기도, 저기도 갈 수 없었던 사람들.
나 자신일 수도, 나 자신이 아닐 수도 없었던 시간들.
소설로 읽어내는 그 사람들과 그 시간들은 아무리 해도 덤덤해지지 않는다.

문학동네에 이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김연수는 말했다.
"때로는 한 사람이 세상 모두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한 사람만을 생각할 때도 있다.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고 말한 사람이 보르헤스라고 했던가. 확실하진 않지만 나는 보르헤스가 그런 말을 했다면 그게 옳은 말이라고 전해주고 싶다...... 모두에게는 각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역시 운명과 사랑과 배신과 복수와 좌절과 슬픔과 기쁨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멀리, 아주 멀리 가면 풍경은 달라지지만, 역시 이야기가 말하는 바는 비슷하다.
작가로서 진심으로 바라는 일은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정말 많은 얘기를 들려주기를.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이 다시 내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주기를....."
그가 쓴 또 다른 글에서 사람들은 또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그가 생각하는 재능이라는 건 "집중력"의 문제란다.
얼마만큼 시간을 그 안에 쏟아 부울 수 있는지의 정도 차이가 재능이라고...
이제 나는 또 한 사람의 재능을 탐하기로 했다.
김.연.수.
그를 읽어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 8. 06:14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내게 작가 최영미를 알게 한 최초의 책이자 그녀의 첫 책.
20대에 이 시집을 소유했을 땐
서른이 요원했기에 이해하지 못할까봐 건성건성 들춰봤었다.
(사실 그때는 내게 서른이란 시간은 결고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턱없이 어이없는 자신만만함이었음을 그때 조금이라도 알았었더라면...)
"서른"이 지나 내 잔치가 끝났을 때 다시 조목조목 읽어보리라 혼자 다짐했던 책.
그리고 오랫동안 나는 그 책을 외면했다.
지금은...
이미 "서른"을 훌쩍 넘겨버린 나는
이 시집의 제목만으로 덜컥 겁이 나 감히 책 장을 펼쳐보지도 못한다.
마치 뭉턱 시간을 통째로 도려낸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은 실제로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아리고 처절하다.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제목만 들었을 땐 여행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 표지에 산문집이라는 자신의 소속이 정확히 밝혀져 있다.
최영미의 단어 선택은 정직했다.
1부 "아름다움에의 망명"은 그녀가 그동안 국내의 신문과 잡지 들에 기고한 여행과 관련된 글들을 모은 부분이다.
2부 "예술가의 초상"은  문학, 미술, 영화 등 문화 전반에 대한 그녀의 짧은 사색과
개인적인 경험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1부의 글조차도 여행지를 소개한다는 느낌보다
어떤 특정한 그림이나 조작에 일일이 말을 걸고 있다는 느낌...
그것도 조근조근한 독백으로....
여행지를 담은 그 흔한 사진조차도 이 책에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최영미가 아나라
서울대 미대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을 거친 미술학자로서의 최영미를 만날 수 있다.



마흔을 훌쩍 넘긴 한 여자가 말한다.
"여행과 스포츠는 내 삶이 다하도록 나와 함께 할 정열이다"
지독히 그리고 강력히 그녀가 부러워 야생의 짐승처럼 물어뜯고 싶어진다.
진심으로 나는 그러고 싶었다.
여행지에서 편하고 손발톱을 깎으며 오래 밀린 일기를 쓰고 싶었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유명 여행지를 눈도장찍듯 훓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며칠이라도 감정이 바닥날 때까지 한 곳에 정착하듯 머물며 일상을 보낼 수 있기를...
아직도 계속 건축중인 가우디 성당 앞에서, 
미켈란젤로의 가죽을 들고 있는 섬뜩한 장면이 숨어있는 "최후의 심판" 앞에서
나는 졸음처럼 밀려오는 시간들을 오래동안 보내고 싶었다.
그 꿈은 요원하고 늘 가파라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몇 가지 표현과 글들이 눈에 들어와 담아본다.
특별히 공감했던 부분들과 지극히 부러웠던 부분들.
문득 숨쉬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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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자들은 프랑스 여자들보다 화장이 진하다. 유럽의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여인네들으 얼굴이 울긋불긋해진다. 내 경험을 일반화하지면, 젊은 여성에게 두터운 화장을 강요하는 사회일수록 여성의 지위가 낮다.

