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12. 28. 08:06

<심야식당>

일시 : 2012.12.11. ~ 2013.02.17.

장소 :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원작 : 아베 야로 "심야식당"

대본, 작사 : 정영

작곡 : 김혜성

연출 : 김동연

출연 : 송영창, 박지일 (마스터) / 서현철, 정수한 (타다시)

        임기홍, 김늘메 (코스즈) / 박정표, 최호중 (겐)

        한채윤, 백은혜 (치도리 미유키) / 박혜나 (마릴린)

        정의욱 (켄자키 류)/차정화, 배문주, 김아영 (오차즈케 시스터즈)

 

원래는 계획에 없던 관람이었다.

책장 넘기는게 귀찮아 만화를 워낙에 안 읽기도 하거니와

특히나 일본만화는 이상하게 공감하기가 쉽지않아 더 안 보게 된다.

(나, 그 유명하다는 슬램덩크, 초밥왕 이런 것도 안 봤다.)

아무리 출연진들이 좋다고 하더라도 인터파크에 미리크리스마스 이벤트 30% 할인이 뜨지 않았다면 아마도 외면했을 작품.

솔직히 말하면 이 작품이 창작인줄도 몰랐다.

그런 작품이 있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공연장을 찾았는데

첫 장면과 대면하는 순간 속수무책으로 쏙 빠져버리게 되는 그런 작품!

창작뮤지컬 <심야식당>이 내겐 그랬다.

작고 소박한 음식점 앞으로 박지일이 자전거를 끌고 들어서는 순간,

느닷없이 퍼지던 따뜻한 훈김.

그건 마치 이제 막 지어낸 고슬고슬한 밥을 눈 앞에 둔 느낌이었다.

2시간 동안 지독한 허기와 신기한 포만감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어느새 내 빈 속은 꽉 채워졌다.

문어모양으로 자른 베엔나 소시지를 볶은 소리,

달콤한 계란말이 부치는 소리,

전기밥통 여는 소리, 차

밥 위에 차를 따르는 소리,

재료를 손질하는 경괘한 칼질 소리.

음식을 준비하는 이 모든 소리가 그렇게나 다정하고 따뜻할 수 없었다.

(이런 소리들을 작품속에서 그대로 들려주겠다는 생각, 누가 맨 처음 했을까?)

 

저녁 12시 부터 아침 7시까지 문을 여는,

변변한 간판도 없는 심야식당.

메뉴라고는 된장정식 하나뿐이지만

손님이 주문하는 음식은 그때그때 만들어주는 마스터가 있는 그 곳.

사람들은 심야식당 문을 열고 말한다.

"마스터! 늘 먹던 걸로 주세요~~~"

비엔나소시지, 달콤한 계란말이, 고양이맘마, 버터라이스, 모시조개술찜,

달걀후라이를 올린 소스 야끼 소바, 감자셀러드, 오차즈께...

음식과 함께 하나씩 꺼내지는 추억과 사연들에 나는 여러번 뭉클하고 아련했다.

추억에 제대로 채한 사람들.

외롭고 지친 세상에서 나를 알아봐주고 위로해주는 단 하나의 음식.

마스터가 해주는 음식은 "괜찮다, 괜찮다"라며 어깨를 또닥이는 깊은 위로 같다.

(그치,그치,그치,그치~~~~ 네~~~!) 

마스터 역의 박지일은 정말 최고의 스토리텔러였다.

대사와 노래가 많은건 아니지만 작품 속에서의 존재감은 정말 엄청나다.

그 목소리라니...

누구라도 박지일 마스터 옆에 있으면 그동안 꽁꽁 싸매고 있던 깊은 트라우마도 술술 고백할 수 있을 것 같다.

절로 위로가 되는 백만불자리 음성.

늙은 게이 코스즈 임기홍도 신주쿠 뒷골목 역사책 타다시 서현철도 역시나 멋지고 인상적이었다.

(이 두 배우가 내게 일말의 실망을 안겨줄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배우 최호중은 놀라운 발견이다.

이 배우 주목받기에 정말 충분하다!

노래도 괜찮고 그 많은 배역을 정말 완전히 다른 감정과 모습으로 연기했다.

