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4. 08:41

아크로폴리스를 보고 디오니소스 원형극장을 내려와 조금만 걸으면

"신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외국여행을 가면 일부러 박물관을 찾아가는 편인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루트가 연결되니 개인적으론 참 반갑고 고마웠다.

박물관 외형의 모습이 아크로폴리스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고...

들어는 초입의 바닥은 유리로 되어 있고 그 밑엔 고대 주택가 유적 발굴터가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재미있는 건,

건물로 가까워질수록 발밑의 깊이가 점점 깊어진다는 것.

솔직히 그 높이감이 무서워서

낮은 높이를 찾아 발걸음을 이리저리 옮겨야했다.
(멀리서보면 춤추는 사람 같지 않았을까? ... 뭐 나쁘지는 않네...)

박물관 건물 자체는 햇빛속에서 거울처럼 주변을 비우고 있었는데

뭐랄까 주변 조형과 완벽하게 흡수되는 느낌이랄까?

그래선지 위압감과 거대함보다는 친근하고 살뜰한 느낌이 더 강하다.

 

3층으로 된 박물관은 시대별로 정리가 잘 되어있었고

규모도 큰 편이 아니라 관람이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슬로프(slope)로 되어있는 1층과 2층의 연결 구간은

고대 아테네인들의 소소한 일상들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꾸며졌는데

유물도 유물이지만 슬로프 자체가 참 감탄스러웠다.

도대체 박물관 안에 아크로폴리스를 연상시키는 경사를 들여놓을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이런 시도 우리나라도 해보면 참 좋겠는데...)

조명도 우리나라 박물관처럼 작품을 부각시키는 강렬한 조명이 아니라서 눈의 피로도 훨씬 덜했다.

통창으로 자연채광을 최대한 이용한 모습도 너무나 좋았고!

둘러보면서 굳이 조명을 따로 쓸 필요가 없겠구나 싶어 감탄스러웠다.

실제로 조명을 거의 사용하지 않않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하나 하나는 명확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주 순수하고 순결한 느낌.

2개의 니케 여신상의 마중을 받으며 박물관을 들어서는 것도

에렉티온 신전을 떠받치고 있는 카리아티데스(Caryatides) 배웅을 받으며 나오는 것도 어딘지 신화스럽다.

마치 내가 신들 중 한 명이라도 된 듯한 느낌.

덧붙이자면 실제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에렉티온 신전의 카리아티데스는 모두 모조품이다.

이곳에 보관되어 있는 게 진품.

실제로는 모두 6개인데 1개는 대영박물관으로 반출됐고, 1개는 파괴됐다.

박물관에는 4개의 진품과 파괴된 1개의 카리아티데스가 전시되어 있다.

1개는 복원중인지 가림막에 가려져있었는데

복원과정을 비디오로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도 관람객을 위한 배려같아 따뜻했다.

반복되는 재생영상이긴 했지만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라 아주 흥미로웠다.

 

박물관 전체는 3층 파르테논 갤러리를 제외하면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의 구조와 크기를 기본으로해서 만들어졌다는 3층 갤러리는

통유리를 통해 어느 방향에서든 실제 파르테논 신전을 볼 수가 있다.

어떻게 이런 뷰가 가능한지 궁금해서 갤러리 주변을 몇 번이나 돌았는지 모른다.

(결론은 모르겠다. 그저 마냥 신비로울뿐!)

갤러리 사방벽은 파르테논 신전 메토프로 빙 둘러쌓여 있는데 이것 역시 대부분은 복제품.

진품은 대영박물관에 반출된 상태란다.

(이 나라도 잃어버린 유물들 때문에 참 가슴 아프겠다.)

조카녀석이 박물관을 둘러보고 한마디 한다.

"이모! 옛날 사람들이 지금 사람보다 기술이 훨씬 좋았나봐. 장비도 안 좋았을텐데 이렇게 잘만든걸 보면!"

다행이다.

조카들이 그걸 느끼고 가슴에 담았다면 이 여행은 충분히 의미있는 여행이다.

솔직히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내가 지금 뭘하고 있나 싶었는데

조카의 말에 그래도 쓸모없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강렬하진 않아도 잔상으로라도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이 여행의 목적은 아름다운거다.

 

한참을 박물관을 서성이면서

가상의 파르테논과 실체의 파르테논을 번갈아 바라보며

나는 "대면(confrontation)"이란 단어를 계속 생각했다.

과거의 현재라는 시간의 대면.

이곳과 저곳이라는 공간의 대면.

그건 대결이나 맞섬의 의미가 아닌

서로 닮아가기를 바라는 흡수와 포용, 융화의 대면이었다.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단독으로 시간과 공간을 점유할 수 없다는 엄중한 가르침!

