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8. 2. 12. 08:31

 

<홀연했던 사나이>

 

일시 : 2018.02.06. ~ 2018.04.15.

장소 :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작,작사 : 오세혁

작곡, 음악감독 : 다미로 

연출 : 김태형

출연 : 정민, 박민성, 오종혁 (남자) / 유승현, 박정원, 강영석 (승돌) / 임진아, 임강희 (홍미희)

        박정표, 윤석원 (황태일) / 백은혜, 하현지 (김꽃님) / 장민수, 김현진 (고만태)

제작 : (주)두번째 생각

 

헐~~~~

정말 오랫만에 할 말 없게 하는 공연을 만났다.

초연이라 검증이 안 된 상태였지만

그래도 김태형 연출과 출연배우들을 믿고 관람했는데...

이건 재앙 수준이다.

맨 앞 줄에서 관람했는데 까무룩 까무룩 김기는 눈 때문에 참 힘겨웠다.

2012년에 연극으로 올라왔을 때도 이렇게까지 지루하고 재미없었을까 싶더라.

스토리도 재미없고,

캐릭터도 특색 없고,

귀를 사로잡는 넘버도 없고.

그렇다고 <난쟁이들>처럼 탁월하게 병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대나 소품이 특별한 것도 아니고...

그 와중에 배우들은 어쩌자고 그렇게들 열심히 하는지...

보는 내내 저 좋은 배우들이 아깝다는 생각.

공연 시작 전 박정표의 안내 멘트가 무색할 정도다.

마음껏 웃으라고 했는데...

웃음을 참으면 지붕이 열리고 몸이 튕겨져 나갈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멘트가 작품 전체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었으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대략 난감 ㅠ.ㅠ)

아무래도 홀연한 사나이는 이대로 홀연히 사라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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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7. 2. 28. 08:53

 

<베헤모스>

 

일시 : 2017.02.01 ~ 2017.04.02.

장소 :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원작 : 박필주 

각색 : 정민아 

연출 : 김태형

출연 : 정원조, 김도현 (오검사) / 최대훈, 김찬호 (이변호사) / 문성일, 이창엽 (태석) / 권동호, 김히어라

제작 : (주)PMC 프로덕션

 

외극 원작을 번역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KBS 드라마 스페셜 <괴물>이 원작이란다.

드라마를 안봐서 모르겠지만 내용 참 살벌하고 추악하다.

블러드포비아(bloodphobia)에 폐소공포증(claustrophobia)까지

갖출건(?) 두루두루 다 갖춘 유력 정치인 아들 태석.

그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검사측과 변호사측의 적나라한 파워게임.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시츄에이션 아닌가!

요즘은 영화나 연극보다 현실이 더 드라마틱하고 추악하다.

 

Behemoth

구약에 나오는 거대한 괴물의 이름.

한 마리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동물을 다 모아 놓은 것처럼 거대해서

그 누구도 잡을 수도, 쓰러뜨릴 수도 없는 괴물 베헤모스.

연극의 결말은...

제목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모든 정황상 네가 범인이야. 그런데 네가 죽인진 않았어!"

태석을 변호하는 이변의 말은

박근혜를 변호하는 변호인단과 똑같다.

거대한 권력 앞에 매번 진실은 왜곡되고

겨우겨우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시 왜곡된 진실이 버티고 선다.

계속되는 증거 조작.

이 모든걸 가능케 하는 힘은 다름 아닌 "돈"이다.

정말 세상이 이 정도일까 싶다가도

이보다 더하다는 생각을 하니 참담하다.

(내가 이려려고 대한민국 국민을 했나... 싶어 자괴감이 든다)

 

아직도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해?

막아서는 질문 앞에 대답할 말이... 없다.

다르다고 간절히 말하고 싶지만

정말 다른건지는...

모르겠다.

 

나라는 베헤모스.

너라는 베헤모스.

그래서 다시 하나가 되는 거대한 베헤모스.

