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9. 14. 09:37

<블랙메리포핀스>

일시 : 2013.08.01. ~ 2013.09.27.

장소 :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

대본,작곡,연출 : 서윤미

프로듀서 : 김수로

출연 : 김재범, 이경수, 박한근 (한스)

        김성일, 윤소호 (헤르만) / 문진아, 이하나 (안나)

        김도빈, 최성원 (요나스) / 홍륜희, 최정화 (메리)

제작 : 아시아브릿지켄턴츠

 

프리뷰 이후에 다시 본 <블랙메리포핀스>

일부러 김재범 한스와 홍륜희 메리를 빼고 전부 다른 캐스팅으로 선택했다.

김재범과 김성일이 합이 워낙에 좋아서 다시 볼까 했었데 윤소호와의 느낌도 어떨지 궁금해서 선회했다.

지난 두 번의 관람은 시야장애석이어서 디테일한 모습들을 몰 수 없었는데

이번 관람은 1열 가운데여서 무대와 배우 모두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일단 뒤에서 관람했을 때보다 무대가 훨씬 깊이감 있었고

조명의 색감과 다양한 조도도 훨씬 풍부하게 보여서 놀랐다.

(이건 완전히 원근법을 무시하는 관점인데...)

가장 좋았던 건 배우들의 손동작을 자세히 볼 수 있었던 것!

김재범과 윤소호, 김도빈은 키가 서로 비슷해서 마주보는 장면의 시선도 훨씬 편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두번째 관람했을 때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았던건 왜였을까?

프리뷰 공연이 중반기 공연보다 더 노련하고 완숙하게 느껴졌다면???

 

일단 김재범 한스는 더 깊어졌다.

트라우마에 대한 강박감도 아주 잘 느껴졌고,

그 강박을 버티내기위해 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도 여실히 보여졌다.

연기도 표정도, 디테일과 타이밍도 모두 정말 좋았다.

그러나 헤르만과의 합은 윤소호보다 김성일과 더 격렬하고 치열하고 따뜻하다.

김재범때문이 아니라 윤소호가 어딘지 좀 이상하다.

이 작품에서 깊게 개입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

대사가 종종 꼬이고 표정도 가끔 애매했다.

(헤르만과 윤소호는 확실히 잘 안맞는 것 같다)

그리고 안나역의 이하나.

<완득이>에서 참 인상깊게 봤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전체적으로 빠르다.

대사와 감정 모두.

그래도 몸으로 표현하는 부분은 문진아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고 좋았다.

김도빈 요나스는.

일단 막내처럼 보이지는 않아서...ㅠ.ㅠ

멀리서 봤을 때는 요나스의 움직임과 얼굴 표정이 안 보여서 몰랐었는데

혼자서 아주 할 일이 많은 어려운 역할이라는 걸 실감했다.

확 드러나지 않지만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

성실한 표현이었고 무던한 노력과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능숙함과 완벽함과는 별개의 문제긴 하지만..)

홍륜희는 메리는 너무 깊어졌다.

어머니를 뛰어 넘는 힘겨운 모성애.

이 악몽에서 제일 먼저 구원해야 할 사람이 메리여야만 할 것 같다.

 

전체적으로 이번 관람은 좀 애매하고 이상했다

김재범을 제외한 모든 배우에게서 위태함과 다급함이 느껴져서...

나쁘진 않았는데...

어딘지 낯설다.

 

* 김재범이 연극 <연예시대>를 한단다.

  "동진"도 나쁘진 않지만

   개인적으론 그가 <번지점프를 하다>의 "인우"를 해주길 은근히 바랬었는데...

   그랬다면 깊은 감정의 끝을 보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도 김재범 덕분에 <연애시대>를 다시 보게 생겼으니 그것도 나쁘진 않다.

  

 

매번 느끼는거지만 <블메포>의 커튼콜 참 엄숙하다.

배우들의 표정도 그렇고....

조금만 덜 엄숙했으면 좋겠는데...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8. 16. 07:44

<블랙메리포핀스>

일시 : 2013.08.01. ~ 2013.09.27.

장소 : 동국대학교 이해랑 예술극장

대본,작곡,연출 : 서윤미

프로듀서 : 김수로

출연 : 김재범, 이경수, 박한근 (한스)

        김성일, 윤소호 (헤르만) / 문진아, 이하나 (안나)

        김도빈, 최성원 (요나스) / 홍륜희, 최정화 (메리)

제작 : 아시아브릿지켄턴츠

 

그래! 이런 느낌이다.

김재범 한스와 김성일 헤르만이 내의 <블랙메리포핀스>를 제자리로 돌려놨다.

깊고도 오랜 트라우마를 끌어 안고 버티고 있는 한스를 표현한 김재범은.

