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2. 15. 00:07

알고 예매한 건 아니었는데
이 날이 작곡가 이영훈의 기일이란다.
그래서 혼자 더 애뜻해졌던가?
세종문화회관 초연 때 노래에 억지로 짜맞춘 스토리가 많이 어색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느낌이 꽤 좋았었다.
아련하고 따뜻하고 그리고 뭔가 그리워지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래서 LG아트센터에서 <광화문 연가>가 재공연된다고 했을때 내심 기대했었다.
심지어 하얀 그랜드 피아노와 스크린에 비친 "광화문 연가" 악보를 보면서 오랫만에 가슴이 살짝 설래기도 했다.
(나도 어느새 옛 기억들을 추억하는 나이가 됐구나 싶어 조금 처연해진 것도 사실이다)
윤도현, 송창의, 박정환, 리사 등 초연 멤버들의 재공연도 궁금했지만 이번에 새롭게 캐스팅된 조성모와 최재웅에 대한 기대감도 사뭇 컸었다.
비운(?)의 다리 부상으로 "모차르트"를 김준수에게 내줘야했던 조성모가 드디어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선다!
미안한 말이지만 현재 그는 발라드 황제라는 가수로서의 입지도 지켜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작품이 조성모에게 어쩌면 터닝 포인트가 되어 주지 않을까?
그래서 조성모 자신도 최선을 다해 정말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을까 싶어 기대감이 컸었다.
얼마전에 절친 조승우, 조정은과 <조로>를 마친 최재웅도 쉴 짬 없이 바로 <광화문 연가>의 "상훈"을 선택했다.
그래서 최소한 나쁘지는 않을 거라 확신했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결론은 너무 안타까웠다.
초연보다 더 약해지고 어수선한 스토리는
전체적으로 작품을 더 가볍고 코믹하게 만들어버렸다.
노래도 몇 개 추가되고 빠진 것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초연이 훨씬 더 좋았다.
왜 다들 그렇게 재미있는 부분들을 끼워넣느라 혈안이 되어 있을까?
지용도, 상훈도, 현우도 다 코믹해졌다.
심지어 이미 코믹했던 조진국과 안정숙의 코믹의 수준은 거의 정신질환에 가깝다.
공연을 보면서 조진국의 목에 감긴 머플러를 몇 번씩이나 힘껏 잡아당기고 싶던지...
데모 장면은 현실성이 전혀 없어 민망했고
(방패만 나오던 그 황량한 무대는 또 어쩔 것인지...)
청바지에 흰 티를 애써 맞춰입고 나온 대학생 데모대들은 마치 대학 응원 동아리 신입생 발표회처럼 엉성했다.
리사는 계속되는 작품들 때문인지 목소리에 피로감이 가득하다.
1막 마지막 노래에서는 고음이 많이 불편하고 조마조마했다.
현재의 상훈 최재웅은,
마치 자신이 어디까지 저음을 낼 수 있는지 도전이라도 하는지
시종일관 톤의 변화없이 저음으로만 굳건하게 파더라.
(너무 깊이 파고 들어가 무대 속으로 들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아픈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한 설정이었나?
그랬다면 실패다.
덕분에 최재웅의 연기를 보면서 처음으로 크게 실망하는 개인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현재의 상훈보다 더 문제는 과거의 상훈 조성모다.
솔직히 이 사람이 발라드의 황제 맞나 싶었다. 
모든 노래를 어쩜 그렇게 뽕기 흐르게 부르던지...
본인은 강약을 조절해서 부른다고 했겠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마치 태진아, 송대관 디너쇼에 온 느낌이었다.
발성과 노래, 연기적인 기교와 액션이 너무 심하게 형편없다.
특히 노래 할 때 가사 전달 엉망이다.
("깨끗이"를 "개긋이"이 라고 발음하는데 정말이지 기절하는 줄 알았다)
공연을 보면서 미안한 말이지만 조성모가 모차르트를 못하게된 게 여러모로 참 다행스런 일이지 싶었다.
정말 반성해야한다.
간절함만 가지고 준비안 된 상태에서 무대에 선 배우와,
형편없는 배우를 버젓히 무대에 세운 연출가와 제작자 모두!
이지나 연출이 그랬다.
세종에 비해 스케일은 작아졌지만 디테일에 충실해졌다고...
미안하지만 스케일도, 디테일도 아무것도 건진 게 없다.
현재의 상훈과 과거의 상훈의 잦은 만남도 너무 거슬렸고
시도 때도 없이 현재의 인물이 과거의 인물에 개입하는 걸 보는 건
일종의 강요된 고문이었다.
늬네 동네에서나 잘 하세요~~~
진심으로 그러고 싶었다.




