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키택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10.18 Fira의 아침
  2. 2013.09.23 야간 페리를 기다리며...
  3. 2013.09.22 레드 비치와 피라 선셋
여행후 끄적끄적2013. 10. 18. 08:55

새벽에 눈이 떠졌다.

창문 커튼 틈으로 수영장 물빛에 비친 청록색 하늘이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해가 지는 모습은 그렇게 챙겨서 바라봤으면서

해가 뜨는 순간은 놓치고 있었구나...

세수를 하고 머리를 눌러쓰고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늦은 밤에 야간페리로 다시 아테네로 들어가야 하기에 Fira의 아침을 볼 시간이 지금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아직 어두운 Fira의 거리로 발을 옮기게 했다.

언제 이곳을 또 다시 오게 될까?

어쩌면 이런 센치한 감정도 한 몫 했을거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숙소를 나와 길 위에 발은 얹는 순간 텅 빈 "고요"와 대면했다.

꽤 늦게까지 북적거렸던 Fira가 완벽하게 비어 있었다.

조용하고 적막해서 먼 곳에서 부는 바람 소리가 귓가에 선명했다.

덜컥 무섬증이 일었지만 '언제 다시 볼게 될까...' 라는 생각이 나를 앞으로 걷게 했다.

골목길을 만난 깨어있는 불빛들.

낮익은 풍경들에게 짧게 작별을 고했는지도...

산토리니에 3박 4일을 머무르는 동안 이제 고작 Fira만 언급했을 뿐인데

지금 나는 Fira가 참 그립다.

포카리스웨트 광고때문에 로망이 된 Oia보다 나는 Fira가 훨씬 더 좋았다.

아마도 내가 산토리니를 다시 찾게 된다면 그건 순전히 Fira 때문일거다.

아직 어린 조카들이 있어서 그 유명한 와이너리 투어도, 볼케이노 투어도 결국은 못했지만

Fira에는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어서 내내 행복했다.

Fira의 그 길들이...

지금도 나는 사무치고 그립다.

 

이제 막 문을 열기 시작한 빵집에서 풍기는 고소한 빵냄새,

창가에 서서 파티쉐가 아침을 여는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 봤다.

고소하고 따뜻하고 부지런한 움직임.

뒤돌아선 파티쉐가 웃으며 윙크와 함께 손키스를 날린다.

나도 따라했다.

그냥 좀 고소해지고 싶어서...

피라 구항구(old port)로 이어지는 588 계단 앞에서는 잠Rks 망설이기도 했다.

내려가볼까? 아님 그냥 지나칠까?

결국...

내려가보기로 했다.

평소같았으면 사람이 없는 길은 궁금해도 가지 않는 편인데

이날 나는 좀 용감하과 과감해지기로 했다.

여행자니까... 그러나 마지막이니까...

 

구 항구로 이어지는 길은

원래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갔다가 동키택시(Donkey Taxi)라는 당나귀를 타고 올라오는 길이다.

한 낮에는 이렇게 사람과 동키택시로 복잡하고 번잡한 곳이

텅 비어 있으니 완전히 다른 곳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588계단은 내려가는 일은 그다지 운치있고 낭만적인 길이 아니었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당나귀들의 배설물을 피해다녀야했고

지독한 냄새때문에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연신 코를 쥐고 걸어야만했다.

'도대체 여기 왜 온거지?'

혼자 타박도 하면서...

(어떤 냄새를 상상하든 그 이상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결론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무도 없는 구항구에서 혼자 아침바다는 독차지하는 기회가 쉽게 오는 건 아닐테니까.

예전에는 페리가 들어오는 주항구였는데

지금은 페리는 전부 신항구로만 들어오고

이곳은 볼케이노 투어 걑은 로컬 투어를 위한 배들이 주로 정박한다.

이른 아침이라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지만

배를 손보는 현지인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오르막이라 훨씬 더 힘들었지만

번호가 지워진 계단을 보는 것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bar 중 하나라는 프랑코스 바(Franco's Bar)를 보는 것도 참 좋았다.

(그 전날 이곳에서 차를 마실까 한참을 고민하다 혼자라서 포기했었는데 지금 그게 너무 후회된다)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는 Fira의 아침은 아주 단백한 수채화 같았다.

 

혼자 흐뭇한 마음으로 숙소에 들어갔더니 조카들이 나를 보너니 깜짝 놀란다.

이유는 하나!

지독한 냄새가 나서...

충분히 이해한다.

내 스스로도 오래 묵힌 두엄더미 위를 구르고 온 게 아닌가 싶었으니까!

후다닥 욕실로 들어가면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피라의 낯과 밤, 그리고 아침을 모두 기억할 수 있게 돼서...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9. 23. 03:42

자고있는 조카들과 동생을 두고 혼자 새벽에 일어나 카메라를 들고 숙소를 나섰다. 계속 놓쳤던 선라이즈를 보려고... 사진은 건질게 없지만 못봤으면 내내 후회됐을것 같다. 어쩌다보니 구항구로 내려가는 588 계단도 내려갔다 올라왔는데 만만치가 않더라. 워낙엔 케이블카로 내려갔다 동키택시로 올라오는 길인데 운동하는 기분으로 시작했다가 살짝 후회했다. 땀이 나는건 오히려 상쾌했는데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무더기 무더기 싸질러댄 당나귀 응가들은 숨을 참는다고 해결될게  아니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샤워실로 직행! 온몸에 스며있을 독한 것들의 냄새를 씻어냈다.

