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10. 8. 6. 08:33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 주노 디아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책을 읽고 주노 디아스(Junot Diaz)라는 작가가 너무나 궁금해졌습니다.
1968년 도미니카 산토도밍고 출생, 1974년 가족과 함께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이민, 뉴저지에서 생활, 엄청난 독서광인 영문학 전공자, 1996년 첫 단편 소설집 <Drown> 발표.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1999년 “21세기를 빛낼 최고의 작가 20인”에 선정.
그리고 길고 긴 11년 동안의 침묵.
2007년 첫 장편 소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발표.
이 책으로 또 다시 미국의 온갖 문학상을 휩쓸어버린 사람.
2007년도 고맥 매카시의 <로드>가 플리처상을 수상했을 때 비평가들은 말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로드>를 넘어설 만한 소설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2008년 이 작품을 최종 선정작으로 결정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결정을 다시 번복하게 됩니다.
현재까지만 30개국에 판권이 팔렸으며 영화로까지 만들어 지고 있는 이 책.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한갓 가난한 나라의 도미니카계 이민자에 불과한 주노 디아스의 책이 미국 전역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을까요?
센세이션...
이 책의 모든 내용은 확실히 센세이션 합니다.
책의 번역자는 말합니다.
“도발적인, 관능적인, 정치적인 그리고 눈물 나게 우습고도 감동적인” 이야기라고.
하나의 소설 안에 이 모든 수식어를 전부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대하소설도 하닌 달랑 한 권 분량의 책에...

이 책에는 미국에 정착한 도미니카계 이민자 데 레온 가족이 나옵니다.
그리고 “푸쿠”라고 불리는 일종의 저주로 대변되는 단어가 나오죠.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면서 지금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누군가의 삶에, 운명에 저주를 퍼붓는 “푸쿠”는 유럽인의 라틴아메리카 침략과 함께 이 땅에 발을 들인 신세계의 파멸과 저주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 소설은 3대에 걸쳐 데 레온 가문에 이어진 오랜 저주 “푸쿠”에 맞서 인생을 지켜낸 한 남자 오스카 와오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책의 제목처럼 “짧고 놀라운 삶”을 말이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그러나 데 레온 가문의 사람이 아닌 한때 오스카의 누나 롤라의 남자친구였던 유니오르라는 사람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또 어느 정도의 객관성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네요.
이 소설은 한 집안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뛰어 넘어 식민지 작은 나라가 갖는 생존에 대한 절실함이자 군부 독재의 완벽한 철권통치에 홀로 맞서는 이야기이며, 현대 미국의 대중문화를 향해 “너더리(넌더리)”라며 과감하게 비꼬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믿기지 않는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죠.
누군가는 말합니다.
“...... 잠시 고민하다, 우리는 이것을 ‘인생'이라 부르기로 했다...... ”

데 레온 가문의 첫 번째 “푸쿠”는 할아버지인 아벨라르 세대의 “트루히요”라는 도미니카 독재자였습니다.
트루히요는 실제 인물로 도미니카 공화국에 전에 없는 평화와 번영을 안겨준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 번영의 대가로 자신들의 시민적, 정치적인 자유를 희생해야만 했죠. 독재정치가 무서운 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채워지지 않는 “탐욕”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루히요도 그랬죠. 탐욕으로 인해 불공정 분배가 시작되고, 그것을 은폐하고 가리기 위해 수많은 정적들을 이유 없이 처단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군부의 지지를 잃기 시작하죠.
어디서 많이 보던 스토리 아닌가요? 우리가 실제 겪었던 스토리 결말처럼 트루히요도 농장으로 차를 몰고 가다 기관총 사격으로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어떤 생각이 드나요?
우리와 전혀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와 똑같은 현대사를 본다는 거.
사람들은 말합니다. 사는 건 전부 다 똑같은 거라고...
어쩌면 이 말은 정말 진리이고 진실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두 번째 “푸쿠”는 오스카 어머니의 인생을 덮칩니다.
외과 의사였던 아버지, 그리고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벨리. 그녀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데 레온 가문의 핏줄이기도 합니다.
난봉꾼이었던 대통령 트루히요에게서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두 딸을 지키기 위한 아벨라르의 노력은 결국 국가원수 중상 및 모독죄라는 결과로 그의 인생과 가문 전부를 초토화시킵니다. 재산은 몰수되고 자식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아벨라르 자신도 고문으로 인해 식물인간으로 감옥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아내는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막내 딸 벨리를 낳고 스스로 자동차에 몸을 던지죠. 아벨라르가 그렇게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딸들마저도 모두 결국은 죽음에 이릅니다.
그렇게 모든 몰락과 추락을 겪고 살아남은 데 레온 가문의 유일한 혈육 벨리의 “푸쿠”는 남자였습니다.
그녀의 육체는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고 결국 모든 희망을 버린 채 뉴욕으로 떠나죠.
그녀에게 새로운 인생, "푸쿠“의 저주를 이기는 ”사파“의 인생이 열리게 될까요?

