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4. 1. 15. 08:11

2년마다 한번씩 자유여행을 가야겠다고 혼자 다짐했었다.

그리고 두번째 다녀온 자유여행.

원래 예정대로라면 스페인과 포르투칼을 여행하는 거였는데

동생네가 함께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그래도 익숙한 터키로 방향을 수정했다.

그냥 터키 일주를 할지, 이스탄불과 산토리니를 갈지 두 가지로 고민하다

아무래도 조카들이 초등학생이라 터키일주는 무리일 것 같아 이스탄불과 산토리니로 정했다.

결론적으론...

선택은 나쁘진 않았다.

여행하는 내내 날씨는 좋았고

특히 아테네와 산토리니에 머무르는 동안은

지중해의 햇빛 속에 두명하게 헹궈지는 느낌이었다.

walking and warlking의 꿈을 충분히 실행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짬짬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골목길을 기웃거렸던 시간들,

하늘과 바다를 바라봤던 시간들.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들을 몰래몰래 훔쳐봤던 시간들.

길을 찾아 이리저리 우왕좌좡하며 시행착오를 반복했던 시간들이

지금은 다 추억 그 이상이 됐다.

그건 그러니까...

"힘"이다.

앞으로의 2년을 버텨내게 하는 힘.

 

아쉽게도 골목과 길, 풍경같은 다정한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담지 못했다.

이런 것들은 적어도 내게는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그 이야기에 충분히 귀기울이지 못했다.

산토리니에서 만난 "casablanca soul"

이 골목 앞에서 혼자 얼마나 웃었던지!

골목 입구에 앉아있는 상점 주인 아저씨에게도 풍부한 casablanca의 soul이 느껴지더라.

루멜리 히사르에서 한 어머니가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손을 잡고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은

정말 홀릴듯 오래 쳐다봤다.

아름답고, 귀엽고, 따뜻하고, 다정해서...

이런 꿈같은 풍경들에 더 많이 귀길울여야 했었는데

내내 아쉽고 아쉬웠다.

 

 

아마도 변하지는 않을거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전에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은

여전히 서점일 것이고

비행기가 땅을 벗어나면

창문을 통해서 서서히 드러나는 하늘길을 보며 여전히 설랠거고,

골목골목을 목적없이 서성이는 것도 여전할거다.

눈에 담는 것,

눈에 담기는것들에

점점 더 많이 선량해진다.

본다는 것,

그건 느낀다는 것과 동의어다.

한때 제일 절망적인게 시력을 잃는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을 읽으면서 그렇치 않다는 걸 알았다.

그래, 볼 수 없다는 건 확실히 치명적이긴 하다.

그러나 그리웠던 건 한 번이라도 봤다면

그걸 기억하면서 마음 안에서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다.

사람은,

사랑때문에, 사람때문에 살 수도 있지만

기억때문에 살 수도 있다.

 

하여,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나는

내 기억의 힘을 신앙처럼 굳게 믿는다.

그게 나를 살게 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1. 14. 09:16

김연수가 이랬었구나!

2013년 6월 20일에 출판된,

지금으로부터 무려 10년도 전에 쓴 김연수의 초기작을 읽으면서

젊은 작가의 치기와 순수가 귀여워 살며시 웃음이 났다.

"나 이렇게 파릇파릇하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작가예요~~"

어리꽝을 부르는 막내동생 같은 느낌.

김연수는 이 낯선 형용사와 동사들을 찾기 위해 또 얼마나 분주했을까?

김연수에게 작가로서 이런 시기가 있었다는걸 읽어내는 건 아주 유쾌하고 발랄한 즐거움이었다.

그런 때가 있다.

작가의 작품을 우연히든, 의도적이든 거슬러 올라가 읽을 때만 찾을 수 있는 묘미.

이거 썩 재미있다.

 

 

 

홍보문구가 살짝 오글거리긴 하지만

(김연수의 의도는 분명히 아니었을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역시나 "김연수"답다.

