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6. 8. 31. 08:04

 

<그날들>

 

일시 : 2016.08.25. ~ 2016.11.03.

장소 :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대본. 연출 : 장유정

편곡, 음악감독 : 장소용

안무감독 : 신선호

무술감독 : 서정주

출연 : 유준상, 이건명, 민영기, 오만석 (차정학) / 지창욱, 오종혁, 이홍기, 손승원 (박무영)

        김지현, 신고은 (그녀) / 서현철, 이정열 (운영관) / 김산호최지호 (대식) / 박정표, 정순원 (상구)

        이진희, 이봉련 (사서), 송상은, 이지민 (하나) / 문희라(수지) 외

제작 : (주)인사이트 엔터테인먼트 

 

어렸을 때는 김광석의 노래가 그다지 감흥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어선지 지금은 하루 종일 김광석 노래를 듣고 있는 때가 많다.

들을때마다 새삼 좋은 노래가 정말 많구나 싶다.

그런 노래들이 있다.

시간이 들수록 더 친숙해지고, 다정해지고, 빈 여백의 감성까지 이해되는 그런 노래.

김광석의 노래들이 딱 그렇다.

그래서 그의 노래들은 마치 나와 같은 속도로 나이를 먹는 것 같다.

이 작품도 딱 그렇다.

2013년 초연보다 2015년 재연이 더 좋았고,

2015년 재연보다 지금 삼연이 더 좋다.

그건 테크닉적인 면에서 더 좋았다는 뜻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감성적인 측면이 좋았다는 의미다.

이 작품을 남다르게 생각하는 초연배우들의 계속되는 캐스팅도 너무 좋고

덕분에 새롭게 합류하는 배우들까지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시너지효과다 참 좋다.

작품이라는게 스토리가 물론 중요하지만

그외의 것들의 총합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걸 이 작품의 재연, 삼연을 통해 느낀다.

처음 이 작품을 봤을때

정학과 무영을 맡은 배우의 나이 차이가 너무 심해서 사실 불만이었는데

삼연을 보고서야  의도된 캐스팅이었다는걸 이해했다.

왜냐하면 무영은 계속 과거 속에 남아있어야만 했으니까...

 

오만석의 부친상으로 차정학이 이건명으로 변경됐는데

이건명과 지창욱의 합는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일단 작품 전체를 끌고 가는 이건명의 힘이 너무 좋았고 노래 부를 때 강약 조절도 참 좋았다.

(특히 1막 엔딩곡 "그날들"은 감정의 변화가 정말 좋더라) 

오랫만에 무대에 복귀한 지창욱은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고

그런 만큼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해 참 예쁘더라.

사담이긴한데,

경호원으로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2013년과는 엄청나게 달라진 지창욱의 어깨와 팔근육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

(그때는 여리여리한 소년의 느낌이 남아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상남자더라) 

회차가 많은건 아니지만 삼연까지 참여해줘서 다행이고

그걸 내가 봐서 또 다행이구나 생각했다.

지금은 중국에서도 엄청난 사랑을 받는 한류스타가 됐지만 

2010년도만 해도 신촌 STAGE에서 강하늘과 뮤지컬 <쓰릴미>를 할 때 "애기페어"로 불렸었다.

그랬던 두 사람인데,

불과 6년 만에 배우로서 굳건하게 자리잡은걸보니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때도 저 두 배우는 잘 되겠구나 싶었는데...

 

정말 무럭무걱 잘 커줬서 기쁘다.

지창욱도,

뮤지컬 <그날들>도,

그리고 내 마음 속 김광석도.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11. 6. 07:46

<그날들>

일시 : 2014.10.21. ~ 2015.01.18.

장소 : 대학로뮤지컬센터 대극장

대본. 연출 : 장유정

음악감독 : 장소용

안무감독 : 신선호

무술감독 : 서정주

출연 : 유준상, 강태을, 이건명, 최재웅 (차정학)

        김승대, 지창욱, 오종혁, 규현 (박무영)

        김지현, 신다은 (그녀) / 서현철, 이정열 (운영관)

        김산호, 최지호 (대식) / 박정표, 정순원(상구)

        김소진, 이진희 (사서), 송상은, 이다연 외

제작 : (주)인사이트 엔터테인먼트 

 

재연으로 올라온 <그날들>을 봤다.

역시나 김광석의 노래는... 정말 좋구나.

여러가지 뒤숭숭한 일들이 겹쳐서 내내 심난하고 아팠는데

김광석의 노래로 조금 위로를 받았다.

명곡이라는게 이런거구나...

사람을 조용히 위로하고 다독이는 함이 있다.

작품의 완성도와 배우들의 열연을 떠나 그냥 노래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담겼다.

김광석은 이 노래들을 이곳에 그대로 남겨놓고 어떻게 떠날 수 있었을까?

참 나쁜 사람이다...

 

초연에 강태을 차정학이 너무 좋아서 재연이 올라오면 꼭 강태을로 보리라 생각했었다.

(이 작품으로 강태을과 정말 극적인 화해도 했고...)

