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10. 20. 08:18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일시 : 2014.08.09. ~ 2014.10.19.

장소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극본 : 민준호

연출 : 민준호

출연 : 김용준, 진선규, 김민재(아버지) / 김호진, 김대현, 윤나무(아들)

        박민정, 노수산나(민정) / 홍우진, 오의식(노래방 주인)

        유지연, 백은혜(아줌마) / 정선아, 이지해, 이석, 차용학(소녀)  

제작 :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참 한결같이 꾸준하고,

참 한결같이 열심인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작년부터 이어진 간다의 10주년 퍼레이드를 보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하다.

네번째 작품인 이 요상한 제목의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도 역시나  딱 "간다"스러운 작품이더라.

적당한 재미와 적당한 감동과 그리고 두터운 믿음과 신뢰를 보여주는 팀웍까지!

간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치 잼콘서트를 보는 느낌이다.

그냥 보고 지나칠 일상을 작품으로 만드는 민준호의 극본과 연출력도 참신하고

배우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능도 기울어짐이 없다.

'간다"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을 꼽자면,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내 과거의 시간들을 들춰보게 만든다는거다.

관람하면서 "아! 이거 딱 내 이야기네~~~" 하고 여러번 공감했다.

때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간다 작품은 대본이 딱 정해진게 아니라

(민준호 연출에겐 미안 ^^)

어떤 큰상황만 던져주고 나머지는 배우에게 맡겨버리는건 아닌가 하는...

그만큼 배우들의 연기가 진솔하고 거침없다.

그래서 캐스팅을 누구로 보든 소위 말하는 구멍을 만날 일이 전혀 없다.

 

노래방주인 홍우진의 다소 다혈질적인 연기도 재미있었고

어쩌다 아버지 전문배우가 되버린 진선규의 연기도 참 좋았다.

(급기야 진선규는 제 나이의 연기를 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

윤나무가 보여준 극한의 찌질함에 혀를 내둘렸고,

정선아, 이지혜의 정신을 쏙 빼놓는 발랄함(?)에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리고 정말 백만년만에 들은 old pap도 너무 좋더라.

 

생각해보니 나도 그랬었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학교다닐때 영어사전을 뒤적이면서

"You light up my life"와 "Nothing gonna change my love for you"를 아주 성실하게(?) 직역했더랬다.

그러네...

간다 작품이 나를 또 추억에 잠기게 하네...

그래서 10주년 퍼레이드 마지막 작품 <뜨거운 여름>도

나를 어느 시간으로 데리고 가게 될지 많이 기대된다.

아무래도 "간다'는,

내겐 "시간여행"의 다른 이름인 것 같다.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언제나 지금처럼 시간 속으로 계속 쭉 가줬으면 좋겠다.

멈춤없이 Go~~~Go!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5. 28. 08:14

<Some Girl(s)>

일시 : 2014.05.06. ~ 2014.07.20.

장소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대본 : 닐 라뷰트

연출 : 이석준

출연 : 정상윤, 최성원 (영민)

        태국희(미숙), 김나미(태림), 이은(상희), 노수산나(소진)

제작 : 극단 맨씨어터

 

그동안 정말 궁금했었고 기다리기도 했다.

배우 이석준이 언제쯤 연출을 시작하게 될지가!

블로그에서 쓴 적이 있지만 몇 년 전부터 이석준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그 속에 배우와 연출가의 시선 두 가지가 다 느껴졌었다.

그래서 조바심 내며 바라기까지 했다.

아내 추상미보다 이석준이 먼저 연출가로 입봉하기를...

그랬더랬는데 그의 첫 연출작이 이렇게 <썸걸즈>가 됐다.

맨씨어터 우현주 대표의 권유도 있었다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이석준다운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연극 <Some girl(s)>라면

2007년 초연부터 2008. 2010년까지 세 차례 올려질때마다 

배우 이석준이 남자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작품이다.

남자주인공 직업이 영화감독이자 대학교수였던 진우에서 작가 영민으로 바뀌고

some girl들의 이름도 다 바뀌긴 했지만 어쨌든 맥락은 같다.

나... 결혼해, 그 전에 우리 한 번 만나자!

"나쁜 남자" 이야기?

글쎄...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진짜 나쁜 남자들,

절대 이런 짓 안 한다.

일단 모냥새 너무 빠지니까!

 

솔직히 이석준이 출연한 <썸걸즈>를 못봤었다.

이석준 출연작은 대부분 다 찾아보는 편인데

이 작품은 세 번이나 공연됐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을 다 놓쳤다.

