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09. 11. 30. 05:51
 <죽도록 책만 읽는> - 이권우



죽도록 책만 읽는

지난번에 소개한 간서치 이덕무와 유사한 책벌레의 책을 한 권 소개하려고 합니다.

책을 읽고 싶은데 어떤 책을 읽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고 생각되는 분께 적극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일곱 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침 없이 다방변의 주제에 대한 책들을 적당한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하도록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이 책을 보면서 희망도서 목록에 상당한 책들을 추가했고 지금 열심히 읽고 있는 중입니다.

저처럼 두루뭉술하게 주절주절(?) 책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에센스만을 짧고 간략하게 소개해 주고 있는 책입니다.

솔직히 꽤나 열등감과 부러움을 자아내게 만드는 책이죠.

그래도 평소에 책 좀 읽는다고 자부했었는데 이곳에 소개된 책들을 살펴보고는 읽지 않은 책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알고는 번데기 앞에 주름잡은 스스로에 대해 반성하게 만든 계기도 됐습니다.

책의 저자 이권우!

서평잡지 <출판저널>의 편집장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책에 파묻혀 지냈던 사람이고 현재도 책을 통해 여전히 밥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호모 부커스”를 자처하는 사람이기도 하죠.


“호모 부커스”

책 읽는 인간 존재라는 뜻의 신조어죠.(사실은 꽤 오래된 단어이긴 합니다만...)

이 말 속에는 “공유”의 의미도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흔히 독서라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책 읽는 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저 또한 “공유와 소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가 개인과의 생각과 감정 공유를 넘어 더 많은 타인과의 적극적인 소통의 시작이 “독서”의 매력이라고 개인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모 부커스”들은 상당히 개방적이며 지독히 현실적이기까지 하죠.

어설픈 독서가들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혼동을 겪게 되지만 “호모 부커스”들은 현실과 이상을 명확하게 구분함으로써 스스로 최대한 편견 없이 판단하고 평가하는 공정함까지 소유하게 됩니다.

“박학다식”이라는 말 속에 항상 “다독”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기도 하죠.

눈이 갖는 기억력, 그래서 저는 책을 통해 얻게 되는 기억과 지식들에 대해 차별성을 두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은 말이죠...

사람을 참 조용히 수다스럽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 책, <죽도록 책만 읽는>도 그런 의미에선 상당히 수다스러운 책이죠.

그런데 그게 “바글바글” 떠들며 밖으로 퍼지는 소란스러움이 아니라 “소곤소곤” 다가오는 울림이라는 게 그 차이점이죠.

무려 110권이나 되는 책들의 수다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신문을 펼쳤을 때 부담감 없이 재미있게 보게 되는 한 컷짜리 카툰 같다고나 할까요?

짧은 글 속에 필요한 것들만 쏙쏙 알차게 들어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글 속에 촌철살인의 문구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가령, “고전”에 대해 말하면서,

“고전, 제목은 알아도 정작 읽어보지 않은 책”이라는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를 시작하죠.

“...... 오늘, 다시 고전을 읽는 데는 다른 무엇보다 토론과 논쟁의 정신이 필요하다. 세월의 담금질을 겪으면 겪을수록 그 정신의 순도가 높아지는 것을 일러 고전이라 한다. 앎과 지혜의 고갱이가 가득 쌓인 곳간인 셈이다. 그러나 이 곳간은 좀처럼 자신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지적 호기심이나 의무감만으로 고전을 읽으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정도로는 권위와 명성, 그리고 오해의 더께가 잔뜩 끼인 고전의 빗장을 열어젖힐 수 없다. 나는 고전의 문을 여는 열쇠는 치열한 문제의식이라고 여겨왔다. 우리 시대의 문제상황을 깊이 이해하고, 그 타개책을 찾기 위한 지적 분투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질문만들기’라 할 수 있다.

질문을 만든 사람이 고전을 경전처럼 여길 리 없다. 고전의 지은이와 토론과 논쟁을 벌이게 마련이다. 막장을 뚫고나갈 지혜를 묻고, 그 답이 현재적 가치가 있는지 토론한다. 도전적인 토론은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지은이의 사상이 안고 있는 한계가 드러나며, 이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을 찾게 된다. 이쯤 되면, 고전의 주위를 맴도는 지은이라는 ‘유령’이 가만히 당할 리 없다. 해석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자신의 다른 책을 참조해야 한다고 복화술로 변호하기도 한다. 고전을 읽는 행위는, 그러므로 묵독일 수 없다. 제대로 읽으면 그것만큼 소란스러운 책읽기가 없다. 자신도 모르게 카니발적 책읽기에 몰두하게 된다..... “

고백컨대, 

저를 완벽히 KO패 시킨 문구였습니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책은 그러니까 “앎과 함”의 일치를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행위라고 이 책은 말합니다.

환상은 현실보다 힘이 세다고 하죠. 그래서 우리는 환상에 머물고픈 욕망에 늘 빠지게 됩니다. 그게 어쨌든 일반적인 힘의 논리니까 말입니다.

책은. 그러니까 그 환상을 극도의 차가운 정열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카더라” 통신에 빠지지 않고 바른 시각과 주관을 갖게 만들어 주죠.

생각해보면 정말 책만큼 누구에게나 민주적인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책장을 열기만 한다면 누구에게나 공평한 세계를 그것도 비밀 없이 송두리째 보여주죠.

“다 열어보였으니 어디 한 번 맘껏 들여다봐라!”

책벌레들을 그래서 흔히 관음증 환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책에 새겨진 다른 사람의 욕망을 책장을 커튼 삼아 훔쳐보는 책벌레들...