 

 

* 배우들의 연기에 찬사를 보내며...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6. 12. 27. 08:12

 

<벙커 트릴로지>

 

일시 : 2016.12.06. ~ 2017.02.19.

장소 :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원작 : 제스로 컴튼 & 재이미 윌크스

번역 : 김수빈 / 각색 : 지이선

작곡 : 김경육

연출 : 김태형

출연 : 이석준, 박훈(Soldier 1)/오종혁, 신성민(Soldier 2)/임철수, 이승원(Soldier 3)/김지현, 정연(Soldier 4)

제작 : (주)아이엠컬처

 

<카포네 트릴로지>에 이은 김태형, 이지선 콤비의 연극 <벙커 트릴로지>

모르가나(Morgnan), 아가멤논(Agamemnon), 멕베스(Bacbeth)

세 편의 에피소드 중 모르가나와 아가멤논 두 편을 봤다.

벙커(Bunker)라는 공간이 주는 밀폐성과 비밀스러움.

그리고 전쟁이 주는 극도의 긴장감과 공포감.

내가 본 두 편의 작품 속에선 이 모든게 그대로 살아있었다.

막막한 천진함도 있고,

버티기 위해 스스로 괴물로 변하는 인간의 모습도 있다.

전쟁.

예전엔 그랬다.

전쟁만큼 거대하고 비극적인 국가적인 재앙은 없다고.

(그게 아니라는건 지금 대한민국을 통해 보고 있긴 하지만...)

연극은 재미있으면서 참혹하다.

"홀림" 혹은 "광기"

이 연극을 표현할 수 있는 아주 적절하고 명확한 두 단어다.

<카포네 트릴로지>도 초연과 재연 모두 챙겨볼 정도로 좋아햇던 작품인데

<벙커 트릴로지> 그에 못지 않는다.

아니 개인적으론 훨씬 더 매력적이고 흡인력 있었다.

그럼에두 불구하고 몇 번 씩 보지는 못할 것 같다.

작품 자체에서 발산되는 엄청난 무게의 감정들을 감당하는게 힘겹다.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그야말로 내가 전쟁이 한창인 참호 속에 있는 웅크리고 느낌이다.

온 몸을 벌벌 떨면서...

폐소공포의 위협이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그건 장소때문이 아니다.

이 모든게 숨통을 서서히 조여오는 감정들 때문이다.

무감(無感)도 관조(寬眺)도 쉽지 않다.

 

If... Maybe...

작품을 본 뒤 끝없이 던진 질문들.

만약 내가 이 상황이라면.

만약 내가 저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면.

나의 선택은 아마도...

아, 참 두루두루 비극적이다.

지이선의 말처럼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고,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게...

 

* 이석준의 연기는 눈부시다.

  그야말로 진흙탕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을 연기다.

  이 작품에 이석준이라는 버팀목이 없었다면...

  생각하기 싫을 정도다.

  배우 이석준의 시야는 배우의 시야를 넘어 연출가의 그것과 맞닿아있다.

  매번 느끼는거지만 참 넓게, 그리고 참 깊게, 그리고 참 자세히 보는 배우다.

  좁은 공간에서 연기해야하는 오종혁에게 이석준이 그랬단다.

  "흥분하지 마라, 70%만 해라"라고.

  그 말이 이해가 된다.

  일종의 거리감을 유지하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실제로 오종혁은 첫공연을 한 뒤 기억이 안 난다고, 스스로 미쳐서 날뛰었다고 표현하더라.

  (오종혁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

  엄청난 각색으로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들었다는 지이선의 능력도 놀랍고

  그걸 쿨하게 인정해준 원작자 제스트 컴튼의 마음도 놀랍다.

  심지어 자신의 의도에 더 근접한것 같아 감동했다는 말까지 했다.

  원작자의 감동이 아니더라도,

  이 연극은 확실히 감동적이고, 놀랍고, 강렬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만큼 고통스럽고, 잔인하고, 비통한 이야기다.

  뭔가에 홀린 눈빛으로 홀로 앉아 군번줄에 적힌 친구의 이름을 부르던 아더의 모습.

