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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06 <남한산성> - 김훈
  2. 2009.11.02 뮤지컬 <남한산성> - 2009.11.01. PM 3:00 성남아트센터
읽고 끄적 끄적...2011. 5. 6. 06:33
<내 젊은 날의 숲>을 읽고 오래 전에 읽었었던 <남한산성>을 다시 손에 잡다.
시대도, 이야기도 전혀 다른데 왜 나는 두 이야기에서 동질감을 느꼈을까?
어쩐지 두 이야기의 태(胎)가 같은 것 같다.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꼭꼭 씹어 삼키듯 여러번 반복되는 이 문장은
이야기 속의 매서운 칼바람과 된서리보다 더 날카롭고 눈물겹다.
홀로 우는 곡(哭)같은 문장이구나.
<남한산성>은...
말의 마디마디는 서럽고 참담하고 절절하고 아득하다.


김훈도 그러지 않았을까?
이 글을 쓰면서 내내 어디 한 곳이 부러진 듯 아프고
몸의 마디마디 끝으로 더 날카롭고 예리한 칼끝을 받아내는 그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역사를 되집는 건 용기도 오만도 아닌 무거운 책임감과 참회의 심정이었으리라.
현재를 살고 있다고 과거에 책임이 없을까?
간곡하고 단단한 단문들 하나하나를
나는 보이지 않는 산을 연거푸 넘는 심정으로 읽고 또 읽었다.
매 골마다 번번히 서러웠던 건 내가 우는 곡(哭) 때문이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자는 것입니다."
거기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다시 내 발목을 잡는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힘으로 삶을 열어나가야 합니다"
이조판서 최명길이 나머지 한 발목마저 잡고 놓지 않는다.
"말이 준엄하고 가파르구나..."
인조의 말에 그만 덜컥 주저앉고 일어서지 못한다.
남한산성에 있었던 그들 뿐만이 아니었구나.
김훈은 남한산성안으로 나를 옮겨놓고 힘들게 한다.
어쩌자고 나를 이 속으로 밀어넣었나....


갇힌 성 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커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신생의 길은 죽음 속으로 뻗어 있었다. 임금은 서문으로 나와서 삼전도에서 투항했다. 길은 땅 위로 뻗어 있으므로 나는 삼전도로 가는 임금의 발걸음을 연민하지 않는다.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


인조는 결국 성을 나왔다.
그리고 칸 앞에 무릎을 꿇고 치욕의 삼배를 올렸다.
칸은 청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선의 세자와 빈궁들을 볼모로 끌고갔다.
성을 나왔지만 항복했지만
인조는 또 다시 더 큰 성 안에 갇히고 말았다.
스스로 강자의 적이 되는 처연하고 강개한 자리에서
돌연 아무런 적대행위도 하지 않는 적막은...
치욕을 견디는 것보다 더 무겁고 치명적이다.
한 번도 역사 속의 인조를 가엾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인조는
서럽고 서러워서 자주 목에 매인다.
할 수만 있다면 칸 앞에 무릎꿇은 그를 일으켜세워
그 자리를 모면케 하고 싶다.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다..."

역사는...
참 잔인하게도 준엄하구나...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11. 2. 05:45
궁금하긴 했다.
김훈의 동명소설 <남한산성>이 창작뮤지컬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쉽게 만들어지기 힘든 작품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배경이며, 대사며, 심난한 독백같은 모든 느낌을 전달한다는 게
책의 표현데로 가파르지 않을까 우려했다.
오래 고민을 하다 겨우 공연이 끝 무렵에 결국 찾아 봤다.
지금은 내 심정은...
다행이구나 싶다.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서...



묘하게도 나와는 항상 인연이 없던 배우였던.
김수용, 성기윤, 손광업, 배혜선
드디어 이 모든 사람들을 한 작품 속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들은 명성만큼이나
무대 위에서 꽤 인상적인 그리고 꽤 괜찮은 모습을 남겨줬다.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모습엔 어딘지 묘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느껴진다.
특히 초연의 무대일 경우에는 더욱 더.
어쩌면 그들의 역량에 따라 이 초연의 무대가
초연이자 막공이 될 수도 있다는 절박함을 품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영웅>과 <남한산성>
지금 공연되고 있는 두 개의 대형 창작 뮤지컬은
그래서 기특하면서 동시에 절박하다.
그리고 그 양면성은 무대 위에서 그대로 긍정적인 적나라함으로 드러난다.



원작 김훈, 극본 고선웅, 연출 조광화
꽤 괜찮은 아니 상당히 괜찮은 조합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후 고선웅, 조광화 
두 사람의 멋진 콤비네이션을 다시 한 번 보게 되다.
그리고 의상과 무대...
전체적으로 대나무를 무대 배경으로 삼아 묘한 신비감을 준다.
텅 빈 대나무의 옹골찬 꼿꼿함과 수직성.
결국은 모든 이의 마음이었으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조(성기윤)의 마음.
청과의 화친으로 살 길을 도모하자는 최명길(강신일)의 마음.
청과의 무력 충돌로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김상헌(손광업)의 마음.
자신을 버린 조국을 똑같이 배반하고 청의 길라잡이가 되어버린 정명수(이정열)의 마음.
청을 찾아가 화친의 편지를 전하고 목숨을 버리는 오달제(김수용)의 마음.
그 모든 대쪽같은 마음들이 산성을 만들어 머무르게 했을 거라고...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이 모순된 명제 앞에 누구들 절박하지 않을까...
"당면한 문제를 당면할 뿐"이라 했던가...



청의 황제 홍타이지(서범석)의 등장의 웅장함과 섬뜩함은
내리는 눈을 맞으로 초라하게 남한산성으로 피접하는 인조와의 운명과 대비된다.
눈발 속에서 인조의 음성은...
날리는 눈처럼 분분했고 심난했고 아득했다.
"그것이 왕이 결정한 일이더냐?"
그 짧은 말 속에는 힘 없는 왕의 어쩔 수 없는 무력감과
최후의 결정에 대한 절망감이 묻어 있다.
청의 황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인조의 모습.
어쩌면 그 고개를 다시는 들고 싶지 않았으리라.
땅의 찬 기운과 함께 차라리 사늘히 굳어지길 바라지 않았을까?
서러운 기운에 내 몸까지도 가늘게 떨린다.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이 여기까지 왔구나...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된다.
<영웅>도 그렇고 <남한산성>도 그렇고...
특히 <남한산성>의 무대와 음악은 참 많은 걸 느끼게 한다.
더 좋은 작품으로 진화되길 지금 초연의 무대를 보면서
희망하게 됐다.
주연같은 열정의 앙상블까지...
그들 한명 한명에게 아름다웠다 말해주고 싶다.
당신들이 모두가 쌓은 견고한 <남한산성>은
사실은 극의 결말과는 다르게
몹시 아름다웠노라고 말해주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