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12. 16. 06:00
문학동네가 올해 초에 의미있는 일을 냈다.
한 장의 그림 또는 하나의 역사적 장면을 키워드로 삼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재발견하는 인문서 시리즈 '키워드 한국문화'는
현재까지 10권의 책이 출판됐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출간할 예정이란다.
개인적으로 참 고맙고 반가운 책이라 하겠다.
그 첫번째 책이 바로 <세한도>다.
추사 김정희!
시, 서,화에 두루 능했을 뿐만 아니라
금석학, 경학, 고증학까지 조예가 깊었던 그는 중국까지도 그 명성을 떨쳤다
우리나라 전체를 통틀어 손꼽힐만한 지식인이었던 추사.
그리고 추사의 뒤에서 방대한 정보력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우선 이상적이다.
추운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
세한도 그림 속에는 유명한 공자의 말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제주도에 위리안치된 추사 김정희.
유배간 사람을 누가 일부러 찾을까?
그것도 바다 건너 저 먼 제주도까지...
추사의 제자이자 당대 유명한 역관이었던 우선 이상적은 
그러나 변함이 없이 추사를 그리워하고 흠모하면서
그에게 청나라에서 가지고 온 귀한 서책들을 보냈다.
그가 보낸 책에는 당시에 지식인들이 읽고 싶어했던
<황조경제문편> 120권 79책도 있었다.
말이 120권이지 예정없는 뱃길로 서책을 운반하기란 지금처럼 쉽지 않았으리라.
이상적 본인도 청나라에서 문집이 간행될 정도로 문학적 소양을 인정받은 사람이었는데
어찌 그런 귀한 책들이 탐나지 않았을까!
그 마음을 능히 알았을 추사는 <세한도>를 그려 이상적에게 보낸다.
그러니까 <세한도>는
이상적의 의리와 믿음이 추운 겨울 변하지 않고 푸르른 소나무와 잣나무 같다는 표현이자
추사의 진심이 담긴 그윽한 마음의 전달이었다.

...... <세한도>에 담긴 정신이 추사 한 사람만의 감회가 아니라, 조선의 모든 선비들의 정신이자 지금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추사는 <세한도>를 통해 바로 이 조선의 정신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한 장의 그림이 아닌, 학문과 예술이 하나 되는 경지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추사가 <세한도>를 완성해낸 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추사는 청나라에서 유행하던 화풍을 연구하여 그 근원의 궁극을 파헤쳤고, 그 궁극에 이르는 문경을 만들어냈다. <세한도>는 추사 자신이 만든 그 문경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세한도>에 청조 학술과 예술의 정수가 담겨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추사가 <세한도>를 완성하는 과정은 우리가 외래문화를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한 전범이라 할 수 있다. 외래문화의 틀 속에 우리의 정신을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지, 그 해답을 제시해준 것이다. 이것은 바로 외래문화의 수용을 통해 새롭게 창조한 우리 문화가 그 보편적 가치를 확보해나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처절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


박철상의 글을 읽으면,
그가 <세한도>에 얼마나 특별한 감회와 존경을 담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일부러 관계된 모든 것들을 찾아 책 속에 담으려고 한 모습이
읽는 내내 또 다른 감동이었다.
명작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세한도>에 담긴 몰랐던 사실들도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또 식민지 시절 일본으로 옮겨진 <세한도>를 거금을 주고 찾아온 손재형의 모습에선
간송 전형필을 떠올렸다.
(이들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문화유산을 지킬 수 있었는가!)
손재형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세한도> 여깃도 
일본 공습의 폭격 속에서 재가 되고 말았으리라...



책 말미에 20여명이 <세한도>를 보고 쓴 제형을 찬찬히 읽는 것도 특별했다.
추사에게 <세한도>를 받은 이상적은
연행길에 그 그림을 동반한다.
좋은 그림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었겠지만
이상적은 청나라에서 추사의 소식을 궁금해하던 사람들에게 그림을 보이고
직접 그들의 제형을 받아와 스승에게 알린다.
서로의 안부를 제형으로 확인하고 위로하는 애뜻한 정을 보는 것 역시도
뭉클할만큼 아름답다.

책을 읽으면서,
몇 년 전에 <세한도>가 전시됐을 때
미적거리다 미처 찾아보지 못한 게 또 그렇게 원망스러울수가 없다.
게으른 자의 회한은
늘 반성할 것 투성이다.