마지막 아침식사 후 체크아웃을 하고 다시 이아 마을로 향했다. 조카가 사진에서 많이 봤던 풍경을 꼭 봐야하겠다기에... 그리고 결국엔 찾아냈다. 열심히 사진도 찍고 굴라스 성채도 다시 보고 첫번째 방문때 멀리서만 봤던 풍차있는 곳에도 다녀왔다. 몰랐었는데 이아를 찍은 유명한 사진속 장소는 대부분 식당이거나 프라이빗 호텔이었다. 전세계적으로 광고효과 하나는 확실한 셈. 개인적으론 이아보다 피라가 더 맘에 들었다. 하도 피라를 돌아다녀서 살짝 옆동네같은 느낌도 든다. 조카들만 아니었으면 정말 발바닥에 불이 나게 돌아다녔을텐데...뷰가 좋기로 유명한 스칼라에서 그리스 문어요리와 양고기파이, 그리스 셀러드와 치킨 수블라키를 먹고 해상박물관을 들러 다시 피라로 돌아왔다.

피라를 돌아다니다 엽서도 사고 하얀 원피스도 20유로에 샀다. 근데 언제 입지? 조카가 여신드레스 같다고해서 덜컥 후회된다. 까짓껏 못입으면 기념품으로 가지고 있지 뭐! 지금은 오전에 체크아웃한 호텔에서 민폐끼치는중! 야간페리 시간이 12시 20분인데 시간도 많이 남고 바람때문에 춥기도 해서 호텔측에 부탁했더니 흥쾌히 머무르란다. 점점 야간페리  탈 일이 걱정이다.신항구까지 가는 로컬버스가 5시가 끝이라 50유로라는 거금을 내고 택시를 타고 가서 기다려야 하는데 과연 조카들이 잘버텨줄까? 다시 아테네로 갈 길이 마냥 암담하다. 제발 무사할 수 있기를...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9. 22. 05:40

조카들에게 산토리니 해변에서의 수영을 추억으로 만들어주려고 선택한 레드비치.피라 로컬 버스 정류장에서 아크로티리행 버스를 타고 20여분을 가서 다시 도보로 10여분. 그런데 입구가 폐쇄됐다. 가자고 작정하면 줄을 넘어서 갈수는 있는데 동생이 반대한다. 의견충돌(?)로 개인플레이를 하기로 했다. 조카랑 동생은 오다가 봤던 해변으로 가고 나는 사진을 찍고 싶어서 레드비치에 남았다. 햇살 좋은 해변가... 온몸이 이미 익어버린 나는 뜨거운 햇살 아래 수영복만 걸친 사람들 앞에서 온몸은 꽁꽁 싸매고 퍼포먼스처럼 카메라셔터를 눌러댔다.한참 지나고 나서야 수중에 돈이 한푼도 없다는걸 깨달았다.엄청난 맨붕이 왔다.머릿속은 블랙이 되버렸고 안절부절 못하다가 지나가는 동양여자분께 사정을 말하고 2유로를 얻었다."you save me! thank you so much" 몇번이나 thank you를 연발했는지 모른다.짧은 영어실력으로 정말 용썼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 

크래커에 크림치즈를 발라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혼자 피라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쁘티호텔을 카메라에 담는데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찔한 절벽위에 그림같은 새하얀 건물들은 햇살속에 눈이 부실 정도다.산토리니의 화이트! 이상하다! 신비감을 자아내니...

구항구에서 이어지는 588계단도 올라가다 중간에 그 유명한 동키택시도 봤다.근데 당나귀들 냄새 정말 장난 아니다. 게다가 그놈들 배설물도 요리저리 피해가야하고...

전망좋은 카페에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조카들이  눈에 밟혀서 포기하고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시 주변을 들러보며 셔터를 눌렀다.전문가가 들으면 웃겠지안 괜찮은 사진을 몇장 찍었다. 

이아  마을에 이어 피라의 선셋을 찍으려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붉은 해가 수평선으로 사라지는 순간은 모든게 매직이다. 카메라의 한계,  렌즈의 한계, 나의  한계가 여실히 느껴지는 좌절의 순간이기도 하고... 아마도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 오늘이 돼지 않을까? 혼자라는  사실에 내가 아주 익숙해져버렸구나...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내가 측은하다. 괜찮아! 지금껏 그래도 잘 버텼잖아!

내일은 피라에서의 마지막 날.밤 12시에 야간페리를 타야 하니까 꼬박 하루가 남은 샘이다. 이아  마을에 다시 갈지 피라에 있을지는 아직 결정을 못했다.짐도 꾸려야하고... 어쨌든 최대한 좋은 순간을 만들자! 산토리니에 다시 오게 될지는 미지수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