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2. 7. 25. 07:31

좀 특이하고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아이티 출신 작가 다니 라페리에르의 소설 <슬픔이 춤춘다>

다니 라페리에르는 아이티에서 캐나다로 망명한 소설가란다.

아이티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는거라 긴장했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이게 소설 맞나 싶어 다시 살펴봤다.

행과 열이 정돈된 긴 서사시의 느낌.

그러다 중간준간 단문의 산문 구조가 나온다.

왠 멋을 이렇게 냈나 싶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구성 자체가 이야기의 흐름과 딱 맞아떨어진다.

상당히 매력적이고 흥미로웠다.

2009년 프랑스에서 메디치상을 받은수상작이란다.

메디치상은 프랑스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세계적으로 권위가 있는 상이다.

(오르한 파묵, 폴 오스터 등 우연히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이 상을 많이 수상했다 ^^)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참 담담하고 그리고 사려깊게 썼다.

조근조근한 회고록 내지는 묵상집 같은 느낌.

책의 주인공도 아이티를 떠나 있던 사람이다.

아버지의 부고를 알리기 위해 어머니를 찾은 아들.

그러나 귀향의 장면은 마치 스쳐지나가듯 짧고 간결하다.

고향에서조차 이방인이 된 사람.

그리고 가족이지만 함께 모여 산 시간과 함께 한 추억이 거의 없는 사람들.

무덤덤할만큼 단백한 이들의 관계에  왜 자꾸 울컥하면서 가슴을 쳤을까?

슬픔이.... 춤춘다...는 책의 제목은 참 적절하고 정확했다.

분명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실루엣으로 남은 사람들의 움직임.

그 뭉둥그려진 움직임이 참 아프고 슬프고 서럽다.

 

우리는 두 개의 삶을 산다.

하나는 우리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가 아는 사람들에 속하는 나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아... 하고 잠시 멈칫했다.

그랬구나.

나도 이런 이유로 현실과 나 자신 사이에 점점 거리감을 느꼈던 거구나...

책의 구절이 내게 답을 줬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 앞에 너무나 많은 희망을 두고

자신 뒤에는 너무나 많은 실망을 둔다.

삶은 죽은 시간 없이 흘러가는

긴 리본이다.

그리고 유연한 순간 속에서 희망과 실망이 교대한다.

 

나를 담은 글을 읽으면 섬득하다.

그러나 외면할 수 없다.

이 책은 아마도 오랜 시간을 나와 함께 할 것 같다.

나는...

사실 그랬다.

무덤덤한 춤을 추며 오래고 깊은 슬픔을 차곡차곡 달래고 싶었다.

나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2. 24. 06:39
법학을 전공한 법대 교수,
그리고 실제로 헌법재판소 재판관이기도 한 베른하르트 슐링크.
소설을 쓰는 사법인이라...
이 사람의 책을 전부 3권 읽으면서도 난 이 조합이 여간해선 잘 믿기지 않는다.
선입견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섬세한 감성을 가진 문학적인 판사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니...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귀향> <다른 남자>
세 권의 책은 경이로울만큼 아름답고 집요하고 끈질긴 이야이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내 속에 남아 계속 살아있는 그런 이야기.
장편이 주는 울림도 잊을 수 없었는데 6편의 단편이 주는 울림도 만만치 않다.
전후 독일, 그리고 죄와 책임에 대한 문학적 화두(話頭)
어쩌면 그가 독일인이기에 이런 이야기들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남과 북, 동과 서로의 분리.
독일과 우리의 역사적 테제는 그렇게 문학적 테제가 되어 원죄처럼 남아있다.
독일은 과거란 시점으로, 그리고 우리는 아직 현재진행형의 시점으로...