특히나 매장면 내 눈과 귀를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그대로 모두 한스였다.

너무나 안타까운 건,

<풍월주>와 <형제는 용감했다>의 연이은 일본 공연으로

김재범 한스의 회차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단언컨데 서윤미 연출도 나만큼 이 사실에 통탄해하고 있을거다.

확실하다!

김재범은 한스라는 인물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고 충분히 표현해내고 있다.

프리뷰였음에도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내내 이 작품을, 이 역할을 해온 사람같다.

정상윤 한스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중이었는데

김재범이 내게 다른 한스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상황과 감정을 아주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이해시켰다.

지켜주지 목하고 보호해보지 못한 이들을 향한 깊고 깊은 죄책감.

트라우마의 시작은 과거의 어느 한 지점, 그곳에서 시작된다.

 

"최면을 통한 무의식 조종"

작품 속에도 나오는 히틀러의 오른팔 괴벨스는 실제로 이런 말을 했다.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계속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섬득하지만 충분히 진실이다.

익숙해진다는 건,

그래서 무섭고 거대한 괴물이다. 

과거와 대면하겠다는 건, 이 괴물과 대면하겠다는 의미다.

방법은 없다.

대면하는 수밖에...

 

김재범 한스와 김성일 헤르만은

끄질지게 반목하면서 묘하게 서로를 믿고 의지한다.

보여지는 것고, 느껴지는 것 사이의 거리를

이 둘은 자유자재로 조정하면서 작품 전체를 컨트롤한다.

특히 김재범이은 신의 한 수를 보여줬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술에 의지한 채 버텨온 한스를 과하지 않게 표현한 것도 탁월했지만

김성일 헤르만의 잠재력까지 끌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놀랐다.

이경수 한스가 과거(악몽)과 싸워서 이겨내겠다는 투사의 느낌이라면

김재범 한스는 뭐가 됐든 진실과 대면하겠다는 존재론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훨씬 더 깊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러면서 감정을 전혀 숨기지 않고 그대로 노출시킨다.

유서를 읽는 장면과 안나의 고통과 대면하는 장면,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겁에 휩싸인 장면에서는

나조차도 김재범 한스로 인해 감정동화가 일어났다.

마치 내가 한스인 것 같은 착각.

너무나 괴로웠고, 너무 많이 아팠고, 너무 많이 힘겨웠다.

피하고 싶을만큼...

김재범은 어떻게 이런 한스를 만들어낸걸까?

정상윤과는 또 다른 느낌의 한스였고 둘 다 내겐 최고의 한스다.

 

지난번 관람때는 윤소호 헤르만이 최성원 요나스보다 훨씬 동생같았는데

김성일 헤르만이 드디어 최성원 요나스의 자리를 찾아줬다.

<여신님이 보고계셔> 이후 최성원도 참 매력있다.

이 역할이 과연 최성원에게 어울릴까 싶었는데 볼수록 잘 어울린다.

고음도 참 이쁘고...

(서윤미 연출의 눈은 확실히 예리하다.)

김성일 헤르만과 문진아 안나와의 동작도 윤소호보다는 훨씬 안정감이 있어서 좋았다.

(키 큰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함께 맞춰야 하는 동작이 많은 이런 작품에서는...) 

한스와 헤르만의 대립!

이경수, 윤소호의 부딪침은 고성이 난무하는 싸움의 형태였다면

김재범, 김성일의 부딪침은 해결을 위한 치열함이었다.

그게 가능했던 건 한스와 헤르만 두 사람이 갖는 내면의 깊은 "믿음" 때문이었고

김재범, 김성일 두 배우가 내게 그걸 보여줬다.

 

김재범 한스와 김성일 헤르만.

몇 번이라도 반복해서 말하고 싶다..

정말 좋았다고....

첫번째 관람에서 느낀 낮섬을 이들이 완전히 회복시켜줬다고...

그래, 확실하다!

이 작품은 아주 오래동안 나와 "동행"할거다.

작품 속 형제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불행과 기꺼이 동행하겠노라 다짐했다.

그러난 나는 불행을 떠올릴때 이 작품을 생각할거다.

내 옆자리를 내주고 함께 "동행"할거다.

꼭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도...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2. 11. 08:59

<유럽 블로그>

일시 : 2013.02.01. ~ 2013.05.31.

장소 : 대학로 문화공간 필링 1관

대본 : 정민아

작곡 : 이진욱

안무 ; 정헌재

연출 : 이재준

출연 : 김수로, 채동현 (종일) / 김재범, 성두섭 (동욱)

        조강현, 이규형 (석호)

제작 : 극단 연우무대, CJ E&M

 

김수로프로젝트가 드디어 다섯번째 작품을 선보였다.

