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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08 <저지대> -헤르타 뮐러 1
  2. 2009.04.19 달동네 책거리 41 : <책 읽어주는 남자>
읽고 끄적 끄적...2010. 11. 8. 06:33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루마니아 작가 헤르타 뮐러.
얼마전에 <숨그네>를 읽고 얼마나 매혹당했던지...
너무 늦게 그녀의 글을 알게 된 게 맘이 상할만큼 너무나 아름다웠다.
한 줄, 한 줄 내려쓰면 그대로 시가 되는 그녀의 소설은
마치 그림을 보는 것 같고 시를 읽는 것 같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도 그렇게 보석같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신비에 가까운 놀라움이자 경이로움이었다.
소설 <저지대>는 모두 19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1982년 처음 출간될 당시에는 검열로 네 편이 삭제됐었고
나머지 열다섯 편도 대폭적은 삭제와 수정을 거친 후에야 출간될 수 있었단다.
자국 루마니아에서조차 금서 조치까지 내려졌던 그녀의 첫 소설 <저지대>
정치는, 이데올로기는
항상 문학을 두려워하고 급기야 기를 쓰고 억압하려 든다.
그러나 문학은 결국은 이 모든 걸 보란듯이 이긴다.
아름다움이라는 치명적이자 결정적인 무기로...
 


헤르다 뮐러의 소설은 난해하다.
아니 아예 줄거리조차 갖추지 못한 단상들도 많다.
그러나 읽고 있으면 
시를 읽는 것 같고
평화로운 전원 풍경을 그린 그림을 앞아 두고 있는 느낌이다.
불안감 가운데 느껴지는 평온함!
이상하지?
그닥 평화롭고 아름다운 내용이 아닌데도 그렇다.
오히려 비루하고 남루한 사람들의 보잘 것 없는 이야기인데도
나는 그 속에서 지독한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만다.
풍경과 대비되는 사람들의 삶!
그게 바로 현실이기에 눈물나게 아름다운걸까?
잔인하리만큼 솔직하고, 지독히 슬픈!
헤르타 뮐러가 창조해낸 비범한 목소리.
컨템퍼러리 픽션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이 표현은...



나치가 몰락하고 루마니아 독재정권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지던 그녀의 고향 마을.
헤르타 뮐러는 그곳을 이렇게 표현했다.
“모든 것이 고여 있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감옥과도 같은 곳" 이라고...
소설 <저지대>는 그 감옥과도 같은 곳에 살고 있는 어린 아이의 일인칭 기록이다.
무관심, 음주, 폭력, 가난.
죽은 아비의 장례식에서 과거 아버지가 저지른 일들을 듣는 딸.
그것도 이웃 사람들에게...
침묵도 웃음이고, 슬픔도 조롱이고, 현실은 거짓이다.
중, 단편의 모음이면서도 한가지 이야기이기도 한 소설.
때로는 몇 줄의 시도 대하장편 소설이 될 수도 있다는 걸
헤르다 뮐러의 언어적 표현을 통해 절감했다.
"목소리 없는 유년 시절"
그녀는 그 시절을 그렇게 말했다.
헤르타 뮐러는 “자기 둥지를 더럽히는”, “수프에 침을 뱉은” 작가로 낙인찍히며,
말 그대로 사회에서 축출당했다.
마을 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지나가는 뮐러를 향해 침을 뱉었으며,
뮐러의 가족들은 마을에서 고립되고 말았다
<저지대> 출간 후 해르다 뮐러는
보수적인 독일 소수민 사회에서도, 루마니아 사회에서도 배척당할 수밖에 없었단다.
원하는 작품을 쓸 수도, 루마니아 독재정권에 협조할 수도 없었던 그녀는
결국 1987년 독일로 망명한다.
그러나 독일에서도 그녀는 언제나 루마니아인이었단다.

소설의 뒷부분에 그녀가 2009년 노벨 문학상을 받을 당시의 연설문이 실려있다.

