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5. 9. 23. 08:05

<Man of La Mancha>

 

일시 : 2015.07.30. ~ 2015.11.01.

장소 : 디큐브아트센터

원작 :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작가 : 데일 와씨맨(Dale Wasserman) 

작곡 : 미치 리 (Mitch Leigh)

작사 : 조 대리언 (Joe Darion)

연출, 안무 : 데이비드 스완 (David Swan) 

음악감독 : 김문정

출연 : 류정한, 조승우 (세르반테스/돈키호테) / 전미도, 린아 (알돈자)

        정상훈, 김호영 (산초), 황만익 (도지사), 배준성, 조성지 외

제작 : (주)오디뮤지컬컴퍼니, 롯데언터테인먼트

 

스페인의 성당들은 크고 깊다.

그래서 성당에 들어가면 저절로 신에게 고개가 숙여지거나 아니면 신을 철저하게 거부하거나 둘 중 하나다.

거대한 동굴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이라 어떤 때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죄수의 심정이 되기도 한다.

깊고 깊은 지하감옥에 갇힌 느낌.

이 작품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낮도 밤같았던 스페인의 성당들이 떠오른다.

세르반테스는 지하감옥에서 죄수들에게 말한다.

"법 앞에 모든 인간들은 평등하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세르반테스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진실은 

법 앞에서든, 신 앞에서든 절대 평등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위로였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도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던 세르반테스는 그러나 끝까지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았다.

그러니까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 일생의 역작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거룩한 자서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두 개의 결말이다.

돈키호테의 결말은 스스로를 둘시네아라고 말하는 알돈자의 변화에 감동받고

세르반테스의 결말은 두려움에 떨던 산초의 발걸음이 경쾌하게 바뀌는 부분에서 뭉클해진다.

나는 그 변화가 이 작품의 진정한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부분들은 매번 내 마음을 터치한다.

Moment of touch.

 

서서히 지하감옥의 계단을 올라가는 세르반테스를 향해

알돈자의 선창으로 시작되는 impossible dream.

이 장면은 세르반테스의 입장에서도 ,세르반테스를 연기하는 배우의 입장에서도 참 특별한 장면이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무대 위 배우들은 객석을 보면서 연기한다.

(엔딩 부분은 특히 더!)

그런데 이 작품의 엔딩은 전출연자가 객석을 등지고 세르반테스을 바라보고

세르반테스를 연기한 배우는 그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 본다.

시야를 조금 더 확대하면 출연자들 뒤쪽으로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수 백명의 관객들이 있다.

그야말로 엄청난 포커킹의 현장이 눈 앞에 펼쳐지게 된다.

매번 궁금했다.

이 장면에서 세르반테스를 연기한 배우는 어떤 심정일지...

행복할 수도 있고, 중압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중압감을 이겨낸다면 세르반테스의 마지막 대사는 아주 특별해진다.

"신이여, 도우소서! 우리 모두가 라만차의 기사입니다!"

일상에 지쳐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해질 때,

나는 이 대사와 함께 산초의 경쾌해진 발걸음을 떠올린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버틸 힘이 생긴다.

 

친구여! 어서 일어서게!

모험을 떠날 시간이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5. 8. 6. 07:53

 

<Man of La Mancha>

 

일시 : 2015.07.30. ~ 2015.11.01.

장소 : 디큐브아트센터

원작 :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작가 : 데일 와씨맨(Dale Wasserman) 

작곡 : 미치 리 (Mitch Leigh)

작사 : 조 대리언 (Joe Darion)

연출, 안무 : 데이비드 스완 (David Swan) 

음악감독 : 김문정

출연 : 류정한, 조승우 (세르반테스/돈키호테) / 전미도, 린아 (알돈자)

        정상훈, 김호영 (산초), 황만익 (도지사), 배준성, 조성지 외

제작 : (주)오디뮤지컬컴퍼니, 롯데언터테인먼트

 

La Mancha의 기사님께서 돌아오셨다.

슬픈 수염의 기사...

이 뮤지컬은 내가 류정한의 출연작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다.

해오름 초연때 인터미션 없이 세 시간여를 한 템포로 공연했을때부터

이 작품은 나를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스페인 여행에 대한 로망도 그때부터 시작됐었고

결국 그 로망도 현실로 만들었으니 정말 impossible dream이란 없는 모양이다.

보석같이 반짝반작 빛나는 가사와 대사들은

그대로 감동이고, 희망이고, 용기다.

힘들고 지칠때 이 작품의 대사들이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Man of La Mancha>가 한국 공연이 벌써 10주년이 됐단다.

역시나 고전의 힘은 강하다.

예전에 스페인 국왕이 길거리에서 정신없이 웃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그랬단다.

"저 사람은 미쳤거나 아니면 돈키호테를 읽는 중이거나다!"

실제로 스페인을 여행하다보면 돈키호테의 흔적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뜨거운 태양의 나라 스페인.

그래, 그곳이라면 지하 감옥에서도 충분히 유쾌한 연극이 펼쳐질 수 있겠다.

삶이란 그런거니까.

포기하지만 않겠다 작정하면 천 번을 치더라도

천 번을 일어서는게 삶이니까.

 

 

류동키는...