두어시간이면 후딱 읽을 수 있는 짧은 소설이지만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담론같은 문장들을 수줍게 만날 수 있다.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서도 상관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뿐이다...... 모든 게 끝나면 유통기한이 지난 식료품처럼 사랑했던 마음은 반품시켜야만 하지만, 사랑했던 기억만은 영수증처럼 우리에게 남는다. 한때 우리가 뭔가를 소유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물, 질투가 없는 사람은 사랑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억이 없는 사람은 사랑했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가 없다 ......

 

쉽고 당연한 문장이지만,

아주 정확하고 정직한 문장이라 뜨끔했다.

정말 그렇다.

처음엔 둘이 같이 빠졌다가 모든게 끝나면 혼자 힘으로 빠져 나와야 하는 사랑.

김연수는 여기서 또 다시 아주 정확한 포인트를 잡아낸다.

...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사랑이라는 고나계에서 혼자서 빠져나올 때마다 뭔가를 빼놓고 나온다는 점이다...

어쩌면 우리는 잃어가기 위해서, 잊혀지지 위해서, 잊기 위해서

"사랑"에 빠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제목처럼 "사랑이라니... OOO!"다.

누군가에게 이 단어가 환희일 수도, 징글징글함일 수도, 무덤덤한 타인의 감각일수도 있겠다.

뭐가 됐든 그게 이 모든게 다 "잊기" 위한 방법들이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도

어쩌면 적자생존의 원칙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령 "알츠하이머"의 경우 그 원칙이 무참히 깨지면서

현재와 미래의 시간은 다 잊혀지고 과거만이 생생해지는 건 아닐까?

과거가 전부인 삶.

 

사랑과 기억 중에 뭐가 더 아름다울까?

어쩌면 둘 다 아름답지 않을수도...

함께 빠지는 것도,

혼자 빠져나와야 하는 것도,

다 힘겹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1. 28. 06:37
궁금했었다.
은희경의 침묵이 너무 길어서 도대체 그녀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이걸 쓰느라고 그랬나?
은희경의 성장소설 <소년을 위로해줘>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자꾸 책 제목을 "소년을 응원해줘"라고 되낸다.
급기야 책장을 덮을 때마다 표지를 보면서 깜짝깜짝 놀랐다.
왜 그랬을까?
왜 "위로"가 "응원"으로 읽히는걸까?
어쩌면 은희경도 이 어린 청춘들을 사실을 응원해주고 싶었던건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지나버린 자신의 청춘까지도...
위로받은 청춘을 지나온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책을 읽다가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오래 했다.



5년 만에 출판된 은희경의 장편소설.
2005년 <비밀과 거짓말>이 출간된 직후
은희경은 이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단다.
따지고 보면 이 소설을 위해 그녀는 참 오랜 시간을 침묵으로 버텼고
나는 오랜 시간을 기다림으로 버텼다.
은희경의 글들...
그녀만의 독특한 뉘앙스는 늘 내게 향수 비슷한 것을 느끼게 한다.
향수라고 해서 아주 오래된 과거를 들추는 게 아니라
고작 얼마 지나지 않은 사소하고 소소한 기억을 들춘다.
분명히 전경린이나 신경숙과는 또 다른 류(流)를 소설이다.



이 책을 재미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재미없었노라 말 할 수 있을까?
성장소설은 재미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깊이를 따지기에도 왠지 아닌 것 같고...
굳이 주인공들이 강연우, 독고태수, 민기훈(G-그리핀), 이채영이 아니면 또 어떤가!
이곳엔 모든 사람이 과거에 겪었던 청춘과
지금 열심히 겪고 있는 청춘이 그대로 담겨있다.
청춘이란 그런 거란다.
"세월이 지나야만 완벽히 소유할 수 있는" 게 바로 청춘이란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클래식일 수도 있고
헐렁하고 자유로운 힙합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담벼락에 몰래 그려놓는 반항기 풍기는 그림같은 것일 수도...
뭐가 됐든 사실 어떤가!
정답은 없지만 절대적이고 지배적인 시간이고 공간인걸.
누군들 안 그럴까????

