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09. 7. 6. 06:25
<혀> - 조경란

혀
 

탐욕적인 소설. 그리고 유혹적이며 관능적인 소설.

조경란의 소설 <혀>는 식욕이라는 본능의 식탁 위에 또 다른 본능인 성욕의 재료를 푸짐하게(?) 그리고 노골적으로 차려놓습니다.

화들짝!

너무 정직하고, 그리고 적나라해서 때론 민망하기까지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읽음직한 구미가 솔솔 당깁니다.

거식과 폭식, 그리고 떠나는 사랑과 시작되는 사랑, 이 모든 관계들....

누군가에게겐 세상의 어떤 맛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맛이 있듯이 어떤 사람으로도 도저히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13년 경력의 33살 요리사 정지원,

그녀는 “WON'S KITCHEN'이라는 자신만의 쿠킹 클래스를 운영하기도 했던, 꽤나 감각적이고 탐미적인 요리사였죠.

그런 지원과 7년 간 사귀던 건축가 석주가 그녀를 떠납니다.

그것도 그녀의 쿠킹 클래스에서 요리를 배우던 젊고 도발적인 모델 출신 이세연이라는 여자와 새로운 사랑에 빠져서 말이죠.

네, 이야기 자체는 참 진부한 치정관련 연예소설이죠.

그런데 그 표현이라는 게...

섬뜩할 만큼 사실적이고 노골적입니다.

함께 같은 꿈을 꿨던 그 사람을 잃은 그녀는 다시 예전에 일했던 “노베”로 돌아가 다시 요리를 합니다.

그곳에서 그녀가 만드는 하나하나의 요리 속에는 그녀 자신의 모든 심리상태가 함께 녹아들어갑니다.

그녀는 식욕에 대한 욕구마저 점점 사라지죠.

먹는 것에 대한 거부,

그것은 곧 관계에 대한 거부이며 더 심각해진다면 모든 인간관계에 대한 극단적인 파괴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식욕을 가진 자는 적어도 살아갈 의욕을 가진 자라고 말 할 수 있으니까요...

입으로 향하는 욕망을 스스로 거세시켜버린 사람.

그리고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이 새롭게 사랑하게 된 그녀의 혀를 잘라(이것도 일종의 거세) 요리를 한다는 그로테스크한 결말.

심지어 그렇게 요리된 혀는 아무것도 모르는 옛 연인의 마지막 만찬이 되어 그의 입 속에 한점한점 집어 삼켜집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황홀한 맛을 남기면서요...


일류 요리사에겐 그들만의 묵시론적인 비밀이 있다고 하네요.

고객의 식욕을 채워주고 미각을 즐겁게 해주되 결코 만족시켜서는 안 된다는 묵시록.

한번 만족을 하게 되면 그 다음엔 더 큰 것을 원하게 되는 게 사람의 마음이기에 다음에 대한 기대를 반드시 남겨둬야 한다고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 100% 만족이 찾아온다면 결국은 금이 간 창유리를 통해 세상을 보게 되는 순간이 시작됩니다.

그리다 누군가 한 사람이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되면 남은 한 사람은 비참하고 함구적이고 잔인해지게 되죠.

그리고 남는 건 허기처럼 찾아오는 “분노” 뿐이죠.

그럴 때 입은 두 가지 중 한가지를 선택합니다.

폭식 혹은 거식

사람에게 사랑과 굶주림, 이 두 가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나타나게 되는 극단적인 자기 파괴의 방법!

한쪽은 입 안에 몰아넣음으로 인해 속을 채워 마침내 터뜨리겠다는 폭발의 자기 파괴.

한쪽은 입을 닫음으로 인해 내부를 태우겠다는 발화의 자기 파괴.

둘 다 막상막하의 막장 스토리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극단적인 건 주인공 지원처럼 그 분노를 타인에게 쏟아내는 것일 겁니다.

이별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어쩌면 누구와도 사랑을 해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엄마 뱃속의 태아에게서 가장 먼저 생기는 기관이 바로 “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맛은 “쓴맛”이구요.

그러고 보니 사람이 나이를 먹어 간다는 건, 입 속으로 쓴맛의 기억을 자꾸 더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입이 갖는 사회성과 책임감!

어쩐지 좀 입이 천근 무게로 다가오네요.

온순해보여도 입 속엔 칼과 맞먹는 무기가 있다고 합니다.

치아와 혀.

당신이 입이 기억하고 있는 맛은 무엇입니까?

문득 그게 궁금해지네요.... ^^

 

* 이 책의 내용이 파격적이고 충격적인만큼 문단에서도 큰 파란을 일으킨 문제작입니다.

  다름 아닌 “표절” 시비로요.

  현재까지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논란의 핵은 주이란이란 신인 작가가 조경란의 <혀>가 자신의 신춘문예 응모작인 동명의  단편소설 <혀>
  를 표절했다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그 단편소설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바로 작가 조경란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소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심사위원의 모든 소설을 다 심사하는 건 아니라
  면서요....)