정말 유쾌하고 한없이 귀여운 할아버지였다.

<펜텀>을 끝내고 일주일도 쉬지 못하고 바로 시작된 작품임에도 <팬텀>의 흔적이 어디에도 없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예전에 류정한 배우가 사석에서 그런 말을 했다.

<지킬 앤 하이드>보다 <Man of La Mancha>가 더 좋다고...

본인이 애정작이라 그런지 무대에서 맘껏 자유롭고 진심으로 성실했다.

지하감옥의 세르반테스였고

저 별을 향해 마지막 힘이 다 할때까지 가는 돈키호테였다.

 

좀 지쳐 있었다.

지금 뭘 하면서 살고 있나 싶어 의기소침 했었다.

이렇아 살아도 정말 괜찮은건가 자책이 시작되려는 중이었다.

그런데...

알돈자를 둘시네아로 만드는 돈키호테가,

두려움에 떠는 산초에게 "친구여! 용기를 가지게!"라고 말하는  세르반테스가

내게 답을 줬다.

 

"무엇이 미친 짓인지 아시오?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미친 짓은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라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5. 3. 11. 08:18

디즈니 만화영화 백설공주성의 실제 모델이라는 세고비아 알카사르.

그런 유명세 때문에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만

사실 이곳은 아사벨라 여왕의 즉위식과 펠리페 2세의 결혼식이 열린 역사적인 장소이다.

여러 왕들에 의해 몇 차례 증개축을 반복했고

1862년에는 화재로 불탄걸 복원해서 현재 성의 모습이 완성됐단다.

흐린 날씨탓인지 첫인상은 동화적이라기보다는

음산하고 비밀스런 느낌이 강했다.

백설공주보다는 독사과를 만든 새엄마의 느낌.

지금은 군사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이곳을 보기 위해

알카사르와 탑 모두를 둘러볼 수 있는 통합권(7유로)을 구입해 입구로 향했다.

왠지 난장이가 된 듯한 느낌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알카사르 내부에서 가장 인상깊었던건

커다란 창을 장식하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였다.

성당처럼 머리를 한껏 젖혀 올려다보는게 아니라

내 눈높이로 내려와 있어줘서 그게 오히려 더 신기하더라.

색깔도 선명하고 심지어는 명암 표현까지 했다.

이걸 기계로 찍어냈을리는 없을테고...

사람 손만큼 위대한건 정말 없는 모양이다.

입구에는 실제 백설공주 만화에 나온 모습을 액자에 담아 그 유명세를 증명하고 있었고

철갑을 입은 기마상들 앞에선 잠깐 돈키호테를 impossible dream을 떠올렸다.

"그 꿈, 이룰 순 없어도... 싸움, 이길 순 없어도..."


탑으로 오르는 계단은 협소하고 계속 동그랗게 이어져 살짝 어지럼증이 일었다.

그래도 다행히 중간 중간 넓은 공간이 나타나 거기서 밖을 바라보는 재미가 꽤 솔솔했다.

(나는 왜 이렇게 한 눈 파는게 좋을까!)

탑 정상에서 올려다보는 세고비아 전경은

날씨가 한몫 하긴 했지만 평화롭고 차분하고 고즈넉했다.

꼭 옛날 영화처럼...

그래도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 금방 색이 변하면서

눈 앞에 다채로운 파노라마가 끝없이 펼쳐졌다.



탑의 정상에서 바라본 베라 크루즈와 세고비아 대성당.

베라 크루즈는 너무 작은 성당이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이곳이 템플 기사단의 정식 모임을 했다는 역사적인 장소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기론 전세계 유일한 12각형 성당.

(야닐 수도 있고...)

성당 내부는 입장료를 내면 둘러볼 수 있다는데

나는 그냥 먼 곳에서 바라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마치 전설이 되버린 원탁의 기사처럼 몰래 숨겨놓고 싶었다.


수직의 협곡 위에 세워진 알카사르.

탑 위에서 내려다본 높이은 까마득했다.

왕들은,

이 높은 곳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행복했을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은 저 협곡 아래로 가차없이 던져버리기도 했겠지?

지금 내가 이곳의 풍경에 감탄하고 있지만

그 옛날 누군가에겐 이곳이 죽음의 형장, 비극의 장소였을지도 모르겠다.


보여지는게 전부는 결코 아니다.

보여지는 것만 봐서도 안되는 거고.

또 다시 절감하는 달의 저편.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2. 6. 08:29

<Man of La Mancha>

일시 : 2013.11.19. ~ 2014.02.09.

장소 : 충무아트홀 대극장

원작 : 세브반테스

작가 : 데일 와씨맨(Dale Wasserman) 

작곡 : 미치 리 (Mitch Leigh)

작사 : 조 대리언 (Joe Darion)

연출, 안무 : 데이비드 스완 (David Swan) 

음악감독 : 김문정

출연 : 조승우, 정성화 (세르반테스, 돈키호테)/김선영, 이영미 (알돈자)

        정상훈, 이훈진 (산초), 서영주, 배준성, 이서환 외

제작 : (주)오디뮤지컬컴퍼니, CJ E&M

 

네번째 관람이자 이번 시즌 마지막 관람.