참 오랫만에 읽은 은희경은...
참 그녀답게 덤덤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은희경의 덤덤함이 
징글징글하게 좋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2. 23. 05:50

퓰리처상!
매년 미국에서 언론과 문필 분야에서 뛰어난 대중적 공로와 업적을 지닌 사람을 선정해 수여하는 상이다.
수상 분야는 보도, 문학, 음악 3개 부분 21개 분야에 대해 시상한다.
신문왕 조지프 퓰리처가 기증한 50만 달러의 기금으로 제정된 이 상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높은 권위와 신망을 지니고 있다.
1917년 이래 매년 5월에 그 시상자가 발표된다.
올해 2010년 문학부분 퓰리처상 폴 하딩의 소설 <팅커스>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거의 10년 만에 데뷔작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폴 하딩은
지금 미국에서 "미스터 신데렐라"로 불리고 있단다. 
본인도 이 표현에 인정할까?



Tinkers, 땜장이들.
땜질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참 오랫만에 들어보는 단어다.
조만간 이 단어 역시도 박물관 단어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도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동네마다 땜장이 아저씨들이 돌아다니면서 솥이랑 주전자를 땜질해주곤 했었는데...
칼갈이 할아버지는 워낙 자주 봤었고...

시계 수리공 조지, 땜장이이자 행상인이었던 아버지 하워드, 목사였던 할아버지까지
크로스비 가문 3대의 이야기.
시계 고치는 일로 가족을 부양해온 조지 워싱턴 크로스비는 병상에 누워있다.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8일간의 시간,
이승 같지도 않고 저승 같지도 않는 세계 속에서 지금 조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을 추억하고 이야기한다.
사람이 죽기 전에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자신의 일생이 영화처럼 펼쳐보여진다는데...
조지는 스스로도 현실인지 아닌지 모호해하면서
이 모든 것들과 대면하고 있다.
과거가 현재가 되고, 이곳이 저곳이 되기도 하고...
어쩌면 "기억"이라는 건 하나의 크고 누덕누덕한 땜들의 합체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연속성이 있든, 전혀 연관이 없든 간에...
처음엔 제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책을 읽을수록 단어가 주는 의미가 조금씩 이해됐다.
조지는 아버지 하워드들 생각하고
조지의 기억 속 하워드는 또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고... 
목사였던 하워드의 아버지는 정신병 때문에 점점 괴상한 설교를 하다가
결국 아내와 교인들에 의해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런 아버지를 찾으려 숲 속을 헤매다가 처음 간질 발작을 일으킨 하워드.
지금껏 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아내의 도움으로 현명하게 처리햇던 그는
실수로 그 모습을 아들 조지에게 들키고 만다.
급기야는 아들의 손을 뭉턱 깨문기까지 한다.
아내는 의사에게 받는 정신 병원 브로슈어를 보고 고민에 빠지다 조용히 화장대 위에 브로슈어를 올려 놓는다.
그걸 본 아버지 하워드는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 
그리고 그는 새 정착지에서  새 인생을 시작한다
그렇게 사라진 아버지가
어느 크리스마스 밤에 아들의 현관문을 두드린다면?



시계의 톱니 장치와 태엽에 그 나름의 고유의 기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전체 기계장치 내에서 그 더 큰 목적은 선택된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시계는 우주와 닮았다.
사람도 세상, 나아가 우주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우리 지구의 흙으로 덮인 표면에서 꿈틀대고 안달한다. 다만 목적이 있기는 있다는 것, 하느님이 정하시고 하느님만 알고 있는 목적이 있다는 것, 그 목적이 선하고 그 목적이 무시무시하고 그 목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 오직 이성적 믿음만이 우리의 웅장하면서도 타락한 세계의 절망적인 고통의 비애를 달래줄 수 있다는 것, 그것만 알 뿐이다. 그렇게 간단한 것이다. 사랑하는 독자여, 그렇게 논리적이고 그렇게 우아한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책의 구절이다.
땜장이와 시계 그리고 인생.
개별이 아닌 각각의 연결과 구동으로 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
책은 재미있다고 말하긴 솔직히 어렵다.
그런데 확실히 매력적이다.
처음엔 무슨 이야긴가 싶었는데 읽을수록 한 가족의 역사와
그 깊은 내면의 연결성이 문득문득 시처럼 다가온다.
다 읽고 난 후에는 참 서정적이고 슬픈 이야기구나 애뜻해진다.
그래. 꼭 가족처럼...
이 책이 바랬던것도 어쩌면 이런 느낌을 전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제대로 느낀건가?

