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2. 7. 08:29

<웃음의 대학>

일시 : 2013.11.08. ~ 2014.02.23.

장소 :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대본 : 미타니 코우키

연출 : 김낙형

출연 : 송영창, 서현철, 조재윤 (검열관)

        김승대, 정태우, 류덕환 (작가)

제작 : (주)적도, (주)연극열전

 

몇 번의 예매와 취소를 반복하다 보게 된 작품.

(캐스팅이 바뀌기도 했고, 갑자기 일이 생기기도 해서...)

2008년 연극열전2로 초연될때부터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6년 만에 드디어 볼 수 있게 되서 혼자 감회에 젖기도 했다.

서련철과 류덕환, 내가 원했던 캐스팅이었고,

목요일 저녁공연이라 할인율도 높았고.

그리고 좌석은 환상적일 정도로 좋았다.

검열관에서 살짝 조재윤과 고민을 하긴 했지만 역시 서현철로 기울 수밖에 없더라.

서현철 특유의 말투와 억양, 표정이 자꾸 나를 끌어당겨서... ^^

역시나 서현철은 대사 타이밍도 좋고 순발력있는 연기도 정말 좋더다.

무대 위에서 오버하지 않으면서 기꺼이 망가질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 배우.

여전히 참 좋다. 서현철이라는 배우.

작가역의 류덕환과도 잘 맞았고.

류덕환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배우인데

아무래도 작은키 때문에 배역에 한게가 생길 수 밖에 없어 참 안타깝다.

정말 너무 열심히 하는, 그리고 잘 하는 배우인데...

언젠가 그의 진면목을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이 꼭 나올거라 믿고 싶다.

 

<웃음의 대학>은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이 시대배경이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웃음 따위는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검열관에게

공연허가를 받기 위해 극단 "웃음의 대학" 전속작가의 고분분투기다.

(어디까지나 표면상으로는....)

공연허가를 위해 검열관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는 7일.

작가는 일곱 번의 수정을 거듭하면서 검열관에과 기묘하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간다.

웃을 수 없은 희극작품을 쓰라는 아이러니한 검열관의 요구를 가장한 명령.

그러나 작품 속에선 다행히 검열과 수정이 반복될때마다 오히려 작품은 더 재미있어진다

그리고 급기야 작가과 검열관은

어느틈에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며 존중하는 관계로 변한다.

두 사람의 이런 변화는 일종의 화해이자 완벽한 파괴이기도 하다.

(파괴하지 않으면 창조는 없다!)

 

사실 이 작품은 한바탕 웃고 지나가는 코믹물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묵직하다.

왜 서민의 즐거움을 빼앗으려고 하느냐는 작가의 대사를 들으면서

<웃음의 대학>의 해프닝이 봇물터지듯 넘쳐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케 했다.

뭐랄까?

우리는 지금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사전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가령 그들의 생각하는 "소시민"과 우리가 생각하는 "소시민"의 뜻은 애초부터 완전히 다르다는...

언어의 기본구조가 다르니 화해와 화합도 불가능하다.

희극작가가 (권력과) 싸우는 그 끊임없는 저항의 방법이

지금 우리에게도 있다면 참 좋을텐데...

(혼자 묵직해졌다.... 젠장!)

 

"전 자신감 따윈 없습니다!

 다만 제자신을 믿을뿐입니다"

작가의 검열관에서 던진 대사가 참 뭉클했다.

(이 장면에서 류덕환의 표정과 연기 정말 좋더라)

궁금해졌다.

웃을 수 있으면 살 수 있다는 작가의 말.

그런데 그게 정말일까?

 

웃을 수 있으면...

살 수 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4. 9. 06:01

 

 <서툰 사람들>

 

일시 : 2012.02.11 ~ 2012.05.28.

