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3. 20. 08:41

<맥베스>

일시 : 2014.03.08. ~ 2014.03.23.

장소 : 명동예술극장

원작 : 윌리엄 세익스피어

연출 : 이병훈

출연 : 박해수, 김소희, 곽은태, 이종무, 송영근, 한동규 외

제작 : (재)국립극단

 

윌리엄 세익스피어 탄생 450년을 맞아 국립극단이 "450년 만의 3색 만남" 이라는 타이틀로 연극 세 편을 기획했다.

이병훈 연출의 <맥베스>를 시작으로 정의신 연출의 <노래하는 샤일록> 그리고 마지막 작품은 김동현 연출의 <템페스트>다.

사실 세익피어만큼 재미있고 대중적인(?) 작품도 없긴 하지만 반대로 세익스피어만큼 어려운 작품도 없다.

고전은 고전을 면치 못해서 고전이라는데... 세익스피어가 내겐 딱 그렇다.

사실 이 작품도 망설였는데 결국 박해수의 필모그라피를 외면할 수 없어 관람했다.

<맥베스>, <햄릿>, <오셀로>, <리어왕>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재미있는 건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 의외로 드물다.)

공연을 보기 전에 원작을 다시 읽어보고 싶었는데

요즘 다른 책들에 빠져 있느라 미처 챙겨 읽지 못했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느라 또 다시 고전했다.

 

마녀들의 장난기같은 예언이 저주가 되어 파멸에 이른 멕베스!

인간이란 그렇더라.

자신의 욕망으로 스스로 자멸해 버리고

기껏 정신차리면 그 욕망을 더 크고 노골적으로 만드는 여자가 있다.

결국 시위를 떠난 화살은...

무슨 짓을 해도 되돌아 오지 않는다.

인생은 바보들이 지껄이는 이야기.

결국 아무것도 없다!

 

무대도 조명도 음향도 의상도 전체적으로 좀 특별했다.

이 모든 게 아주 의도적인 표현이었다고 생각되는데

기괴하기도, 그로테스크하기도, 황량해 보이기도 했다.

뭐랄까? 무대가 전체적으로 되돌아 오는 느낌이랄까?

거울 효과 혹은 부메랑 효과!

모든 대사와 행동들이 사방에 설치된 투명한 반사판에 함부러 부딪친 후

최초의 사람에게로 다시 되돌아 오는 느낌이다.

그것도 몇 배 더 강력해져서 되돌아오는 되먹임 현상.

그래선지 작품 속에 빠져들수록 일종의 공황상태에 휩싸이게 되더라.

당혹스러웠고 많이 난감했다.

배우들의 힘, 그것 때문이었을가?

(무시 못하겠다!)

 

배우 박해수.

개인적으로 박해수는 뮤지컬보다 연극, 그 중에서 고전을 할 때 존재감이 엄청나다.

발성과 연기, 목소리톤과 표정이 고전에 정말 잘 어울리는 배우다.

(특히 어두운 무대에서 조명 하나만 받고서 있을 때는 고대의 기사나 왕의 느낌이다)

참 감당하기 어려운 배역이었을텐데.

배우 박해수는 피하거나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표현하더라.

구토처럼 꾸역꾸역 밀고 나오는 맥베스의 숨겨진 욕망과

결국 삶의 파멸를 야기하게 만드는 수렁같은 죄책감.

나는 박해수가 표현한 멕베스에게서 "인간"의 본성을 봤다.

선과 악?

욕망과 파멸?

 

그래, 확실하다.

아름다운 것은 추하고, 추한 것은 아름답다.

어차피 생명이란 영원하지 않은 거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5. 20. 08:25

<칼집 속의 아버지>

일시 : 2013.04.26. ~ 2013.05.12.

장소 : 국립극장 백성희장민호극장

대본 : 고연옥

연출 : 강량원

출연 : 김영민, 김정호, 윤상화, 박완규, 박윤정 외.

주최 : (재)국립극단

 

쉽지 않은 작품일거라고는 생각했다.

그럼에도 아 작품을 꼭 보겠다 작정한 이유는 국립극단에 대한 믿음과 출연배우에 대한 믿음이 막강했다.

김영민, 김정호, 윤상화, 박완규.

이들을 한 무대 위에서  만날수 있다는 건 거의 전율에 가까운 기쁨이다.

이해력을 총동원해서 몇날 며칠을 소처럼 꾸역꾸역 되새기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러다 결국 두 손을 들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이 작품을 꼭 보고 싶었다.

생각보다 작품은 훨씬 어려웠지만

다행히 이해불가까지는 아니었다.

신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꿈과 현실을 오가는 전개로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유머 또한 잃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 "김영민"을 갈매를 탁월한 선택이다.

배우 김염민은 내겐 "에쿠우스"의 알렌 이미지가 늘 선명하다.