모든 인간의 삶은,
그 전의 사람들과 연결된 땜질의 연속이다.
그러니 누구나 완전히 이 세상에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어쨌든 흔적은 남는다.
땜질된 것들의 흔적...
당신의 기억 속에서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은
진짜 누.굴.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9. 25. 06:12
소설 <친절한 복희씨> 이후 4년만에 출판된 박완서의 산문집.
솔직히 말하면 나는 산문집은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자면,
나는 작가 박완서를 무지 좋아한다.
서점에 가면 박완서의 책이 모여있는 코너를 들러
꼭 한번쯤은 내 손으로 스다듬어 보게 되는 그런 작가다.
그래서일지도 모르지만 박완서의 산문집을 앞에 두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손에 잡는다.
당신의 산문집은 따뜻하다.
정성이 가득 담긴 방금 한 따뜻한 집밥을 한 숟가락 가득 퍼서 입 안에 넣는 것 같다.
달달하고 그리고 편안하다.
집밥이 주는 포만감은 오래오래 지치고 힘들었던 고약한 허기를 냉큼 달랜다.



1부 - 내 생애의 밑줄
2부 - 책들의 오솔길
3부 - 그리움을 위하여


이 글들을 쓰면서 작가 박완서는 또 한 번 자신의 길을 반추했으리라.
전쟁의 공포도 혈육의 죽음도 겪어보지 못한 내게도
그녀의 일생은 안스럽고 안타깝다.
그래서 그녀는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녀의 글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내내 보듬어 안는 게 아닐까?

......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주었다 ......

하나의 생명의 소멸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우주의 소멸과 마찬가지란다.
80의 생애동안 수많은 우주의 소멸을 지켜봤을 박완서 선생.
이기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다행스럽다.
그 모든 소멸로부터 내가 위로받고 있으니까...



특히 2부와 3부의 내용들이 진솔하고 담백하다.
당신이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인 2부는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으면서 실제로 혹독한 추위를 느꼈다는 부분이 나온다.
자신의 과거사와 묘하게 일치되는 추위는 결국 박완서의 몸을 아프게 한다.
책은 정말로 그럴 수 있다.
책으로 살갗을 도려내는 추위를 실제처럼 체감할 수도 있고
책으로 늙은 몸에 젊은 피를 수혈받아 영생을 꿈꿀 수도 있다.
확실히 나는 그 사실을 전적으로 믿는다.

3부의 글들.
김수환 추기경 선종, 문학의 대모 박경리 선생의 추모글,
그리고 나목의 화가 박수근에 관한 이야기.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막상 활자로 인쇄된 글로 보니
부모잃은 아이의 막막함이 더 많이 느껴진다.
80의 나이로도 그럴 수가 있구나...
진심으로 놀랐고 당신의 마음이 부럽기까지 하다.

기억이 많은 사람은.
또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움이 절망처럼 밀려온다.
훔치고 싶다... 훔치고 싶다...
당신의 기억 모두를...
정말로 그럴 수만 있다면...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9. 2. 06:32
지난번에는 류정한, 이창용 페어를 봤었고
이번 관람은 류정한, 이석준 페어였다.
류정한과 이창용의 나이 차이가 무려 13살인 반면에 이석준과는 1살 차이다.
일단 심정적으로는 안도감은 느껴진다.
뭐 나이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느낌도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날은 배우 건승정한이라는 류정한 클럽에서 처음으로 전석 단관을 실시한 날이다.
450 여석의 동숭홀 좌석이 불과 몇 분 만에 매진되는 놀라운 대형사고(?)를 성공시키더니 당일날에도 축제같은 분위기를 계속 만들어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어딘지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그리고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달라진 분위기도 누느껴진다.
예전에는 뭐랄까,
류정한이라는 뮤지컬 배우의 남성성(?)을 홀로 과도하게 추종했던 무리가 많았는데 1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조력자, 응원자 비슷한 결속력이 조금씩 느껴진다.