장소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출연 : 정웅인, 류덕환, 조복래 (장덕배) / 예지원, 이채영, 심영은 (유화이) / 김병옥, 홍승균 (멀티맨)

대본 : 장진

연출 : 장진

제작 : 문화창작집단 수다

 

장진이 만든 코믹 소란극 <서툰 사람들>

<장진 희곡집>을 읽어서 그랬겠지만 정말 기대를 많이 했던 작품이다. 

상황과 이야기 전개, 인물의 성격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희곡으로만 읽어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게다가 정웅인, 예진원 캐스팅이라니.

두 코믹의 대가가 무대 위에서 서로 지지 않고 맞부딛칠 걸 상상하니 어찌 아니 즐거울소냐!

그런데 잠깐!

이 작품의 주인공의  나이를 생각하곤 설마... 하는 걱정이 앞섰다.

26살 도둑 장덕배와 26살 집주인 유화이.

배우들 나이도 나이인만큼 아마도 주인공들의 나이를 30대로 설정하지 않았을까 혼자 예상했는데 

여지없이 내 예상이 무너뜨렸다. 

하기 30대라면 이런 대화가 오고가기는 좀 어렵겠지 싶다.

참 미안한 말이지만,

연극 초반부 유화이(예지원)이 자신의 집이 너무 높다며 "내 다리~~~~"를 울부짖을 때

난 유화이 어머님이 따님 집에 방문하신 줄 알았다.

어! 극본엔 안 나오는 어머님이 이번엔 나오시나보다... 혼자 생각했다.

한참 뒤에야 어머님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유화이인 것을 알고 혼자 무지 식겁하고 말았다.

확실히 예진원을 26살로 설정한 건 무리수가 많이 따른다.

어려보이려고 머리도 컷트한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사진 속 모습이 훨씬 어려보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혼자 무리수가 아니라 정웅인도 역시도 무리수라 그런 면에서 궁합은 잘 맞는다.

 

연극은 기대만큼 재미있었다.

끝나고 나오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 그러더라.

"광대뼈 터지는 줄 알았어!" 라고.

아마도 두 배우의 역량이 그만큼 크게 작용했으리라.

(개인적으론 극본이 더 재미있었지만) 

두 주인공이 나이가 있어서인지

김추락, 서팔호, 유달수 역을 한 홍승균이 상대적으로 어려보여 나름대로 코믹했다.

유화이역의 예지원은 목이 괜찮은지 모르겟다.

매번 소리를 지르면서 그렇게 과하게 울부짖으면(?) 그 성대가 남아날까?

목소리톤 자체는 예전 <미드썸머>때가 훨씬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냥 자신의 목소리 그대로 유화이를 연기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일부러 설정을 그렇게 했는지 어떤건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그게 좀 아쉽다.

(계속 듣고 있자니 귀가 점점 피로해져서...)

정웅인 장덕배는 연기도 성실하고(?) 애드립도 시기적절하게 잘해서 관객 반응이 너무 좋았다.

특히 다리 찢기~~~ 완전 예술이시다.

마흔이 넘은 연세에 일자로 다리를 찢는다는게 가당키나 하는냐 말이다.

보기에도 별로 유연해보이는 몸매도 아니신데...

(정말 오랫만에 진기명기 목격했다. ^^)

 

원작과 다르게 두 주인공이 점점 남녀관계로 다가가는게 부각이 되는 건 아쉽다.

원작은 끝까지 친구인데,

연극은 곧 불꽃이 튈 분위기다.

이 상태라면 <서툰 사람들> 2탄격인 <서툰 연인들>이 탄생해도 무방하겠다.

설마? 혹시? 아니겠지...

뭐 생각해보니 장진이 그런 희곡 한 편 써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유화이, 장덕배.

장진의 영원한 뮤즈들~~~

(좀 이상한가!)

 

* 사족 한 마디!

  류덕환 장덕배와 예지원 유화이 페어는 솔직히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두 배우의 어마어마한 나이 차이가 과연 연기력으로 온전히 커버될 수 있을까?