그러나 책을 탐하는 관음의 시선은 훨씬 더 근원적이고 깊고 고요합니다.

책을 구하고, 읽고, 즐거움을 나누는 모든 과정에 대한 일종의 은밀한 흥분감이죠.

그래서 책의 자궁이라는 것이 있다면 저 역시도 기꺼이 몸을 웅크려 작은 태아가 될 용의가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죽도록 책만 읽어도” 다 읽혀지지 못할 책들의 세계.

그 책들의 세계 속에 몸을 웅크리고 지독히 탐욕스런 관음의 시선으로 책들을 바라보자 권하고 싶습니다.

마술사의 비밀을 아는 순간 눈속임의 실체가 드러나는 게 아니라 드디어 스스로 같은 마술사가 되는 거라고 하죠.

오늘 해리포터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자 여러분께 손 내밀고 싶습니다.

깊고 고요하고 간절하고 농밀한 관음의 세계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12. 06:32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 조용헌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이 책은 한 네 번쯤 읽은 것 같아요.

뭐랄까. 읽으면 읽을수록 진국이 스며드는 느낌이랄까!!

오래 묵은 빛깔 좋고 향 좋은 장 같은 느낌...

이 책은 우리 병원 도서관에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대출해서 읽고 있는 책 중에 한 권이고, 지금 현재도 제가 대출해서 가지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특별함은...

명문가(名門家)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해 준다는 점에 있습니다.

흔히 지금의 명문가는 재산의 정도에 의해 평가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많은데 4백, 5백년 동안 명문가라는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도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 우리나라에는 “노블리스”의 개념이 “럭셔리”의 개념으로 이어지면서 졸부들의 부티크 문화 형태를 띄고 있긴 하지만, 그 진정한 의미는 상류층(지적이든, 물적이든)의 도덕적 의무감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이탈리아가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도 거상 메디치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듯이 우리나라도 그에 못지 않은 명문가가 있다는 건 참 어깨 으쓱한 일입니다.

메디치가가 이탈리아 정부에 가문 대대로 모아온 문화제, 예술품을 기증하면서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는 걸 아시나요? 조건은 단 하나였다고 합니다.

“절대로 이 문화제를 다른 나라에 반출시키지 말 것”이라는 조건...

이쯤되면 그냥 거상이라고 하기에 너무 민망하지 않을까요?


이 책에는 그런 우리나라 명문가 15곳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먼저, 경주 최부잣집.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달성한 집안입니다.

어릴 때 어르신들이 “경주 최부잣집 재산이라도 못 남아 나겠다”라는 말을 하셨었는데 그땐 그게 무슨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인 줄 알았었습니다. 뭐 신화나 전설처럼요...

그런데 실제로 12대동안 만석의 재산을 유지한 유일한 우리나라 거부라고 하네요.

그러면서도 흉년에는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풍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흉년기에 논밭을 사는 일도 금지했구요.

심지어 재산이 만석이 넘어가면 무조건 사회에 환원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사회 환원 방법은 소작료를 낮추는 거였다네요. 그래서 소작인들은 최부잣집 재산이 늘어나는 걸 오히려 반가워했다고 하니 요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은 부분입니다.

결국은 그 모든 재산을 전부 영남대에 기부하고 지금은 필부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조에 대한 자부심이 허뜬 삶을 살 수 없게 한다고 후손들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명문이라는 건 그런 것 같아요.

재산이 아니라 자부심과 자긍심을 후손에게 남겨주는 거...

그런가 하면 하인들에게 쉴 수 있는 정자를 마련해준 가문도 있고, 재산이 아닌 지식을 남기기 위해 “인수문고”라는 문중 문고를 만들어 최고의 민간 아카데미를 만든 남평 문씨 문중도 나옵니다.

말로만 듣던 3년 시묘살이(부모가 사망했을 때 3년 동안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생활하는 것)를 직접 시행한 예산 이씨, 5대째 걸출한 화가를 배출하고 있는 양천 허씨 문중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신기하게 다가오는 것은,

“풍수”라는 사상이 그냥 허투루 생긴 게 아니구나 하는 겁니다.

책의 저자는 풍수에 관계해서 이 명문가들의 고택들을 해석하고 있는데요, 풍수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떠어떠한 지형은 구도자가 많이 나오는 지형이고, 어떤 지형은 문필가가 나오는 지형, 또 어떤 지형은 예술가가 나오는 지형이 있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몇 대를 이어 그런 자손들이 나옵니다.

뭐 풍수라는 게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도 있겠지만 어찌됐든 좋은 풀이로 고택들을 조망한 게 솔솔한 재미를 줍니다.

그리고 멋진 고택들을 찍은 흑백사진들이 참 아늑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찾아가 보고 싶다는 유혹이 느껴질 만큼요...

그러면서 종가나, 명성 있는 고택을 보전하고 유지한다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저와는 하등 관계없는 문중들이라지만 그 존재들이 사라지는 게 참 안타깝고 씁쓸하네요.

진정한 명문가란 “고택을 유지하는 가문이다”라고 말한 작가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멋진 옛집들을 보면 “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라고 꿈꿨었는데...

그 말의 현실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알고 나서는 함부러 이런 말을 꺼내기가 송구스럽기까지 하네요.


혹 여러분들도 명문가를 꿈꾸시나요?

지금까지의 운명을 바꿔 진정한 명문가로 거듭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릴까요?

4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① 적선(積善)     ② 명찰(明察)     ③ 풍수(風嗽)   ④ 다독(多讀)


위 방법들에서 제가 노려봄직한 것은 역시 ④번 하나밖에 없네요.

그런데 참 기분 좋은 일 아닙니까?

다독이 운명을 바꿔 명문가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니...
다...독...이...라...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