그래서 연출 데뷔작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배우 정상윤이 이석준 역으로 첫 연극 데뷔를 한다니 여러가지로 흥미롭긴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

이석준의 연출은 아주 깔끔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에게 많은 부분을 맡겼더라.

연출가 이석준과 배우 정상윤 사이의 "믿음"이 작품을 보는 내내 느껴져 개인적으로 흐뭇했다.

정상윤의 섬세한 연기는 역시나 좋았고, 표정과 딕션, 대사 타이밍도 아주 좋았다.

단점이 있다며느

도저히 "나쁜 남자"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거.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이석준이 왜 이 작품의 남자주인공으로 정상윤을 선택했던게!

 

에피소드 4편의 균형감이 일정하지 않았던건 안타까웠지만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관극이었다.

(그래도 두 번 보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인상깊었던 에피소드 순서를 꼽자면,  

3 -> 2 -> 1-> 4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노수산나의 인물 설정은 너무 신경질적이지 않았나 싶다.

뭐랄까. 병적인 히스테릭 징후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럴거라면 차라리 극도로 시니컬하던가,

아예 대놓고 다중인격스러웠으면 더 좋았을텐데...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나는 극 중 "영민"이 충분히 이해된다는 사실이다.

사귀던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타는 방식으로 헤어짐을 통보하는 사람.

비겁하긴 하지만 이해 불가는 아니다.

때론 그게 최선일 때도 있다.

그렇지않나!

 

역시나 썸타는 일은...

쉽지 않다.

솔직히 그걸 왜 하나 싶다.

아무래도 내게 썸남, 썸녀의 기질은 전무한 모양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8. 28. 08:17

<The Woman in Black>

일시 : 2013.06.26. ~ 2013.09.22.

장소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원작 : 수전 힐(Susan Hill)

각색 : 스티븐 말라트렛 (Stephen Mallatratt)

윤색, 연출 : 이현규

출연 : 김의성, 홍성덕 (아서 킵스) / 김경민, 김보강 (배우)

제작 : 파파프로덕션

 

파파프로덕션의 여름 레파토리 <우먼인블랙>

2007년 초연 이후 5번째 재공연이다.

2011년 홍성덕 아서 킵스, 박호산 배우 캐스팅으로 충무아트홀 블랙에서 봤었으니까 개인적으론 2년 만의 재관람이다.

이 작품은 영화로도 개봉됐느데 헤리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아서 킵스로 나왔었고 흥행엔 실패했던 걸로 기억한다.

(헤리포터가 평생의 족쇄가 되버린 다니엘 래드클리프도 배우로선 참 안타깝다.)

이 작품의 특징은,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점점 고조되는 묘한 뉘앙스(?)에 있다.

그건 공포일수도, 급작스런 소리와 움직임이 주는 놀람일수도 있다.

자신의 고통스런 과거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남자 아서 킵스.

그리고 아서 킵스의 의뢰로 젊은 시절의 그가 되어 무대 위에서 아서 킵스의 과거를 그대로 재현해내는 한 명의 배우.

트라우마를 벗어나고픈 한 남자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공포가 필요해서 이 작품을 선택했는데

아무래도 2011년 홍성덕과 박호산의 연기가 각인되버렸나보다.

첫인상이란 건,

이렇게 무섭도록 집요하고 확고하다.

나름대로 고민하고 선별한 캐스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관람은 사실 좀 피로했다.

뉘앙스가 아니라 노골적인 들이댐이 느껴져서...

2012년에 이어 두번째로 배우역을 한 김경민의 고성방가에 가까운 소리는 귀를 자극적으로 아프게 했다.

(맨 앞 줄이라 더 그렇게 느껴졌을까?)

이해시키고 몰입하게 도와주는 게 아니라 시종일관 아서 킵스와 관객을 다그친다.

이해하라고, 잘하라고...

앉아있는 나까지지도 왠지 주눅이 든다.

게다가 김경민의 열의에 가득찬 소리때문에

작품에서 실제로 드러나고 부각되어야 할 소리들이 오히려 기를 못 편다.

(의자가 삐걱이는 소리, 커다란 상자가 닫히는 소리, 바람 소리, 문소리, 휫바람 소리...) 

이 작품에서 소리는 효과음이 아니라 하나의 배역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데 다 소멸시킬 기세다.

아무래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은 아서 킵스가 아닌 김경민인 것 같다.

오히려 아서 킵스 김의성은 아주 고요하고 노멀하다.