그랬더랬는데 재연의 강태을 정학은...

이럴수가...

초연때보다도 훨씬 더 좋더라.

매장면마다 배우로서 행복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고

그래서 보는 나도 내내 행복했다.

배우가 작품과 역할에 깊은 애정과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강태을을 보면서 확실히 알았다.

(진심으로 멋졌다!)

김승대 무영은 좋은 작품에 최선을 다하려는 간절함이 살짝 의욕과다로 표현되더라.

전체적으로 조증처럼 붕 떠있어 발란스도 어긋났다.

균형감도 살짝 무너지고...

현실감없는 "픽션"의 인물처럼 느껴지더라.

개인적으론 배우 김승대가 조금 덜 열심히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훨씬 자연스러울것 같아서...

(이 표현 이해가 될까???)

 

전체적으로 초연때보다 군무도 좋아졌고 무대도 잘 정돈됐다.

인트로의 영상도 깊이감과 생동감이 살아있어 좋더라.

그런데 문제는 음향!

분명 초연과 똑같은 공연장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는지 관람하는 내내 놀랐다.

12월 2일 병원에서 연말 송년회로 이 작품을 단체관람을 한다는데

그때는 음향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으면 좋겠다.

 

* <그날들>은 참 묘한 작품이다.

   작품이나 스토리 자체는 별 매력이 없는데 이상하게 자꾸 끌린다.

   이게 배우의 힘인지, 김광석의 힘인지, 그냥 정서의 끌림인건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좋아한다는게 늘 이유가 확실해야하는건 아닐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날들>을 "그냥 좋아지는" 작품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김광석도 그랬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라고... ^^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2. 5. 08:20

<December>

일시 : 2013.12.16. ~ 2014.01.29.

장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대본 : 장진

연출 : 장진 

출연 : 김준수, 박건형 (지욱) / 오소연, 김예원 (이연/화이)

        박호산, 이창용, 이충주 (훈) / 김슬기, 조연진 (여일)

        임기홍, 김대종 (성태) / 송영창, 조원희 (아버지) / 홍륜희 외

제작 : (재)세종문화회관, NEW

 

12월 초반에 본 이 작품을 다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혹평에 장진 감독도 엄청난 자괴감을 느꼈겠지만 어찌됐든 이 작품은 성공적인 작품은 아니다.

그런데 공연 중에 피드백을 하면서 계속 수정을 했단다.

드라마틱한 변화가 기대하기엔 베이스부터 심각한 문제가 있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수정을 헸다는 말에 재관람을 선택했다. 

박호산이 김광석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지도 궁금했고,.

그랬더랬는데...

수정을 거듭했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은 참 견디기 힘든 작품이다.

여전히 난잡하고 산만하고 수다스럽다.

보는 내내 민망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

장진식 유머는 연극에서는 모르지만 뮤지컬에서는 정말 아니다.

이런 쓸데없는 유머코드만 줄어도 런닝타임이 확 줄어들겠다.

"난 알아요" 가사로 되도 않는 말장난을 하는 거 군인들,

개를 끌고 다니며 "점프"를 외치는 억지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도,

사투리리 쓰는 서울 아이나 페라로로쉐 초콜렛, 아저씨 운운하면서 원빈을 들먹이는 것도, 공연장의 좌석찾는 장면도

참 참기 힘든 유머다.

이런 식의 유머... 개인적으론 관객 모독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장진 작품에 매번 나오는 불멸의 여주인공 이름 "유화이"도 뮤지컬에서까지 만나니 어쩐지 식상하고!

성태의 장면들은 전부 없애버렸으면 좋겠다.

그 좋은 "서른 즈음에"를 이렇게 싹뚝 잘라내버리다니...

여전히 보고 난 후에 기억에 남는 노래가 없다.

이럴 수 있나?

김광석 노랜데...

이 작품을 보면서 <그날들>이나 <광화문연가>가 아주 괜찮은 주크박스 뮤지컬이었구나 뒤늦게 감탄했다.

새로 추가된 편지 장면과 훈 아버지 요양소 장면은 그 장면 자체로는 나쁘지 않았는데

앞뒤 연결되는 부분들이 영 매끄럽지 않다.

왠지 급하게 짜맞추려고 했던 의도가 여실하게 보여서...

요양소에서 훈과 아버지가 나뉜 대화가 참 좋던데

장면 자체가 은근히 묻혀버려서 효과적으로 살지 못했다.

송영창의 담담하면서도 쓸쓸한 대사톤도 참 좋았는데 아쉽다.

...... 없어진걸 찾는게 죄냐? ...... 너희한테서 사라졌다고 모두에게서 사라지는거 아니다. 시간이 오래 되었다고 기억에서 멀어져간다고 다 잊혀지는 거 아니다. 난 잊을 수가 없는데... 내 눈앞에 보이고, 내 손끝에 만져지는데 왜 잊으라고만 하냐? 난 잊을 수가 없는데......

김준수와 박호산이 친구로 나오는건 연기래도 참 민망하더라.