조승우 돈키호테도 그렇지만 김선영 알돈자와 정상훈 산초를 다시 보고 싶었다.

역시나 참 좋은 작품이고, 참 좋은 넘버들이고, 참 좋은 배우들이다.

매번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건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거나 무대가 환상적이라는 개념과는 완전히 별개다.

배경이 감옥이라 더 그렇기도 하지만 무대 자체는 마술과 특수효과가 난무하는 요즘 작품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너무 변화가 없어서 심심할 정도다.

그런데 참 묵직하고 단단하다.

대사와 넘버 하나하나가 주는 의미가 다 특별하고 아름답다.

또 다시 꿈을 꿀 힘을 주게 하는 작품.

돈키호테의 황당한 행동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impossible dream이 감히 possible dream처럼 느껴진다.

기꺼이 산초가 되어 돈키호테의 수행원을 자처하고 싶어질 정도다.

왜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하나다.

"그냥 좋으니까!"

 

개인적으론 이번 공연에서

조승우 돈키호테, 김선영 알돈자, 정상훈 산초의 조합이 취향에 잘 맞았다.

세명의 배우가 만들어내는 케미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깊어지고 진해진다.

세르반테스의 결말도, 돈키호테의 결말도 전부 다 가슴에 담긴다.

작품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배우들의 변화를 지켜본다는 것...

참 아름답구나!

무대 위에서 정말 세르반테스가 되어 원없이 한판 놀아보는 조승우와

노련한 절제미와 깊이가 느껴지는 김선영 알돈자.

그리고 순발력과 위트가 넘치는 정상훈 산초.

셋이여서 더 아름다웠던 무대였고 작품이었다.

 

아마도 이 작품은,

매번 공연될때마다 한번씩은 꼭 보게 될 것 같다.

좋다. 좋다. 참 좋다.

다만 그것뿐이다. 

 

"무엇이 미친 짓인지 아시오?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미친 짓은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라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11. 26. 09:13

<Man of La Mancha>

일시 : 2012.06.19. ~ 2012.12.31.

장소 : 샤롯데씨어터

원작  : 미겔 데 세르반테스 (Miguel de Cervantes)

대본 : 에일 와서맨 (Dale Wasserman)

작사 : 조 대리언 (Hoe Darion)

작곡 : 미치 리 (Mitch Leigh)

연출 : 데이비드 스완 (David Swan)

음악감독 : 김문정

출연 : 류정한, 서번석,홍광호 (세르반테스/돈키호테)

        윤공주, 이혜경 (알돈자) / 이훈진, 이창용 (산초)

        최민철, 서영주 (여관주인), 이계창 (닥터 까라스코) 외

 

뮤지컬 배우 류정한! 그리고 건승정한!

둘 다 대단하다.

샤롯데씨어터 한 회 공연 1200석을 통째로 단관했다.

배우의 팬클럽이 소극장 혹은 중극장을 전관 대관하는 경우는 흔해도

내 기억에 이렇게 대극장 한 회 공연 전체를 단관한 건 처음인 것 같다.

(뭐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일종의 경이로움이자 경악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라 이 역사적인 순간을 도저히 놓칠 수는 없었다.

수능을 끝낸 조카녀석들이 "Impossible dream"을 꿈꾸길 기대하며 함께 기사님을 만나러 갔다.

<Man of La Mancha>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작품이다.

스토리 자체도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뮤지컬 넘버와 대사가 주는 울림이 정말 대단하다.

넘버도 대사도 줄줄 외울 정도지만 볼때마다 늘 가슴이 먹먹해진다.

원작을 쓴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상상력에도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되고... 

 

배우 류정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의 하나로 꼽는 <맨 오브 라만차>

이미 여러번 했던 배역이라 잘하리라고는 충분히 예상했지만

자신을 특별히 생각하는 팬들 앞이라서 더 최선을 다했겠지만 정말 멋지게 잘했다.

단순히 기교나 연기적인 걸 말하는 게 아니라

대사 하나하나, 넘버 하나하나를 정말 정성껏, 최고의 모습을 보이기위에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본인도 감회가 남달라서 그랬겠지만 초반엔 그런 감정들이 약간의 떨림으로 보여졌다.

그 떨림이 뭐랄까...

뭔가를 열심히 준비한 아이가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약간의 자부심과 떨리는 가슴을 안고 뭔가를 선보이는 느낌이었다.

풋풋하고 당찬 자긍심이 느껴졌다고 할까!

그래서 그 떨림이 참 수줍고 새로웠다.

 

류정한이라는 배우는 점점 stroy를 만드는 사람으로 변모하는 것 같다.

작품 하나를 할 때마다

자신에게도 스토리를 남기고, 보는 관객에게도 스토리를 남긴다.

어쩌면 돈키호테의 대사 그대로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품게 한다.

숭고하게 남는 노력!

 

"천번을 치시오! 천번을 일어날 터이니!

 아무리 요술로 결과를 흐려보이게 한다해도 노력은 숭고하게 남는 것이라오!"

 

이훈진의 산초는 정말 물이 올랐고.

(언젠가 산초가 주인공인 작품이 나오게 된다면, 이 역은 정말  이훈진이라는 배우가 딱일거다~~)

팬심에 기댄 깨알같은 에드립도 재치있었다.