때때로 방관자의 시선이 감지될만큼...

그래도 김의성은 표현은 나쁘지 않았다.

대충 꼽아보니 김의성 아서 킵스가 표현한 인물이 대략 6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상황이 변할때마다 순간적으로 변하는 눈빛이나 절박한 표정들은 참 좋았다.

김의성이라는 배우의 내공이 충분히 느껴질만큼.

배우 역의 김경민은 액팅도 너무 과하게 표현해서 긴장감과 공포감이 들어설 자리가 마땅치 않다.

김경민을 보면서 2011년 박호산의 연기가 얼마나 좋았는지 새삼 감탄하게 됐다.

(박호산의 대사톤과 분위기, 작품을 이끄는 뉘앙스들... 정말 좋았다.)

아이의 방에 걸려 있는 초상화가 달라진 건 정말  많이 아쉽다.

처음 봤을 때 마치 사람이 앉아있는 것 같아서 섬득했었는데

지금은 작은 액자에 얼굴만 그려져 있어 왠지 밋밋한 느낌이다.

초상화 전체 톤도 너무 밝고...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의외의 공포성을 남겨줘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이번 공연에서는 그게 많이 부족했다.

아서 킵스를 연기한 배우가 극 속에서 제닛 험프리를 봤으니

그의 아내와 딸도 죽게 될거라는 공포를 관객이 알아채야 했는데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관객을 향한 암묵적인 질문도 던져주지 못했다.

"왜이래? 당신들 모두도 제닛 험프리를 봤쟎아?"

이게 모두 공감돼야 마지막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제대로 살 수 있는 거였는데...

개인적으론 아쉬움이 많이 남는 관람이었다.

어쩌면 내가 이 작품은 두 번째 봐서 그런 건지도...

이미 알고 있는 건 더 이상 공포가 될 수 없을테니까.

그래도 워낙에 연극적인 요소가 탄탄한 작품이라

처음 보는 관객들은 아마도 충분히 흥미롭게 볼 수 있을거다.

내가 처음에 그랬던것 처럼 ^^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11. 21. 00:04

<연애시대>

부제 : 헤어지고 다시 시작된 그들의 연애
일시 : 2011.09.23. ~ 2011.12.31.
장소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출연 : 김영필, 주인영, 이상혁, 김나미, 정선아, 김태근
원착 : 노자와 히사시
각색 : 김효진
연출 : 김태형


요즘은 연극이 참 좋다.
점점 가벼워지고 코믹해지면서 엄청난 물량공세와 스펙타클한 무대효과에 힘을 쏟는 뮤지컬에 눈이 피곤했나보다.
지금 현재도 기대했던 뮤지컬 <엘리자벳>의 가격대를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중이다.
VIP석을 넘어 생전 듣도 보도 못한(이런걸 듣보잡이라고 해야하나?) D-class라는 좌석이 탄생했다.
가격은 무려 15만원!
그것도 금,토,일 주말에는 16만원이란다.
이제 대작 뮤지컬은 돈 좀 있는 사람들만 즐기는 상류층의 진정한 귀족문화로 탈바꿈하려나보다.
항간에는 D-class의 "D'가 대박의 준말이라고 비아냥거린다.
불매운동 하자는 말도 있고...
(EMK의 엄청나게 창의적인 high-class 정신에 경의흘 표하는 바이다)
어쨌든 샛길로 빠지긴 했지만 점점 뮤지컬을 본다는게 여러모로 무서워진다.



연극 <연애시대>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손예진, 감우성 주연의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었다.
본 적은 없지만 꽤나 인기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2권으로 된 소설은 꽤 오래전에 읽었다.
원작자 노자와 히사시는 일본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이자 TV 미스터리 극본가였다.
투박하고 뭉뚝하게 생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감성적이고 세심한 글을 썼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더이상 그 이유를 알 길은 없어졌다.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기이기도 한 그가 2004년 6월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에...
뭐가 그를 못견디게 했을까?
로맹 가리처럼 문학적으로 모든 걸 이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정리해버린건가?
글쓰는 사람의 죽음, 특히 그게 스스로 선택한 자살이라면.
어쩔수없이 명치끝이 오랫동안 묵직해진다.
이런 연애시대를 꿈꾼 사람이 왜?