창작 음악극 <유럽 블로그>

배우 김수로!

공연계로의 외출이 그저 잠깐의 외유일거라고 생각했는데

꽤 뚝심있게, 그리고 상당한 자존심과 의지를 가지고 작품을 올리고 있다.

사실 좀 많이 놀라고 있는 중이다.

연극계의 전체 판도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의 등장으로 공연예술의 일부분이 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관객 입장에서도, 배우나 제작자의 입장에서도...

다른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김수로프로젝트와 함께 하는 배우와 스텝들은 적어도 불합리하고 비참한 대우를 받진 않을 것 같고

관객들도 개념없이 쏟아대는 저질의 유머에 당황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김수로프로젝트"는 내겐 일종의 'win-win project"처럼 느껴진다.

프레스콜 무대에서 김수로가 그랬단다.

"5년, 10년 후에 김수로 프로젝트라는 이름만으로도 관객들이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그동안 몰랐었는데 김수로라는 배우!

정말 폼나게,

아주 제대로 멋지다!

 

<인다아 블로그>를 만든 연우무대에서 만든 블로그 연작 그 두번째 이야기.

인도가 배낭 여행의 끝이라면 유럽은 배낭 여행의 시작이란다.

(인도... 가고 싶다... 근데 무섭다... 유럽... 인도보다는 덜 무섭다...가고 싶다... 아니 꼭 갈거다!)

경력과 이력을 무시할 수 없는게,

배우들이 실제로 유럽 3개국 8개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찍어온 영상은

<인디아 블로그>의 어설픈 영상들보다는 훨씬 깔끔하고 아름답다.

중간중간 무대 위에서 실제로 보여지는 장면과

영상으로 보여지는 장면들이 오버랩시킨 연출은 돋보인다.

생동감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있다면

무대 한가운데 라이브 밴드가 자리하고 있어서

고생하며 찍어온 영상이 조금씩 가려진다는 거다.

밴드의 위치가 좌, 우 사이드 쪽으로 이동했더라면 그야말로 워너비의 심정으로 봤을텐데...

(우리는 이렇게 라이브로 연주한다! 라고 꼭 내세우고 싶었던걸까!)

 

유럽에서 여행작가로 장기체류중인 형 종일(채동현)과

형이 첫 배낭여행지에서 보낸 사진 엽서 속 장소를 찾아가기 위해 짐을 꾸린 동생 동욱(김재범).

파리지앵과 바람난 여친 단비를 찾기 위해 무작정 유럽으로 날아온 찌질남 석호(조강현).

세 남자의 좌충우돌 유럽 여행기라...

재미있다.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진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세 남자의 원초적인 발랄함에 덩달아 기분이 업된다.

보면서 내내 느낀건데

이 작품은 줄거리나 내용보다는 배우의 역량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작품 같다.

줄거리로만 말하자면 사실 평범하고 진부한 쪽에 가깝다.

시작부터 동욱이라는 캐릭터에 건강상 문제가 있구나 감이 딱 오는 것도 그렇고...

설마 퍽하면 나오는 시한부인생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난 정말 실망할지도 모르는데...

걱정하면서 봤는데 망막세포변성증이란다.

시한부 인생보다야 덜 당혹스럽지만 이 설정 자체도 참 극적인 연출이다.

이 당혹감이 신라면을 먹은 듯한 얼큰함으로 속풀이 된 건

순전히 채동현, 김재범, 조강현 이 세 배우 때문이었다.

  

프리뷰 공연인데도

마치 오랫동안 공연해온 사람들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합이 잘 맞던 세 배우.

특히 채동현 배우는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알게 됐는데

눈도장 정말 제대로 찍었다.

연기도, 노래도, 딕션과 목소리톤, 전체적인 느낌도 작품과 너무 잘 어울렸다.

스토리텔러에게 필요한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듯.

창작 음악극 <유럽 블로그>의 가장 큰 수확이라면 단연 채동현 배우가 아닐까!

내겐 신선한 충격이자 일종의 보물찾기였다.

이 작품을 재관람을 하게 된다면 순전히 채동현 배우 때문일거다.

그리고 앞으로도 채동현배우가 출연하는 작품들은 일부러라도 챙겨보게 될 것 같다.

이 멋진 배우의 발견으로

<유럽 블로그>는 실제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즐거운 여행이 됐다.

적어도 내겐.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7. 20. 08:17

<형제는 용감했다>

부제 : 블록버스터 코믹 쟁탈극

일시 : 2012.06.26. ~ 2012.10.01.