조금 놀라긴 했다.
10년이란 시간동안 이어진 건승정한의 힘이...
왠만한 사람이 와도 무대 위에서 떨리거나 긴장하지않는다는 배우 류정한도
함께 공연했던 이석준의 증언(?)에 의하면 계속 떨려했단다.
공연장 전체가 오직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으로 채워져있다면...
그 떨림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이 사람 무지 행복하겠구나 하는 감탄에 가까운 부러운 마음도...



공연을 보다보면
관객이 편안한 공연이 있고
연기하는 배우들이 편안한 공연이 있다.
개인적으론 류정한, 이창용 페어가 전자에 속했고
류정한, 이석준 페어가 후자에 속했다.
두 배우 모두 전체적으로 살짝 흥분돼 있었고
이석준 앨빈은 등장부터 말투와 행동이 좀 과장돼 보였다.
본인의 인물 설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능이 살짝 떨어지는 어른아이 같다고나 할까!
목소리 톤이나 음색의 조화도 개인적으로 이창용, 류석준 페어가 맘에 든다.
류정한, 이석준 두 사람 모두 무대 위에서 소위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발란스는 잘 맞춰주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왠지 동화가 잘 안 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뭐라고 딱 꼬집을 수 있는 흠이 있는 건 결코 아니다.
(혹시 전석 단관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두 배우에게 작용했던 걸까?)
고백적이고 잔잔한 드라마 짙은 이야기가
어느 순간 이벤트같은 느낌이 들기도...
어쩌면 선입견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공연은 약간 들뜬 분위기였다.



워낙에 이 뮤지컬 자체가 스토리가 탄탄하고 뮤지컬 넘버들도 좋아서
딱히 흐트러질 구석이 별로 없는 공연이긴 하다.
두 배우의 호흡과 내공만 잘 들어맞는다면 누가 해도 자신의 best 작품에 들어갈 그런 작품 ^^
보고 있으면 참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다.
무대에 서있는 배우도 그렇고 무대 밑에서 보고 있는 관객도 그렇고...
토마스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하나 하나 기억을 끄집어내는 앨빈.
빼곡하게 쌓여있는 책으로 표현된 토마스의 기억은
앨빈의 기억이기도 하다.
그래서 토마스의 기억이 살아있는 한
앨빈 역시도 살아있을 수 있게 되는 그런 관계...
정말 그럴까?
사람들은 기억 하나하나를 그 작은 디테일까지도 잊어버리지 않고 다 저장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지워질 기억들은 조금씩 지워졌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공연 후에 신춘수 대표, 류정한, 이석준 세 사람이 무대 위에 나와서 객석과 이야기를 나눴다.
세 사람 사이에는 믿음 이상의 결속력이 보인다.
묘한 형제애같은 강하고도 끈끈한 유대감.
어쩌면 그래서 이 작품이 이들에게, 관객에게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 발 물러나서 함께 뒤돌아보며 정리하고 싶었을지도...
그리고 다시 함께 시작하고 싶었을지도...
믿음이 쌓인 사람들이 나누는 미소는 
든든하게 이쁘다.


                                <The Story of My Life 앤딩 장면>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6. 14. 05:43
권지예의 3번째 장편소설이다.
솔직히 말해서 뭔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별로 뭔가가 없다.
재미와 흥미는 있다. 드라마나 영화 쪽에서 탐 낼만한 이야기긴 하다.
역시나 나랑은 코드가 잘 안 맞는 작가.
차라리 정경린이나 은희경 쪽을 선택하는 게 좋을 듯



어린 시절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가진 2명의 남녀(선우, 서인)가
운명적인 사랑을 한다는 이야기.
운명적인 사랑이라...
그런게 있나?
어쩜 있을수도... (내가 못봐서 그렇지... 쩝)