“어떤 면에서 사람은 언제나 타자인 것 같다.
한번 그곳에 소속되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나는 죽음의 공포에 삶의 욕구로 반응했습니다.
삶의 욕구는 낱말의 욕구였습니다.
오직 낱말의 소용돌이만이 내 상태를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낱말의 소용돌이는 입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을 글로 표현해냈습니다.”


통증은 너무 강렬해서 스스로 저 자신을 파괴한다고 했던가?
그래서 헤르타 뭘러의 소설이 이렇게까지 처연하게 아름다울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확실히 파괴를 통해 창조의 유토피아를 만들어냈다.
굴욕을 품위로 바꾸는 그녀의 글들.
많은 걸 잃었기에, 그리고 그 잃음을 견뎠기에
그녀의 글들은 시가 되고 그림이 되고 빛이 된다.
더 많은 낱말들을 사용할수록 우리는 더 자유로워진다고 그녀는 말한다.
낱말이 주는 자유...
어쩌면 내가 책 속에서 그토록 헤매는 이유도 이것 때문은 아닐까?
헤르다 뮐러는...
적어도 그녀의 글은
정확하고 분명했다.
그리고 지독히... 지독히... 아름다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4. 19. 23:00
 
<책 읽어주는 남자 > - 베른하르트 슐링크


오늘도 역시 특별한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자극적이고, 관능적이며 모호하고, 몽환적인 책, 심지어 무기력하기까지 한 책.
먼저,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
법대 교수이자 판사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네요.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이력이 참 재미있습니다.
판사가 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
논리적이고 너무나 현실적인 직업의 판사, 그리고 비현실과 상상 세계의 탐험자인 작가... (우리나라에도 어느 날 이런 조합이 한 번 나타나주면 참 좋겠습니다)
올 2월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가 바로 이 책을 가지고 만든 영화죠.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은 책 표지가 “케이트 윈슬렛”의 모습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예전에 출판된 책의 표지는 지금과는 많이 다릅니다.
빨간 배경 한 켠에 그림이 보이네요. 한 남자의 손. 여자의 벗은 몸에 손을 올리고 있는 성장한 남자의 손. 책의 뒷면으로 가면 그림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꽤 오래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표지가 좀 더 강렬한 빨간색이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림은... 약간 카툰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쁘지 않습니다. 책의 내용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여서요.
그 손은,
그러니까 한 여자를 읽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막 그녀의 첫 페이지를 넘기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왠지 떨리네요. 마치 주인공의 간절함처럼...


한 남자가 있습니다.
세 번, 이 남자는 “한나”라는 이름의 한 여자와 일생동안 세 번 관계됩니다. 그것도 아주 깊게 그리고 은밀하게 마지막엔 지배적으로 말이죠.
첫 번째는 15살 어린 소년이었을 때였습니다.
학교에서 귀가하는 길에 소년은 느닷없는 구토 증상을 경험하죠. (이 부분, 참 재미있습니다. 예전 책엔 “황달”이라는 병명으로 나오는데 지금 책은 “간염”이라고 나오네요. 해석의 오류였을까요?)
오물로 더럽혀진 소년을 데리고 들어가 깨끗이 씻겨 집까지 데려다 준 사람이 바로 36살의 그녀, “한나 슈미츠” 입니다.
도덕성에 대한 비판의 여지가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처럼 이야기되고 있지만,
어쨌든 15살 소년은 36살 한나를 통해 육체적인 성에 눈 뜨게 됩니다.
결과는 뻔하죠, 꼬마(그녀가 그를 그렇게 부릅니다)는 도무지 그녀 곁을 떠나지 못합니다. 급기야 학교 공부도 소홀하게 되죠.
그런 소년에게 한나는 말합니다.
“공부를 하지 않으려면 다시는 찾아오지 마!”...
그들에겐 어떤 의식 같은 절차가 있습니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나누기, 같이 누워 있기
그녀는 항상 그에게 책을 읽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모든 의식의 시작은 “책 읽어주기”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셈이죠.
수영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는 소년을 본 그녀는 다음날, 사라져 버립니다. 살고 있던 집을 비우고 승진시켜주겠다는 전차 회사도 그만둔 체 갑자기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녀의 실루엣은 그대로 소년에게 남겨집니다.

