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책읽어주는 남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5.26 <귀향> - 베른하르트 슐링크 2
  2. 2010.03.15 맛있는 책 ^^
읽고 끄적 끄적...2010. 5. 26. 06:38
베른하르트 슐링크.
이 멋진 독일 작가의 글때문에 나는 오랫만에 충만했고 환상적으로 행복했다.
<더 리더 - 책읽어 주는 남자>를 읽으면서
전율에 가깝게 느꼈던 모든 감정들이
<귀향>을 읽으면서 또 다시 고스란히 찾아왔다.
그러나 그 느낌은 한 단계 위의 감정이었고 감동이었다.
법대 교수이자 판사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베른하르트 슐링크.
(이런 조합이 믿어지는가? 소설을 쓰는 판사라는 조합이...)
1944년 7월 6일 독일 빌레펠트에서 태어나 하이델베르크와 만하임에서 자랐다.
1981년 관공서 간의 공무 협조에 관해 쓴 교수 자격 논문이 통과되었고,
본, 프랑크푸르트 대학을 거쳐 현재는 베를린 훔볼트 대학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뉴욕 예시바 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헌법 재판소 재판관도 겸임하고 있다.
그의 이력과 비슷한 이 책 <귀향>은 어쩌면 그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단지 주인공이 판사가 아니라 출판사 일을 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
그의 글에는 시간과 아픔과 신비와 현실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읽고 있으면 소설이 아니라 너무나 분명하고 선명한 역사를 겪고 있는 느낌이다.
단 두 권 뿐이었는데도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뼈마다가 아리고 저렸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와 함께 독일에 거주하는 주인공 페터.
(모자 사이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일종의 "금기"였다)
그는 방학 때면 스위스에 거주하는 할아버지 댁에서 매년 시간을 보냈다.
<기쁨과 재미를 주는 소설> 총서를 편집하는 일을 하는 조부모는
잘못 인쇄된 종이들을 모아 손자에게 연습장으로 쓰라며 주곤 했다.
그러면서 당부한다.
뒷 장의 소설은 읽지 말라고...
금기가 허물어지는 순간 페터의 앞에 나타나는 카를의 귀향 이야기.
잠시 잊고 있다가 성인이 된 후 우연히 이삿짐에서 다시 보게 된 이야기의 배경이
어디선가 실제 보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종의 기시감이랄까?)
페터는 직접 결말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 과정에서 페터는 또 다른 금기였던 아버지의 행적까지 찾아 나서게 된다. 
"오디세이아 모티브"
탈출, 방랑, 귀향...
책 속에 등장한 모든 이야기는 오디세이아 모티브로 점철된다.
급기야는 페터 자신의 인생까지도...
결국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귀향"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던가!



잃어버린 소설의 결말 찾기와 부재하는 아버지 찾기.
전쟁과 전후 세대의 이야기.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
절묘한 신화의 모티브.
집을 떠나기 전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을 찾으라며 흔적을 남겼을까?
거울의 반쪽을 서로 맞춰보면서 부자 지간을 확인하고
신화 속 비범한 인물이 된 아들은 온갖 역경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결국 아버지를 만나 적자의 정통성을 인정받게 될까?
소설의 중간 중간 나오는 귀향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신비하면서도 불안하고 불편하다.
그건 아마도 독일의 역사와 비슷하리라.
"루시퍼 이펙트"를 보는 듯한 세미나를 가장한 실험 장면은 섬득하다.
......대학원생들과  미래의 정치인, 판사, 사업가, 그리고 다른 유력가들은 극단적인 조건에서 어떤 행동을 보일까? 얼마큼 협력적이고, 얼마큼 이기적일까? 얼마나 원칙을 견지하고, 얼마나 적에게 동조할까? 서로를 배신하게 만들고 서로를 적으로 돌리는 데는 어떤 장치가 필요할까? 얼마큼의 추위와 굶주림, 압력, 공포가 있어야 문명의 가면을 벗길 수 있을까? ......
역사와 정의의 문제, 악의 본질에 관한 예리하고 비열한 현실을
읽는 사람은 각오하고 똑똑히 목격해야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또 다른 이야기들까지도...