도망치는 남자 리이치로(김영필),
그리고 싸우는 여자 하루(주인영).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고 아이를 가졌다.
그러나 그 아이는 살아서 태어나지 못했다.
아기가 사산된 날, 남편은 아내 곁을 지키지 않았다.
(사실 남편은 그날 밤 사산된 아이와 함께 있었지만 아내는 그 사실을 모른다)
도망친 남편때문에 아내는 싸우게 됐을까?
남편은 아내와 싸우지 않으려고 도망쳤을까?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리고 속마음을 숨기면서 서로에게 끝없이 빈정대면서
다시, 아니 계속 사랑하고 그리워하면서 서로를 지켜보고 바라본다.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너그럽게 서로를 배려하게 된 두 사람.
이런 줄거리... 사실 신물 제대로다.
하지만 이 연극은 그렇지 않다.
절대 신물 따위 나지 않는다.
두 시간동안 푹 빠져서 이 신물나는 뻔한 신파를 나는 아름답고 황홀하게 지켜봤다.
연출, 배우, 무대, 극의 전개가 전체적으로 잘 짜여졌다.
배우들의 감정 연기와 몰입이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오랫만이다.
6명의 등장인물이 이렇게 완벽하게 무대를 채우는 모습을 목격한 건!
마치 2인극에서나 가능할 그런 집중력이고 몰입이다.
이 연극.
괜찮다. 따뜻하고 다정하다.
툭툭 치고 받는 대사들도 살아있다.
주인공 김영필, 주인영이 11월 중순까지 공연하고 다른 팀이 들어간다기에
서둘러 챙겨봤는데 놓쳤으면 많이 아쉬웠을 뻔했다.
<뷰티플 선데이>의 정선아도, <청춘, 18대1>의 김나미도 배역에 참 잘 어울렸다.
정말 오랫만에 괜찮은 연극배우들이 만든 꽉 찬 빈틈 없는 연극을 만났다. 
풍요로운 포만감에 온 몸이 나른해진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게 "연애"란다.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연애를 하는 사람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싸우는 걸 두려워하지 말 것!
함께 싸우면서 그렇게 알아가면서 또 다시 싸우면서...
그리고나면 시간이 더 많이 흐른 뒤 정말 이런 말을 하게 될지 모른다.
"함께 늙을 수 있어서 참 좋다!"
이럴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누구든, 어떻게 살았든
참 제대로 살았다.

이 연극은 오래 고민중인 내게 선택을 남겼다.
고맙다.
충분히 도움이 됐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8. 25. 05:46


제 목 : 경남 창녕군 길곡면
일 시 : 2010.0730. ~ 2010.09.19
출 연 : 이주원(종철 역), 김선영(선미 역)
장 소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극 본 : 프란츠 크시버 크뢰츠
번안, 연출 : 류주연

<연극열전3rd>의 여덟 번째 작품이다.
몇 달 전에 유주연 연출의 <기묘여행>을 인상깊게 보기도 해서 연극열전에서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 공연된다고 했을 때 놓치지 말고 찾아봐야지 생각했었다.
게다가 서울 문화의 밤 행사에 이 연극이 포함되어 있어서
8월 21일 총 2회 공연은 만원이라는 정말 파격적인(?) 가격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솔직히 이게 왠 횡재냐 싶었다.

 
이 연극은 독일작품이다.
프란츠 크시버 크뢰츠라는 사람의 극본으로 도시 하층민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작품이다.
독일 원제는 "오버외스터라이히" 라는데 독일에 실제 있는 작은 도시 이름이란다.
우리나라에선 연출 류주연이 직접 번안을 하면서 제목을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라고 정했다.
(실제로 경남에 창녕군 길곡면이라는 곳이 있긴 하다)
2007년 초연됐고 거의 매년 재공연된 작품이다.
꼭 제목처럼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 아니라도 대한민국 어디든 다 상관이 없다.
아웅다웅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다.
어차피 인간이 사는 곳은 어디든 다 마찬가지니까.


                          김선영(선미)                                         이주원(종철)       

초연때부터 함께 부부로 출연한 김선영, 이주원은
실제 부부가 아느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완벽한 호흡을 자랑한다.
(그런데 부부라고 해도 정말 믿겠다)
원작자는 각 나라에서 이 연극을 공연할 때는 꼭 사투리로 공연해달라는 조건을 붙였단다.
도시 하층민의 삶을 그린 이야기에 표준말을 또박또박 쓰는 것도 좀 우습긴 하겠지만
사투리가 아니라면 연극의 재미가 아무래도 줄어들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약간은 수다스럽고 구시렁구시렁 거리는 경상도 사투리를 선택했는데
김선영, 이주원 두 배우 모두 고향이 경상도라 사투리의 묘미가 한층 자연스럽고 재미있다.
실제로 이 연극에서 구시렁거리는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
100% 전부 두 배우의 애드립이란다.
두 사람도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할지 전혀 모른다고...
그리고 선미 역의 김선영은 실제로 임신중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기에 대한 사랑과 보호본능이 극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역시 엄마는 늘 언제나 강하다.
(그런데 왜 아빠들은 겁쟁이가 많은건지...) 