"사랑에 미친 자는... 건승정한이란 말도 있쟎아요"

백점 만점에 백점을 주고도 남을 에드립!

둘째 출산 후 한동안 무대를 떠나있던 이혜경을 정말 오랫만에 다시 봐서 반가웠다.

솔직히 예전에 이혜경 알돈자를 보면서는 큰 감동은 받지 못했는데

(그래선지 매번 이혜경 알돈자는 피하게 된다)

이번 시즌은 많이 버리고, 많이 놓음으로서 오히려 더 간절해진 것 같다.

세르반테스의 죽음 앞에서 "내 아름은 둘시네아예요!' 라고 말할 때의 범접할 수 없는 당당함이라니!

그야말로 순결하고 고귀한 한 여성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서영주가 표현한 여관주인이 너무 가벼워서

도지와와의 괴리감때문에 보면서 살짝 부담스러웠는데

미남 도지사 최민철은 적정 선에서 웃음과 절제를 잘 조정한 것 같아 보기에 편했다.

 

2010년 LG 아트센터에서 류정한 <맨 오브 라만차>를 본 후에 또 다시 보게 될까 했었는데...

어찌하다보니 이번 시즌에만도 세 번을 봤다.

매번 느끼는거지만,

아름답고 당당하고 풍성한 작품이다.

 

스페인의 지하감옥,

신성모독죄로 몸종과 함께 감옥에 끌려온 세르반테스는 늘 이렇게 나를 부른다.

도저히 어쩔 수 없다.

기꺼이 그 지하감옥 속으로 따라 들어갈 수밖에...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1. 12. 06:01
남자들은 홍콩 영화에 어느정도 로망이 있는 것 같다.
이소룡, 성룡의 액션에 이어
<영웅본색>의 바바리맨 주윤발,
<천녀유혼>의 원조 꽃미남 장국영,
오토바이에 청자켓을 입고 맨날 쌈질(?)하던 <천장지구>의 유덕화.
그리고 왠지 시니컬하고 은근히 퇴폐적인 인상마저 풍기는 <화양연화>와 <색,계>의 양조위까지...
뭐 물론 엽기적인 코메디의 대명사 주성치를 빼놓고 홍콩 영화를 이야기하면 또 서운할거다.
책장을 넘기면서,
과거에 내가 봤던 영화들의 장면들이 하나씩 떠올라 재미있었다.
따지고 보면 제법 나도 홍콩 영화에 관련된 추억들이 많구나 새삼 신기해하면서...
성룡의 영화는 추석때면 단골로 TV 에서 해줬었고
(마지막에 항상 NG 장면이 있어서 엔딩 크레딧까지 꼭 기다렸던 기억도 난다)
<영웅본색>은 비디오를 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마 없을 때 동생이란 빌려봤던 영화였고
(솔직히 저 아저씨는 왜 저러고 다니냐... 했던것 같다)
<천녀유혼>은 중간고사를 끝내고 친구네 집에 단체로 가서 옹기종기 봤던 영화다.
<천장지구>는 혼자 봤던 것 같고...
그때 유덕화를 보면서 머리 좀 자르면 멋있겠구만... 옷이 단벌이야... 젓가락으로 밥 참 잘 먹는다...
뭐 대략 이런 생각들을 했던것 같다.
홍콩 영화들을 보면서 내가 감동 받았던가???
지금 떠올려봐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한때 홍콩 영화는 확실히 엄청난 붐이었다.
오죽했으면 이들이 줄줄이 들어와 대한민국의 CF계를 장악했을까!
To you 초코렛을 씹으며 밀키스를 마셨던 인간들 아마도 꽤 있으리라... 



홍콩을 가고 싶은 여행지에 한 번이라도 꼽았던 적이 있던가?
쇼핑의 목적이 아니라면 왠지 마닐라로 도박을 하러 가야만 할 것 같은 도시.
그 도시를 영화와 함께 찾아다닌 주성철은
영화 잡지 <키노>, <필름 2.0>을 거쳐 현재는 <씨네 21>의 기자다.
이 사람...
홍콩을, 영화를... 그리고 그 영화 속 사람들을
너무나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사람이 옮겼던 그 루트 그대로 따라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도.. 한번도...
홍콩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없던 난데...