다른 인격의 또 다른 자신이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 선우.
어릴 적 야반도주한 엄마를 목격한 서인은 엄마의 신발을 저수지에 가져다 놓는다.
그녀의 엄마는 이제 마을 사람들에게 자살한 것이 됐다.
자신의 딸에 의해서...
지킬 앤 하이드.
우리가 흔히 "다중인격"이라고 말하고 해리성 정체성 장애 환자와 그녀의 연인 이야기.
결국 지킬 앤 하이드의 결말처럼 남자는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처치한다.
사랑하는 그녀를 지켜내기 위해서...
그리고 여자는 당연히 남자의 아이를 낳아
그 남자를 추억하며 키워낸다.
어린 시절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가 이 남자라는 걸 알면서도 사랑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
"그 사람 잘못이 아니예요. 그 사람 속의 또 다른 인격이 한 짓일 뿐이예요..."
결국 인간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 속에 살고 있는 운명적 존재라는 문장으로 위로하기에는
난감하고 자극적이다.
소설적인 상상력과 결말은
그래서 지극히 현실적인 내게는 상당히 거북스럽고 작위적이다.
처음엔 좀 주의깊게 읽었었다.
그런데 내용이 빤히 보여서 점점 흥미가 떨어졌다.

아!
바늘 하나 들어설 틈 없는 빈틈 없이 촘촘한 이야기가 그립다.
앞을 읽고 있으면서 뒤를 전혀 가늠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
늬가 직접 써라.... 라고 한다면
죄송할 따름이다. ^^

기억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이란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 13. 06:06
마흔을 넘긴 남자가 
남은 인생을 함께 할 확신을 주는 그런 여자를
드디어 만났다.
그리고 사랑은 시작됐다.
그러나 혼자 남겨진 그 사람은 그녀를 생각하며
깊고 진한 순애보를 세상에 남긴다.
어차피 모든 사랑의 기억은 왜곡이라지만
누군가 믿고 확신했다면 그 사랑의 가치는 이미 모든 것 위에 존재한다.
사랑... 독하고 치명적인 그 사랑...



영화배우 장진영.
자신이 주연한 영화 <국화꽃 향기>
그 여주인공 희재가 되어버린 여자 장진영.
그녀의 위암 사망 소식에 나는 손끝이 흔들렸다.
그 떨림은 그러나 같은 여자이기에,
혹은 같은 동갑이기에 느꼈던 감정은 아니었다.
가슴 안으로 크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갑자기 내려앉는 느낌.
그랬던 것도 같다.
그녀가 외롭게 여행을 끝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도...
그리고 그녀를 외롭게 보내지 않은 그녀 곁의 한 사람을 생각하며
그의 남은 시간들을 막막해했는지도...



결혼식 사진 속 그녀의 야윈 모습을 보면서
그의 야윈 마음을 읽어낸다.
사랑하는 사람이 필사적으로 지켜내는 하루하루를 봐야만 했던 그는
고난했을테고 그리고 황망했을 것이라고...
모르겠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게
자기 자신인지. 아니면 그녀였는지...



어쩌면 시간이 더 지나면 나는 이 사랑을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믿는 사람에게 코웃음으로 흘려 보내며
세상에 아직 그딴 게 있느냐며
별 희안한 소리도 다듣는다 말할지도...
그의 기억 속에
그녀 장진영은 살아 있더라.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
결국 그녀의 삶은 그로 인해
이 생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혹 모르는 일.
그를 향해 누군가 그녀의 안부를 물을지도... 

기억의 불완전성을 믿는 남자의 세밀하고 선명한 기록들...
그의 삶 속에 그녀의 삶 또한 아직 또렷이 살아있다.
건강하고 밝게, 그리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그녀는 지금 그의 맘 안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1. 11. 06:18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나?
아님 "기억" 혹은 "추억"들에 대한 오마쥬?
누군가는 자신이 계획했던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변수와 의외성에 의해
어쩌면 임기응변의 가지를 늘리며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독한 건,
오래 기억에 담기기 때문에...
그래서 때로 살을 저미게 하고
때로는 현실 속에서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은 하는 순간에도 환상 속으로 걸어가는 거지만
끝나는 순간부터도 여전히 환상 속의 걸음마다.



