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10. 2. 08:04

<고곤의 선물>

일시 : 2014.09.18. ~ 2014.10.05.

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극본 : 피터 쉐퍼 ( Peter Shaffer)

연출 : 구태환

출연 : 박상원, 김태훈 (에드워드 딤슨) / 김소희 (헬렌 딤슨)

        김신기 (필립 딤슨), 이봉규, 고인배 외  

제작 : 극단 실험극장

 

연극 <고곤의 선물>

하마터면 이 엄청난 작품을 못보고 지나칠뻔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연극이란 장르에 빠지게 된 건,

피터 쉐퍼의 <에쿠우스> 때문이었다.

신화와 성서적인 뉘앙스가 강했던 <에쿠우스>는 문외한인 내 눈에도 신비하고, 오묘했으며, 너무 아름다워서 비장하기까지 했었다.

<에쿠우스>라는 단 한 작품만으로 나는 피터 쉐퍼를 천재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이 연극 <고곤의 선물>로 피터 쉐퍼에게 완벽하게 무릎을 꿇었다.

나의 굴복은 아주 정당하고, 아주 깔끔하고, 아주 명확해서 오히려 감사함이 느껴질 정도다.

보는 내내 그랬다.

"이건 정말이지 미친 작품이다....!"

솔직히 나는 이 작품에 대한 어떠한 코멘트도 감히 쓰질 못하겠다.

그럴 깜냥도 못되지만 그러고 싶다는 생각조차 안든다.

내가 뭐라 끄적인다면 그건 불경죄(不敬罪)을 범하는 꼴이 되겠다.

 

신화보다 더 신화같은 이야기.

모든 암시와 복선은 너무 치밀하고 완벽해서 차라리 거짓말 같았다.

이제 어쩌면 좋을까!

고곤으 눈을 정면으로 봐버렸으니...

온 몸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리는건 시간문제다.

고곤을 가진 자도,

고곤을 마주한 자도,

고곤이... 된다...

 

헬렌 딤슨이 필립 딤슨에게 한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이제 현실이 될거예요, 당신에게 현실이 되서 다가올거예요!"

페르세우스와 아레나가,

에드워드와 헬렌이 되어 나에게 걸어온다.

복수와 심판.

그 진부한 고대의 원형은 지치지도 않고 전승되고 또 전승된다.

모든 이야기는, 모든 역사는, 모든 비극은, 모든 용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여기에서 이렇게 끝을 맺는가!

끝도 시작도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

(나는 작품을 보는 내내 그걸 떠올렸다.)

 

김소희와 김태훈의 연기는,

그냥 그대로 발화(發化)더라.

저러다 무대 위에서 전소돼 사라져버리는건 아닐까 걱정스러울만큼 뜨겁고 강렬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들은 완벽하게 컨트롤하는 김소희에겐 항복했고

모든 이야기의 핵인 김태훈에겐 굴복했다.

김태훈이 보여준건... 결코 연기가 아니더라. 

완벽한 대사였고, 완벽한 장면이었고, 완벽한 암시였고, 완벽한 결말이었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에드워드일 뿐이었다.

지금껏 내가 본 김태훈의 작품 중 가장 엄청났고, 가장 대단했고, 가장 무시무시했다.

거튼콜에 그가 무대로 걸어나오는데 그냥 저절로 일어서게 되더라.

그순간만큼은 김태훈이 고곤이었다.

고곤의 저주가 두려워 재관람조차도 망설여지는 작품.

이대로 속수무책으로 빠져들다가는

티라의 화강암 절벽.

그곳에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될 다음 사람이 꼭 나인 것만 같다.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용서"뿐이다.

그래서 헬렌의 마지막 대사를 나도 주문처럼 따라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해. 나는 당신을 용서해, 나는 당신을 용서해..."

 

그러니 고곤이여!

부탁하노니 제발 그 눈을 나를 향해 돌리지 말아다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3. 20. 08:41

<맥베스>

일시 : 2014.03.08. ~ 2014.03.23.

장소 : 명동예술극장

원작 : 윌리엄 세익스피어

연출 : 이병훈

출연 : 박해수, 김소희, 곽은태, 이종무, 송영근, 한동규 외

제작 : (재)국립극단

 

윌리엄 세익스피어 탄생 450년을 맞아 국립극단이 "450년 만의 3색 만남" 이라는 타이틀로 연극 세 편을 기획했다.

이병훈 연출의 <맥베스>를 시작으로 정의신 연출의 <노래하는 샤일록> 그리고 마지막 작품은 김동현 연출의 <템페스트>다.

사실 세익피어만큼 재미있고 대중적인(?) 작품도 없긴 하지만 반대로 세익스피어만큼 어려운 작품도 없다.

고전은 고전을 면치 못해서 고전이라는데... 세익스피어가 내겐 딱 그렇다.

사실 이 작품도 망설였는데 결국 박해수의 필모그라피를 외면할 수 없어 관람했다.

<맥베스>, <햄릿>, <오셀로>, <리어왕>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재미있는 건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 의외로 드물다.)

공연을 보기 전에 원작을 다시 읽어보고 싶었는데

요즘 다른 책들에 빠져 있느라 미처 챙겨 읽지 못했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느라 또 다시 고전했다.

 

마녀들의 장난기같은 예언이 저주가 되어 파멸에 이른 멕베스!

인간이란 그렇더라.

자신의 욕망으로 스스로 자멸해 버리고

기껏 정신차리면 그 욕망을 더 크고 노골적으로 만드는 여자가 있다.

결국 시위를 떠난 화살은...

무슨 짓을 해도 되돌아 오지 않는다.

인생은 바보들이 지껄이는 이야기.

결국 아무것도 없다!

 

무대도 조명도 음향도 의상도 전체적으로 좀 특별했다.

이 모든 게 아주 의도적인 표현이었다고 생각되는데

기괴하기도, 그로테스크하기도, 황량해 보이기도 했다.

뭐랄까? 무대가 전체적으로 되돌아 오는 느낌이랄까?

거울 효과 혹은 부메랑 효과!

모든 대사와 행동들이 사방에 설치된 투명한 반사판에 함부러 부딪친 후

최초의 사람에게로 다시 되돌아 오는 느낌이다.

그것도 몇 배 더 강력해져서 되돌아오는 되먹임 현상.

그래선지 작품 속에 빠져들수록 일종의 공황상태에 휩싸이게 되더라.

당혹스러웠고 많이 난감했다.

배우들의 힘, 그것 때문이었을가?

(무시 못하겠다!)

 

배우 박해수.

개인적으로 박해수는 뮤지컬보다 연극, 그 중에서 고전을 할 때 존재감이 엄청나다.

발성과 연기, 목소리톤과 표정이 고전에 정말 잘 어울리는 배우다.

(특히 어두운 무대에서 조명 하나만 받고서 있을 때는 고대의 기사나 왕의 느낌이다)

참 감당하기 어려운 배역이었을텐데.

배우 박해수는 피하거나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표현하더라.

구토처럼 꾸역꾸역 밀고 나오는 맥베스의 숨겨진 욕망과

결국 삶의 파멸를 야기하게 만드는 수렁같은 죄책감.

나는 박해수가 표현한 멕베스에게서 "인간"의 본성을 봤다.

선과 악?

욕망과 파멸?

 

그래, 확실하다.

아름다운 것은 추하고, 추한 것은 아름답다.

어차피 생명이란 영원하지 않은 거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