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12. 18. 08:28

<나쁜 자석>

일시 : 2013.12.06. ~ 2014.03.02.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대본 : 더글라스 맥스웰 (Douglas Maxwell)

각색, 가사, 연출 : 추민주

작곡, 음악감독 : 조윤정 

출연 : 김재범, 송용진 (고든) / 정문성, 이동하 (프레이저)

        김종구, 김대현 (폴) / 박정표, 이규형 (앨런)

제작 : 악어컴퍼니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죽음같은 실종 혹은 실종같은 죽음을 겪어야만 하는 그런 사람.

그리고 그걸 기억속에 봉인한채 애써 외면해버리려는사람과 애써 추억이라고 포장하고 스스로 화해했노라 믿어 버리는 사람.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죄책감의 표현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유년의 기억은 누구라도 "끼리끼리(낄낄이)"였다.

그건 친밀함과 어울림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우리 끼리 외에 그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강한 거부의 표현이기도 하다.

함께 있지만 수시로 부정당해야만 하는 사람.

그게 너무 치열해서 묵직한 통증이 되어버린 관계.

그래다 결국 봉인시켜 굳건히 닫아버리고 모르는 것처럼 외면하는 세계.

그러나...

봉인된 세계는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시에 열린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한 편의 잔혹동화는 서서히 시작된다.

하늘정원의 세계도, 나쁜 자석의 세계도 결국은 모두 비극이다.

그러니 누구라도,

스스로의 유년과 절대로 화해하지 말지어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5~6년 전에 이 작품을 한 번 봤었다.

(처음엔 이 연극 제목도 <나쁜 자식>인 줄 알았더랬는데..)

사실 그때는 충분히 이해하지도 못했었고 그저 난해하고 충격적인 작품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관람에서는 배우들 섬뜩한 연기가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이끌었다.

아주 끔직했다.

보는 내내 소름이 돋을 정도로.

김재범과 이규형은 그렇다고 치고

이동하와 김대현이 이렇게까지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었나?

4명의 배우 모두 무서운 집중력이고 놀라운 표현력이었다.

개인적으로 욕설이 난무하는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만은 꼭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솔직히 무서울 정도다.

 

애초부터 존재하지않는 인물같았던 김재범 고든은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순간에조차 존재감이 느껴졌다.

허리를 잔뜩 숙이고 몸을 거의 접은 상태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김재범 고든은 무생물에 가까웠다.

한번도 웃지 않는 무생물같던 사람이 누군가에게 드디어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기 시작했다면!

어쩌면...

처음부터 고든은 존재하지 않았던 건 건지도 모르겠다.

각자 다르게 만들어내고기억하는 각자의 고든만 있을 뿐.

고든과 프레이저 둘이 폐교에서 나뉜 대화는 그런 이유로 묵직하게 감겨온다.

"내가 죽으면 귀신이 돼서 돌아올께. 기다려줄래?"

프레이저는 몰랐을거다.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고든과 하나가 되버렸다는 사실을...

순간 <식스센스>급의 서프펜스가 등골을 훓고 지나간다.

 

처음엔 고든만이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4명 모두 외롭고 지치고 힘든 사람이다.

친하다고 말은 하지만 서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결코 단 한 명도 없다.

오히려 드러낼 수 없는 비밀이 밝혀질까봐 전전긍긍하는 사람들.

이제 겨우 29살에 불과한데

"우정"이라는 20년의 시간이 마치 그들의 한평생 같다.

그리고 29살의 그들의 청춘 역시도 모두 끝이 났다.

끝장을 보며 떠나버리는 3명의 친구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었다.

너희 탓이 아니라고.

너만 그런게 아니라고.

우리 모두 때로는 밀어내고 때로는 끌어당긴다고...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9. 9. 08:30

<클로져>

일시 : 2013.08.31. ~ 2013.12.01.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극본 : 패트릭 마버 (Patrick Marber)

연출 : 추민주

출연 : 이윤지, 진세연, 한초아 (앨리스) / 신성록, 최수형, 이동하 (댄)

        서범석, 배성우, 김영필 (래리) / 김혜나, 차수연 (안나)

주최 : 악어컴퍼니

 

딱 1번 관람으로 끝낼 작품이라 캐스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래리와 망설임 없이 김영필이었고,

그리고 그 선택은 역시나 탁월했다.

