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4. 6. 24. 07:35

일본에 갈때마다 늘 가보고 싶었던 킨카쿠지 금각사(金刻寺)

이곳이 그렇게 보고 싶었던건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탓이다.

늘 그렇듯 여행지에 대한 환상의 시작은 적어도 내겐 책이다.

게다가 지금도 신기하게 생각하는건,

잘 찍은 사진으로 첫대면을 한 풍경은 실제로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책을 통해 읽은 풍경은 실제 대면했을 때 오히려 더 묘한 감흥이 느껴진다.

그건 아마도 그 풍경이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섯번이나 일본을 가고 그때마다 교토를 방문했음에도

교토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금각사와는 참 인연이 안닿았다.

(심지어 이곳과 아주 가까운 료안지까지 갔었으면서도...)

어쩌면 그건 미사마 유키오의 일종의 최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금각사는 1397년 건립된 선종 사찰 로쿠온지(鹿苑寺))에 속해 있는 3층 건물로

부처의 사리를 모신 사리전이란다.

특이한건 1, 2, 3층의 건축양식 모두 다르다는거!

1층은 헤이안시대 귀족주의 건축양식이고

2층은 무로마치시대의 무사들 취향의 양식이다.

마지막 3층은 중국양식으로 선실처럼 텅 비어 있단다.

이 킨카쿠지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로쿠온지"라는 정식 사찰명이 안타깝게도 묻혀버렸다.

금각사는 실제로 1년에 한번씩 금박을 보수한다는데

자세히보면 모자이크처럼 이어진 금박 큐빅들이 볼 수 있다. 

금각사를 방문한 날,

햇빛이 그야말로 금빛으로 쏟아졌다.

무방비상태로 서있는 내게 가차없이 후려지듯 내리꽃히는 강렬함들, 빛들, 찬란함들,

살기(殺氣)마저 느껴지던 아름다움.

 

미사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건성으로 책장을 넘긴 축에 속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금각사의 아름다움에 도취한 젊은 스님의 저지른 엄청난 불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극도의 미(美)를 마주한다는건

보는 사람을, 견디는 사람을 광인으로 만들어버릴만큼 가차없다는 걸.

젊은 스님은 금각사를 파괴하려던 건 아니라

함께 산화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순간 젊은 스님의 혼백이 내게 옮겨올까 두려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금각사의 시선.

 

번잡한 금각사를 벗어나면

이곳이 같은 곳인가 싶을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확 줄어든다.

한적한 다실과 한적한 폭포, 그리고 한적한 석탑.

앉은뱅이 빨간 꽃과 눈맞추려고 쪼그려 앉았던 한적한 길.

금각사는 내게 보여준 건 빛의 길이었다.

그날 내 발걸음을 이리저리 이끌었던 것

종일 "빛"이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금각사 주변을 나는 순례자의 심정으로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걸음 한걸음 꾹꾹 디딘 발걸음이 이렇게까지 선명한걸 보니... 

 

엄중한 빛이고

엄중한 길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14. 5. 22. 08:40

또 다시 일본행이다.

5월 31일 출발해서 6월 6일 귀국하는 일주일 가량의 일정.

이번엔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목적이 여행이 아니라 조카의 졸업파티가 주목적이긴 하지만

잠깐이라도 서울이, 한국이 아닌 곳에 있게 된다니 다행이다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틀이나 삼일 정도는 고베가 아닌 후쿠오카나 도쿄쪽으로 혼자 가볼까 싶다.

여건이 허락될지는 모르겠지만....

히메지성, 청수사, 오사카성도 다시 보고 싶고

(생각해보니 10년이 훌쩍 넘었네. 미취학이었던 조카가 이제 하이스쿨을 졸업하게 됐으니...)

몇 번을 벼르고 벼렸으나 결국 못갔던 금각사, 은각사는

이번엔 꼭 가보고 싶다.

혼자서 오래 걸을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

walking and walking

내 여행의 이유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순간 걷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완벽한 동의어가 된다.

적어도 내게는!

 

                                                                                    (사진 : 히메지성 / 오사카성 / 금각사 / 은각사/ 청수사)

혼자 여행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모르니 둘러볼만한 곳을 좀 찾아봐야겠다. 

한적하고 고요하게 걸을 수 있는 곳으로.

이번이 다섯번재 일본행인데 매번 언니네가 살고있는 고베 위주로만 다녀서

사실 교토나 동경, 후쿠오카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아마도 이번에 가는게 마지막 일본행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선지 조금 욕심이 생긴다.

어떻게될지 모르지만 

조용히 혼자 걸을 곳을 찾아봐야겠다.

 

이제 열흘 정도 남았다.

떠날 시간이...

떠난다는 동사.

언제나 그렇지만 참 좋다.

출발이라는 명사보다 훨씬 더!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12. 9. 28. 08:06

아주 짧게 일본을 다녀오려 한다.

사실은 혼자서 교토로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또 다시 고베다.

짧은 일정이라 어디 다닐만한 여유도 없고

당장 언니네 필요한 것들이 있어 겸사겸사 다녀오기로 했다.