  왠지 주이란의 단편소설 <혀>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표절논란에 시비를 논할 깜냥은 되지 못하지만 어쩐지 흥미진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까지나 문학적인 궁금증이죠.

  어설픈 활자증후군, 호모 북커스의 호기심 발동이긴 합니다만... ^^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 7. 06:26

<책도둑 1,2> - 마커스 주삭

책도둑. 1

이 책은 슬픈 책입니다.
너무나 슬퍼서 잠깐 읽는 사람의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들어 버릴 만큼요.
<전쟁> 그 낯설고 아득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너무나 천진하고 아름다워서 설핏 나도 모르게 전쟁을 꿈꾸게 만들기도 하고, 그러다 몸서리를 치며 악몽 속에서 깨어나 누가 들을까봐 목소리를 죽여 가며 울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절대로 내 울음을 누가 훔쳐보게 해서는 안 되는...

여기,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 아니 뭔가가 있습니다.

바로 죽음의 신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나'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색깔의 변화를 냄새로 음미하면서 가끔 세상에 대한 한 눈 팔기를 통해 작업의 고단함을 잠시 잊기도 합니다. 어느 날 기차 안에서 한 소년의 영혼을 품에 안다 9살짜리 소녀(소년의 누나)를 만나게 되죠.
그 소녀가 바로 우리의 책도둑... 그녀입니다.

주인공 소녀의 이름은 리젤. 남동생을 하얗게 얼어붙은 땅에 묻은 리젤은 친어머니와도 헤어지고 양부모 밑에서 새롭게 생활합니다.(동생의 차가운 무덤 속에서 그녀는 책도둑의 첫 번째 책을 갖습니다)
극악스럽고 항상 욕을 달고 사는 양어머니 로자 후버만과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칠쟁이 양아버지 한스 후버만, 그리고 마라토너 제시 오언스를 너무나 찬양하는 나머지 얼굴에 숯칠을 하고 온동네를 뛰어 다니던 유일한 친구 루니 슈타이너, 그리고 그들의 지하실에 잠시 숨겨 두었던 유태인 막스 판덴부르크..
그리고 그녀에게 책을 훔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시장 부인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생생하며 그리고 정말 삶을 위하여 한 순간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순간이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정직하게 아름다우며, 아름답게 즐거워하며, 즐거워하면서 서로 은밀히 소통을 나누는 너무나 평범하고 소박한 정말이지 딱 우리네 같은 사람들입니다.

굶주림..

우리는 이 책에서 또 다른 이유의 굶주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소녀가 책을 훔치는 이유였던(그런데 솔직히 훔친다는 인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굶주림. 너무나 간절한 책을 읽고 싶다는  굶주림...
소녀는 전쟁 중에도 책과 과자가 놓여있는 탁자에서 아무 망설임 없이 오로지 책만을 집어 들고 나옵니다.
리젤이 읽은 책 속의 활자는 고스란히 말이 되고 그리고 모든 것들을 향한 소통이 되죠.
소녀는 책을 얻기도 하고 그리고 한 사람씩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합니다.
그건 책과 사람의 교환도 아니고 죽음의 신에 의한 거래나 잘못에 대한 댓가도 아닙니다.
그건 단지 전쟁이라는 상황... 그것 때문이었죠.
죽음의 신도 개입하지 못하는 전쟁의 상황.
오히려 죽음의 신은 이 상황이 신물이 납니다. 그래서 시작된 한 눈 팔기의 상대가 리젤이 됐고 우리는 분명 죽음의 신이 화자인 책에서 리젤의 시선으로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리젤의 일기를 들여다 보고 있다는 느낌...
결코 일기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책에서 일기를 읽고 있다는 은밀함과 비밀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글 중간 중간 나오는 그림도 그리고 막스가 지은 책(리젤의 생일 선물도 건네진)에서도 모두 일기를 보고 있다는 착각을 갖게 하죠.
실제로 이 책은 안네의 일기와 비슷한 평가를 받고도 있습니다.
숨겨준 자와, 숨겨진 자의 차이라고 할까요.

작가 마커스 주삭은 나치 독일을 체험한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모티브(끌려가는 유대인의 행렬에 몰래 빵을 주는 장면)로 삼아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1868년생 작가가, 소위 새파랗게 젊은 놈이 자신이 겪어 보지도 않는 전쟁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 낼 수 있다니...
책의 내용보다 이 작가가 더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부러운 생각까지 어쩔 수 없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이 책은 살아남음에 대한 소설이 아닙니다.
그러나 살아남음에 대해서, 그래서 살아가야 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저 또한,
어딘가에서 책도둑으로 다시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음을 고백하게 되네요...

보너스 팁...