임기홍과 또 다른 부류의 멀티맨 탄생을 예고한다.

매실, 연어, 명란젖 오차즈께 시스터즈는 정말 환상적이었고

작품의 구석구석을 정말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었다.

등장하는 10명의  배우들 전부 대단했다.

번잡하지 않은 무대도 너무 좋았고 뮤지컬 넘버들도 하나하나 다 좋았다.

(요즘 공연되는 창작뮤지컬들 정말 대단하다. 정말 만세다~~!)

 

정말이지 이 식당 어떻게든 찾아내서 꼭 한 번 가고 싶다.

찾아내면 문을 드르륵 열고 호기롭게 말하는거다.

"마스터! 늘 먹던 걸로 주세요!"

 

나는...

진심으로 위로받고 싶다.

내 텅 빈 마음속 그 깊은 곳까지

포만감 가득한 위로를 꾹꾹 채우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1. 25. 05:58
개인적으로 파울로 코엘료는 <순례자>, <연금술사> 이후
중기 작품들이 맘에 든다.
순서적으로 약간 이상하게 출판되긴 했지만 이 책 <브리다>는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연금술사> 2년 후 작품이다.
(<연금술사>는 "한 권의 책이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작가"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단다)
1990년 발표된 작품이지만 우리나라엔 2010년에야 번역, 출판됐다.
<순례자>를 통해 깨달음을 시작하고 <연금술사>로 그 진실의 정수와 조우했다면
<브리다>는 그 순례의 길에서 만난 운명을 찾아 떠난 스무살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여자와 운명...
코엘료스러운 조합이긴 한데 좀 어리둥절하게 한다.
중반 이후까지 아주 "코엘료" 스럽다가 후반부터 사람 애매하게 만들어버려서...
등장인물이 아니라 읽고 있는 나를...
물론 <승자는 혼자다>만큼 혼란스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더 이상 가슴 저릿저릿하지 않다는 건,
어쩌면 내가 너무 무디게 나이가 들어가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소울 메이트"
가슴뛰는 단어였다가 점점 무덤덤해지는 단어가 되버린 말.
이젠 소울 메이트라고 하면 "불륜"의 그럴싸한 핑게가 먼저 떠오르는 지경이니... 쯧쯧!
어쨌든 사람의 삶은,
 자신만의 소울 메이트를 만나기 위한 긴 순례의 길이란다.
그리고 하나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길들을 포기해야만 하고...
“살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우리 모두는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만나고 그를 알아보지”

꼭 만나야 할 단 하나의 운명!
브라다는 현자(마스터)이자 스승인 마법사에게 되물는다.
"소울메이트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알고 싶어요?' 라고...
왼쪽 어깨 위에 반짝이는 점과 눈 속의 광채를 통해 알 수 있다는 현자의 말은...
너무 동화적이라 그만 기운이 빠지고 만다.



파울로 코엘료가 말하고 싶었던 건,
운명을 발견하기 위해 당신은 얼마만큼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이다.
그게 뭐 꼭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운명을 위해 신비(비밀)의 전승과 위험 감수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브리다는 마녀의 입문식을 행함으로서 신비(비밀)를 택했다.
이 두 가지에서 하나를 선택했다면 안심하지 말지니,
또 다른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운명을 찾았다면 그 외의 다른 모든 길은 포기하겠는가?
포기할 수 있을 때 비로서 생과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고 코엘료는 말한다.
남자의 지식과 여자의 변화가 만날 때 "지혜" 만들어진단다.
그리고 감정이란 야수와 같아서 그것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지혜"란 놈이 필요하고...
그래서 내가 애매해져버린거다.
이 책이 운명을 말하는 건지, 지혜를 말하는 건지... 
양쪽 모두라고 한다면... 할 말 없다...쩝!
아무래도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내가 마법사라도 돼서
태양 전승이든, 달 전승이든 하나를 깨우쳐야 할 것 같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마무리는 너무 약하다.
그래서 내겐 꽤 산만한 이야기가 되버렸다.
코엘료의 다음 소설 <알레프>에서 다시 "코엘료"스러움을 찾아봐야하나???
이건 초기작이라 뭐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확실히 코엘료가 요즘 변하긴 한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