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11. 1. 06:10

<왕세자 실종사건>

극본 : 한아름
연출 : 서재형
작곡, 편곡 : 황호준
출연 : 조휘(왕), 김지현(중전), 
        김대현(이구동), 전미도(홍자숙)
        태국희(감찰상궁), 안세호(하내관), 김선표(의관)
        박지희(보모상궁), 오찬우 (자객)
장소 : 두산아트센타 SPACE 111
일시 : 2010.10.19 ~201.3011.07.
제작 : 극단 죽도록 달린다

한아름 작가와 서재형 연출.
두 부부가 자신들의 동명의 연극을 뮤지컬로 만들었다.
그리고 연극 연출가 서재형의 첫번재  뮤지컬 연출작!

원래 <왕세자 실종사건>은
2005년과 2006년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젊은연극시리즈로 선정되었던 연극이다.
연극으로 공연될 당시에도 참신함과 특이함으로 집중을 많이 받았었는데
(안타깝게도 연극은 보지 못했다)
뮤지컬로 모습을 바꾼 <왕세자 실종사건> 역시도 특이하고 특별하다.
작, 편곡은 소설가 황석영의 아들 황호준이 참여했다.
국악뿐만 아니라 재즈와 클래식, 타악기들가 적절히 결합된 음악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뮤지컬을 나름대로 정의한다면,
"동선(공간)과 소리의 미학"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서재형 연출은,
"특별한 구조장치 없이 단순해 보이는 무대를
배우들의 음악과 노래, 동선과 연기, 조명과 효과음을 이용해
궁궐 내에 수많은 공간들을 만들어
대극장 뮤지컬의 막전환보다 더 역동적으로 느껴지는 장면 변환을 연출하겠다"고 말했는데
전체적으로 그 의도와는 아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처음엔 많이 낯설었다.
만약 연극을 먼저 봤었다면 달랐을까? 생각할만큼...
그런데 극이 진행될수록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건 스토리나 인물에 대한 매력이 아니라
극의 전개와 사건을 풀어가는 특이한 방식이 주는 독특한 매력이다.
바둑판같은 모양의 무대.
그리고 어찌보면 우스광스러운 배우들의 액션과 과장된 톤의 대사들.
영화의 플래쉬 백 기법을 차용했다는 반복적인 사건의 추적.
이런 묘한 입체감이 처음엔 분명히 당혹스러웠다.
그러다 점점 필름을 돌리는 사람이 바로 나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일체감을 느끼게 만든다.



딱히 왕세자의 실종은 이 작품에서 큰 의미가 없다.
그걸 계기로 여기 저기 밝혀지는 인간 군상들의 비밀과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들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왕은 왕대로, 중전은 중전대로,
그리고 상궁이나 내관, 궁녀는 또 그들 나름대로
각자 치열하게 숨기려고 하는 비밀이 있고
한편으로는 그 비밀을 기필코 파헤치려는 의도가 있다.
그러니까 극 속에서 왕세자는 또 다시 완벽하게 실종되는 셈이다.
이런 걸 보고 낚였다고 해야하나???



북소리, 바람소리가 제 2의 화자처럼 등장하면서 극의 긴장감을 더해준다.
거기에 구동의 개짓는 소리에 화답하는 자숙의 새소리는
천진하면서도 어쩌지 구슬프다.
(정말 너무 똑같다. 이런 말 좀 그렇긴 하겠지만 개인지 사람인지 구분하기 어려울만큼 똑같다...)
노래는 많이 부족하지만 땀을 뚝뚝 흘리며 구동을 연기하는 김대현의 모습은
연기의 완숙과 미숙을 논하기 이전에 감동적이다.
기복이 심했던 자숙 전미도 덕분에 나까지도 기복이 심해지고 말았지만...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이후에 오랫만에 무대에서 본 중전역의 김지현,
<리틀샾 오브 호러스>의 식인풀 오드리 태국희도 오랫만에 무대에서 만나 반가웠다.
(그녀가 첫 곡 "수상해! 수상해!"를 너무 수상하게 불러서 처음엔 못 알아봤다.)
사실 이 뮤지컬을 예매한 건 순전히 배우 "조휘" 때문이었는데
오랫만에 한동안 못봤던 반가운 배우들을 봐서 혼자 추억에 빠지기도 했다.
뮤지컬을 보면서 저 사람이 누구였지? 계속 가물가물했는데
하나씩 떠오르는 것도 신기했고...
천연덕스럽게 대사를 하던 조휘의 모습도 배우로써 새로운 발견이었다.
(이 배우 목소리톤 참 좋다.)
가벼우면서도 진중하고, 위엄있으면서도 하찮기까지 했던 왕의 모습.
따지고 보면 그게 다 인간의 모습이다.
"왕이라는 게 힘들구나!' 대사처럼
"인간이라는 게 참 힘들구나!" 싶다.