  그 모습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꼭 유령같았던 그는...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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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6. 8. 18. 07:35

 

<글로리아>

 

일시 : 2016.07.26. ~ 2016.08.28.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작가 : 브랜든 제이콥스 - 젠킨스 (Branden Jacobs-Jenkins)

번역 : 여지현

연출 : 김태형

출연 : 이승주(딘&데빈), 손지윤(켄드라&제나), 임문희(글로리아&낸), 정원조(로린)

        오정택(마일즈&숀&라샤드), 공예지(애니&사샤&캘리)

제작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노네임씨어터컴퍼니 7번째 작품 <글로리아>는

근래 내가 본 작품 중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끔직했다.

그 이유는...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라서!

그야말로 지금 이곳에서 다반사로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의 비극이다.

15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지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 한 명 없는 "글로리아"는

내 모습일 수도 있고, 당신들 모습일 수도 있다.

글로리아의 극단적인 선택이 나는 이해가 되고 심지어 용납이 된다.

확실히 인간은 뒷담화와 함께 진화했다.

인간에게 뒷담화의 능력이 없었다면

문화도, 예술도, 기술도 발전하지 못했을거다.

(뒷담화라는건 언제나 상상력이 가미돼 실제보다 훨씬 더 부풀어지게 마련이니까!)

인간을 왜 그토록 쉽게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걸까?

사무실 직원 5명을 살해하고 자신의 머리통까지 날려버린 "글로리아"는

어어없게도 죽어서야 존재감이 급상승된다.

그리고 시작되는 주변인물들의 사생결단 트라우마 쟁탈전.

"이 이야기...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이 대사에 소름이 돋았던건 비단 나 뿐이었을까!

 

...... 그녀는 평범했어요, 조금 어색했달까. 낯을 좀 가렸어요. 사람들이랑 많이 안 어울리고 플로리다에서 왔던 거 같아요...... 평범했어요, 평범한 일들을 했고 뭐 굳이 얘기하자면, 직장에서 늘 혼자 있었어요, 그게 진짜 그지 같은 거죠. 직장은 곧 그녀의 삶이었으니까, 어떤 면에서는, 그녀가 그런 일을 했다는게 그렇게 놀랍지 않아요. 아주 건강한 환경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제 말은, 우리 중 누구든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

 

처음부터 이상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이 어땠는지 알지 못하면서 그 사람의 삶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글로리아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게 아니다.

단지 존재하고 싶었을 뿐이다.
존재...라는거,

참 목이 매인다.

개인적으론 이런 작품을 보고나면 후폭풍이 오래 간다. 

젠장!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조용히 살고 싶다.

진심으로.

 

로린의 마지막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

"좀 웃기지 않아요? 이런데가 다 똑같다는게... 사람들까지 다 똑같아요. 왜 그럴까요?"

대답할 말이 없는 나는,

로린처럼 조용히 헤드셋을 끼고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본다.

글로리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

혹은 글로리아가 되기 위해서.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11. 25. 08:34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일시 : 2014.09.27. ~ 2014.11.20.

장소 :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

극작, 각색 : 추민주

연출 : 김태형

총감독 : 김조광수

출연 : 정동화, 박성훈 (민수) / 오의식, 강정우 (티나)

        차수연, 손지윤 (효진) / 이갑선, 김대종 (왕언니)

        우지순, 이이림 (경남) / 구도균, 이정수 (주노)

        리안나 (서영), 김효숙 (엄마)

제작 : 대명문화공장

 

<두결한장>

영화로 먼저 만들어졌을때 송용진이 출연한다고 해서 잠깐 관심을 갖긴했지만 정작 개봉했을땐 챙겨보지 못했었다.

솔직히 김조광수의 올드한 감성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음악극으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이번엔 한 번 챙겨봐야겠구나 생각했다..

공개된 개스팅도 괜찮았고 오랫만에 이갑선 배우를 무대에서 보고 싶기도 했다.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더 뻔하고 상투적인 스토리라 당황스러웠다.