  띠동갑을 넘어 16살이나 차이가 나는데...

  그게 뭐 또 다른 웃음코드로 작용할 수 있긴 하지만 어쨌든 두 배우의 동갑 연기는 도저히 상상이 안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2. 3. 30. 05:54

문학적 기발함은 일종의 신의 축복일까? 아니면 부단한 습득에 의해 형성될 수 있을까?
맨 처음 장진이 SBS에서 영화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바바리코트를 휘날리며 나타났을 때도
"와! 저 인간 엄청나네~~~' 하며 혀를 내둘렀더랬다.
뭐랄까, 일종의 부러움이었고 동경이었을 수도 있다.
갖지 못한 재능에 대한 탄식!
그의 영화들이 개봉될때마다 극장을 찾으면서도 이런 심정은 여전했다.
정만 난 놈이구나!
게다가 센 놈이구나!
동네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을 때 우연히 장진 희곡집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4월 초에 <서툰 사람들>을 볼 예정이기도 했다. 
한번쯤 읽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대출책에 한 권을 추가했다.
지금 재판된 책은 장진이 얼굴이 크게 나와있지만 내가 읽은 2008년도 출판된 책은 붉은 색 표지였다.

모두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렸다.
이미 영화와 연극으로 본 작품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왠만한 소설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다.
장진 희곡의 특징은 소위 지문이라고 하는 해설부분이 별로 없다는 거다.
인물의 행동을 설명이나 배경을 설명보다 오로지 대화가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한다.
간혹 실제 사람들의 대화에 내가 끼어 앉아있는 환상마저 느껴진다.
희곡집이 판타지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읽으면서 재미있게 경험했다.
이제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영화 감독은 안 하겠노라였던가???) 했던가!
투자자의 본전을 생각하며 돈계산을 하는 걸 이제 하고 싶지 않노라 했던 것도 같다.
한창 활발히 활동할 나이에 그의 깡다구 서린 결심이 문득 부러워진다.
배가 불렀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장진이니까 그나마 가능한 일이다 싶기도 하다.
게다가 영화판 아니더라도 장진이 활약할 무대는 무궁무진하다.
난 놈에 센 놈 아닌가 말이다!
연극판에서든 영화판에서든 좋은 배우를 찾아내는 매의 눈은 또 어떤가!
덕분에 정재영, 류덕환, 신하균 같은 좋은 배우도 알게 됐다.
"킬러들의 수다" 원빈은 또 어떻고!
지금은 <리턴 투 햄릿>과 <서툰사람들>이란 작품에서 조복래라는 새로운 광대를 발굴(?)하기까지 했다.
책을 읽으면서 장진의 문학적 동반자라 할 수 있는 유화이와 장덕배가 정말 어딘가 살고 있는 실제 인물같다.
지금은 예지원이 만들어낸 유화이, 정웅인이 만들어낼 장덕배를 궁금해하며 기다리고 있다.
기발함은 엄청난 에너지다.
아마도 장진은 쉽게 늙지 않을거다.
시나리오 작가, 감독, 제작자, 각색가, 그리고 배우까지 ...
그의 다재다능한 에너지가 부럽다.
이 무시무시한 놈이 진심으로 부럽다.
젠장!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2. 4. 06:29
 "저 소년은 오직 너제트라는 말만 포옹합니다.
  저 놈의 말 대가리를 제가 뒤집어쓴 것 같습니다. 저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연극 <에쿠우스>의 시작은 이렇다.

얼마나 가슴 떨리게 하고 얼마나 치열하게 바라봤던 연극인가...
내가 기억하는 <에쿠우스>는
"중독"과 "탐욕"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대학로 세번째 연극열전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으로 2009년 다시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많이 두근거렸고 그리고 첫사랑을 재회하는 것처럼 마냥 떨렸다.
송승환과 조재현의 다이사트.
젊은 시절 알런으로 무대 위에 올랐던 그들의 감회에
주책없이 동참하기까지 했다.
김태우와 류덕환, 그들의 알런이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했다.