두번재 앨리스를 하게 된 이윤지와 사전지식 전혀 없는 안나 차수연도 괜찮았다.

군복무 후 이 작품을 복귀작으로 선택한 신성록은 그럭저럭 ^^

사실 댄이라는 인물 자체는 참 찌질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이기적인 인물이라 매력적이 않지만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기에 중요한 배역이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해야만 하는...

신성록의 댄은...

오랫만에 무대로 돌아온 배우의 감회와 잘하고 싶은 욕망, 두려움이 끝없이 부딪치는 모습이었다.

<클로져>의 댄보다는 배우 신성록을 더 많이 보여준 느낌.

다행인건,

<클로져>이기에 뭐가 됐든 "흔들림"이 보였다는 건 나쁘지 않았다.

이마저도 없었다면...글쎄.

배역 댄이 아니라 배우 신성록의 코믹함이 자주 느껴져 난감했다.

그야말로 낯선 남자!

누구라도 무장해제 시킬 여자를 곁에 두고도

사랑만 가지고는 안 되는 낯선 남자!

그래서 결국 진짜 "제인"은 끝끝내 알지 못한채 앨리스만 본 낯선 남자!

 

차수연 안나는 단아하고 이지적이며 때때로 우아했다.

특히 대사톤은 정말 좋더라.

그런 톤으로 성적인 단어들을 서슴치않고 내뱉는 모습이라니!

개인적으론 일종의 반전이었다.

이윤지의 앨리스는 사랑스럽고 귀엽고 열정적이었다.

(클럽씬이 좀 더 과감하고 노골적이었다면 좋았을텐데...)

간혹 신성록의 감격에 따라가는 우(愚)를 범하긴 했지만 거슬리지는 않는 정도.

재미있는 건 신성록 댄과의 장면보다 김영필 래리와의 장면이 훨씬 감정도, 연기도 좋았다.

아마도 김영필의 힘이 아니었을까!

김영필 래리가 나오는 장면들은 나도 모르게 집중력이 극대화 되면서 상체가 저절로 앞으로 쏠린다.

이윤이 앨리스와도 차수연 안나와도 그리고 신성록 댄과도 호흡이 너무나 좋다.

대사 한 마디 없이 진행되는 3막 컴퓨터 체팅 장면도 정말 좋았다.

함께 있는 신성록 댄이 투명인간처럼 느껴질 정도다.

역시나 시선의 여백과 공간의 틈을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내는 배우다.

안나가 댄과의 관계를 고백하는 장면에서도

그 무수한 감정들의 충돌과 표현을 보면서 객석에서 정말 짜릿짜릿했다.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래리가 돼서 절망하고, 매달리고, 분노하는 모습!

솔직하고 거침없고 정확하다.

보면서 나는 래리를 내게 투사(投射)시켰던 모양이다.

누군가에게 노골적인 대사를 쏟아내며 으르렁거리며 맹렬하게 원초적으로 싸우고 싶은 욕망.

거짓과 숨김 앞에서 인간은 충분히 이성을 버린다.

이성를 버린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조롱"이다.

폭력보다 더 무시무시한 조롱.

스스로에 대한 조롱과 상대방을 향한 조롱.

그러나 나는 래리를 절대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의 비열한 비겁함마저도 충분히 이해되기에...

 

- 왜 그랬어요?

- 우린 사랑에 빠졌거든!

- 당신은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유혹에 넘어간거야!

- 그럼, 넘?

- 난 선택했어!

 

안나와 앨리스와의 이 대화.

이상하게 계속 가슴 속에 박혀있다.

이 대화 후 안나는 선택이 바뀐다.

영향을 끼쳤던걸까?

나는 그랬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첫번재 조건은 "타협"이란다.

사랑을 통해 각자 바라는 게 구원이든, 위로든, 유혹이든, 사랑 그 자체뿐이든

"타협"할 줄 모르면 사랑은 끝이다.

왜냐하면.

사랑만 가지고는 안되는 거니까!

 

사랑은.

언제나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

당신을 떠날 준비,

나를  떠날 준비가...

잔인하지만, 그게 사랑이다.

가깝지만(closer)

영원한 낯선 사람(stranger)...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7. 12. 06:28


연극 <돐날>
연출 : 최용훈
기간 : 2011.06.03.~2011.07.10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출연 : 길해연, 홍성경, 서현철, 김왕근, 김은석,
        황정민, 
정승길, 정세라, 김문식 외.