홍콩 영화들이 무차별 난사에 가까운 충질을 하면서
엽기적으로 다량의 피를 튀기는 영화만은 아니었다는 걸 나이가 들어서야 조금은 이해했었다.
이 책의 저자...
영화 촬영지를 찾아가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섬세한 배려도 맘에 들었고
영화 속 장면과 자신이 찍은 사진을 함께 보여주는 시선도 다정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는 오래 묵은 정이 담겨있다.
직업탓이겠지만 어쩌면 그렇게 영화의 장면들을 잘 기억하고 있을까 신비로웠고
현지인들조차도 알지 못한 장소를 찾아내 최대한 영화 속 장면처럼 찍어낸 사진도 신비로웠다.
이런 여행이라면...
꼭 한번쯤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만든다. 이 사람.
코즈웨이베이, 침사추이, 센트럴 파크 같은 명소들.
<천장지구> 결혼식 장면을 촬영한 성 마가렛 성당,
<색, 계>와 <성월동화>, <유리의 성>의 촬영지였던 홍콩대학.
(늘어진 나뭇가지 아래 있던 예쁜 둥근 연못은 내 기억에도 아직 선명하다)
<아비정전>에서 유덕화가 장만옥에게 전화하던 캐슬 로드의 공중 전화 박스,
<영웅본색>에서 죽은 아버지의 묘소로 나왔던 성 미카엘 가톨릭 묘지.
이소룡과 장국영의 생가와 쇠락한 시골 마을까지...
눈으로만 쫒아도 가보고 싶은 간절함이 구름처럼 피어났다.
내가 홍콩을 이렇게 간절하게 생각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이 책은 "홍콩"이라는 이물감 느껴지는 도시를 다르게 생각하게 만든다.
가고 싶다... 가고 싶다... 가고 싶다.
<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
홍콩을 수차례 방문한 저자는 일부러 이런 제목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새롭게 찾아보라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라고.
당신들이 아는 홍콩은 단지 첫번째 홍콩에 불과할 뿐이라고...
그렇다면 참 다행이다.
홍콩을 가게 된다면 이 책 덕분에
적어도 다른 시선을 챙겨갈 수 있을테니까...
너무나 몰랐던 도시 홍콩,
내가 가진 홍콩의 선입견을 완전히 부서뜨린 꽤 괜찮은 여행서를 만났다.
비록 눈으로 따라 읽은 여행이었지만
참 괜찮았다. 아주 괜찮았다. 꽤 괜찮았다.



유덕화와 양조위는 1980년대 이후 마치 돈키호테와 햄릿처럼 홍콩영화 남자 캐릭터의 서로 다른 두 유형으로 존재해왔다. 유덕화는 겁이 없고 양조위는 겁이 많다. 유덕화는 비밀이 없고 양조위는 비밀이 많다. 유덕화에게는 의리가 어울리고 양조위에게는 실연이 어울린다. 유덕화는 기회를 만들고 양조위는 기회를 놓친다. 유덕화는 스스로 운명을 선택하고 양조위는 운명으로부터 선택 당한다. 유덕화는 죽어야 멋있고 양조위는 살아야 멋있다. 이렇게 유덕화와 양조위를 곱씹에 비교해보는 것만으로도 홍콩영화의 80~90년대가 훌쩍 지나가 버린다. 그들은 바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20년 가까이 홍콩영화가 보여주었던 과잉과 절제의 두 얼굴이다.                                                         --- 본문 중에서 (정말 깊이 공감했던 부분)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2. 31. 06:23
<태양의 여행자>였지.
2008년 그녀가 발표한 일본 여행기가
처음 읽은 아나운서 손미나의 책이었다.
다신 책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바람을 했었다.
그 책에는,
글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거의 치명적일 정도로...
그런 책이 출판될 수 있었던 건 분명 연예인 프리미엄의 일종이었을거라고
씁쓸해했던 기억이...



그래서 그녀의 다른 책을 일부러 읽지 않게 된건지도...
딱히 읽을거리가 없어서 손에 든 책이다.
<태양의 여행자>보다 2년 전에 나온 그녀의 첫번째 여행집
<스페인 너는 자유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라이 2년 뒤엔 왜 그런 황당한 책을 부끄러움없이 출판했을까
오히려 지금은 더 혼란스럽다.
절실함의 차이었을까???
문득 다시 궁금해졌다.
그리고 1년 뒤 나온 그녀의 최근작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는 어떨지...



스페인을 지나 일본을 거쳐 아르헨티나로의 여행.
어쩐지 그녀의 여행은 지극히 미식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은 어쩌면 아껴먹는 비상식량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지치고 힘들고 절망적일 때
그 어떤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고 치료되지 못한 마음으로 정신이 무너질 때
기억 속 음식 하나로 우리는 다시 힘을 얻기도 하고
필요한 위로를 받기도 한다.
여행도 그런거 아닐까?
죽을 것 같은 마음을 안고 떠나서
다시 살 수 있는 마음으로 되돌아 오게 하는 것.
아마도 지금 그녀의 그 과정 속을 통과하는 중인 것 같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도시
내가 꼭 가보고 싶어하는 그 곳
마드리드 에스빠냐 광장.
그녀가 그 시간 동안 누렸던 건 안식과 평온이었다.
누구라도 부러워할 아나운서라는 직업
시간을 다투는 삶에 그녀는 목까지 숨이 차왔으리라.
살기 위해, 그리고 자신에게 최선이 되기위해 떠난 여행
그곳에서 그녀는 또 다른 기회의 시간을 갖는다.
살면서 내게도 이런 평온의 안식년이 찾아온다면 하는 바램.
나는 떠나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내게도 혹 올지 모를 안식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내 자신에게 절박한 질문을 해본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12. 17. 13:42
이렇게 봐도 되는 건가?
자금의 압박을 받으면서 중독처럼 다시 찾게 된 뮤지컬 영웅.
개그맨, TV 연기자를 거쳐 성공적으로 뮤지컬 배우의 자리에 안착한 정성화.
그와의 첫 인연을 나는 <영웅>으로 맺었다.