 

어제 저녁에 집에서 짐을 싸면서 좀 막막했다.

홍합, 황태, 김, 고등어 꽁치 통조림에 멸치...

고춧가루, 고추장, 춘장에 이러저러 잡다한 것들도 캐리어는 터질듯 빵빵하다.

오늘 저녁에 출발해서 10월 1일 오후 3시에 돌아오는 짧은 3박 4일.

캐리어는 거의 장기 여행자 수준이다.

엄마는 신기에 가까운 기술로 캐리어의 빈 곳을 찾아낸다.

그런 엄마를 보는 게 처음엔 막막했는데 점점 재미있고(?) 귀여우시다.

이것 저것 더 챙겨 넣으려고 안달하는 엄마를 보면서

딸이라는 존재가,

자식이라는 존재가 참 미안했다.

 

그래, 이번 여행은 "전달자"의 역할을 충실히 시행하는 걸로 행복해하자.

짧은 일정이지만 얼마나 다행인가!

찾아갈 언니가 있어 간사이 공항으로 마중도 나와주고,

달콤하고 이쁜 조카도 다시 볼 수 있고.

바라바리 짐을 챙겨주는 엄마도 있고,

나쁘지 않은 여행이다!

아니 오히려 좋은 여행이다!

 

일본에서 실제로 어딜 갈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이틀이라

고베 중심 몇 군데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금각사와 청수사 그리고 아라시야마를 다녀올 예정이다.

 

여행이 길든 짧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좋은 기억을,

눈 속에, 마음 안에, 머리 속에 얼마나 깊이 담을 수 있냐가 중요하다.

편안하게 그 짧은 순간을 온전히 즐기자.

카르페 디엠!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0. 27. 05:56
제목만 봤을 때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헌사같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쓴 저자는 현재 메이지 대학교 문화부 교수 사이토 다카시.
소개글에 말의 권위자라고 나와 있는데 솔직히 어떤 의미의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다.
좀 거하게 말하자면,
하루키의 소설 뿐만 아니라 일본의 현대문학 속에 등장하는
사랑에 대한 느낌과 그 언어적 표현에 대한 통찰이다.
참 묘한 건 객관과 주관 그 중간의 어디쯤에서 적당히 감성적으로 쓰여진 글이다.
살짝 시니컬하기도 하고 관조적이기도 하면서 때론 열정적이다.
사랑한다면, 사랑하고 싶다면, 사랑했다면,
일본 소설 속 사랑 언어에 주목하라...
딱히 그러고 싶진 않았는데 읽다보면 그 표현들에 주목하게 된다. 이상하지?



part 1 쿨한 사랑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part 2 나쁜 사랑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산시로> 나츠메 소오세키
<겐지 이야기> 무라사키 시키부

part 3 보통 사랑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치카와 다쿠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카타야마 쿄이치
<선생님의 가방> 가와카미 히로미
<전차남> 나카노 히토리


기억하기 딱 좋은 편수인 10편의 일본 소설이 나온다.
물론 이야기의 줄거리를 무시할 순 없지만 
여기선 각각의 소설에 나오는 어떤 부분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고 소박하게 쓰고 있다.
나는 이 책들을 읽으면서도 이런 부분들을 놓쳤었구나 새삼 성긴 책읽기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때론 이런 책들이 묘하게 가슴에 담길 때가 있다.
고민하지 않고 소풍처럼 읽을 수 있는 적당히 평화롭고 한가한 책이...



가끔 생각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건 말일까? 행동일까? 감정일까?
이 모든 것이라고 대답하겠지만 어쩐지 그 시작은 말(고백)이 아닐까?
표현되어지든, 표현되어지지 못하든.

그리고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랑은 몹시 복잡한 곳으로 나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주위의 풍경에 마음을 쓸 여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고백을 세상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느끼게 한다.
극도의 무관심이든, 극도의 관심이든
고백의 순간 이제 더이상 처음과 같을 수는 없게 되는 것.

나의 외로움이 너의 외로움이 되는 것,
망연히 벽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 왜 너를 사랑했냐고,
왜 나를 사랑했냐고 따지고 싶어도 따질 수 없는 것,
한 번이라도 더 보고 헤어질 것이라고 후회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것,
그것을 입 밖에 내밀 수 없었던 사랑이라는 것.

너와 나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
그래서 그 경계의 끝에서 비록 누군가 너덜거리게 된데도
사랑이 두려운 남자도 여자도
모두 운명같은 사랑을 꿈꾼다.
운,명.같.은.사.랑.
얼마나 대책없는 단어끼리의 조합인가!

하도 사랑, 사랑하기에
그것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기에 난리냐 싶어
사랑을 해봤지만 그 감정 별 것 아니던데,
라고 말하면서도 사랑 없이 못 사는 것이 사람인지라,
누군가 사랑, 그것은 말이야, 서두를 떼기만 해도 또다시 두근거린다.


아닌 척 하면서도 그만,
이 문장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랑, 참...
또 다시 모질구나... 싶어서...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