다시 그녀를 보게 된 건,
나치 강제 수용소와 관련된 법정에서였죠.
그녀는 가스실행 인원 선별 작업을 수행하던 여자감시원 중 한명으로 기소되어 있습니다.
다른 모든 피고인들이 문서와 보고서는 한나가 썼다고 주장합니다. 그녀는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심지어 스스로 시인하기까지 합니다. 결국 종신형을 선고받죠.
그러나 그는 알게 됩니다.
그녀가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른다는 걸...
그는 그 상황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자, 이제 그도 더 이상 자유로울 순 없게 된 셈이네요.
법정에서 한나는 판사에게 되묻습니다.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라고...
어쩌면 그는 판사를 향한 질문을 자신에게 돌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나에게 향하는 손가락질에 개입하지 않고 그 손가락질을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스스로 수치심의 고통을 선택한 것처럼 말이죠.

세 번째 그녀와의 대면,
그는 지난 10년간 한나에게 책을 녹음해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편지를 보내진 않았죠. 심지어 그녀가 편지를 보냈을 때조차도 그는 답장을 쓰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교도소장이 그에게 연락을 합니다.
그녀의 사면을 알리면서 18년 동안 갇혀 지낸 한나의 사회적응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죠.
한나에게 우편물을 보낸 유일한 사람이 바로 그였으까요.
마침내 사면되는 날 아침, 한나는 스스로 목을 매 자살을 합니다. 그녀가 남긴 유품들을 정리하던 그는 오래된 신문 기사를 발견합니다.
자신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이 실린 신문 기사를 말이죠.
교도소장이 말합니다.
“그녀는 당신과 함께 글 읽기를 배웠어요....”

문맹은 미성년 상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한나는 그를 통해 읽고 쓰기를 배움으로써 드디어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성장한 셈이죠.
그가 한나를 통해 비로소 성년이 된 것처럼...
그렇다면 이 책,
사랑에 대한 책일까요?
전 사랑 보다는 지독한 그리움에 대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을 관통한 강렬한 그리움. 그 날카로운 대한 기록이라구요.
때론, 누군가에겐 패배가 승리가 될 때가 있습니다.
평생 한나의 실루엣에 휘감겨있던 그.
이제 그는 고향에 돌아온 셈이네요.
약간의 위장도 이젠 필요하지 않을 테죠. 완전히 자신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자유를 손에 쥐었으니까요. 그녀의 자유 그리고 그의 자유 모두를 말입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선택했다”
그의 고백입니다.
이쯤 되면, 당신의 표정 또한 궁금해지네요....


*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는, 케이트 윈슬렛에게 2009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겨줬습니다.

그런데 이 배역에 많은 사연이 있었다는 사실 아세요?

원작자는 처음부터 케이트를 주연으로 원했는데 당시 한창 촬영중인 영화가 있어 그녀 스스로 캐스팅을 고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티븐 달드리 감독과 <디 아더스>에서 함께 작업했던 니콜 키드먼에게 그 역이 돌아갔고 촬영이 시작됐다고 하네요. 그러나 그녀의 임신으로 촬영은 중단되고 말죠.

그 사이 전작의 촬영을 다 마치고 쉬고 있던 케이트 윈슬렛에게 다시 한나 역이 돌아가게 된 거라고 합니다. 결국 그녀는 이 역으로 아카데미의 꽃이 됐구요.

소년을 연기한 데이비드 크로스 역시도 사연이 있네요.

촬영 시작 당시 그는 미성년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작진들은 영화가 공개되었을 때 닥칠 후폭풍을 염려해서(의외로 미국이란 나라 보수적이쟎아요...) 영화에 등장하는 베드신은 그의 18세 생일에 급히 촬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화 시사회 후 몇몇 장면들에 대해 윤리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원작을 보면, 처음엔 강한 거부감이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처음 생각과는 분명 달라져 있을 거예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대체 어떤 내용이 기다리고 있길래 달라지게 되는지.....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