2005년 김영민 알런에 남명렬 다이사트를 신화처럼 그리고 아직도 현실처럼 생생하고 기억하고 있는 나...
5년만에 보게 된 <에쿠우스>는
그러나 내겐 황무지를 바라보는 것처럼 피폐한 모습이었다.
코믹버전의 에쿠우스를 보면서 10분의 뜬금없는 인터미션에도 불구하고
지루함과 오랜 싸움을 해야만 했다.
조재현 연출의 <에쿠우스>는
그전까지 봤던 집요하고 끈질기고 그리고 실험적인 공연을
과감하게(?) 시장판으로 내돌리기로 결정한 듯 하다.
연극의 대중화를 위해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열극열전 시리즈는
아마도 조재현이라는 배우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으리라.
그래, 그건 정말 인정한다.
그리고 그의 노력과 열정에는 누가 뭐래도 기립박수를 보낸다.
물론 연극열전의 작품들이 전부 괜찮았던 건 아니지만,
어찌됐든 뮤지컬의 대중화에 밀려 침체기에 놓여 있던 연극의 유료관객 수를 엄청나게 늘려놨다는 건
내게도 대단한 이벤트요 혁신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그래도...
에쿠우스를 시장판으로 내돌린 그의 연출에
나는 너무도 너무도 화가 치민다.



송승환, 류덕환
스크린을 압도한 두 배우의 연기는
알몸에 가까운 근육질의 8마리 말들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고 파괴된다.
(2005년에 비해 말 한 마리가 늘었다. 5년 후에는 9마리의 말이 등장하게 되는 건 아닐까???)
"정열을 파괴할 순 있어도 창조할 순 없다"
다이사트의 말이 무색할 만큼 알런의 열정은 그 전에 이미 사라졌고
(그래도 이 연극에서 제일 눈에 띄는 사람이 바로 류덕환이다.
그의 표정과 말투에는 알런이 어쨌든 담겨있다. 행동은 모호했지만... )
다이사트는 마치 TV 브라운관을 통해 드라마를 시청하듯 알런을 향해 내내 심드렁한 모습이다.
(여차하면 체널을 돌릴 기세다)
공연 시작 전에 송승환 다이사트가 먼저 나와 혼자 보란듯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
뭐랄까, 소문 무성한 무당집에서 바람잡이가 순서표를 나줘주며 손님들을 떠보는 액션 같이 불쾌했다.
그래도 아버지에 비하면 다이사트의 불쾌감은 그나마 봐줄만 하다.
철저한 금욕주의의 알런의 아버지는
"개그콘서트"에 출연해도 단박에 인기를 끌 수 있을 만큼 잔인하게 코믹하다.
코믹한 금욕주의자라니...
때때로 아버지로 인해 웃어대는 관객들.
나는 그런 웃음을 이끌어내는 연극이 너무 못마땅하고 너저분하고 난잡하게 느껴졌다.
알런의 아버지는 결코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의 금욕이 비록 겉모습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그런 이유로 더 철저히 냉소적인 비웃음을 안겨줬어야만 했다.
그래야 극의 후반부 포르노 영화장에서 아들을 마주치는 장면에서 이중적인 인간의 근본과의 대면을 보며
관객들 또한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듯 진저리를 쳐야 했다.
그러나 2009년 에쿠우스의 아버지는 처음부터 발정난 인간에 불과했다.
그는 아마 꿈에서도 금욕을 생각하지도 못할 인물이다.
그렇다면 알런의 어머니는?
교사출신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는
과연 자신의 아들에 대해 감정을 가지고 있기는 한건가?
2005년도에 나는 어머니에게서 어쩌지 못하는 "애증"을 느꼈다.
지금은 제멋데로 노는 아이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는 피곤에 찌든 부모를 보는 느낌이다.
알런의 부모들은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버린 걸까?