그가 말했었다.
계속 개그맨이나 TV 연기자를 했다면 결코 주인공은 해보지 못했을거라고...
그러나 지금 자신은
돈키호테가 될 수도, 안중근이 될 수도 있으니 너무 행복하다고...
그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우리도 역시 다행이라고...
그를 TV 브라운관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볼 수 있어서...



이토 히로부미의 이희정, 설희의 이상은
조승룡 이토 히로부미와 김선영 설희만을 봤던 나는 궁금하기도 했다.
느낌은...
이희정의 이토는 너무 강하다고 생각했다.
핏발을 세우는 그의 모습에 혹시 혈압이라도 올라가는 건 아닐지 혼자 걱정했더랬다.
같은 인물을 이렇게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그래도 역시 나는 조승룡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이토가 더 좋다.
설희는...
김선영 설희가 더 경국지색(?)이었고 게다가 춤까지 일품(?)이었다고 해두자.
어쩌면 나는 이상은 설희에게서 명성황후같은 강인함과 단단함을 기대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 기대치와는 너무나 많이 어긋난 느낌...
김선영 설희의 여성스러움과 노래가 그리웠다.
17세 소녀 링링의 소냐는 여전히 발육상태 남다른 몸매를 과시했지만
그래도 노래 하나는 절절하다.
표정이 좀 덜 과장스러웠으면 하는 바램.
몸매도 남다른데 표정도 남달라서 간혹 37세 처럼 느껴지기도... ^^


우덕순역의 문성혁과 조도선 역의 조휘
체가구역에서 그들이 만들어낸 아리랑의 신명과 풍류(?)는 정말 오랫동안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풍류는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힘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17살 유동하 역의 임진웅님의 커튼콜 때 감격스러워하던 모습...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역의 민경옥님은 매번 사람을 통곡으로 이끈다.
안중근이 환생해서 그녀가 부르는 노래를 듣게 된다면 
아무 망설임없이 "어미니"라고 부를 것 같다.
정말 안중근 어머니의 모습이 이랬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니 먹먹해진다.
"너의 길을 가라"며 정말 등을 떠밀었을 것만 같아서...



커튼콜 때 배우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감격이 담겨있다.
거의 모든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는 무대 위 그들의 가슴은
또 얼마나 벅차고 아득했을까?
<영웅>의 커튼콜을 보면서 나는 또 얼마나 기도했던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브랜드로 아름답게 자리잡아 달라고...


 
누구보다도 감격스럽고 감동스러웠을 안중근역의 정성화.
놀라웠다.
무대 위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는 이야기는 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바로 코 앞에서 그의 모습을 확인하니 역시나 대단하다 싶다.
노래도 딕션도, 그리고 표정과 연기도 그는 너무나 진지하고 정성스러웠다.
더불어 나는 그의 방향 전환과 그리고 성공적인 안착이
여러 면에서 win win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대사의 강약과 어투에 조금만 더 신경쓴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에겐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아직 그는 시작을 조금 지나왔을 뿐이니까...)
무대 위에서 여우가 되는 법을 아마도 그는 스스로 찾게 되리라.
다른 누구와도 같지 않은 정성화만의 모습을
기어이 찾아낼거라 믿는다.


잊혀질 수도 있는 역사를 이렇게 기억하는 방법이 있다는 거.
최고는 아닐지라도 최선의 방법임을 느낀다.
그저 잠시 동안의 벌떡임일지라도
한 번도 심장이 아리지 않은 것보다는 그래도 나을 것이기에...
<영웅>은 내겐 많은 생각과 말을 하게 만드는 공연이다.
언젠가는 내 거칠고 산발된 생각들을 차곡차곡 정리해보리라 혼자 다짐해본다.
그리고 이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살아 있으라.... 살아 있으라.....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8. 17. 05:49
<도가니> - 공지영 

 

도가니

 

아직도 너무나 열혈청년(?)인 이 시대의 슈퍼우먼 아줌마 작가 공지영!

(왠지 공지영이란 작가 앞에는 이런 버라이어티한 소개말이 꼭 붙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가 또 한 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참 많이, 그리고 쉬지 않고 각종 책을 출판하는 그녀의 저력(?)은 일단 누구라도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2008년 11월 26일부터 2009년 5월 7일까지 Daum에서 연재됐던 인터넷 소설 <도가니>는 다시 약간의 수정을 거쳐 출판돼 지금 서점가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는 중입니다.

한때 “공지영 신드롬”이란 말이 있었더랬죠.

마초적이며 돈키호테같은 그녀의 글들을 잘 대변하는 표현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미 고인이 된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은 “공지영 신드롬”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기만 알고 편한대로 살아가려는 젊은이들에게 사회에 대한 관심을 이끌고 아무렇게나 사는 걸 반성하게 만드는 착한 소설이라는 뜻이 담긴 이 말을 긍정적으로 이해한다”라고...


이 소설의 출발은 2005년 TV에서 방영된 시사고발 프로그램이었다고 합니다.

실제 광주의 한 장애인학교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한 고발이 바로 이 소설의 시작이죠.

우리게 알게 되는 모든 이야기는,

결국은 진실과 거짓,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범한 자 혹은 평범한 자의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분명 흥분이나 감격 같은 게 마구 들끓는 “도가니”같은 사건들을 수없이 만나게 되는 거구요.