The ugly can be beautiful, but the pretty never - 고갱
예술을 알면, 문학을 좋아하면 인생이 복잡해진다. 좋게 말해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보통 사람들은 밖에 보이는 것만 보고 이렇다 저렇다 미추를 논하는데, 예술가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사람들이거든, 자신이 남다른 생을 살아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그래서 위대한 인생이 위대한 예술을 낳는다는, 예술가는 모두 불행하다는 신호가 성립하지.

버락 오바마, 그는 인종이 아니라 인간에 호소했다. 그는 선동하지 않고 설득했다. 자신감이 그의 성공의 열쇠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처럼 대단한 자신감의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어려서부터 여러 대륙, 여러 문화에서 자라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노라고.

나는 이 모든 처음, 최초들을 의심한다.

어쩐지 이건 너무 만들어진 장치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진짜 상처는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너무 고통스러우면 눈물도 마른다. 그 눈물을 억지로 짜내려는 모든 시도는 그래서 결국 어설픈 신파로 전락할 따름이다.
그날의 광주에 대한 지식인의 해묵은 "부채의식"에서 태어난 영화 <꽃잎>. 장선우 감독이 과거를 들여다보는 창에는 시종일관 감상이라는 필터가 부옇게 끼어 있다. 신파의 본질은 자기 연민이다. 일종의 정신적 딸딸이에 다름 아니다. 감상과 자기 연민의 안개를 거도 광주는 언제 신파에서 구출될 것인가? "우리"는 언제 눈물을 그치고 현실을 직시할 것이가? 이는 장선우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화두이다. 서둘러 고아주를 형상화하려는 허튼 기도보다는 지금은 차라리 광주를 손대지 않고 그냥 놔두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시사회장을 떠나며 나는 다짐했다. 싸구려로 위로받느니 차라리 냉정한 무관심을 택하겠노라고.   -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을 시사회를 본 후 느낌을 적은 글

시는 그것을 쓴 사람이 아니라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다.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엇꼬,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 레비스트로스(프랑스 인류학자이며 사상가)

사랑받지못했으므로 청춘을 잃은 사람들, 그래서 젊은 적이 없기에 늙을 수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위로가 되면 좋겠다. - 잉게브르크 바흐만의 산문집 <삼십세>

예술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 예술에 집착하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네 - 에밀 졸라의 이 말에 깊은 상처를 받아 그후로 죽을 때까지 세상과 인간을 등지며 산 화가 세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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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책거리2009. 9. 8. 05:28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공선옥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작가 공선옥!

얼마전 그녀가 올해 7월에 제 24회 만해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설집 <나는 죽지 않겠다>, <명랑한 밤길>이 그 수장작이라고 하네요. 제가 그녀의 책으로 처음 읽었던 건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이라는 소설이었습니다. 두 여자의 삶이 어찌나 가슴 짠하던지 그만 덜컥 화가 나기도 했죠. 도대체 왜 나는 그녀의 글을 전적으로 이해하는가? 그리고 전적으로 의지하는가? 어느 날은 속이 상하기까지 했습니다.

1964년 전라남도 곡성 출생....

그녀의 말투가, 하다못해 그녀의 글 속에 나오는 투박한 사투리나 함지박만하게 쏟아내는 푸짐한 욕설들이 그토록 낯설지 않았던 건 “곡성”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네요. “전남 곡성군 삼기면....”으로 시작되는 저의 본적지. 그래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대사나 문체들 그리고 느낌들에서 근원적인 포근함과 따뜻함, 그리고 도망가고 싶은 욕구마저도 느끼게 된 거라는 걸 이제는 이해합니다.

“본적지”라는 이름의 고향!

