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6.01 <7년의 밤> - 정유정
  2. 2011.05.16 코엑스 아쿠아리움
읽고 끄적 끄적...2011. 6. 1. 06:38

사실 이 소설을 읽은지는 꽤 됐다.
2009년도 세계문학상 수상작이었던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를 읽으면서도,
수리마을 수리정신병원 사람들에 완전히 넋을 잃고 빠졌었는데...
덕분에 작년에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연극으로 올려졌을 때도 놓치지 않고 챙겨 보기까지 했었다.
<7년의 밤>
정유정은 전작 <내 심장을 쏴라> 이후 일체의 작품 발표 없이 이 소설 집필에만 몰두했단다.
이 소설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괴물"이다.
섬득하고 무섭고 치밀하고 그리고 수시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분량이 꽤 되는데도 손에 잡은 순간 끝까지 읽어버리지 않고는 도저히 책을 놓을 수 없다.
"괴물"을 응시하는 내 눈길 속의 엄청난 몰입과 긴장감이란...
이런 세계를 만들어낸 작가의 머릿속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냔 말이다.
근래 읽은 책 중에서 단연 최고다.
정말 오랫만에 책을 읽으면서,
내내 끝없이 숨막혀봤다.

지난 3월말 출판된 이 엄청난 괴물은 벌써 7만부를 돌파했다.
읽으면서도 계속 영화판에서 눈독을 들이겠구나 생각했는데
판권구매 제안서를 보낸 영화사만도 15곳에 넘었다는 후문이다.
결국 5월 12일 위더스 필름이 그 행운을 잡았다.
계약금 1억원에 5%의 런닝 개런티!
지금까지 한국소설 가운데 판권료가 가장 높았던 작품은
1억 5천만원에 판권이 팔린 공지영의 장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었는데 
(그것도 한창 한국영화가 잘 나갔을 2001년도에)
정유정의 <7년의 밤>은 러닝 개런티까지 포함하면 기존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셈이란다.
2편의 장편을 쓴 신진 작가에게는 확실히 이례적인 대우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원작에 대한 확신이 엄청나다는 반증인 셈이다. (그리고 이부분은 완전 동감이다.)
얼마전에 가상 개스팅 이벤트도 있었던 모양이다.
독자들이 원하는 주인공은 최현수 역에 송강호, 김윤석,
사이코패스 오영재 역에 이성재가 1위를 했단다.
이대로만 캐스팅이 된다면 꽤 괜찮은 물건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영화가 개봉되면 당장 달려가서 볼 1인 ^^)


개인병원 물리치료사였던 작은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작은어머니는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비우라는 요구를 받았다.
일가족은 도망치듯, 산본의 한 아파트로 이사했다.
작은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산다는 게 알려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내 사촌들은 나와 화장실조차 함께 쓰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쩌다 집 안에서 마주치면 비명부터 질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얼어붙었다.

끝나지 않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내 인생은 세령목장을 나서던 밤에 이미 끝났는데.
내 이마에는 원죄라는 쇠뿔이 박혔고 아저씨는 나로 인해 떠돌이가 되었다.
세령호사건은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내 삶도 변하지 않는다.

동네 여자 아이의 목을 비틀어 살해하고
여자아이의 아버지를 뭉치로 때려죽이고
자기 아내마저 죽여 강에 내던지 사람.
급기야 세령호 수문을 열어 경찰 넷과 한 마을주민 절반을 수장시켜버린 미치광이 살인마 최현수.
7년 전의 사건으로 세상의 도망자가 되어 철저히 숨어사는 아들 최서원.
문득문득 영화 <황해>가 떠오른다.
평범한 소시민의 어떻게 범죄에 내몰리는가를 보여준 그 영화가...
살인자로 세간의 지탄을 받는 최현수보다
아내와 딸에게 교정이라는 명목하에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아버지 오영제의 모습이 
나는 더 섬뜩하고 공포스럽다.
7년 전 그 밤!
오영제의 폭력이 없었다면 아마도 최현수의 교통사고도 없었으리라.
그리고 목격자도 없었을거고 
차곡차곡 파괴되는 삶도 없었으리라...

사건 속에 사건이 끝없이 맞물리면서
진실 속에서 또 다른 진실들이 밝혀지고 또 밝혀진다.
사이코패스의 그릇된 부성(?)은 복수라는 이름하에 한 아이의 삶을 7년간 수장시켜버린다.
(이런 삶이라면 도저히 삶이라고 명명하지 못하겠다.)
내가 알고 있는 게 정말 진실일까?
우리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일들은 과연 정말 끝난 게 맞는걸까?
책을 읽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서늘하다.
내 과거도 어딘가에서 지금 계속되고 있는 건 아닐까?
문득 내 삶이 전부 끝없이 이어지는 몽유같다.
이 이야기는 확실히 나를 죄여온다.
천천히... 그리고 끊임없이...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11. 5. 16. 06:25

리모델링을 했는지 몇 년 전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공간 구성이 달라진 건 아니지만
조명이나 전체적인 색감이 예뻐졌다.
약간 비릿했던 냄새도 전혀 없고...
해저터널은 처음 봤을때만큼 신비롭진 않았지만
역시 다른 생명들이 사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건
여전히 놀라운 신비이고 경이다.
움직임이 주는 아름다움!
생명은 그렇게 진화되고 그렇게 나이를 먹는 모양이다.
어쩌면 그 움직임의 동선을 연결하면 물고기들의 나이테가 보일지도 모르겠다.

식인물고기 피라냐가 빛깔이 이렇게 예뼜던가!
그 황금빛 움직임이 오랫동안 눈길을 잡아 끈다.
빵빵하게 부풀어른 작고 노란 복어를 보면서
그 모습을 따라하는 조카들의 웃음이 꼭 하늘처럼 푸르고 맑다.
몽유같은, 혹은 유령같은 눈을 가진 작은 물고기들은
어쩌면 24시간 꿈을 꾸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길조라는 쌍두거북의 모습은 어쩐지 섬득하고 측은하다.
두 개의 생각을 한 몸에 담고 산다는 건
결코 당사자에겐 길조가 아닌 혼돈일텐데...
길게 목을 늘리고 물 속을 헤엄치는 거북을 보면서
길조의 위대함보다 자유의 소박함이 백 배쯤은 더 황홀해보이더라. 
이것도 다 이기적인 내 생각에 불과할 뿐이겠지만...



아이들의 움직임과 물고기들의 움직임은 공통점이 많다.
자유롭고 예측할 수 없다는 거,
그리고 묘하게 질서가 있다는 거,
그런 모습이 천진한 웃음소리처럼 깨끗하고 청량하다는 거.
그렇겠지!
하나하나 계산하면서 동선을 그리진 않을테지.
그 자유로움을 보는 건 한없는 부러움이고 찬사였다.
그게 전부 진실은 아닐지라도...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유연한 움직임이 마냥 부럽기만 한 건 어쩔 수 없다.



거대한 수족관은 보는 사람을 몽유상태로 이끈다.
혹은 아름다운 최면이라고 해두자!
꿈꾸는 자유를 나는 이 작은 생물들을 오래오래 들여다보면서 다시 깨닫는다.
그리고 그게 또 진심으로 부러웠다.
그들의 한때는 정말 좋았으리라...
그 기억이 아마도 지금 저들의 물길을 만들고 있는지도.

나는 지금 어떤 길을 기다리고 있나.
어떤 기억으로 나는 내 길을 꿈꾸고 있나.
무겁고 거추장스런 물길만 끌고 있는 나는
그래서 늘 고단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