장소 : 코액스아티움 현대아트홀

대본, 연출 : 장유정

작곡 : 장소영

제작 : PMC 프러덕션

출연 : 김재범, 김도현 (이석봉) / 성두섭, 조강현, 산들 (이주봉)

        이주원, 강지원 (오로라) / 안세호, 신문성 (이춘배)

        임선애, 최영화 (송혜자) / 윤수미, 최나래 (예산댁)

        박훈, 최영준 (이옹) / 박유정, 성열석, 이진석, 박세웅

 

2008년 대학로 PMC 자유극장에서 초연했을 때 

개인적으로 참 재미있게 봤던 작품이다.

그때 이석봉 역은 박정환(박호산)이었고 이주봉은 송용진이었다.

그게 벌써 6년 전이다.

초연 당시 스토리도 꽤 탄탄하고 신선했고, 음악도 좋았고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도 나무랄데가 없었다.

박장대소케하는 재미도 있었고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깊은 감동도 있었다.

우리 창작뮤지컬이 참 대단한 발전을 했구나 싶어 보면서 혼자 대견했었는데...

그해에 굵직한 상도 여러개 받았던 걸로 기억된다. 

그랬는데 어느새 5번째 재공연이란다.

초연 공연에 노래가 몇 곡 추가됐고 1막, 2막으로 나눠지면서 인터미션까지 생겼다

개인적으로 인터미션이 없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2막이 어쩡쩡한 길이가 되버린 것 같아서... 

초연 이후로는 다시 보지 못했었는데 성두섭, 김재범이 형제로 출연한다기에 한 번 보기로 했다.

<풍월주>에서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연인(?)이었던 두 사람이

철천지 원수같은 형제로 분해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꽤 흥미로울 것 같았다.

게다가 아직 <풍월주>로 대학로에서 공연중이지 않는가!

성두섭 출연 회차가 거의 없긴 하지만

어쨌든 형제와 연인 사이를 오가는 두 사람 행보를 짖궂게 들여다보고 싶은 개구진 마음이 생겼다.

 

이 날 공연이 성두섭, 김재범 형제의 첫공이었다.

성두섭은 그래도 김도현과 공연을 몇 번 했었지만 김재범은 이 날 공연이 <형제는 용감했다> 스타트였다.

어! 근데 이 두 사람!

정말 첫공 맞아?

첫공이란 단어가 무색할만큼 너무 잘해서 오히려 얄밉기까지 하더라.

<풍월주>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서 그런가!

맞아도 이렇게 합이 잘 맞을 수 없다.

2막에서 성두섭이 가사를 까먹긴 했어도 그건 오로라와의 장면이었으니까 Pass~~~!

(근데 여우같이 당황하지 않고 잘 넘어가더라.)

특히 김재범의 코믹연기는 치고 빠지는 타이밍이 밉쌀맞을 정도다.

애드립인지 미리 계산한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재치있게 치는 대사나 행동들이 과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었다.

코믹작품의 자폭하는 경우 대부분은 배우들의 과유불급인 경우가 종종있다.

경계를 알고 유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텐데 김재범이란 배우는 그걸 참 잘 조절한다.

심각한 배역은 심각한데로

코믹한 배역은 또 코믹한데로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게 적절한 수준을 잘 유지하는 것 같다.

곱씹을수록 첫공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묘한 괴물같으니라고...)

사실 성두섭은 두 작품만 봐서 아직 잘 모르겠지만

배역에 대한 성실함은 대단한 것 같다.

한동안 김재범, 성두섭의 셋트 플레이어가 빛을 발하는 공연들이 계속될 것 같다는 예감아닌 예감을...

이 작품이 영화로도 만들어진다는데 그냥 이 두 사람을 그대로 캐스팅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뭐 <김종욱 찾기>처럼 뮤지컬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카메오로 나오는 것도 종을테고)

 

초연 때 이주원과 안세호 배우에게 깊은 인상을 받아서

이번 관람에서도 두 사람이 나오는 날을 일부러 찾아서 봤다.

이 작품에서 굳이 편을 가르자면,

철없는 주봉, 석봉 형제들은 코믹 코드를,

종갓집 늙은 두 부부는 감동을 코드를 담당(?)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가 팽팽한 줄다라기처럼 밀당을 거듭한다.

(자고로 밀당은 연애에만 적용되는 건 절대 아니다!)

부부로나오는 이주원, 안세호 두 배우에게도 이 작품과 배역은 좀 남다른 모양이다.

애뜻한 애정이 보인다.

그래선지 참 잘 한다.

잔잔한 감동과 애뜻함에 중간중간 나도 모르게 몇 번씩 뭉클했다.

안세호 배우가 1막  장례식 장면에서 처음 부르는 노래는 6년전에도 그랬지만 그 서늘한 울림이 여전해서 놀랐다. 

이주원 배우는 역할 그대로 정말 팔색조같은 매력을 맘껏 보여준다.