데 레온 가문의 세 번째 “푸쿠”는 우리의 주인공인 140kg 거구의 남자 오스카에게 찾아옵니다.
성적 매력을 유산처럼 물려받는 도미니카의 전형적인 남성들과 달리 오스카에겐 실수로도 먼저 말을 걸어오는 여자조차 전혀 없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유색인종에 뚱뚱한 몸으로 인해 조롱을 받았고, 교사가 된 지금도 그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단지 학생일때는 같은 나이의 동료에게서 였는데 이제 나이 어린 제자들로 그 상대가 달라진 것만이 유일한 차이일 뿐이죠.
변함없이 형편없는 그의 삶 속에 그녀 “이본”이 말을 걸어옵니다.
오스카 인생 전체에서 처음으로 말을 건 여자의 등장이네요.
“이본”이라는 여자는 오스카에 비해 한참 연상인데다 반 은퇴한 창녀였죠. 게다가 소위 기둥서방이라고 불리는 경찰 애인까지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상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고 그런 이야기의 결말에 3대에 걸쳐 내려온 이 집안의 모든 “푸쿠”의 저주가 송두리째 사라져 버립니다.
이상하죠?
어느 틈에 오스카에게 위로받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삶에는 미신과도 같은 저주를 불러오는 “푸쿠”만 있는 게 아니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사람을 살아 있게 만드는 무엇, 저주를 피하고 “푸쿠”에 대항하는 역주문인 “사파”도 있다고 말해주죠. 그러니 사람이 산다는 건 결국 모두 “사파”인 셈인가요?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참 묘한 감정에 쌓이게 됩니다.
순서 없이 아무렇게나 벌려놓은 벼룩시장 좌판을 보는 것도 같고, 아주 정확하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백과사전을 들여다보는 느낌도 듭니다.
재미있으면서도 지독히 지적인 책!
뜨거운 불판을 들고 얼음장 위에 서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역사를 읽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류의 책은...
소위 궁합이 잘 맞는 사람에겐 스파크가 제대로 튀게 만들죠.
그러니까 이 책은 저와 상당히 궁합이 잘 맞는 책이었습니다.
문득 타인의 마음이 궁금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네요.
당신이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이 책은 당신에게 “푸쿠”가 될까요? 아니면 “사파”가 될까요?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0. 5. 6. 06:29
사실 나비축제를 찾아가면서 조금 걱정스러운 게 있었다.
엄청난 규모의 부지라고 들었는데 그 곳을 전부 나비로 다 채울 수 있을까 싶었다.
하루 종일 나비만 보게 된다면?
처음엔 신기하고 예쁘겠지만 곧 지치진 않을까 하는 노파심 ^^
성공한 지역문화 축제에 나비로 신물이 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솔직히 품고서 축제장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제법 귀엽성있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있다.
곳곳에서 만나는 거대한 곤충 구조물들은
섬뜩하기도 하고 어쩐지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있는 실버봉사대의 모습도 정감있다.
나이를 불문한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많은 자원봉사자가 곳곳에서 안내와 시연을 보이는 모습도 특별했다.


맨 처음 들어간 곳은 <나비그림전시실>이었다.
작가 한 분이 직접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다정하다.
그녀의 설명 속엔 지역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나비"라는 테마가 주는 소중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작은 벗꽃 송이 하나하나로 큰 나비 그림을 형상화한 게 특히 인상적이었다.
"꽃과 나비"라.
궁합으로 따지자면 이것보다 완벽한 궁합도 없으리라.



<다육식물관>에서 만난 선인장들.
마치 소인국 테마파크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거대한 선인장 전시실은 그래도 몇 번 봤는데
작은 선인장들이 주가 된 전시관은 또 나름의 멋이 있다.
다정하고 소박하고 그리고 소꼽놀이 하는 듯한 경겨움까지도 느껴진다.



<자연생태관>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작은 들꽃들이 풍성해서 또 바빠졌다.
꽃뿐만 아니라 테마를 정해서 옆에 함께 설치한 인형들이 만든 한 세계도
어린 시절을 내 모습을 떠오르게 해 흐뭇한 순간이 여러번이었다.



작은 부분까지도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썼다는 느낌!
어쩌면 이런 세심함이 성공한 지역축제를 만드는 원동력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지역민이 이 축제에 사할을 걸고 있다는 느낌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짜증내고 피곤해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지역주민이 한 방향을 보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다른 곳을 찾아
go~~go~~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4. 22. 08:19