페터는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이 해답은 혹은 결말은 여기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권하고 싶다.
꼭 읽어보고 느껴보라고...
가슴 속에 굵은 금이 생길만큼 이 책은 특별하다.
나는 지금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또 다른 책 <다른 남자>를 꿈꾸고 있다.
이 사람을 다 읽어내고 싶다.
그의 단편 <사랑의 도피>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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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랑하면서도 사랑받지 않을 수 있고, 그것을 불공정한 것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응답받지 못한 사랑의 공정함도 있는 법이죠.

아버지에 대해 알고 나서부터 그래. 마치 아버지에게 터뜨리지 못한 분노가 다른 분출구를 찾아 헤매는 것 같아.... 그동안 난 항상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살아왔고, 설령 잠시 세상에 발을 담근다 해도 저항이 있으면 언제라도 후퇴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

악의 선한 면이란 악이 선을 위해 쓰일 수 있다는 겁니다.
가난과 고통이 진보와 문화를 가능케 하고, 폭력이 평화를 보장하고,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 정의로운 혁명과 정의로운 전쟁을 성공으로 이끕니다.
나는 그가 이것을 일부러 연출하고 즐겼다고 확신했다. 그는 강의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연구하고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려 했고, 더 나아가 학생들을 바꾸려고 했다. 어떻게 바꾸려는지는 몰라도......

자신이 잘못하지도 않은 일로 사과해야 하는 자기비판의 모든 형식이 결국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존감이 붕괴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항상 진실과 거짓을 행하고 있다. 다만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에 대한 결정은 개인이 내려야 한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그리고 악이 자유롭게 떠돌아 다녀도 되는지 아니면 선을 위해 이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도 개인 소관이다. 이는 우리 개인이 올곧게 결정을 내린다는 것과는 다를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이유로 과거에는 남은 사람들에 대한 희생자의 값어치에 비례해서 살인을 처벌했다. 예를 들어 아버지에게 있어서 아들이나 딸의 값어치, 주인에게 노예의 값어치가 그것이다. 오랫동안 흑인을 살해한 백인이 백인을 살해한 흑인보다 경미한 처벌을 받은 것도 그래서이다. 살인자로서의 행위가 더 관대한 처분을 받은 것이 아니라 희생자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종 청소의 경우는 별 양심의 가책 없이 편하게 살인을 저지를 때가 많다. 희생자들의 죽음을 슬퍼할 사람들을 아예 하나도 남겨 놓지 않기 때문이다. 인종 청소의 전제는 이렇다. 청소할 민족을 고립시키고, 그들을 다른 민족들과 함께 이루는 세계의 질서 속으로 편입시키지 않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그들의 뿌리까지 뽑아버려야 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10. 3. 15. 06:10
오랫만에 영풍문고를 다녀왔다.
서점을 가면 왠지 모르게 편안해지면서
유난히 눈이 반짝거리는 나.
이때가 내가 유일하게 쇼핑(?)에 탐욕스러워지는 때다.
갖고 싶었던 책들이 너무 많았지만
그 중에서 특히나 맛있어 보이는(?) 3권의 책을 선택했다.


주제 사라마구의 <예수복음>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귀향>
(탁월한 선택 ^^)



주제 사라마구의 책들은 늘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았고
천명관은 몇 년 전에 <고래>라는 소설을 정말 재미있게 봤던 기억에 선택했다.
날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땐 꽤나 신선했었는데...
그의 두 번재 소설을 보니 무지 반갑고 기대도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책 <귀향>은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의 영화제작으로 뒤늦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신작이다.
또 어떤 사실(fact)을 가지고 아름답고 깊은 슬픔을 만들어냈을까?
그의 이력만큼이나 그의 글들은 내겐 즐거움과 신비다.
새롭게 손에 품게 된
세 권의 책이 주는 풍요로움.
나는 지금 아주 깊고 본격적으로 행복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