무대 뒤 스크린에 비치는 허접한 신문기사들의 나열도 한심했다.
왜 이렇게 만들어버렸을까?
누가 이렇게 바꿔버렸을까?
이날 공연해서 현우 역의 이율과 지용 역의 정원영만 아니었다면
그냥 박차고 나와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오랫만에 공연 보면서 정말 과하게 피곤해져버렸다.
처음엔 분명 신선했었는데
이제 재미가 붙었는지 1막과 2막 시작 전에 나오는 LG 아트 센터의 자체 안내 방송은
과한 수준을 넘어 생뚱맞은 정체불명의 퍼포먼스가 됐다.
그러다 조만간 개그작가로 스카웃 되시겠다.
하려면 작품의 분위기에 맞는 멘트를 하던가.
(뭐 작품도 그닥 분위기를 갖출 형편은 못되지만)
모든 게 과유불급이다.

박정환, 윤도현의 초연 멤버를 다시 보고싶긴 한데 올 핸 그냥 넘어가련다.
이번 <광화문 연가>를 보면서 한 가지 다짐한 건,
괜찮은 초연 공연들은 놓치지 말고 잘 챙겨서 보자는 거다.
재공연이 될 때 이렇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기도 하니까...
어찌됐든 전체적으로 모든 공연들이 초연 때보다 코믹해지고 가벼워지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는 걸 충분히 경험으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굳이 <광화문 연가>가 그랬어야 했나고!
정체불명으로 변한 작품을 보면서 참 정체불명으로 씁쓸했다.
제발, 그러지 말자!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3. 20. 14:02

<디너>
원작: 도널드 마글리즈(Donald Marguiles)
연출: 이성열
공연기간: 2011. 3. 4 ~ 4. 3
공연장소: 대학로 예술극장3관
출연: 이석준, 정승길, 우현주, 정수영


작년에 산울림 소극장에서 초연됐을 때 꼭 보자고 생각하고 어이없이 놓쳐버린 연극이다.
미국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작가로 손꼽히고 있다는 도널드 마글리즈(Donald Margulies)의 "Dinner With Friends’가 연극의 원작이다.
이 작품은 1998년 휴마나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이후 2000년 퓰리처 희곡상을 비롯해 루실 로르텔 상, 드라마티스트 길드 상, 미국 평론가 협회 신작희곡상 등을 수상했단다.
(참 모르는 이름의 상들이 많기도 많다...^^)
이후 미국 여러 도시에서 공연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단다.
물론 이런 이력들이 작품의 질을 전적으로 말해주는 건 아니겠지만(특히나 그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경우엔...) 제목만 들었을 때도 느낌이 좋았었다.

거기다 박정환을 오랫만에 뮤지컬이 아닌 연극 무대에서 볼 수 있어서 궁금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놓쳤다!
그의 게이브를 놓친 건 아무래도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다.
(아무래도 이래저래 뮤지컬 "광화문 연가"를 보게 될 것 같다. 
 순전히 박정환 때문에...
 그가 부르는 이영훈의 노래들이 무지 궁금하다. 윤도현이나 송창익, 김무열 보다도 더...
 옛날 가요를 부르는 박정환의 모습은 참 좋다. 
 생각해보니 뮤지컬 <동물원>을 본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12년 차 부부 이야기!
산전수전에 공중전, 그리고 원수같은 지겨움과 묘한 동지애 등등등...
참 설정 자체만으로도 할 말 많기도 그리고 할 말 없기도한 구조다.
신선함도 떨림도 흥미진진함도 난해한 숨은그림 찾기 처럼 점점 찾기 어려워지는 시간의 경과!
사랑이라는 거, 부부라는 거, 가족이라는 거...
더불어 개인이 갖는 인관관계 전반에 대해 되집어 생각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들을 소처럼 우직하게,
그리고 꾸역꾸역 되씹게 한다.

