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4. 23. 08:01

<M.Butterfly>

일시 : 2014.03.08. ~ 2014.06.01.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극본 : 데이비드 헨리 황(David Henry Hwang)

무대미술 : 이태섭 

연출 : 김광보

출연 : 이석준, 이승주 (르네 갈리마르) / 김다현, 전성우 (송 릴링)

        손진환, 정수영, 유성주, 이소희, 빈혜경

제작 : 연극열전

 

이석준 르네에 이은 이승주 르네 갈리마르.

SBS 연기자 공채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 스스로 연극배우의 길을 택한 보기 드물게 용감한고 뚝심있는 젊은 배우 이승주.

솔직히 치기어린 객기라고 생각도 들었고,

TV 신인 연기자의 연기수업, 혹은 얼굴 알리기용 멘트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김광보 연출의 <내 심장을 쏴라>를 보니 그게 아니더라.

대선배 김영민에게도 밀리지 않았고, 작품에도 끌려다니지 않았다.

그 후 다시 이승주를 무대에서 본 건 작년 국립극단의 "삼국유사 프로젝트"에서였다.

처음엔 몰랐었다. 그가 그 이승주라는 걸.

<로맨티스트 죽이기>에서 그의 연기는 개인적으로 충격적일만큼 인상적이고 강렬했다.

불과 몇 년 만에 81년생의 이승주는 작품을, 배역을 온전히 책임지는 여엿한 배우로 무대 위에 서었다.

(개인적으로 <로멘티스트 죽이기>를 보면서 이승주에게 무지 열광했었다. 물론 혼자 조용히... ^^)

 

<엠나비>의 앵콜공연에 그가 캐스팅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출중한 외모때문에 당연히 "송 릴링"일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르네" 란다.

조금 이해가 안됐지만 모델을 빰치는 그의 기럭지가 아무래도 송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겠다 싶긴 하다.

이승주와 김다현이 나란히 무대에 선다면?

미모에 관한한 제대로 포텐 터지겠다.

그야말로 관객들 안구정화시키는 All kill할 외모들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은 이번에도 전성우로!)

 

이승주의 르네를 보면서 스스로 "엠나비"가 되어야만 했던 한 남자의 진실이

아주 절실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건 이석준 르네와는 완전히 다른 표현이었다.

81년생의 젊은 배우가 감당하기엔 쉽지 않은 배역이었을텐데 놀랍다.

끌려가지 않고 이야기를 품고 가더라.

확실히 배우더라. 이승주는!

 

이승주가 표현한 르네는,

겶코 자신의 욕망에 속거나, 환상속에 살았던 인물이 아니다.

극단적이긴 했지만 그 결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확고한 "르네의 선택"이었다.

송이 남자였다는 사실을 르네가 정말 몰랐을까?

나는 아니라고 확신했다.

르네는 송의 정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고.

그래서 기꺼이 송의 "엠나비"가 되기로 작정했던 거라고.

그러니까 이 작품은 완벽한 여성을 만나 그 여자의 환상을 선택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했던 또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여자를 만나는 일이라는 르네의 말.

이 대사는 그냥 스치고 지나버릴 그런 대사가 아니었다.

적어도 이승주 르네에겐....

르네는 송 릴링에게 자신의 모든 수치심을 바쳤다.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

그걸 이해한다면 르네도,

르네의 선택도 다 이해될 수 있다.

 

* 작품 속에 집중과 몰입을 다 바친 배우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이날 온전히 소진(消盡 )된 두 배우의 커튼콜 모습은 

  오랜 여운으로 남겨질만큼 깊은 감동이었다.

  나는 두 사람이 훨씬 더 좋은 무대배우가 될거라는 걸,

  더  큰 책임감과 아름다운 진념으로 무대를 지켜낼거라는 걸

  추호의 의심없이 믿는다.

  작품도, 배우도...

  참 독하게 아름답다.

  두 배우가 무대 위에서 보여준 그 눈빛!

  두고두고 못잊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12. 12. 08:16

<로맨티스트 죽이기>

부제 : 2012 국립극단 삼국유사 프로젝트

일시 : 2012.11.24. ~ 2012.12.09.

장소 : 백성희장민호 극장

극작 : 차근호

무대감독 : 변오영

무술감독 : 이국호

연출 : 양정웅

출연 : 한윤춘(김달), 전중용(임종), 정승길(도화), 오민석(진평왕),

        이승주(비형), 이국호, 김남중, 성민재, 계지현, 김도완, 풍성호,

        권신우, 송준석, 이창규, 영인

 

<루시드 드림>의 차근호 작가와 <한여름 밤의 꿈> 양정웅 연출의 만남!

삼국유사 프로젝트의 마지막 작품은 정말 마지막답게 끝장이었다.

2시간 동안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 속에서 황홀하고 또 황홀했다.

이로써 9월 <꿈>으로 시작된 3개월간의 삼국유사 프로젝트 대장정도 모두 끝났다.