세.한.도
눈 앞에서 직접 확인하고 싶은 정신이다.
얼마나 아득할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0. 8. 05:45
처음엔 그를 왜 문단에서 주목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1970년 출생한 아주 젊디 젊은 작가 김연수
그 나이에 과거가 있으면 얼마나 있고 사건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젊은 작가 한 명의 작품이 나올때마다 문단은 바빠지나 했었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굿빠이, 이상>으로 2001년 동서문학상,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2003년 동인문학상,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2005년 대산문학상,
2007년 단편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
그의 이력은 문학상 수상작만 나열하는 것으로도 숨이 차다.
순서가 좀 뒤바뀌긴긴 했지만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었을 때도 의구심이 풀리지 않았었다.
그리고 읽은 그의 두 번째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 책을 읽고 생각을 바꿨다.
그의 책을 이제 다 찾아보리라!



가끔 생각한다.
그가 성균관대 출신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1991년의 그 시점에 대학생이 아니었다면...
(그 때 성균관대에서 권기정의 사망 사건이 있었다.
 아주 생생하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성균관대 운동권 학생이었던 언니 때문이다.
 권기정의 시신을 지키는 무리 속에 우리 언니도 있었기에...)
어쩌면 김연수에게도 그 시절에 대한 부채 혹은 책임감 같은 것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치 광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소명처럼...
기억하고 그리고 기록해서 전하기 위해서.
그 때 서울 시내는 항상 매캐한 최류탄 가스로 가득했었고
도심은 백골단과 대학생들의 쫒고 쫒김으로 분주했었다.
명지대에서는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학생이 사망했었고
(공교롭게도 명지대는 우리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 그 사건도 아직까지 선명하다. 분향소를 찾아갔던 기억도...)
그리고 전대협의 북한행이 그 즈음이었고.
세계적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때이기도 했다.
곰곰히 되집으니 내가 살아온 대한민국의 현대사도 전쟁 못지 않았구나 싶다.
그러니까 이 책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는 이 모든 현대사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처음엔 사랑이야긴가 했었다.
그런데 아니다.
사람 이야기, 그것이었다.
예전의 어느 인터뷰에서 작가 김연수는 말했다.
"써보니까 소설이라는 게 사람을 이해하는 문제더라고요. 대상은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문득 떠올린 사람일 수도 있죠"
사람에 대한 이야기...
사람 이야기 속의 실제 사건과 시간들이 나는 두렵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생환한 뒤,
죽은 동료의 이름으로 개명하고 제3세계 망명객들의 후원자가 된 피아니스트 헬무트 베르크,
떠돌이 일용직 노동자에서 "광주의 랭보"로,
다시 혁명적 문화운동가 강시우로 "이 세상에 두 번 다시 태어"난 남자 이길용,
모범적인 고등학생에서 느닷없는 폭행을 경험하고 결국 자살에 이르는 정민의 삼촌,
서해 갯벌을 막아 논을 만들겠다는 만석지기의 꿈을 꾸다 간첩으로 몰려 실형까지 살게 된 주인공의 할아버지.
책 속엔 이렇게 유일하면서 둘이 되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읽으면서 나는 턱턱 숨이 막혔다.
한때 우리나라가 그랬었지.
(그렇다면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 의해 내 인생이 날조되고 뒤바꿔지기도.
그래서 몽롱한 바보로 버려지듯 던져져버린
그런 삶들이 있었다는 거...
여기도, 저기도 갈 수 없었던 사람들.
나 자신일 수도, 나 자신이 아닐 수도 없었던 시간들.
소설로 읽어내는 그 사람들과 그 시간들은 아무리 해도 덤덤해지지 않는다.

문학동네에 이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김연수는 말했다.
"때로는 한 사람이 세상 모두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한 사람만을 생각할 때도 있다.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고 말한 사람이 보르헤스라고 했던가. 확실하진 않지만 나는 보르헤스가 그런 말을 했다면 그게 옳은 말이라고 전해주고 싶다...... 모두에게는 각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역시 운명과 사랑과 배신과 복수와 좌절과 슬픔과 기쁨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멀리, 아주 멀리 가면 풍경은 달라지지만, 역시 이야기가 말하는 바는 비슷하다.
작가로서 진심으로 바라는 일은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정말 많은 얘기를 들려주기를.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이 다시 내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주기를....."
그가 쓴 또 다른 글에서 사람들은 또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그가 생각하는 재능이라는 건 "집중력"의 문제란다.
얼마만큼 시간을 그 안에 쏟아 부울 수 있는지의 정도 차이가 재능이라고...
이제 나는 또 한 사람의 재능을 탐하기로 했다.
김.연.수.
그를 읽어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