알렌을 할 당시의 그의 나이를 알고 얼마나 놀랐던지...

내 눈엔 보여진 그는 확실히 소년의 모습, 알렌의 그것이었다.

김영민의 스펙트럼이란!

참 넓다.

게다가 깊기까지 한다.

소년도 중년도 혹은 노년까지 다 아우르면서 거기에 깊이까지도 품고 있다.

때로는 이지적이고 고집스러우면서도 때로는 어리숙하면서 뭔가 의뭉스런 느낌도 갖게 한다.

솔직히 정체를 잘 모르겠다.

40을 훌쩍 넘긴 사람이 무사의 몸이 되기 위해 저렇게 멋진 몸을 만들었다는 것도 실로 놀랍다.,

확실히 그는 누가 뭐래도 천상 배우다.

이 작품을 쓴 작가 고연옥은

길 떠나는 무사 갈매 역을 애초부터 김영민을 생각하면서 썼단다.

배우와 캐릭터가 자석처럼 서로 끌어 당겼다고.

(배우로서 이런 말을 한 번이라도 듣게 된다면 정말 황홀하지 않을까!) 

 

김영민의 갈매는 역시 좋았다.

꿈 속의 꿈, 현실 위의 현실.

아비를 죽인 원수를 찾아 7년 간 길을 헤매는 지상의 마지막 무사 갈매.

그러나 칼이 무섭고,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게 너무나 싫은 갈매.

세상의 모든 아들은 늘 자신의 아비를 뛰어넘아야만 한다.

갈매에게도 이 원형의 화두가 던져진다.

신화의 세계는, 아비의 세계는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한 세계이며 동시에 신이 신이길 포기한 세계다.

그 세계 속에서 갈매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

"눈앞의 적을 치는 것으로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인가?"

스스로의 질문 앞에 갈매는 답을 선택한다.

자신을 죽임으로서 그 꿈에서, 그 아비에게서, 그 인간들에게서 벗어난다.

멋진 선택이다.

갈매의 선택을 보면서 어쩌면 정말 그가 예언된 지상의 마지막 무사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길에 대한 고민과 질문, 그리고 선택의 이야기.

나는 이 작품을 그렇게 이해했다.

인트로처럼 보여줬던 무대 위 새의 날개짓,

점점 넓어지던 그 원의 흐름을 떠올리며 그 새가 갈매라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또 다시 멋지다!

이런 상징적인 의미들.

 

배우들의 연기는 표현이 불가할만큼 엄청났다.

딕션과 연기, 동작들을 보고 있으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특히 검은등과 아비의 역할을 했던 배우 김정호의 연기는 신내림의 그것과 흡사했다.

그 많은 대사들을 어떻게 그렇게 완벽한 딕션과 호흡과 타이밍으로 연기할 수 있을까?

그건 일종의 전율이었고 신비였다.

독특한 필모그라피를 가진 참 대단한 배우.

지금껏 그가 출연하는 작품은 다섯편 정도 본 것 같은데

매번 감탄하게 된다.

특유의 톤과 말투를 작품 속에 매번 다르게 잘 녹여낸다.

이 작품 속에서도 한 인물을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른 표정과 말투로 연기해서

마치 여러 명의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윤상화의 능청스런 연기도,

박완규의 허풍스런 액팅과 연기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작품의 힘보다 배우들의 힘과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던 작품이다.

이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이 작품을 지금만큼 이해하진 도저히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진심으로 이 배우들이 고맙고 또 고마웠다.

나의 해설자들이여!

그대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9. 19. 08:31

<삼국유사 프로젝트 첫번째 - 꿈>

시 : 2012.09.01 ~ 2012.09.16.

장소 : 백성희장민호극장

출연 : 남명렬, 강신일, 장세라, 장재호, 강학수, 최지훈 외11 인

극작 : 김명화 

연출 : 최용훈

제작 : (재)국립극단

 

이 가을에 기대되는 연극 프로젝트가 시작돼 살짝 흥분모드다.

국립극단에서 기획한 삼국유사 프로젝트.

전부 5편이 올려진다는데 그 첫번째 작품이 바로 이 작품 <꿈>이었다.

게다가 강신일과 남명렬이 충연한단다.

처음에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순간 누군가 내 속을 읽은 게 아닌가 싶어 놀랐었다.

무슨 작품이 됐든 간에 이 두 배우가 무대에 함께 오른 모습을 보게 되길 내가 얼마나 꿈꿨던가.

이건 흥분 모드가 아니라 황홀 모드라고 해줘야 옳다!

(정말 꿈은 이루어지긴 하는구나... 사실 감동도 했다)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 극장은 처음 가봤는데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서울역 광장 1번 2번 출구 주변을 얼마나 왔다갔다 했는지...