오로라 역도 제격이지만 며느리, 아내, 어머니의 모습일 때도 배역에 맞게 목소리와 행동이 조금씩 바뀐다.

두 사람을 보면서 초연 배우의 힘이라는 게 얼마나 집요하고 대단한건지 절감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한동안 이 역할을 계속 해줬으면 좋겠다.

 

<형제는 용감했다>

정말 오랫만에 다시 본 작품인데

반가웠고, 애뜻했다.

그리고 따뜻하고 다정했다.

이작품, 참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나이를 먹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래, 당연한지!

정말 좋은 작품이니까...

이제 6살이 된 이 작품이 지금보다 더 나이를 먹으면 어떤 어른이 될까 궁금해진다.

지켜보고 기다리는 재미.

참 쏠쏠할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6. 13. 07:48

<풍월주>

 

부제 : 바람과 달의 주인

일시 : 2012.05.04. ~ 2012.07.29.

장소 : 컬처스페이스 엔유

극본 : 정민아

작곡 : 박기현

연출 : 이재준

음악감독 : 구소영

출연 : 성두섭, 이율 (열) / 김재범, 신성민 (사담)

        구원영, 최유하 (진성), 김대종 (운장어른)

        원종환 (궁곰), 임진아, 신미영 (부인들)

 

<풍월주> 두 번째 관람.

열과 사담은 지난번과 같은 성두섭, 김재범이었고 진성여왕만 최유하로 관람했다.

 

첫번째 관람 이후 리딩공연에 비해 아쉬운 점이 많아서 다시 찬찬히 살펴보고 싶었다.

두 번을 봤는데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호불호를 결정하기에 참 애매하다.

조금은 위험하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소재인데 풀어나가는 과정이 너무 유치한 것도 같고.

여성팬만을 겨낭해 수입을 올리자는 상업성 농후한 작품인 것도 같고.

그러면서도 넘버와 대사는 꽤 잘 나왔고.

(노골적인 성적 묘사도 꽤 있지만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남자 기생들 아닌가...)

무대와 의상은 정체불명이지만 그래도 이해불가의 정도는 아니고.

조명의 색감과 극의 마무리는 꽤 인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딩 공연때만큼의 감성과 애절함이 본공연에서는 좀처럼 느껴지진 않으니

의외로 미스터리다. 이 작품!

(도대체 너의 정체는 확실히 뭐냐?)

 

<풍월주>가 성두섭, 김재범이 아니었다면 과연 지금같은 성공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니었으리라.

그런 점에서 어쨌든 이 작품은 성두섭, 김재범에게 일종의 빚을 진 셈이다.

물론 이율, 신성민을 안 보고 이렇게 말한다는 게 모순이겠지만

일단 비주얼상으로 이율 열은 남자기생을 할 만한 꽃미남과는 아닌 것 같고.

(게다가 "뮤지컬계의 비"로 일컬어지는 성두섭과 비교하면 안스럽게도 더욱 그렇다.)

사랑과 우정을 오가는 오묘한 분위기를 표현하기에 사담 신성민의 이력은 아직 얉다.

첫번째 관람때에도 성두섭조차도 연기 기복이 심해서 좀 걱정스러웠었는데...

다행히 이번엔 무난한 열을 보여줬다.

전체적으로 음색과 모습, 자세가 두루 성두섭에게 잘 맞는 배역이다.

("밤의 남자"에서 춤을 조금 더 잘 췄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김재범 사담은,

더도 덜도 말고 딱 사담같다.

본인은 이런 유약한 이미지로 굳어지는 게 싫어서 처음엔 사담역을 고사했다는데

뭐 이런 쪽으로 일가를 이루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최유하 진성은,

극의 후반부엔 참 절절하더라.

구원영이 약간 광적이고 독선적인 여왕을 표현했다면

최유하는 가사말 그대로 그저 한 남자를 바라는 한 여인으로 진성을 표현했다.

그래서 열이 스스로 선택한 죽음에 그렇게 고요히 통곡할 수 있었으리라.

운장어른 김대종, 궁곰 원종환도 배역에 잘 어울린다.

시종일관 희극적인 인물인 궁곰이 사담의 죽음에서

애타는 절규로 비극적 표현을 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원캐스팅으로 가는 운장어른 김대종은 6월 22일부터 시작되는 <전국노래자랑>에도 출연하는 모양이다.

과연 두 작품 중 어느 작품에서 빠지게 될지 살짝 궁금해지긴 한다.

그래도 자칭 운루의 CEO로 관객과의 대화에서 사회자 역할까지 도맡아 했었는데...  

차기 운루 CEO가 지금 열심히 칼춤을 연마중이려나????