그리고 무엇보다 그저 병풍에 불과했던 훈의 캐릭터는 안습이었고...

(참 초라하고 의미없더라.)

 

그냥 다시 보지 말 걸 그랬다.

이렇게 또 다시 실망하고나니 더 막막하고 답답해졌다.

솔직히 이 작품 개인적으론 다시 올라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두루두루 못할 짓이다.

관객에게도, 배우에게도, 김광석에게도!

 

비어있는 객석을 보면서

장진의 발연출은 김준수의 인기보다 훨씬 더 강력했음을 알았다.

JYJ 준수만으로도 안되는 게 있다는 거,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2. 19. 08:38

<December>

일시 : 2013.12.16. ~ 2014.01.29.

장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대본 : 장진

연출 : 장진 

출연 : 김준수, 박건형 (지욱) / 오소연, 김예원 (이연/화이)

        박호산, 이창용, 이충주 (훈) / 김슬기, 조연진 (여일)

        임기홍, 김대종 (성태) / 송영창, 조원희 (아버지) / 홍륜희 외

제작 : (재)세종문화회관, NEW

 

원래 나는 티켓예매처에 후기나 이벤트 같은거 쓰는 타입이 전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작정하고 인터파크에 폭풍 후기를 남겼다.

이 작품...

정말 어마어마하다.

올해 최대의 문제작이자 대재앙이다.

솔직히 처음부터 기대라는 걸 안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다.

산만과 저급, 조잡과 추례함의 총재적 난국이다.

이쯤되면 이건 쓰나미급 재앙이다.

도대체 이 따위로 만든 작품을 당당히 무대에 올린 몰염치는 어디서부터 비롯된걸까?

장진의 자만심과 허영심?

아니면 김준수 등에 옆혀 가려는 안일함?

물론 아무리 관람평이 형편없어도 끝까지 티켓을 불니나게 팔릴거고 손익분기점도 당연히 넘길거다.

내용과 상관없이 우리 오퐈가 나오니까 무조건 봐줘야 하는 김준수 팬의 수는 또 어마무지하니까.

(이 대목에서 더블인 박건영이 상당히, 심각하게 걱정된다.)

김광석 탄생 50주년 기념작이라는데

진심으로 김광석에서 미안했다.

몰랐다.

김광석의 노래를 이렇게 저급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3시간이 넘는 런닝타임은(1막 90분에 인터미션 20분, 2막 80분) 그야말로 고문이었다.

눈을 감고 귀를 막어버린 장면들이 어찌나 많았는지...

제발 생각 좀 하고 만들지 어쩌자고 이 지경으로 작품을 만들어서 무대에 올렸을까?

개인적으로 김준수 팬도 아니지만 김준수 아니면 어쩌려고 했는지 답이 전혀 안 나온다.
스토리, 무대, 셋트, 조명... 다 심하다.
B급 유머도 아니고 중간중간 개그도 아니고 슬램스틱도 아닌 것들의 난발...
이게 장진식 유머라고?
그거 전혀 안 통한다.

왠만하면 내 돈 내고 본 공연 나쁜 소리 정말 안하는데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 공연을 난생 처음이다.
솔직히 배경도 90년대는 정말 아니지 않나?

(나 90년대에 대학 다녔다. 과가 다르긴 했지만 심지어 장진이랑 같이 다녔다.)

새마을 운동 하던 때도 아니고...
<고스트>에 <아이다>에, <번지점프를 하다>에 여기저기 이미지 짜집기한 거 너무 티나고
그나마 김광석 노래를 한 곡이라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면 참겠는데 그것도 아니다.

뭘 그렇게 이것 저것 섞어놨는지...
김광석 노래로 콜라보레이션이라도 하려 했던 건가?

결국엔 "디셈버" 외에는 단 한 곡도 기억에 남는 노래가 없다.
그 와중에 배우들은 연기를 제대로 해서 더 황당했고 진심으로 배우들이 불쌍했다.
이런 발연출을 연기로 커버하느라고 무지 애들을 쓰더라.

차리리 김준수 한 사람 세워놓고 김광석 헌정공연을 했더라면 갈채를 보냈을텐데...

전광판에 곡제목과 연도를 보여주는 것도 황당했다.

어차피 우리 오퐈를 보러 온 팬들은 그 곡이 무슨 곡인지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을거고

김광석 팬들은 이미 제목뿐만 아니라 가사까지도 다 알텐데 쓸데없는데 친절했다.

거기에 신경 쓸 시간에 발연출을 해결을 하시지...

중간중간 이 전광판이 꽤 신경쓰이게 하더라.

<그날들>을 보면서도 좀 아쉬웠는데 이 작품(이걸 작품이라고 해도 되나???)을 보고 나니

<그날들>은 정말 엄청난 완성도를 보여준거다.

3시간 넘게 앉아 있다 나오니 심신이 완전이 녹초가 되버렸라.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정말 답이 없다.

재앙도 이런 재앙이 없다.

 

김준수!

난 당신 팬은 아니지만 정말 애썼다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아마 다른 배우가 했다면  관객들 원성으로 불미스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겠다.