<그건, 사랑이었네> -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저는 개인적으로 목소리 크고 수다스러운 사람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왠지 시비를 걸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그런 저의 기준으로 따진다면 일단 "한비야"는 좋은 점수를 받기가 아무래도 어려운 사람이죠.
참 많이 일을 만들어서, 참 많이 지치지도 않고, 참 많이 치열하게, 참 열심히 하면서 사는 사람, 한비야!
얼마 전에는 가을에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싶은 지식인 2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1위는 안철수, 3위는 공지영이었죠)
“바람의 딸”로 지구를 걸어서 세 바퀴 반이나 돌아야 했고, 돌아와서는 다시 우리나라도  돌아줘야 했고, 그 뒤엔 불혹의 나이로 주위의 반대를 뿌리치고 중국으로 날아가 어학공부도 해야 했고, 그런 과정들을 또 몇 권의 책으로 열심히 써내야 했고...  다행히(?) 그 책들이 나란히 베스트셀러에 올라서 어느 정도 수확도 있었겠지만 말이죠.
참 복 많은 사람이라고 무작정 생각하기도 했었죠.
그녀의 책들을 차례차례 읽으면서도 솔직히 별다른 감흥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도 했었죠.
“한비야와 나는 참 궁합이 안 맞는 상대구나” 라고...
이제와 10년 넘게 안 맞았던 궁합이 돌연 한 권의 책으로 찰떡궁합이 된 건 아니지만 분명 그녀에게 받은 메시지가 있음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던가요!
“무릎팍 도사”에 나와 강호동 앞에서 “조조조조~~~”을 외치던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자주 “울울울울~~~”에 빠져 있던 저는 웃을 수밖에 없었죠.
우리 둘이 만나면 완벽한 “조울증”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예전에 읽었던 그녀의 책 <중국견문론>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길을 모르면 물어보면 될 것이고, 길을 잃으면 다시 돌아가 처음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라고...
그러니까 일단은 떠나보라는 말이었죠.
떠나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온 몸이 저릿저릿했던 저는 그녀를 향한 노골적인 부러움과 시기심만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둘의 궁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을 거란 생각도 이제와 하게 되네요.
<여행서>로만 익숙했던 한비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온전히 여행서 같지 않았던 그녀의 글들.
투박하고 촌스러운 문체, 심지어는 너무나 개인적인 말투들을 남발하는 걸 보면서 사이비 작가라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급기야 더 개인적인 책을 냈네요.
<그건, 사람이었네>
책의 서두에서 밝혔듯 그녀는 이 책을 언니로써, 누나로써 동생들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썼다고 밝혔습니다.
“청춘”들을 위한 글!
아마 이 책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내가 지금 청춘인가?’하는 애매한 시기의 사람들(?)에겐 어쩌면 이 책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제가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녀의 눈부신 “청춘” 때문입니다.
40의 나이에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날 때도 기겁을 했었는데, 51살의 나이로 미국 보스턴 테프츠 대학에서 본격적인 구호 이론을 공부하겠다며 또 다시 작년 9월 유학의 길을 떠났습니다.
....... 현실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단 한 번도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어보지 않은 청춘, 단 한 번도 현실 밖의 일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 청춘, 그 청춘은 청춘도 아니다.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해 보이는 꿈이라도 가슴 가득 품고 설레어보아야 청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눈부신 젊음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
그녀의 글처럼 도무지 그녀의 “청춘”은 끝이 날 줄 모르네요.
9년간 함께 했던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도 그만 두고 그녀는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청춘”이라는 건 “나이”와는 하등 상관관계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청춘”은 생동감과 활기참, 그리고 도전 정신이라면, 시간을 지나온 “성숙된 청춘”은 지식과 지혜, 명석함으로 비롯된 현실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늦은 시작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을 아마도 그녀 한비야는 알아버린 것 같습니다.
이기지 못했다면 적어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동행하는 방법을 알게 됐는지도요.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에는 그녀가 항상 말하는 “1년에 100권 책읽기”도 분명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책”
제게는 심장이 뛰고 가슴이 설레는 최고의 단어입니다.
어릴 적 제 꿈 중의 하나는 책을 읽다 눈이 멀어버리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 어린 꿈이 “오르한 파묵”이라는 터키작가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품게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참 어이없고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그런 소망을 품었던 때가 정말 있었습니다.
제가 “책”이라는 세계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생각을 그녀 한비야도 하고 있습니다.
...... "독서"의 즐거움이란 책 읽는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는 기대감, 찾아내서 빌려올 때의 뿌듯함, 이미 대출된 책의 차례를 기다리는 설렘, 점심을 굶어가며 모은 돈으로 서점에 가서 내 책을 사는 기쁨, 그 책을 책장에 꽃아 놓고 보는 흐뭇함, 그 책을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돌려받는 날까지 괜히 조마조마해지는 조바심까지를 포함한다......
저는 이런 마음을 “판타지”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아르바이트해서 받은 돈으로 제일 먼저 한 일은,
조정래의 <태백산맥> 10권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종로서적에서 이틀에 나눠 5권씩 구입해 들고 오면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된 것만 같았습니다. 얼얼했던 손의 기억도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 책은 여전히 지금까지도 제 손길을 받고 있죠.(이 책 정말 많이 읽었네요......)
사람이 사람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물의 최소량은 하루에 15리터라고 합니다.
저는 그 자리에 하루에 “15장의 책읽기”가 포함되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고 꿈꿉니다.
책이 없었다면,
아마도 저는 참 재미없게 그리고 참 많이 힘들게 세상을 살아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책은,
저에게 있어 생명의 또 다른 숨구멍입니다...

* 문득 궁금해집니다.
  당신에게 “책”은 무엇입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