(그렇다면 이번엔 그럴듯한 칼춤을 보게 되길 개인적으로 희망한다. 김대종은 칼춤은 아무래도 좀 둔탁해서...)

 

개인적으로 <풍월주>는 스토리보다는 빛, 색, 음(音)이 화합과 조화가 마음에 든다.

작품의 분위기에 따라 조명이 바뀌는데 그 색을 따라가면 참 묘한 느낌에 빠진다.

그리고 애절한 장면에 흐르는 해금의 선율도 썩 잘 어울린다.

여기에 선의 조화까지 이루어졌다면 참 좋았을텐데 조금 아쉽다.

그리고 프리뷰 공연 때는 사담이 죽고 난 후에 열이 오열하며 부르는 노래가 있는데

본공연에서는 이 노래가 빠졌다.

너를 죽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열의 처참한 고백과 후회를 담은 노래였는데

그전까지는 동성애보다는 좀 특별하고 각별한 우정을 보여준 두 사람이

이 부분에서 사실은 깊은 사랑이었음을 드러내준다.

나름 반전이라고 생각하는 노래였는데 왜 뺐을지 의문이다.

이 노래를 맞물리면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의 장난스런 희롱 장면이 더 애뜻하게 다가왔을텐데 아쉽다.

 

성두섭 열과 김재범 사담은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의 정도가 참 지극하다.

커튼콜까지 그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좀 짠한 마음도 든다.

확실히 배우에 의해 배역이, 작품이 상당 부분 힘을 얻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두 사람이 빠진 <풍월주>는 사실 좀 맥이 빠지는 느낌이다.

아게 비록 잘 모르는 사람이 갖는 기우에 불과할지라도...

 

* 몰랐는데 커튼콜에서 성두섭 열이 상의를 바꿔입고 나온다.

  상의에 달린 휘장이 처음엔 회색이었는데 나중엔 붉은 색으로 변해있다.

  그냥 그런 작은 디테일의 변화가 뭔가 최후까지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1. 9. 05:37
벌써 한 달도 더 전에 본 뮤지컬이다.
그동안 경황이 없어서 간단한 멘트도 달 여유가 없었다.
겨우 이제서야 뭔가를 끄적여본다.
<쓰릴미>
너무나 매혹적이여서 개인적으로 격하게 아끼는 뮤지컬 작품 중 하나다.
그래서 2007년 초연됐을 때를 빼고는 매 시즌 놓치지 않고 챙겨봤었다.
(초연을 보지 못한 걸 늘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그런데 이번 시즌 <쓰릴미>는...
참 여러가지로 사람 심난하고 힘들게 했다.
남다른 애정이 있는 작품이기에 배신감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장현성, 김재범 페어로 한 번 봤는데 다시 보기가 어쩐지 두렵다.



새로운 쓰릴미...
인간의 욕망에 촛점을 맞췄다는 노승희 연출가의 말은 실제 작품을 보면서도 안타깝게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 기억 속의 쓰릴미는.
처음 봤을 때 그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만들던 그 뜨거운 응집력과 서늘한만큼 차가운 치밀함,
그리고 넋을 잃게 만들었던 두 배우의 엄청난 집중력.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내가 <쓰릴미>를 보면서 눈을 질근 감게 되리라고는.
무대 위를 배우보다 더 자주 들락날락거리는 경박한 의자와 책상의 흉물스러움,
난데없이 출몰해서 감정을 톡톡 끊어놓던 칼라들의 난도질.
유치하기까지한 어설픈 배경과 음향,
그리고 암전됐을 때 조심성 없이 너무도 당당하게 움직이던 배우의 발소리.
천박한 부비부비에 가까운 스킨쉽,
그저 어떻게든 치기에만 급급했던 피아노 연주의 잦은 실수까지...
(이걸 연주라고 말해도 될까???)
조금 심하게 말하면 90분 동안 일방적인 모욕을 당한 느낌이다.
배우들도 충분히 적응하지 못한 것 같다.
눈을 부라리는 것으로 감정 표현이 전부 되는 건 아닐텐데...
턱없는 대사들과 노래들.
알 수없는 장면들과 감정 표현들.
쓰릴미를 어쩌자고 이 지경으로 만들어버렸을까!
신촌 더 스테이지에서 난데없이 등장한 붉은색 앤틱 의자를 보면서도 당황스러웠는데 지금과 비교하면 오히려 그 황후스런 의자가 오히려 무지 감사해 죽을 지경이다.
최소한의 소품과 최소한의 조명, 최소한의 동선만으로도 충분한 작품을
그악스럽게 시장판에 던져놓은 느낌이다.
<그>의 목에 묶여있는 색동(?) 보타이를 보면서도 깜짝 놀랐는데
나와 그가 뒤집어쓰고 나온 정체불명의 죄수복은 또 얼마나 경악스럽던지...
몹시 무례하고 난폭한 작품으로 새롭게 탄생(?)된 쓰릴미.