극과 극의 평가가 엇갈릴 작품인 것 같긴 한데
나는 새로운 시도와 접근이 좋았다.
애매한 부분들도 있고,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방황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참신하고 새로운 느낌이었다.
음악과 음향은 아마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꼭 연극 ,왕세자 실종사건>도 챙겨봐야 겠다.
또 다른 좋은 느낌을 줄 것 같아서...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2. 16. 06:17
몇 년 전 배우 최민식이 연극 <필로우맨>을 하게 될 거라고 해서 기대했었다.
천재 작가 "마틴 맥도나(Martin McDonagh)"의 가장 유명한 작품 <필로우맨>
그러나...
결국 나는 기대하고 있던 연극을 보지 않았다.
(것도 다분히 의도적으로...)
연극은 LG아트센터에서 공연이 됐고
나는 연극을 이런 규모의 대극장에서 올릴 수도 있다는
새로운 사실에 놀라 기겁했었다.



<뷰티퀸>
영국의 천재적인 작가 마틴 맥도나가 25살 되던 해(1996년),
그것도 8일만에 쓴 처녀작이란다.
"포스트 세익스피어"라는 말을 듣고 있는 1970년생의 젊은 작가.
한때 이 작품을 포함해서 그의 작품 4개가 동시에 런던에서 공연되기도 했단다.
단편영화로 아카데미상을 수상도 하고...
참 여러모로 다재다능하시다... ^^
사실 <뷰티퀸>을 보기로 한 건
<필로우맨>의 천재작가 "마틴 맥도나"의 능력보다
연극배우 김선영의 무대가 오랫만에 탐이 나서였다.
 


“아마 엄마는 절대 죽지 않을 거야. 영원히 거기 버티고 있을 거야. 날 괴롭히기 위해서”
“난 절대 안 죽어. 일흔 살이 돼서야 내 장례식을 치르게 될 걸."

모녀간의 대화라고 하기엔 좀 섬뜩하지 않나!
마흔이 되도록 이렇다 할 연애도 못해본 노쳐녀 모린(김선영)
우울증과 방광염을 앓고 있으면서 딸을 곁에 두기 위해
끊임없이 간섭하는 엄마 매그(홍경연). 
아일랜드 언덕배기 외따로 떨어진 곳에 사는 이 두 모녀의 이야기는
이렇듯 치열하고 그리고 섬뜩하다.
연쇄살인범에게 엄마를 도끼로 내려치라는 부탁을 하겠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딸과
그 전에 널 먼저 죽일거라고 말하는 엄마.
(그것도 아주 고소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는 이 모녀의 관계에 심한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드문드문 어쩔 수 없이 공감하게 된다.



연극을 보면서 오래 전 봤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이 영화, 정말 끔찍하게 아름답고 슬픈 영화였는데...)
연극은 끊임없이 악을 쓰듯 대화하고 
영화는 끊임없이 침묵같은 독백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에 스며있는 정신 착란과 
주인공들의 이해할 수 없는 이상 행동들이 묘하게 닮아 있고 
그리고 그 행동들이 몽상처럼 아득하다.
모린이 착각 속에서 파토를 만나는 기차역 장면과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영화 속 주인공이 작업장에서 추던 상상 속의 춤.
희망과 절망을 함께 품고 있던 그 두 장면은
묘하게 일치하면서 씁쓸한 이면을 남긴다.
어쩐지...
사람이 미쳐가는 게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장면들.



이렇게 사소한 일로 늘 티격태격 다투던 모녀에게 진짜 큰 사건이 발생한다.
매그의 방해도 불구하고 모린이 고교 남자동창 파토(신안진)와
자신의 침실에서 하룻밤을 보낸 것.
다음 날 아침 모녀는 파토 앞에서 서로의 치부를
그야말로 경쟁적으로 살벌하게 폭로한다.
엄마는 단 한 번도 딸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말을 건네지 않는다.
소리를 지르며 딸의 정신병동 입원 병력을 낱낱히 날카롭게 들춰낸다.
게다가 딸은 일부러 엄마에게 시비를 걸 듯
한마디 한마디를 가시같은 말투로 여기저기 사정없이 찔러댄다.
굳이 그렇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그녀는 교묘하게 엄마에게 끊임없이 날카로운 가시를 박는다.
조용히 그리고 집요하게...
세상 모든 모녀의 관계는,
그래, 어쩌면 이런 끔찍한 집요함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연극을 연출한 이현정 연출가,
그녀의 런쓰루는 다른 연극연습에 비해 길기로 유명하다.
대부분 1~2주의 런쓰루 기간을 갖는게 보통이라는데
이 작품에서 그녀는 4주간의 런쓰루 기간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연극은 촘촘하고 그리고 빽빽하게 꽉 차 있다.
(토막 난 생선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는 게 얼마나 좋았는지...) 
오랫만에 머릿속이 치열해지는 느낌.
결국 딸은,
엄마도 파토도 떠난 집에서
엄마가 앉았던 낡은 흔들의자에 앉아
엄마가 둘렸던 낡고 더러운 긴 숄을 꼭 엄마처럼 어깨에 감싼체
엄마와 똑같은 자세로 발을 구르며 의자를 흔든다.
그 안으로 엄마의 목소리가 노래로 흐른다.
(극의 시작은 정확히 그 반대다.
 흔들의자에 발을 구르고 있는 노모의 머리 위로 딸의 노래가 흐른다)
등장인물과 흐르는 노래만 바꿔있는 두 장면이
머리속에 선명히 대비된다.
그리고 완벽히 합치된다.
모린은 매그가 됐을까?
그래, 어쩌면... 그랬을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