 


결혼 3년차!
여유돈이라고는 통장에 들어있는 120 만원이 전부이고
두 사람의 한 달 수입은 대략 300만원 정도. (아내는 그나마  비정규직이다)
그래도 알콩달콩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살아가던 두 부부에게 변화가 닥친다.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
아내는 생명을 지키고 싶어하지만
남편은 아내에게 낙태를 하자며 설득 아닌 설득을 한다.
소위 돈 없으면 애 낳기도 힘든 세상에 남편은 덜컥 겁이 나버린거다.
남편은 말한다.
"아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아빠냐가 중요하다" 고...
왜 끊임없이 나쁜 것만 찾으려고 하느냐는 아내의 질문에
남편은 "그게 현실이다!" 며 무시할 수 없는 한 마디를 내뱉는다.
남편의 말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보는 입장에서도 솔직히 할 말은 없다.
이 말이 사실이긴 하니까...
김용택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자녀에 관한 문제라고...
맞는 말이다.
연극 속에서 남편 역시나 그 현실이 덜컥덜컥 겁이 날 수밖에 없었을거다.



급기야 아내와 남편은 한 달 지출을 조목조목 종이에 적어가며 계산기를 두드린다.
집세, 자동차, 대출금, 보험금에 심지어 부모님 용돈, 화장품, 미장원비, 술, 담배, 우유 값까지 끄집어내 계산한다.
(이 부분이 이 연극에서 가장 롱테크로 진행된다. 유치하지만 그야말로 사생결단으로 점점 치열해지는 장면 ^^)
월 300만원 수입에 지출은 2,955,000 원.
아내가 직장을 그만 두는 전제하에 한 달 수입을 200만원으로 잡고
(그러기 위해선 남편은 야간 운전까지 해야한다)
이제는 줄일 수 있는 목록들을 하나하나 삭제하기 시작한다.
차를 팔고, 술 담배를 끊고, 물만 마시고,
화장품은 립스틱만 바르고 머리를 기르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거의 모든 것을 안 하기로 작정했는데도 나온 금액은 1,934,000 원.
눈 앞에 남은 건 잔액 66,000 원의 현실이다.
(보는 나까지도 어쩔 수 없이 씁쓸해진다)


결론은,
어쨌든 아기를 낳기로 하니까 등장조차 하지 않는 아기 입장에서는 더없는 헤피엔딩이다.
하지만 엔딩에서 남편이 연주하는 루이 암스트롱의 어설픈 섹소폰 연주처럼 과연 부부의 현실도 누부신 "What a wonderful world" 가 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심스럽다.

유쾌하고 즐겁게 보고 나오긴 했지만
정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현실에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다.
아이 없이 두 사람만 행복하고 즐겁게 살겠다는 딩크족이 아니라면 결혼한 부부는 자녀를 낳아 함께 키우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걸 우리는 일반적으로 "평범"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점점 우리가 알고 있는 이 평범이라는 기준이 점점 평범 이하로 자리이동이 되고 있으니 부모 입장이라면 퍽퍽한 세상살이가 될 수밖에 없다.
아이의 세상을 wonderful world로 만들어주기 위해 부모는 소위 삑사리 가득한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장 담그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라
내 항아리에서 자생으로 생기는 구더기는 그런데로  봐줄 수 있어서 기껏 장을 담궜는데
멀쩡한 내 장에다가 누가 자꾸 구더기를 넣으려고 하는 사회에 있다.
그래서 연극의 말미에 나온 "절망에서 살인! 이라는 신문기사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재미있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너무 좋았고.
연출과 무대도 너무 좋아서 전체적으로도 상당히 좋았던 작품임에는 분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나와서는 너무 많이 참담해지는 연극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연극을 보면서 단지 코메디라고만 여길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그 참담함이 배가 된다.
에이! 그만 생각하자!
열심히 연습하면 삑사리 없는 "What a wonderful world"를 연주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살자... 살자... 살자...
치열하게 살든, 연습하듯 살든, wonderful 하게 살든. 삑사리가 작렬하게 살든,
어쨌든 살기나 하자!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