<꿈>, <꽃이다>, <나의 처용은 밤이면 양들을 사러 마켓에 간다>, <멸>, <로맨티스트 죽이기>

이상하다...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내가 뭐라고 가슴 한 켠이 휑~~하다.

황홀했고, 경외감이 들만큼 엄청난 여행이었다.

이 여행의 종착지였던 <로맨티스트 죽이기>

이 작품은 삼국유사 "도화녀와 비형량" 설화가 그 모티브란다.

작품의 거대함과 묵직함은 가히 언급하기 힘들 정도의 묵시론이었다.

뭐라고 운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속.수.무.책.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나는 확실히 그런 상태였다.

 

로맨티스트가 꿈꾸는 세상과 리얼리스트가 꿈꾸는 세상!

우리는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왕족과 귀족의 나라, 그 1500년전 신라가

우리가 사는 이 아비규환의 세상과 똑같은 현재의 모습으로 무대 위에 그려진다.

(게다가 같은 편 같은 왕족과 귀족은 또 자기들끼리 권력을 위해 또 열심히 싸운다.)

감각적인 영상과 심플한 무대.

클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조명과 음악.

그리고 15명의 남자들이 보여주는 현란하고 격동적인 아크로바틱의 세계는 눈을 휘황찬란하게 만든다.

(저건 사람이 할 수 있는 몸놀림이 아니야... 등짝을 열면 분명히 에너자이저가 들어있을거야...)

개인적으로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작품을 싫어하는데

이 작품은 거부감 전혀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봤다.]

 

로맨티스트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단다.

그래서 로맨티스트는 언제나 리얼리스트에게 죽임을 당한단다.

섬뜩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했던 로맨티스트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라서... 

로맨티스트는 수평과 대칭의 세상을 꿈꾸는데

리얼리스트는 수직과 대립의 세상을 꿈꾼다.

리얼리스트의 세계는 그래서 자기 밥그릇이 중요하다.

그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그렇게 기를 쓰고 남의 밥그릇 뺏기에 혈안이다.

그 밥그릇 싸움에 국민들 등짝은 갈라지고 피고름이 흐른다.

명예라는 건 개나 물어가라지!

리얼리스트의 세계에서는 로맨티스트는 도깨비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탈을 쓴 귀면(鬼面)의 도깨비.

도깨비로 태어나 도깨비로 죽는 이 땅의 숱한 풀잎들의 흔들림이 서럽다.

 

세상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로맨티스트, 리얼리스트, 그리고 로맨티스트를 가장한 리얼리스트.

김달과 비형, 그리고 도화로 대변되는 그 세계가,

어쩌자고 이 세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가 말이다!

조직폭력단의 비호를 받는 건설사업과 끊이지 않는 통치자의 친인척 비리.

정치와 경제의 오래고 끈질긴 유착관계.

그래서 사보타주(sabotage)가 생존의 필수조건이 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로맨티스트 죽이기>

이 작품은 어쩌면 이 세계를 향한 격정적이고 간절한 외침이자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배우가 무대 크루이기도 했던 이 작품.

아주 의도적인 구성이었다는 걸 작품을 보고 난 후 이해했다.

배우들은 한 번 무대 위로 오르면

공연이 끝날때까지 계속 무대 위에 머무른다. 

양쪽 사이드에 앉아서 무대 크루 역할을 하거나 의상을 교체하면서 다음 장면을 준비한다.

자칫하면 산만해질 수도 있었을텐데 동선과 무대 이용을 참 효과적으로 잘 다듬었다.

밥 딜런의 노래 "Knocking On Heaven's Door"도 끝장날만큼 멋진 활용이자 상징이었다.

(이렇게 멋져도 되는 건가!)

 

배우들의 연기는...

감히 뭐라 말도 못하겠다.

특히 김달 역의 한윤춘 배우는 경외심 그 이상이다.

단지 파격적인 노출을 했대서가 아니다.

왜 한윤춘이라는 배우를 지금에서야 알았나 가슴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완전히 장악했고 끝까지 놓치 않았다.

솔직히 무시무시한 공포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거대하고 위험한 배우, 한윤춘!

김달보다 배우 한유춘이 더 도깨비같다.

 

아무래도 난 도깨비불을 봐버린 것 같다.

오랫만에 제대로 홀렸다...

 

* 비형 역의 배우 이승수도 놀랍다.

  <내 심장을 쏴라!>에서도 인상적이었는데 어느 틈에 이렇게 멋진 배우가 되버렸을까?

  많이 놀랐다.

  이름은 그 이승수가 맞는데 정말 그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과 연기라서...

  이 작품!

  안 본 사람들은 땅을 치고 후회할거다!

  배우들의 목소리에 홀린 기회를 잃어버린 건 정말이지 애통한 일이 될거다.

  (작품에 나오는 모든 배우들의 목소리... 와... 이건 정말 꿈이다!)

  갑자기 루저에서 승자가 된 듯한 이 승리감!

  정말 두고두고 손에 꼽을 작품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