문득 서늘해진다.
내가 몹시도 아끼는 <쓰릴미>가  완벽하게 사라진 것 같아서...
혹시 노승희 연출의 의도가 바로 이런 thrill이었나???
우리는 쓰릴미가 새롭기를 절대로 바라지 않았다.
쓰릴미를 사랑하고 아끼는 관객들의 마음이 어떤 거였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아마 이정도까지 무례하고 불쾌한 작품은 나오지 못했으리라.
열심히 하는 배우들에겐 정말 미안하다.
그러나 솔직히 예전같은 아우라와 감동을 느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배우들이 쓰릴미를 사랑하는 것만큼
우리 관객들도 쓰릴미를 정말 많이 사랑하고 격하게 아낀다.
그래서 배신감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김재범, 장현덕 페어였음에도 객석에 빈자리가 많은 걸 보면서 혼자 막막했다.
다른 페어를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못견디게 속이 많이 상한다.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이 마음을 과연 알아줄까?
정상윤의 섬세한 나를 다시 한 번 꼭 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이번 시즌에서는 그 소망을 고이 접어둬야 할 것  같다.



게다가 얼마전엔(1월 3일) 대단한 노승희 연출님께서 
자신의 트위터에 쓰릴미 재관람 관객을 "크레이지"라는 위대한 단어로 매도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자신은 한 번 보는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작품을 만들지, 기존의 열광적인 팬들 구미에 맞는 작품을 만들지는 않는다고.
이제 자신의 컨셉에 따라 관객들이 따라오기 시작했다며
누가 누구를 조정하고 있는지 알겠느냐고...
<쓰릴미>가 지극히 매니아적인 작품이라는 걸 과연 노승희 연출은 몰랐을까?
엔딩을 일부러 뭉클하게 처리했다는데
나는 너무 끔찍해서 정말이지 돌아버리는줄 알았다.
무례도 이런 무례가 없다.
지금 인터파크의 쓰릴미 페이지에는 대단한 노승희 연출가 덕에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폭발적(?)이고 열광적(?)인 비난의 글들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는 환불에 불매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작품의 무례한 질(質)과 별개로 참 Thrill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1월부터 투입될 정상윤은 이 뜻밖의 상황이 엄청 Thrill 하겠다.
(속으로 왜 하필 왜 지금!!! 그러지 않을까?)
뮤지컬헤븐 역시도 말 할 수 없을 만큼 이 상황이 Thirll 할테고...
이게 당췌 너무 지나치게 Thrill해서...
(옳지 않아! 옳지 않아!)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2. 4. 10:42

"무대가 좋다" 다섯번째 작품 <아트>
그리고 악어 컴퍼니의 영원한 스테디셀러 <아트>
오죽하면 수컷들의 수다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을 싹 다 여자로 바꾼 아트까지 나왔을까?
대학로에서 제일 많이 본 포스터도 내 기억엔 <보잉보잉>과
<아트>인 것 같다.

2006년도인가 2007년도인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권해효, 조희봉, 이대연이 출연하는 <아트>를 봤었다.
그때 느낀 재미와 충격이란!
아마도 출연배우들의 내공도 큰 몫을 차지했겠지만.
권해효의 규태는 정말 인물과 일체감이 느껴졌었다.
그 표정이며 어이없어하는 말투며, 홍삼다시마 골드를 분노게이지 상승시키며 우걱우걱 씹어대던 모습이며... 
그리고 약간 촌스럽게 생긴(죄송^^) 조희봉의 청담동 피부과 의사 수현 역은 기대 이상으로, 아니 상당히 꽤 세련됐었다.
지금 말하는 까도남의 원조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이대연의 덕수는 구수하고 소박했고 지극히 현실적이었고...


그때 공연장을 나오면서 꼭 다시 봐야지 했었는데 무슨 이유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금처럼 OB팀, YB 팀은 아니지만 그때도 역시 두팀으로 나눠서 공연됐었다.
권해효, 조희봉, 이대연이 한팀이고
다른 한 팀이 박광정, 정원중, 오달수였나?
(몹쓸 놈의 기억력이 또 흐려지는 중이다.)
대학로에서 상당히 오래 공연됐음에도 불구하고 박광정의 규태는 결국 못보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은 영원히 박광정의 규태는 볼 수 없게 돼버렸다.
개인적으로 박광정이 연출하는 연극 무대도 참 좋았지만
난 이 사람이 무대위의 배우로 나오는 모습이 너무 좋았었다.
액센트같던 배우, 무대의 방점 같던 배우 박광정이 그래서 늘 안타깝고 아깝고 그립다.