소녀와 도마뱀
외도
다른 남자
청완두
아들
주유소의 여인



6편의 단편 중 책의 타이틀인 <다른 남자>는
스트븐 달드리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처럼 영화화가 됐었다.
(200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케이트 윈슬렛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바로 그 작품... 챙겨서 봐야 하는데... 쩝!)
리처드 이어 감독이 만든 영화 <다른 남자>는
2008년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 공식 개막작이기도 했단다.
책에 나오는 여섯 명의 다른 남자.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곳에서 이곳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살았고, 그리고 기억되는 남자.
그 모습을 목격하거나 혹은 뒤늦게 알게 된다면
가장 가까이 있었던, 가령 부인이나 남편은 그 뜻밖의 사실을 알고 어떻게 할까?
의외로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담담해서 처연하다.
인간의 추한 이면과의 대면의 까발림을 기대했다면...
글쎄...
내겐 이 여섯 명의 다른 남자들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어떤 의미에서는 순수하고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일부러 꾸민 모습을 전부로 아는 누군가가 저쪽에 있다는 건,
어찌됐든 살아가는 데 또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진실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어쩌면... 어쩌면...
나도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다른 세상을 원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베른하르트 슐링크!
그가 이번에도 나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놨다.
그러니 이곳에서 잠시...
살아봐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5. 26. 06:38
베른하르트 슐링크.
이 멋진 독일 작가의 글때문에 나는 오랫만에 충만했고 환상적으로 행복했다.
<더 리더 - 책읽어 주는 남자>를 읽으면서
전율에 가깝게 느꼈던 모든 감정들이
<귀향>을 읽으면서 또 다시 고스란히 찾아왔다.
그러나 그 느낌은 한 단계 위의 감정이었고 감동이었다.
법대 교수이자 판사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베른하르트 슐링크.
(이런 조합이 믿어지는가? 소설을 쓰는 판사라는 조합이...)
1944년 7월 6일 독일 빌레펠트에서 태어나 하이델베르크와 만하임에서 자랐다.
1981년 관공서 간의 공무 협조에 관해 쓴 교수 자격 논문이 통과되었고,
본, 프랑크푸르트 대학을 거쳐 현재는 베를린 훔볼트 대학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뉴욕 예시바 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헌법 재판소 재판관도 겸임하고 있다.
그의 이력과 비슷한 이 책 <귀향>은 어쩌면 그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단지 주인공이 판사가 아니라 출판사 일을 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
그의 글에는 시간과 아픔과 신비와 현실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읽고 있으면 소설이 아니라 너무나 분명하고 선명한 역사를 겪고 있는 느낌이다.
단 두 권 뿐이었는데도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뼈마다가 아리고 저렸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와 함께 독일에 거주하는 주인공 페터.
(모자 사이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일종의 "금기"였다)
그는 방학 때면 스위스에 거주하는 할아버지 댁에서 매년 시간을 보냈다.
<기쁨과 재미를 주는 소설> 총서를 편집하는 일을 하는 조부모는
잘못 인쇄된 종이들을 모아 손자에게 연습장으로 쓰라며 주곤 했다.
그러면서 당부한다.
뒷 장의 소설은 읽지 말라고...
금기가 허물어지는 순간 페터의 앞에 나타나는 카를의 귀향 이야기.
잠시 잊고 있다가 성인이 된 후 우연히 이삿짐에서 다시 보게 된 이야기의 배경이
어디선가 실제 보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종의 기시감이랄까?)
페터는 직접 결말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 과정에서 페터는 또 다른 금기였던 아버지의 행적까지 찾아 나서게 된다. 
"오디세이아 모티브"
탈출, 방랑, 귀향...
책 속에 등장한 모든 이야기는 오디세이아 모티브로 점철된다.
급기야는 페터 자신의 인생까지도...
결국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귀향"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던가!



잃어버린 소설의 결말 찾기와 부재하는 아버지 찾기.
전쟁과 전후 세대의 이야기.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
절묘한 신화의 모티브.
집을 떠나기 전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을 찾으라며 흔적을 남겼을까?
거울의 반쪽을 서로 맞춰보면서 부자 지간을 확인하고
신화 속 비범한 인물이 된 아들은 온갖 역경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결국 아버지를 만나 적자의 정통성을 인정받게 될까?
소설의 중간 중간 나오는 귀향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신비하면서도 불안하고 불편하다.
그건 아마도 독일의 역사와 비슷하리라.
"루시퍼 이펙트"를 보는 듯한 세미나를 가장한 실험 장면은 섬득하다.
......대학원생들과  미래의 정치인, 판사, 사업가, 그리고 다른 유력가들은 극단적인 조건에서 어떤 행동을 보일까? 얼마큼 협력적이고, 얼마큼 이기적일까? 얼마나 원칙을 견지하고, 얼마나 적에게 동조할까? 서로를 배신하게 만들고 서로를 적으로 돌리는 데는 어떤 장치가 필요할까? 얼마큼의 추위와 굶주림, 압력, 공포가 있어야 문명의 가면을 벗길 수 있을까? ......
역사와 정의의 문제, 악의 본질에 관한 예리하고 비열한 현실을
읽는 사람은 각오하고 똑똑히 목격해야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또 다른 이야기들까지도...