"상실감 앞에선 기억 따위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고 했던가?
묵묵히 다가오는 9편의 단편들의 무게감에 어깨가 묵직하다.
따지고 보면 문제작들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개인적인 일들에 대한 기록.
익숙한 결험도 흔한 이야기도 사실은 아니다.
그런데도 "평범"한 우리네 일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일종의 "데자뷰" 현상까지...
억지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김연수라는 남성 작가에게
여성성에 대한 데자뷰가 있었던 모양.
그의 감성은 연했고 다정했고 그리고 부드러웠다.



18세의 찬란한 소녀를 향해
"여름 바다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늙어가고 있었다"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
(<기억할 만한 지나침>의 시작)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라는 단편 세계의 끝 여자친구>
한 일들은 마음에 남는 게 하나도 없는데
안 한 일들은 해봤자였다고 생각하는데도 잊히질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
하지도 않은 일들이 잊히지도 않는다고...
작가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이주 노동자의 떠듬떠듬한 한국어 발음처럼
어쩐지 생경하다.
그러나 그 생경함을 충분히 이해하게 만드는 낯선 친근함!!!
"김소진"의 글들이 생각났다.
우리 곁에 더 오래있었으면 참 좋았을 소설가 김소진을...
왜 그가 떠올랐을까?
그 수수께끼에 대한 대답을 찾아봐야 겠다.



<달로 간 코미디언>
붕괴와 상실로 실종되는 인간의 삶.
바보스런 슬랩스틱 코미디 안에 갇힌 인간의 삶이
문득 서럽고 처연하다.
아버지가 스스로 선택한 실종을 바라보며
딸은 그 사막 속에서 다시 아버지를 조우하게 될까?
한쪽 끝을 건드리면 다른 한쪽 끝이 열린다고 하는데...
새롭게 열리는 그 끝을 보면
아마도 작가는 모든 연결되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계"라는 건 결국
나와 너, 우리에 의한 소통이라는 것.
세계를 거부하겠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소통"의 끈을 끊으면면
모든 것은 거부된다.
밑바닥만큼 처연한 끝이라는 자리...
다시 시작되는 끝이라면 오히려 다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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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 봤어 :
두 사람은 서로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고독 속에서 몇 달을 보내야만 했다. 고통을 피하려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고통을 피하려고 스스로 죽기도 한다. 해피에게는 아이없이 살아가는 삶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건, 희망을 찾은 게 아니라 희망을 버렸다는 뜻이었다. 그 사실만은 남편과도 공유랄 수 없었다.

해피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나가고 난 뒤에도 저 불은 우리의 예상보다 좀더 오랫동안 타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안에서. 내부에서. 그 깊은 곳에서. 어쩌면 우리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도. 이 우주의 90퍼센트는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없는, 하지만 우리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불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 불들을 보지 못하겠지만.

세계의 끝 여자친구 :
마흔세 살이란 이런 나이야. 반환점을 돌아서 얼마간 그 동안 그랬듯이 열심히 뛰어가다가 무득 깨닫는 거야. 이 길이 언젠가 한번 와본 길이라는 걸, 지금가지 온 만큼 다시 달려가야 이 모든 게 끝나리라는 걸. 그 사람도 그런 게 지겨워서 자살했을 거야.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
수많은 첫 문장들. 그 첫 문장들은 평새에 걸쳐서 고쳐지게 될 것이다. 그들이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서... 그러부터 인생은, 쉬지 않고 바뀌게 된다. 우리가 완벽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전까지 이야기는 계속 고쳐질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그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서 첫 문장은 달라질 것이다. 그는 어둠 속 첫 문장들 속으로 걸어갔다.