일부러 정상훈, 김재범, 김대종 YB팀을 선택했다.
류태호, 이남희, 윤제문, 유연수의 OB팀도 궁금하긴 했지만
어쩐지 젊은 수컷(?)들이 만들어내는 아트도 상당히 예술일것 같아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YB팀의 싱크로율이 등장 인물들에 상당히 흡사해보였다.
특히나 뮤지컬 <스팸어랏>를 통해 특별한 우정을 만든 세 사람의 동반 출연이라는 게  흥미롭기도 했고.
그들 스스로가 함께 하고 싶다고, 세 사람이 한 팀이 되겠다고 해서 만들어졌다는 YB팀!
나름대로 호흡과 발란스가 잘 맞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도 됐다.
결론은...
좋았다. 생각보다 훠얼~~~씬!



정말 남자들도 이렇게 소란스럽고 수다스럽고 유치찬란하게 싸울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고 어쩐지 확실히 그럴 것 같다.
수컷들이라고 뭐 별 다를게 있나?

"친구가 그림을 하나 샀습니다.
 하얀색 바탕 위에 선이 있는 하얀색 그림입니다.  
 이 그림의 가격은 무려 2억 8천 만원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사건의 발단은 규태의 첫 대사에 나오는 것처럼 "앙트로와"가 그렸다는(?) 하얀 바탕 위에 하얀 그림이다.
("앙트로와"가 정말 실존하는 화가인지 찾아보려다 귀찮아졌다. 실존 하던지 말던지...)
그리고 규태(정상훈), 수현(김재범), 덕수(김대종)의 유치찬란 시끌벅적 물고 뜯기가 시작된다.
내 돈 가지고 내가 쓰겠다는데 늬가 무슨 상관이냐?
맞는 말이다!
상관, 당연히 없다!
그런데 어쩌나!!!
그 상관없는 일에 배앓이 꼴리는 건 또 내 몫이다!
왠만한 전셋값뿐만 아니라 집 한 채도 살 수 있는 가격이다.
나라도 철친이라는 인간이 이 따우 짓거리를 했다면(이건 순전히 내 입장에서다...)
분노 게이지 무한 상승하면서 배신감 비슷한 감정 처절히 느꼈으리라.
세 사람도 이 사건이 기폭제가 돼서 고래고래쩍 푹 삭은 감정들이 그야말로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원래 발효의 깊이와 세월만큼 곰삭은 냄새의 상관관계 수직상승하신다)
급기야는 규태 마누라 피부가 돼지 껍데기였노라는 피부과 의사의 충격 고백까지 나오신다.
설상가상으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으로 문구점 싸장님 덕수가
이 모든 사건의 주범이라는 두 친구의 일방적인 몰아붙이기 사태 발발한다.
그런데 어쩌랴!
본인들이야 참 속꽤나 너덜거리고 남들 보기 넘새스러운 광경의 연출이지만
보는 입장에선 그게 또 그렇게 통쾌하고 속시원할 수 없다.
타인의 찌질함을 들여다보며 박장대소하는 재미는
몰래 들여다보는 관음의 즐거움 그 이상이다.
솔직히 더 짜릿하고 묘한 만족감을 준다.
또 다시 어쩌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는 게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는데...



연극을 보고 난 뒤 문득 예전에 갖지 못한 생각을 하게 됐다.
정말 수현이 2억 8천을 주고 그 그림을 샀을까?
이게 사실은 수현의 트릭이 아니었을까?
어딘지 이그러지고 어긋나는 그들 세 사람의 우정을 회복하고 싶은 일종의 깜짝쑈!
규태가 파란색 유성팬으로 스키타는 모습을 그리는 걸 바라보는 수현의 표정이
이런 생각을 갖게 한다.
어쨌든 다행인 것은 그들의 우정은 회복됐다는 사실이다.
참 매직블럭처럼 깜직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뭐 색은 약간 바랠 수 있겠지만... (이게 바로 매직블럭의 한계다)



이상하게 나랑 참 시간때가 잘 안 맞았던 김재범을 드디어 무대에서 직접 봤다.
상당히 매력적인 배우다.
살짝 여성스런 감정이 담긴 수현이었던 것 같은데 자신의 색을 과하지 않게 잘 표현한 것 같다.
코믹한 모습을 진지하게 연기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자칫하면 가볍고 정체성 불분명한 인물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그 한계를 잘 지키면서 연기한 듯.
나중에 다른 작품을 하면 꼭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몇 년만에 다시 본 연극이지만
여전히 괜찮은 연극이었고
그리고 괜찮은 배우들이었다.
그래서 괜찮은 나들이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