더불에 이 작품을 고사한 남자 뮤배들(류정한, 임태경, 홍광호)은 아주 현명한 선택을 한거다.

20대의 김준수가 40대를 연기하는 모습을 되다니....

(<천국의 계단>에서는 분장이라도 했지!)

게다가 40대의 뮤지컬 연출가와 20대 여배우가 사랑이라니...

이건 뭐 장진의 개인적인 로망인가????

안티를 부르는 소리긴 하겠지만

김준수는 장진 감독때문에 그야말로 제대로 똥밟았다.

장진은 정말 김준수에게 두고두고 미안해 해야겠다!

(나 개인적으로 장진 영화 매니아다...)

 

장진 감독님!

다시는 창작뮤지컬에 직접 연출하겠다는 생각 버리시고
제발 부탁이니 영화나 연극 연출에 전념하세요.
아니면 뮤지컬에 대해 기본부터 충실히 공부를 하시던가요.
본인의 연출력에 너무 자만하셨네요.
아무 많이, 대책없이 무례하셨습니다.
본인도 눈과 귀가 있다면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아시겠죠.
제가 다 부끄러워 몸둘 곳이 없네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6. 5. 08:33

<그날들>

일시 : 2013.04.04. ~ 2013.06.30.

장소 : 대학로뮤지컬센터대극장

대본. 연출 : 장유정

음악감독 : 장소용

안무 : 정도영

출연 : 유준상, 오만석, 강태을 (차정학)

        최재웅, 지창욱, 오종혁 (박무영)

        방진의, 김정화 (그녀) / 서현철, 이정열 (운영관)

        김산호, 김대현 (대식) / 박정표, 정순원(상구)

        송상은, 이다연 외

제작 : (주)인사이트 엔터테인먼트, (주)이다엔터테인먼트

 

나는 강태을의 차정학을 볼 마음이 전혀 없었다.

참 미안한 말이지만 강태을은 무슨 작품이 됐든 캐스팅이 올라올 때마다 내겐 피해 가야 하는 배우 중 한 명이었다.

<돈주앙>, <어쌔신>, <렌트>에서 연타로 실망을 해서 그런지

좀처럼 믿고 볼 수 없는 그런 배우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인터파크 씨크릿 티켓 담첨 날짜의 차정학이 강태을이라는 걸 알았을땐 맨붕모드였다.

솔직히 그냥 날려버릴까도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강태을과 최재웅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됐다.

"1년 내내 <그날들>만 했으면 좋겠다"

강태을의 말이 마음을 당겼다.

그래서 관람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이 인터뷰 기사를 안 봤다면? 아마도 관람을 안 했을거다!)

만약 이 작품에서까지 강태을에게 실망하게 된다면?

앞으로 그가 출연하는 작품은 결단코 보지 않겠노라 비장한 작정까지 했다.

 

그렇게 만난 강태을의 차정학은!

지금껏 내가 본 강태을 작품 중 단연코 최고였다.

1년 내내 이 작품만 하고 싶다는 강태을의 말은 정말 사실이었다.

개인적으로 엄청난 충격이었고 뜻밖의 반전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강태을을 배우로 보기로 작정했다.

그날 무대 위에는 강태을이 아닌 경호부장 차정학이 서있었다.

결코 쉽지 않은 배역이었을텐데

과거의 정학도, 현재의 정학도 너무나 정확히, 그리고 명료히 잘 표현했다.

천진하면서도 순수한 과거의 정학,

20년 전 "그날"의 일들로 냉철한 원칙주의자로 변한 현재의 정학.

강태을은 목소리와 얼굴 표정, 액팅까지 완전히 다르게 표현했다.

마치 둘이면서 동시에 한 명인 사람을 보는 것 같다.

다르면서도 일관된 모습.

강태을은 차정학이라는 인물이 갖는 이 모든 혼란과 미묘한 차이를 아주 멋지게 자기 것으로 표현했다.

심지어 보여지는 비쥬얼도 완벽한 경호원의 그것이었다.

배우 강태을은,

이 작품과 깊은 사랑에 빠졌나보다!

무대 위 강태을의 표정 속에 이 모든 진실이 전부 담겨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목격했다.

배우로서 그는 진심으로 멋졌다.

덕분에 나는 이 작품을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었다.

그가 부르는 "그날들"과 "이등병의 편지", "꽃"은 정말이지 너무나 좋았다.

첫번째 관람에서는 "이등병의 편지"가 좀 생뚱맞는 선곡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관람에서는 이 곡이 왜 들어갔는지 이해됐다.

1막 도입부도 느낌이 너무 좋았고!

 

4월 6일 첫날 저녁 공연을 보면서는 어딘지 정돈되지 못하고 어수선하다는 느낌이 많았는데

중반 이후를 넘어서니 확실히 작품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국수발같은 무대는 여전히 가벼워보이긴 하지만 무대 영상은 보완이 된 것 같다.

최재웅의 박무영은 역시나 좋았고

방진이는 목소리에 피로감이 묻어난다.