신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내겐 질문이었고 대답이었다.

시간과 공간, 질문과 대답이 교차하는 미스터러 써클.

그리스 아테네의 신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 내겐 그런 의미였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26. 06:03

<도플갱어> - 주제 사라마구


 
 


 

 

 

 

 

 

 

 

 

주제 사라마구는 1922년 포르투칼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생존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1998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현존하는 몇 안 되는 대가중에 한 분이시죠.

저는 <눈 먼 자들의 도시>란 책을 통해 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눈 뜬 자들이 도시>까지 열심히 찾아 읽는 얼치기 팬이 된 상태입니다.

얼마전엔 <동굴>까지 찾아 읽었고 지금은 새로운 책을 읽을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

도플갱어는 주제 사라마구가 84세의 나이로 쓴 소설로 작가를 몰랐다면 아마 젊은 사람이 썼다고 생각할 만큼 신선하고 특별합니다..

(우리 병원 도서관에 구비되어 있답니다 ^^)

* 참고로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작 3권(눈 먼 자들의 도시, 도플갱어, 동굴)을 인간에 대한 3부작이라고 합니다


도플갱어...

독일어로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라는 뜻으로 더블(분신 복제)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도플갱어는 '또 하나의 자신'을 만나는 현상인데 현대 정신의학 용어로는 오토스카파(자기상 환시)라고 하네요.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존재가(본인도 모르게 헤어진 쌍둥이 이야기 절대 아닙니다) 어딘가에 살고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인구 500만의 대도시에 거주하는 중학교 역사교사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는 어느 날, 동료교사의 추천으로 비디오 한 편을 빌려보다 자신의 5년 전 모습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영화에 나오는 걸 발견하게 되고, 하나하나 그 사람을 찾아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드디어 서로를 대면하게 되죠,

팔뚝의 점, 후천적으로 생긴 흉터까지도 꼭 닮은 외모, 거기에다 목소리와 지문까지 똑같은 두 사람의 존재는 서로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동이자 공포일 수 있습니다.

이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두 사람의 싸움은 각자의 배우자와 연인들, 그리고 가족들까지도 얽히게 됩니다.

이 둘은 결국 서로의 자리를 바꾸게 되고(그 상황이라는 게... 서로에 대한 책망, 분노, 그리고 어쩌면 조금은 끔찍한 쾌락까지도 포함된) 그 상황에서 한 명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자...

세상엔 이 둘이 서로 바뀐 사실을 아무도 모릅니다.(나중에 어머니가 알게 되긴 하지만 그 사실 자체가 비극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까요?

산 자가 죽은 자로 행세하며 여생을 마쳐야 하는 상황...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은 아무렇지 않은 듯, 그냥 스쳐지나가듯 인간의 잔인함과 섬뜩함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섬뜩함 뒤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생각과 과거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도 결코 강요된 교훈이 아닌 파고 드는 느낌으로...

혹 이 책을 읽고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 보고 싶은 분들은...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적극 권해드립니다.

어떤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단 한 명만 빼고 이유도 없이 눈이 멀어 갑니다. 다수의 눈 먼 사람들의 공포와 단 한명의 눈 뜬 사람의 공포로 전개되는 이야기...

그 속에도 인간의 섬뜩함이 숨어 있습니다.

 

도플갱어 현상은 현재는 신비주의의 현상으로까지 확대 이해되고 있습니다.

미스터리의 하나로 간주되기도 하구요.

자신의 분신, 또 다른 도플갱어를 만나게 되는 사람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고도 하고, 그 현상에 대한 많은 사례가 알려지고 있기도 합니다.

혹 도플갱어를 만나게 되면 말을 걸면 안 된다고 하네요.

어쩌면  살아남을 수도 있을지 모르니까요...(약간 공포스럽죠?)

인간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데자뷰 현상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면....

memento mori.....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말를 떠 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Remember! You must die!!!"


주제 사라마구...

제가 이곳에 꼭 소개하고 싶었던 작가 중 한 분입니다.....

이 분의 책을 읽을 때의 주의 사항 하나!

문단이라는 게 없습니다.

첫장부터 마지막 까지 빽빽하고 알찬 책을(?) 만나실 수 있답니다.

그래서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같은 줄을 몇 번이고 계속 반복해서 읽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는....
어쩐지 제자리 걸음을 걷는 것도 같고, 같은 곳을 뱅뱅 돌고 있는 그런 느낌...

인간에 대한 혼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의도하는 의식적인 문단 형태는 아니였을까  추측성 판단을 하게 만드는 묘한 책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