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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28 <상실의 풍경> - 조정래
  2. 2009.12.14 <구월의 이틀> - 장정일
읽고 끄적 끄적...2011. 3. 28. 06:35

조정래의 1970년대  초기작품을 모아 재판된 책 <상실의 풍경>
그를 두고 왜 대가라는 말을 거침없이 쓰는지 충분히 알 것 같다.
<태백산맥> 10권, <아리랑> 12권, 그리고 한강 <10권>
나는 그동안 그의 대하소설이나 장편소설에만 너무 익숙했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분량이 주는 위대함과 동시에 내용이 주는 거대함의 압도이기도 했다.
그의 단편들을 눈에 담는건,
조금은 당혹스럽고 익숙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몇 장을 읽지도 않았는데도 그만 그 속에 푹 빠지고 만다.
작가 조정래는 또 다시 70년대 그 격변의 현장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 역사가... 그 시간이...
명확하고 분명하게 실감된다.
그의 글들은 내가 결코 알지 못할 시간들을 직접 체험하고 육화하게 한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누명
선생님 기행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빙판
어떤 전설
이런 식(式)이더이다
청산댁
거부 반응
상실의 풍경
타이거 메이저 

이젠 전부 역사 속의 일이다.
여순반란사건, 베트남 전쟁,
그리고 월북한 아비로 인한 대를 이은 빨갱이 낙인,
연좌제라는 몰상식의 폭력은 아들의 소위 임관 자격을 박탈함으로써
건장하고 유망한 청년의 일생을 하루 아침에 바닥으로 내동댕이친다.
조정래는 말한다.
"유전병치고도 아주고약한 유전병"이라고...
그런데 지금 이 모든 것들은 정말 과거의 이야기에 불과할까?
전쟁, 피난, 미군, 카투사. 그리고 한국군에 대한 차별...
전후복구 세대들의 지독한 가난과 살아가기 위한 치열함.
한 편 한 편의 역사와 시간을 읽는 건,
곤욕이었고 비참함이었고 억울함이었다.
그리고 아련하게나마 이런 느낌을 갖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지금의 나인 것 같다.

조정래를 생각하면 <태백산맥>의 논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보안법상의 이적 표현물과 적에 대한 고무 찬양!
한때 이 책은 절판이 되기도 했었다.
1992년에는 이런 웃지 못한 대검 발표도 있었다.
"학생이나 노동자들이 읽으면 불온서적 소지, 탐독으로 의법 조치할 것이며,
  일반 독자들이 교양으로 읽는 경우에는 무관하다"
정말 황당하지 않나?
누가 읽느냐에 따라 위법의 여부가 결정된다는 사실이...
시덥잖은 권력에서 시작된 폭력은 그 몰상식으로인해 더 잔인하고 비열하고 비겁하다.
그 비바람의 폭력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버텼던 직기 조정래가
그래서 나는 신화처럼 위대하고 거대하고 신비롭다.

확실이 전후의 우리 문단은
그로 인해 풍성했고 의미심장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2. 14. 06:12
놀랐다.
<아담이 눈뜰 때>의 작가 장정일이 무려 10년만에 쓴 소설 <구월의 이틀>
그리고 또 놀랐었다.
그가 변한 것 같아서...
그런데 역시 그는 변하지 않았다.
동시에 또 많이 변하기도 했다.
20대 초반에 만난 장정일이란 작가는 내겐 거부감과 동의어였다.
너무나 과감하고 노골적인 성적인 표현이 심한 불쾌감까지도 느끼게 했다.
그의 소설들은 그런 초기의 선입견으로 인해 참 안 읽었다.
그에 반해 그가 쓴 <독서일기>들은 참 잘도 찾아 봤었는데...



금과 은이 은과 금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섬뜩하리만치 무섭다.
결국 정치는 그것을 버리고 문학의 길을 선택하고
작가는 위조지폐범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체 신 우익의 정치 의식 앞에 자리를 내준다.
어쩌면 세속 국가이기에 가능한 역할 바꾸기인지도 모르겠다.
"우익청년 탄생기"라는 설정은 오히려 너무나 신선하기까지하다.
읽으면 읽을 수록
재미 이외의 것으로 인해 숨이 막힌다.
이 세기에 대한 조롱이었을까? 아니면 희망이었을까?
노무현 대통령 집권 전반에 대해 작가 장정일은 우익인가? 좌익인가?
복잡해진다.
류시화의 시 <구월의 이틀>을 꼼꼼히 읽어보면 답이 나올까?