다행히 이런 피로감이 어떤 장면에서는 프러스 효과를 발휘했다.

운영관은 예상한대로 서현철이 이정열보다 훨씬 좋았지만

이정열이 부르는 "서른 즈음에는" 꽤 뭉클했다.

과거와 현재를 둘 다 깊게 생각케 만드는 노래였고 음색이었다.

그리고 2막 마지막 곡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도

이정열이 더 웅장하게 감동적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처음에 봤을 때는 경호원들의 군무에서 힘이 안 느껴졌는데

다시 보니 꽤 잘 만들어진 절도있는 군무였다.

확실히 2층은 1층보다 무대와 조명, 배우들의 움직임을 이해하기가 훨씬 더 좋다.

 

고김광석의 노래로 대형창작뮤지컬이 만들어진다고 했을때

늙깍이로 한창 "김광석앓이"를 하고 있던 나는 정말 많이 궁금해하고 기대했더랬다.

그런데 첫날 공연을 보고는 사실 조금 실망했었다.

그런데 참 다행이다!

재관람하길 정말 잘했다.

예정에 전혀 없던 강태을 차정학을 만난 건 더 다행이다.

커튼콜에서 본 강태을의 표정은 정말이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깊고 깊은 사랑에 한창 빠져있는 사람의 표정.

그의 모습이 그랬다.

너무나 흠뻑 빠져 있어서 솔직히 질투가 날 정도였다.

배우 강태을은 참 좋겠다!

이렇게 마음을 아낌없이 온통 다 준 작품을 만날 수 있어서...

그리고 나도 참 다행이다.

이제부터 그의 다음 작품을 기꺼이 기다릴 수 있게 돼서!

아무래도 뮤지컬 <그날들>이

나와 그에게 잊지못할 "그날"이 된 모양이다.

참 다행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4. 10. 08:17

<그날들>

일시 : 2013.04.04. ~ 2013.06.30.

장소 : 대학로뮤지컬센터대극장

대본. 연출 : 장유정

음악감독 : 장소용

안무 : 정도영

출연 : 유준상, 오만석, 강태을 (차정학)

        최재웅, 지창욱, 오종혁 (박무영)

        방진의, 김정화 (그녀) / 서현철, 이정열 (운영관)

        김산호, 김대현 (대식) / 박정표, 정순원(상구)

        송상은, 이다연 외

제작 : (주)인사이트 엔터테인먼트, (주)이다엔터테인먼트

 

故김광석의 노래로 주크박스 뮤지컬을 만든다는 소식은 꽤 오래전부터 들렸다.

그닥 진전이 없어서 엎어진건가 생각했는데 그야말로 화려한 캐스팅이 공개돼 깜짝 놀랐다.

게다가 제작발표회와 연습실 영상까지 인상적이어서 기대치가 점점 상승됐다.

편곡된 몇 곡의 노래들은 드라마틱할 정도로 웅장했다.

통키타와 하모니카 반주가 거의 전부였던 김광석의 노래가 웅장할 수 있다니...

혼자 신기해하기까기 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일까?

공연 날짜는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건물주와 건설시공사와의 다툼으로 개막이 불투명하다는 기사를 봤다.

공연제작사는 4월 4일 개막일을 사흘 앞둔 1일 건설사를 상대로 공연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배우들은 공연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외부 연습실에 있는 상황이고

장유정 연출과 공연장에 남아 있던 스텝만이 배우없는 테그니컬 리허설을 진행 중이라는 소식도 들었다.

어쨌든 관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기만을 바랐는데

다행히 예정대로 공연이 올려졌다.

 

아직 정돈되지 않은 대학로뮤지컬센터 대극장은 입구와 로비 모두 흉흉했다.

티켓박스는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캐스팅 보드도 간신이 설치된 정도다.

어째 점점 불안해진다.

공연장 앉아서 제일 먼저 본 건 국수발 같은 무대.

사실 좀 난감했다.

내가 혼자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다.

어쩌면 내가 김광석의 노래에 너무 집중하고 있던 건 아닐까?

(요 몇 년 사이에 뒤늦게 김광석앓이를 심하게 하는 중이라서...)

그래도 내가 선택한 캐스팅은 역시나 믿음이 갔다.

오만석, 최재웅, 방진의, 서현철.

이들이라면 기본 이상은 분명히 해줄테니까!

 

故김광석이 부른 이 모든 곡들은 역시나 엄청나다.

속직히 고백하면,

이런 류의 신파를 기대했던 건 아닌데

원곡의 힘이 워낙 짱짱해서인지 스토리의 취약함이 어느 정도 감춰진다.

특히 1막 "변해가네'에서 "나무"로 이어지는 도입 부분은 정말 좋다.

편곡도 좋았고,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연출도 돋보였다.

차정학의 안경은 그런 의미에서 작지만 꽤 괜찮은 설정이다.

일부러 코믹한 요소를 많이 넣은 것 같은데

그래선지  전체적으로 가볍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도 다행스러운건,

워낙에 진지하게 연기하는 오만석, 최재웅인지라 그 가벼움이 살짝 상쇄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른 배우 조합은 좀 위험스럽지 않나 싶다.