결국은 공연장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나 같은 사람들이 꽤 많은 모양이다. 웃으면서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걸 보니...) 

빨간색 외관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가까이서보니 오래전에 미군기지로 사용했던 곳이 아닌가 싶다.

공연장 입구에 인공잔디와 피크닉 의자를 설치한 모습도 인상적이다.

가을 햇살 아래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참 보기 좋더라.

앞으로 4번은 더 오게 될텐데 일단 공연장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런데 관객석 내부 바닥이 우드라서 발을 조금만 움직여서 소리가 난다.

집중력있게 공연을 관람하려면 이 부분도 해결되야 할 것 같은데...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했던가!

(All history is cmtemporary) 

그리나 모든 역사는 그 자체로는 어떠한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History has no meaning)

연극을 보면서 난 이 명제들을 수없이 떠올렸다.

인간의 역사는 욕망(慾)의 역사이고,

인간은 그 끝없는 욕망을 탐(貪)하여 결국 소유하기 위해 자진해서 고통 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역사는 고(苦)의 역사다.

pain이 없으면 gain도 없다는 논리는 또 얼마나 잔인하고 포악한가!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pain의 통감 정도에 따라 진보되고 진화된다.

때론 어이없게도 끈질긴 뒷걸음으로 퇴보하기도 하고...

"조신지몽"처럼 지금의 정권도 일장춘몽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간절히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나를 참 우울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이 작품도 지금의 문제를 입에 담는 것이 너무 싫어 애써 삼국유사를 빌어 말한건지도 모르겠다.

 

의상과 원효, 조신과 평묵, 그리고 이광수와 최남선.

세 가지 욕망을 탐하면서

나는 때로는 허덕였고, 때로는 모호했고, 그리고 때로는 절망했다.

그건 방관의 입장이기도 했고, 관조의 입장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대부분은 무능의 입장일 수밖에 없었다.

시간과 공간이 섞이고 인물이 서로 섞인다.

기을 쓰고 쫒아가면 길을 잃기가 다반사였다.

무능을 탓할 여력도 없이 종내는 그냥 눈에 보이는 것들을 그대로 보기만 했다.

완전히 해독은 아니었대도 몰이해 역시 아니었으니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니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원효는 당나라 유학길에 동굴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된다.

곤하게 자다가 잠결에 달게 마신 물이 다음날 아침 해골에 담긴 썩은 물이었다는 걸 알고 순간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당나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신라로 돌아온다.

원효의 깨달음은 몽(蒙)에서 시작된다.

꿈의 맥락에서 작품을 보면 춘원 이광수의 욕망 역시 몽의 욕망이다.

그의 비루한 인생은 그의 탓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인생해서 조국을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의 변절은 과연 변절일까?

결코 깰 수 없는 몽(夢)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그 꿈은 너무나 구체적이라 오히려 유일한 현실이 된다.

 

작품 자체가 여러모로 방대하고 심오(?)했지만

배우들의 열연은 이 모든 모호함을 상쇄시킬만큼 엄청나고 대단했다.

특히나 춘원 이광수로 분한 강신일이 또 다른 자아(춘원의 양심)와 만나 논쟁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섬득하고 잔인했다.

그래서 좌절하듯 슬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시간들이 황홀했던 건,

배우들의 열연뿐만 아니라 무대와 음악, 조명이 주는 신묘함도 한 몫을 했다.

관음보살의 춤과 그림 밖으로 튀어나온 탱화.

의상과 원효, 조신과 평묵의 과장된 행동과 코믹한 모습들.

처음엔 분명 당황스러웠지만 곧 인정했다.

어차피 설화의, 야사의 세계는 과장과 웃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호쾌하고 대단히 심각한 작품을 본 셈이다.

이 작품을 보는 때에 우연치 않게 내 손엔 도올 김용옥의 책이 들려 있었다.

<사랑하지 말자>

그 책 속의 한 대목을 남겨보련다.

 

"인생은 청춘의 꿈으로 시작하여 비극의 해탈로 끝난다.

 꿈과 해탈을 연결하는 외나무 다리는 모험이다.