달로 간 코미디언 :
보지 못하게 되면서 시각적 세계가 사라졌듯이 그 시각적 세계 안에서 자신의 몸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 투명인간의 존재, 유령의 존재가 됐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내가 마치 거기에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마주 앉아 있어도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어차피 나는 앞을 볼 수 없으니까. 그 말은 어차피 남들이 나를 볼 수 없으니까, 라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내 존재 자체가 사라져요. 시각장애의 핵심은 내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보여져야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잇다면, 견뎌질 수 있다.
                                                                                        -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김연수 (작가의 말) :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앙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잇는 것으로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1. 10. 06:25
<뿌리 깊은 나무> , <바람의 화원>의 작가 이정명의 소설이다.
사실 두 팩션 소설을 인상깊게 봤던 탓에 은근히 기대를 품고 있었다.
읽으면서 자꾸만 앞장을 확인하게 된다.
이 생경한 느낌이라니...
혹시 동명이인 "이정명"의 소설은 아닌가 하는 생각...
(내 이면엔 제발 그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교묘하게 짜집기 된 듯한 설정들.
형사추리물? 심리극? 사이코패스? 
아니면 이 모두라고 해둘까?
어떻게 생각하면 비정상적인 판타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이정명이란 작가에게?)
그의 장점이었던 특별한 해박함도 찾아보기 어렵다.
굳이 찾아내자면 영어 퍼즐...
퍼즐을 통해 예고되는 다음 살인의 장소
그걸 위해서 이국의 배경과 이국의 인물이 필요했었던 걸까?
아무래도 이정명이란 작가.
추리 소설에 대한 "로망"이 있는 모양이다. ^^
그 로망을 지극히 내수용(?)으로만 풀어내는 게 이 사람에겐 훨씬 더 적절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이 소설이 재미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정명은 재미있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만드는 작가임에는 분명하다.
찜찜해하면서도 이 책 역시도 빠른 속도로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7년 전 자신이 총에 맞아 바다에 빠진 연쇄살인마 데니스 코헨
(그리고 그로 추정되는 사체가 2주 뒤 바다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그가 여전히 살아있다고 확신하는 매코이 형사.
그래서 데니스 코헨을 끝까지 추적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
7년 전의 트라우마로 인해 식물인간이 됐다가
오랜 재활 끝에 머릿속에 범인이 쏜 총알을 박은 채 그대로 살아가야만 하는 남자.
처음부터 결말이 보였다.
매코이의 머릿속 총알이 만들어낸 데니스 코헨.
데니스 코헨은 다름 아닌 매코이 자신이었다.
자신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살인에 대한 스스로의 추적.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스스로 만든 악에게 끌려다닌 셈이다.
결국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눌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이르고 마는...



자신의 가족까지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믿는 살인마를 증오하면서
(이 부분은 참 좋았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기억. 그러면서도 결국은 하나로 통합되는 기억...)
과거의 그와 같은 수법으로 세 건의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
파괴될 수밖에는 도저히 없었겠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그의 생존이유는 놈에 대한 복수였으니
그와 자신이 동일인이라는 알게 된 그의 선택은 오히려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연쇄살인에 이어지는 주위 인물들의 다중 살인까지...
의미없는 사체들의 난립니다.
"악"이라는 오랜 트라우마가 남긴 추억의 끝은
허무하다.

하긴 모든 추억들은 전부 그랬던 것 같다.
적당한 변질과 왜곡으로 이어지는
그닥 신뢰성 없는 기억들.
추억을 기억이라고 단정짓지 말자.
당신에게도 또 하는 이면의 자신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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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들은 낯선 것에 열려 있으며 상식을 뛰어넘는 직관이 있어요. 또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같은 사물을 다른 시각에서 보는 수평적 사고에 능하죠. 레어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없는 르네상스, 뉴턴이 없는 근대 과학, 마크 트웨인이 없는 미국 문학, 빌 게이츠가 없는 컴퓨터 산업, 베이브 루스가 없는 미국 야구는 상상할 수 없으니까요.
왼손잡이를 강제로 오른손잡이로 교정하면 폭력적이 될 수도 있죠.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다빈치, 나폴레옹 같은 천재들처럼요.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