차정학과 박무영으로 캐스팅된 배우들의 연령대 간극이 일단 너무 크다.

(정학을 맡은 배우들이 워낙에 하늘 같은 선배들이라 아무래도 동료의 느낌을 갖기가 좀...)

홍보때문이긴 하지만  TV에서 코믹 요소를 앞세우는 유준상 배우도 갑정이입이 살짝 걱정스럽다.

(배우 입장에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관객입장에서!)

 

과거의 남자 최재웅과 현재의 남자 오만석의 듀엣은 첫 곡부터 발란스가 참 좋다.

마지막 장면에서 정학이 무혁에게 "내가 너무 늦게 왔지?"라고 말하는 장면은

<번지점프를 하다>가 떠오르는 작은 참사가 발생했다.

단지 이 대사 한 마디 때문에 둘의 관계에 동성애적인 뉘앙스가 강력하게 풍기고 말았다.

(도대체 왜 그런 무모한 연출을???) 

2막 첫곡 "부치지않은 편지"에서 서현철의 목소리톤은 환상적이었다.

그런 배우가 있다.

노래실력이 좋은건 아니지만 장면이나 넘버의 분위기에 아주 딱 맞게 노래하는 그런 배우.

배우 서현철은 확실히 그런 쪽이다.

코믹할 때는 코믹하게, 진중할 때는 또 진중하게 설정과 표현을 잘한다.

아마도 운영관 역은 이정열보다 서현철이 훨씬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그녀 역의 방진의는 표정이 인공적인 걸 빼면 전체적으로 배역에 잘 어울린다.

(그런데 왜 이 배우의 표정은 점점 더 인공적으로 변할까?)

 

제일 큰 아쉬움은,

배우들이나 넘버에 비하면 스토리와 무대가 너무 엉성하다.

음향이나 마이크 사고는 공연장에 적응할 시간이 부족해서라고 넘길 수는 있겠는데

스토리는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

특히나 1막은 너무 산만하고 가볍다.

1막과 2막의 무게중심이 지나치게 기우뚱하고

노래에 억지로 끼워맞춘듯한 장면들도 눈에 보인다.

대형 국수공장을 연상케하는 전체 무대와

"천국의 계단"에서 들락날락하며 내게 트라우마를 안긴 "문짝"을 떠올리게 하는 무대 셋팅도 좀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무대에 띄우는 영상은 그야말로 폭격의 수준이다.

뭐랄까, 성의없이 툭툭 내뱉는 말투같다고나 할까?

게다가 늘어진 국수발때문에 그 영상들조차도 뚝뚝 끊겨보여 마치 초보 칼잡이의 성긴 칼질을 보는 느낌이다.

그래선지 일부러 눈을 감고 노래만 듣기도 했었다.

몇몇 장면에서는 확실히 이 감상법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안무도 전체적으로 아쉽다.

사건과 인물의 중심이 청와대 경호원이라는 걸 생각하면

훨씬 더 남성적이고 강렬했으면 좋았겠다.

(가령 얼마전에 공연된 <프라미스>의 전쟁장면 군무처럼)

 

이렇게 주절주절 쓰는 걸 보니

내가 확실히 이 작품에 애정과 기대가 많은 것 같다.

물론 아쉬움만 있는 건 절대 아니다.

전체적으로 대사도 너무 좋았고 편곡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노래 한 곡으로 현재와 과거의 시간을 넘나드는 연출도,

같은 곡을 같은 배우가 불러도 장면의 느낌에 따라 표현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도 특별했다.

"꽃'과 "내 사랑이여"를 연결시킨 건 정말 기가 막혔고

"먼지가 되어"는 앞부분은 과거의 무혁이, 뒷부분은 현재의 정학이 부르는데

시간과 공간, 거리와 깊이가 순간적으로 완전히 옮겨져 들으면서도 많이 놀랐었다.

출연하는 배우들은 우여곡절을 겪어서 그런지

주조연, 앙상블을 막론하고 호흡도 좋고 집중력도 엄청나다.

(이 작품은 정말 배우 잘 만났다!)

 

아직 시작이라 후한 점수를 주긴 솔직히 힘들지만

희망적인 작품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6월말까지 공연기간동안 배우와 스텝들이 잘 다듬어 가리라 믿는다.

원곡과 배우가 갖는 근원적인 힘!

그걸 믿게 하는 작품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12. 2. 8. 05:47
큰 일이다.
김광석의 노래가 좋아졌다.
지금까지 그의 노래가 아름답다거나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의 노래를 끝까지 들어본 적도 거의 없었다.
혹시나 서른 즈음엔 좋아질까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같은 어둠이라도 조규찬의 따뜻하게 빛나는 어둠이 오히려 숨기엔 편하다고 생각했다.
조규찬은 어둡지만 확실히 따뜻했다.
그러나 김광석은 어둠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피로했다.
불면증이 있음에 분명한 그의 퀭한 눈과 몸피가 내내 거슬렸다.
허허거리는 그의 노곤한 웃음이 불편했다.
그는 항상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었다.
그랬었는데... 그랬었는데...
덜컥 김광석이 좋아졌다.
그의 불면은...
그리움 많은 외로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부럽다.
그러나 김광석과는 반대로 그리움 없는 외로움을 가진 사람은
메말라 쩍쩍 갈라져 급기야 성마르고 사나워졌다.
결국 살아있는 좀비가 되버렸다.
공포다.