알런을 다이사트 박사에게 부탁하는 판사는.
아무래도 직업이 잘못 표기된 것 같다.
내가 느낀 그녀의 모습은 다이사트 박사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지는 여비서에 불과했다.
늘씬한 다리를 보란 듯이 꼬고 앉아서
심각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태도로 알런을 부탁하고 종종 찾아와 경과를 듣는 그녀는
당황스러웠고 깊이감이 없었다.
마치 가십기사를 대하는 여비서의 포즈 그대로였다.
그녀가 구하고 싶었던 건 불쌍한 알런의 영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판사가 유부남 정신과 의사를 상대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조용히 그녀의 손을 붙잡고 다른 정신과 의사를  만나게 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돈많은 재벌 노인네라도 소개시켜줘야만 할 것만 같다.



...... 혼란스러웠다. 연극 《에쿠우스(Equus)는 비극인데 관객은 숭고한 주인공이나 좌절이 아니라 다른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넋을 낚아챈 건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말(馬)들이었다. 절대 다수인 여성 관객은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때 온통 말 이야기뿐이었다. 그들이 숭배하는 것은 근육질의 말 같았다. 그렇다면 연극이 변한 것인가, 관객이 달라진 것인가...... 이 연극은 미완성이다. 비극을 사랑한 관객은 실망했을 수도 있다. 말들을 강조한 이번 《에쿠우스》는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서성이는 것 같았다. 대중성을 얻었지만 작품의 정신까지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다. 즐기다가도 서글퍼졌다......

누군가 이런 기사를 썼다.
그리고 나는 전적으로 이 기사에 동의하며
이렇게 동의해야만 하는 게 너무 화가 난다.
"과연 나는 누구를 숭배해 본 적이 있는가?"
알런을 치료하며 스스로 던지는 다이사트의 질문은 공허해지고 말았다.
더불어 알런이 미치게 부럽다고 말하는 그의 고백 또한 정당성을 잃었다.
말의 성전에서 의식을 치르고 널브러진 알런을 부등켜 안으며
내가 널 치료해주겠다고 했을 땐
"너나 잘하세요!"라며 친절한 금자씨가 되어 말해주고 싶었다.
피곤에 찌든 다이사트가 자신의 힘으로 구할 수 있는 건 과연 뭘까?



2005년 내가 그토록 정열적으로 봤던 에쿠우스는
성적인 판타지를 주는 애로물도
턱없는 웃음을 주는 코믹물도 아니었다.
내 기억 속 알런과 너제트가 의식을 치루듯 달리는 장면은
성스러웠고 장엄했었다.
(그리고 나는 분명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었다)
그러나 떡칠(?)을 하고 나온 건장한 보디빌더들이 취하는 과한 동작들은
경박한 섹스코드를 눈 앞에 들이대는 것 같아 불쾌하고 난감하기까지 했다.
남창처럼 외부에 전시된 썬텐된 그들의 몸을 보며 나는 연극 <에쿠우스>의 비극성을
연극이 끝난 로비에서 느닷없는 느꼈다.
(그나마 그들 얼굴이 두꺼운 분장으로 덮여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맨 얼굴로 그렇게 서있었다면 얼마나 서로 난감했을까?)



2005년 포스터를 찾아 보면서 
같은 작품도 누군가에 의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걸 실감하며
나는 심각하게 <에쿠우스>에 대해 현재진행형으로 당황하고 있다.
어쩌면... 어쩌면...
김영민 알런과 남명렬 다이사트가 너무 강렬했기에 내게 <에쿠우스>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긴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결코 그 고정관념을 나는 결코 깨고 싶지 않다.
2005년 <에쿠우스>는 내겐 분명 구원같은 작품이었는데
2009년 <에쿠우스>는 내겐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 연극에 진심으로 칭클창클을 메고 싶다.
너접한 푸줏간을 다녀온 느낌이다.



    -----  only 퍼포먼스 <에쿠우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