페터는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이 해답은 혹은 결말은 여기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권하고 싶다.
꼭 읽어보고 느껴보라고...
가슴 속에 굵은 금이 생길만큼 이 책은 특별하다.
나는 지금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또 다른 책 <다른 남자>를 꿈꾸고 있다.
이 사람을 다 읽어내고 싶다.
그의 단편 <사랑의 도피>까지도.

================================================================================================

사람은 사랑하면서도 사랑받지 않을 수 있고, 그것을 불공정한 것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응답받지 못한 사랑의 공정함도 있는 법이죠.

아버지에 대해 알고 나서부터 그래. 마치 아버지에게 터뜨리지 못한 분노가 다른 분출구를 찾아 헤매는 것 같아.... 그동안 난 항상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살아왔고, 설령 잠시 세상에 발을 담근다 해도 저항이 있으면 언제라도 후퇴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

악의 선한 면이란 악이 선을 위해 쓰일 수 있다는 겁니다.
가난과 고통이 진보와 문화를 가능케 하고, 폭력이 평화를 보장하고,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 정의로운 혁명과 정의로운 전쟁을 성공으로 이끕니다.
나는 그가 이것을 일부러 연출하고 즐겼다고 확신했다. 그는 강의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연구하고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려 했고, 더 나아가 학생들을 바꾸려고 했다. 어떻게 바꾸려는지는 몰라도......

자신이 잘못하지도 않은 일로 사과해야 하는 자기비판의 모든 형식이 결국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존감이 붕괴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항상 진실과 거짓을 행하고 있다. 다만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에 대한 결정은 개인이 내려야 한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그리고 악이 자유롭게 떠돌아 다녀도 되는지 아니면 선을 위해 이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도 개인 소관이다. 이는 우리 개인이 올곧게 결정을 내린다는 것과는 다를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이유로 과거에는 남은 사람들에 대한 희생자의 값어치에 비례해서 살인을 처벌했다. 예를 들어 아버지에게 있어서 아들이나 딸의 값어치, 주인에게 노예의 값어치가 그것이다. 오랫동안 흑인을 살해한 백인이 백인을 살해한 흑인보다 경미한 처벌을 받은 것도 그래서이다. 살인자로서의 행위가 더 관대한 처분을 받은 것이 아니라 희생자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종 청소의 경우는 별 양심의 가책 없이 편하게 살인을 저지를 때가 많다. 희생자들의 죽음을 슬퍼할 사람들을 아예 하나도 남겨 놓지 않기 때문이다. 인종 청소의 전제는 이렇다. 청소할 민족을 고립시키고, 그들을 다른 민족들과 함께 이루는 세계의 질서 속으로 편입시키지 않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그들의 뿌리까지 뽑아버려야 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10. 3. 15. 06:10
오랫만에 영풍문고를 다녀왔다.
서점을 가면 왠지 모르게 편안해지면서
유난히 눈이 반짝거리는 나.
이때가 내가 유일하게 쇼핑(?)에 탐욕스러워지는 때다.
갖고 싶었던 책들이 너무 많았지만
그 중에서 특히나 맛있어 보이는(?) 3권의 책을 선택했다.


주제 사라마구의 <예수복음>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귀향>
(탁월한 선택 ^^)



주제 사라마구의 책들은 늘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았고
천명관은 몇 년 전에 <고래>라는 소설을 정말 재미있게 봤던 기억에 선택했다.
날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땐 꽤나 신선했었는데...
그의 두 번재 소설을 보니 무지 반갑고 기대도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책 <귀향>은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의 영화제작으로 뒤늦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신작이다.
또 어떤 사실(fact)을 가지고 아름답고 깊은 슬픔을 만들어냈을까?
그의 이력만큼이나 그의 글들은 내겐 즐거움과 신비다.
새롭게 손에 품게 된
세 권의 책이 주는 풍요로움.
나는 지금 아주 깊고 본격적으로 행복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