어느날 김광석이 자신의 콘서트에서 말했다.
후배가 책을 한 권 줬는데 그 책에 이런 그림이 있었노라고.
조그만 와인잔을 깨고 위로 튀어오르는 붕어 한 마리.
김광석은 자기를 가둔 틀을 깨고 나오는 그 붕어가 너무나 부러웠단다.
"붕어가 부러워요.
 계속 부러워하다보면 어떨게 될지 모르겠네요.
 붕어가 부러워요"
김광석은 진심으로 붕어가 부러웠었나보다.
그런데 지금 누군가는
뭔가를 부러워한 그가 또 질투나게 부럽다.
자야한다... 자야한다...
반복되는 주문은 올가미가 되어 목을 칭칭 감는다.
또 다른 폭력이 지친 몸을 향해 무차별 린치를 가한다.
저절로 무릎이 꺽인다.
그러나 기어이 눈은 감겨지지 않는다.
머릿속의 불은 점점 더 밝아진다.
잠이란 게...
이렇게 잔혹할 수도 있구나!



대구에 한 번 가야겠다.
방천시장에 있는 김광석 거리.
그의 얼굴을 보면서 묻고 싶다.
이젠 붕어가 부럽지 않느냐고...

..........................

뒤늦게,
김광석 노래가 좋아졌다.
이를 어쩌나...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2. 21. 05:55
 <천만 개의 사람꽃> - 임종진


천만 개의 사람꽃 


사진작가 임종진.

전 이 사람을 김광석이라는, 10여년에 훌쩍 세상과의 이별을 선택한 통기타 가수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2008년 2월에 나온 <김광석 그가 그리운 날에>라는 책이 바로 그 인연이죠.

“한겨레신문”의 사진기자로 오랫동안 일했던 임종진은 떠나버린 김광석을 그리워하며 짧았지만 여운 깊었던 그와의 만남과 함께 나눴던 생각, 마음의 교감들을 이 책을 통해 고백했었습니다. 십여 년 동안 혼자 간직했던 생전의 젊고 다정했던 김광석의 모습들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죠.

서른의 대표곡이 된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

이미 그 나이를 한참 전에 넘겨버린 저는,

20대엔 절대 공감하지 못했던 이 노래가 지금은 가끔 내 지난 모습의 반추처럼 느껴집니다.

김광석이란 가수의 목소리에 달라붙어있던 그리움과 아련함의 깊이를 이해하기엔 20대의 시간은 아무래도 너무 활기찼겠죠.

사람들로부터 떠나 버린 가수 김광석, 그리고 사람들에게로 늘 떠나는 사진작가 임종진.

그 두 사람은 공통점은 그러나 “그리움”이었습니다.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상에 여전히 구식 필름 사진을 고집하는 사진작가 임종진.

그는 “달팽이 사진작가”라는 별명을 자랑스러워하는 온기 가득한 사람입니다.

그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 아프고 다정한 사람들의 모습에 울고 웃고 희망을 걸게 됩니다.

사진을 찍는 이유...

어설프지만 저 역시도 사진 속에 담기는 멈춤에 넋을 잃는 사람이기도 하죠.

아직 내공이 부족하기에 제 카메라 앵클의 시선은 여전히 풍경입니다. 사람을 그 모습 그대로 담아낸다는 게 아직까지는 영 자신이 없기 때문이죠. 더 오래, 더 많은 시간이 지난다면 가능한 일이 될까요?

6차례 방북 취재로 김정일 최고위원장에게 “남녘 사진작가”라는 별칭까지 받기도 했고, 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이라크 그 화염의 도시 속을 다니다 민병대에 스파이로 오인돼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번번이 그를 살렸던 건 한 장의 사진에서 비롯된 인연이었죠.

어쩌면 그의 사진 속엔 담겨있는 "생명“이 그의 생명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천만 개의 사람꽃>

2008년 가을에 출판된 이 포토 에세이집에는 인도, 캄보디아, 티베트, 네발, 이라크, 그리고 우리나라의 생명 품은 사람들이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처럼 이 책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는 희망 품은 웃음이 꽃처럼 만개해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출생부터 고통을 짊어진 아픈 생명들의 채 피워지지 못하고 꺾일 숱한 꽃들도 있죠.

품질 좋다는 이라크 석유의 최대 매장지 남부지역 바스라.

1991년 1차 걸프전 당시 퍼부은 수백만 발의 열화우라늄탄으로 이 지역의 신생아 30%는 선천성 백혈병이나 치명적인 기형 장애를 안고 세상에 태어납니다.