벌써 다섯 번째 커플 연기란다.
이석준과 정수영의 탐과 베스.
추상미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두 사람, 정말 부부같다.
그것도 징글징글한 부부!
그러면서도 이 부부의 관계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 공감된다.
분노가 최고의 최음제가 될 수 있다는 탐(이석준)의 대사도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
10년 이상 된 부부들을 보고 있으면
일상이 싸움같과 그 싸움은 또 어이없는 슬랩스틱 코미디스럽다.
끝장과 새로운 시작!
뫼비우스의 띠처럼 참 오묘한 관계다.

 

게이브 정승길.
예전에 남산에서 <내 심장을 쏴라>에서 철학자로 나온 모습이 그와의 첫 대면이었다.
그때도 참 느낌이 좋았었는데
<디너>에서는 정말 맞춤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
(정승길의 <루시드 드림>을 봤어야만 했었다... 또 다시 때늦은 안타까움이라니...)
사실을 고백하자면 작품을 보면서
공감이 가장 많이 됐던 인물도, 그래서 위태로움을 가장 많이 느꼈던 인물도 게이브였다.
끝장을 선택하는 부부보다 피아노를 배우는 걸 선택한 게이브가 나는 더 측은하고 안스럽다.
그래도 그런 선택이 부부를, 가족을,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유지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탐과 베스, 게이브와 카렌.
두 부부 중 누구의 가치관과 선택이 옳은 건지는 알 수 없다.
또 옳다 한들 꼭 그게 정답이 될 수도 없다.
막막하지만 그게 삶이고 일상이다.
함께 식사를 하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놀라고 괴로워하지만
다시 또 다시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밥을 넘기게 되는 게 일상이다.

사랑과 음식!
이 두 가지는 공통점이 많다.
준비하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하고, 적당한 장식으로 시각적인 즐거움도 줘야하며, 유쾌하게 함께 나눌 이야기도 한두개쯤은 꼭 생각해둬야 하고, 그리고 결국엔 꽉 찬 포만감으로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다 유효기간이 지났음을 알게 되면,
선택이라는 것도 해야 한다.

‘사랑이...어떻게 안 변하니?’
영원히 함께함의 공포!
포스터의 문구들은 순간순간 그 선택이라는 걸 섬득하게 만든다.

부부라는 건,
그리고 부부로 산다는 건,
더 이상 남자와 여자라는 생물학적인 성의 결합이 아니다.
어쩌면 부부는 제 3의 성(性)으로 새롭게 분류되어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탐의 선택도 게이브의 선택도 나는 결코 인정하지 않으련다.
그리고 베스와 카렌도...
문득 차가운 물을 벌컥이며 사납게 마시고 싶어진다.
왠지 목구멍으로 달게 넘어갈 것 같다.
그들의 식탁속에 내가 잠시 끼어 앉아있었던 게
잘 한 짓이었을까? 아니면 그 반대였을까?
많은 생각을 두서없이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부부(夫婦)라는 인간관계의 접경지대가 문득 불모지처럼 황량하다.
불모지엔 생명이 없으리라는 확신은,
그러나 매우 위험하고 옳지 않은 믿음이다.
뜻밖의 일은,
어느 곳이라도 의외의 모습으로 파고들 수 있다.
그러니 확신은 끝장보다 더 황폐한 불모지다.

* 암전 속에서 끊임없이 그러나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무대 크루들의 모습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소음에 유난히 민감한 몹쓸 귀를 가진 나지만,
  이들이 내던 무지 조심스럽고 정성이 담긴 소음은 달콤한 디저트 같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