어쩌면 누군가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단지 서류 속에만 존재하는 아버지의 땅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언젠가는 한번쯤 돌아보게 되는 그런 곳, 실질적이든 아니면 마음 안에서든 찾게 되는 부모의 땅, 그리고 내 생명의 시작이었던 땅.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로 살아보지 않은 제 본적지에 대한 희미한 동경에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 속에 도대체 뭐가 들어 있었던 걸까요?


이미 위로 딸을 셋이나 둔 집에 네 번째 딸이 태어납니다. 부아가 난 할아버지는 이름을 지어달라는 아들에 말에 한마디 합니다.

"니무랄 것! 암꺼나 허라고 혀!”

그래서 네 번째 딸의 이름은 “암꺼나 혀”의 “해금”이 되어 버렸습니다.

순금, 정금, 영금, 해금 그리고 마지막 5번째 딸 영미(“영미”라는 이름은 내리 다섯의 딸을 낳은 어미가 “금”자에 대해 갖는 마지막 반항이자 일종의 시위였던건 아닐지...)

딸 다섯의 넷째 딸이라니, 그 존재성마저도 너무나 희미한 “마해금” 그녀가 이 책의 서술자입니다. 그녀는 이제 스무 살 무렵을 살고 있는, 그리고 광주라는 대도시가 스무 살인 그녀 삶의 근원지죠.

처음 “광주”라는 지명을 봤을 때, 조심스러웠습니다. 그 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어쩐지 자신이 없을 것 같아서요.... 그러나 다행히 이 책은 그런 제 두려움을 살짝 피해갑니다. 그렇다고 아예 관계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해금은 광주민주화항쟁 때 공중에서 날아오는 유탄에 친구 경애를 잃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그들 친구들에게 분명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가져오죠.

이제부터 우리는 5명의 여자들과 4명의 남자들. 아직 스무 살인 그들의 지나온 시간들을 정해진 순서 없이 마구잡이로 만나야 합니다.

경애의 갑작스런 죽음에 "세상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 않지?“라고 반문하며 방황하던 친구 수경은 끝내 저수지에 뛰어 듭니다.

느닷없이 남편이 데리고 들어온 두 번째 마누라를 피해 딸의 자취방으로 찾아든 할머니같은 승희 모친은 추위에 떨며 찾아온 딸의 친구 해금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줍니다.

꾸역꾸역 울음과 함께 밥을 넘기는 해금에게 그 어미는 말합니다.

"악아, 우지 마라! 사는 것은 죄가 아닌 게로 우지를 마라!“

그렇게 등을 다독여 주던 승희 어머니는 그 밤, 돌아오지 않는 딸을 내내 기다리며 차디찬 딸의 자취방에서 뇌출혈로 사망을 하고, 그 딸은 그 사실에 충격을 받아 친구들 곁을 떠나 헤매다 배부른 모습으로 어느 날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납니다.

승희에게 마음을 주고 있던 누군가는 방황으로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승희와 승희가 낳은 아들 승춘과 함께 따뜻하게 살고픈 꿈을 키워내고 있습니다.

잘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둔 친구 정신은 노동자가 되어 민중 해방의 길로 들어서고, 온 동네 자랑꺼리였던 서울대생 승규 또한 학생운동에 점점 더 깊게 참여하게 됩니다.

누군가 생각합니다.

“꼭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같아...”

그리고 도 누군가는 말합니다.

“아무리 죽을 맛이라지만 죽는 것 보단 낫잖아”


돈이 없다며 월급을 밀려온 사장은 젊은 여자를 끼고 관광호텔을 드나들고, 제 노동의 가치가 무시되고 짓밟히는 세상을 실제로 겪은 만영은 사장의 기름진 얼굴 위로 뜨겁고 기름진 고기 석쇠를 던져버립니다. 와이셔츠 공장에 취직을 한 해금은 상대보다 힘이 세다고, 더 많이 배웠다고, 더 많이 가졌다고, 더 우월하다고 믿는 자들이 부리는 오만과 횡포와 모욕과 폭력과 무례함을 이제 조금씩 경험하게 됩니다.

해금은 언제가 친구 정신이 한 말을 떠올립니다.