(영화도 그런가????)

계약결혼이든 뭐든 아무튼 사랑없이 결혼하는 커플과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한 남자만 바라보는 한 남자.

그리고 공식처럼 찾아오는 시한부 인생까지...

정말 온갖 종류의 최류성 소재들이 총망라됐다.

게다가 너무 일방적인 감동과 슬픔을 강요하는것 같아서 개인적으론 좀 불편했다.

내가 무딘건지 아니면 이런 최류성 이야기에 공감을 못해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훌쩍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너무 민망할 정도로 멀쩡하게 관람했다.

 

관람하는 내내 중심인물인 민수 타나, 효진, 서영의 연기보다

오히려 주변인들의 연기가 훨씬 눈에 더 들어왔.

제일 기대했던 배우도 이갑선 배우였지만

역시나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라.

배우로서도, 인물로서도 묵직한 중심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해내고 보여줘서 감탄했다.

이갑선, 이이림, 구도균 배우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을 나는 훨씬 더 밋밋하게 봤을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세 배우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성적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 용감하고 과감하길 바랬는데.

덜 치열했고, 덜 직접적이었고, 덜 절망적이었다.

신파를 보여주는걸로 끝내서는 안됐다.

잔인할 정도로 정확한 현실을 보여줘야만 했다.

그게 사회적인 퇴출을 넘어 한 사람의 완벽한 매장으로 끝이 난다해도

잔인하게 치열하고 너덜거릴 정도로 고분분투했어야 했다.

이렇게 동화적인 판타지로 끝내버리는건... 

참 씁쓸하고 모호한 환상일 뿐이다.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온 사람은 안다.

드러내놓고 산다는게 얼마나 무섭고 거대한 공포인지...

그런데 이 작품 속에는 안타깝게도

그게 없었다.

 

삶은,..

여행일수도 있지만 끔찍한 지옥일 수도 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3. 19. 08:42

<히스토리 보이즈>

일시 : 2014.03.14. ~ 2014.04.20.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원작 : 앨런 베넷

연출 : 김태형

무대 : 여신동 

출연 : 최용민(헥터), 어명행(어윈), 오대석(교장), 추정화(린톳)

        이재균, 윤나무 (포스너) / 김찬호, 박은석 (데이킨)

        안재형(스크림스), 임준식(럿지), 황호진(팀스)

        이형훈(크라우더), 오정택(락우드), 손성민(악타)

제작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2013년 3월 이 작품이 초연됐을때 관람을 놓쳐서 많이 아쉬워었다.

솔직히 말하면, 관람 여부를 두고 고민하다 어영부영 공연이 끝나버렸고 그 뒤까지도 솔솔 들리는 입소문에 은근히 속이 쓰렸던 작품이다.

그래서 프리뷰를 예매했다.

고백컨데 요근래 관람 도중에 극도의 피곤이 몰려오는 경우가 꽤 많았다.

보통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번째는 작품 자체가 개인의 취향에 맞지 않은 경우,

두번째는 작품은 좋은데 관람 다시 내 몸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그리고 마지막엔 작품도 몸상태도 나쁘지 않은데 의아할 정도로 집중이 안되는 경우.

그래서 이 작품을 보기 전

제발 이 세 가지 경우 중 하나에 해당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이 작품!

3시간 동안 나를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아주 정직하게 유혹적이고 매혹적이더라.

그러니까 페러독스의 관능에 제대로 빠져버린거다.

어떻게 이런 괴물같은 작품이 있을 수 있을까?

아주 오랫만에 불같은 질투에 빠지게 만들었다.

만약에... 만약에...

나도 학창시절에 어위같은 교사를, 혹은 헥터같은 교사를.

그것도 아니면 포스너나 데이킨, 스크림스 같은 친구들이 있었다면,

혹은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내 인생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후회는 환상과 함께 모든 시간들을 휩쓸어버린다.

폭.풍.같.다.

 

그리고 무대 위 배우들.

어쩌자고 그렇게 모든 순간이 다 진심일까?