늘 안개에 쌓여 있는 몽환적이고 희미한 도시,

그래서 가끔 현실조차도 몽롱하게 흐려보이는 도시, 무진(霧津)!

안개 속에 농밀하게 섞여있는 비밀스러움, 숨김, 비도덕적이고 불쾌한 냄새들. 책의 표현대로 야만의 냄새를 풍기는 무진의 한 청각장애인학교로 한 남자가 부임합니다.

아내의 인맥을 붙잡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이 불쾌감 가득한 무진시 자애학원에 기간제교사로 내려온 강인호.

학교발전기금으로 작은 거 5장을 당당히 요구하는 행정실장(그것도 다른 사람이면 큰 거 한 장을 받아야 하는데 당신 아내 덕에 그 반만 받겠다는 엄청난 은혜를 내리면서 말이죠), 청각장애인 위한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수화를 거의 하지 못하는 33명의 교사들, 그리고 첫날부터 느껴지는 학생들의 눈에 담긴 노골적인 노기와 분노들.

불과 한달전 한 여학생이 운동장 끝 절벽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고가 있었고 어제는 어린 남학생이 달리는 기차에 치여 죽는 사고가 발생한 곳.

그 아이의 주머니에선 교장 이강석과 생활지도교사 박보현의 이름이 적힌 피묻은 쪽지가 발견됩니다.

그러나 두 사고 모두 짙은 안개로 인한 실족사로 처리되죠.

중2 담임으로 부임한 강인호와 반 아이들과의 첫 만남,

분노로 가득한 학생들 중 한 아이가 망설이다 필담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누가 그애를 죽였는지 알고 있어요....”

그리고 퇴근길에 여자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명확하지 않은 비명소리....

학교 관계자는 강인호에게 말합니다.

“우리와 얼굴 생김새는 같지만 청각장애인은 수화를 쓰는 이방인, 다른 민족”이라고요.

그러면서 거짓말도 그들 민족의 풍습이라고 덧붙입니다.

자, 이 학교에 뭔가가 있긴 한 것 같네요.

강인호. 이 사람은 이 학교에 있는 선생님들 거의가 다 그렇듯 그저 몇 달만 이곳에서 버텨내면 서울에 번듯한 학교의 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 선택을 해야겠네요.

모로는 척 외면할 것인가, 아니라면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그런데 중요한 건, 상황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건 분명한 “개입”의 의지를 표명한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결정을 했든 혹은 상황에 의해 그렇게 됐든 간에 말이죠.


자애(慈愛)학원!

학교의 이름과는 달리 이 학원의 실상은 기숙하고 있는 학생들을 철저히 자해(刺害)하고 있는 학교였습니다.

그것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소리치지 못하는 청작장애인들을 상대로 야만적인 성추행과 성폭행이 자행되는 그런 곳이죠.

참 더럽고 추잡한 이 충격적인 이야기가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야기라는 사실입니다.

학원의 원장 이강석, 행정실장 이강복(두 사람은 쌍둥입니다), 그리고 생활지도교사 박보현, 이 세 사람은 학교의 학생들을 초등학생 때부터 성폭행해온 인물들입니다.

청각장애가 지적장애까지 가지고 있는 아이에겐 심지어 한 번 관계할 때마다 과자를 사먹으라며 천원씩의 돈을 주기도 했죠.(완전한 형태의 매춘이죠)

심지어 어린 남자 아이도 예외는 아닙니다.

강인호와 무진시 인권운동센터 서유진은 몇몇의 사람들과 함께 자애학원을 고발하고 매스컴에 알리는 듯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합니다.

법정에 선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진술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구체적이며 너무나 끔찍하기만 하죠.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렇게 점쟎고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는 분들이 그럴 리가 없다고, 이건 누군가의 음모라고.....”

누군가의 음모?

이 표현만큼 현실성 없고 막무가내인 말도 없을 겁니다. 이 단어 자체가 그저 “소설”이죠.

그런데 이 소설같은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음로론”이라는 그럴싸한 테두리를 달고서요...

음모론까지 나왔으니 또 누군가는 눈에 불을 켜고 상대방의 해묽은 약점을 들춰내기 위해 사돈의 팔촌까지 찾아내겠군요.

“내가 널 이렇게까지 해집어 놨는데 어디까지 버티는지 한 번 보자”

이 소설 <도가니> 속엔,

지금 자행되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추잡한 일들이 전부 들어 있습니다.

불쾌하고 더럽고 추잡한 인간의 모든 행태.

단순히 장애인의 성적학대, 성폭력의 문제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 보다 더 근본적인 인간의 야만성에 대한 이야기죠.

소유한 자의 야만성, 소유하지 못한 자의 야만성.

밟는 자의 야만성, 밟히는 자의 야만성.

숨기는 자의 야만성, 드러내려는 자의 야만성.


작가 공지영은 이 소설을 쓰면서 행복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거짓말이라고 하네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전부 진실을 말해야 무섭지 않는 세상이 될텐데 진실이 가진 가장 큰 단점은 그게 몹시 게으르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이유로 자주 너무 늦게 도착하게 되죠.