“그것들과 맞서기 위해선 우선은 그 오만과 횡포와 모욕과 폭력과 무례함을 견뎌내야 한다고. 모든 오만한 자들이, 모든 무뢰배들이 스스로 부끄러워할 때까지, 견디고 견뎌서, 그 견디는 힘으로 우리가 아름다워지자고. 왜냐하면 모든 추함은 모든 아름다움 앞에선 결국 무릎을 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 저 무뢰배의 오만이 횡행할 수 있는 이 야만의 구조, 이 동물적 상황을 나는 견뎌야만 한다고. 저항하기 위해 견딜 것, 아름다워지기 위해 지금은 견뎌야만 한다고....”

구로공단 여공들의 시위.

해금은 자신이 인간이기 위하여. 그리하여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인간의 시간 쪽으로 돌려놓기 위하여 운동장 한가운데로 달려 나갑니다.

유리를 밟아 피투성이에 퉁퉁 부은 발이 된 해금, 얼굴에 피멍이 든 정신은 승규가 붙잡혀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승규는 부모에게조차 알리지 못한 체 그대로 군대로 끌려가게 되죠.

보름이면 다가올 아들의 첫휴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승규 모친에게 전해지는 소식.

아들이 군대에서 머리에 총을 쏘고 자살했다는 청천벽력같은 사실.

어미는 내 자식이 그럴리라 없다며 통곡하고 또 통곡합니다.

그 시대, 모든 어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통곡은 아마도 그 어미의 모든 일생동안 결코 그치지 않고 이어지리라는 걸 한자리에 모인 친구들 모두 가슴으로 느낍니다.

그들은 생각합니다.

우리는 단지 혹독한 겨울을 견디어내고 있을 뿐이라고.

그들이 가장 예뻤던 때, 스무 살의 겨울 말입니다.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온다고 합니다.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구분되는 순간 말이죠. 그런 순간은, 예기치 않게 혹은 법칙처럼 결국은 누구에게나 오고야 만다고 합니다.

이 책,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바로 그 “이전”과 “이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불과 얼만 전에 우리는 “이전”과 “이후”가 구분되는 순간을 지나왔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광주”라는 지명에 그리고 그 때 그곳을 살아내고 지켜왔던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살아낸 “가장 예뻤던 때”에 말이죠.

빚을 진 자에겐 언제나 “의무”가 남습니다.

언젠가 그 빚을 제 힘으로 갚아야 하다는 실질적인 의무 이외에도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도덕적인 의무까지도요.

당신이 가장 예뻤던 때? 그때를 당신은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때를 지나왔다면, 혹은 아직 지나오지 않았다면 기억하십시오.

그 순간을 어떻게 살아냈느냐에 따라 당신의 빚이 조금은 감면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요.

모른 척 하고 싶다면 당신은 아마도 평생을 도덕적인 빚쟁이로 살아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치열하게, 당당하게, 그리고 절실하게

견디라고, 지키라고, 이겨내라고... 그리고 살아내라고

이 책 <내가 가장 예뻤던 때>가 말해주네요.

어쩌면 이 책은,

그러니까 “가장 예뻤던 때”를 살아온 그들이 내게 남겨준 화두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가장 예뻤던 때?”
내게는 그때가 과연 언제였을까요?


* 작가 공선옥의 이력이 참 눈물겹네요.
작가가 되기 전 그녀의 직업은 한달 동안 밤낮없이 일을 해야 손에 19만원을 쥘 수 있는 미싱사였다고 합니다. 우연히 동료가 응모해준 소설이 당선돼서 통장에 입금된 60만원의 거금을 보고 그녀는 무척 놀랐다고 하네요.

먼저, 40만원으로 방을 얻고 그 다음으로 밥상을 샀다는 그녀. 늘 밥상 없이 방바닥에 차려놓고 먹던 밥이 내내 서러웠던 거죠. 뜨거운 밥과 찬을 밥상 위에 차려놓고 아이들을 앉혀 놓고 그녀는 그제서야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야 살 길이 생겼다”고.....

말하자면, 그녀가 쓴 글들은 전부 생존과 결부된 처절한 사투였던 셈입니다.

밥상 위, 한 술 밥의 의미가 문득 처연하게 느껴집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