프리뷰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만큼 배역과 완벽히 몰입하고 있엇다.

배우들간의 신뢰와 결속력은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다.

세상 종말이 와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신뢰감이 느껴졌다면 이해가 될까?

기본적으로 한 명 한 명 다 좋은 배우이긴 하지만

무대에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는 삼승, 사승의 법칙으로도 계산 불가다.

이재균만큼 소년의 이미지가 명확한 배우도 흔치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이런 이미지가 이재균 배우의 한계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이건 그저 이재균이 갖는 필모그라피의 장점 하나일 뿐.) 

특히 박은석 배우는 이 작품으로 처음 알게 됐는데

노련함과 신선함이 함께 느껴져 정말 놀랐다.

작품과 배역에 대한 망설임이 전혀 없다.

중간중간 해설자같은 역할을 했던 스크림스 안재형의 타이밍도 정말 기가 막혔고...

솔직히 이 작품에 출현하는 배우들 연기에 대해 운운하는 거...

참 면목없고 염치없는 짓이긴 하다.

매 순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고

매 순간 각각의 인물들에게 더 깊이 몰입하고 빠져들었다는 고백이 진실일 뿐!

클라세같았던 영화, 시, 문학작품들.

이 작품 속에는 모든 게 다 있다.

연극도, 연극 아닌 것도 모두 다.

 

가치있는 가르침이 남긴 깊은 울림.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가 내게 붉고 진한 화인(化印) 하나 남겼다.

진심으로 가치 있는 작품이고,

진심으로 가치 있는 배우들이다.

 

 

넘겨주어라.

때로는 할 수 있는게 그것 밖에 없다.

받아서 느껴보고 넘겨주는 것.

날 위해서도 아니고

너희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고

다른 어느 곳 누군가에게 어느날 넘겨주는 것.

난 너희가 바로 그 게임을 배우기를 바란다.

넘겨주어라.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11. 14. 08:15

<멸(滅)>

부제 : 2012 국립극단 삼국유사 프로젝트

일시 : 2012.11.03. ~ 2022.11.18.

대본 : 김태형

연출 : 박상현

출연 : 정보석, 신덕호, 정나진, 우미화, 이동준, 이상홍, 김민하 외

 

국립극단의 "삼국유사 프로젝트"

이거 정말 엄청난 물건이다!

지금까지 네 편 모두를 봤는데 이 대단한 상상력들과 대단한 연기에 감탄 그 이상을 하게 된다. 

작가와 연출, 배우와 무대가 거의 엄청난 몰입과 집중으로 완벽하게 나를 유혹하고 붙잡는다.

관람하는 동안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결코 탈출은 꿈도 꾸지 못할 극형의 죄수가 되어 옴짝달짝 못하게 사로잡혔다고 할까? 

 

연극 <멸>은 "삼국유사 가이 제2" 가운데 김부대왕편을 모티브로 만들었단다.

좀 경력이 되는 작가의 대본이라고 생각했는데 신예 작가(김태형)라서 놀랐다.

역사의 빈틈을 무한한 상상력으로 날개를 달아 준 느낌이다.

사촌인 경애왕을 죽이고 신라 56대 왕에 오른 김부대왕(경순왕)의 종말로 향하는 욕망과

후삼국의 은밀하고 치열한 이권다툰,

마의태자의 비극적인 비화를 표현한 독특한 발상이 대단히 매혹적이었다.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되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입장에서 기록되는 거라고 했나!

그렇다면 나는 이 작품을 통해 다른 해석을 해보고 싶다.

역사는 상상하는 자에 의해 기록된다!... 라고

그런 의미에서 작가 김태형은 역사가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후삼국의 고대사를 현대적인 복장과 무대로 표현한 건 파격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심지어 실용적이라는 생각까지도 든다,

(연극에 "실용적"이라는 단어가 어울릴지는 모르지만...)