역시나 이 소설도 지금 미국에서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한 번역가 정영목님에 대해서도 한 마디..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하는 영미문학 번역가로 <눈먼 자들의 도시>(정영목의 첫 번재 번역작입니다), <눈뜬 자들의 도시>,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이 번역가의 손을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됐죠.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3인의 번역가 중 한 명입니다.(정영목, 이난아, 양억관)
일부러라도 이 분이 번역한 책들은 놓치지 않고 찾아보는 편입니다.
거의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 주고, 그리고 문학적인 표현이나 유머러스한 표현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문장 속에 스며들게 하는 번역가죠.
그래서 이 분이 번역한 책은 일단 기본 그 이상은 된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혹 관심이 있는 분들은 도서관에 있는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을 읽어 보시면 이 번역가의 또 다른 장점과 매력을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멋진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책들도 찾아 읽어 보시라 권해드리면서,
이상 달동네 책거리였습니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08. 12. 13. 06:19





땅이 품은 꽃.

안으로 품은 씨를
다독이며 밀어낸다.
내가 미워서가 아니라고...
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때론,
땅은 짙고 난폭하다.
그러나...




땅이 데려온 꽃더미...
물 소리를 낸다.

생명의 대한 깊은 굶주림
햇살 속에
톡....톡...
터지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1. 28. 15:04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인간의 아주 기본적인 의무감과 책임감은 최소한 어느 정도의 선까지는 도달해야 할까요?
선문답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새삼 느끼게 되는 건,
아! 나는 정말 엄청나게 복 받은 사람이구나... 라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기아로 인해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한 명 꼴로 굶어 죽어 가고, 비타민 A의 부족으로 3분에 1명씩 시력을 잃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7분의 1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는 사실!!!
부자들의 동네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로 연명하고 있는 빈민가의 가족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음식을 섭취하는 게 아니라 이미 오염된 세균을 섭취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런데 더 황당한 건,
지구는 현재보다 두 배나 많은 인구도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식량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거죠.
“부의 집중화”처럼 식량 또한 집중화가 되고 있다는 뜻이겠죠.
그래서 부익부 빈익빈의 순환이 지금도 불변의 원칙처럼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
한해 선진국 사람들이 먹어 치우는 소를 키우기 위해 소비되는 곡물의 양만으로도 어느 정도 기아는 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해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가 어쩐지 상당히 미안하게 느껴지네요)
더 끔찍한 건 “기아”라는 괴물이 부모가 남기는 유일한 유산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린 엄마에게서 태어난 수백만의 아이들.
튼튼하지 못한 모체에서부터 힘겨운 싸움에 이미 지친 아기들은 태어나 다시 “기아”라는 괴물과 부딪쳐 저항할 힘도 얻지 못한 체 사망하게 됩니다.
이런 아기들을 누군가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아이들.....” 

이 책은,
이런 불편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구성은 다행히 참 다정하죠.
아빠와 어린 아이가 “기아”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뭐 어려운 경제 용어나 복잡한 통계수치가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그 절박성과 심각성은 그 어떤 통계자료보다 더 가슴에 다가옵니다.
아이의 눈에는 “기아”라는 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논제일겁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 좀 나누어 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이의 천진한 눈에 대답해야 하는 아빠의 마음이 참 아프지 않았을지...
어쩌면, 해답은 그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이유, 다른 조건들 모두 다 잊고 아주 단순한 기본으로 돌아가면 정말 “기아”의 문제는 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정말 그럴까요?
세상의 완전히 뒤집혀 오늘의 사람들이 어제의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고 해도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결코 “사람”을 버리지는 못 할 테니까요.
내 것에 대한 소유욕...
누군들 그걸 쉽게 버릴 수 있겠습니까!!!

단순한 굶주림만이 “기아”가 아닙니다.
“기아”는 이미 무기로 변해 누군가를 위협하고 있고, 심지어 “기아”를 악용하는 거대 국제기업도 있습니다.
심지어 파괴되는 열대림, 사라져가는 산림들로 인해 세상은 이제 대규모의 “환경난민‘을 만들어 내기까지 하죠.
이들이 난민이 된 이유는 자업자득에 의한 결과가 아님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 자신은 영문도 모른 체 지금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지도 모르죠.
차라리 그들이 식탁에 앉아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씹기 위해 산림을 황폐화시키고 열대우림을 파괴했다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지구 온난화에 대한 그들의 기여도는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단지 부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많이 배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배부름을 위해 난민이 된 사람들입니다.
더 정직하게 말한다면,
올바르게 먹지 않은 “나” 때문이죠.
먹는다는 거...
단순한 게 아니라는 걸 절감합니다.
“먹는다”라는 행위 자체의 책임감!
한 번의 수저질이 충분히 힘겨워야 비로소 내 안에서 충분한 에너지로 변할 수 있다는 거...
우리가 그렇게 한 숟갈 할 숟갈 입 안으로 쉽게 넘겼던 모든 것들이...
전부 엄청난 무게의 책임감이였음을 다시 깨닫습니다.

 내 입이 내 몸을 삼킬 때,
나 또한 “난민”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