극단 <작은 신화>가 차단 25주년을 맞아 기념 공연으로 3편의 연극을 대학로에 올리고 있다.
<가정식백만 맛있게 먹기> , <돐날>, <황구도>
<돐날>은 부제가 "돌아버린다" 란다.
"돐날"이라는 사랑스럽고 앙증맞고 행복한 단어 속에 이렇게 비루하고 비참한 일상이 담길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런데 더 비참한 건 이 일상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적나라하게 사실적이라 할 말이 없다는 거다.


혁명을 가고 비루한 일상만 남다!
혁명과 변혁의 시대를 살았던 386세대의 자기파괴적인 종말!
8년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연극 <돐날>은.
서로의 상처를 감싸안는 마지막 장면을 의도적으로 삭제해버렸다.
그런데 아마도 마지막 장면이 예전과 같았다면 난 아마도 이렇게 공감하면서 보진 못했을거다.
최용훈 연출 역시도 말했다.
"재공연을 준비하면서 10년 전 초연 때와 비교해보니 당시 아픔과 좌절이 해결되거나 좋아진게 전혀 없었다. 오히려 더 좌절하고 절망감을 느끼게 됐다"
그는 관객들이 위안을 얻어가지 않길 바랐단다.
그의 의도적은 결말은 아주 적절했고 그리고 절실했다.

 

모든 게 자신만만하고 적개심마저도사랑했던 젊은 시절은 사라지고
사는 게 지겹고 신물나는,
그래서 맨하탄 쌍둥이빌딩처럼 한 방에 무너뜨리고 싶은 삶으로 전락해버린 일상!
마치 그 일상을 비웃든 극악스럽게 웃어대는 사람들.
(돐잔치에 모인 사람들의 괴기스럽기까지하던 웃음소리는 공포로 다가온다.)
폭탄처럼 쏟아지던 빗소리와
어지럽게 흩어지던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그리고 엄마의 포악과 저주 속에 사생결단처럼 울어대던 아기.
잔칫날의 주인공이여야 할 아이는 마치 갓난아이처럼 강보에 싸여있다.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던 아기는 아마도 자라기를 거부한 모양이다.)
"시간이 흐르면 점점 익숙해지는 게 당연한데 왜 사는 건 그렇지 않니?"
정숙이 친구에게 묻는 질문은
우리를 일상의 공포로 몰고간다.
그리고 이 대사는 우리 모두의 독백이자 처절한 고백이다.
후줄근한 삶을 연명해야 하는 우리는,
반미운동하던 사람은 미국이 만든거라 안전하다며 피라이드 주방세제를 팔고
땅투기 아비 덕에 돈푼 꽤나 만진 놈은
인맥형성을 위해 다니는 경영대학원의 학위 논문 대필을 거래한다.
(그 당당함이라니...)
뒷담화와 뒷거래의 찬란한 일상이여~~!
"너 왜 이렇게 됐니?"
그러나 이런 질문을 하는 본인의 삶 역시도 모든 사람의 삶처럼 거짓과 감춤의 삶일 뿐이다.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소망은
정말 소망에 불과한건가?
몸 속으로 무딘 칼끝을 찔러넣는 인생.
만약 누군가 데려다 줄 수 있다면
엄마 뱃속으로 돌아가 다시는 세상으로 나오고 싶지 않은 그런 인생!
세상 모든 남편들의 일생은 비참하고
세상 모든 아내들은 삶은 또 그만큼 박복하다.
그리하여 삶은 또 다시 언제나처럼 비루하고 비참하다.
내가 세상을 사랑하지 않아서였나?
아니면 세상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였나?
자기분열의 결말을 지켜보는 관객에게
자기분열의 질문이 남는다.

피투성이 무대와 현란한 비발디의 사계 속에서...

 

8년 만에 재공연된 <돐날>은
길해연, 홍성경, 서현철 등 초연 때 섰던 배우들이 그 역할 그대로 돌아와 무대를 빈틈없이 채웠다.
그리고 배우 정승길.
이 멋진 배우들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건 더없는 행운이었다.
비록 비루하고 비참한 삶의 관음이었지만
그 비루함을 채우는 배우들의 열연은 풍요로움 그 이상의 만찬이었다.
뭐라고 명명해야 할까?
이 거침없는 포만감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