포석사의 교합제 모습도 박정희 정권의 삼청동 안가를 떠올리게 하고

마피아나 일본의 아쿠자의 세력다툼을 떠올리게 하는 왕위쟁탈전과

쿠테다로 정권을 잡고 장기집권을 꿈꾸던 김부대왕의 모습은

자꾸 우리의 현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보고 있으면 허를 찌름과 동시에 찬찬하고 부끄러운 복기(復記)를 하게 만든다.

 

어쩌면 역사 속에서 진실같은 건 정말 중요한 게  않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진실처럼 보여지는 게 중요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작품 속 김부의 대사처럼 성군(聖君) 따위는 애초에 없다는 말도 옳다!

어떻게 보여지는냐가 중요할 뿐이다.

그게 진실이고, 그게 역사가 된다.

세상에 영원한 단 한 가지.

욕.망!

그러나 욕망의 끝은 "잃음"이다.

그것도 모든 것을 온전히 잃어야 진정한 끝장이다.

아무 것도 남지않음을 알면서도 인간은 왜 끝없이 욕망하고 욕망할까?

어쩌면 인간은 욕망을 쫒는 게 아니라

파괴됨을, 무너짐을 쫒는 게 아닐까?

다 잃어봐야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극한의 쾌감.

그래서 기꺼이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권력을 잡기 위해 애쓰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타인의 피를 요구하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속성이란 벰파이어의 그것과 같다.

그러니 웃.어.라.

 

대사들의 팽팽함이 대단하다.

그리고 그걸 표현하는 배우들의 내공 역시 기막히다.

이건 매력적이라거나 매혹적이라는 말 외의 단어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이런 작품 다시 만나기란 배우 입장에서도, 관객 입장에서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떠오르게 하는 아비와 아들의 관계(김부-일, 견횐-신검),

마치 연인같은 모자 관계.

묘한 대립을 이루는 형제들(일-굉, 신검-금강).

온갖 애정과 애증의 관계들이 활어처럼 펄떡인다.

모든 인물들이 마치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진 전투용 칼같다.

무대 위를 종횡무진 사납게 찌르면서 격하게 파고드는 걸 보고 있으면 순간 아득해지진다.

권력의 가파른 상승과 몰락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무대도 의미심장했고

이런 비극적(?)인 내용에 의외로 생기발랄(?) 음악을 사용한 것도 이색적이다.

극의 초반부 교합제를 올리는 신모의 대책없이 어색한 랩과

장난감 총소리같던 조잡한 음향 따윈 충분히 용서될만큼 멋진 작품이다.

그래도 마지막 장면은 도저히 한 마디 안 할 수 없다.

극장 옆구리가 열리면서(?)

강풍기로 낙엽이 날리는 장면은 지금껏 이 작품에 갖던 경외감을 일순간 무너뜨렸다.

욕망을 쫒던 김부의 허망하고 초라한 역사적 퇴장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건 알겠는데

보는 입장에서는 참 코믹하고 황당하게만 느껴졌다.

심지어 강풍기 옆에서 최대한 몸을 숨기고 낙엽을 뿌리고 있을 스텝의 모습까지 떠올라 혼자 민망했다.

스텝들이 잘 막고 있어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문이 열렸는데 의도치 않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배우도, 관객도, 문 앞의 사람도 참 황당하겠다 싶다.

이것 좀...

어떻게 해주시면 안 될까?

 

모든 배우들이 다 아름다웠지만

특히 정보석, 이동준, 이상홍의 연기가 각인되듯 남는다.

목소리톤과 딕션, 감정 표현이 그야말로 끝장이었다.

배우 정보석인 이 작품이 "시대를 파괴하면서 배우에겐 많은 자유를 줬다"고 했는데

그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겠다.

 

이 작품.

치열하고, 아름답고, 그리고 깊다.

아마도 한동안은 거듭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기억에서 결코 쉽게 멸하지 않을 작품이다.

滅하지 않을 滅이라...

이 또한 모순이겠지만 어쩌라!

그게 진실인 걸.

 

* 이제 삼국유사 프로젝트 한 작품 남았다.

  "로맨티스트 죽이기"

  역시나 무지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중이다.