 인생은 오직 모험이 있을 뿐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10. 25. 06:07

<신의 아그네스>


일시 : 2011.10.01. ~ 2011.10.31.
장소 : PMC 대학로 자유극장
출연 : 윤소정, 이승옥, 선우
극본 : 존 필미어(John Pielmeier)
연출 : 이대영

미국의 인기 희곡작가 존 필미어(John Pielmeier)의 세계적인 명작 <신의 아니그네스>는,
1982년 초연이래 지금까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다.
우니나라에는 1893년 초연됐고
아그네스역엔 윤석화가 캐스팅됐었다.
그후에 신애라, 김혜수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아그네스를 연기해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그래선지 작품이 공연될때마다 매번 작품성과 대중성에서 엄청난 흥행을 일으켜 소위 "아그네스 신드롬"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는 초대 ‘리빙스턴 박사’로 활약한 ‘윤소정’이 다시 리빙스턴으로 무대에 섰다.
아그네스를 보호하려는 원장 수녀 마리암 역은
오랜 기간 국립극단에서 활동해 온 원래 연극배우 이승옥이, 
아그네스 수녀역에는 뮤지컬에서 연극으로 영역을 넓힌 선우가 맡았다.
신이 주신 특별한 재능, 천사의 목소리라는 축복을 받은 아그네스 역에 선우를 선택한 건 
KBS 남자의 자격 하모니편과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살짝 속보이는 캐스팅은 아닌가 생각됐다.
연출 이대영은 이 현대적인 고전물에 조명과 음악적 요소를 더해서
극적 효과를 끌어들이려 노력했다는데 배우 선우에 대한 기대치가 상당한 듯 느껴진다.
개인적으론 이 연극을 선택한 건 순전히 배우 "윤소정" 때문이다.
세 번째 리빙스턴 박사를 맡게 된 배우 윤소정은 스스로 이 작품을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말했다.



21살의 어리고 순진한 수녀가 어느날 아기를 낳는다.
그리고 그 아이는 탯줄로 목이 감긴채 휴지통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된다.
과다출혈과 정신적인 충격으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그네스 수녀.
아그네스는 기소됐고 그녀의 정신감정을 위해 수녀원으로 정신과 의사 리빙스턴 박사가 찾아온다.
<신의 아그네스>는,
이렇게 엄청나게 충격적인 소재와 섬세한 심리묘사로 인해
"현대인의 성서" 혹은 "여자들의 에쿠우스"로 불린단다.
순수함 속에 광적인 모습이 내재된 ‘아그네스 수녀’
그런 그녀를 신의 가까이에서 보살피려는 ‘원장수녀’
진실을 밝히는 것으로 아그네스를 구하려는 정신과 의사 ‘리빙스턴 박사’
두 시간 동안 세 명의 배우가 펼치는 열연은
논쟁이고, 소통이고, 이해고 ,치유고, 구원이다.
윤소정, 이승옥 두 노장의 연기는 어떤 젊은 배우들보다 더 열정적이고 진지하고 확고했다.
순간순간 두 개의 불꽃이 맞부딪치면서 타닥거리는 강렬함!
<에쿠우스>에서 느꼈던 트라우마(trauma)의 충돌이 이 작품에서도 느껴진다.
아그네스의 트라우마, 리빙스턴의 트라우마, 그리고 원장 수녀 마리암의 트라우마.
그건 모두 모성을 가진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어쩌면 유일하게 공통된 감정일지도...
그래서 이 작품이 종교가 그 배경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신과 모성이라는 유일하고 절대적이며 맹목적인 사랑과 집착!
마리암 원장수녀는 은폐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아그네스에게 일어난 일이 신의 기적이라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게 다 신의 뜻이자, 신의 증표(證標)라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던 아그네스는
모든 걸 너무나 명확하고 분명하게 기억 속에 담고 있다.
신만큼 유일하고 절대적이던 어머니에게 박은 어린 시절의 학대와 성폭행.
나는 그런 아그테스가 스스로 자신과 계약을 했다고 생각한다.
마치 파우스트처럼...


두 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90% 이상 등장하는 리빙스턴 박사!
배우 윤소정의 존재감은 고요한 폭풍과 같다.
결코 고성을 지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사람을 몰입시키는 엄청난 집중력.
그녀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그래서 때때로 소름이 끼친다.
원장수녀 이승옥은 처음엔 낯설었는데
극이 진행할수록 시선을 사로 잡는다.
시선처리와 대사 속에 담긴 감정표현이 정확하고 성실하다.
연륜이라는 건 정말 무시할 수 없음을 절감했다.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극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리같아 깨지기 쉬운 아이 아그네스.
선우의 첫 정극 도전은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순수하다기엔 그녀가 너무 나이 들어 보인다는 안스러움과
(그래서 종종 순수라기보다는 몸만 자란 지진아 같은 느낌도 든다)
성가가 성가처럼 들리지 않았는다는 건 확실히 귀에 거슬린다.
장중하고 성스러운 느낌이 들기보단 가요나 팝을 듣는 느낌이다.
직접 불렀다면 어쩌면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MR로 처리한 게 많아서 아쉽다. 
딕션과 액팅은 좋았지만 표정과 감정표현이 아직 미숙하다.
어쨌든 시작이니까...

<신의 아그네스>
오랫동안 궁금했던 작품이었는데
드디어 봤다.
그것도 다행스럽게도 윤소정,
그녀가 리빙스턴으로 분한 그 <신의 아그네스>를...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