진실을 참고 기다리던 사람들은 결국 하나씩 지쳐서 포기하게 되고 급기야는 잊는 방법을 선택하기에 이릅니다.

그들에게 “인권”을 외면했다고 손가락질 할 수는 도저히 없을 것 같습니다.

“인권”이라는 거, 어쩌면 스스로가 가진 인간의 “야만성”을 억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건 아닌지...

“학원 원장의 인권과 장애아들의 인권이 같은 줄 알았어요?”

어쩌면 우리 내면의 일부도 이 말에 분명 동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라면 이제 어떻게 하렵니까?

모른 척 외면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개입하시겠습니까?

당신의 선택에 따라,

이 책의 결말은 확실히 다르게 다가올 것입니다.

펄펄 끓어오르는 <도가니>가

지금 여기서 당신을 선택을 기다립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6. 23. 06:38
1988년 개봉했던 더스틴 호프만과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레인맨>을 기억하는가?
이 작품은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등
주요 4개 상을 거머쥐기까지 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0여년 전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었다.
아직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킬링필드>처럼 학교에서 단체관람으로 본 게 아닌
내 돈을 내고 최초로 봤던 영화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위대함이여~~ ^^)



영화를 보는 내내
톰 크루즈의 잘생긴 얼굴보다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가 어린 눈에도 엄청나 보였던 기억.
"저 사람 정말 자폐아 아니야!!"
솔직히 감동을 받았던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대로 이해나 했을까....)
그 영화의 몇 장면들은 아직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서번트 신드롬"을 가진 자폐아  형 "레이먼드 바비드"와
인터넷 주식 트레이더 동생 "찰리 바비드"
어느날 찰리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형의 존재를 알게 된다.
만약, 내게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형제가 어느날 나타난다면....
그것도 같은 부모밑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탈렌트와 영화배우로 유명한 임원희. 이종혁의 뒤를 이어
멋진 연극배우 김명민과
감초역의 코믹 연기의 대가 뮤지컬 배우 김성기.
그 둘이
레이몬드와 찰리를 연기했다. 



씁쓸했던 것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두 사람이 공연했을 때와
공연료 차이가 달라졌다는 사실 (30000 -> 25000)
대중의 힘이라는 게 가격까지도 조정하는구나 싶어
왠지 연극인들이  설움에 공감하게 된다.



<햄릿>, <에쿠우스>, <나쁜 자석>
그리고 그는 기억하기 싫겠지만 첫 뮤지컬 <카르멘>까지 (그건 좀..... @@::)
내가 아는 김영민은
연극 위에서 그대로 꽃이 되는 사람이다.
그의 몰입력은 신비감까지도 불러일으킨다.
그런 그의 무대를 오랫만에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랬다.
그리고 그 설램에 대한 보상을 그는 역시나 해줬다.
그의 눈물...
그 간절함과 미안함과 절실함.
어쩌면 내리는 빗소리보다 내겐 더 큰 빗소리로 남겨졌는지 모른다.



내겐 적격인 <라만차의 돈키호테>로 기억되는 뮤지컬 배우 김성기1
<사랑은 비를 타고>의 소심쟁이 노총각 형,
<벽을 뚫는 남자>에서 열연했던 일인다역 (그의 알콜중독 의사는 꺄아~~~),
<미녀는 괴로워>에서의 성형외과 의사에 이어, <자살 여행>까지...
그의 코믹연기는 그야말로 물이 오를데로 올라
마치 실생활도 그렇지 않은지 의심하게 만든다.
왠지 빈 듯한 헐렁함 속에 꽉꽉 채워진 치밀함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잇는 매력 포인트!



매표소 앞에 붙어 있는 홍보물.
역시 대중의 힘은 어디든 강력하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여파가 이곳 공연장까지 이어지길
얼마나 바랬을까.....
(그러나 역시 대중은 대중이다!)



2시간 가량의 연극을 보면서
혹시, 
나도 <레인맨>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생각했다.
시간이 자나도 레이몬드는 동생 찰리를 잊지않고
천재적인 기억력으로 매 순간순간을 전부다 기억하고 있었다.
찰리는 발음이 명확해지기도 전에 그 형을 떠나 보냈다.
(형의 자폐 증세가 동생에게 위협이 될 것을 두려워한 아버지에 의해...
그 아버지 역시 사랑하는 장남 레이몬드는 눈물로 병원에 맡겼다)
찰리의 불명확한 발음은 레이몬드를 레인맨으로 만들었다.
그 레인맨은 찰리의 힘든 순간을 함께 해준 유일한 친구였다.
자신만이 만날 수 있는  상상의 친구.
자신이 만든 <레인맨>
그렇게 알고 있었던 찰리....



형과의 재회로 찰리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나버린 아버지와의 관계까지도 회복한다.
그리고 그토록 두려워했던 한 가정을 꾸미기까지도...
혹 마음속에 잃어버린 것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제 찾아보라!
어쩌면 바로 거기서
당신의 관계 회복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연극 사이사이  흐르던 비틀즈의 노래와 빗소리
그리고 소극장에서 처음 만난 회전 무대
무대가 돌아가는 소음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순간,
나는 <레인맨>과 완전한 소통의 관계를 이루고 있었으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