  이번엔 잊지 않고 조기예매를 했다.
  <멸>은 조기예매를 놓쳐서 문화릴레이티켓으로 예매했었다.

  (당연히 조기예매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확인하니 예매를 아예 안 했더라.)

  게다가 당일날 티켓을 안 가져가 6000원을 현장 지불했다.

  지갑 속에 <꿈>, <꽃이다>, <처용은...>을 계속 가지고 다녔었는데

  공연 보는 날 아침 뭐에 씌였는지 3장 전부를 티켓 모아놓는 가방에 곱게 넣어버렸다.

  아침에 내가 한 일도 기억 못하고 막상 공연장앞에서 티켓을 찾다가 잠깐 맨붕 상태가 되버렸다.

  챙길 건 잘 챙기자!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3. 2. 06:06

<모범생들>

일시 : 2012.02.03. ~2012.04.29.
장소 : 아트원 씨어터 3관
출연 : 이호영, 정문성, 김종구, 박정표, 김대종, 황지노,
        김대현, 홍우진
대본 : 지이선
연출 : 김태형

2007년 초연된 이래 꾸준히 공연되는 작품이다.
워낙 탄탄하기로 입소문이 난 작품인데 이번에 새로 업그레이드 작업을 했단다.
그전에 공연된 걸 못봐서 어떻게 변화가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공연되는 모습은 참 괜찮다.
배우 한 사람 한 사람의 힘과 조화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조명과 무대, 배우들의 의상과 음향, 음악도 눈에 띈다.
비틀즈의 Let it be, 영화 대부의 주제곡, 사랑의 찬가 등...
아마도 학벌 제일주의인 대한민국이기에 공감을 할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교육열의 개념이 우리나라는 참 이상하게 자리잡은 것 같다.

대한민국 교육의 목적은 단 하나!
남들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
그렇다면 잘 산다는 건 또 뭘까?
돈이 많아(그냥 많아서는 절대 안되고) 노블리스한 상위 3% 안에 들어가는 게 잘사는 거다.
멋지다.
그들만의 세상!
연극은.
그런 현실을 그대로 까발리고 있다.



명준 정문성, 수환 박정표, 민영 홍우진, 종태 황지노.
네 명의 배우들의 열연은 진심으로 싸나이답게 멋졌다.
흡사 뮤지컬 <빨래>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캐스팅이라 좀 걱정스러웠지만
(그나저나 <빨래>도 한 번 봐야하는데...)
역시 배우는 배우다!
선함과 비열함을 동시에 지닌 정문성의 연기에 감탄했다.
밉지 않게 깐죽거리는 수환 박정표의 맛깔스러운 연기도...
그리고 무옷보다 대사들이 좋다.
너무 잘 썼다.
내가 남자는 아니지만
내 학창시절과 비슷한 광경이 펼쳐져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다.
학력고사라... ^^
참 오래된 이야기다.

 


배우들의 감정과 딕션, 표정 전부 좋다.
뮤지컬을 많이 한 배우들이라 그런지 퍼포먼스 동작들도 자연스럽고 강약표현도 잘 한다.
자칫 잘못하면 과장된 연기가 나올법도 한데
경계선을 잘 지키면서 무리없이 네 배우가 잘 끌고 간다.
젊은 배우들인데 참 용키도 하다.
(진심으로 이들의 건투를 빈다!)

사실 연극을 보면서는 좀 무서웠다.
민망할 정도로 사실적이고 노골적이어서...
국적은 바꿀 수 있지만 학적은 바꿀 수 없다는 명준의 대사.
그렇구나.
대한민국에서 학벌은 그런거구나.
모든 죄를 종태에게 덮어씌우고 명준과 수환의 선량한 눈빛과 모범적인 대사가 등골을 후려친다.
"아시쟎아요!
 저희 모범생들인 거!"
모범적인 사람들이 모범적으로 만든 모범적인 나라에 소리없이 작은 칼날이 꽃힌다.
모든 모범은 성실하다.
언제나 그렇듯 그들만의 방식으로...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