아기의 첫 울음으로 남자아이야 여자아이냐를 가늠하지 않고 병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늠하는 것이 일상의 모습이 되어 버린 곳. 아무런 병 없이 태어난 아이들도 대부분은 극심한 영양실조와 부족한 의약품으로 얼마간의 삶만이 허락될 뿐입니다.

그리고 어미는 아이를 맘껏 안아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지는 향기를 바라보기만 합니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어린 꽃은 만개의 소원을 피워내지 못한 채 봉오리 그대로 세상 속에 삼켜집니다.

알까요?

그 봉오리가 한 귀퉁이라도 벌어진다면 그 순결한 향기를 우리도 맡을 수 있었다는 걸...

기껏해야 평균 수명 15세.

꽃이 집니다... 꽃이 집니다...

맘껏 피지도 못한 어린 꽃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향기를 거둬갑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감히 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시선이 조용히 또 한 장의 책장을 서둘러 넘길 뿐입니다.




사람은 “추억을 기록”하기 위해, 그래서 “오래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걸까요?

사진에 담긴 멈춰진 시간 속에서 그러나 저는 움직임을 봅니다.

사람의 시선은 늘 다른 방향을 향하고 기억 또한 왜곡과 변형을 거듭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기억하는 것들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생기기도 하죠. 누구라도 결국은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담겨지는 기억...

사진은 그러니까 그 기억 속에 일부러 던져지는 모난 돌멩이와도 같습니다.

섬뜩한 파문이 일죠.

이 사진 속의 너의 기억은 온전히 사실인가?

사진이 내게 물어 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한 권의 책보다 한 장의 사진으로 더 많은 것들을 읽고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의 감각 중 가장 강력하다는 시각.

예전에 저는 본다는 것에 대해 지독히 넌더리냈던 적이 있습니다.

내 눈 앞에 보여지는 모든 것들이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냥 그대로 눈이 멀어버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사람이 되길 소원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봤던 흑백 사진집 한 권.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님의 <인간(HUMAN)>이라는 책이었죠.

그 책을 보면서 저는 내가 보는 세상에 넌더리내야 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인간에 넌더리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뭉턱뭉턱 올라오던 울음 때문에 책장을 넘기기가 얼마나 아프고 서러웠던지...



 
신문을 들고 있는 장애우는 아직까지도 신문을 들고 한 팔을 휘저으며 한 다리로 뛰고 있을 것만 같고, 아직도 저 아주머니는 생선을 벌여놓고 비닐로 비를 피하며 다음 생계를 위한 장사를 하고 있을 것만 같고, 아직도 작은 나무통 속에 아기는 조각난 군밤을 작게 오물거리며 허기를 채우고 있을 것만 같아 지금도 눈 밑이 붉어집니다.

이 책, <천만 개의 사람꽃>도 느낌은 조금 다르지만 탄피 더미 속에 앉아 있는 아이의 분노에 찬 눈빛,  붉은 막대사탕 하나를 들고 찬란한 미소를 보내는 천진한 눈빛의 아이를 보고 있으면 왠지 미안해지고 안스러워집니다.

사진은 권력이라고 했던가요?

매번 사진이 휘두르는 진실의 권력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게 되네요.

그리고 한 장 한 장 사진 옆에 적혀 있는 임종진만의 단상들도 많은 화두를 던져줍니다.

프로패셔널한 사진작가의 수줍고 단정한 글들은 일부러 꾸며 쓴 것이 아니라 비록 서툰 표현들이지만 다정하기까지 하죠.

글이라는 건 꼭 잘 써야 전달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 천사의 새치기


조금 피곤한 어느 늦은 오후였습니다.

처음엔 요 녀석에게 별 관심이 없었답니다.

그 옆에 아주 귀여운 놈이 따로 있었거든요.

가만히 지켜보면서 눈을 마주치다가

적절한 때를 봐서 한 컷 건지려고 했지요.


그래, 이제 되었구나 싶어 슬쩍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누르는 순간, 살살 눈치만 보며 기웃거리던 요 녀석이 불쑥 뛰어든 겁니다.

이때다 싶었던 거지요.

도저히 내칠 수 없는 환한 웃음을 코에 걸고 뛰어들었으니 어쩌겠습니까.

마냥 따라 웃을 수밖에요.


어딜 가나 천사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기운을 줍니다.

때론 해맑은 소녀였다가 개구쟁이 소년의 모습이기도 하고

때론 늙은 농부의 여유로움과 갓난아이의 천진스러움이기도 하고

때론 길바닥 걸인의 형상이기도 합니다.


캄보디아 씨엠립의 한 골목길에서 천사는 그렇게 나타나

지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습니다.


임종진 그가 찍은 천만 개의 사람꽃과 천만 개의 단상들을 보며 저도 함께 말했습니다.

“요놈, 요놈, 요 이쁜놈!”

어쩌면 당신도 당신의 멈춰 있는 기억 속에 조용한 움직임을 주는 한 장의 사진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닿아 꽃을 피웠을까요?

조용히 떠올리고 싶습니다.

어떤 향기를 남겼는지를......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