대문학이란 "대작가"가 쓴 것이다. 대작가란 바로 "죽은 작가", 곧 작고한 작가를 말한다. 그렇다고 오해는 말아라. 죽은 작가들이 다 대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작고한 지 몇 백, 몇 천 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우리와 같은 현대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사색의 기원이 되어주는 살아 있는 작가, 죽은 지 오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의 고민이나 세계의 곤경을 풀기 위해 찾아볼 수밖에 없는 작가. 그런 작가가 대작가다. 아무리 유명하거나 업적이 탁월하더라도 아직 살아 있다면 그냥 "작가"이고, 좀 더 미안하지만 죽고 나서 점차 잊히기 시작한다면 그 또한 작가다. 요약하자면 작가들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작가생활"을 시작한다. 살아생전의 작가생활은 호구를 면하기 위한 고통에 불과하지만, 죽는 순간부터 시작하는 제2의 작가생활은 망각과의 싸움이다. 그런 뜻에서 지금 살아 있는 작가들은 진정한 작가생활을 하고 있는 게 아니고, 그냥 호구를 면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죽었으면서도 여전히 작가생활을 하고 있는 작가가 대작가이고, 그런고도 대문학은 절대 옛날 작품이 아니다.



우리가 김대중이나 노무현을 따르는 무리를 향해 "빨갱이"와 같은 인장을 찍어대는 것은, 그만큼 우리들에게 논리가 없기 때문이야. 달시 말해 저 인장들은 그들과 더 말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결단을 보여주는 것들이지. 그런데 그들과 더 말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결단은 바로 우리들이 쓸 수 있는 논리가 풍족하지 않다는 것을 역으로 드러내주는 증거고, 저 인장들이야말로 논리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우리의 탄식이나 같은 거야. 논리로 못 이기니까, 무턱대고 "빨갱이"와 같은 낙인을 찍는 거지. 이미 우리는 이승만 시절부터 "말 많으면 빨갱이"라는 말을 사용해왔는데, 그것의 반대말이 "할 말 없는 우파"지. 이처럼 논리에서는 지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게, 우리들의 한계고 절망이야.
한마디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은 김대중에 이어 연속해서 진보 정권이 들어선 것에 위기를 느낀 보수주의 세력의 사활을 건 총궐기였으며, 노무현 이후 세 번이나 연속해서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 다시는 자신들이 발붙일 곳이 없다는 조바심의 발로였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위조지폐범이 된다는 말이야. 그건 죄지. 왜냐하면 도능 중앙은행에서만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야. 돈만 그런 게 아니라 한 국가나 사회에서 통용되는 윤리나 가치, 질서나 신념 따위도 공인되거나 권위를 가진 합법적인 기관을 통해야해. 그런 걸 만드는 곳이 바로 법원이고 학교고 종교지. 기관은 아니지만 전통이나 고전 같은 것도 공인된 가치를 찍어내는 무형의 기관이랄 수 있지. 그런데 작가는 그런 기관에서 만들어내는 것과 다른 가치를 만들어 퍼뜨리는 사람이야. 다시 말해 중앙은행에서 찍은 게 아니라 불법으로 찍은 위조지폐를 유통시키는 사람이 작가지. 일단 나는 그럴 능력이 없어. 게다가 나는 워낙 중앙은행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속물이기도 해. 언젠가는 보란 듯이 중앙은행의 총재가 되고 싶지. 위조지폐 따위나 만들며 한평생을 사는 건 좀스러워



(금) : 나는 소설을 쓰겠어. 언젠가 너의 중세의 알레고리였던 "바보들의 배"에 비유해서, 문학을 "패배자들의 배"라고 불렀지. 문학은 세상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타는 배나 같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아까 말한 국민작가라는 개념으로부터, 나는 문학이란 현실로부터 패배한 자들의 산물이라는 일반적인 솔설은 물론이고 너의 위조지폐범론을 뛰어넘는 가능성을 발견했어. 그건 네가 하려는 정치보다 보잘것없거나, 힘이 없는 게 결코 아니댜.

(은) : 나는 배의 바닥짐 같은 사람이나 가치를 좋아해. 바닥짐을 싣지 않으면 강한 바람이나 큰 파도에 휩쓸려 난파할 우려가 커. 그래서 멈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반드시 바닥짐을 싣고 다녀. 바닥짐이 없으면 배가 침몰하는 것처럼, 보수가 없으며 국가나 사회도 뒤집어져. 그래서 나는 보수주의자가 됐어.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